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삶이 흔들릴 때

● 칼럼 2023. 12. 24. 13:07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삶이 흔들릴 때

 

김치길 목사 <빌라델비아장로교회 담임목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미래가 불투명한 시대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통계를 너무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 이면에는 확신이 아니라 확률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확신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확률을 따라 사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맞이할 때, 사람들은 쉽게 흔들립니다. 자세히 보면 상황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이 바로 서 있지 않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확실한 것이 제거되면 한번 해 보겠다’라고 말합니다. 불확실함을 제거하고 가려고 하면 일평생 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불확실함은 인간 세상의 한계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불확실함은 운명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해보지 않은 길,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갑니다. 중요한 것은 불확실함을 제거하려 하면 안 됩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할 수 있는 것은 확신의 강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동일합니다. 세상이 흔들린다고 우리의 신앙도 같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상황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견고하지 못할 때, 흔들리는 것입니다.

나는 상황에 휘둘리지 않을만한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인생은 내가 흔들리고 싶지 않아도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흔들리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흔들고 계십니다.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온 세상을 흔드시는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세상과 우리를 흔드실까요?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붙들고 있는 게 과연 붙들만한 것이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흔드시며, 흔들리지 않는 것을 붙들라고 우리에게 사인을 보내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만 살면 되는 줄 압니다. 내가 꽉 붙잡으면 그게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훅 불기만 해도 한 방에 날아갑니다. 2023년 한해도 많은 것들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도 많은 것들이 흔들릴 것입니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뿐입니다. 오직 그것 만이 영원합니다. 우리의 삶이 흔들릴 때마다 내가 진리 안에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반석 되시고 요동치 않는 그리스도 위에 우리의 삶이 올려져 있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편집인 칼럼] 둔화된 지각과 주권의 펀치

● 칼럼 2023. 12. 3. 07:46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둔화된 지각과 주권의 펀치

 

 

사람이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은 콧속에 있는 후각상피 세포가 냄새분자를 인지하고 이를 전기신호로 뇌중추에 전달해 구분해내는 신경전달 시스템 덕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후각세포는 아주 예민해서 미약한 자극에도 금방 반응을 보이는 반면, 예민한 만큼 금세 피로해지는 특징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심한 악취도 조금 지나면 별 것 아닌 냄새처럼 익숙해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대변을 볼 때 처음엔 심한 냄새가 엄습하지만 얼마안가 둔해지는 이유도 그렇게 설명된다.

후각세포의 기능이 단발성이어서 곧 둔감해지는 게 천만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한없이 강한 악취를 지속 감지하는 ‘고성능’을 자랑한다면 그야말로 견디기 힘든 고역일 것이다. 물론 후각세포의 둔감이 악취 뿐은 아닐테니, 향기에 대해서도 곧 둔해지는 것은 마찬가지 이겠지만.

감각이 짧은 시간에 둔해지는 것은 비단 후각 뿐만이 아니다. 피부의 촉감도 자극이 오래가면 둔해지고, 반복되면 무감각해진다. 고통 역시 길어지고 되풀이 되면 익숙해지며 면역력이 생겨서 무덤덤 해진다. 훈련을 통해 인내력을 키우면서 단련하는 것도 사람의 그런 감각적 적응력과 내성, 혹은 둔감화의 순작용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일 게다.

문제는 사람의 ‘둔감 적응력’이 형이하학적 말초 감각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성적인 부분, 즉 지성(知性)과 감성(感性) 등 지각(知覺)능력에도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 순진하던 사람도 폭력영화를 자주 보면 폭력에 대한 반응이 무뎌지고, 누군가에게 욕설과 험담을 지속적으로 듣는 사이 그러려니하고 무감각해지는 현상, 커닝을 반복하다 보면 시험 때마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커닝에 의존하게 되고, 뇌물을 하나 둘 챙기다 나중에는 거액을 수뢰해도 양심적 거리낌을 느끼지 못하는 윤리의식의 마비 등 사례들이 그렇다. 예민한 반응으로 인간의 고통과 불편을 덜어주는 순기능도 있는 반면, 고통스런 환경과 불편한 상황에 무신경해져서 삶의 질이 낙후되는 역작용의 후유증에 내몰리게 된다.

거짓말과 허풍으로 똘똘뭉친 트럼프가 등장했을 때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매일이다시피 쏟아내는 그의 폭탄발언과 기행을 지탄하고 진저리를 치면서도 사람들은 차츰 무덤덤해져 갔다. 과격한 말과 허세의 되치기, 덮어 씌우기가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이제는 차기 대통령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당당한 정치거물 트렌드로 자리잡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한국에서 한층 더 심각한 둔감화의 역기능 현상을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윤석열 정권이 등장한지 이제 1년 반이 지났건만, 하루가 멀다하고 상식과 원칙과는 거리가 먼 사례들이 돌출하면서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겼는데, 이제는 다들 무감각해진 것인지, 아예 그러려니 포기한 건지 피로감인지, 무거운 침묵에 빠져있는 감 마저 느낀다.

