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광주 전일빌딩서 최고위 열어

통합당, 국회 계류 처벌법 처리를” ‘망언 사과주호영 대표 결단 요구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18일 광주 전일빌딩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열고, 5·18 역사왜곡 처벌법 처리 등을 약속했다. 전일빌딩은 5·18 당시 계엄군에 쫓기던 시민들이 피신한 곳으로 계엄군의 헬기 사격 탄흔 245개가 남아 있어 빌딩에 전일빌딩 245’라는 이름이 붙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73월 이곳을 방문해 남은 과제는 발포행위자와 발포명령자를 규명해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이 전일빌딩에서 최고위를 연 것은 그만큼 5·18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나타낸 셈이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표현의 자유 뒤에 숨어 5·18과 유공자에 대한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파렴치한 자들이 활개 치는데 민주당은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21대 국회에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에서 파렴치한 자들을 처벌하는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민주당·정의당·민주평화당 등 3당은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에 대해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5·18민주화운동 특별법개정안을 제출했으나 이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하지 못한 채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지금도 온라인에서 5·18이 북한 간첩에 의한 폭동이라는 날조가 난무한다. 더 이상 5·18에 대한 왜곡과 날조가 우리 사회를 좀먹게 놔둬선 안 된다“5·18 역사왜곡 처벌법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사과가 빛을 발하려면 이 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원내대표가 통합당 전신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을 사과한 것을 계기로 역사왜곡 처벌법 처리에도 결단을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강제조사권을 부여하는 법 개정에도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진상조사위는 지난 12일 조사활동을 시작했지만 강제조사권이 없다. 관련자들이 조사에 응하지 않더라도 강제 구인할 방법이 없어 조사에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 대표는 이번에야말로 5·18에 묻힌 진실을 낱낱이 파헤칠 것이라며 민주당과 정부는 진상조사위 활동을 전폭 지원해 이번엔 반드시 모든 진실이 밝혀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광주·전남 당선자들을 중심으로 진상조사위에 강제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또 진상조사위에 성폭력 관련 진상규명을 다루는 분과위원회를 두고 위원회 활동 기간을 5년으로 연장하는 내용 등을 개정안에 담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다만 5·18 민주화운동을 헌법에 담기 위한 개헌 논의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대표는 “5·18은 한국 민주화의 동력이고, 민주정권의 탄생 기반이고, 한국 민주주의 발전 원천이라며 언젠가 우리가 개헌하면 헌법 전문에 우리가 계승해야 할 역사로 남아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이 개헌 저지선인 100석 이상을 확보하고 있어 개헌을 성사할 만한 물리적 조건이 여의치 않은 까닭이다. < 서영지 기자 >

 


기초과학연 피젯 스피너모양 기구 발명

전기 없이 감염성 질환 신속 진단 “개도국·오지서 항생제 남용 줄일 것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끈 장난감 피젯 스피너를 닮은 간단한 세균 감염 진단기구가 발명됐다.

기초과학연구원 첨단연성물질연구단(단장 스티브 그래닉)18전기 연결 없이 손가락으로 장난감 돌리듯 하면 감염성 질환 진단을 1시간 이내로 끝낼 수 있는 수동 진단기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단의 조윤경 그룹리더(울산과학기술원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개발도상국이나 오지처럼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 진단 시간이 길어져 발생하는 항생제 오남용에 의한 부작용과 비용을 해결할 방안을 연구했다. 세균 감염성 질환 진단은 보통 하루 이상 걸리는 배양 검사가 필요한데, 개발도상국의 경우 큰 병원에서만 가능해 검사에만 1~7일이 소요된다. 작은 의원에서는 일단 증상만으로 항생제를 처방하는 경향이 있어 진단이 잘못됐을 경우 항생제 내성만 생기게 돼 치료비용이 커진다.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여러 처리 기술을 하나의 회로에 쌓아올린 칩 위의 실험실’(랩온어칩)을 개발했다. 하지만 칩 안에 시료를 이동시키려면 복잡한 펌프와 회전장치 등 제어장비가 필요해 전기가 부족한 오지 등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웠다.

