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신체 곳곳에 새로운 버섯이 생겨난다. 검버섯, 반점, 주근깨,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식용버섯이 이렇게 번성한다면 대풍년이 될 조짐이지만 반갑지 않은 손님이 주요 부위에 나타나니 거울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심란하다. 악성 유전자는 성질이 고약하여 언제고 그 값을 한다더니 양친의 그것들을 함께 물려받은 모양이다. ‘에이, 이런 건 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하며 볼멘소리를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인생의 훈장인 주름살이 아직은 스케치 단계라 차후에 하회탈이 될지 놀부의 그것이 될지 나의 역량에 달렸음이다. 오십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살아온 궤적이라고 했던가. 이번 여름 여행에서 내 작품의 모델이 될 사람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최근 하이킹 동호인들과 캐나다 동쪽 끝 섬 뉴펀들랜드를 다녀왔다. 대서양과 세인트로렌스만 사이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그 섬을 향해 차와 배를 번갈아 타며 한없이 나아갔다. 스물다섯 시간이란 긴장도 끝에 도착한 그곳은 어촌 특유의 비릿한 냄새도 관광지의 술렁임도 없었다. 지역 특산 어족인 대구를 보호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조업을 중단시킨 탓에 만선으로 넘쳐야할 항구마다 겉 자란 해초만 파도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런 광경을 목도하며, 대대로 살아 내려온 삶의 근간을 거세당한 상실감이 주민들 심중에 자리하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섬사람들에게 고기잡이란 그들의 삶이며 낙이었으련만, 이십여 년 가까이 묶여 있었으니 당연한 추측이었는지 모른다. 주민들의 기본적 생활 유지는 정부의 몫이라고 해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며칠 하이킹을 하면서 간간이 들여다본 거기엔 나의 생각이 기우였으며 오히려 그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한반도 면적의 1.8배에 달하는 섬을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하이킹과 드라이브를 병행하며 횡단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었고 주민들의 생활환경 또한 쾌적하고 여유로웠다. 간간이 스쳐가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순박한 인간미는 도회지에서의 그것과 확연이 달랐다. 특히 빠듯한 일요일 아침 시간을 할애해서 열두 명의 우리 일행을 두 팀으로 나누어 낚시질을 시켜주었던 에릭은 모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어느 이른 아침, 조그만 모터보트에 일행 몇 명과 함께 승선했다. 우리가 며칠 묵었던 카티지 주변에 살았던 에릭은, 하이킹 후 짬짬이 낚싯대를 드리우는 강태공들을 가상히 여겨 그의 배로 초대해 준 것이었다. 상쾌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물살을 가르는 기분도 황홀했지만 주인장 에릭의 일거수일투족이 더 나의 시선을 끌었다. 오십대 중반인 그는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를 가진 것도 모자라 만면에 진중한 미소를 담고 있었다. 혼자서 낚싯줄을 당길 때나 일행들의 어구를 손 봐 줄때도 그 표정은 여전했다. 나는 문득 그에게서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의 산티에고 할아버지를 떠 올렸다. 그는 고기잡이 팔십 사일은 공치고 팔십오일 만에 전무후무한 큰 고기를 만나 이틀 동안 사투를 벌여 잡았지만 배에 묶어 돌아오다 상어 떼에게 모두 빼앗기고 만다. 할아버지는 실패한 원인을 자신의 과대한 욕심으로 단정하며 곤고한 어부의 일상이 큰 행복이었음을 주지시킨다. 에릭은 비록 작가가 묘사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삶의 진솔함이 배어있는 그의 행동이며 표정은 산티에고 할아버지의 승화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십년 후의 온화한 자화상을 위해 지금부터 각진 모서리 손질을 해야 할까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한마당] 수호해야 할 ‘한국혼’

