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 소설가 칼럼] 촛불혁명과 대통령 선거

● 칼럼 2022. 2. 23. 02:2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정찬 소설가 칼럼]  촛불혁명과 대통령 선거

 

촛불혁명은 훼손된 유권자의 존엄성을 되찾는 역사적 행위였고, 그 행위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사람다운 삶’은 훼손되지 않는 민주주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20대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는 촛불혁명의 계승을 위한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정찬 | 소설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며, 미래를 보는 거울’이라는 역사학자 이 에이치(E. H.) 카의 명언이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빛을 급속히 잃어갔다. 인터넷이 쏟아내는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면서 과거를 돌아보는 힘을 빠르게 상실했기 때문이다. ‘속도가 돈’이라는 자본주의의 신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앞으로만 달려가게 한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니 과거는 잊힐 수밖에 없다. 과거의 중요성은 현재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척도의 역할에 있다. 이 척도를 상실하면 현실에 매몰되어 나아가야 할 길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대선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한 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에서 우리는 촛불혁명을 다시 돌아볼 가치가 있다. 2016년 10월29일 1차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2017년 4월29일 23차 촛불집회까지 183일 동안 1685만2천명의 시민이 참가해, 구속자와 사망자 한명 없이 민주주의의 질서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평화롭고 장엄한 혁명은 부패와 무능, 통치 권력의 비정상성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304명의 생명과 함께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이게 나라냐’라는 절망스러운 깨달음과, 국민이 뽑은 대통령 권력이 비선실세에 의해 행사되었다는 사실로부터 형성된 분노였다. 집회에서 한 시민이 치켜든 팻말의 문구 ‘모이자! 내 나라다’에 주권자의 분노와 간절한 열망이 집약되어 있다.

 

돌이켜보면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박정희 카리스마’였다. 그러한 후광에 감정이입 된 이들이 박근혜도 그러할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는 물론 박근혜도 불행에 빠뜨린 것이었다.

 

2016년의 마지막날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 시민들. 촛불집회는 2017년 4월29일까지 이어졌다.

 

촛불혁명이 진행되던 2016년 겨울의 주말은 유독 추웠고 눈비가 많이 내렸다. 서울에 첫눈이 내린 11월26일, 광화문광장이 휑할까 걱정하며 나온 사람들이 150만명이었다. 영하 11도로 집회 이후 가장 추웠던 2017년 1월14일과, 한파에다 강풍까지 휘몰아친 2월18일에도 촛불의 열기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 열기로 집회장 안의 온도가 바깥보다 4도에서 6도까지 높았다.

 

촛불혁명이 그전의 혁명과 구분되는 것은 혁명의 주체가 ‘나’라는 사실 때문이다. 수많은 ‘나’가 저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외치고, 노래 부르고, 퍼포먼스를 하고, 기도하는 동안 ‘우리’가 되었다. 자본주의의 무한경쟁 속에서 파편화되어버린 ‘나’가 ‘우리’로 변화하면서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피 흘림 없이 승리를 쟁취한 혁명을 이룬 것이었다.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함으로써 촛불혁명은 나라의 주인이 국민임을 세계에 확인시켰다. 촛불혁명이 시작된 2016년의 세계는 인종주의, 쇼비니즘, 기독교 근본주의, 안티페미니즘 등으로 무장한 극우 포퓰리즘에 신음하고 있었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심화되어가는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분노가 극우 포퓰리즘이라는 악성의 형태로 분출되어 난민 약자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 테러와 전쟁이 난무하는 지구적 상황 속에서 한국의 촛불 시민들은 민주주의 원리를 평화적으로 구현하여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것이었다. 그들의 놀람은 “도시가 시위의 불빛으로 이렇게 빛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아름답다”라는 국외 네티즌의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

 

한국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피와 눈물이 배어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좌절의 절망과 고통을 견디며 조금씩, 느리게 민주주의를 쌓아나가 1987년 6월 항쟁에 이어 촛불혁명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인간이 불완전한 생명체이듯 민주주의도 불완전한 생명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의 욕망 사이에서 늘 위태로웠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동시에 현실 너머 저쪽에 있었다. 촛불 시민들이 광장에서 꿈꾼 것은 잘못 선출된 권력에 의해 너덜너덜해진 민주주의 너머에 있는 저쪽의 민주주의였다.

