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 치르는 국회의원 재보선 지역

공천권 놓고 윤석열-이준석 갈등 가능성

 

지난 4일 국민의힘 당사에 들어서는 권성동 의원.

 

권성동 국민의힘 전 사무총장이 지난달 절차를 무시한 채 서울 서초갑과 충북 청주 상당 등 3·9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열리는 지역의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임명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후보 핵심 관계자)인 권 전 사무총장의 ‘월권행위’를 두고 공천권을 둘러싼 당 내홍이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1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는 서울 서초갑, 충북 청주 상당 등의 당협위원장 임명 건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최고위는 지난달 초, 오는 3월9일 대통령선거와 함께 재보선이 치러지는 서울 서초갑에 전희경 전 의원, 청주 상당에 정우택 전 의원 등을 당협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논의하다가 보류했다. 하지만 당시 사무총장이던 권성동 의원은 지난달 10일 두 사람을 그대로 임명했다. 최고위 의결 절차를 무시한 것이다. 국회의원 지역구별로 있는 당원협의회 대표자인 당협위원장은 공천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된다.

 

권 전 총장의 월권행위는 해가 바뀌어서야 드러났다. 권 전 총장이 임명한 당협위원장 가운데 한명이 지역 당원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며 자신을 당협위원장이라고 소개하는 바람에 ‘당협위원장 무단 임명’이 들통난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최고위원은 <한겨레>에 “(권 전 총장이 당협위원장을 임명한 지역은 재보선이 열리는) 주요 지역인 만큼 윤석열 대선 후보와 이준석 대표 등이 추가로 논의해 결정짓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라며 “권 전 총장이 임명한 사실이 밝혀져 너무나 황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고위는 조만간 권 전 사무총장을 불러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권 전 총장과 이 대표는 지난 6일 이철규 전략기획부총장 임명을 두고 험악하게 충돌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당시 이 부총장이 권 전 총장과 가까운 또 한명의 윤핵관이라며 임명을 반대했고, 이에 권 전 총장이 거칠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 총장의 ‘최고위 패싱’은 아슬아슬하게 봉합한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 사이의 갈등을 다시 불거지게 할 가능성이 있다. 대선과 같은 날 열리는 재보선에서 이 대표 쪽은 당헌·당규상 당 대표가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을 주도하는 만큼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려 한다. 반면, 윤 후보 쪽은 대선 ‘러닝메이트’ 개념에 부합하는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당내에선 윤핵관으로 불리는 윤 후보 쪽 진영이 재보선 공천권 행사를 위해 일찌감치 움직인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권 전 총장이 당협위원장을 임명할) 당시 상황에선 이 대표와 윤 후보 쪽이 ‘핵심 관계자’ 권한을 두고 일촉즉발 상황이었다.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협위원장 임명은) 중요한 사항도 아니고 최고위에서 다시 의결하면 된다. 당대표 쪽도 관련된 문제이고 내부에 다 조금씩 문제가 있는데 어느 일방으로 몰아세우는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는 13일께 공천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재보선 공천 문제를 본격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김미나 기자

 

유능한 행정·정책 능력 부각해 설 전까지 ‘마의 벽’ 40% 돌파

11일엔 ‘5·5·5 공약’ 뒷받침할 수치 제시해 정책적 우위 강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손실보상 사각지대 업종 소상공인들을 만나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최근 대부분의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따돌렸지만, 40%의 벽 앞에서 머뭇대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안철수 야권 단일화’ 흐름에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면, 이달 말까지 40% 초중반대 지지율을 안정적으로 굳혀 ‘설 밥상 민심’을 장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은 경제·민생 현안에 밝은, 준비된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며 대통령의 ‘자질’ 면에서 윤 후보와 차별점을 강조하겠다는 태세다.

 

9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대선 후보 지지도(7~8일 전국 성인 1001명 대상 무선 자동응답 조사,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를 보면, 이재명 후보 지지율은 37.6%로, 1주일 전보다 3.4%포인트 줄었다. 윤석열 후보도 전주보다 1.9%포인트 빠진 35.2%를 기록했다.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9.2%에서 15.1%로 껑충 뛰어올랐다. 지난 7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4~6일 18살 이상 1002명 대상,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p)에서 이 후보는 3주 연속 36%를 기록했다. 윤 후보가 1주일 만에 35%에서 26%로 주저앉은 사이, 안 후보는 5%에서 15%로 급상승했다.

 

민주당 내에선 안 후보가 윤 후보에게서 등 돌린 지지층을 흡수하고 있는데다 국민의힘 내홍이 어느 정도 수습되고 있는 국면이라, 야권의 자중지란이 이 후보의 득점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한다.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는 “부동산 정책에서 정부와 차별화하며 수도권 민심, 중도층을 공략한 행보 등이 어느 정도 실효성 있었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실용주의 노선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오락가락한다는 인상을 주게 된 점이 이 후보 대세론 형성에 일정 부분 발목을 잡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추가적인 지지율 상승세를 꾀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대선 후보’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생활 밀착형 공약부터 굵직한 경제정책까지 가리지 않고 정책 행보를 강화하며 이 후보의 중량감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 후보 쪽은 앞으로 시작될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준비된 후보라는 인식을 굳힐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4일 ‘이재노믹스’(이재명+이코노믹스)로 이름을 붙인 ‘5·5·5 공약’(국력 세계 5위, 국민소득 5만달러, 주가 5천 시대)을 발표한 데 이어, 오는 11일에는 ‘전환적 공정성장’ 담론과 5·5·5 공약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수치 등 세부적 로드맵을 제시하는 단계까지 나아간다는 계획이다.

 

또 대선 승리의 ‘필수 고지’로 꼽는 서울 민심을 계속 훑으며 주말에는 강원·제주 등 기존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 일정상 방문하지 못한 곳을 찾으면서 표심 공백을 채워간다는 방침이다.

