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단속 항의 시위에 무력진압 시사
뉴섬 주지사 “과도하고 전례 없다”

9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있는 연방청사 건물 앞을 경찰과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이 지키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9일 해병대 약 700명을 로스앤젤레스로 이동시킨다고 발표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날 투입된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 2000명에 추가되는 병력이다. 주방위군 동원을 넘어 연방 군대를 시위 대응에 투입하는 건 중대한 단계 전환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동한 병력이 실제 현장에 배치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미 북부사령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캘리포니아 트웬티나인팜스 기지를 기반으로 한 제1해병사단 제2대대 7중대 병력이 로스앤젤레스에 배치돼 연방 시설 및 요원 보호를 위해 주 방위군과 “매끄럽게 통합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해병들은 군중 통제와 상황 완화, 무력 사용 규칙 교육을 받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소셜미디어 엑스에 글을 올려 “연방 법 집행 요원과 연방 건물을 향한 위협이 증가함에 따라 해병대가 배치되고 있다”며 “우리는 연방 요원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개빈 뉴섬 주지사가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라고 비난했다. 뉴섬 주지사 대변인실은 엑스를 통해 “미군 최고의 병력을 자국민에게 동원하는 것은 과도하고 전례 없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다만 동원된 해병대가 실제로 배치될지, 아니면 대기 상태로 남을지는 불분명하다. 에이비시(ABC) 뉴스와 로이터통신 등은 해병대가 연방 건물 보호 등의 ‘지원 임무’를 맡을 예정이며, 직접적인 치안 집행은 담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도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은 ‘폭동진압법’을 발동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군은 체포와 같은 법 집행 권한이 없다. 따라서 대통령이 ‘폭동진압법’을 발동하지 않는 한 국내 치안 임무에 투입될 수 없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회의에서 “아직 해병대 배치는 결정하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지금 상황은 통제되고 있으며, 우리의 개입이 없었다면 대재앙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시엔엔(CNN)에 해병대가 일반적으로 남부 국경 경계 업무를 일부 지원한 적은 있어도, 이번처럼 도심 내에 동원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로스앤젤레스에는 현재 300여명의 주 방위군 병력이 배치된 상태이며, 나머지 병력은 오는 11일까지 도착할 예정이다.

 

9일(현지시각) 시위대가 로스앤젤레스의 엘 푸에블로 데 로스 앙헬레스 역사 기념지에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생방송 인터뷰에서 뉴섬 주지사를 체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뉴섬 주지사가 국경 단속 책임자인 톰 호먼에게 자신을 체포하라고 도발했다. 호먼이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톰이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 발언은 뉴섬 주지사가 전날 밤 엠에스엔비시(MSNBC)와 인터뷰에서 “호먼은 나를 체포해보라”고 한 발언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다만 백악관은 뉴섬 주지사의 체포를 실제로 논의하거나 계획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대변인 캐럴라인 레빗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뉴섬 주지사가 연방 정부의 법 집행을 방해한다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를 상대로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주 방위군 로스앤젤레스 배치가 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 로스앤젤레스/김원철 특파원 >

 

트럼프 장남 ‘한인자경단’ 소환에 한인회 “경솔한 행동”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이민 단속 반대 시위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경찰들에게 해바라기를 건네고 있다. 로이터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이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 사태 당시의 한인 자경단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을 두고, 로스앤젤레스 한인회가 부적절하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회는 9일 낸 성명에서 “LA에서 아직까지 소요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33년 전의 LA 폭동 당시 ‘루프탑 코리안’을 언급하며, 이번 소요 사태를 조롱하는 게시물을 엑스(X·옛 트위터)에 게재하는 경솔함을 보였다”고 했다. 앞서 트럼프 주니어가 “루프탑 코리안을 다시 위대하게(Make Rooftop Koreans Great Again!)”라는 문구와 함께 사진 한 장을 올린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사진엔 한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건물 옥상에서 총기를 손질하는 모습이 담겨 있고, ‘한인들이 옥상에 오르자 폭동이 멈췄다’는 뜻의 문구가 적혀 있다. ‘루프탑 코리안’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당시 총으로 무장한 채 옥상에 올라 코리아타운을 약탈로부터 지켰던 한인 자경단을 의미한다.