 

다가오는 대선은 역사적 주체로서의 촛불 시민을 광장으로 다시 소환한다. 대선은 한국 사회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역사의 광장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촛불의 염원을 얼마나 구현해왔는가에 대한 평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터이지만,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비율이 높다는 사실에 통절한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촛불혁명은 우리에게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이다. 촛불의 빛은 지금도 우리 사이를 흘러가고 있으며,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밝히는 척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차기 정부가 갖추어야 할 것들 가운데 촛불혁명을 구현하는 의지와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깨닫게 된다.

 

촛불혁명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기 전 한국을 ‘꼭두각시 대통령의 나라’라고 보도했던 외신 매체들이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지자 한국인의 높은 민주주의 의식에 놀라움을 표현하는 기사들을 쏟아내었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그동안 미국이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전형으로 여겨왔고, 한국이 민주화를 이룬 지 불과 30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경이로운 진보다”라고 했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촛불혁명을 계기로 재벌이 주도하는 허약한 경제뿐 아니라 정치 문화는 물론 외교정책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개혁을 추진하는 동력을 얻었으며, 세계 신생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모델이자 지정학적 핵심 플레이어가 되려는 순간과 마주 섰다”라고 썼다.

 

촛불 시민들이 희구한 것은 훼손되지 않는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가 훼손되었다는 것은 주권자의 존엄성이 훼손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은 훼손된 유권자의 존엄성을 되찾는 역사적 행위였고, 그 행위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사람다운 삶’은 훼손되지 않는 민주주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 깨달음을 소중히 지켜야 하는 것은 신냉전과 극우 포퓰리즘,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 등 갈수록 위험해지는 세계 속에서 민주주의의 역할이 그만큼 높아져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차기 정부는 문재인 정부보다 더 민주주의적인 정부여야 한다는 당위성이 형성된다.

 

20대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는 촛불혁명의 계승을 위한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차기 정부를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의 손에 촛불혁명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다.

[칼럼] 윤석열의 상식 밖 언행, 참을 수가 없다

● 칼럼 2022. 2. 22. 02:3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집 없는 사람이 민주당 찍게 하려고 일부러 집값을 폭등시켰다고 한다. 광주시민들의 투쟁 의지가 약해질까 봐 민주당이 대형 복합쇼핑몰 유치에 반대한다고 한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할 소리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허공에 어퍼컷을 날리며 쏟아내는 막말은 어떤가. 이쯤 되면 기본 자질과 소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현재 지지율에서 선두를 다투는 유력 대선 후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래저래 근심과 걱정이 쌓이는 대선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18일 경북 상주시 풍물시장에서 유세를 마친 뒤 ‘어퍼컷’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재승 | 논설위원실장

 

