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금슬이 좋다고 소문난 연예인 부부가 있었다. 하루는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 때문에 아내가 남편을 꾸짖었다.
“여보, 당신이 인터뷰에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고 하던데 그게 누구예요?”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런 소리를 하오?”
“아니, 인터넷 검색어 1위까지 올랐는데 나한테 오리발을 내밀꺼예요?”
“무슨 소리야, 여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고 한 일 없소! 나는야 ‘한 여자가 좋다’고 했지! 그게 바로 당신 아니오!”

내 인생에 소중한 ‘한 여자’가 있다. 
어머니!
내 어머니는 ‘평생을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사시는 분’이다.
남편에게 섭섭할 때도, 딸들이 제 고집을 부릴 때도, 심지어 아들이 비뚤어진 길을 걸었을 때도, 어머니는 늘 한결 같으셨다.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살 수 있나? 어떻게 그렇게 손해만 보고 살 수 있나? 나는 그런 어머니가 답답하고 연약하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처럼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가장 연약한 사람처럼 새벽마다 무릎을 꿇으셨고, 싫은 소리 없이 묵묵히 늘 옆에 계시며 기다리셨다. 
시인 고은 님의 <그 꽃>을 읽으며 어머니를 생각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이제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보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어머니의 참 모습이 이제야 내 마음의 거울에 비쳐지는 것일까? 
이제 나 역시 어머니를 닮아가는 듯 하다. 
목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아름답게 하는 ‘그 꽃’이 무엇인가를 조금씩 배워간다.

내 인생에 소중한 또 ‘한 여자’가 있다.
아내!
내 아내는 ‘눈물이 많은 여자’다.
자녀들의 작은 성취에도 쉽게 감동할 줄 알고, 성도들의 숨은 사랑에도 혼자서 어쩔 줄 몰라라 기뻐하고, 새벽시간 남편의 설교를 들으면서도 쉽게 눈물을 흘리는 ‘쉬운’ 여자다.
이렇게 ‘쉬운’ 아내를 보면, 시인 나태주 님의 <풀꽃>이 마음에 다가온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도 아내를 닮아가는 것일까?
나 역시 눈물이 많은 쉬운 남자가 돼 가는 것 같다. 목사로 사는 것이 그런 삶이다. 아니 이민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바로 그런 삶이다. 

나는야, 한 여자가 좋다!
사람이라면 저마다 소중한 ‘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한 사람’ 때문에라도 따뜻하고 가치있는 삶! 
삶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소중한 만남, 지금 이곳에서 갖고 있는 만남들 속에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아름다운 ‘꽃’들을 보기 원한다. 늘 옆에 있다고, 또 늘 옆에 있을 것처럼 여겼기에 잃어버린 꽃들,
자세히 보아야 겠다. 오래 보고 싶다. 
참으로 예쁘고 사랑스러운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 하고 있음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기 원한다. 

< 이부형 목사 - 시온성 장로교회 담임목사 >


▶크리스티 공원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 참석 성도들이 박희민 목사 설교를 경청하는 모습.


부활절 새벽연합예배, 박희민 목사 말씀
“부활의 복음과 신앙으로 역동적 삶·영적운동으로 승리”

온주 교협 주최, 크리스티 공원서
GTA성도들 모여… 부활신앙 삶 다짐

부활절인 지난 3월31일 각 교회와 성도들은 온타리오 한인 교회협의회(회장 임현수 큰빛교회 담임목사) 주최 새벽 연합예배를 드린 것을 비롯, 일제히 부활주일 예배를 드리고 성찬예식과 세례식, 촛불예배, 칸타타, 성극 등 다양한 행사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하행사를 가졌다. 이날 새벽 런던과 해밀턴, 윈저, 오타와, 몬트리올 등 각 지역에서도 성도들이 한 교회에 집결해 연합으로 예배를 드렸다. 
온주 교협 주최 새벽 연합예배는 아침 6시 토론토 블루어 한인타운 인근 크리스티공원에서 GTA지역 교회 성도 5백여 명이 모인 가운데 드려졌다. 제법 차가운 새벽공기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야외 예배였음에도 성도들은 성심껏 드린 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함께 나누고 굳건한 부활신앙의 삶을 다짐했다.
교협 회장인 임현수 목사 사회로 드린 예배는 ‘할렐루야 우리 예수’ 찬송(161장)으로 시작, 소창길 목사(교협 증경회장)의 기도와 연합성가대(지휘 김재익 집사) 찬양에 이어 미주 성시화운동 대표회장인 박희민 목사(나성 영락교회 원로)가 ‘첫 부활절 새벽에’(요 20: 11~18)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박 목사는 설교에서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역사는 모든 이들에게 공의가 불의를이기고 사랑이 미움을 이기며, 진리가 거짓을, 생명이 죽음을 이기고 승리함을 역사 속에 선포한 사건”이라며 “복음의 진수는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무덤사건이며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기쁨과 소망, 힘과 용기가 되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박 목사는 본문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주님이 거기에 계셨음에도 알아보지 못하고 슬퍼했으나 시신을 옮기겠다는 사랑과 신앙고백으로 비로소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음을 설명하고 “현대인과 크리스천들도 부활의 역사,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지 못한 채 잠시 한 장면에 매몰돼 절망하고 낙심하며 슬퍼할 때가 많다”고 지적 “우리 가정의 문제가 나 때문이다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 우리 교회에서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 사회와 커뮤니티의 문제에도 내가 짐을 지겠다는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할 때 영안이 뜨이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 승리와 기쁨으로 놀라운 삶의 변화가 오는 부활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역설했다.
 
