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5·18기념재단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동아시아 도서관에서 확보한 ‘88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준비연구문건 표지.이 문건은 전두환 장기집권 시나리오로 불리며 5부밖에 제작되지 않은 극비 문건이다.(5·18기념재단 제공)

       

김용기 전 교수, 폭로 위해 기독단체 통해 미국으로 반출

미국종교단체 전달돼 한국인권 지원 활용

19885공청문회 쟁점 떠올라 비판 쇄도

                 

20175·18기념재단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동아시아 도서관에서 확보한 ‘88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준비연구문건(전두환 장기집권 연구서)이 미국으로 건너간 경위가 30여년 만에 밝혀졌다. 이 문건은 전두환 장기집권 시나리오로 불리며 5부밖에 제작되지 않은 극비 문건이다.

김용기 전 경남대 교수는 “1986년 한국 기독교단체를 통해 미국 인권단체로 보낸 전두환 장기집권 연구서가 미국 UCLA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25일 밝혔다.

김 교수는 “1986년 여름께 진보학회를 같이하던 장하진 당시 충남대 교수에게서 이 문건을 받았다. 장 교수의 남편 김홍명 교수(당시 서강대)가 문건 작성자인 장연호 경향신문 정경연구소 기획위원에게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나에게 폭로 방안을 논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나는 당시 노동계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몇몇 사람과 고민하던 중 한국에서는 어려우니 한국 종교단체를 통해 미국인권단체에서 폭로하는 방향으로 결론 내렸다. 나 역시 정부 감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연세대 인근 복사집에서 안기부 직원이라 사칭해 3부를 복사했다. 원본은 되돌려주고 사본 1부는 대학로에 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전달, 나머지 2부는 폐기했다고 회상했다. 다만 김 교수는 탄압을 피하기 위해 서로 보안을 유지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누구에게 전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88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준비연구문건을 미국인권단체에 반출한 김용기 전 경남대 교수.

김 교수는 2017125·18기념재단이 UCLA에서 확보한 5·18 관련 자료를 공개하며 ‘88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준비연구가 포함돼 있다고 하자 자신이 전달한 문건이라고 직감했다.

5·18기념재단은 미국의 기독교 계열 인권운동 단체인 케이시시피제이알(KCCPJR, Korea Church Coalition for Peace, Justice, and Reunification)1995년 해산하면서 보고서를 다른 5·18 문건과 함께 UCLA에 기증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기독교 관련 인권단체가 기증했다는 점은 둘째치고, 원본에는 소지자를 파악할 수 있도록 연번이 적혀 있었다. 당시 문건을 받았을 때 유출자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연번을 가리고 복사를 했다. 5·18기념재단이 공개한 문건도 연번이 가려져 있어 내가 보낸 문건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UCLA에서 문건을 발굴했던 최용주 전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당시 미국인권단체는 전두환이 장기집권하면 한국 국민은 이를 용인한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 있다고 미국 정부를 압박하는 성명을 자주 발표했다. 전두환 장기집권 연구서가 영어로 번역된 것으로 봤을 때 미국 내 단체에 전파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 연구원은 또 김용기 교수가 문건을 전달하는 과정을 연구하면 어떻게 한국 민주운동가들이 국제인권단체와 연대를 맺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88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준비연구문건 내용을 보도한 19881113일치 한겨레신문

한편, 16절지 40쪽 분량 전두환 장기집권 연구서는 1984년 당시 경향신문 정구호 사장의 주도로 장연호씨, 윤상철 주필, 양동안 논설위원이 극비리에 작성했다. 이 문건은 1988년 전두환씨가 대통령 퇴임 후에도 민정당 총재를 맡고 후임 대통령은 부총재직을 겸임토록 한다는 기본구상을 담고 있다. 민정당이 최소한 2000년까지 집권하며 전씨가 직접 후계자를 육성해 후임 대통령을 선출하고 야권 인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귀국불허,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물질적 회유 등을 해야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 문건은 198731일 재미동포신문 <독립신문>(발행인 김경재 전 의원)에 의해 처음 보도됐으며 1988115공 청문회 때 일해재단과 맞물려 쟁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전두환씨가 일해재단을 통해 장기집권하려 한다는 소문이 팽배한 상황에서 이 문건이 폭로되며 일해재단은 세종연구소로 명칭을 바꿔 연구 역할만 하게 된다. < 김용희 기자 >