● 칼럼 2013. 8. 11. 18:12 Posted by SisaHan
이민 땅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김치와 된장의 맛은 못잊는다. 장구와 꽹과리로 흥을 돋우면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우아한 한복을 보면 따스한 정감이 느껴진다. 영어에 주눅이 들긴 해도 한글에 자부심이 강하고, 성군 세종대왕의 업적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광활한 만주를 호령했던 광개토대왕의 기개와 거북선으로 왜적을 격멸한 충무공 이순신의 위업도 장쾌하다. 독도 도발에 공분하고, 올림픽 시상식에 태극기가 게양될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왜 그런가. 바로 한국인이요 한국 혼(魂)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그러면 한국적 혼이란 무엇인가. 달리 말해 민족혼 혹은 민족정신이라고도 할 한국인만의, 한국인에게만 흐르는 혼과 정신은 무엇이던가.

민족혼, 민족정신이란 그 민족만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고유의 정신, 또는 한 민족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개성이나 문화적 특성을 말한다. ‘민족정신’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민족정신이란 개인정신이나 개인정신이 상호작용하는 총체 이상의 것으로, 이것을 초월하여 민족에 내재하는 실체로서의 정신이며, 민족의 언어 ·민요 ·민화 ·풍속 ·법 등을 창조하는 원천”이라고 풀이했다. 
한국인으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독립투사였고 사상가이며 사학자이기도 한 박은식 선생이 ‘국혼(國魂)’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해 “국가나 민족의 흥망은 국혼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고, 이 국혼은 바로 역사에 담겨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독립정신을 함양하고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역사서술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한학자요 문인이기도 했던 정인보 선생은 ‘얼’이라는 표현을 써서 저서 「조선사연구」에 실린 ‘오천년간 조선의 얼’에서 역사의 본질을 ‘얼’ 즉 민족정신에서 찾는 ‘얼 사관’을 정립했다. 이밖에 한국 고대사 연구를 중시했던 신채호 선생은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국가들은 독립성과 민족적 패기가 있었으나, 중세 이후로 오면서 그것이 없어지고 사대주의로 빠져들면서 쇠퇴해갔다”면서 고대사의 영광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들 모두 일제 식민치하에서 역사적 자존감 회복을 통해 독립정신을 고양하려는 관념적·계몽적 의도에서 역사에 기초한 민족정신을 주창한 측면이 있다. 오늘날 주권재민(主權在民)의 공화제 민주주의를 내다본 건 아니겠지만, 민족 암흑기의 자주독립 정신을 일깨우는 데는 큰 토대를 이뤘음에 틀림없다. 그 결과 3.1독립운동의 불길이 솟아올랐고, 상해 임시정부가 건립됐으며, 조국 광복운동이 번져나갔던 것이다.
 