기초과학연구원 연구팀이 장난감 피젯 스피너’(왼쪽)를 연상시키는, 전기 없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세균 진단용 스피너를 발명했다.

연구팀은 작은 힘으로도 빠르게 오래 회전하는 피젯 스피너장난감에 착안해 손으로 돌리는 미세유체칩을 구상했다. 피젯 스피너는 베어링을 중심으로 본체를 돌리는 손바닥 크기의 장난감으로, 한 번 돌리면 몇 분 동안 돌아가 2017년께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진단용 스피너에 소변 1를 넣고 한 두 번 돌리면 필터 위에 병원균이 100배 이상 농축된다. 여기에 시약을 넣고 기다리면 살아 있는 세균의 농도를 색깔에 따라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세균 종류도 알아낼 수 있다. 또 세균 검출 뒤에는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졌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한 두 시간이면 끝난다.

연구팀은 인도 티루치라팔리시립병원에서 자원자 39명을 대상으로 병원의 배양 검사와 진단 스피너 검사를 각각 진행해 세균성 질환을 진단했다. 진단스피너 검사는 1시간 이내에 끝났고, 병원에서 배양에 실패한 경우까지 정확히 진단해냈다. 만약 현지에서 보통의 처방을 했다면 59%에 이르렀을 항생제 오남용 비율을 0%로 줄일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논문 공동 제1저자인 아이작 마이클 연구위원은 진단용 스피너는 개당 600원 정도에 불과하고 비전문가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 논문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 19일치에 게재됐다. < 이근영 기자 >

 

 

문 대통령 “5·18 진상규명, 처벌 아닌 바른 역사 기록에 목적

 405.18 민주화운동 참석, 기념사서 국가폭력 진상규명 의지 밝혀

                  

문재인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국가 폭력의 진상을 반드시 밝혀낼 것이라며 이는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백한다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을 향해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광주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발포 명령자 규명과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헬기 사격의 진실과 은폐·조작 의혹과 같은 국가 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도 5·18의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진실이 하나씩 세상에 드러날수록 마음속 응어리가 하나씩 풀리고, 우리는 그만큼 더 용서와 화해의 길로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왜곡과 폄훼는 더는 설 길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진상규명의 목적이 책임자 처벌에 있는 게 아니라 올바른 역사 기록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백한다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전두환 전 대통령을 포함해 신군부 세력의 반성과 고백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5월 정신이 타인의 고통에 호응하는 평범한 정신이 모인 것이며 지금도 살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오월 정신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희망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걱정하는 마음이 모여 정의로운 정신이 되었다라며 그 정신은 지금도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깃들어 코로나 극복에서 세계의 모범이 되는 저력이 되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병상이 부족해 애태우던 대구를 위해 광주가 가장 먼저 병상을 마련했고, 대구 확진자들은 건강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라며 오월 어머니들은 대구 의료진의 헌신에 정성으로 마련한 주먹밥 도시락으로 어려움을 나눴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오월 정신이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정신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는 위기는 언제나 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하다라며 우리의 연대가 우리 사회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고, 그들이 일어날 수 있을 때 위기를 극복하는 우리의 힘도 더 강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거듭 5·18 민주화운동 정신이 우리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으로 헌법에 명문화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표시했다. 그는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을 새기는 것은 5·18을 누구도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라며 “2018, 저는 ‘5·18민주이념의 계승을 담은 개헌안을 발의한 바 있다. 언젠가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그 뜻을 살려가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개헌안 전문에 5·18과 함께 4·19, 부마항쟁, 6월 항쟁 등을 넣었다.

"세월은 흘러도 산천은 안다" 5·18 40주년 기념식 거행

신군부에 맞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5·18민주화 운동 40주년 기념식이 18일 거행됐다.

기념식은 이날 오전 10시 광주 5·18 민주광장(옛 전남도청 앞)에서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를 주제로 열렸다.

19975·18민주화운동이 정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그동안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기념식이 열렸으나 올해는 처음으로 항쟁지인 5·18민주광장에서 개최됐다.