 

트럼프 주니어가 이 사진을 올린 것은 33년 전 로스앤젤레스가 무법지대로 변했던 폭동 사태를 연상시킴으로써, 이번 이민 단속 반대 시위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옹호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게다가 한인들이 직접 총기를 들고 무력 대응에 나섰던 점을 추켜세움으로써, 이번 시위도 무력으로 진압을 해야 한다는 암시를 풍기고 있다고 해석될 여지도 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회는 “현 대통령의 장남이자, 약 150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이기도 한 그의 행동은 살얼음과 같은 지금 시기에 엄청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며 자제를 촉구했다. 또 “한인들의 지난 트라우마를 어떤 목적으로든 절대로, 절대로 이용하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회는 지난 6일엔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된 연방 정부의 이민 단속 급습에 대해 비판하는 성명도 낸 바 있다. 당시 연방 이민세관국 요원들은 한인 의류업체 등을 급습해 영어가 부족하거나 당장 신분 증명이 어려운 이들까지 체포하거나 억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공화당 인사들도 이번 이민 단속 반대 시위를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과 연결짓는 발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1992년 로드니 킹 사건 경찰 무죄 평결로 인해 인종 차별·경찰 폭력이 문제가 돼 발생했던 로스앤젤레스 폭동 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뉴욕타임스 등은 지적한다. 당시 경찰이 로드니 킹을 잔혹하게 구타하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되며 흑인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로스앤젤레스는 6일간 통제 불능 무법지대가 됐다. 거기에 당시 흑인과 한국계 커뮤니티 간 갈등까지 더해져, 코리아타운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는 등 한인 사회에선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뉴욕타임스는 “1992년의 광범위한 폭력 사태와 비교하면 2025년은 거의, 아니 전혀 다르다”며 “시위자들은 분노를 주로 이민세관국 단속에 표현하고 있고 다른 주민들에게는 표출하지 않고 있다”고 썼다. 시위가 일어나는 곳도 이민세관국과 가까운 일부 도심에 국한돼 있다. 로스앤젤레스 전역이 마비됐던 33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연방정부의 이민자 단속에 반대하며 이번 시위의 주축이 된 이들이 라틴계 이민자라는 점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라틴계는 로스앤젤레스 주민의 다수를 점하고 있으며, 실제로 로스앤젤레스 경찰의 절반가량이 라틴계다. < 정유경 기자 >

 

트럼프, LA에 “주방위군 2000명 추가 투입” 명령

해병대 700명까지 도합 4700명 

 
9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전용 별장이자 해군 시설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백악관으로 출발하기 전, 캠프 데이비드 잔디밭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추가로 2000명의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을 투입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이 지역서 이민 단속 반대 시위에 직면한 이민세관단속국(ICE)을 지원하라는 것인데,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로스엔젤레스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군 병력은 해병대까지 합치면 도합 4700명에 달한다.

 

국방부 대변인 션 파넬은 9일(현지시각) 엑스(X)에 글을 올려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국방부는 연방 임무 수행을 위해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2000명을 추가 동원 중이며, 연방 이민 단속과 법집행 임무 수행을 안전하게 지원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앞서 7일 트럼프 대통령은 2000명의 주방위군을 투입하라고 명령했는데, 거기에 또 2000명이 더해지는 것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트럼프는 혼란을 유발하려고 미국 땅에 4000명의 군인을 보내고 있다”고 비판하는 한편, 트럼프에게 명분을 줘선 안된다며 거듭 평화 시위를 촉구했다. 그는 “트럼프가 부추긴 혼란을 틈타 이익을 취하려는 어리석은 선동가들은 반드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서로를 지키며, 침착하고 안전하게 행동하라”고 주민들에게 당부했다.