지난 15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상식 밖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 국정을 운영해보겠다고 나선 대선 후보의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윤 후보는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유세에서 “문재인 정부가 28번의 주택정책으로 계속 실패를 거듭했지만 실수를 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집 없는 사람이 민주당을 찍게 하려고 일부러 악의적으로 집값을 폭등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부동산 논객’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황당무계한 소리를 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유력 대선 후보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집 없는 사람의 표를 얻으려고 집값을 고의로 폭등시키는 정부가 세상에 어디 있나. 무주택자들을 바보로 아는가. 근거도 맥락도 논리도 없는 발언이다. 현 정부의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찾아내고 대안을 제시해 수권 능력을 평가받을 생각은 안 하고 허무맹랑한 선동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걸 ‘부동산 민심’ 공략이라고 한다.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윤 후보는 같은 자리에서 “민주당이 못사는 사람들은 자기편이라고 생각해서 양극화를 방치하고 조장했다”고도 했다. 증오를 부추기는 갈라치기도 문제이지만 서민들을 우습게 여기는 편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윤 후보는 18일 대구 달성군 유세에선 광주시민들의 투쟁 의지가 약해질까 봐 민주당이 대형 복합쇼핑몰 유치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대형 쇼핑몰에 있는 좋은 물건들, 명품들 이런 것에 도시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 자기들의 정치 거점 도시에 투쟁 능력, 투쟁 역량이 약화된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할 소리가 아니다. 유통 대기업의 매장 신설은 골목상권 보호와 소비자 편익이 충돌하는 민감한 문제다. 광주뿐 아니라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등 주요 대도시마다 갈등을 조정하고 상생의 해법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윤 후보는 이런 사실을 모르는가,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악의적으로’ 반사이익을 얻기 위해 갈등을 조장하는 건가. 국민의힘은 이걸 ‘호남 민심’ 공략이라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민생 문제에까지 이념의 굴레를 씌우는 것도 문제이지만 민주화에 앞장서온 광주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사실 윤 후보의 ‘아무말 대잔치’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주 120시간 노동’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 ‘집 없어서 청약통장 만들어본 적 없다’ 등 셀 수가 없지만, 선거가 다가오면서 더 악성화되고 있다. 무개념에 적대감까지 더해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승리하겠다는 욕망의 민낯이 보인다.

 

입만 열면 쏟아내는 막말은 또 어떤가. 시도 때도 없이 허공에 어퍼컷을 날리며 “박살 내겠다” “말아먹었다” “거덜 냈다” “나라 꼬라지” “족보 팔이” “약탈 집단” “무식한 삼류 바보” 등 험악한 말들을 내뱉는다. 최소한의 품격도 찾아볼 수 없다. 유세장에 모인 지지자들이 호응해주면 신이 나서 더 한다. 아이들이 보고 따라 할까 걱정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8일 저녁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유세를 하며 손가락을 뻗고 있다.

 

자신의 ‘문재인 정부 적폐 수사’ 발언에 여권이 반발하자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시즘,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 하던 짓”이라고 성낸다. 진솔하게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되레 뒤집어씌운다. 히틀러도 이렇게까지 수준 낮은 선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이 후보도 문제성 발언을 해왔다. 하지만 윤 후보와는 수위와 빈도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가려야 하는 선거판에서 꿰맞추기식 양비론은 비겁한 물타기다.

 

윤 후보는 왜 이렇게 터무니없는 발언을 하고 거친 말을 쏟아낼까? ‘반문 세력’ 결집을 위한 선거전략이라는 분석이 많다. 복잡한 공약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건 어렵지만, 막말은 힘도 안 들고 전달력도 좋다. 맹목적 지지자들의 마음에 바로 와닿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는다. 비정상적 언행이 끊이지 않는 탓에 기본 자질과 소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몸에 뱄다는 얘기다. ‘구둣발 무례’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의힘은 다리가 아파 불편해서 그랬다고 ‘대리 해명’을 했는데, 보통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최소한 신발은 벗는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열차 좌석에 구둣발을 올려놓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걸 제대로 지적하는 언론이 거의 없다. 또 비판하면 윤 후보는 “친여 매체가 민주당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한다”고 공격한다. 자신의 허물을 겸허히 인정하고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적대감을 드러낸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능력이 결여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사람이 현재 지지율에서 선두를 다투는 유력 대선 후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래저래 근심과 걱정이 쌓이는 대선이다.

[김누리 칼럼] 20대 대선과 대한민국의 미래

 

미래의 전망은 보이지 않고, 끝없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낡은 노동관, 구태의연한 사상검열, 호전적 냉전의식이 난무한다. 암울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믿는다. ‘성숙한 시민의 조직된 힘’이 이 나라가 야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결국 막아낼 것이다.