기념식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국가 주요 인사, 5·18민주유공자 및 유족 등 400여명만이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8년과 2019년에 이어 취임 후 세 번째 5·18 기념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발포 명령자와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헬기사격 등 국가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이제라도 용기 내 진실을 고백한다면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5·18 진상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도 기념식장을 찾았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함께 5·18 영령을 추모했다.

기념식은 방송인 김제동의 사회로 도입 영상, 국민 의례, 경과보고, 편지낭독, 기념사, 기념공연,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 순서로 진행됐다.

'26,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5·18을 소재로 한 영화를 활용한 도입 영상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김용택 시인이 40주년 기념식을 위해 지은 시 '바람이 일었던 곳'을 문흥식 5·18 구속부상자회장이 묵념사로 낭독했다.

경과보고는 5·18 유가족인 남녀 대학생이 낭독했다.

이어 5·18 당시 남편 임은택(사망 당시 36) 씨를 잃은 부인 최정희(73) 씨가 남편을 찾아 헤맨 지 열흘 만에 광주교도소에서 암매장 상태로 발견했던 사연을 편지로 전했다.

기념공연에서는 작곡가 정재일과 영화감독 장민승이 5·18 40주년을 맞아 미래 세대에게 5·18의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뜻을 담아 제작한 23분 길이 영상 '내 정은 청산이오'가 최초로 공개됐다.

출연진과 풍물패가 무대와 옛 전남도청 옥상에 올라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헌정 공연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과 참석자들은 행사 마지막에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5·18 기념일은 1980년 신군부 세력을 거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며 일어났던 5·18민주화운동의 민주·인권·평화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지난 199759일 제정됐다.

늙었다고 모른척 말아요5·18기념식 오른 최정희씨 사연

남편 임은택씨, 암매장된 채 발견 30대에 홀로 세자녀 키우며 고생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편지 낭독을 마친 최정희씨를 부축하고 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우리 남편과 폭도 집안으로 몰려 고통받고 살았던 우리 식구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옵니다.”

18일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무대에 오른 최정희(73)씨는 남편 임은택(사망 당시 35)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한 맺힌 40년 세월을 토로했다.

부산이 고향인 최씨는 국제시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전파상을 운영하며 세 아이도 얻었다. 1978년 부부는 임씨의 고향인 전남 담양군 대덕면에서 소를 키워 팔기 위해 이사했다.

5·18민주화운동이 한창인 1980521일 오후 임씨는 소 판매대금을 수금하기 위해 마을 주민 고규석(당시 37), 이승을(40), 박만천(나이 미상)와 픽업트럭에 타고 광주로 향했다. 광주에서 난리가 났지만 군인들이 빠져나가 안전하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각자 볼일을 마친 일행은 귀가하기 위해 옛 광주교도소로 향했고 갑자기 사격을 받았다. 총알 4발을 맞은 임씨와 고씨는 중상을 입어 쓰러졌다. 다리를 맞은 박씨와 총알이 스쳐 지나간 이씨는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이튿날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최정희씨는 이씨 등을 찾아 자초지종을 들었고, 군인들이 남편을 치료해줬을 것이라는 믿음에 고씨의 아내 이숙자씨 등과 광주에 있는 병원으로 찾아다녔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사연이 소개된 희생자 임은택씨.

하지만 1980530일 광주시청으로부터 광주교도소 인근 야산에 암매장된 임씨와 고씨의 주검을 발굴했다는 연락을 받으며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임씨 주검은 구두 한짝과 팬티만 입고 있었고 온몸에 피멍 자국이 있어 죽기 직전 군인들이 구타한 것으로 추정됐다.

시댁 식구들은 임씨를 담양 창평면 선산에 안장했다. 분통함을 풀 길이 없었던 최씨는 매년 5월이 되면 광주 북구 망월동 묘역을 먼저 들러 다른 희생자 가족들과 슬픔을 나눈 후 남편의 묘를 찾았다. 1997년 국립5·18민주묘지가 준공됐을 때 최씨는 남편과 다른 영령들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가족들을 설득해 이장했다.