 

한편 이날 오전 미 국방부는 연방군인 해병대 약 700명을 로스앤젤레스로 이동시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방위군 동원을 넘어 연방 군대를 시위 대응에 투입하는 건 중대한 단계 전환으로 평가된다. < 정유경 기자, 로스앤젤레스/김원철 특파원 >

 

“LA 군 투입, 계엄령의 서곡”…트럼프가 노리는 것

‘혼란 유발-권력 장악’ 시나리오 경계 촉구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연방정부의 이민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 중, 시위 참가자가 캘리포니아주 고속도로순찰대원(CHP)들과 마주 서서 미국 국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
 

“트럼프에게 이것은 예행연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방위군을 로스앤젤레스에 투입한 것을 두고 ‘계엄령’을 겨냥한 예행연습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자신의 집권에 위협이 감지될 경우, 어떻게 군을 동원해 대응할 수 있을지 ‘시나리오’를 미리 시험해 보고 있다는 것이다.

 

군대는 치안 맡을 수 없는데…트럼프, 왜?

 

미 월간지 애틀랜틱은 8일(현지시각) 보도에서 로스앤젤레스 이민 단속 반대 시위에 주방위군을 투입한 것은 정말로 질서를 회복시키겠다는 목표가 아닌, ‘비상사태’의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캘리포니아주는 7만5천명 이상의 경찰 인력을 보유, 실제로 치안력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었다. 로스앤젤레스경찰청(LAPD)만 따져도 9천명이다. 시위 초반 돌을 던지거나 차량 통행을 방해하는 수준의 시위대는 주정부 차원에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트럼프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지원이 필요 없다는 데도 논란을 무릅써가며 주방위군을 2천명 투입했다. 9일에는 로스앤젤레스에 해병대까지 파견하기로 했다. 미 북부사령부가 이날 낸 성명을 보면 해병대원 약 700명이 투입돼 이미 배치된 주방위군과 함께 활동하게 된다. 전날 피트 해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폭력이 계속되면” 해병대를 투입할 태세가 갖춰졌다고 할 때만 해도 곧바로 정규군을 보내리라는 관측은 많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시위가 격화되어 7만5천명으로는 턱도 없다면, 주정부가 먼저 연방 지원을 요청했을 것이다. 실제 올 초 대형 산불 당시 주정부는 연방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마지못한 태도를 보였다. 반면 이번엔 주정부도 로스앤젤레스시도 거부한 ‘지원’을 트럼프 행정부가 먼저, 그것도 강제로 밀어붙였다. 군 투입 소식은 오히려 “불길에 기름을 붓는”(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형국이 됐다. 사흘째 시위는 한층 규모가 커졌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군대가 국내 치안을 맡아선 안 된다. 연방군의 국내 정치 개입을 제한한 ‘포스 커미타투스 법’ 위반이 된다.

 

군대가 국내 치안을 맡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단 한 가지, 반란이 일어났을 때뿐이다. 반란, 폭동, 내란이 일어났을 때 행정부가 연방군 그리고 ‘연방화’된(연방군으로 편입된) 주방위군 등 군대가 경찰처럼 시위 진압, 체포 등 국내에 동원할 수 있게 예외를 두었다. 미국 연방법에선 ‘반란법(Insurrection Act)’이라고 부른다 . 한국으로 치면 ‘계엄령’과 비슷하다. 반란법 발동은 매우 드문 일이고, 정치적 ·사회적 논란이 크다.

 

“트럼프, 법적 한계 시험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기화로, 반란법을 발동하지 않는 선에서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트럼프는 지금 반란법을 발동하지 않은 채 주방위군을 투입하는 “이례적 시도”(워싱턴포스트) 중이다. 위법 소지가 있다고 개빈 뉴섬 주지사가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면 군은 시위대 체포 등 직접적인 치안 활동은 할 수 없고, 연방요원 보호 등의 제한적 임무만 수행할 수 있다.