 

이날 이 후보는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뒤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활동을 재개했다. 활동 재개 즉시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인원 제한을 적용받고도 피해보상은 받지 못한 웨딩업·전시행사업 종사자, 2차 피해를 본 식자재 납품업자를 만나는 한편, 배달·아르바이트 노동자들과 ‘국민 반상회’를 열고, 비정규직 공정수당의 전국적 확대와 분양가 상한제의 민간 도입 등의 정책 공약을 쏟아냈다. 최하얀 기자

 

이재명, 비정규직 차별 줄일 대안 “공정수당 민간 확대”

경기도지사 시절 도입한 ‘비정규직 공정수당’ 전국 확대 제안

야당 “수당공화국 만들기” “정규직-비정규직 갈라치기” 비판

전문가들 “비정규직 총량 규제 병행하면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 보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7일 오후 서울 동작구 맘스하트카페에서 열린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 국민반상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9일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공공을 넘어 민간까지 확대될 수 있도록 국회, 기업, 노동자들과 함께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에서 시행한 공공부문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고용 불안정 보상수당 제도를 확대 개편해 전국에서 시행할 방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재명 정부는 경기도 ‘비정규직 공정수당’ 성과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겠다”며 8번째 ‘명확행’(이재명의 확실한 행복) 공약을 소개했다. 그는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상식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안정·저임금의 중복차별에 시달리고, 임금 격차로 인한 일자리 양극화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공약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공약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 시절 도입한 비정규직 공정수당 제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경기도와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이 고용한 기간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 제도는, 근무기간이 짧을수록 더 많은 보상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시행 첫 해인 2021년 기준 2개월 이하 기간제는 기본급의 10%(평균 33만7천원 만기 일시지급)를, 4개월 이하는 9%(70만7천원), 6개월 이하는 8%(98만8천원), 8개월 이하는 7%(117만9천원), 10개월 이하는 6%(128만원), 12개월 일한 경우 5%(129만1천원)를 기존 급여에 추가로 지급했다. 경기도는 2022년 공정수당은 전년보다 5.7% 인상해 지급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어려운 여건과 경제성장률 등을 고려한 결정이다.

 

이런 보상수당은 현행법에 따라 1년 미만으로 일한 노동자들에게는 퇴직금이 지급되지 않는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 통상 노동자들은 1년 일하면 한달치 급여가 퇴직금으로 적립된다. 그러나 1년 미만의 경우 사용자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탓에,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11개월짜리 기간제 노동자들을 늘리는 등 폐해가 컸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우리소극장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손실보상 사각지대 소상공인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경기도의 비정규직 공정수당은) 퇴직금 차별을 최소화하자는 것에서 출발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며 제도 자체를 확대 개편할 의지도 밝혔다.

 

이 후보의 비정규직 공정수당 확대 추진에 야권에선 “수당공화국”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라치기”라는 비판을 내놨다. 황규환 국민의힘 선대본부 대변인은 이날 “코로나 방역에는 재난지원금, 양극화 문제에는 기본소득, 이외에도 온갖 수당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 후보의 인식이 개탄스럽다”며 “대한민국을 수당 공화국으로 만들셈이냐”고 논평을 내놨다. 윤영희 국민의당 중앙선대위 부대변인도 논평을 내어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차별은 철폐돼야 마땅하나 이 후보는 차별과 차등 개념을 교묘히 섞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치기 하며 표 계산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이런 비판을 인식한 듯 “(공정수당 도입 당시)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규직=높은 안정성과 고임금’이라는 기존 시스템에 반하는 일이었고, 대한민국에서 처음 시행하는 제도였기에 우려가 컸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손 놓고 있기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며 “공공부문에서 먼저 시작하고, 민간에 확장되도록 인센티브 등을 줘서 정착이 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도 완화되고 기업 입장에서도 오히려 고용 유연성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비정규직 공정수당 제도가 무분별한 비정규직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과 적절히 맞물려 돌아간다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될 것으로 본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실제로는 비정규직의 업무가 정규직과 다를 바 없이 중요한 일인데도 사회적으로는 보잘 것 없이 여겨지는 불합리한 인식이 공정수당 제도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상시·지속 업무는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는 원칙을 명확하게 하고, 기간제법 보완 등을 통해 비정규직 총량 규제를 현실에 맞게 강화하는 방안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심우삼 최하얀 기자

 

이재명, 여가부 폐지론에 “한쪽 편들면 안 돼”

2030남성 반페미니즘 정서 의식

정면 비판 대신 수위 조절 나서며

‘젠더 갈라치기’ 비판 입장 밝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9일 오후 거리에서 시민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9일 “기성 세대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한쪽 편을 들면 안 된다”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에둘러 비판했다. 2030 남성들의 ‘반페미니즘 정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젠더 갈라치기’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배달·아르바이트 노동자들과의 ‘국민반상회’에서 “성평등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여성’가족부라 하지 말고,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는 것을) 전에 발표했다”며 “평등의 가치는 어느 영역에서나 중요하고, 어느 누구도 억울하지 않게 국가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발언을 겨냥한 것이다. 다만 이 후보는 “기성세대 내의 페미니즘 문제는 상당히 타당성이 높은데 청년대 간에는 페미니즘이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면서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으면 내가 둥지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이 됐는데, 그러한 극한적인 갈등 상황이 그들(청년)의 잘못은 아니지 않냐”고도 했다.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이대남 정서’를 의식해 젠더 논쟁에서 한발짝 비껴난 태도를 취한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강화’라는 7글자를 올리고 “청년을 성별로 갈라치고,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 후보에게 지도자로서 자각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강력히 비판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민주당도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주장에 대해 사흘째 당 차원의 입장이나 논평을 내지 않는 등 조심스런 모습이다. 민주당은 윤 후보가 추가 대책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 구호만 외쳤다는 점에서 젠더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 보고 있다. 섣불리 대응에 나서 갈등 전선을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특히 이번 대선의 승부처로 2030세대가 꼽히는 상황에서, 이른바 ‘이대남’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여가부 폐지 주장에 섣불리 반대했다가 ‘젠더 논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갈등을 유발하면서 지지를 획득하는 방식의 정치는 지양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쪽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윤석열의 여가부 폐지와 심상정의 여가부 확대 논쟁은 그런 측면에서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도 “윤 후보가 페이스북에 7글자만 써서 생산적이지 못한 논쟁만 촉발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대응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했다.