 

 

20대 대통령선거의 공식 선거전이 막을 올렸다. 왼쪽부터 심상정 정의당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20대 대선의 공식 선거전이 막을 올렸다. ‘최악 중에 최악’을 뽑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혹평 속에 어떤 열기도, 희망도, 감동도 없는 이상한 선거가 진행 중이다. 모두 후보들이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투덜대지만, 진짜 문제는 후보들에게 미래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전환의 시대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20대 대선은 세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번 선거는 대한민국 새 100년의 첫번째 대선이다. 1919년 대한민국이 건국한 이후 지난 100년의 세월 동안 이 나라는 근대국가가 체험할 수 있는 역사적 비극을 모조리 겪었다. 식민의 역사, 분단의 역사, 냉전의 역사, 내전의 역사, 군사독재의 역사를 모두 경험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시련 속에서 우리는 찬란한 민주혁명과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지난 100년 영욕의 역사를 돌아볼 때, 대한민국 새 100년을 열어갈 대통령의 자리는 결코 그 무게가 가벼울 수 없다. 이번 대선은 비극의 한 세기를 넘어 새로운 희망의 시대로 도약하는 ‘역사적 전환’의 계기가 돼야 한다.

 

둘째, 이번 대선은 ‘선진국 대한민국’이 치르는 첫 대선이다. 지난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여, ‘30-50클럽’ 가입 등은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선진국다운 선진국’을 만드는 것이 다음 대통령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를 ‘성장 사회’에서 ‘성숙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이번 대선은 이런 ‘사회적 전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셋째, 이번 선거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치르는 첫 대선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모든 가치의 전도’를 요구하고 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사유하지 않으면 인류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특히 물질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문명사적 전환이 불가피하다. 이번 대선은 바로 이러한 ‘생태적 전환’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

 

요컨대, 20대 대선은 ‘대한민국 새 100년’의 역사적 전환, ‘선진국 대한민국’의 사회적 전환,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3중의 전환 시대’에 치르는 첫 선거이다. 이런 전환 시대의 의미를 통찰하고, 거대한 전환을 감당할 비전과 능력을 갖춘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절망스러울 정도로 실망스럽다. 첫째, 논쟁의 지점이 지극히 시대착오적이다. 미래의 전망은 보이지 않고, 끝없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낡은 노동관, 구태의연한 사상검열, 호전적 냉전의식이 난무한다.

 

둘째, 논쟁의 지형이 극도로 보수적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샌더스와 워런은 대학 무상등록금, 대학생 부채탕감, 무상보육, 부유세 도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금 한국에선 미국 민주당이 내놓은 수준의 공약을 내건 후보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정치지형이 극단적으로 우경화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셋째, 논쟁의 관점이 지극히 미시적이다. 국가의 미래를 거시적으로 구상해야 할 대통령 후보들이 ‘소확행’ 운운하며 현실 안주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고 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현재 가장 당선이 유력시된다는 윤석열 후보의 퇴행성이다. 그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3대 전환’에 가장 부적합한 인물이다. ‘새 100년의 대한민국’은 진취적 역사의식을 가진 대통령을 요구하지만, 그의 역사의식은 대단히 시대착오적이다. ‘멸공’ 퍼포먼스에서 드러난 냉전의식, ‘선제공격론’에서 나타난 호전적 대결의식은 한반도에 새로운 전쟁위기를 자초할 위험이 다분하다. 또한 ‘선진국 대한민국’은 성숙하고 이성적인 지도자를 요청하지만, 윤 후보가 보이는 권위주의적 성격, 낮은 인권 감수성, 샤머니즘적 성향은 선진국 지도자의 수준에 부합하지 못한다. 나아가 ‘포스트코로나 대한민국’은 생태적 감수성을 지닌 지도자를 요구하지만, 윤 후보는 생태의식은커녕 생태적 기본 지식도 결여하고 있다.