검사 대통령에 정부부처 요소요소를 검사들이 장악한 이른바 ‘검찰공화국’이 되어 국정이 검찰청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정치부재, 경제추락과 외교 안보의 파탄 등등 숱한 폐해에도 모두가 그런가보다 익숙해진 듯하다.

대통령 일가의 범죄의혹은 덮기에 바쁜 것과 달리 야당과 비판세력에는 가혹하고 끈질긴 검찰 총력수사로 날을 지새는데도, 비리검사 탄핵론에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핍박받고 노예 취급을 당했던 국민들이 엄연히 살아서 사죄를 요구하는데 압제자들 편이 되어 과거사는 덮어버리자고 입막음에 나섰다. 최근 법원이 다시 배상책임을 인정하자 일본은 ‘한국정부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큰소리치고 나왔다. 국민 대다수가 제2의 침략이라고 규탄하는 핵폐수 방류를 정부예산 들여 홍보해주는 일본의 대변정권, 욱일기를 달고 영해를 누벼도 동해를 일본해라고 못박아도 끽소리 못하는 비굴한 외교에도 반응이 별로없다. 국가 미래를 좌우할 예산과 복지부문은 뭉텅뭉텅 잘라 낸 반면 정권홍보와 해외순방 예산은 대폭 늘려 극우단체들 설치게 하고, 한달 단위 호화외유를 즐기는데 ‘여사 패션’과 미용 운운 기사만 넘쳐난다.

친정권 언론이 90%를 넘는 현실에도 성이 안차는지, 공영방송들을 장악하려고 온갖 꼼수와 편법을 동원하는 무리수에도, 해당 언론사 외에는 반발의 함성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같은 국민적 ‘지각 둔감’ 현상에 우둔한 자신감이 붙은 것일까. 남북간에 최소한의 평화장치인 ‘9.19 군사합의’의 무력화를 시도해 휴전선 일대는 물론 긴장과 충돌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강구하기는 커녕 정세 판단능력이 위태로운 힘의 논리와 강국 추종의 저돌성만 드러내고 있다. 와중에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이어야 할 국정원은 파벌싸움으로 지리멸렬상을 드러냈고, ‘역전승’할 것처럼 온통 법석을 떤 월드엑스포 유치는 ‘폭망’과 낙담으로 수치를 안겼다.

모두가 무신경·무감각 해지면 사회전체에 부패와 폭력이 난무해도 제어할 수가 없게 된다. 폐수가 스며드는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결국은 나라와 민족이 오염돼 패망의 길로 향할 수 밖에 없다. 복싱 강자는 펀치가 날아와도 절대 눈을 감지 않는다고 한다. 눈을 부릅뜨고 노려봐야 허점을 노려 일격에 KO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둔감에 눈을 감지말고 감각과 지각을 깨워야 한다.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주권의 펀치를 가다듬을 때이다.

[목회 칼럼] 그 분을 기다리는 삶

● 칼럼 2023. 12. 3. 06:2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그 분을 기다리는 삶   

 

고영민 목사

< 본 한인 교회 담임목사 >

 

올해는 12월 3일 주일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대림절이 시작되면 교회와 가정에서 대림절 화환을 장식합니다. 전나무로 만든 둥근 모양의 화환에 4개의 초를 꽂아 놓고, 가운데에 하얀 초를 꽂아 놓습니다. 매주 마다 하나씩 촛불을 켜면서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마침내 성탄절이 되었을 때에 가운데 있는 하얀 초를 밝히게 됩니다. 4주 동안 켜는 대림절 촛불을 통해서 주님을 기다라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대림절 첫번째 주일의 촛불은 희망의 촛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어둠과 절망 가운데 사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희망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우리는 어떠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살기를 다짐하게 됩니다.

두번째 촛불은 평화의 촛불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시키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평화이십니다. 십자가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모든 사람을 하나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다시 모시고, 갈등과 전쟁이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세상 속에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기를 다짐하게 됩니다.

세번째 주일은 기쁨의 촛불입니다. 세번째 촛불을 펴면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기쁨으로 오신 주님을 맞이합니다. 세상 안에 있는 모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고, 땅의 슬픔 속에서 하늘의 기쁨을 보게 해 달라고, 더 나아가 오직 주님 한 분만을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마지막 네번째 촛불은 사랑의 촛불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보여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랑의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랑의 충만한 삶을 살게 해 달라고, 사랑이 점점 식어가는 세상 속에서 사랑의 불꽃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특별히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들을 향해서 ‘이들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이 기간 동안 더욱 사랑을 실천합니다. “꼭 이런 때만 사랑 실천을 해야 하느냐?”고 말씀하실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절기가 아니라, 항상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때라도 하지 않으면서 항상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희망 품고 살기, 평화 만들기, 기쁨 빼앗기지 않기, 사랑실천하기, 대림절 촛불을 우리의 영혼 가운데 밝히면서 주님을 기다리는 삶으로 우리 모두 함께 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편집인 칼럼] 삼권분립 허상과 ‘합법 독재’

● 칼럼 2023. 11. 18. 07:3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한마당]  삼권분립 허상과 ‘합법 독재’