 

다만 그간 ‘여성의 권익 향상’을 강조해 온 민주당의 기조를 고려할 때, 당이 과도하게 이대남 눈치를 본다는 지적도 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이대남의 표심이 과대대표되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눈치보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젠더 갈등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라면, 대선 후보는 조정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여가부의 설립 취지가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지막지하게 폐지하자는 사람도 문제지만, 눈치보고 회피하는 당의 태도도 당당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심우삼 최하얀 기자

 

이재명 “분양가 상한제 민간에도 도입…원가 공개해 인하 유도”

다양한 주택유형으로 입주자 선택권 확대 공약

“신도시뿐 아니라 기존 도심지도 분양형 공공주택 공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9일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에도 도입하고, 분양 원가 공개를 확대해 분양가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9일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에도 도입하고, 분양 원가 공개를 확대해 분양가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5번째 ‘무한책임 부동산 공약’을 통해 공개하며 “시장 수요를 고려한 질 좋고 값싼 주택 제공, 실수요층의 주택구입에 필요한 자금 제공에 총력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부담 능력과 선호에 따라 선택 가능한 공공주택을 다양하게 공급하겠다”며 구체적으로 △평생 거주 가능한 ‘임대형 기본주택’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는 ‘건물분양형 기본주택’ △소유 지분을 적립하는 ‘지분적립형 주택’ △분양전환가격을사전에 확정해 일정 기간 임대 후 분양하는 ‘누구나집’ △주택가격 상승분을 공공과 공유하는 ‘이익공유형 주택’ 등을 제시했다. 이 후보는 “이런 다양한 주택 유형으로 입주자의 선택권을 대폭 넓히겠다”며 “신도시뿐만 아니라 기존 도심지에도 분양형 공공주택을 충분히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무주택자와 서민, 실수요자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 공약도 내놓았다. 생애최초주택 구입자를 비롯한 서민·실수요자들이 더 낮은 금리의 금융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정책 모기지’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서민·실수요자의 금리상승에 따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고금리 변동금리 대출을 저금리 고정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대출전환 프로그램도 새롭게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아울러 취약계층에 대한 전세 대출한도 상향 등 공적 보증을 확대하는 한편, 잔금 대출이나 전세 대출 중단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특히 청년층의 주거복지 지원을 위해 미래소득을 고려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하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최하얀 기자

‘여수 멸치’ 인증 사진 올리고 “달파멸콩”

‘멸공’ ‘문파’ 정치적 해석…최재형·김진태 등도 가세

“중국 관련 기업 입장 생각해 봤나” 비판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8일 오후 이마트 이수점에서 장을 보고 있다. 국민의힘 제공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에스엔에스(SNS) 상에서 시작된 ‘멸공’(공산주의 세력을 멸함) 논란이 난데없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 8일 신세계 대형마트인 이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멸공’을 상징하는 식품을 구입한 데 이어, 나경원 전 의원이 멸치와 콩 구매 인증샷 올리기에 가세했다. 여권에선 색깔론을 부추기는 듯한 이런 행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8일 낮,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는 윤석열 대선후보가 이날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며 밥상 물가와 방역패스 문제 점검에 나섰다고 밝혔다. 윤 후보가 찾은 대형마트는 이마트였고, 공개한 사진에는 윤 후보가 여수멸치와 약콩 등을 고르는 모습이 담겼다. 이후 윤 후보 개인 인스타그램에는 장보는 사진과 함께 해시태그로 ‘#달걀 #파 #멸치 #콩’이라고 적었다. 정치권에서는 “윤 후보가 최근 ‘멸공’ 논란에 휩싸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우회적으로 지지하기 위해 이 같은 장면을 연출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에이아이(AI) 윤석열’은 해당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윤석열 공약위키’ 누리집에 공개된 ‘에이아이 윤석열’은 이날 ‘이마트에서 장을 잘 봤느냐’는 질문을 받고 “장보기에는 좀 진심인 편”이라며 “윤석열은 이마○, 위키윤(AI 윤석열)은 쓱○에서 주로 장을 본다. 오늘은 달걀, 파, 멸치, 콩을 샀습니다. 달파멸콩”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친문 세력을 연상시키는 ‘달파’라는 용어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언급했던 ‘멸공’ 주장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이날 장보기가 의도적인 행보였다는 해석에 쐐기를 박았다.

 

                 나경원 전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윤 후보에 이어 나경원 전 의원도 8일 페이스북에 이마트에서 장 보는 사진을 여러장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오늘 저녁 멸치, 약콩, 자유시간 그리고 야식거리 국물 떡볶이까지 (샀다)”며 “공산당이 싫어요가 논란이 되는 나라는 공산주의국가 밖에 없을 텐데. 멸공! 자유!”라고 적었다.

 

나 전 의원에 이어 이날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인스타그램에 멸치와 콩을 반찬으로 한 아침식사 사진을 올렸다.

