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가난, 도둑맞은 민주주의

● COREA 2024. 11. 2. 11:26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사람 바꾸고 시스템 바꾸면 될 줄 알았더니...

검찰 출신 대통령이 가족 위한 비즈니스

게다가 선출과정 여론조작 정황까지 속속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박완서(1931~2011) 작가의 1975년 단편소설에 ‘도둑맞은 가난’이 있다. 가난을 도둑맞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가난이 사라졌다면 차라리 잘 된 일 아닌가?

부자의 ‘가난 체험 활동’에 상처받은 박완서 소설의 여주인공

가난을 도둑맞은 주인공은 공장에서 일하는 앳된 여성이다. 원래 중산층이었는데 아버지의 실직과 허영심 많은 엄마 탓에 집안이 몰락했다. 차라리 죽기보다 빈민촌 가난의 냄새를 더 싫어한 어머니가 느닷없이 아버지와 오빠랑 동반자살 하는 바람에 고아가 됐다.

‘여공’이 되어 밑바닥 생활을 하는 주인공은 “그들이 죽기를 무릅쓰고 거부한 가난을 내가 지금 얼마나 친근하게 동반하고 있나에 나는 뭉클하니 뜨거운 쾌감을 느꼈다.” 이렇게 가난한 삶을 기꺼이 사랑하며 성실히 살던 주인공은 우연히 “5원짜리 풀빵 구루마 앞에서” 남성 상훈을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연탄이나 월세 등 돈을 아낄 수 있어 좋지만, 실은 상훈에게도 끌렸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훈이 먼저 사랑을 고백하길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상훈이 아픈 동료를 돕는답시고 그간 둘이서 동거하며 함께 모은 저금을 다 써버렸다 하는 게 아닌가? 주인공이 버럭 화를 내자 상훈이 사라진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면서 속이 타고 분해서 눈물이 난다. 걱정과 울화가 범벅이다. 한참 뒤 상훈이 돌아왔는데, 멋진 옷을 입고 말끔해졌다.

무슨 일인가 물었다. 상훈은 자기가 원래 부잣집 아들이고 대학생인데, 아버지가 좀 별나 방학 때 고생 좀 하며 돈 귀한 줄 알고 오라 해서 공장에 취업한 것이라 했다. 이 고백은 주인공에게 멘붕을 주었다. 이 배신감!

절망과 수치심으로 변한 가난 초월의 소명감

바로 그 때 주인공 여성의 심장엔 ‘가난을 도둑맞았다!’는 느낌이 치밀었다. “가난을 정면으로 억척스럽게 사는 사람들의 이런 특이한 발랄함-가난의 냄새에 기꺼이 길들여지는 것-을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치를 떨며 경멸했던가.” 그래서 주인공에겐, 가난하고 힘들지만 악착같이 살아내 마침내 가난을 초월하고야 말겠다던 소명감 같은 게 있었다. 하지만 부자들의 장난질 때문에 그 소명감이 갑자기 절망감과 수치심으로 변했다. “내 가난을, 내 가난의 의미를 무슨 수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설사 부잣집 상훈의 아버지가 깊은 뜻을 가졌다 해도, 부자의 “가난 체험 활동”에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건 절대 용서 불가였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곰곰 생각해보니 주인공이 맨 처음 상훈을 풀빵 구루마에서 봤을 때, 그가 풀빵을 손으로 잡지 않고 “어디서 났는지 오톨도톨한 꽃무늬가 있는 하얀 종이 냅킨으로 싸서 집어먹던” 것부터 꼴사나웠다. “다 먹고 나서는 그 냅킨으로 입 언저리를 자못 점잖게 꾹꾹 눌러 닦는” 것도 꼴불견이었다. “같은 5원짜리 풀빵을 먹으면서 그까짓 종이 한 장으로 이곳에서 풀빵을 먹고 있는 배고프고 피곤한 저녁나절의 직공들 사이에서 우월감 같은 걸 누리고 있는 게 몹시 꼴사나워” 보일 때부터 주인공이 알아 봤어야 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상훈과 내가 근본부터 다르다는 걸! “얼마나 떳떳하고 용감하게 내 가난을 지켰는지 스스로 뽐내던” 주인공, “내 방에서 기적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매일 방을 비워야 했던” 주인공, 그 주인공에게 도대체 부자가 ‘가난을 체험 삼아 살아 본다’는 게 말인가 방군가? 그래서 가난을 도둑맞았다!