 

김용민 화백

 

대한민국은 엄연히 헌법을 바탕으로 삼권이 분립된 민주주의 국가다. 3권 분립은 정립(鼎立)이라고도 한다. 입법-사법-행정부가 마치 솥의 세 다리처럼 균형과 견제로 국가를 이룬다 하여 민주국가의 정치 시스템을 그렇게 표현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삼권이 정확히 균형을 이루며 서로 견제하는 나라가 맞는가? 대답은 한마디로 “아니올시다”이다. 한국사람 어느 누구도 삼권이 정립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입법과 사법에 비해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 권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민주정치 시스템을 답습했다고 하나, 입법권력이 막강하고 각종 법률적 정치적 견제장치가 작동하는 미국에 비해 한국의 대통령 권력은 거의 기형적이라 할 만큼 무소불위에 가깝다. 법규정과는 달리 그 사람의 개인적 자질과 민주적 소양에 따라 고무줄처럼 무한대까지 늘어나 ‘왕정시대 아니냐’는 말이 나기도 한다. 요새 한국의 정정(政情)은 그런 초법적 권력을 확연히 체감시켜 준다.

사법부 독립이 법에 명시된 원칙이고 상식임에도, 대법원장 후보추천을 앞두고 대통령실이 왈가왈부하더니 ‘설마’가 ‘역시나’가 되는 것을 보았다. 대통령 구미에 맞는 판결을 유도해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 재발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온 이유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역시 대통령의 대학동기가 지명됐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비해서도 월등하다. 국회가 ‘민의’에 따라 제정한 법률을 거부권(재의 요구권) 하나로 무력화 시킬 수가 있다.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사례가 말해준다. 국회는 청문회를 통해 장관후보자들의 자격을 따지지만, 적부 검증에 상관없이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다. 현정부 들어 19명이 그렇게 청문절차를 ‘패싱’했다. 국회는 국무위원들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건의’여서 국회에서 다수결로 사실상 파면된 총리도 장관도, 대통령의 국회 무시에 기대어 보란 듯이 직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 권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대통령의 위세는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법부 수장과 대법관들을 임명하도록 한 월권적 모순과 마찬가지이고 선거관리위원회나 감사원도 예외는 아니다. 역시 민주정치 시스템의 결함 가운데 하나라고 봐야한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언론이고, 독립성과 중립성이 생명이다. 그래서 제4부 라고도 한다. 하지만 언론, 특히 방송의 ‘생사여탈권’을 가졌다고 할 만한 방송통신위 위원장과 위원, 방송통신심의위 위원들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언론의 견제를 받아야 할 권력이 언론 감독 감시기구를 좌지우지 할 수 있게 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엊그제 사장 임명 전후 황당하게 제작진과 앵커 등을 무더기 교체하는 사달을 낸 한국방송(KBS)의 경우에도 사장 임면권을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애초에 불편부당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권력에 호의적인 언론지형을 만들려는 유혹은 어느 정권이나 있게 마련인데, 현실적으로 그 유혹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여지가 곳곳에 널려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힘은 정부의 기관들 뿐만 아니라, 산하 공기업은 물론 민간 영역에도 폭넓게 미친다. 금융기관과 단체의 장들, 심지어 사기업의 임직원들 자리도 영향을 받는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직간접 영향을 받는 자리가 어림잡아 1만8천개에 달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권력이요 ‘합법적인 독재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토양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면 당연히 이들 자리가 일제히 뒤바뀐다. 권력이동에 뒤이어 엄청난 자리이동의 후폭풍이 인다. 문제는 자리 뿐만이 아니라는데 있다. 나라의 정책기조가 경우에 따라 180도 전환한다. 현 정부가 들어선 뒤 외교정책은 외교관들이 헷갈릴 정도로 바뀌었다. 국방과 교육, 경제 등도 완전히 달라졌다. 인사폭풍과 함께 글자그대로 천지개벽 수준의 대전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5년마다 대통령 한사람 바뀌는 것으로 나라의 정책이 천지가 바뀌듯이 하루아침에 달라진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도, 정상적인 일이라고도 할 수 없다. “자고나니 후진국”이라는 자조섞인 한탄이 나오는 상황이나, 대통령이 안하무인의 독재적 권력에 심취하게 되는 현실이 국가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무엇보다 그런 제왕적·독재적 권력을 쟁취하려는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의 후유증은 심각하기 이를데 없다.

대통령제가 매력적이라고는 하나 권력행사의 범위를 좁히고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 국회의 통제를 원용하되 사법수장은 사법부가 뽑고, 언론통제는 언론계 스스로 하게 해야 한다. 최근 국회가 통과시킨 방송3법도 그런 방편의 하나다. 거부권으로 무산시킬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국가정책의 변화도 정체성 혼란이 없을 만큼의 제한을 둬야 한다. 대통령 때문에 나라와 국민이 큰 고통을 겪는 것은 불행이다. 대통령은 권력만 향유하기 보다 오직 국민을 섬기며 국가발전 헌신에 집중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