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뺏긴 수요시위 언제까지…

 

“수요시위 보호하라” 인권위 권고 관련

서울경찰청 · 종로경찰서 “검토 중이다”

2월23일 집회 장소도 극우단체에 뺏겨

 

26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152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세계에서 유례없이 30년간 이어지고 있는 수요시위 마저 일부 극우단체들이 짓밟고 있다.

 

극우 성향 단체들의 집회 방해 행위로부터 수요시위를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권고 이후에도 경찰 대응이 달라진 게 없다며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경찰에 면담을 요청했다. 경찰은 면담 대신 정의연에 “인권의 권고 사항을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 하고 있다.

 

26일 강경란 정의연 연대운동국장은 <한겨레>에 “인권위 권고 직후 진행된 지난 19일 수요시위에서 경찰의 대응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 20일 서울경찰청장과 종로경찰서장에게 각각 인권위의 긴급구제조치 권고와 관련해 면담을 요청했으나 사실상 ‘만나지 않겠다’는 답변을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강 국장은 “종로경찰서는 ‘개별 민원이 많지만 다 들어주지는 않는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고, (우리와 면담하면) 편향적으로 비칠 수 있다’면서 서장 면담을 사실상 거절했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정의연을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들은 인권위에 자유연대 등 극우 성향의 단체들이 소녀상 인근 장소에 집회 신고를 선점하는 등 수요시위를 방해하고 있다며 긴급구제조치를 해달라고 진정했다. 수요시위는 원래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30m 떨어진 곳에서 열리지만, 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의원의 후원금 유용 의혹이 불거진 뒤 극우 성향 단체들이 2020년 5월부터 소녀상 앞에 집회 신고를 미리 하고 수요시위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17일 인권위는 경찰에 “수요집회 반대 단체에 집회 시간과 장소를 달리할 것을 적극 권유하라”고 권고했다.

 

26일 서울경찰청은 정의연의 면담 요청에 대해 서면으로 “국가인권위의 긴급구제 권고를 존중하여, 이행계획 등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조정래 종로경찰서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인권위 권고 사항을 검토 중으로 추후 (정의연에) 서면 답변을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극우 성향 단체의 집회 장소 선점으로 다음달 23일부터 수요시위는 소녀상과 더 떨어진 곳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수요시위가 진행되는 장소도 극우 단체가 미리 신고했기 때문이다. 류지형 정의연 기억교육국 팀장은 “극우 단체들이 소녀상 주변으로 집회 신고를 대부분 미리 해놓은 상황이다. 우리도 대책 마련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고대 동문 + 연수원 동기 + 5년간 함께 근무’

“재판 공정성 논란 차단 위해 회피 신청했어야”

 

요양병원을 불법 개설해 요양급여를 타간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장모 최아무개씨가 25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밖으로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 요양병원 개설 등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장모 최아무개(76)씨에게 징역 3년 실형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던 1심 판단이 항소심에서 모두 뒤집히면서 최종 판단은 대법원 손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씨 이름 일부를 따서 요양병원 이름을 짓고, 최씨 큰사위가 병원 행정원장으로 재직한 사실 등 1심에서 유죄 근거가 됐던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그렇더라도 병원 개설·운영 범행을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판단만 달리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때문에 원칙적으로 법률심인 대법원에서도 사실관계에 대한 원심 판단이 적절했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2심 판단이 극명하게 갈린 가운데 항소심 재판장과 최씨 변호인 중 한 명이 대학 동문이면서 사법연수원 동기, 같은 법원에서 내리 5년을 함께 근무했던 사이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 예규 등은 이럴 경우 재판장이 사건을 회피하도록 하고 있지만 재판은 그대로 진행됐다. 이런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검찰 역시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2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최씨 사건은 지난해 8월 항소심이 시작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1심부터 사건을 맡았던 손경식 변호사가 주로 담당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가 최씨의 보석를 허가한 직후인 지난해 9월24일, 최씨 쪽은 판사 출신인 유남근 변호사 등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 2명을 추가 선임했다. 이들은 선임 뒤 주도적으로 변호인 의견서와 변론요지서, 증거자료 등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유남근(53) 변호사는 재판장인 서울고법 윤강열(56) 부장판사와 고려대 법대 동문이다. 300명이 채 되지 않는 사법연수원 23기 동기로 1992년부터 2년간 함께 공부했다. 두 사람은 2012~13년 수원지법에서 함께 근무했다. 2014년 2월 정기인사 때 함께 서울중앙지법으로 자리를 옮겨 2017년 2월까지 3년 더 근무했다. 유 변호사는 2020년 변호사가 됐다.