33살의 나이에 홀로 세 아이를 키워야 했던 최씨는 한때 친정이 있는 부산으로 가기도 했지만 경찰의 집요한 감시에 다른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담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수금해야 할 돈은 누구한테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고 오히려 남편이 빌린 돈은 가지고 있는 소를 다 팔아도 갚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최씨는 홀로 국밥집을 하며 간신히 자녀를 키웠다. 이날 기념식에서 최씨는 젊어서 3남매 키우며 살기 팍팍했다. 한땐 먼저 떠난 당신이 원망스러웠다. 여보 다시 만나는 날 내가 너무 늙었다고 모른 척하지 말고 3남매 반듯이 키우느라 고생했다고 칭찬 한마디 해주시길 바란다. 우리 다시 만나는 날까지 부디 안녕히 계시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2017년 제37주년 5·18기념식부터 5·18로 인해 가족을 잃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을 초청해 시대적 아픔을 전달하고 있다. < 김용희 기자 >


가운뎃줄 오른쪽 다섯째가 최예섭 준장. 맨 아랫줄 왼쪽 다섯째가 보안사령관 전두환.

                           

김기석 전교사 부사령관 19805월 메모

전남도청 무기회수 작전 등 상세히 적혀

최 실장 주민증 3장 위조해 도청 작전 활용

                  

5·18 당시 최고 실권자였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최측근 최예섭 보안사령부 기획조정실장이 광주에서 각종 작전기획에 직접 개입했을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이 나왔다. 보안사령부가 전남도청 안 폭약 뇌관을 제거하는 막후작전을 위해 주민등록증 위조까지 의뢰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폭약 뇌관 제거가 실제로 이뤄졌고 이는 마지막 광주 진입작전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신군부의 진압 과정을 규명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자료다.

1<한겨레>가 입수한 김기석(1931~2010) 당시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부사령관이 쓴 수습대책위 위원 접촉사항이라고 적힌 메모지에 1980524일 회의 참석자로 ‘GEN, choi(ASC)’라고 적은 내용이 담겨 있다. ASC는 육군보안사령부를, GEN은 장군(General)을 의미한다. 영문 choi는 최예섭(1929~2019) 보안사 기획조정실장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김기석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부사령관이 쓴 수습대책위 위원 접촉사항이라고 적힌 메모.

19805·18 때 광주에 온 보안사 장군은 최예섭 기획조정실장(준장)뿐이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2·12 5·18 검찰 수사(1995) “519일 최 기획실장이 광주의 보고가 잘 안되니 직접 내려가 파악해 보고하겠다며 자원했다고 진술했다. 최 기획실장은 505보안대 분실과 전투교육사령부 사무실 등 2곳을 보안사령부 광주분실로 사용했다. 최 기획실장은 홍성률 1군단 보안부대장, 최경조 보안사 대령(광주전남합동수사본부장)과 함께 5·18작전지침을 세우는 3인방의 수장 격이었다.

김기석 전교사 부사령관의 메모는 당시 보안사가 시민군의 거점인 전남도청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막후공작을 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524일치 메모엔 ‘17~20시 무기관리학생 A, B, C, D와 접촉이라고 적혀 있어 몇명 대학생들한테서 정보를 받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524일은 계엄군이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했다가 무장 시민군들에게 무기 반납을 종용하며 상무충정작전(진압작전)을 짜고 있던 시점이다. 계엄군이 광주 진압 작전을 세우던 525일 메모엔 오전 10‘A학생으로부터 작전 완료. 뇌관은 별도 마대에 넣어 분리 저장이라는 보고 내용도 적혀 있다. 실제 당시 도청 지하 군 무기고에 시민군이 보관해둔 폭약 뇌관 2288개와 수류탄 신관 279, 최루탄 170, 다이너마이트 2100개의 뇌관들은 누군가에 의해 제거된 상태였다. 무기 회수에 반대했던 강경파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뇌관이 제거된 직후인 525, 전두환 신군부는 진압작전 개시 시점을 ‘52701분 이후로 결정했다. 공작 성공 후 마지막 진압작전을 벌였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19805·18 진압작전 이후 전남도청 앞 특전사령관 정호용.

