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감사의 훈련

● 칼럼 2023. 10. 10. 12:0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기쁨과 소망]   감사의    

 

 노희송  목사

- 토론토 큰빛교회 담임목사 - 

 

청명하고 높은 하늘 그리고 따스한 햇볕 아래, 곳곳에 붉고 노란 옷들을 입은 단풍으로 가을이 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 주일을 맞으면서 감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감사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감사를 잘하도록 양육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감사하는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감사함을 표현합니다. 반면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좋은 것을 받고 누려도 표현하는 것에는 인색합니다. 쑥스러워하기도 하며, 굳이 표현까지 해야 하냐고 여길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좋은 것을 받아도 당연하게 여깁니다.

평소에 감사의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사람이 관계도 잘 가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고,관계도 원만합니다. 신앙생활 가운데도 이런 감사의 훈련은 필요합니다. 기도, 예배, 찬양 등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은 기쁨과 평강이 충만한 삶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제사로 나아오는 자녀들의 예배와 삶을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십니다. 성령 충만한 자들에게는 감사의 열매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 가운데 감사의 훈련은 필요합니다.

첫 번째, 감사의 훈련이 감사하는 습관을 만듭니다. 늘 감사하는 습관이 있는 분들은 다릅니다.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감사한 것들이 눈에 보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늘 감사함을 표현하다 보니 관계가 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도 감사로 대화를 시작하면 분위기가 달라지고 일도 순조로워지는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가끔 은행, 전화 서비스, 보험회사 등에 전화할 때, 오랜 시간 동안 연결되기를 기다리다가 지치기도 하지만, 과중한 업무를 이해하고 또 도와줘서 고맙다는 짧은 인사를 했을 때 상대에게 위로를 줄 뿐만 아니라 해결하고자 했던 일도 잘 풀리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합니다. 만약 불평을 했다면 될 일도 어려워졌을 텐데, 쉽지 않은 일도 되도록 도와주려 합니다. 감사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감사할 제목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어려움을 통과하고 극복합니다. 문을 열어 주셔도 감사, 닫아 주셔도 감사하게 됩니다. 응답받은 기도도 감사, 기다리는 시간도 감사, 그리고 거절을 당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음을 신뢰하며 감사하는 비결을 깨닫게 됩니다.

두 번째, 감사의 훈련이 더욱 감사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평소에 감사할 내용이 많은 분들은 감사를 축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성도에게 더 풍성한 것들을 부어 주십니다. 그것이 영적인 법칙입니다. 감사가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는 배로 번식합니다. 모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하는 분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은 감사로 가득합니다.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영적 법칙을 깨닫지 못한 분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불만과 불평이 많은 분들의 삶을 보면, 불만이 많은 분들에게는 늘 불만 거리가 쌓여 있습니다. 누가 도와주고 섬겨주어도 불만, 도와주지 않아도 불만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직장이나 사업장에서도 마음과 관계가 어려워집니다. 결국 인생이 힘들어집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로 나아가는 분들에게는 인생의 역전이 일어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감사하는 자들에게 감사의 열매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믿음과 신뢰와 연결된 씨앗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많이 뿌리는 자들에게는 감사의 열매도 풍성합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서로에게 감사의 인사와 표현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의 훈련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훈련만 잘해도 많은 기회와 관계들이 원만하게 됩니다. 그동안 감사하지 못하고 소홀했던 관계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회복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편집인 칼럼] 작은 펜도 두렵고 떨리는데

● 칼럼 2023. 9. 11. 12:4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한마당 편집인칼럼] 작은 펜도 두렵고 떨리는데

 

권범철 기자 만평

 

신출내기 신문기자 시절부터 귀에 따갑게 들어 온 말 가운데 하나가 그 흔한 ‘펜은 칼보다 강하다’ (Calamus Gladio Fortior)는 금언이다. 방송인들이야 그리스 작가 유리피데스가 말했다는 ‘혀는 칼보다 강하다’는 말에 매력을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기사를 써서 글로 할 말을 하는 기자로서는 ‘펜이 더 강하다’는 말을 은근한 자부심, 또한 무게감으로 가슴에 품고 일을 해온 게 사실이다. 공권력을 자랑하는 경찰·검찰이나 군부대를 취재할 때도 주눅들지 않고 큰소리치며 추궁할 수 있는 힘과 배짱의 원천이기도 했다. 국민의 알권리를 뒷배로한 언론을 입법·사법·행정에 이은 ‘제4부’ 라고 권력기관처럼 여기는 연원의 하나다.