 

‘윤석열 현상’을 만들어낸 책임은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있다. 윤석열은 민주당에 대한 분노의 앙상블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통절하게 반성하고, 진솔하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것이 촛불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선거 승리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암울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믿는다. ‘성숙한 시민의 조직된 힘’이 이 나라가 야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결국 막아낼 것이다.

  

[칼럼] 마음은 흐리고 몸은 뻣뻣한 후보가 집권하면

  

윤석열 후보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강렬한 증오의 표현이지만,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게 오직 수사니까, 그 수사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국가를 이끌어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비리 수사하듯이 국정 운영을 해도 될 만큼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그리 한가한가. 모든 사람이 현 정부의 적폐 수사가 지나쳤다 비판해도, 그 칼을 휘두른 윤 후보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게 아닌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박찬수 | 대기자

 

“문재인 정부 스스로 문제될 게 없다면 불쾌할 게 없지 않겠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현 정부 적폐 수사를 하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를 요구하자 윤 후보는 이렇게 대꾸했다. 다음날엔 “내 사전에 ‘정치보복’은 없다. 어떠한 사정과 수사에도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후보가 ‘사정 수사는 하겠지만 정치보복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건, ‘술은 마셔도 음주운전은 아니다’는 말처럼 교묘한 언사로 들린다. 역대 어느 대통령후보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치보복’을 시사한 사례는 없다. 윤 후보의 발언은 검사 마인드로 국가를 이끌어가겠다는 위험한 발상의 단면을 드러낸다.

 

‘죄 없으면 두려워할 게 뭐 있나.’ 밀폐된 조사실에서 검사가 쉽게 던지는 이 말은, 바꿔 말하면 “탈탈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 어디 있겠나‘라는 일종의 겁박이다. 2006년 서울중앙지검 검사이던 금태섭씨는 <한겨레신문>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글을 연재한 적이 있다. 검찰은 발칵 뒤집혀 금 검사를 인사조처했고, 연재는 첫회만 실린 채 중단됐다. 이 글의 첫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수사기관에 입건되어 피의자가 된 때의 곤혹스러움은 경험자가 아니면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도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는다. 심지어 오랫동안 판사, 검사, 변호사로 활동하던 법률가나 수사가 직업인 경찰관도 피의자가 되면 불안에 떤다.” 피의자의 이런 불안감을 최대한 이용해 실수를 이끌어내고 유죄로 몰아가는 게 검찰의 수사 기법임을 이 글은 말한다. 검사가 피의자에게 할 법한 말을 지금 유력 대통령후보의 입에서 듣는 건 소름 끼치는 일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국무부 이메일 논란에 대해 “내가 대통령이 되면 힐러리는 감옥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을 두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선거에서 이기면 정적을 구속시키겠다고 말하는 후보가 있다. 이에 비하면 모든 문제는 부차적”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시카고트리뷴>의 에릭 존은 칼럼에서 “아직 바닥이 아닌 건가?”라고 아연해했다. 트럼프 집권 시기에 미국 사회가 얼마나 분열되고 전세계에 갈등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는지 우리는 기억한다. 지난해 10월 미국 퓨리서치 여론조사를 보면, ‘정치적 갈등이 가장 심한 나라’ 공동 1위가 바로 한국과 미국이다. 윤 후보의 발언이 현실화하는 순간 한국은 독보적인 1위로 올라설 게 분명하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역대 정부에서 이전 정권 비리에 대한 수사가 없었던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세력이 공개적이고 전면적으로 이전 정권 수사를 벌인 적은 두 번 있다. 한번은 문재인 정부 때고, 다른 한번은 ‘중단 없는 개혁과 사정’을 천명한 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직후에 집권했다. 김영삼 정부는 수십년간의 군부 통치 이후에 등장한 첫 민간 정부였다. 둘 다 ‘적폐 수사’의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 외엔 어느 대통령후보도 상대 후보 또는 정치세력을 겨냥한 사정 수사를 다짐하진 않았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김대중 후보는 “정치보복은 없다”고 선언했고, 2012년 박근혜 후보조차 ‘100% 대한민국’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렇게 철석같이 약속해도 이전 정권 수사는 되풀이됐고,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으로 이어진 게 한국 정치의 아픈 현실이다. ‘집권하면 전 정권 수사를 할 거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돼야죠”라고 세번이나 강조한 윤 후보 말을 그냥 흘려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이 발언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강렬한 증오의 표현이지만,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게 오직 수사니까, 그 수사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국가를 이끌어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비리 수사하듯이 국정 운영을 해도 될 만큼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그리 한가한가. 모든 사람이 현 정부의 적폐 수사가 지나쳤다 비판해도, 그 칼을 휘두른 윤 후보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게 아닌가.