 

당 이재명비리국민검증특위위원장인 김진태 전 의원도 페이스북에 “윤 후보는 이마트에서 달걀, 파, 멸치, 콩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아예 “문파멸공. 다함께 멸공 캠페인 어떠냐”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김연주 부대변인도 이마트에서 장 보는 영상을 에스엔에스에 올리며 “주말엔 달파멸콩”이라고 적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9일 인스타그램에 멸치와 콩을 반찬으로 한 아침식사 사진을 올렸다. 최 전 감사원장 인스타그램 갈무리

 

누리꾼들 사이에선 윤 후보와 나 전 의원이 모두 ‘여수’ 지역 멸치를 들고 있는 것 또한 의도가 있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여권에서는 윤 후보 등의 이런 행보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9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국힘 대선 후보와 정치인들의 ‘달-파-멸-콩’ 일베 놀이. 뿌리가 어디인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멸공’ 퍼포먼스에 왜 하필 ‘여수멸치’냐. 70여년 전 여수에서 ‘멸공’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학살이 이뤄졌는지 아느냐. 우리 집안에도 피해자가 있었다”라고 적힌 글을 리트위트하기도 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이 ‘멸치콩’을 들었기에 나는 왼손에 파를 들었다. 좌파”라는 글과 함께 왼손에 파를 든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태년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 부회장을 향해 “신세계는 앞으로 중국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본인의 그런 한 마디가 중국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수많은 우리 기업과 종사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라”고 경고했다.

 

앞서 정 부회장은 지난 6일 인스타그램에 ‘한국이 안하무인인 중국에 항의 한 번 못한다’는 제목의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기사 갈무리 화면을 올린 뒤 ‘멸공’ ‘승공통일’ ‘반공방첩’ 등의 해시태그를 달았다. 정 부회장은 이보다 앞서 인스타그램이 ‘멸공’ 태그가 붙은 자신의 게시물을 ‘폭력·선동’이라며 삭제한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은 이후 ‘시스템 오류’였다며 삭제된 게시물을 하루 만에 복구했다. 김미나 기자

 

영결식 11일 엄수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으로

 

11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이자 `민주화 운동가' 고 배은심 여사의 노제를 겸한 영결식이 11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엄수됐다. 이날 노제 겸 영결식은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은 아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민주화운동 중 경찰의 최루탄에 숨진 뒤 민주화·인권 운동 등에 헌신해왔다.

 

이날 오전 10시께 빈소가 차려진 광주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의 발인을 시작으로 유해는 5·18 민주광장으로 운구됐다. 장례위원회가 애초 계획했던 5·18 민주광장까지의 도보 운구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취소됐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추도사를 통해 “87년 잔인한 국가폭력에 사랑하는 아들을 앞세워 보내야 했던 어머니는 한평생을 편한 집 대신 비바람 몰아치는 거리로 나서야 했다”며 “약자를 품어 안은 시대의 어머니셨다. 이 땅의 수많은 민주시민은 어머니의 강인한 눈빛과 따뜻했던 품을 기억할 것”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유가족을 대표해 고인의 장녀인 이숙례씨는 “엄마가 내 엄마여서 행복했다. 고맙고 사랑한다”며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영결식을 마친 배 여사의 유해는 지산동 자택을 들른 뒤 망월동묘역 8묘원에 안치됐다. 장지는 1999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고 이병섭씨 바로 옆이며, 아들 이한열 열사가 묻힌 옛 망월동 5·18 묘역(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직선거리로 1㎞ 정도 떨어져 있다. 김태형 기자

 

11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영결식에 앞서 상영된 추모 영상 중 고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 직후 사진이 보이고 있다. 광주/김태형 기자

11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광주/김태형 기자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사회장이 열린 11일 오후 광주 민족·민주열사 묘역(5·18 옛 묘역)의 이 열사 묘소에 배 여사의 영정과 훈장이 놓여 있다. 고인의 유해는 이 열사의 묘지를 들러 광주 망월묘지공원 8묘원으로 옮겨져 남편 고 이병섭(1999년 4월 별세)씨 곁에 안장됐다. 아들 묘에선 직선거리로 1㎞ 남짓 떨어진 곳이다. 광주/연합뉴스

 

“‘만인의 엄마’로 살아준 엄마 감사해요”…배은심 여사 눈물의 영결식

 

 11일 오전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겸해 열린 고 배은심 여사의 영결식에서 장녀 이숙례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만인의 엄마’로 자리 잡은 것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엄마가 내 엄마여서 행복했습니다. 이제 아버지도 만나시고, 한열이와 영면하세요. 삼일동안 장례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1일 오전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겸해 열린 고 배은심 여사 영결식에서 장녀 이숙례씨가 인사말을 했다. 5남매의 장녀인 이씨는 지난 9일 황망하게 세상을 뜬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는 “오늘 눈도 내리고 춥네요, 엄마.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분이 모여 있어요. 항상 엄마 마음을 아리게 했어요. 아들 가슴에 묻고 35년을 사셨던 엄마. 아들 보고 싶어 부르던 피맺힌 절규도 이젠 들을 수 없겠네요”라며 눈물을 훔쳤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로 평생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시대의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 영결식이 치러진 광장엔 유가족과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10시30분께 빈소가 차려진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노제가 열리는 5·18 민주광장으로 유해를 운구했다. 노제에선 연세민주동문회 이인숙 회장이 고인의 연보를 낭독했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1987년 6월9일 아들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7월5일 숨진 뒤, 민주·인권운동에 헌신해 민주화 운동가로 거듭났다. 배 여사는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시술을 받은 뒤 퇴원했지만, 사흘 만에 다시 쓰러져 회복하지 못했다.

 

11일 오후 고 배은심 여사의 유해가 광주 망월묘지공원 8묘원에 안장돼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한동건 상임장례위원장(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 인사말에 이어 생전 배 여사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배 여사는 생전 영상에서 “다시 천막을 치는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천막을 쳤습니다”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생전 고인의 가장 큰 바람은 민주유공자법이 통과되는 것이었다. 민주유공자법은 민주화 운동 참가자 예우를 담은 법안은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처리는 무산돼 온 법안이다. 1960~90년대 말까지 민주화운동 참가자를 민주유공자로 인정하고 교육·취업·의료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어 한국진보연대 김재하 대표와 이용섭 광주시장, 광주전남추모연대 박봉주 공동대표가 추도사를 했다.