글 한 줄에 반향이 일고 세상이 변하고 역사가 바뀌기도 하는 데서 펜이 총칼보다 강하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27일 동아일보가 낸 이른바 ‘신탁통치 오보사건’은 찬탁과 반탁의 대립과 분열을 심화시켜 결국은 한반도 분단으로 이어지게 만든 역사적 ‘펜의 재앙’이 되어버렸다. 정치적 의도에 오염돼 사실이 뒤바뀐 기사 몇 줄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되돌리기 힘든 고난의 길로 몰아간 것이다.

정의감으로 쓴 기사에 불의한 일들이 파헤쳐지고 사회적 징벌이 주어지는 경우 펜의 힘을 실감하게 되지만, 글 한 줄이 갖는 무게, 그 순작용 만이 아닌 역작용과 위험성에 대한 중압감과 책임감 또한 엄청나게 커지게 된다. 선하고 의로운 글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생명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는 반면, 악하고 불의한 글은 불신의 씨앗과 사악한 죽음의 독소를 뿌려대는 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글은 아무나, 아무렇게나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글 한 줄의 위력를 생각하다 보면 두려움이 엄습해 함부로 펜을 휘두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총칼도 잘 쓰면 문명의 이기(利器)가 되지만, 잘못쓰면 파괴와 살상의 도구로 쓰이니 함부로 다뤄선 안된다. 꿈의 에너지라는 원자력도 그렇다. 잘 활용하면 놀라운 에너지원이지만, 단 한 발에 수백만 명을 몰살시킬 수 있는 핵폭탄일 경우 인류 생존의 위험요소가 된다. 일본 후쿠시마 폭발원전 방사능 오염수가 태평양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처럼 인류의 미래를 환경재앙으로 물들일 수도 있다.

요즘 화제가 되고있는 영화 ‘오펜하이머’는 천재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핵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전쟁사를 바꾸는 원자폭탄을 만들어 내지만, 그 위력에 놀라 핵무기 회의론자로 변신해 고뇌하고 고난을 겪는 인간적 딜레마를 생생히 보여준다. 지난 5월 인공지능(AI) ‘딥러닝의 대부’로 불리는 토론토대학교 제프리 힌턴 교수(76)가 10년간 몸담고 연구해온 구글의 부사장급 석학연구원직을 그만 두면서 AI의 위험성을 경고한 적이 있다. 그는 방대한 데이터를 습득한 AI가 자율 무기인 '킬러 로봇'이 되어 인간을 공격하는 현실이 두렵다면서, AI 연구개발사에 큰 족적을 남긴 지난 50년간의 자신의 연구를 “후회한다”고 까지 말했다.

오펜하이머도, 힌턴도, 인류를 위협하고 지구를 파멸로 이끌지 모를 ‘괴물’을 만들어냈다는 자책감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실수’가 선의(善意) 보다는 ‘악의’로 인류사에 영원히 기록될 미래에 대한 공포까지 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펜을 대함에 옷깃을 여미는 것도 후세까지 각인될 기록의 힘 때문이다. 총칼을 멋대로 휘둘렀다가 영원한 오명을 남긴데서도 입증된다. 멀게는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의 살인에서부터, 시저 황제를 찌른 브루투스의 배신, 1차 세계대전을 부른 사라예보 암살의 총성, 그리고 히틀러를 비롯해, 뭇솔리니와 스탈린…이웃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조 히데키 등등까지,

조심스레 다루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은 정치권력도 마찬가지다. 오만에 빠져 함부로 휘둘렀다가는 천심(天心)인 민심의 무서운 심판을 부를 뿐더러, 역사에 두고두고 저주받는 악행자·패륜아 단정을 피할 수 없다. 당장은 ‘세상이 다 내 것이요, 누가 감히 날 건드려~!’ 하고 거들먹거려도, 한낱 어느 봄날의 꿈 같고(一場春夢), 잠시 화려하나 곧 지는 꽃(花無十日紅)과 진배없다는 냉엄한 경고를 무시한 자들의 말로는 하나같이 비참한 기록으로 남았다.

지난 1년반 윤석열 정권을 겪은 안팎의 한국민과 해외의 한인동포들이 흑역사로 남을 수많은 권력의 비행(非行·卑行)과 비정상을 목도하며 불안과 울분에 안절부절 못하는 현실을 본다.

