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강’ 치닫는 위기국면… 중국·박근혜 정부 행보 관건
한반도가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치킨게임’의 상황에 또다시 놓였다. 북한이 예고한 대로 3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처럼, 유엔도 더 강한 제재에 나설 것이고, 이에 대해 북한은 또 추가 대응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누가 더 위협을 두려워할까’라는 대결과 공포의 논리가 지배하는 위기 국면이 예상된다.
한·미는 유엔을 통한 금융거래 차단과 해상봉쇄 등을 포함한 포괄적 제재와 함께, 이달 하순부터 본격화할 키리졸브 연례 합동군사연습 등 강력한 군사 대응조처들을 검토할 것이다. 북한은 ‘제재는 선전포고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으며, 지난달 2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밝혔듯이 ‘핵억제력을 포함한 자위적인 군사력을 질량적으로 확대 강화하는 임의의 물리적 대응조처들’을 순차적으로 행동에 옮길 것이다.
북한은 12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서 유엔이 추가 제재를 하면 ‘무자비한 보복타격’을 하겠다며 공세적 행보를 예고했다. 북한은 여러 지역에 이동식 발사대를 배치한 데 이어,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KN-08) 시험발사 등을 할 수 있다. 4차 핵실험 카드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 당일 유엔의 향후 움직임을 겨냥해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다. 2006년 1차 핵실험과 2009년 2차 핵실험 때는 이틀이 지난 뒤 외무성 대변인 담화와 북한군 판문점대표부 성명 등을 통해 미국과 남한의 대북제재 움직임을 비난한 것에 비춰 이번엔 좀더 공격적인 모양새다.
양쪽의 정면충돌 움직임이 어느 지점에서 멈출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1994년 3월 1차 핵위기 당시 협상이 결렬되자 북한은 팀스피릿 훈련 재개 결정에 맞서 ‘서울 불바다’로 위협했다. 그로부터 불과 3개월여 사이에, 미국이 유엔 대북제재를 추진하면서 한반도는 전쟁 위기 상황으로 치달았다. 북한 선전기관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2일 뉴욕 맨해튼에 장거리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가상의 장면을 표현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이번엔 ‘뉴욕 불바다’를 경고한 것이다. 지난달 24일 북한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 성명도 이번 핵실험이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분간 긴장과 갈등은 더욱 고조될 것이다.
한·미가 ‘핵 포기냐 체제 붕괴냐’의 선택을 요구한다면, 북은 ‘전쟁이냐 북-미 평화담판이냐’로 맞서며 벼랑 끝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파국은 누구도 원치 않기에 결국 중국의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의 중재자 역할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불투명하다. 중국은 지난달 23일(한국시각) 안보리 결의 2087호를 수용함으로써 미국 손을 들어줬다. 북한은 반발했다. 6자회담의 종말을 선언했고, 중국을 ‘초보적인 원칙도 서슴없이 줴버린 나라’라고 비난했다. 게다가 중국은 핵실험에 따른 안보리 추가 제재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김숙 유엔 주재 한국대사가 밝혔듯이, 제재는 핵실험의 악순환을 끊기 어렵고 위기 해결의 수단도 될 수 없다. 특히, 중국이 적극 참여하지 않는 제재는 실효성이 없다. 마찬가지로 핵 보유가 북한 안전을 확보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미래를 보장해줄 수는 없다. 2008년 이래 김정은 후계구도 이행 과정에서 북한은 황금평·나진선봉 특구 등 중국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했다. 중국이 적극적인 대북 봉쇄에 나선다면 북한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과거와 달리 북의 핵실험 강행을 저지하기 위해 평양에 고위급 특사를 파견하지 않았다. 주중 북한대사를 초치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건 핵실험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핵실험 이후의 적극적 역할을 상정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유엔 제재가 강화되더라도 대화의 공간은 열려야 한다는 뜻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미국과의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더욱 심화시키는 한편으로, ‘한-미-중 3자 전략대화’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미가 중국과의 공동전선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에는 대북 중재가 가능한 공간을 열어주는 게 숨막히는 위기 상황의 ‘숨구멍’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강태호 기자 >