 

11일 오전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겸해 열린 고 배은심 여사의 영결식이 노제와 겸해 열리고 있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망월동 옛 5·18묘지에 있는 아들 이한열 열사의 묘지를 들러 광주 망월묘지공원 8묘원으로 옮겨져 남편 고 이병섭(1995년 10월 별세)씨의 곁에 안장됐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했던 아들의 묘에선 직선거리로 1㎞ 남짓 떨어진 곳이다. 이 묘역은 이 열사의 묘소를 마주 보고 있다. 정대하 기자

 

“한열이 문 열고 들어올까”…고 배은심 여사 집 ‘역사교육관’ 조성될까?

 

 1987년 6월항쟁 도화선이 됐던 고 이한열 열사가 살았던 집.

 

지난 10일 오후 찾은 광주시 동구 지산동 고 배은심 여사의 집 안팎엔 적막 만이 흘렀다. 마당 한쪽으로 오래된 호랑가시 나무가 겨울 볕을 받아가며 집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1987년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 이한열 열사가 네살 때인 1970년부터 살던 집을 어머니는 평생 지켰다. 최근 집을 수리하면서 큰길로 새 문을 냈지만, 옛 작은 문은 그대로 뒀다.

 

지난 8일 고인이 세상을 뜨기 직전 이 집을 찾은 김순 광주전남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은 “어머니는 항상 ‘아직도 한열이가 집 문을 열고 금방 들어올 것 같다’고 하셨다”며 “‘왜 집에 와서 밥을 먹지 그랬냐’고 하시며 정겹게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이렇게 황망하게 가실 줄 몰랐다”고 말했다.

 

고 이한열 열사가 자랐고 배 여사가 50년 남짓 살았던 지산동 집이 앞으로 ‘역사 교육관’으로 조성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고 이한열 열사가 살았던 집 한쪽에 있는 옛 대문.

 

임택 동구청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역사적인 공간이 사라지지 않도록 이한열 열사가 성장했던 331㎡규모의 집과 터를 매입해 추모와 민주·인권·평화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배은심 여사와 상의해왔다”며 “어머니가 지난해 9~10월께 거의 결심을 굳히시고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 등을 듣고 싶어 하셨는데 갑자기 별세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동구는 지난해 고 이한열 열사의 집과 인근 ‘시인 문병란의 집’, 고 오지호 화가 생가 등을 이어 2.6㎞ 길이 ‘뜻 세움길’을 조성했다. 고인은 동구에서 자택을 역사공간으로 활용하려는 계획과 관련해 ‘아들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점때문에 주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순 집행위원장은 “어머니도 (그 집에서) 머무를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셨는지 역사공간 만드는 일을 진행하자고 하셨지만, 공간을 만들면 일단 그 집을 비워줘야 하니까 결심이 쉽지 않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며 말을 아꼈다.

 

                                 김순 광주전남추모연대 집행위원장.

 

고인은 아들이 경찰의 최루탄에 피격당했던 1987년 6월9부터 세상을 떴던 7월5일까지 일을 파노라마처럼 기억했다. 그리고 해마다 그 시간이 오면 극심한 고통을 앓았다. 고인은 2017년 3년상을 치르는 세월호 유족들에게 “여러분은 3년이 됐는데 난 30년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다’고 하는데 30년이 되도 똑같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슬픔을 딛고 전국 곳곳의 민주화 시위와 사회적 약자의 집회에 참여했다. 그것이 아들의 뜻을 잇는 길이라고 여겼다. 김순 집행위원장은 “따뜻한 성품이시지만, 원칙을 어기는 법이 없으셨다. 추모회 일로 출장을 가면서 시외버스 프리미엄 좌석 표를 샀다가 혼난 적이 있을 정도로 폐끼치는 것을 싫어 하셨다. 고인의 생전 마지막 염원은 민주화 유공자 예우법 통과였다”고 기억했다.

 

     고 이한열 열사의 묘.

 

한편, 고인은 11일 광주 망월묘지공원 8묘원 남편 고 이병섭(1999년 4월 별세)씨의 옆에 안장된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했던 아들 이한열 열사의 묘가 있는 망월동 옛 5·18묘지에서 1㎞ 남짓 떨어진 곳이다. 정대하 기자

 

한열 동산’ 모인 시민들, ‘민주화 운동가’ 배은심 여사를 기억하다

추위에도 300여명 모여 추모

 

10일 연세대학교 이한열 동산에서 열린 배은심 여사 추도식에서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30년을 살다 보니까 이렇게 왜 살고 있지? 내가 나한테 물어보고도 싶고 괴롭습니다…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노랑옷 가족이 돼버렸네요. 그래서 가족의 힘으로 이 나라가 조금 밝아질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 경험입니다. 우리 애기들의 모습 잊지 마시고. 그 모습 잊지 않으려고 (나는) 30년 동안 대중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의 추도식이 시작되기 전, 배 여사의 생전 육성이 울려 퍼졌다. 2017년 5월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주 5·18 국립묘지를 찾았을 때 남긴 메시지다. 10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 마련된 ‘한열 동산’에서 이한열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배 여사의 추도식에는 추운 날씨에도 3백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켜고 자리를 지켰다. 한 손엔 핫팩, 한 손엔 추도사가 인쇄된 종이를 들고 선 이들은 20대 청년부터 머리가 희끗한 50대, 60대 장년까지 다양했다.

 

 1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 동산’에서 열린 고 배은심 여사의 추도식에 참여한 시민들.

 

추도식은 야외에서 한 시간가량 진행됐지만 이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묵념을 하거나 “세월이 이렇게 갔구나”라며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6월 합창단 등이 준비한 추모의 노래를 끝으로 추도식이 끝나자 참석자 모두 나와 흰 국화를 헌화했다.