 

대학부터 사법연수원, 수원지법·서울중앙지법 등 두 사람 인연이 최소 7년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법조계에서는 공정성 시비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윤 부장판사가 이 사건을 회피하거나 법원이 재배당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고법은 2016년 재판부와 변호인이 일정한 연고 관계가 있으면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고교 동문 △대학(원) 동기 △사법연수원 또는 법학전문대학원 동기 △같은 시기 재판부 또는 같은 업무부서 근무 △기타 업무상 연고나 지연·학연 등이 있는 경우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 역시 같은 규정을 두고 있다. 재판장이 개인적인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의 선임으로 재판 공정성에 대한 오해와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으며, 법원 역시 이 경우 재배당을 하도록 했다. 형사소송법도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검사 또는 피고인이 법관에 대한 기피 신청을 할 수 있고, 법관 역시 이런 사유가 있다고 사료한 때 회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6년 국정농단 관련 최순실(개명 뒤 최서원)-차은택씨 사건은 재판장과 변호인 중 한명이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이유로, 2019년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은 재판장과 변호인이 대학 동기라는 이유로 각각 재배당된 바 있다.

 

게다가 윤강열 부장판사는 윤석열 후보와도 사법연수원 동기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대선을 앞두고 국민 주목도가 높은 사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재배당 논의를 하든 회피 신청을 하든 공정성 시비를 사전에 차단했어야 한다. 재판부가 사실에 입각한 재판을 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외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사법부는 재판을 공정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들 시각에서 공정한 재판을 했다고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공보판사는 “해당 변호인이 선임되기 전 이미 공판준비기일과 1회 공판기일을 진행한 상태였다. 기일을 한 차례 진행한 뒤에는 재배당을 하지 않는 것이 내부 지침이다. 기일이 진행된 뒤 연고 관계를 이유로 재배당을 하게 되면, 일부 변호인들이 재배당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재배당 또는 회피 신청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서울중앙지검 공보관은 “수사팀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공소유지를 했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

 

항소심 재판 진행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던 유남근 변호사는 정작 취재진이 몰린 선고일 당일에는 법정에도 나오지 않았다.  손현수 기자

 

[한겨레 사설] ‘재판부 회피’ 원칙 안 지킨 윤석열 후보 장모 2심 재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장모 최아무개씨가 불법 요양병원을 개설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여원을 편취한 혐의에 대해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지난 25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심 재판부는 최씨 이름 일부를 따서 요양병원 이름을 짓고 최씨의 큰사위가 병원 행정원장으로 재직한 사실 등 1심에서 유죄 근거가 됐던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하고도 “그렇더라도 병원 개설·운영 범행을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판단만 달리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실관계는 그대로인데 재판부 판단에 따라 1·2심 판결이 정반대로 갈린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2심 재판장과 최씨 변호인 사이에 상당한 학연 및 업무상 연고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관계가 실제로 재판에 영향을 미쳤는지와는 별개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를 불러일으킬 만한 흠결이 아닐 수 없다.

 

2심 재판장인 서울고법 형사5부 윤강열 부장판사는 최씨 변호인 중 한명인 유남근 변호사와 고려대 법대 동문에 사법연수원 동기다. 더욱이 판사 출신인 유 변호사와 윤 부장판사는 2012~13년 수원지법, 2014~17년 서울중앙지법에서 5년가량 함께 근무한 사이다. 최씨 변호는 지난해 8월 2심이 시작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1심에 이어 손경식 변호사가 주로 맡았는데, 2심 재판부가 최씨의 보석을 허가한 직후인 지난해 9월 유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추가 선임됐다. 또 윤강열 부장판사는 윤석열 후보와도 사법연수원 동기이다.

 

이런 경우 재판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법관 스스로 재판에서 손을 떼는 ‘회피’나 검찰·피고인이 법관 교체를 요구하는 ‘기피’ 제도가 마련돼 있다. 형사소송법은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검사 또는 피고인이 법관에 대한 기피 신청을 할 수 있고, 법관 역시 이런 사유가 있다고 사료한 때 회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서울고법은 2016년 재판부와 변호인이 일정한 연고 관계가 있으면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고교 동문, 대학(원) 동기, 사법연수원 또는 법학전문대학원 동기, 같은 시기 재판부 또는 같은 업무 부서 근무 등 구체적 기준까지 만들었다. 실제로 변호인이 재판장과 사법연수원 동기이거나 대학 동기라는 이유로 재판부가 바뀐 사례들이 있다.