캐나다 땅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 시민권을 가졌어도 모국을 그리워하는 까닭, 바로 ‘혈맥’(血脈) 때문일 것이다. 조상으로부터 전해 받은 몸속의 피가 한국인의 것이요, 마음과 정신세계에 흐르는 영혼의 혈액이 한국의 그 것으로, 한국 땅에서 태어나 자라고 길들여졌던 태생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흐르는 연유다. 심지어 이민 땅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은 2세들도 정도의 차는 있되 자신의 영(靈)과 육(肉)에 지워지지 않고 흐르는 한국적 혼을 깨달아 방황하고 맴돌다 회귀하는 모습들을 본다. 
얼마 전 토론토에서 ‘국혼수호’를 기치로 내건 단체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국 국내도 아니요, 캐나다 시민권자들이 한국의 국혼을 수호하겠다고 나섰으니 참으로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전세계 한인사회 어디에서도 민족의 혼을 수호하겠다고 외치는 단체가 없는 터에, 용기있게 선봉장이 되어 깃발을 들어 올렸으니 얼마나 장하고 칭송받을 애국의 발로인가. 더구나 한인사회 결속을 도모하고 애국적 양심과 국민적 도덕심에 따라 필요시 ‘행동’에도 나선다는 결의를 보여 든든함을 주었다
그렇다면 수호해야 할 한국과 한국인의 국혼은 무엇일까. 형이상학적 용어인 ‘국혼’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홍익인간을 바탕으로 한 백의민족의 평화사랑과 은근과 끈기, 그리고 강한 자주 독립정신, 불의에 대한 항거, 그리고 인지상정과 상부상조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한국 혼을 지키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국혼수호’ 활동에 귀추가 주목되는 것은, 최근 한국의 정치정세가 ‘국혼’을 갈수록 상실하고 외면하고, 때로는 짓밟는 양태들이 횡행하는 듯 해서다.
예를 들면 독립운동을 토벌했던 일제부역자와 친일 독재자들을 추앙하는 풍조를 국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주권재민을 망각한 정치행태 역시 그렇다. 
국혼을 더럽히는 일들은 그 외에도 너무나 많다. 3.1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 및 4.19 민주이념 계승을 명시한 헌법정신을 무시하는 8.15 건국절 주장, 쿠데타와 독재를 미화하고 지역감정과 ‘북풍’을 정치에 악용하는 작태, 민주 실현에 몸 바친 희생자들을 매도하는 모리배들, 국가와 국민을 섬기고 봉사하는 정부기관과 공복이 아닌 사익과 정권의 충견이 된 공직자들과 그들의 불법 정치공작의 악습 등등이 자랑스런 한국의 국혼이 아님은 지극히 명백하다. 
한국의 유구하고 자존어린 국혼에는 정의와 도덕,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정신도 담겨있다. ‘국혼수호’란 여·야, 보수·진보를 떠나 바로 그런 것들을 바로잡고 굳건히 지켜가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국혼수호 활동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 김종천 편집인 >


한국의 여성운동은 세계 여성운동사에서 꽤 성과를 거둔 경우에 속한다. 그중에서도 1990년 진보적인 여성단체들이 결성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줄여서 정대협)가 중심이 되었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운동은, 여성인권운동을 한 단계 도약시킨 사례이다. 운동 초기에는 폭력에 시달린 할머니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게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할머니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기억의 중요성을 일깨워드렸다. 변영주 감독은 그분들에게 스스로 카메라를 쥐게 하여 영화 <낮은 목소리>를 만들어내게 함으로써, 그분들이 ‘사회적 발언자’로서 새로 태어날 수 있게 도운 초기 활동가 중 한 명이다. 여성운동을 통해 비로소 입을 열게 된 할머니들은 인권운동가이자 치유사로 거듭나셨고, 22년째 계속되는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수요집회는 살아 있는 역사 교실이자 평화를 기원하는 세계 시민들의 허브로 자리잡았다. 유엔이 일본군 위안부 사안을 전쟁범죄로 규정하게 한 것도 이들의 활약 덕분이다.
 
여행 중에 나는 이 운동이 미국에서 새로운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7월30일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에 있는 공립 도서관 뜰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글렌데일시가 주도한 이 행사에서 사회를 본 로스앤젤레스 가주한미포럼 대표와 글렌데일 시의원들은 상당히 흥분한 어조로 경과보고를 했다. 일부 일본계 시민들과 일본 총영사의 항의가 거셌지만 해야 할 일을 해낼 수 있어서 기쁘다는 이야기였다. 태평양을 건너온 위안부 생존자 김복동 할머니는 광화문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미국에도 세워진 것을 보니 ‘절반은 성공’이라며, 아베 총리와 오사카시장, 도쿄도지사 등이 계속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세계 전역에 ‘평화의 소녀상’이 들어서게 할 것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제막식 전야제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할머니, 인신매매 생존자인 필리핀 여성과 김복동 할머니가 만나는 감동의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인간이 감히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역사를 어루만지는 그 자리에는 목사와 스님과 신부와 랍비들도 와 있었다.
 