 

이날 추도사를 낭독한 김거성 전 이한열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배 여사의 생전) 사진을 찾으려 사진첩을 뒤적여봤다. (하지만) 2020년 6월 대통령에게 모란장을 받을 때에도 사진엔 어머니의 마음속 그늘이 찍혀 나왔다. (2020년 6월9일) 경찰청장이 찾아와 용서를 구할 때에도 어머니는 ‘33년이 지났어도 나한티는 87년 그날이여. 그래서 마음이 아퍼요’라고 말하셨다”고 했다. 그는 “그 아픔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해맑은 웃음 (찾으실) 그날 위해 다시 다짐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청년들도 배 여사를 추모했다. 연세대 학생들이 이한열 열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단체 ‘열의걸음’ 강새봄 대표는 추도사에서 “5·18 역사공부를 해 본다고 5월 광주를 찾아가면 (배 여사는) 무더운 날씨에도 지친 몸을 이끌고 버선발로 달려오셨다”며 “배은심 어머니와 이한열 선배, 그리고 다른 열사분들이 바라던 세상은 지금 모습이 아닐 것이다. 열사들이 물려주신 유산은 어떤 시련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였다. 우리 시대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청년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이한열 장학생’, 6·10항쟁 참여 시민도 “뜻 잇는 분, 많이 있으니…”

배은심 여사 서울 분향소 마련

추모하는 시민들 방문 이어져

 

 10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 기념관에 차린 배은심 여사 분향소. 오른쪽으로 이한열 열사의 사진이 보인다. 연합뉴스

 

“이한열군이 숨졌을 때 20대 직장인이었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서 6·10항쟁에 참여했어요. 엄마가 돼보니 자녀가 먼저 죽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같아요. 배은심 여사께서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직접 왔어요.” (경기 부천 63살 황영희씨)

 

10일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서울 분향소가 차려진 마포구 노고산동 이한열기념관에는 그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하루종일 계속됐다. 이한열기념사업회 등은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를 꾸려 배 여사의 빈소가 차려진 광주 조선대병원 장례식장 외에 이한열기념관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분향소를 찾은 이들은 어머니에서 ‘민주 투사’로 살아가며 한국 현대사에 발자국을 남긴 배 여사의 삶을 되짚으며 그의 마지막을 추모했다. 신영옥(65)씨는 “이한열 열사의 관에 쓰러지듯 엎드려 오열하던 여사님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문진수(59)씨는 “배은심 여사는 인생 자체가 헌신이며 이 시대의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마음의 평안을 얻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백송이(21)씨는 “대학 역사동아리 친구들 네 명이 함께 조문왔다. 그간 많이 힘들게 지내셨을 것 같아서 수고하셨다고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이한열 장학생’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2009년부터 학기마다 10명 안팎의 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분향소 자원봉사자로 온 김평강(26)씨는 “장학금을 받게 돼 저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배 여사를 두어번 뵀는데 차분하면서 올곧으신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따뜻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며 “배 여사가 떠나게 돼 먹먹하지만 슬퍼 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분의 뜻을 잇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진리(37)씨는 “힘들었을 때 장학금을 받게 돼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많은 시민들이 빈소를 찾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배 여사를 ‘늘 곁에 있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최수동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전 회장은 “배 여사님께서 민주화 관련 행사마다 참석하셨다.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짠했다”고 했다. 정명호 한국전쟁유족회 상임대표는 “두 달 전 집회에서 마지막으로 뵀다. 좋은 일,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오시던 분이다. 정정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이날 오후 5시 현재 분향소에는 150여명의 시민, 정치인들이 찾았다. 이주빈 기자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한열 동산’.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에서 꽃을 올려놓았다.

 

배은심 여사 조문 온 윤석열에 대학생들 거센 항의시위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10일 배은심 여사 빈소 찾아 조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대학생들의 항의를 받으며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배은심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조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장례식장 들머리에 나와 있던 장례위원들은 장례식장에 도착한 윤 후보에게 “어머님이 마지막까지 외쳤던 것이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라는 목소리였다”며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윤 후보는 “법안 내용과 경위를 잘 모르다보니 제가 (서울) 올라가서 그 부분은 원내지도부에게 검토를 요청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장례위 관계자는 “정말 부탁드리겠다. 어머니 마지막 소원이셨다”라고 재차 당부했다. 윤 후보는 이후 빈소를 찾아 헌화와 분향을 마치고 배 여사의 아들 이훈열씨를 위로한 뒤 장례식장을 나섰다.

 

윤 후보가 조문하는 동안 장례식장 주변에서는 진보 성향 대학생 단체 회원들이 조문 반대 항의가 이어졌다. 이들은 “전두환이 5·18빼고 정치를 잘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추모를 하냐, 어떻게 열사를 기억하냐”고 외치고, `민주화운동을 정치적 홍보용으로 여기지 말라', `당신에게 필요한 건 멸콩 아닌 열공' 등의 손팻말을 든 채 거세게 항의했다. 김태형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0일 오후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고 배은심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대학생 진보 단체들의 시위인파 가운데로 장례식장을 향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배은심 여사 빈소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한 시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 별세…아들 이어 민주투사로

“민주주의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돼 왔다”

 

 고 이한열 열사의 34주기 추모행사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열린 지난해 6월9일 오후 배은심씨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도화선이 됐던 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9일 별세했다. 향년 82.

 

배 여사는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전날 퇴원했다. 퇴원 후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건강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으나 하루 만에 다시 쓰러졌다. 가족이 배 여사를 발견하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으나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아들 뜻을 이어받아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투쟁해 온 배 여사는 아들이 떠난 지 35년 만에 아들 곁으로 갔다.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이 모두 병원에 도착하는 대로 부검 여부 및 장례 절차 등을 결정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1987년 6월9일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6월 민주항쟁의 불길이 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아들의 죽음은 배 여사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평범한 주부였던 배 여사는 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배 여사는 ‘한열이의 이름으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 참여해 전태일 열사 어머니 고 이소선(1929-2011) 여사와 박종철 열사 아버지 고 박정기(1928-2018)씨 등과 함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시위와 집회가 열리는 현장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힘을 보탰다.