이 메모와 관련해 최 기획실장이 진압작전을 앞두고 전남도청에 누군가를 잠입시키려고 했다는 서의남 광주 505보안대 중령의 진술도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한다. 서 중령은 1995년 검찰 조사에서 최예섭 대령(준장을 오해한 것으로 보임)이 도청에 위장침투하려고 한다고 해 위장 주민등록증 3개를 만들어줬다고 진술했다. 서 중령은 당시 도청에 총기류와 폭약 등이 많이 있어 위험하니 총기의 공이 등을 제거하기 위해 도청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았다.

서의남 광주 505보안부대 중령 검찰 진술.

5·18 연구자인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최예섭 기획실장 등 서울에서 내려온 보안사령부 사람들이 큰 틀의 방향을 설정하고 사실상 진압작전 등을 뒤에서 기획했다. 김기석 부사령관의 메모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최 기획실장 등 보안사 3인방을 통해 5·18을 사실상 컨트롤했다는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건이라고 말했다.

보안사 최예섭, 권총 뽑아 공식 지휘라인김기석에 달려들어

김기석 부사령관 메모 군 지휘권 이원화 방증

최예섭 등 전두환 복심 3인방이 5·18 진압 막후 컨트롤타워 구실

무장헬기까지 적시된 메모 폭도 시외 도주’ ‘코브라-장갑차

<한겨레>가 입수한 김기석 당시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부사령관(소장)의 메모는 5·18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최예섭 보안사령부 기획조정실장(준장)과 홍성률 1군단 보안부대장(대령), 최경조 보안사 감찰실장 등 전두환의 복심’ 3명을 이용해 5·18 상황을 통제했다는 그동안의 의혹을 방증하는 자료다. 공식 지휘계통에 없던 이들 삼인방은 별도의 작전지침을 통해 5·18 진압작전 과정에서 컨트롤타워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기석 부사령관의 메모는 12·125·18 검찰 수사(1995) 때 확보된 것이다. 김 부사령관은 (자신의 계급인) 별 모양 두개가 그려진 메모지에 5·18 당시 상황을 한자를 섞어가며 기록해두었다. ‘GEN, choi(ASC)’519일 헬기를 타고 광주로 온 최예섭 보안사 기획실장으로 보인다.

김기석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부사령관이 쓴 수습대책위 위원 접촉사항이라고 적힌 메모.

보안사는 화순탄광에서 빼내 전남도청 지하실에 보관하고 있던 다이너마이트 등 폭약을 제거하는 데 큰 관심을 쏟았다. 최예섭 기획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524일 회의의 토의 내용은 일차적으로 수류탄을 뇌관과 분리’, ‘도청내 정황 연락등이었다. 대책으론 수류탄 분리작업을 위한 기술문관 진입’, ‘문관 배승일 수행등의 메모가 눈에 띈다. 신군부가 광주 상황을 진압하기 위한 상무충정작전 계획을 최종 승인한 525일엔 ‘10:00 A학생으로부터 작업 완료라고 적혀 있다. 5·18 이후 배승일 군 기술문관은 공로를 인정받아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형석(통일과역사연구소 소장) 박사는 2017‘19805, 광주를 구한 10인의 의인들이란 글을 통해 “523일 자연스레 결성된 폭약관리반(9)은 도청 지하실의 폭약이 폭발하면 시민과 계엄군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폭약 뇌관을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폭약관리반의 행동은 계엄군과의 내통이라기보다 시민을 위한 충정이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19805·18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붙잡혀 재판을 받고 있는 고 명노근 전남대 교수(왼쪽 셋째).