 

2022년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명태균 씨(녹색 원)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를 받는 권오수 회장의 아들 권혁민 대표(왼쪽 빨간 원), 지난해 별세한 윤 대통령의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오른쪽 빨간 원) 등과 함께 '주요 인사' 석에 앉아있는 모습. 사진=국방홍보원
 

자본-권력의 보수동맹, 여론조사 조작에 도둑맞은 민주주의

그런데 요즘 나는 그와 비슷하게 ‘도둑맞은 민주주의’란 느낌을 너무도 강렬하게, 그것도 거의 매일 반복 경험한다. 곰곰 따져 보니, 민주주의가 도둑맞아온 역사가 꽤 길다.

첫째, 1981년에 대학생이 된 뒤로 나는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자는 대의에 공감해 피라미지만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3학년 때는 단과대 학생 대표를 맡아 한편으로는 독재 세력들과, 다른 편으로는 깡보수 교수들과 싸웠다. 옥살이는 안 했지만 군경 테러에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매일 긴장감 속에 살았다. 군사독재 종식을 내세운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고 뒤를 이어 김대중,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나마 민주주의가 쟁취됐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새 자본이 그 민주주의를 새로운 형태로 포섭했다. 우리가 민주주의라 믿은 것은 단지 ‘자본주의의 권위주의적 형태’가 ‘자본주의의 자유주의적 형태’로 바뀐 것에 불과했다.

둘째, 흔히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선 사람만 바꿀 일이 아니라 ‘시스템’을 제대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대통령 직선제 헌법도 고치고 노동법도 개정하고 헌법재판소나 방통위원회, 특별검사제, 상설특검,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부패방지위), 공수처도 만들었다. 그런데 민주주의 고양을 위한 이 제도나 시스템을 교묘히 우회하거나 쓸모없게 만드는 반민주 세력들이 있다. 자본과 권력 주도의 보수동맹이 문제다.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내부자들>에도 나오듯, ‘재벌-금융-언론-정치-검찰-법원-조폭’의 연합체가 카르텔을 만든다. 심지어 과거 박근혜-최순실 사태나 최근 김건희-명태균 사태에서 보듯, 비선 실세 내지 문고리 O인방 같은 어둠의 세력들이 농단을 한다. 이들이 민주주의 시스템을 마치 소리 없는 지뢰로 파괴하듯 허물고 있다.

셋째, 지자체 선거, 총선, 보선,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여태 나는 조직적 댓글부대나 개표 부정이 문제라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충격적으로 드러난 바, 선거 국면에서 유권자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실시된 ‘여론조사’ 자체가 멋대로 조작되었다!

‘엿장수 맘대로’ 조작된 여론조사는 동요하는 표심에 영향을 줘 특정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또 그 보상으로 특정인 공천이 된 것도 폭로됐다. ‘여사’의 입김은 넓고도 세다.

쏟아지는 ‘도둑맞은 대선’의 증거들

10월 국정감사에서 양심적 검사 출신의 박은정 의원은 “공천헌금-대가성 여론조사가 사실이면, 뇌물죄 중 가장 죄질 나쁜, 수뢰 후 부정 처사 죄”가 성립한다고 역설했다. 박 의원은 “명태균을 대선 경선 이후 만난 적 없다는 윤 대통령의 해명과 달리 명태균 ‘박사’발 국정개입 의혹들로, 지난 대선이 무효화 될 수도 있는 ‘도둑맞은 대선’의 증거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개탄했다. 게다가 “대선 당일에도 핵심 참모진들과 ‘명태균 보고서’가 공유됐고, 이를 토대로 전략회의도 했다”는 내부고발(신용한 전 서원대 교수)까지 나왔다.

초등생 아이들도 익히 들었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뒤엔 이른바 ‘선수’들이 작전세력이 되어 열심히 뛰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도 특정 회사의 주가를 풍선처럼 부풀게 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뛰었다. 실속이 거의 없는, 체코 원전 수출 계약이나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사업 약속 같은 걸 받아내려 한 것이 그 증거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원전 부활을 외쳤는데, 원전 사업이 국내외에서 왕성하면 원전 부품 관련 기업인 ‘우리기술(주)’ 주가가 급등할 것이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끝나면 복구 및 재건 사업에 ‘삼부토건(주)’ 같은 회사의 주가가 급등할 것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기업들의 주가 역시 치솟을 것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관련된 선수들이나 작전세력, 그리고 ‘여사’를 포함한 쩐주들이 여기에도 다 걸쳐 있었다. 불법 투자자문사인 블랙펄인베스트먼트(BP) 대표 이종호로 상징되는 작전세력들은 도이치모터스, 삼부토건, 쌍방울 주가조작에 종횡으로 연결돼 있다. 그런 인연들이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진실도 교묘히 가렸다. (희토류 사업과 관련해) 북한과 접촉을 했던 ‘쌍방울’의 경우, 극히 고약하게도 자기들의 주가조작 사실을 숨기려고 오히려 이재명 민주당 대표(당시 경기도지사)에게 뇌물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공작을 강행하다가 오지게 들킨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부산역 인근의 전통시장, 초량시장을 방문해 시민과 상인을 응원하고 격려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2024.10.22. [대통령실] 시민언론 민들레 
 