 


                       

기자가 조사 직전 휴대폰 2, 노트북 초기화해 녹음파일 등 증거 못 찾아

핵심증거 인멸 기자 탓하며 진상조사 실패 자인상부 지시 없었다 발뺌도

                 

협박 취재와 검-언 유착 의혹에 휩싸인 종합편성채널 <채널에이(A)>25신라젠 사건 정관계 로비 의혹 취재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를 자사 누리집에 올렸으나 기자가 진상조사 전에 휴대전화와 노트북 피시에 담긴 데이터를 삭제해 진상 파악이 어려웠다고 밝혀 진상 은폐 보고서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채널에이는 지난 22일 메인뉴스 <뉴스에이>를 통해 자사 기자가 유력 검찰 간부와의 친분을 내세워 수감 중인 전 신라젠 대주주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 쪽에 접근해 여권 인사 비위를 털어놓으라고 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했다며 25일 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A4용지 53쪽 분량의 보고서는 사건 경위와 조사 결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을 담고 있지만 자료 부실로 -언 유착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검찰 관계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보고서는 이아무개 기자가 조사 직전 휴대전화 2대를 초기화하고 노트북 피시를 포맷해 데이터가 삭제돼 녹음파일 등 증거를 찾지 못했다외부 전문업체 포렌식을 통해서도 복원되지 않아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차장, 부장 등 데스크의 휴대전화에도 이 기자와의 카카오톡 대화는 4월 이전 내용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이 기자가 제출한 통화 및 대화 녹음파일과 녹취록 외에 백아무개 기자, 차장과 부장 등 이메일과 카톡 메시지를 통한 녹음파일 등 객관적 증거자료로 진술 내용을 검증하려 했으나 확보하지 못한 증거자료가 상당수여서 검증에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디지털 포렌식을 거치면 몇달이 지나거나 바닷물에 빠졌어도 대부분 복원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채널에이 스스로 진상 규명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핵심 증거 인멸로 검찰 관계자가 등장하는 녹음파일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보고서는 이 기자 진술과 법조팀 동료 기자인 백아무개 기자와의 통화 녹음파일 등 일부 증거를 통해 검찰 관계자와 대화했을 가능성은 있다며 여지를 뒀다. 보고서는 또 회사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며 이런 취재 아이템은 상부 지시가 아닌 기자의 자발적 보고였다고 선 긋기를 했다.

지난달 협박 혐의 등으로 채널에이 기자와 성명불상의 검사장을 검찰에 고발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신미희 사무처장은 증거가 인멸된 상태에서 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결과에 대해 기대가 크지 않았으나 무책임하고 부실한 알맹이 없는 보고서라고 비판했다.

한편 채널에이 이 기자의 변호인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채널에이 진상조사위 발표 내용은 스스로도 인정한 것처럼 부실한 조사 및 한정된 증거를 토대로 성급히 추정 결론을 낸 것으로서 상당 부분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정진웅)는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채널에이 내부 자료와 이 기자 휴대전화 및 노트북 등을 분석하고, 강요미수 혐의 피해자 자격으로 이철 전 대표와 제보자 지아무개씨 등을 조사했으나 검찰 관계자의 녹음파일 등 직접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 문현숙 김정필 기자 >

 


한만호 70여차례 소환하고도 진술조서 5회뿐작성과정 살필 듯

한만호 수감동료 검찰이 재소자들 '집체교육' 증언 훈련시켜

                   

법무부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수사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조사는 한 전 총리의 정치자금 사건 유무죄 문제와는 별개로 검찰의 잦은 소환 등 수사 관행을 점검하고 언론 보도로 제기된 강압수사 의혹을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한명숙 사건 수사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정밀한 조사가 있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 전 총리 사건이 재심 사유에 해당되는지와는 별개로 당시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강압수사 의혹이 제기된 만큼 진상조사는 불가피하다. 조사 주체와 방식 등을 실무 부서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탐사전문 매체 <뉴스타파>25일 한만호(2018년 사망) 전 한신건영 사장과 서울구치소에서 함께 지냈던 재소자 한아무개씨와 한 인터뷰를 보도했다. 보도를 보면, 한 전 사장이 201012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법정에서 뒤집자 검찰은 한씨를 조사하려고 했다. 이를 거부하자 수사팀은 한씨에게 주식 차명거래 혐의가 있다며 아들과 조카를 불러 조사했다는 게 한씨의 주장이다. 한씨는 이를 자신에 대한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검찰 조사에 응했다고 했다.

