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도배’ 정의연 회계 공시 논란, 언론은 얼마나 옳았나?
초기 보도 ‘부족한 취재→문제 확신’ 침소봉대 많아…
확인된 건 공익법인 전반의 ‘회계 부실 공시’ 관행
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싼 논란 초기, 정의연이 부실하게 회계를 공시한 사실이 곧 ‘부정한 비리’로 받아들여진 배경엔 자극적인 보도가 있었다. 사건을 둘러싼 상황을 종합하거나 해명을 반영하지 않고 섣불리 의혹을 확신한 보도도 많았다.
회계 논란 시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다.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대구 기자회견에서 ‘정의연이 피해자를 위해 후원금을 쓰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할머니가 그간 밝힌 입장을 종합하면 이 말은 ‘모든 피해자를 위해 필요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운동 방향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 할머니는 지난 13일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전국의 할머니를 도우라고 (기부금을) 주는 건데 어째서 거기(정의연 운영 쉼터) 할머니만 피해자라고 하나”라고 말했다. 보도가 집중되던 12일엔 “폄훼와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돼야 한다는 전제에서 말한다”며 “현 시대에 맞는 사업 방식과 책임 있는 집행 과정, 그리고 투명한 공개를 통해 국민 누구나 공감하는 과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정의연이 피해자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는 보도 프레임이 공고해진 직후다.
▲이용수 할머니의 7일 대구 기자회견 직후 보도된 "정의연이 피해자들에게 현금성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기사 모음.
‘피해자들에게 왜 돈 안 줬냐’는 소모적 논쟁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 보도가 이 같은 프레임을 강화했다. “할머니들 위해 모은 성금인데… 정작 받은 건 106만원”(조선), “정의연 기부금 수입 49억, 피해자 현금지원 9억”(동아), “22억 중 9억 피해자 지원했다는 정의연…최근 2년은 4700만원”(머니투데이) 등의 보도다. 정의연이 한 해 기부금 가운데 피해자에게 얼마의 현금을 지원했는지 분석해 그 비율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생계비 등의 직접 지원은 ‘위안부특별법’이 제정된 1993년부터 정부가 책임져왔다. 지자체 지원을 빼면 2016년 기준 여성가족부가 피해자에게 지급한 생활안정지원금은 총 15여억원이다. 주거, 생활안정, 간병, 장례 등 지원이 포함됐다. 정의연의 ‘피해자 지원 사업’엔 정기방문·전화, 기부품 전달, 의료·상담 치료 지원, 일부 장례 지원 등의 부대 활동이 있다. 다른 아시아 피해국의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활동도 포함됐다.
피해자 지원 사업은 12개 목적사업 중 하나다. 정의연의 한 해 사업은 △피해자 지원 △수요시위 △기림사업 △국내연대 △남북연대 △국제연대 △나비기금 △연구조사 지원 △교육사업 △장학사업 △홍보사업 △모금사업 등으로 나뉜다.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배상, 책임자 처벌, 진실규명 등을 통해 피해자 명예와 인권회복에 기여하고, 미래 세대로 하여금 올바르게 기억하게 하고, 전시 성폭력을 막고 전시 성폭력 피해자 인권회복에 기여한다”는 게 단체 설립 목적이다.
이런 맥락은 초기 보도에 반영되지 않았다. 현금성 지원이 주 목적이 아닌 단체를 겨냥해 기부금에서 현금지원 비중을 분석한 기사가 쏟아졌다.
이와 별도로 시민사회 진영에선 “현금지원을 하지 않은 점에 사회적 공분이 생겼다면, 기금 마련이 성 착취 구조 근절에 목표를 둔다는 것을 시민사회와 충분히 공유하지 못한 것이다. 정의연과 피해자가 동일시된 측면도 있다. 정의연이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경제는 12일 정의연이 “하룻밤에 3300여만원을 (후원 행사를 치른) 술집에서 사용해 논란”이라고 적었으나 사실 왜곡이 있었다.