밖에서는 자존심을 내팽개친 채 굴종과 굴신의 냉전적 행보를 추종하고, 안에서는 구석구석 멋대로 들쑤셔 망가뜨리고 원칙없는 내로남불과 철지난 이념을 외쳐 갈라치기 분열책만 매달린다고 지적한다. 핵폐수 비판을 괴담·가짜라며 일본 정부보다 더 흥분하는데, 욱일기나 ‘동해 아닌 일본해’라는 데는 꿀벙어리가 되더니 독립영웅의 흉상과 정신을 육사에서 제거한다는 저들의 민족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해병 익사사건을 축소 은폐하려고 강직한 수사단장을 항명 처벌하겠다는 그들의 군인정신은 비굴일까. 민주 진보단체들의 외침은 공산세력으로 몰아치는가 하면, 소수에 불과한 비판언론은 가짜뉴스 정치공작소란다. 심각한 경제악화에 복지예산, 연구예산은 마구 칼질하면서도 들러리 어용단체에 거액을 몰아주는 머릿속에는 무슨 철학이 들어있나, 이기적 탐심 외에 그들 안중에 국민과 나라가 티끌만큼이라도 있을지, 혹평이 싸다. 나라를 도탄에 빠뜨리고 먹칠하는 사료(史料)가 넘쳐나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고 말한다. 잠시 거쳐갈 못된 권력이 나중에 치유와 회복조차 불가능한 상채기만을 남기는 것은 아닌지 마음들을 졸인다.

하물며 작은 펜도 두려움으로 대할진대, 권력이야말로 극히 노심초사할 대상이다. 국민을 하늘같이 받들면서 떨리고 삼가는 심정으로 정의롭게 행사하지 않는다면 참혹한 심판이 기다림을 역사가 말해준다. <편집인>

 

 

[목회 칼럼] 7천만 불과 하나님

● 칼럼 2023. 9. 11. 12:3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7천만 불과 하나님

 

박헌승 목사 (서부장로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 캐나다의 한 TV 방송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로토 당첨자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1년 전 ‘맥스 MAX’ 복권의 1등 당첨자를 찾는데, 티켓 번호까지 밝혔습니다. 당첨금은 무려 7천만 불이고, 지급만료일이 6월 28일이었습니다. 여러 번 방송을 했지만, 당첨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첨자는 자기가 구매한 티겟이 뽑힌 줄을 몰라서, 그 많은 돈을 받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뉴스를 접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모르면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무지하면 복을 스스로 걷어차는 것과 같습니다. 없어서가 아니라, 몰라서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몰랐기에 배고프다고 팥죽 한 그릇과 장자권을 바꾸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 줄 몰랐기에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을 몰랐기에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무지해서 7천만 불을 놓친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소는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지만은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고 외쳤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무지하면 불행해 집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리적으로 아는 지식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지혜와 계시의 성령이 임해야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믿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가야 합니다. 환난 많은 세상,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알아야 강하여 용맹을 떨칠 수가 있습니다.

7천만 불은 잃어도, 영원하신 하나님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칭송합니다. 경배합니다.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립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편집인 칼럼] 굴욕의 역사를 되새기는 이유

● 칼럼 2023. 8. 29. 13:0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굴욕의 역사를 되새기는 이유

 

 

삼국지(演義)에는 적군의 신출귀몰하는 계략에 넘어가서, 혹은 막강전력 위세에 눌리거나 풍문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항복하고 제발로 굽히고 들어가는 사례들이 나온다. 적벽대전에서 손권과 합세해 조조의 백만 대군을 물리친 유비와 제갈공명의 세력은 관우·장비 같은 걸출한 장수는 거느렸지만 본거지 영토도 변변치 않았고 군사도 겨우 수만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다윗에게 골리앗과도 같았던 조조의 대군을 초토화하는데 결정적 전략을 제공한 공명의 탁월한 전술과 선정을 펼친 유비의 덕망에 전의를 상실하고 지레 겁을 먹은 성읍들이 변변히 싸워보지도 않고 유비군에게 백기를 들고 나온다. 이로써 유비와 공명은 요지 형주를 근거지로 영릉, 장사, 계양, 무릉 등 양자강 이남 지역을 속속 차지해 당당히 삼국정립의 토대를 구축한다.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공해 경애왕을 죽게한 뒤 세운 왕이 신라 최후의 56대 임금 경순왕이다. 그는 8년을 왕위에 있으면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 줄타기를 하며 국권을 회복해보려 하지만, 영토는 날로 줄어들고 국력이 쇠잔해지자 서기 935년에 나라를 고려 왕건에게 바치고 만다. 군신회의에서 두 왕자까지 나서서 “어찌 1천 년의 사직을 하루아침에 가벼이 남의 나라에 넘겨줄 수 있습니까!”라고 성토하는 극구 반대를 뿌리치고 고려 복속을 결행한다. 신라는 망했고 두 왕자는 출가해 초라하게 살았는데, 경순왕은 고려에서 왕건의 두 딸을 ‘선물’받는 등 고관대작으로 40여년의 영화를 누리다 죽는다.