제막식 뜰에는 아베 총리 얼굴에 나치 표지를 덧붙인 피켓을 든 중국계 미국인도 있었고 ‘시민적 권리와 발언을 위한 일본계’(영어 약칭 NCRR)라는 시민단체 회원들도 있었다. 그 단체의 대표 마사오카씨는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국 정부가 일본계 주민들을 강제수용소에 몰아넣는 위헌적 일을 저질렀는데, 1988년에 이에 대한 사과를 했다면서 후대에게 진실을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07년, ‘위안부’ 사안을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 사건’으로 규정한 결의안을 미국 하원에서 통과시키는 데 주도적 구실을 한 마이크 혼다 의원은 일본계 3세였다. 그는 어린 시절을 일본인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교사 출신 하원의원이다.
미국에는 이미 6개의 기림비가 세워졌고 많은 지역에서 기림비 건립을 추진중이다. 이 움직임은 기성 언론이 부각하듯 한-일 힘겨루기의 장이라기보다, 미국에서 이민자 집단이 나름의 자리를 잡아가는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사람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공동체적 가치’를 세우는 일에 참여할 때 비로소 온전한 사회 구성원이 될 자격을 얻는다. 기념비 건립은 역사를 다시 쓰고 기억하는 소통의 행위이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에 헌신하는 분들은 몸은 미국에 살면서 온통 관심을 고국에 두고 있는 교민 1세대와는 달리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상생의 삶을 일구어내기 위해 협력하는 새로운 세대인 듯하다.
 
미국에서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한국계 미국인들은 조만간 1992년 4•29 로스앤젤레스 폭동에 대해서도 발언을 시작할까? 그리고 그런 활동이 무르익으면 ‘망각의 시간’ 속으로 퇴행하고 있는 듯한 한국 사회에 반가운 선물을 안겨다 주지 않을까? 문득 역사를 기억하는 글로벌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 여행이다.
< 조한혜정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박근혜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다녀와서 청와대 비서진을 대폭 개편했다. 공석이던 정무수석을 임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서실장을 포함해 5명의 참모를 5일 전격 교체했다. 정부 출범 6개월도 안 된 시점에 사실상 2기 청와대를 출범시킨 것인데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의 기용은 여러모로 이해하기 어렵다. 김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고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인물이다. 대표적인 공안통인 그는 전직 법무부 장관 신분으로 초원복집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초원복집 사건은 1992년 대선 당시 김기춘 전 장관이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 지원을 위한 대책회의를 하다 발각된 것이다. 김 실장 같은 이가 그 후로도 지역구도에 기대어 국회의원을 내리 세 번이나 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우리 정치의 비극이다.
 
박 대통령이 이런 김 실장을 발탁한 것은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부리기 좋은 사람을 쓴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이로 상징성이 크다. 김 실장의 발탁은 쉽게 말해 유신 시절의 청와대로 돌아가겠다는 것으로 비친다. 김 실장 이력으로는 경제민주화나 복지, 창조경제 등 미래지향적인 정책들을 추진하기 어려워 보인다. 유신 시절처럼 상명하달 식으로 군림하는 청와대 상이 그려질 뿐이다. 김 실장이 박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실세그룹인 이른바 ‘7인회’ 구성원이라는 것도 꺼림칙하다. 원로자문그룹은 조언하는 일에 충실한 게 좋다. 권력에 직접 간여했다간 쏠림현상을 가져오면서 오히려 뒤탈이 날 수 있다.
공안 검사의 득세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김 실장을 필두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홍경식 신임 민정수석 등 정부 요로가 공안 검사 출신들로 가득하다. 이는 외교안보 라인이 군 출신으로 채워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군 장성과 공안 검사 출신들로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는 지났다. 그들의 갇힌 상상력으로는 나라의 미래를 이끌 수 없다.
 
박준우 신임 정무수석의 발탁도 이상하다. 줄곧 외교관으로 공직 생활을 해온 사람을 국내 정치 담당에 앉히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적당한 사람을 더 찾거나, 정무수석을 폐지 또는 통폐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일하기 어려운 사람을 굳이 데려다 앉힌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번 인사의 최대 문제는 그 메시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정부 출범 초기의 인사 실패와 국정 난맥상에 대한 문책성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실타래처럼 얽힌 정국에도 더 적극 대처하겠다고 보기에는 새 진용이 너무 구시대적이고 무능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