뒤 잔디 마당 한쪽에 작년에 받아 두었던 깻잎 씨를 뿌려 두었다. 지금은 제법 자라 빼곡해졌다. 거의 대부분 잔디라 마땅히 옮겨 심을 자리가 부족해 두 그루를 화분에 심어 집 앞에 내어 놓았다. 그런데 뒷 마당에서 자라는 깻잎보다 2배 이상 빨리 자랐다. 더 많은 물과 더 많은 햇빛이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나무아래 그늘에 자라는 깻잎은 거의 자라지 않았다. 햇빛과 물이 충분히 공급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늘 반성이 많이 된다. 어떻게 정성들여 키우느냐에 따라 얼마나 건강한 식물이 되느냐가 결정된다.

마찬가지로 어떻게 가르치는가에 따라 사람도 달라진다. 
성도들의 신앙 차이는 설교 시간에 확연히 보여진다. 설교를 듣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는 성도들이 있고, 스마트폰으로 무엇인가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는 한쪽 구석의 성도들이 있고, 그리고 열심히 말씀을 받아 적는 성도들이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신앙의 삶에서의 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이것은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보여주는 결과이다.
때문에 늘 기도하며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골고루 먹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같은 새 둥지의 새끼 새들도 제대로 먹은 새끼는 잘 자라가지만 못얻어 먹는 새끼는 곧 죽게 된다. 이 때 지혜로운 어미 새가 필요하다.
누구 하나 포기할 수 없기에 제대로 말씀이 공급되도록 설교 방법도, 예배도 바꾸어 보지만 쉽지 않다. 결국 신앙을 갖지 못하고 더 이상 교회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고, 더 이상 자라지 못해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성도들도 있다. 목회를 잘못하고 있구나 또는 잘못 가르치고 있구나 하는 뒤돌아봄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목회자가 공급해 주고 싶은 것은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중에는 육적인 것을 더 원하기도 한다. 때론 육적인 것만 원하기도 한다. 특히 청년들은 성경공부하고는 담을 쌓기를 원한다.
어떻게 하면 신앙의 기쁨을 그들에게 공급해 줄 수 있을까? 그래서 영적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더 하나님 안에서 성장해서 더 적절한 때에, 더 풍부한 영의 영양분을 흘려 보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이다. 내가 부족해서는 절대로 제대로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되고서 올바른 것을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제대로 영적인 것을 공급 받지 않고서는 목회자로서 성도들에게 제대로 공급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성도를 바라보며 그들을 판단하기에 앞서 “과연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으며 제대로 자라가는 신앙인인가?” 그리고 “그런 목사인가?” 라는 물음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 임함남 목사 - 베다니 침례교회 담임목사 >



“세상의 빛으로 섬김의 종 되어…”
석사2·학사1명 졸업

미주 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총회 동부개혁신학교 캐나다분교(분교장 정관일 박사:가든교회 담임목사)는 제6회 졸업식 및 감사예배를 9일 주일 오후 가든교회에서 가족과 친지, 재학생과 교수진 등이 참석한 가운데 드렸다. 
이날 이승훈, 이인섭 목회학석사(M.Div), 윤승진 신학사(B.Th)가 졸업했다.
교무처장 장영일 목사 인도로 드린 예배는 교수와 졸업생 입장으로 시작, 장영일 목사와 박원철 목사(늘사랑교회 담임)의 기도, 후원이사장인 이상훈 전도사 특송에 이어 KAPC 노회장 이상일 목사가 말씀을 선포했다.
이 목사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행전 4:19)는 제목의 설교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어둠의 권세를 이길 빛으로 부르셨고,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다”면서 “빛으로 사는 자는 섬김의 종이 되는 것이며, 종은 이름도 소유도 자기 의견도 목숨도 없는 존재”라고 강조, 졸업생들에게 충성스런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를 권면했다.
장영일 목사의 학사보고 후 정관일 분교장은 이승훈, 이인섭 졸업생에게 졸업장을 수여하고 “배움의 끝은 실천이며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강조,“성경연구를 게을리 말며 최선을 다해 사명자의 길을 가라”고 훈시했다.
 
이어 졸업생들을 위해 이조웅 목사가 기도했고 문창준 목사(호산나교회 담임)는 축사에서 로마서 12장12절을 인용,“열정으로 하나님 지상명령과 영광을 이루는데 쓰임 받아 꿈과 비전을 이루고 학교 명예를 드높이라”며 졸업생 성명을 삼행시로 엮어 축복했다.
신동철 목사(열린한마음교회 담임)는 격려사를 통해 “목회자의 길은 순례와 같아 기쁨과 감격도 있으나 실망과 고통과 눈물이 있고, 보람이 아닌 사명으로 사는 것”이라고 전하고 “불러주신 하나님이 회복과 영광의 길을 주신다는 믿음으로 나아가라”며 이사야서 43장 1~3절의 말씀을 주었다. 
이인섭 졸업생은 “학교에서 배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하고 빛으로 살아가도록 충성을 다하겠다”고 답사했다. 기념품 증정에 이어 이날 예배는 정관일 분교장 축도로 마쳤다.
 