 

최씨 재판장인 윤강열 부장판사와 변호인인 유남근 변호사의 관계는 법원이 정한 회피 기준에 여러 건 해당되는데도 재판은 그대로 진행됐다. 재판부 스스로 회피하지 않았고, 검찰도 기피 신청을 하지 않았다. 검찰은 기피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수사팀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공소 유지를 했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이번처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정치적 파장이 큰 재판이라면 평소보다 철저하게 회피·기피 원칙을 적용했어야 마땅하다. 결과적으로 1·2심 판단이 극명히 달라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어야 했다. ‘재판은 실제로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공정하게 보여야만 한다’는 오랜 법 원칙에 비춰 이번 재판은 되돌아볼 대목이 적지 않다.

 

“뭉개고 봐주고”…김학의 수사 9년 ‘별장 성폭행’ 단죄 없었다

 

2013년 경찰의 기소의견 송치뒤 검찰 두차례 무혐의 결론

경찰 내부 “수사방해·봐주기” 비판…27일 고법 파기환송심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수천만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 판결로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파기환송심 판단이 27일 나온다. 2013년 법무부 차관에 임명됐다가 ‘별장 성폭행’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지 9년 만에 형사 처벌 절차가 마무리되는 셈이다. 검찰의 노골적인 뭉개기·봐주기 수사로 그를 둘러싼 의혹의 진상 규명과 단죄는 사실상 실패로 일단락될 전망이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박연욱)는 27일 오후 2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의 파기환송심 선고를 할 예정이다. 김 전 차관의 혐의는 크게 3가지다. △2006∼2008년 건설업자 윤중천씨에게 1억3천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 △2006∼2007년에는 강원도 원주 별장과 오피스텔 등에서 13차례 성접대를 받은 혐의 △2003∼2011년 사업가 최아무개씨에게 4900여만원을 받은 혐의 등이다.

 

사건은 2013년 3월 김 전 차관의 ‘원주 별장 성접대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거졌다. 김 전 차관은 의혹이 제기된 다음 날 법무부 차관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같은 달 20일 경찰 수사팀이 이 사건을 내사에서 정식 수사로 전환하자, 다음 날인 21일 김 전 차관은 전격 사퇴했다. 별장 동영상을 확보한 경찰은 그해 7월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를 특수강간 혐의 등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윤재필)는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다. “피해자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진술을 번복해 진술의 일관성이 없어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었다”는 것이 검찰이 든 이유였다. 당시 경찰 내부에서는 “사실상 수사 방해에 이은 봐주기 수사”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앞서 검찰은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신청한 김 전 차관에 대한 통신사실조회 4차례, 압수수색영장 신청 2차례, 출국금지 요청 2차례를 모두 반려했기 때문이다.

 