가족 위한 비즈니스에 열중하는 검사 출신 대통령

이렇게 대통령 부부는 ‘작전세력’들과 사실상의 표리관계를 이루면서 ‘비즈니스’를 위해 수 억, 수십 억 혈세를 쓰면서 지구촌을 여행한다.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찰이 아닌, ‘비즈니스 맨’이 된 검찰 출신 대통령! 그것도 대한민국 아닌, 가족을 위한 비즈니스! 이게 자본주의요, 현 한국 자본주의 정치의 실상이다.

약 50년 전 박완서 작가의 소설 속 여성이 ‘도둑맞은 가난’을 치욕적으로 느꼈듯, 오늘의 우리 역시 ‘도둑맞은 민주’를 뼈저리게 체험한다. 이 사태, 이 배신감을 어찌해야 할까?

그런데, 흥미롭게도 1975년 1인당 국민소득이 약 600달러였고 2023년엔 3만 달러를 훌쩍 넘었으니 50년 만에 평균 50배 이상 잘 살게 되었다. 물론,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각하다. 아직도 쪼들리게 어려운 이가 많지만 평균 수준은 많이 올랐다. 50년 전 시내버스비가 15원이었는데, 지금은 1500원 가까우니 단순 물가로 100배 뛰었다. 이제 예전의 그런 가난은 민속박물관에서나 볼까 좀체 찾기 어렵다. 어렵다고들 하지만,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면 사람이 많다. 심지어 ‘명품’을 사려고 새벽부터 몰려들기도 한단다.

잘 생각해 보니, 오히려 당시 내가 자라던 가난한 달동네에서는 수돗물을 하루에 한두 시간씩만 받았고, 세숫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이웃사촌 개념이 살아 있어서 부침개 하나를 부쳐도 이웃과 오순도순 나눠 먹었다. 봄, 가을 농번기엔 학교에서 대대적으로 농촌 봉사활동을 나갔다. 옆집에 대소사, 경조사가 생기면 서로 나서서 일손을 거들었다. 당시만 해도 두레나 품앗이 문화가 살아 있었다. ‘똥물 튀는’ 변소조차 그 똥오줌을 밭에 거름으로 씀으로써 수질오염은커녕 생태순환에 기여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투고 와도 어른들이 변호사까지 붙여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가난 조금만 되찾아도 우리 삶과 민주주의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후위기와 6차 대멸종이 경고되는 현 시점에서 불과 50년 전만 돌아봐도, 오히려 저 고단하고 가난했던 삶의 방식을 조금만 고치면 지구촌을 위해 지속 가능한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싶다. 소설 속 주인공이 “그들은 겉으론 가난을 경멸하는 척 했지만 실상은 두려워했다는 걸 나는 안다.”고 했을 때 어쩌면 ‘그들’이 바로 우리가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도 우리는 도시화, 산업화, 세계화, 상업화의 과정, 즉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역설적이게도 가난도 도둑맞고 절약도 도둑맞고 마을도 도둑맞고 자연도 도둑맞았다. 그리고 이제는 대명천지에 선거도, 민주도, 혈세도, 행복도 도둑맞고 있다. 가난을 도둑맞게 된 그 흐름들(부자 중독증, 출세 중독증) 탓에 이제는 민주까지 도둑맞고 있는지 모른다. 역으로, ‘도둑맞은 가난’을 우리가 얼마나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지에 따라 ‘도둑맞은 민주’ 역시 딱 그만큼 회복될 것 같다는 특별한 느낌도 든다.

그러기 위해선 민주주의를 두려워해선 안 되듯 가난을 두려워 않아야 한다. 궁핍은 면하되, 검소하게 살며 서로 나누고 보살피며 사는 게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피터 모린(1877~1949)의 역설처럼, “아무도 부자가 되려 하지 않는다면 모두 부자가 될 것이요, 모두 가난해지려 하면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을 것”이니!                <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

대통령이 임명한 2인의 위원만의 심의·의결 문제점 지적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7월3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취임식을 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취임 직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2인 체제’로 임명한 문화방송(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의 효력을 정지하는 집행정지 신청이 2심 법원에서도 인용됐다.