< 문의: 416-554-7495, www.reformedpse.ca >


말씀의 교회 부흥성회 열려

● 교회소식 2013. 6. 16. 12:24 Posted by SisaHan

▲허천회 담임목사와 성도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치유사역에 나선 정성진 목사가 안수하고 있다.


“하나님께 고백·용서로 상처 치유”
정성진 목사 “마음의 쓴 뿌리 제거해야”

“마음 속에 상처가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된다. 내 마음에 있는 상처의 쓴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토론토 말씀의 교회(담임 허천회 목사)가 지난 9일 주일부터 12일까지 개최한 ‘말씀과 치유와 영적성장을 위한 부흥성회’의 강사로 집회를 인도한 서울 열방교회 정성진 목사는 “마음의 상처를 없애고 치유해야 참된 행복과 기쁨, 건강을 누릴 것”이라며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고 치유의 역사를 체험하라”고 강조, 말씀과 안수기도를 통해 성도들에게 큰 은혜를 체험케했다.
정 목사는 주일인 9일 ‘승리를 확신하라’(롬 8 :26~39), ‘쓴 뿌리를 제거하라’(히 12:15)는 제목의 두 차례 집회에 이어 10일 저녁 ‘다음 세대를 축복하라’(왕상 17: 8~24), 11일 ‘건강한 교회를 꿈꾸라’(행 2:43), 그리고 12일 저녁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정복하라’(히 11: 1~3)는 말씀을 전하며 치유사역으로 성도들에게 회복의 감동을 안겼다.
 
정 목사는 마음의 상처를 쓴 뿌리에 비유한 ‘쓴 뿌리를 제거하라’는 말씀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이 남에게 상처를 주게 되므로 상처는 꼭 고쳐야 한다”면서 상처 치유를 위한 방법으로 ‘고백과 용서’를 제시했다. 정 목사는 먼저 “마음의 상처를 침묵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토해내라”면서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 성령께서 상처의 현장으로 이끌어 가시고, 상처를 고백하고 토하는 만큼 치유의 역사를 행하신다”고 전했다. 또 “용서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강조한 정 목사는 “용서할 일을 덮어두면 상처가 더 커지고 깊어진다”고 지적, “상처를 준 사람을 직접 만나고 부딪혀 용서를 선포할 때 치유와 회복을 체험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며, 하나님께서 승리하도록 역사하신다”고 역설했다.
 
< 문의: 416-756-9743 >


사랑에는 순서가 있다.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건강한 순서이다. 나에게 제일 가까운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의 존재의 근거(the ground of being)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없이는 나는 존재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하나님은 나의 호흡보다 더 가까운 분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을 묘사하는 단어로 아버지, 남편, 친구, 연인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제일 친근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서는 부모가, 좀 자라서는 친구나 연인이, 결혼해서는 배우자가 제일 나에게 가까운 존재이다. 결국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가장 가까운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제일 먼저 사랑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의 사랑의 0순위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남을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모든 사랑을 가능케 하는 사랑의 근원이다. 

두 번째 사랑의 순서는 나 자신이다. 나보다 나에게 더 가까운 사람은 없다.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나를 대하는 방식으로 남을 대한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이 남에게도 잘 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사랑해야 할 첫 번째 이웃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용납과 사랑을 가장 필요로 하는 지극히 작은 자가 바로 나 자신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나를 사랑할 때에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 다음 사랑의 순서는 다른 사람인데, 다른 사람 중에서 나에게 제일 가까운 사람은 바로 나의 가족이다. 이웃 사랑의 1번지는 나의 가족이다. 제일 먼저 내 사랑이 가족에게 향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악하다고 한다. 사도 바울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기에 자기 자신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순서를 종종 바꾸어 버린다. 가정 밖에 사람에게는 친절을 베풀고, 배려해 주고 예의를 지키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소중한 사람인 가족에게는 함부로 대하고 배려해 주지 않는다. 가족은 내가 아무렇게나 대해도 영원한 내편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더 친절해야 할 가족에게 더 사랑을 주어야 할 가족에게 소홀하게 대한다. 무례하게 대한다. 특별히 가장 가까운 부부 사이에 이런 현상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인 아내에게, 남편에게 우리는 가장 함부로 대한다.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 반만 나에게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이런 소원을 가진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오늘날 왜 부부관계가 이처럼 깨어져 가고 있는가? 나는 그 근본 원인이 부부간에 존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부간에 존중을 잃어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오늘날 부부 사이에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것이 존중이다. 부부는 한 없이 가깝고도 먼 사이다. 남남끼리 만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부부가 지켜야 할 도리를 부부유친(夫婦有親)으로 하지 않고,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고 하는 것이다. 
세월이 가면 친구도, 이웃들도, 심지어 친척들도 다 내 곁을 떠난다. 마지막까지 내 곁을 지켜줄 사람은 결국 아내요, 남편이요, 자녀들이다. 바로 이들이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며 사랑해야하는 사람들이다.

< 고영민 목사 - 이글스필드 한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