이때 한 전 사장의 진술 번복을 탄핵하기 위해 당시 구치소 동료였던 김아무개·최아무개씨와 함께 법정 증언을 대비한 집체 교육이 검찰청에서 이뤄졌다고 한씨는 주장했다. 한씨는 당시 검찰청에서 조사받으며 검사와 수사관에게 음식도 접대했다며, 조카가 검찰청에 들어왔던 날(201131), 서울중앙지검 인근 초밥집에서 525천원을 결제한 신용카드 결제내용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팀은 ○○은 현재까지 장기 수감 중인 사람으로 당시에도 진술이 과장되고 황당해서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증인신청도 하지 않았다“(한씨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라고 반박했다. 수사팀은 이날 자료를 내어 당시 한씨의 조카와 아들을 소환한 이유는 한씨가 한 전 사장에게 한 전 총리로부터 돈을 돌려받으면 동업을 하자고 제안했다는 진술이 있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씨의 접대 주장에 대해선 한씨가 외부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해 아들·조카 등에게 사 오라고 한 후 당시 같이 있었던 김○○, ○○, 음식을 사온 아들·조카, 다른 참고인 등이 같이 먹은 사실은 있으나 검사와 수사관이 먹은 사실은 전혀 없다고 했다.

강압수사 의혹 말고도 재판 과정에서 불거졌던 한 전 사장에 대한 검찰의 잦은 소환도 논란이 됐다. 검찰이 당시 법원에 제출한 한 전 사장의 진술조서는 5회분이지만 소환조사는 70여차례 이뤄졌다. 검찰에 소환한 뒤에 조서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조사 외에 다른 목적으로 소환했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여권 인사들은 한 전 사장을 별건으로 압박하거나 한 전 총리 수사에 협조하도록 회유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수사팀은 이에 대해 한 전 총리 외에 은행원 등에 대한 금품 공여 사실을 확인해야 했고, 한 전 총리가 기소 뒤에 새로운 주장을 하면서 이를 검증하기 위해 한 전 사장 소환조사가 필요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 김태규 기자 >

치밀하지 못한 검찰 해명에 사그라지지 않는 의혹

'1억원 수표' 등 핵심 증거에 대한 뚜렷한 반증은 아직 없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 요구가 검찰의 증언 조작 의혹으로 중심을 옮기면서 파장을 키우고 있다.

다만 계속되는 의혹 제기에도 '1억원 수표' 등 한 전 총리에 대한 유죄 판결을 뒷받침했던 핵심 증거에 대한 뚜렷한 반증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검찰은 이번 의혹 제기가 유죄 판단 근거와 무관하다며 맞서면서도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검찰이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적 없다"는 한신건영 전 대표인 고() 한만호 씨의 법정 증언을 덮기 위해 동료 수감자의 증언을 조작했다는 의혹은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최근 보도로 촉발됐다.

뉴스타파가 공개한 한 씨의 비망록에는 한 씨가 추가 기소에 대한 두려움과 사업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찰의 회유 등으로 조사 과정에서 "한 전 총리에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가 공판에서 사실대로 말을 바꿨다고 적혀있다.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증언 조작 의혹을 제기한 A씨는 한 씨의 지인으로, 사건 재판 당시 법정에서 '한 씨가 사실과 다르게 진술을 번복했다'는 취지로 증언을 한 동료 수감자 2명과는 다른 인물이다.

A씨는 당시 한 씨의 진술 번복으로 궁지에 몰린 검찰이 한씨를 '거짓말쟁이'로 몰기 위해 추가 기소 등을 빌미로 자신을 포함한 수감자 3명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PC로 미리 진술서를 작성하면 수감자들이 이를 베끼도록 하는 방식으로 '집체교육'이 이뤄졌다는 정황 진술도 나왔다.