 

배 여사는 유가협 회장을 맡아 1998년부터 422일 동안 국회 앞 천막 농성을 벌여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2019년에는 용산참사 소식을 듣고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아 힘을 보탰다. 배 여사는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6월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고 이소선 여사 등과 함께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배 여사는 훈장을 받는 자리에서 ‘서른세 번째 6월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전하기도 했다.

 

배 여사는 앞서 2018년 6월 이 열사가 다니던 연세대학교와 이한열기념사업회가 함께 주관해 연세대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31번째 추모제에서 “민주주의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되어 한 발짝씩 온다. (열사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 믿는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허호준 기자

 

광주 고 배은심 여사 장례식장, 문재인 대통령 직접 조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조문

‘1987’ 강동원 “이렇게 다시 봬서 안타깝다”

영화 <1987> 이한열 열사 연기한 강동원 배우 조문 눈길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 우상호 의원 등 각계 인사들도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열사를 연기했던 배우 강동원씨가 9일 광주 조선대병원장례식장을 찾아 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를 추모하고 있다.

 

“함께 투쟁하고 슬픔을 공유했던 어머님들이 한두분씩 세상을 떠나니 마음이 아프다. 항상 투쟁에 앞장섰던 배은심 여사도 어찌 다 잊고 가셨겠냐. 부디 하늘에서 한열이와 잘 있기를 바란다.”

 

9일 오후 3시께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의 빈소가 차려진 광주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오영자(79) 여사는 “하나둘씩 이렇게 세상을 떠나버리면 서러워서 어떻게 사냐”며 통곡했다. 오 여사의 딸 박선영 열사는 서울교대 2학년 때인 1987년 2월 전두환 정권과 비민주적 학사 운영을 규탄하며 산화했다.

 

이날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들과 장례식장을 찾은 오 여사는 “이소선 여사와 배 여사 등 가족을 잃은 우리는 서로 마음이 통하며 30여년간 함께 투쟁했다. 아직 떠날 시기가 아닌데 이렇게 가버리니 원통하다”고 말했다.

 

박관현 열사 누나 박행순(73)씨도 “아들을 잃은 배 여사님은 아들 몫까지 한다는 마음으로 민주화 투쟁에 항상 앞장섰다. 역사의 큰 틀을 만드는 데 아들이 역할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엄마로서 정말 손색없이 살아가려면 뭐든지 열심히 하셨다”고 기억했다.

 

이날 오후 4시50분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도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2020년 6월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배 여사의 공로를 인정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었다. 또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 의원, 정세균 전 총리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도 조문했다.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열사를 연기했던 배우 강동원씨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강씨는 “영화 촬영 이후에도 배 여사님에게 자주 연락을 드렸다. 이렇게 다시 뵙게 돼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날 밤 8시20분께 빈소를 찾아 “세상 일 다 잊고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앞서 오후 6시께에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들러 “늘 거리에서 뵙던 어머님이 없어 허전할 것 같다. 온몸으로 실천하셨던 민주주의를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이한열열사기념사업회, 유가협, 광주전남추모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날 ‘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광주에서 삼일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서울에는 별도로 분향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각계 추모성명도 이어지고 있다. 광주진보연대와 민주노총 광주본부, 이용섭 광주시장 등은 각각 이날 성명을 내어 고인의 안식을 기원했다. 김용희 기자

 

문 대통령 “배은심 여사 헌신이 오늘민주주의를 만들어”

광주 장례식장 찾아 직접 조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9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한열 열사 모친 고(故) 배은심 여사의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고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 빈소를 조문하고 “6월 민주항쟁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와 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간 배은심 여사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광주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배은심 여사 빈소를 찾아 유가족과 호상을 맡은 우상호 국회의원에게 “고인의 평화와 안식을 기원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들에게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냐”고 위로를 건넸고, 유가협 어머니들은 “이렇게 아픔을 어루만져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장례식장을 찾아 8분 동안 머물렀다.

배은심 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시민사회단체의 원로들이 고문단을 맡고 오랜 인연을 이어온 우상호 의원이 호상을 맡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20년 6월 10일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에서 배은심 여사에게 민주화 공로를 인정하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직접 수여한 바 있다. 이완 기자

 

“민주주의의 어머님 편히 쉬시라” 정치권 일제히 추모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열린 ‘한열이를 살려내라’ 조형물 제막 및 이한열 열사 33주기 추모식에서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종근 기자

 

1987년 6월 민주항쟁 도화선이 됐던 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9일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요 대선 후보들과 정치권이 일제히 애도의 메시지를 내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6월의 어머님, 민주주의의 어머님인 배은심 여사께서 아들 이한열 열사의 곁으로 가셨다”며 “오직 민주주의 한 길 위해 노력하셨던 어머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비통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다”고 추도의 글을 올렸다. 그는 “숱한 불면의 밤을 수면제를 쪼개어 드실지언정 전국민족민주열사유가족협의회의 일이라면 전국을 다니셨고, 이한열 열사 추모식과 6월 항쟁 기념식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참석자들 한분 한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회고하며 “이제 남은 일은 걱정마시고 이한열 열사와 함께 편히 쉬시라”고 적었다. 아울러 “어머님의 뜻을 가슴 속에 깊이, 단단히 새기겠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반드시 지켜가겠습니다”고도 덧붙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도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분들과 이한열기념사업회 여러분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는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 윤 후보는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께서는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지난 35년간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해오셨다”며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이한열 열사와 배은심 여사님의 그 뜻, 이제 저희가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한열의 어머니’이자 ‘우리의 어머님’이신 배은심 여사님의 명복을 빈다”는 추모의 글을 냈다. 안 후보는 “어머님은 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더 많은 우리의 아들딸들이 똑같은 희생을 당하지 않도록, 집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한걸음에 달려가서 우리 아들딸들을 지켜주셨다”며 “‘이한열의 어머님’에서 ‘우리의 어머님’으로 ‘더 큰 자녀 사랑’을 실천하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내 자식에 대한 사랑을 대한민국 미래세대 모두에 대한 더 큰 사랑으로 승화시키셨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숭고한 정신과 꼿꼿함을 우리 모두에게 남기셨다”며 “어머님의 뜻을 잊지 않고 깊이 새기면서 살겠다”고 했다.