박 목사는 또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신가, 계시면 어떤 분인가,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되느냐는 공통의 3가지 질문이 있으나 과학과 철학은 해답을 주지 못했다”고 지적, ”그러나 성육신이 되신 예수님이 하나님을 보여주고 만나게 하셨고, 죄를 대속하여 구원과 부활로 영생을 주심으로써 해답을 주셨다”고 증거했다. 박 목사는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요 11:25~26)고 말씀하셨다”고 되새기면서 “이 부활의 복음과 신앙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 역동적인 삶과 영적운동으로 변화시키고 승리하며 살아나가기를 축원한다”고 말씀을 주었다.
설교가 이어지며 날이 밝아졌고, 순서에 따라 교협회계인 정진오 장로(염광교회)가 “부활과 영생의 소망 가운데 이웃사랑의 삶을”간구하는 봉헌기도를 한 후 정윤재 집사(중앙장로교회 지휘자)가 헌금 찬양했다. 총무 유충식 목사(중앙장로교회 담임)의 광고에 이어 참석자 모두 ‘주님께 영광’ 찬송(165장)을 부르고 은퇴목사회장 김용출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이날 이진수 한인회장과 조성준 시의원은 “조국과 우리 모두에게도 부활의 기쁨과 사랑으로 평화와 번영과 부흥이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고 인사말을 했다. 기독여성연합회와 큰빛교회 성도들은 따뜻한 차를 준비하고 안내 등으로 수고했다.
 
< 문의: 647-882-0191 >


2013년 금년에도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묵상 한다.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시기에 수천 년 전부터 아니 창세전부터 오늘날까지 앞으로도 모든 인간들 사이에서 그분에 관해서 관심 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성경은 구약 신약을 통틀어 온통 이 분에 관한 말씀으로 채워져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분 없이는 세상 만물이 창조된 것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이 자기의 영을 인간에게 불어넣어 주시고 이 분만을 통해서만이 영생의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리라.
 
하나님께서 영혼을 우리 속에 지어주신 것이다.(슥12: 1). 따라서 사람이 죽을 때 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육체는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전12:7). 죽음에는 육체적인 사망과 영적 사망이 있다. 육체적인 사망은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의미하며 영적 사망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것이다.
영원한 영을 받은 인간에게 왜 사망이 왔는가? 이는 인간이 죄를 지으므로 생긴 것이다. 만일 세상에 죄가 들어오지 아니하였더면 사망도 없었을 것이다. 로마서 6장23절을 보면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다. 육의 사망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반드시 겪어야 하지만 영적 사망은 인간만이 맞이하게 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차마 보시지도 못하는 거룩하신 분이시며 죄를 발견하시면 가차없이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자비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무한하신 지혜로 공의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죄인들에게 값없이 자비를 베푸실 수 있는 길을 고안하여 내셨다. 이것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인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무한 광활하신 사랑과 그의 영원 불변하신 공의와 전지전능하신 능력이 연합하여 믿는 자의 구원을 가능케 한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올해도 사순절 그리고 고난주간에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에 대해 묵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구원계획을 완료하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실 수가 없다. 따라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법도(율법)에 따라 인간이 죄를 지으면 수명이 제한되어 있고 영이 없는 육만의 동물을 화목 제물로 삼아 회개하며 속죄의 번제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일시적이나마 하나님과 교제는 할 수 있으나 계속 할 수가 없고 죄를 지을 때마다 매번 반복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영이 본체이신 예수님을 독생자로 인간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육과 영을 겸비한 성육신의 몸을 화목제물로 삼아 십자가 상에서 단 한번의 영적 제사를 드리고 완전히 모든 죄를 사함받게 하셨다. 따라서 영원한 영적제사로 죄 사함 받고 영적 영생의 생명을 다시 찾게 하셨던 것이다. 따리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서 죄 사함 받고 새로운 피조물로 육과 영이 함께 동시에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칼과 기근과 온역으로 심판하시면서 인도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사랑의 은혜로써 오래 참으시다가 마지막 백보좌 심판대에서 모든 인간들을 심판 하시고 죄인들에게는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못 속에서 영원히 벌을 받게한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세상에서도 죄를 지으면 법에 따라 사형 또는 징역 등의 죄과를 지불하게 되는데 하물며 죄를 제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세상에서의 죄의 대가는 죽지않는 상태에서 영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은 천년 만년을 묵상해도 끝이 없으리라.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눅24: 5-7).
 