 

이렇게 제한적인 일만 할 수 있는데 굳이 군을 투입한 이유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법률전문가를 인용해 “반란법을 적용할 경우 생길 정치적 파장을 피하려는 의도이거나, 앞으로 반란법을 적용하려는 서곡”이라고 분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반란법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고, 국경 경비를 강화하며, 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트럼프는 1기 집권 때인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시위 때 실제로 반란법 발동을 논의한 적도 있다. 하지만 당시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와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는 물론 짐 매티스 같은 전직 국방장관까지도 “반란법 발동은 최후의 수단이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번엔 반대할 사람도 없다. 트럼프 충성파들이 군과 국토안보부, 연방수사국(FBI) 등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만약 이번 시위가 격화되어 충분한 명분이 선다면, 반란법을 발동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이 우려의 골자다. 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 재선 뒤 집권 2기를 예의주시해 온 전문가들이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특정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연방 권한을 이용해 시위의 불을 거세게 지핀 뒤, 혼란이 커지면 이를 비상사태로 규정해 군 동원 및 연방정부 개입의 명분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2026년 중간선거 등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연방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하거나, 민주당 강세 지역 투표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이번 사태가 선거 관리권을 연방이 장악할 ‘위험한 예행연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반란법’ 동원은 LA 폭동 진압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당시 반란법은 실제 발동된 바 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 전역에서 폭동, 방화, 약탈, 총격 등 극심한 혼란이 발생하며 현지 경찰력만으로는 치안 유지가 불가능해지자,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공식 지원을 요청했고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반란법을 발동했다.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이 연방화되어 연방군에 들어갔고, 육군·해병대 등 연방군과 국경수비대 등 법집행인력들도 전부 로스앤젤레스로 투입됐다. 국방부가 ‘시민 소요 진압 작전’을 지휘했다.

 

정치권에서 트럼프의 ‘계엄령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 4월엔 소셜미디어에서 트럼프가 반란법을 발동해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는 루머가 널리 번지기도 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로스앤젤레스에서 폭력 시위를 하면 트럼프의 의도에 말려들어가는 것이라며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와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도 평화적인 시위를 주문하고 있다. 뉴섬 주지사는 8일 저녁 엠에스엔비시(MSNBC)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밤 여러분이 텔레비전에서 보는 상황을 만든 사람은 미국 대통령”이라고 비난하며 일부 폭력 시위에 동조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무정부주의자들이 문제를 일으키려 시위에 침투하고 있다. 트럼프의 손에 놀아나고 있는 것” “트럼프를 돕고 부추기는 방식으로 이 상황을 악용하려는 세력에 맞서야 한다”며 거듭 평화 시위를 촉구했다.  < 정유경 기자 >

 

LA 경찰, 다운타운 전체 집회금지구역 선포…“당장 떠나라”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있다. 로이터 연합
 

미국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등록 이민자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하자 다운타운 전체를 집회 금지 구역으로 선포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경찰(LAPD)은 9일(현지시각) 엑스(X)에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집회는 불법으로 선포한다. 당장 다운타운을 떠나라”는 글을 올렸다. 앞서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기물 파손, 손상 또는 약탈 행위가 발생했을 경우 로스앤젤레스 경찰에 신고하여 공식 경찰 보고서에 기록될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는 글도 올렸다.

 

 

전날인 8일 트럼프 행정부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지사 동의 없이 주 방위군을 투입해 긴장은 고조되고 시위대 수천명이 거리로 나왔다. 경찰 등은 최루탄과 고무탄 등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켰고, 이 과정에서 취재 중이던 오스트레일리아 방송 기자가 고무탄에 맞기도 했다. 8일 오후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알파벳의 자율주행차 여러 대가 불타고 시위대 일부가 콘크리트 조각 등을 경찰에 던졌다고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경찰은 일부 지역에서 집회 금지를 한 뒤 9일에 다운타운 전체로 집회 금지를 확대했다. 캘리포니아주의 또다른 대도시인 샌프란시스코에서도 8일 이민자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최소 60명이 체포됐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9일 트루스소셜에 한 남성이 건물 옥상에서 총을 들고 장전하는 사진을 올리고 ‘옥상의 한국인들(Rooftop Koreans)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적었다. 1992년 발생한 로스앤젤레스 폭동 당시의 한인들은 총기로 무장한 채 자경단을 꾸렸으며, 당시 건물 옥상 등에서 총을 들고 재산과 가족을 지키려던 한인들은 루프탑 코리안이라고 불렸다. 트럼프 주니어가 이 사진을 올린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대응을 옹호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 조기원 기자 >

 

 

 

 

 

12·3 비상계엄 선포 전날과 당일 김건희와 문자메시지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주 사의를 표명한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10일 국정원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조 전 원장은 지난 주 사표를 제출했고, 이 대통령은 이를 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일괄적으로 사표를 제출한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 가운데 내란 공범 혐의로 수사를 받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사표만 수리한 바 있다. 당시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국정 연속성과 비상 경제 점검 필요성을 들어 박 전 장관를 제외하고 나머지 국무위원 사표는 반려했다고 설명했다.