김기석 부사령관의 또 다른 메모 작전일지’ 522일치에는 ‘12시 수습위 대표자 10명 도지사 계획관 인솔 도착이라는 대목도 있다. 이는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회 관계자 10명이 전교사에서 계엄군과 수차례 회의를 했다는 뜻이다. 524일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일원으로 전교사를 찾은 고 명노근 전남대 교수는 이때 최예섭 보안사 기획실장과 김기석 부사령관이 서로 총을 들이대며 충돌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명 교수는 <광주5월민중항쟁사료전집>에 실린 구술을 통해 어제 합의하지 못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부사령관실을 찾아갔는데 전투복 차림을 한 준장들 3, 4명이 들어왔다. 우리는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갑자기 그들의 대화 도중 언성이 높아지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서울서 내려온 장성 한 명이 부사령관을 향해 권총을 뽑아 들고 쏠 듯이 달려들었다. 부사령관도 권총을 들이댔다.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양쪽 부관들이 서로 말리자 장성은 얼굴을 붉히며 사령관실을 나갔다고 증언했다. 그간 소장에게 총을 들이댄 서울에서 온 준장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김기석 장군의 메모에 적혀 있는 제너럴 최’(최예섭 기획실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김기석 부사령관의 또 다른 메모 524일치에도 무장헬기와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다.

보안사와 전교사 간 권총 충돌은 지휘권 이원화가 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육군본부-2군사령관-전교사-31사단-공수여단이라는 정식 지휘계통과 달리 당시 보안사-특전사-공수여단을 통해 5·18 발포명령 등 중요한 지휘가 이뤄졌다는 그동안의 의혹과 맞물려 있다. 명 교수는 광주 지역의 군관들은 시민 대표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되도록이면 좋은 방향으로 수습하려고 하는 반면, 서울 지역 군관들은 강경으로 밀어붙이려는 의도에서 총을 들이댄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고 지적했다. 당사자인 김 전 부사령관과 최 전 실장은 각각 2010, 2019년 세상을 떴다.

무장헬기 동원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김기석 부사령관의 524일치 또 다른 메모도 중요하다. 이 메모엔 폭도시외로 도주 경향/ 코부라에이피시(장갑차)/ 500엠디차량/ 인원병력이라고 적혀 있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시외로 도주하는 폭도들 중 장갑차를 탄 시민군은 코브라 헬기로, 차량을 탄 시민군은 500엠디로, 그냥 시민군은 병력으로 대응하라는 내용으로 보인다고 했다. 20182,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도 당시 40여대의 헬기 중 공격헬기 500MD와 기동헬기 UH-1H를 이용해 521일과 27일 여러차례 사격을 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시민군에 공이 빠진 빈총도보안사, 5·18 막후공작 벌였나

공이 빠진 총” “뇌관 제거 몰라보안사 협조’”

 

        김기석 전투교육사령부 부사령관의 메모 내용.

“5·18 당시 보안사가 주도한 각종 작전이나 막후공작 여부 등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져야 합니다.”

19805·18 당시 시민학생투쟁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종배(64) 전 국회의원은 17“527일 새벽 전남도청 지하실에서 박남선 상황실장과 내가 시민군들에게 총기를 지급한 뒤, 나도 한정 갖고 올라갔는데 공이가 빠져 있는 빈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시작되기 전 시민군 쪽 소총과 폭약류의 뇌관이 제거돼 있었다는 사실을 군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알았다. 김 전 의원은 이미 총을 갖고 있었던 시민군들 외에 일부는 빈총을 들고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김기석(1931~2010)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부사령관(소장)523일 메모엔, ‘도청 무기류 폭약 집결 감시, 학생 2명 포섭이라고 적혀 있다. 도청 무기 실태는 소총 1500~2000, 수류탄 700여발, 폭발물 티엔티 300C/B, 뇌관 20000여개로 기록돼 있다. 521~26일 계엄사와 학생수습위원회 사이에 진행된 대화보고 내용등이다.

1980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거점이었던 전남도청 안.

김 전 의원은 당시 학생수습위원회 위원장 김아무개가 의도적으로 공작에 의해 도청 안으로 들어왔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그가 (수습위원회 일원으로) 계엄사와 만나 입장을 들으며 무서워했을 것 아니냐?”온건파는 처음부터 무기를 반납하자고 했고, 받아들일 수 없어 지도부에서 그들을 축출했었다고 회고했다.