A씨가 검찰의 협조 요청을 거부하자 A씨의 아들과 조카를 별건으로 조사하겠다며 압박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한 씨의 부탁을 받고 '특수부 검사가 한 씨에게 거짓 진술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검사들에게 알리기도 했지만 모두 묵살당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이번 증언 조작이 특수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취지다.

검찰의 증언 조작 의혹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사건 재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한 전 총리 유죄 판결에 핵심 증거가 됐던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자금 1억원 수표, 2억원 반환 사실 등은 이번 증언 조작 의혹과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포괄적인 재조사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있다. 재조사가 시작돼도 검찰의 증언 조작 의혹에 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도 수감자들의 법정 증언은 한 전 총리의 유죄 인정 근거로 사용되지 않은 증거라며 이 의혹이 본류와 무관하다는 점을 거듭 부각하고 있다.

검찰의 꼼꼼하지 못한 해명이 의혹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검찰은 전날 낸 입장문에서 "한만호는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기 전까지 철저히 그 의도를 숨겼기 때문에 검사나 수사관조차 진술 번복 계획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씨의 동료 수감자들을 특수부 사무실로 불러 조사한 경위에 대해서는 "한 씨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할 것이라는 풍문이 법정 증언 5개월 전부터 수사팀 특수1부에 전달됐다"며 앞뒤가 안 맞는 해명을 하기도 했다.

검찰은 "A씨는 사기·횡령·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징역 20년 이상의 확정 형을 선고받은 사람"이라며 진술의 신뢰성을 깎아내릴 목적으로 사건과 무관한 A씨의 전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A씨의 아들과 조카에 대한 별건 수사 압박 의혹, A씨가 고가 식사를 수사관에게 접대했다는 주장 등에 대해서도 검찰은 '사실과 다르다'는 수준 이상의 구체적인 반론을 내놓지 못했다.

증언 조작 의혹이 한 전 총리의 유죄 판단 근거가 된 핵심 증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 검찰은 앞으로도 사건 본류와 무관한 것이라며 선을 그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각종 의혹에 대한 검찰의 해명이 충분하지 못할 경우 의혹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재조사나 재심까지 촉발할 수 있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한명숙 사건'이 당분간 재심 여부를 다투는 법리 싸움이 아닌 정치적 쟁점에 머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2차 회견, 정신대·성노예 표현 불쾌감, 후원금 모금에 모욕감

정의연 정대협은 위안부 인권단체, 성노예는 UN 인정한 공식 표현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후원금 사용처 의혹 등을 제기한 지난 7일 기자회견에 이어 25일 열린 이용수(92) 할머니의 2차 회견은 더욱 날이 서 있었다. 이 할머니는 ‘30년 동지였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에 대한 짙은 배신감을 격한 언어로 토로했다. 정의연은 기자회견 뒤 오늘 기자회견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보았다며 일부 사실과 관련한 역사적 배경을 밝히는 설명자료만을 냈다.

이 할머니는 이날 오후 240분께 휠체어에 탄 채 무거운 표정으로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 모습을 드러냈다. 건강이 악화돼 기자회견을 하기 어렵다는 평도 나왔지만, 준비해 온 원고를 보지 않고 수십년 전의 날짜까지 밝히며 쌓여온 말들을 이어갔다. 중간중간 감정이 격해져 울먹이거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지만 구순을 넘긴 나이에도 기자들의 질문에 끝까지 답하고 회견을 마쳤다. 그는 공식 발언에 앞서 누구를 원망하고 또 잘못했다고 하는 건 제가 처음에 기자회견을 할 때 했다. 그런데 너무도 많이 생각도 못 하는 것이 나왔다그것은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 기자회견이 추가적인 의혹을 제기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할머니는 1992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실무 간사로 만난 윤 당선자와 30년간 함께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해오며 느낀 분노를 주로 토로했다. 그가 짚은 대목은 크게 네 가지다. 먼저 이 할머니는 정대협의 명명을 문제 삼았다. “(근로) 정신대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인데 위안부(피해자)를 정신대 할머니와 합해 쭉 이용했다. 30년 동안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 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을 하지 않겠냐는 게 이 할머니의 주장이다. 군수공장 등에 강제동원됐던 여성 노동자들을 일컫는 정신대와 성적인 착취와 폭력을 당한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한데 뒤섞어 문제의 본질을 흐렸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대협이라는 단체명은 운동 초기에 위안부 피해자와 근로정신대 피해자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은 데서 생긴 결과다. 1944여자정신근로령에 따라 징발된 근로정신대의 일부는 군수공장으로, 일부는 위안소로 끌려갔다. 정대협은 1990년 설립 당시부터 줄곧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에 집중해온 단체다.