국세청 공시 기사들, 충분한 팩트 담았나
‘국세청 공시자료 발’ 기사가 연이어 나오며 회계 비리 의혹이 거세졌다. 취재가 불충분해도 비리 의혹을 확신한 기사가 집중적으로 보도됐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의혹이 확실시됐다.
12일 한국경제 “[단독] 하룻밤 3300만원 사용, 정의연의 수상한 술값” 보도가 대표적이다. 정의연의 2018년 국세청 결산 공시 자료 중 국내 ‘모금사업’ 지출란을 보면 지급처엔 맥주회사를 운영하는 A업체가, 지출액으로 현금 3300만원이 적혔다. 한국경제는 “하룻밤에 3300여만원을 (후원 행사를 치른) 술집에서 사용해 논란”이라고 적었다. “당일 매출은 970만원이었다”는 술집 입장을 전하며 정의연에 은폐 의혹도 제기했다. 조선일보(“맥주값 3339만원 썼다던 정의연, 430만원 결제”), 중앙일보(“맥줏집에선 3300만원, 할머니들에겐 2300만원 쓴 정의연”) 등의 보도로 확산됐다.
이들 기사만 보면 정의연이 기부금 3000만원을 술집에 지출했고 그 금액까지 속인 것으로 보인다. 배경엔 2018년까지 유지된 국세청 서식 작성법이 있다. 작성법이 개정된 2019년 3월 전까지 가장 큰 금액이 지급된 대표 지급처만 적는 방식이었다. 정의연은 “3300만원은 50개 지급처에 지급된 모금사업비 지출 총액”이라고 밝혔다. 취재에 응한 술집 관계자는 기사를 본 후 “정말 교묘하게 악의적”이라며 “스트레이트 기사는 팩트를 자기 세계관에 맞춰 찌그러뜨려서는 안 되는 걸로 안다”고 자신의 SNS에 밝혔다.
▲기부금단체가 기부금 사용 내역 등을 공시할 때 사용하는 국세청 작성 포맷. 지급처 란에 '대표지급처'로 명기돼있어 대표 지급처만 관성적으로 적어온 단체 실무자들이 적지 않다.
‘대표 지급처’를 지급처 한 곳으로 보고 의혹을 제기한 보도는 계속 나왔다. “기부금 지출항목에 ‘상조회사 1170만원’… 업체 ‘한푼도 안받아’”(12일 동아일보)와 “정의연 1억2000만원 보냈다던 해외사업… 해당 재단은 ‘2000만원 받았다’”(18일 시사저널) 등이다. 동아일보는 2019년 기부금품 지출명세서 중 지급처는 한 상조회사로, 지출액은 1170여만원이라고 공시한 지출란에 근거했다. 시사저널 근거는 2018년 지출명세서의 국내사업 중 지급처 ‘무케케재단’, 수혜자는 999명, 지출액은 1억2202만원이라는 공시였다. 언론은 대표 지급처 한 곳만 공시된 사실과 다른 지급처는 전수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사실로 비리 의혹을 지폈다.
의혹 제기가 급물살을 타면서 해석이 필요한 팩트를 의혹 근거로 무분별하게 차용한 흔적도 있다. 단독을 단 한국일보의 “‘22억 증발’ 정의연, 회계처리 오류라고 변명하기엔…” 보도는 정의연의 2018년 및 2019년 ‘공익법인 결산서류 공시’를 비교해, 2018년엔 22억7300만원 기부금 수익을 2019년에 이월한다고 적혔으나 2019년 이월 수익금엔 ‘0’이 적혔다며 단순 실수라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그러나 2019년 별도로 공시하는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엔 22억9500만원이 기재돼 있다.
▲언론은 2018년과 2019년 '공익법인 결산서류' 공시상 2018년에 기록된 기부 수익 이월금이 2019년엔 사라졌다며 단순 실수라 보기 어려운 회계 부정으로 봤다.(왼쪽) 그러나 별도로 공시하는 2019년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엔 이월금이 적혔다.(오른쪽)
보도는 “2019년 정의연 재무제표상 현금성 순자산이 18억7000만원에 달한다”는 점도 불투명한 기부금 사용 근거로 활용했다. 이 가운데 14억6800여만원은 사용처가 따로 있어 적립한 목적기금이었다.