이후 원주 별장 등에서 성폭행 피해를 당하였다고 주장한 이아무개씨가 2014년 김 전 차관 등을 다시 고소했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해 12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강해운)는 김 전 차관에 대해 또다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수사과정에서 검찰은 김 전 차관을 소환조사 한 번 하지 않았다. 당시 수사팀은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이 이씨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피고소인 조사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기회는 2018년 4월 이후 다시 찾아왔다. 당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김 전 차관 사건을 재조사하도록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 권고하면서다. 김 전 차관은 이듬해 3월 자신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타이로 출국을 시도했으나, 법무부의 긴급 출국금지 조처에 막혀 실패했다. 이후 검찰 과거사위 권고에 따라 수사를 벌인 검찰은 김 전 차관과 윤중천씨를 2019년 6월4일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이어진 재판에서 1심은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김 전 차관에게 면소 또는 무죄를 선고했다. ‘별장 성폭행’ 의혹은 공소시효 만료로 유·무죄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수사’로 진상 규명과 단죄의 시기를 놓친 것이다. 2심 역시 김 전 차관이 2006~2008년 윤씨에게 3천여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고 별장 등에서 13차례에 걸쳐 성접대를 받은 혐의 등은 1심과 마찬가지로 공소시효가 지나 죄를 물을 수 없다며 면소 판결했다. 다만, 사업가 최씨에게 받은 4900만원 가운데 4300만원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6개월에 벌금500만원, 추징금 43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6월 윤씨와 관련한 성접대 의혹과 뇌물수수 혐의는 원심 판단에 따라 무죄와 면소를 확정했다. 그런데 2심에서 유죄로 인정한 최씨 관련 뇌물 혐의는 다시 심리하라고 사건을 파기했다. 최씨가 재판 전에 검사를 만난 뒤 법정에서 진술을 변경한 점을 문제 삼아, 검사가 최씨를 회유·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따라 파기환송심에서는 검찰이 최씨를 회유하거나 압박했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대법원 판결 직후 “증인을 상대로 한 회유나 압박은 전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지난달 최씨를 증인으로 불러 비공개로 검찰의 회유 등이 있었는지를 확인했다. 최씨가 법정에서 한 증언의 신빙성을 법원이 인정하는지에 따라 김 전 차관의 유·무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김 전 차관 사건을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환기시킨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검찰이 제때, 제대로만 수사했다면 진상 규명과 그에 대한 단죄가 이뤄졌을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검찰이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보인 행태도 문제로 지적된다. 검찰 내에서는 김 전 차관을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한 일을 두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 없다. 이 사건과 관련해 책임을 진 이도 없다. 임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2020년 10월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마땅히 있어야 할 자성의 목소리는 없다. 우리 검찰로서는 할 말이 없는 사건”이라며 반성을 촉구하는 뜻을 밝힌 글을 올린 것이 사실상 전부다.

 

다만, 김 전 차관의 기습 출국을 막은 조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았다. 정유미 광주고검 검사가 지난해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문서를 조작해서 출국금지를 해놓고 관행 운운하며 물타기 하고 있다. 내가 몸담은 20년간 검찰에는 그런 관행 같은 건 있지도 않고, 그런 짓을 했다가 적발되면 검사 생명 끝장난다”고 적은 글이 대표적이다.

 

김 전 차관에 대해 불법 긴급 출국금지를 한 의혹이 제기된 이들의 재판은 진행 중이다. 수원지검 수사팀(부장 이정섭)은 지난해 4월 이규원 당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허위공문서 작성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 검사는 2019년 3월 당시 긴급 출금 대상이 아닌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금을 강행하며, 신청서를 위조한 혐의를 받는다. 차 전 본부장은 이 검사가 보낸 요청서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도 이를 승인한 혐의와 법무부 출입국본부 직원들에게 김 전 차관의 개인 정보를 177차례 무단으로 조회하게 하고 이를 보고받은 혐의를 받는다. 수사팀은 지난해 5월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성윤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현 서울고검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손현수 강재구 기자

31일 또는 2월3일 개최…여야 4당, 전략짜기 분주

 

    대선 후보들.

 

대선 후보 간 첫 텔레비전(TV)토론이 이재명(더불어민주당)·윤석열(국민의힘)·안철수(국민의당)·심상정(정의당) 대선 후보 간 4자 토론 방식으로 오는 31일이나 설 연휴 직후인 2월3일에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법원 결정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간 양자 티브이 토론이 무산된 직후, 여야 4당은 즉각 ‘4자토론’ 준비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방송 3사가 여야 4당에 보낸 공문을 공개하며, 방송 3사가 오는 31일 오후 7~9시(120분간) 또는 2월3일(시간 미정)에 4자 토론 방식의 대선 후보 합동초청회를 열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방송3사는 이를 논의하기 위한 룰미팅 일자로 28일을 제시하며, 오는 27일까지 토론 출연 여부와 대체 가능한 날짜를 알려 달라고 각 당에 요청했다.

 

민주 · 정의 · 국민의당 “31일에 하자”…국힘 “논의 중”

 

각 정당들은 대체로 빠를수록 좋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방송토론콘텐츠단은 이날 오후 “이재명 후보는 방송3사 4자 토론 초청을 수락한다”며 “두 일정 모두 참여가 가능하나, 가장 빠른 31일에 성사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태규 국민의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도 “두 일정 언제든 좋지만 하루라도 빨리하는게 좋다”며 31일을 선택했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 역시 “심상정 후보는 제안해준 일정 모두 가능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라며 “가급적 설 연휴기간인 31일에 토론회가 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세 당은 오는 28일로 예정된 룰미팅에도 참여해 토론회 세부 실무에 관한 논의에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날 저녁까지 “내부 논의 중”이라며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이미 양자토론 논의 당시 31일을 가능한 날짜로 밝힌 데다, 법원이 지상파 방송 3사를 상대로 낸 양자 티브이 토론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직후 4자토론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이르면 31일 4자토론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국민의힘, 양자토론 무산에 내심 안도…집중 공격에 대비