아울러 이 할머니는 첫 기자회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성노예라는 명명에 모욕감을 나타냈다. 그는 제가 왜 위안부고 성노예냐. 왜 그 더러운 성노예라고 하냐니까 (정의연 또는 윤미향이) ‘미국 사람 겁내라고 하는 것이라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고 말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정대협은 2018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로 거듭났다. 매주 수요시위(수요집회) 역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로 개최된다. 유엔이 인정하는 공식 표현이 강제 성노예여서다. 정의연은 설명자료에서 “‘성노예는 피해자를 매도하기 위한 용어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피해의 실상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학술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고 밝혔다.

세간의 관심을 모은 후원금 문제 역시 이 할머니는 비리에 앞서 모욕의 문제로 봤다. 이 할머니는 1992년 실무 간사였던 윤 당선자를 처음 만났던 때를 돌이키며 일본의 어느 선생님이 돈을 줬다며 100만원씩 나눠줬다. 무슨 돈인지도 몰랐다. 그때부터 모금하는 걸 봤다고 운을 뗐다. 할머니는 이어 따라다니며 보니 농구선수가 농구하는 걸 기다리자 그 선수가 돈을 모금해 받아 오더라. 저는 왜 그런지 몰랐다.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돈의 용처를 넘어 윤 당선자가 위안부 피해 운동을 통해 모금을 한 사실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다.

무엇보다 이 할머니는 함께 운동해온 윤 당선자가 국회의원의 길을 택한 점을 강하게 성토했다. 그는 이 사람(윤미향)은 자기 마음대로 뭐든지 하고 싶으면 하고 팽개치고 하는데, 30년을 같이 해 나왔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마음대로 팽개쳤다. 우리 국민들, 세계 여러분들이 데모(수요시위)에 나오는데 그분들도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랬다자기가 사리사욕을 챙겨서 마음대로 또 국회의원 비례대표도 나갔다. 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사람이 받아먹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한테 (출마) 얘기도 없었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니까 제가 무엇을 용서를 하겠냐고 덧붙였다. 이 할머니는 윤 당선자의 거취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엔 그것은 제가 할 얘기가 아니다. 그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했으니까 사퇴를 하고 말고 저는 말 안 하겠다며 공을 윤 당선자에게 넘겼다. < 채윤태, 강재구 기자 >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에 민주당 송구사실관계 확인 먼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열어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활동을 비판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송구하다면서도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5일 오후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서면 브리핑을 통해 “30년간 위안부운동을 함께해온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까지 하며 문제를 제기한 것 자체만으로도 안타까움과 송구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윤 당선자 거취 문제에 대해선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향후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강 수석대변인은 이어 이용수 할머니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적극적으로 해소해 가야 한다. 이번 논란으로 위안부의 대의와 역사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해찬 당대표는 윤 당선자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건건이 대응하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정의연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회계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당 차원에서 진상 조사를 추진해 결단을 내릴 시점은 이미 넘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윤 당선자를 향해 공개적인 소명을 요구했던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이날 <기독교방송>(CBS)에 출연해 “(검찰 수사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민주당이 사실 규명을 하고 본인의 해명을 차근차근 충분히 듣는 시간이 없을 것 같다윤미향 당선자가 이제 피의자가 됐고 광범위한 수사의 대상이 됐기 때문에, 원칙으로 돌아가 그분에게도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들며 윤 당선자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온 미래통합당은 이날 위안부 할머니 피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었다. 태스크포스는 윤 당선자가 활동했던 정대협과 정의연의 회계 의혹 등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방침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언급하며 오죽 답답하셨으면 구순이 넘은 연세에 이렇게 울분을 토하며 마이크를 잡으셨겠느냐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손 놓고 있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통합당은 철저히 피해자 중심, 피해자의 입장에서 모든 의혹을 들여다보고 의혹을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 황금비 이주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