앞서 후백제의 견훤도 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당하자 몰래 고려로 도망쳐 왕건에게 투항했다.

한국 역사에서 정세판단의 잘못으로 치욕을 삼키며 머리를 굽혀 적국 휘하에 들어간 사례는 또 있다.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을 맞아 청나라에 망국적 수모를 당한 삼전도의 굴욕은 그야말로 뼈아픈 민족사다. 군주가 오랑캐에게 항복한 정도가 아니라,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즉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3차례씩 9번을 엎드려 절하여 완전 굴복을 표해야 했다. 청나라의 신하국으로 몰락한 것은 물론, 왕자들이 볼모로 잡혀가고 수많은 백성이 끌려가는 곤욕을 치르며 나라가 절단나고 말았다.

신라 경순왕과 후백제 견훤의 고려 복속은 우리 땅에서 같은 민족에게 굽히고 들어간 사례다. 삼전도의 굴욕은 타민족에게 왕과 백성이 무참히 수모를 당한 사건이긴 하지만, 나라를 빼앗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는 왜국 일본에 국권과 국토와 국민까지 모조리 빼앗긴 사상 초유의 민족 말살기를 열었다. 황후는 무참히 살해되고 황제는 폐위됐다. 백성은 일본천황의 신민으로 전락했으며, 창씨를 개명하고 조선말이 아닌 일본말을 써야했다. 국토는 일제의 전쟁물자 공급지로 수탈당했다. 수백만 청년들은 강제징집·동원되어 대동아전쟁 총알받이로, 군수공장과 탄광의 노동자로, 군위안부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노예의 삶을 견뎌야 했다. 고종황제의 반대를 거스르며 나라를 팔아먹은 학부대신 이완용과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등 조정의 권부에서 영화를 누리던 매국 5적은 일본제국에서 작위와 재물을 댓가로 받아 호의호식했다. 그러나 그들의 말로가 행복했을까. 결코 민족혼을 버리지 않은 독립영웅들에 의해 평생 암살 위협에 떨며 두리번거리고 살아야 했다. 이완용은 실제로 칼에 맞아 병약한 말년을 살았다.

요즘 한국 윤석열 정부의 ‘국익 저해외교’, 특히 일본과 미국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느니 ‘삼전도의 굴욕’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들이 회자되는 소란스런 현실과 지난 민족사가 오버랩 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도 없이 일본의 죄과에 면죄부를 주고, 영합하고, 대변까지 자처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에 국내외 동포들은 “일본사람 아니냐!”며 울화를 꾹꾹 누르고 있다. 철지난 ‘멸공’과 ‘전체주의’를 외치면서 ‘바이든의 푸들’, ‘기시다의 꽃놀이패’가 되려고 안달하는 모양새에 불안 증폭은 물론 자존심도 망가진다는 지탄이 넘친다. 동해를 ‘일본해’라고 못박아도 끽소리 못하는 저자세와 굴종, 미국과 일본의 결속에 맹목 접근해 두 나라의 하위구조를 자처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의 허장성세, 반면에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의 적대를 심화시키고 있는 ‘자해적(自害的)-조공적(朝貢的)’ 외교를 보며 ‘방패막이 전쟁위기’ ‘일본의 제2 식민’ ‘독도는 무사할까’ 등등 국내외 동포들의 걱정과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년 반 사이에 경제 악화를 필두로 안보까지 나라 곳곳 성한 데가 없이 망가져 위기를 맞고있는 데다 밖으로 ‘국격’마저 계속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받았으며, 8월에는 제2차 영-일동맹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도 한국에 대한 보호의 권리를 인정받은 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을사보호조약을 강제하여 체결하였다…”. 100여년 전의 한반도 정세를 상기시키는 안팎의 경고를 불안하게 되새겨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