 

백인정권에 27년간 투옥됐던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이 된 뒤 “증오는 마음을 흐리게 한다. 지도자는 누군가를 미워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후보의 마음은 흐리고, 몸은 열차 객석에 구둣발을 올려놓은 정도로 뻣뻣한 것처럼 보인다.

 

[칼럼] 구둣발과 검찰공화국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기차 안에서 맞은편 의자에 구두를 신고 두 발을 올려놓은 사진이 공개돼 논란을 빚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있는 상황에서도 과도한 검찰권 행사가 문제 됐는데, 윤석열 후보 공약대로 수사지휘권을 없애자는 것은 검찰 독주를 방치하겠다는 소리다.

군인들의 군홧발이 일찌감치 물러난 자리를, 이제는 무소불위 검찰의 ‘구둣발’이 차지할 태세다.

 

[한겨레 프리즘] 김경욱 | 법조팀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검찰권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사법 분야 공약을 14일 내놨다.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가진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권을 검찰과 경찰에도 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오랜 세월 한국 사회가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유지해오거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마련해온 장치들을 없애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수사지휘권은 검찰청법 8조에 명시된 법무부 장관의 권한으로 검찰권 남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통제장치’로 꼽힌다. 1949년 이 법이 제정된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됐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일선 검찰청의 수사에 장관이 직접 관여할 수 없도록 한 일종의 검찰 독립을 위한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윤 후보는 집권하면 이 조항을 폐지하고, 검찰에 예산편성권까지 주겠다고 한다.

 

검찰 독립을 해친다는 이유로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은 그야말로 통제 불가능한 권력이 될 게 뻔하다. 수사지휘권이 있는 상황에서도 과도한 검찰권 행사가 문제 됐는데, 견제장치마저 없애자는 것은 검찰 독주를 방치하겠다는 소리다. 예컨대 임기 2년이 보장된 검찰총장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수사하거나, 수사를 하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면, 이를 무슨 수로 통제한단 말인가.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횟수가 이례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현 정부 이전에 수사지휘권이 행사된 경우는 노무현 정부 때 한차례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는 세차례 발동됐다. 역설적으로 과거보다 심했던 윤석열 검찰의 폭주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수사지휘권 행사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는 등 문제점을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지휘권 자체를 전면 폐지하는 방식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권을 검찰·경찰에도 주겠다는 공약도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윤 후보 본인의 속마음이 반영됐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윤 후보는 ‘검경이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의 공수처법 24조를 수정할 뜻을 밝히면서 “공수처와 검찰, 경찰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감시하고 수사할 수 있게 제도를 만들겠다”고 했다. 제도 수정에 방점을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주목할 대목은 그가 이런 뜻을 밝히며 덧붙인 말이다. 그는 이런 제도 수정에도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공수처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 후보는 고발사주 의혹 등 사건으로 입건돼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윤 후보는 지난 9일 공개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사실상 ‘정치보복’을 시사했다.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수사를 할 것인가’란 물음에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느냐.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말도 했다. 구체적인 혐의를 들지도 않고 ‘범죄’라고 기정사실화한 다음, 수사를 통한 ‘처벌’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중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의 인터뷰와 이번 공약을 종합하면, 윤 후보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검찰공화국’이라는 실로 간단명료한 말로 압축된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군사독재정권은 ‘군홧발’로 국민과 민주주의를 짓밟아왔다. 국민 위에 군림해온 군인들의 군홧발이 일찌감치 물러난 자리를 이제는 무소불위 검찰의 ‘구둣발’이 차지할 태세다. 공교롭게도 윤 후보는 사법 분야 공약을 발표하기 하루 전, 정책공약 홍보 열차인 ‘열정열차’에서 구두를 신은 채 맞은편 의자에 두 발을 올려놓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입길에 올랐다. 시민들이 이용하는 열차 좌석에 떡하니 올려진 구둣발은 이 시대의 암연을 암시하는 또렷한 징후가 돼가고 있다.