서울고법 행정8-2부(재판장 조진구)는 1일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등이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이사 임명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의 집행정지 1심 결정과 관련해 방통위가 제기한 항고를 기각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가 지난 8월 이사 임명 처분 무효 확인 소송 집행정지 사건에서 새 이사 6명에 대한 임명 집행정지를 인용하며, 신임 이사들은 본안 소송이 나올 때까지 방문진 이사로의 자격과 업무가 정지됐다.

방통위가 이에 불복해 항고했지만 서울고법도 1심과 견해를 같이 했다. 재판부는 2인 의결 체제의 위법 여부가 본안에서 다툴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방통위) 상임위원 5인 중 2인이 결원인 상태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2인의 위원만의 심의·의결에 따라 방문진 이사에 대한 임명을 결정한 이 사건 임명 처분은 합의제 행정기관의 의사 및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하고 방통위법이 다루고자 하는 입법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며 “이 사건 임명 처분의 무효 확인이나 취소를 구하는 본안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존 방문진 이사진은 자리를 유지하게 됐다.

방통위는 이날 “방문진 이사 임명처분 무효 등 소송에 적극 대응하여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의결했다는 점을 소명할 것”이라며 재항고하겠다고 밝혔다.        < 한겨레  장현은  최성진 기자 >

10%대 지지율 쇼크…“윤 대통령, 법적 문제 없다고 떳떳할 순 없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씨.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이 담긴 명태균씨와의 통화 녹음 파일이 공개된 데 이어, 1일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가 20% 아래로 추락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국민의힘에선 “윤 대통령이 직접 해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이날 한겨레에 “국민들이 보기엔 대통령 당선자가 명태균씨 같은 사람과 공천 문제를 얘기하는 게 품위 없고 부적절하지 않겠냐”며 “이젠 윤 대통령이 직접 설명해야 한다. 담화문이든 대국민성명이든 발표해, 명씨와 어떤 일을 했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합당한 보수를 지급했는지 전반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부정 평가가 72%로, 취임 뒤 최고치를 찍은 점을 들어 “부정 평가는 명확하게 ‘싫다’는 거다. 이 점을 더 주목해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원들 사이에선 “윤 대통령 부부와 명태균씨 관련 의혹이 뭐가 더 나올지 두렵다”는 반응과 대통령실을 향한 불만이 쏟아졌다. ‘2021년 경선 이후 윤 대통령이 명씨와 연락하지 않았다’는 그동안의 대통령실 설명이, 취임식 하루 전날 이뤄진 통화 녹음이 공개되며 거짓으로 판명 난 탓이다. 한 초선 의원은 “사실 관계가 무엇인지는 윤 대통령만 아는 것 아니냐”며 “내용을 아무도 모르는 게 더 걱정”이라고 했다. 대구 지역의 한 의원은 “대통령실이 변명을 하면 (거짓으로 드러나) 엇박자가 되니 답답하다”며 “갤럽 조사에서 대구·경북의 직무 수행 지지율이 18%로 나온 건 정말 말이 안 된다. 이건 그냥 ‘김건희 여사가 싫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국정기획비서관 출신인 친윤석열계 강명구 의원도 이날 에스비에스(SBS) 라디오에서 “해명에 오류가 있었는데, 대통령실에서 빨리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의 대응엔 온도 차가 있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법률 관련)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게 법제사법위원회다. (법사위) 의원들 의견에 개인적으로 동감한다”고 말했다. 법사위 간사인 친윤석열계 유상범 의원은 이날 당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2022년 5월9일은 당선자 신분이기 때문에 공무원의 당내 경선 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상 저촉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한동훈 대표는 이날도 침묵을 이어갔다. 친한동훈계 지도부의 한 의원은 “우리가 검찰총장을 뽑았냐, 대법관을 뽑았냐. 대통령을 뽑은 거 아니냐”며 “(친윤계는) 왜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떳떳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저건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 뒤만 쳐다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한겨레 서영지 기자 >

국회 운영위에서 기상천외, 국민 우롱 답변


"대통령은 연락 끊었는데, 전화 와서 받은 것"
녹취록 전체 공개하자는 질문엔…묵묵부답으로

"선거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김건희 명과 연락"
지지율 질문에 정진석 "개혁신당이나 신경 써"

강혜경 "대통령 당선 후에도 계속 연락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왼쪽)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대통령 경호처 대상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2024.11.1. 연합
 

1일 국회 국회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어제 밝혀진 명태균 씨와 윤석열 대통령의 녹취록에 대해 '덕담'이었을 뿐이란 기상천외한 답변을 했다. 윤 대통령 부부와 관련된 모든 것이 '법적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윤석열 정권의 충실한 방탄이라고 칭할 만했다.