북, 3차 핵실험 결행
12일, 6~7kt 규모‥ “적대 땐 연속조치”위협
북한이 핵실험을 예고한 지 20일 만인 12일 오전, 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은 핵실험 뒤 추가 조처를 예고하며 4차 핵실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오전 11시57분께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인근에서 규모 4.9로 추정되는 지진이 관측됐다. 폭발 규모는 6~7kt(TNT 환산량)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앙의 위치는 북위 41.17도, 동경 129.18도로 분석됐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북부지하핵시험장”에서 실시한 이번 핵실험이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하여 높은 수준에서 안전하고 완벽하게 진행”됐고 “(폭발 관련) 측정 결과들이 설계값과 완전히 일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세훈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핵이 소형화·경량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이어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내어 “이번 핵시험은 1차적 대응조치”라며 “미국이 끝까지 적대적으로 나오면서 정세를 복잡하게 만든다면 보다 강도 높은 2차, 3차 대응으로 연속조치를 취해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정부 성명을 내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밝혔다. 천 수석은 또 북한의 군사도발 가능성과 관련해 “현재 개발중인 북한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미사일을 조기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새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강력한 억제력을 토대로 국제사회와 공조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핵실험 확인 1시간 만에 심야 성명을 내어 “지역 안정을 해치고,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행위”라며 “북한의 도발을 감시하고 역내 동맹에 대한 방어태세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에서 “북한 핵실험에 강력히 반대한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키고 사태를 악화시키는 행동을 취하지 않기를 강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 박병수 선임기자, 워싱턴 박현·베이징 박민희 특파원 >
6~7kt 위력‥ 2차처럼 ‘부분 성공’에 무게
12일 북한이 실험한 원자탄은 최대 위력이 일본 히로시마에서 사용된 원자탄의 절반 수준으로, 통상적인 규모보다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작은 규모가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에 따른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이번 핵실험의 인공지진파는 리히터 규모 4.9로 관측됐으며, 이것의 핵무기 위력은 6~7㏏(킬로톤)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것은 통상 핵무기의 최소 위력인 10~20㏏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어서 핵실험이 2009년 2차 핵실험 때와 마찬가지로 부분적 성공에 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의 2006년 1차 핵실험 때는 핵무기의 위력이 리히터 규모 3.9, 1㏏으로 분석돼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규모의 핵무기는 재래식 폭탄을 쌓아놓고 실험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게 국방부 관계자의 얘기다. 2009년 2차 핵실험 때는 리히터 규모 4.5, 2~6㏏으로 추정돼 부분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 핵무기의 위력은 모두 지진파 규모를 근거로 추정한 것이며, 북한 당국이 이를 공식 확인한 적은 없다.
이번 핵실험의 추정 규모 6~7㏏은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고농축 우라늄 원자탄의 위력인 16㏏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위력이 6~7㏏이라고 해서 결코 작은 것은 아니다. 히로시마에서는 16㏏의 원자탄으로 당시 인구의 절반가량인 9만~16만명이 폭발력과 방사능 낙진으로 4개월 안에 사망했다. 인구 20만명 정도였던 나가사키에서는 21㏏의 위력으로 4만명이 사망했다.
서울에 핵폭탄이 투하되면 히로시마나 나가사키보다 훨씬 큰 피해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천연자원보존협회에서 2004년 발표한 ‘한반도에서의 핵 사용 시나리오’를 보면, 히로시마급 핵폭탄이 군 지휘부가 밀집한 서울 용산에 떨어지면 4개월 안에 84만~125만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폭발 지점에서 지름 1800m 안은 초토화하고 4500m 안은 반파된다.
< 김규원 박병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