[우리교회 기쁨과 소망]  겨울밤 단상

 

이글스필드 한인교회 장성훈 목사

 

눈이 많이 왔습니다. 창문너머 이웃집 지붕도 하얗고 집 앞의 길도 하얗고 저 건너 나무도 하얗고 세워둔 차도 하얗습니다. 밤이 되고 기온이 떨어져 내린 눈이 살짝 얼어붙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침에 나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손이 시립니다. 찬바람 맞으며 차창에 얼어붙은 얼음을 긁어내고 눈을 치울 생각 때문이겠지요. 겨울이 낭만적이기는 합니다만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은 그리 낭만적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의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몇 자 글을 쓰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아이들이 내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쓰던 글을 멈추고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소리는 창밖에서 들려옵니다. 꼭대기 층에서 창을 열고 내다보았더니 소리 없이 내리는 눈 아래서 제설업체 직원들이 눈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군가는 포근한 잠자리에 들어서 행복한 단꿈을 꾸고 있을 때, 누군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씻어내고 내일을 기대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누군가는 먼 나라의 공주를 구하려고 불을 뿜은 용과 싸우는 기사의 용감한 이야기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누군가는 고요히 기도하며 하루를 돌아보거나 거룩한 말씀을 새기며 깊은 묵상으로 들어갈 때, 누군가는 골똘히 생각하며 또박또박 하루를 일기장에 담아낼 때.

 

그렇게 모두가 자기를 위해 시간을 가꾸고 있을 그 때 얼어가는 눈을 서걱서걱 긁어내고 소금을 뿌려 아침이 미끄럽지 않도록 길을 여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그 분들은 이른 새벽에도 그렇게 길을 내고 있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위해서 교회 문을 열기 위해서 일찍 나간 새벽에도 너른 주차장 한쪽으로 설산을 만들고 있었고, 걸어야 하는 좁은 길을 말쑥하게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별들도 깜빡이며 졸고 태양은 코를 골고 있는 밤 같은 새벽에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접으며 포근하고 따뜻한 곳에 몸을 뉘일 때 김을 내 뿜으며 땀 흘리며 길을 열고, 많은 사람들이 일을 내려놓고 깊이 잠들어 아늑함을 마음껏 누리고 있을 때 분주하게 움직이며 길을 여는,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과 다른 길을 여시고 다른 길을 걸으신 예수님 생각이 났습니다. 모두가 평탄하고 넓은 길을 찾고 오르는 길을 찾을 때 좁은 길을 여시고 내려가는 길을 여신 예수님.

 

사람들이 캄캄한 세상의 밤이 혼돈과 흑암인줄도 모르고 그 안에서 평안을 구하고 잠을 청할 때 빛을 가져오신 예수님은 캄캄한 하늘 아래에서 십자가로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사방이 고요하고 바람에 날리는 눈마저 숨죽여 흩어지는 오늘 밤에 말없이 서걱서걱 길을 내는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말없이 수고하고 땀 흘리며 섬기며 사랑의 수고를 다하는 여러분들의 어깨 너머에도 예수님의 미소가 보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