< 이승고 - 토론토 영락교회 장로 >


[기쁨과 소망] ‘쉼’

● 교회소식 2013. 3. 30. 21:06 Posted by SisaHan
지난 몇 주 전 아버지학교 강사 교육을 위하여 미국에 다녀올 귀회가 있었습니다. 준비된 강사들을 통하여 많은 이야기를 듣고, 생각도 많이 하고, 많은 은혜를 받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금요일 새벽에 출발해서 주일 새벽에 들어오는 1박 3일의 일정으로 출발한 여행이라 좋은 시간은 보냈지만 연약한 육신이 피곤해지는 것은 어찌 할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비행 중에 새우잠을 청한 후 주일 설교를 비롯해 모든 일정과 봄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교회 야구팀 훈련까지 마치고 나니 ‘파김치’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여전히 피곤한 몸으로 문득 ‘휴식’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곤한 몸이 회복되기 위해서 ‘휴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침실에서 나오지 않고, 하루 종일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고, 아무것도 하지않는 모습이 진정한 ‘쉼’을 원하는 모습일까? 물론 저에게도 위와 같이 휴식을 청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회복되기 보다는 계속해서 보다 긴 휴식을 원할 뿐.... 몸과 마음이 유익하지 못했던 경험 또한 있습니다.
 
그렇다면, ‘쉼’이란 꼭 필요한데 어떻게 ‘휴식’의 시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좋을까? 신학자 제임스 머펫트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분입니다. 그의 서재에는 책상 3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 책상 위에는 자신이 지금 번역하고 있는 신약성경의 원고가, 또 하나의 책상 위에는 한참 집필 중에 있는 터툴리안의 논문이, 그리고 세 번째 책상 위에는 취미삼아 쓰고 있는 탐정소설의 원고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3개의 책상을 놓고 매일 정신없이 일하는 머팻트의 심신 피로 해소 방법은 ‘책상을 옮겨 앉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가 쉬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다른 책상으로 옮겨 앉아 새로운 마음으로 그 책상 위에 있던 새로운 원고를 써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러다 쉬고 싶어지면 또 다른 책상으로 옮겨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머펫트에겐 일인 동시에 휴식이었다고 합니다.
 
머펫트의 글을 통해서 나에게는 몇 개의 책상이 있나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 가정...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몇 개의 책상이 있으십니까? 직장, 가정... 교회 단순한 이민의 삶 속에서 매일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는데서 오는 피곤함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 일 것입니다. 또 이 피곤함을 가끔 찾아오는 황금같은 휴식 시간을 침실에서 늘어지게 잠을 청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반복되는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단순함에서 벗어나 나만의 제3 제4의 새로운 책상을 만들어 환경의 변화를 만들어 보는 것....!! 또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으로 제3 제4의 책상을 만들어 보는 것...!! 진정한 ‘쉼’을 만들어 가는 좋은 생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월요일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다시 침대를 향하고 있는 몸을 돌려 평소에 좋아했던 ‘만들기’를 시작해 보았습니다. 나무를 자르고 못을 박으면서 점심이 준비되었다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을 때...!! 피곤함에서 ‘힐링’되는 평안함은.....!! 제3의 책상이 주는 진정한 ‘쉼’이었습니다. 
혹시 지금도 침실 속에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여러분만의 제3의 책상으로 당신을 초대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침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진정한 ‘쉼’이 허락한 ‘회복’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 민경석 목사 - 한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