 

양자에서 4자로 토론 구도가 달라지며, 토론회를 통해 ‘반등’과 ‘굳히기’를 노리던 후보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 후보가 토론 역량에 있어 우위에 있기 때문에 다자토론으로 변경된 데 따른 특별한 유불리는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선대위 관계자는 “토론을 하느냐 마느냐가 가장 큰 문제”라며 “이재명 후보는 보이는데 윤석열 후보는 보이지 않아 판단을 못 하는 상황을 빨리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양자 대결’만큼 이 후보가 두각을 나타낼 환경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아쉬움도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내심 안도하는 분위기가 있다. 윤 후보가 토론에 능한 이 후보와의 일대 일 토론이라는 위험 요소를 줄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윤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다자토론을 10여차례 치른 바 있어 양자토론에 비해 부담이 적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선대본부 관계자는 “윤 후보는 다자토론 경험이 오히려 많은데다 윤 후보 개인으로만 놓고 봤을 때는 (발언할 수 있는) 분량이 줄어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다만 국민의힘에선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시간이 줄어든데다, 최근 지지율 상승 흐름으로 윤 후보에 대한 다른 후보들의 공격이 집중될 수 있다고 보고 대비책 연구에 들어갔다.

국민의당은 안 후보가 토론회에 나서 다소 주춤한 지지율을 다시 상승세로 바꿀 것이라고 기대한다. 당 관계자는 “당연히 인용될 것으로 생각하고 토론회 준비에 임해왔다”며 “설 전에 반드시 안 후보만이 대안이라는 것을 티브이 토론을 통해 보여주겠다”고 했다. 심상정 후보는 네거티브전에 가담하지 않고 정책 역량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둔다는 방침이다. 낮은 지지율을 고려해 토론 능력을 과시하기보단 후보 자신과 정의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진정성 있게 전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정의당 관계자는 “심 후보가 중심이 돼 정책 선거와 대한민국의 비전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토론이 될 수 있도록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우삼 장나래 김영희 기자

비례 위성정당 창당 거듭 사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5일 경기도 하남시 신장시장을 방문,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5일 여권 자성론을 전면에 내세우며 수도권 표심 공략에 나섰다. 당내 쇄신 움직임과 맞물려 여권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과감하게 털어내 지지율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후보는 경기도 매타버스(매주타는 민생버스) 3일째인 이날 포천·가평·남양주·하남·구리·의정부 등 6개 시군을 훑었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하남 신장 공설시장에서 진행한 현장 연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쁜 승리보다는 당당한 패배를 선택하자. 그래야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그 길을 잠깐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더 나쁜 짓을 많이 했는데, 윤석열 검찰이 문제가 있었는데 우리의 문제가 더 큰 문제는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국민들에게 갖게 했다”며 “이런 걸 고치겠다”고 했다. 그간 당의 약한 고리로 꼽혀온 ‘내로남불’ 태도를 비판한 것이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꼼수로 창당한 것을 최대 실책으로 꼽기도 했다. 이 후보는 “정도를 갔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다고 따라 하는 바람에 제도의 본질이 사라졌다”고 했다. 이 후보는 뒤이은 의정부 시민광장 연설에서도 “집권 여당이 우리 국민들에게 환호받지 못하는 것 같다. 인재 등용, 공정성 측면에서 국민 의심 받을 만한 일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거듭 자세를 낮췄다. 이날 진행한 현장 연설의 상당 부분을 민주당의 과오를 열거하며 사과하는데 할애한 셈이다. 이날 의정부 일정에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동행했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엔 경기 포천시 농업기술센터에서 ‘5대 농업 공약’을 발표했다. 이 후보는 농어촌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지자체별 여건에 따라 60만원에서 100만원 이내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도농 간 소득 격차를 줄여 지역균형발전을 이룬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식량 안보 문제 대응을 위해 국가의 식량 자급 목표를 60%로 정하고 ‘식량안보직불제’를 도입해 밀·콩과 같은 주요 식량곡물 자급을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농지 투기 방지를 위한 농지실태 전수조사, 음식물의 유전자 변형원료 포함 여부를 고지하는 유전자변형식품(GMO) 표시제도 도입도 공약으로 제시됐다. 심우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