 

정의당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어 “6월의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는 이한열 열사 사망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오셨다”고 추모했다. 이어 “고인의 삶을 추모하며 우리 사회의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발걸음을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최하얀 기자

 

“아들아, 엄마가 갚을란다” 배은심 여사 별세…각계 애도 물결

“민주주의는 피와 땀과 눈물이 범벅돼 한 발짝씩 온다”

 대선 후보 등 정치권·시민사회 애도 물결 이어져

 

고 이한열 열사의 34주기 추모행사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열린 지난해 6월9일 오후 배은심씨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제 다 풀고 가거라. 엄마가 갚을란다. 한열아! 한열아! 가자, 우리 광주로!”

 

1987년 7월9일 초여름의 무더운 날씨 속에 열린 이한열(당시 22) 열사 장례식에서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아들 대신 싸우겠다”고 절규했다. 배 여사는 그날 이후 '6월의 어머니'가 됐고, ‘거리의 민주투사'가 됐다. 연세대학교에서 서울시청으로 이어진 장례식 길에는 110만여명의 인파가 몰렸고,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구호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이 열사 장례식 한 달 전인 6월9일 오후 배 여사의 넷째 중 큰아들이었던 이 열사는 연세대 정문 앞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석했다가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이 열사는 26일 뒤인 7월5일 숨졌다. 피 흘린 그의 모습은 6월 민주항쟁의 불길이 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아들의 죽음은 배 여사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그날 이후, 평범한 주부였던 배 여사는 아들 앞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아들의 장례식을 치른 뒤 배 여사는 그해 8월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세상을 떠난 열사들의 유가족이 모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창립 1주기 행사에 참석했고,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만나 위로를 받았다. 배 여사는 ‘한열이의 이름으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 참여해 전태일 열사 어머니 고 이소선(1929-2011) 여사와 박종철 열사 아버지 고 박정기(1928-2018)씨 등과 함께 민주주의와 인권 투쟁이 있는 현장이면 어디든 달려갔고, 연대했고 연행되기도 했다. 34년을 그렇게 투쟁했다.

 

배 여사는 유가협 회장을 맡아 자식들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목소리를 냈고, 422일간 국회 앞 천막 농성을 통해 억울하게 숨진 민주열사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2009년 용산참사 소식을 듣고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2016년 백남기 농민 사망, 2017년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정에서도 배 여사는 이들을 위로하고 함께 눈물 흘리며 힘을 보탰다. 지난해에는 군부 쿠데타로 시민들이 희생되는 미얀마인들을 만나 “가족이나 친구들이 죽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죽어서도 함께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한 활동도 벌여왔다.

 

배 여사는 이러한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6월 6·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고 이소선 여사 등과 함께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배 여사는 훈장을 받는 자리에서 ‘서른세 번째 6월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전하기도 했다.

 

배 여사는 앞서 2018년 6월 이 열사가 다니던 연세대학교와 이한열기념사업회가 함께 주관해 연세대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의 31번째 추모제에서 “민주주의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되어 한 발짝씩 온다. (열사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 믿는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2018년, ‘제31주기 이한열 추모제’에 참석한 배은심 여사.

 

배 여사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대선 후보를 비롯한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의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페이스북에 “6월의 어머님, 민주주의의 어머님, 그리고 우리들의 어머님 배은심 여사께서 아들 이한열 열사의 곁으로 가셨다. 민주주의 한 길을 위해 노력하셨던 어머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비통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다”고 침통해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페이스북에 “배 여사께서는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지난 35년간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해오셨다.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이 열사와 고인의 그 뜻, 저희가 이어가겠다”고 애도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도 “배 여사는 이한열의 어머니이자 우리의 어머님이셨다”며 “자식에 대한 사랑을 대한민국 미래세대 모두에 대한 더 큰 사랑으로 승화시켰다”고 추모했다.

 

송영길 대표도 페이스북에 “계룡산 자락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아니 우리 시대 모두의 어머니셨던 배 여사님의 부음을 마주한다. 한 많은 평생이었으되, 이제라도 앞서간 한열이를 만나 못다 한 모정을 다 베푸시길, 영면하시길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이낙연 전 대표도 “이 열사의 희생을 겪으시며 스스로 민주투사의 길을 걸으신 ‘시대의 어머니’. 여사님은 투쟁이 필요한 곳에 늘 함께하셨다. 여사님의 삶은 6월 항쟁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됐다”고 애도했다.

 

정의당도 “고인은 이 열사 사망 후 유가협에 참여해 전국을 돌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오셨다”며 “고인의 삶을 추모하며 우리 사회의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발검을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문정현 신부는 페이스북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졌다”고 했고,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해서 시술받고 일반 병실로 옮겨서 전화통화까지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라며 애통해했다.

 

배 여사는 지난 2017년 6·10항쟁 30돌을 맞아 가진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아들을 보고 싶어도 못 보고, 좋아도 좋은 것도 모르고 항상 마음이 괴롭게 살았던 나날들”이었다고 했다. 나중에 아들을 만나면 “‘한열아, 왜 그때 그 자리에 서 있었어?' 물어보고 싶은 것밖에 없어요. 30년 동안 갖고 있던 질문. 그냥 왜 그랬느냐고 묻고 싶고, 그것뿐이에요.”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아들을 만나는 데 35년의 세월이 걸렸다. 아들의 죽음 이후 “엄마가 갚겠다”며 온몸을 바쳐 투쟁했던 어머니가 이제 아들을 만난다. 아들에게 묻고 싶었다는 질문, 엄마는 이제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발인은 11일 오전 9시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이고, 장지는 광주 망월동 8묘역(예정)이다. 허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