‘99’, ‘999’ 등이라고 표시된 사업 수혜자 논란도 비슷했다. 정의연이 국세청 공시에 ‘사업 수혜자’ 명수를 99, 999, 9999 등이라고 적어 놓은 게 회계 비리 의혹 근거였다. 대표적으로 지난 11일 한국일보 “[단독] 정대협 사업항목 같은데… 기부금 수혜자 1년 새 999명→9999명?” 기사다. 엄밀하게 공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사회운동 단체 상황을 종합 반영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사회운동 단체는 캠페인, 연설, 집회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사업이 많다. 사회복지기관처럼 서비스나 용역을 받는 사람이 명확하지 않다. 이들 단체가 국세청에 공시한 수혜자 대부분이 모호한 추산 값이다.
사회운동 단체들이 관습적으로 진행한 ‘개인 계좌 모금’ 방식도 ‘정의연의 회계 비리’로 좁혀졌다. 이 같은 모금 방식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나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 ‘희망버스’ 및 용산참사 대책위원회 후원부터 각종 열사 장례위원회에서도 볼 수 있다. 여러 단체·개인들이 함께하는 연대모금의 경우 단체 고유 목적사업이 아니라 개인 계좌로 모금하는 방식이 유지된 측면이 있다. 이 문제에 위법 소지를 따지더라도 언론이 이를 곧바로 특정 단체의 회계 비리 근거로 삼으려면 내부자 증언이나 허위 세금계산서 등 추가 근거가 요구된다.
중앙일보는 14일 이를 “SNS서 기부금 모금, 윤미향 개인계좌 3개로 받았다”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개인 계좌로 공익법인 기부금을 당장 문 닫아야할 사안’” 등의 기사에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할머니를 앞세운 사적인 앵벌이 모금”이라는 일각의 비판도 같이 전했다.
부실한 회계 공시는 문제다. 시민사회단체 내에서도 정의연을 둘러싼 논란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한 사회단체 활동가는 “(정의연의 회계 공시를) 정당화할 순 없지만 언론도 단체들이 처한 상황은 보도에 반영해야 한다. 기부금 단체는 이를 관리 감독을 하는 정부 부처 제출 보고서만 중요하게 판단, 국세청 공시는 안이하게 작성해 온 면이 있다. 한 번도 오류를 지적받은 적이 없으니 오랫동안 관성적으로 올려왔다”며 “특히 국세청 양식이 기업 중심이라 비영리 법인 실무자는 무엇을 채무로, 자산으로 잡을지 몰라 실수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외부 회계 기관에 감사를 받겠다는 정의기억연대 공지.
회계 투명성에 민감한 시민 인식을 사회단체들이 따라가지 못했단 자성도 있다. 이참에 미국처럼 모든 비영리 법인을 회계 감사 대상으로 두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말도 나온다. 다만 비영리 법인 회계에 대한 법률 등이 개선돼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또 다른 사회단체 활동가는 “비영리 법인 회계 관련 법률이 사회단체 운영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다양한 활동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을 제약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실제 비리·부정이 있었다면 정의연은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정의연은 외부 회계 검증을 받을 예정이다. 정의연은 지난 15일 한국공인회계사회에 공익법인 감사 회계 기관 추천을 의뢰했다. 검찰 수사도 진행된다.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등은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정의연을 고발했다.
회계 검증과 향후 이어질 수사와 별개로, 언론은 의혹 제기가 얼마나 꼼꼼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는 다른 근거자료 없이 개인 계좌로 기부금을 모금한 것 자체를 횡령 혐의인 양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국세청 공시 작성 방법을 충분히 알아보지 않고 정의연의 ‘회계 부정’을 못 박았다. 의혹 제기에 꼼꼼한 사실확인과 반론 취재가 필요하다. <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