특히 국감에서는 전날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해 논란이 된 2022년 5월 9일 윤석열-명태균 통화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윤석열 대통령 : 공관위(공천관리위원회)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

명태균 : 진짜 평생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민주당 윤종군 의원은 질의를 통해 "(어제) 명 씨와 대통령의 육성 파일을 들었을 것"이라며 "대통령실은 경선 이후(2021년 10월 8일) 명 씨와 윤 대통령이 문자를 주고받은 적 없다고 했다. 그런데 (경선 이후 통화 내용이 나오니) 대통령실 입장이 녹취록 공개 이후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고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정 비서실장은 "대통령실은 경선 이후 윤 대통령과 명 씨가 교류하거나 접촉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해명했다. 이를 두고 윤 의원이 "대통령실 대응이 국민에게 진실됐다고 생각하냐"고 하니 정 비서실장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 비서실장은 "녹취록 전체를 공개하면 될까"라는 민주당 노종면 의원의 질문엔 답변을 회피했다.

'대통령실이 잘못된 해명을 한 것이 아니냐'는 민주당 이소영 의원의 질문에도 정 비서실장은 "대통령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 않냐"며 "취임식 전날 온 전화를 어떻게 다 기억하냐. 대통령실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으니 사과할 일은 아니다"라고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1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대통령 경호처 대상 국정감사에서 정진석 비서실장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등이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 씨의 녹취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2024.11.1. 연합
 

대통령실은 5월 9일 통화 내용을 두고도 '당시 윤 당선인은 공관위로부터 보고 받은 적 없다'고 해명했다. 이 의원은 "녹취록을 보면 윤 대통령이 명 씨에게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다'고 말한다"며 "대통령실이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놔야 하지 않겠냐"고 따졌다.

정 비서실장은 이에 적반하장으로 "거짓말로 단정 짓지 마라"면서 "이 의원의 개인적인 관점이다. 선거는 여러 사람이 도와주기도 하고 민원도 있는데, 그 정도의 덕담"이라고 했다.

이 의원이 재차 "김건희 씨와 명 씨의 카톡을 보면, 곧 대통령 부인이 될 김건희 씨가 명 씨를 보고 '가장 탁월하다'며 굽신거리기도 한다"고 몰아붙이자, 정 비서실장은 "작위적이고 의도적으로 아부라고 하는 것 아니냐"고 비웃었다. 그는 의원들의 질문에 '악의적'이고 '음해성'이 있다고 답변을 피하기도 했다.

정 비서실장은 김건희 씨의 국정 개입을 두고 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추궁하자, "가정으로 말하면 안 된다"며 "대통령이 정치를 안 하는 사람이라 다소 부족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선거에서 윤 대통령 가족들은 윤 대통령의 당선을 바라는 게 당연하다"며 "윤 대통령은 명 씨와 연을 끊었는데 (김건희) 여사가 그렇게 못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 여사가 권력형 비리가 있으면 사법처리하면 된다"며 "그러나 정치권이나 야권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의도적인 문제제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1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대통령 경호처 대상 국정감사에서 김건희 씨 공천 개입 의혹을 제기한 강혜경 씨가 증인으로 출석, 증언대에 서 있다. 오른쪽은 의원 질의에 답변 중인 정진석 비서실장. 2024.11.1. 연합
 

최근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20%선이 붕괴된 대통령 지지도에 대한 지적도 나왔지만, 대통령실은 전혀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은 "대통령실의 답변을 보면 지지도가 60% 정도는 되는 줄 알겠다"며 "대통령실이 이렇게 하니 지지율이 19%가 나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 비서실장은 "천 의원이 명 씨를 더 잘 알지 않냐. 개혁신당 지지율이나 신경 쓰라"며 "사과할 일 아니"라고 답해 국정감사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정 비서실장은 시종일관 윤 대통령과 명 씨가 통화한 것은 축하 전화를 피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한 것 뿐이라고 했다. 반면, 내부신고자 강혜경 씨는 "명 씨는 윤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김건희 씨와 쭉 연락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이날 국감에서는 여야가 고성을 주고 받으며 대립해 진행이 원활하지 못했다. 김건희 씨와 명태균 씨를 강제로 구인하기 위한 동행명령장 발부를 두고도 여야가 극한으로 대립했다.    < 민들레 김민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