시민학생투쟁위 상황실장이었던 박남선(66)씨도 군이 적극적으로 막후작전을 펼쳤다고 보는 쪽이다. 그는 “‘오열’(간자)들이 침투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총기) 뇌관을 제거했다. 군 출신이 시민군 무기고에 들어온 것은 보안사와 협조하에 이뤄진 작전으로 본다만약 우리도 모르게 뇌관이 제거되지 않았다면 군이 그렇게 쉽게 수많은 시민을 죽이면서 진압작전을 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실장은 “524일 밤에 (온건파 학생들을 축출한 뒤 시민학생투쟁위를 함께 만들었던) 윤상원(시민학생투쟁위 대변인·1950~1980)에게 설득당해 도청 밖에 있던 대학생 등을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윤상원은 목소리에 상당히 힘이 있고 논리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전 의원도 윤상원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지속해서 싸우기 위해서는 지도부를 다시 결성해야겠다고 판단해, 525일 저녁 와이더블유시에이에 있던 대학생 등 100여명이 도청으로 들어오도록 했다고 말했다.

계엄군 ‘5·18 도청진압 때 무장헬기 투입사전 계획했다

전교사 충정작전계획’ 527일 최종 진압작전 무장헬기 5대 투입 계획

1980527일 광주 진압 작전에 무장 헬기를 편성했다는 내용(붉은 사각)이 담긴 전교사 충정작전계획’.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1980521일뿐 아니라 27일 옛 전남도청 진압작전에도 무장 헬기 사용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계엄군이 헬기 사격을 지시했다는 진술과 기록은 있었지만, 27일 도청 진압작전을 앞두고 무장 헬기 편성을 사전 계획한 문건이 확인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 당시 무장 헬기 사용을 부인하는 전두환씨의 발언을 배척하는 자료가 또다시 발견되면서 관련 재판에 끼칠 영향도 주목된다.

2<한겨레>가 입수한 전교사 충정작전계획을 종합하면 계엄사령부는 1980527일 광주 일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광주 재진입 작전(충정작전)500MD 무장 헬기 5대를 편성했다. ‘전교사 충정작전계획은 진압부대 운용, 작전 세부방침 등이 담겨 있다.

충정작전계획의 임무 및 전투 편성항목에는 500MD20사단에 2(무장 1), 31사단에 3(2), 35사단에 1, 3공수여단에 2(1), 11공수여단에 2(1) 배정한 것으로 적혀 있다. 문건 작성자는 ‘500MD: 2(무장1)’라고 써놓는 방식으로 일반 헬기와 무장 헬기를 명확히 구분했다. 500MD5·18 당시 육군 1항공여단 31항공단에서 운영한 헬기 중 하나로, 기관총이나 로켓, 토우 미사일 등을 장착하는 공격형 헬기다.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출신들은 1997년 검찰 조사나 2018년 국방부 조사 등에서 5·18 당시 광주에 무장한 500MD를 투입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정찰이나 지휘 용도로 운영했을 뿐 사격은 하지 않았다고 부인해왔다.

500MD 헬기.

하지만 이번 문건을 통해 당시 공격용 헬기와 정찰·지휘용 헬기를 구분해 활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5·18 연구자들은 특수공격조가 작전에 실패하거나 시민군의 강한 저항에 부딪힐 경우에 대비해 무장 헬기를 편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전교사 작전일지에는 1980527일 새벽 4513공수여단이 무장 헬기 지원을 요청했다고 기록돼 있다. 김희송 전남대5·18연구소 연구교수는 “500MD를 구분해 편성했다는 것은 1대는 지휘용, 나머지는 공격용으로 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진압 작전에 임박해서 작전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배분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운용하기 위해 정확히 적어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부에선 전일빌딩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이 이 과정에서 생겼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무장 헬기가 출동은 했는데 사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27일 새벽 3공수여단이 무장 헬기 지원요청을 한 만큼 전일빌딩의 총탄 자국도 500MD 사격 때문에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한편, 5·18 헬기 사격 여부가 쟁점인 전두환씨의 사자명예훼손사건 재판은 27일 광주지법에서 전씨가 출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전씨는 5·18 헬기 사격을 증언했던 고 조비오 신부를 자신의 회고록에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헬기 사격을 입증하는 자료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 정대하 김용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