 

조 전 원장 역시 내란 연루 의혹을 받는다. 그는 12·3 비상계엄 선포 전날과 당일 김건희씨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장이 직무 연관성이 없는 대통령 부인과 연락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조 전 원장은 또 비상계엄 선포 직후 홍장원 당시 국정원 1차장으로부터 ‘정치인 체포’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내란 방조 혐의도 받고 있다.  < 서영지 기자 >

 

경찰 “조태용 내란동조…‘정치인 체포’ 보고받고도 조처 안 해”

한덕수엔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적용 검토

 
 
                        조태용 원장. 공동취재사진

 

12·3 비상계엄을 수사하는 경찰이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으로부터 ‘정치인 체포’ 보고를 받았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조태용 국정원장이 내란에 동조했다는 판단이 담긴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보고서에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 등이 내란을 방조했다는 판단도 포함됐다. 이 때문에 이후 출범할 ‘내란 특별검사팀’이 국무위원에 대한 수사를 어디까지 이어갈 수 있을 지 주목된다. 현재까지 내란 혐의로 기소된 국무위원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뿐이다.

 

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은 지난해 12월30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 내란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의 범죄 사실을 재구성한 32쪽 분량의 수사보고서를 작성했다. 경찰은 조 원장이 계엄 당일 저녁부터 대통령실 접견실에서 비상계엄 관련 임시 국무회의에 배석자 자격으로 참석해 내란 모의에 참여했고, 이후 국정원 지휘부 정무직 회의에서 내란 모의사실을 은폐했다고 봤다.

 

특히 조 원장이 홍장원 전 1차장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이 국군방첩사령부와 협조해 정치인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라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아 내란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동조했다고 수사보고서에 적었다. 특수단은 조 원장이 홍 전 1차장에게 사실상 사직을 강요해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했다고 판단하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봤다.

 

아울러 특수단은 한덕수 전 총리에게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적용을 검토했다. 경찰은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도록 용인·묵인하고 국무위원을 소집하여 비상계엄 선포 전 적법한 국무회의가 이뤄진 것처럼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것으로 외관을 형성하는 등 방조했다”고 수사보고서에 적었다.

 

특수단은 또 비상계엄 선포 직전 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이 내란을 모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도 판단했다. 특수단은 수사보고서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관한 임시 국무회의에 부의장 및 국무위원 자격으로 참석하여, 절차적·실체적 흠결이 있는 위헌적 비상계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에 동조하거나 묵비하는 방법으로 내란 모의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 강재구 기자 >

본부장급 전원 해당…당분간 '직무대행체제' 

33경호대장 · 55경비단장 파견 해제 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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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통령경호처 인사 관련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6.9. 연합
 

대통령실은 대통령경호처 본부장 다섯 명의 대기발령을 결정했다. 대통령경호처 역시 과감한 쇄신을 약속했다. 내란종식으로 가는 한 걸음을 뗀 셈이다. 내란에 관한 증거인멸 중심에 대통령경호처가 있었다는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대통령경호처가 '비화폰 삭제'와 관련해 국정원과 주고받은 연락 내역을 수사하고 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9일 오전 브리핑에서 "대통령경호처는 12·3 내란과정에서 법원이 합법적으로 발행한 체포영장 집행과 압수수색을 막으면서 사회적인 혼란과 갈등을 초래했다"며 "경호처 수뇌부는 적법한 지시를 거부하고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한 간부들을 상대로 인사 보복을 취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해야 할 국가기관이 사실상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병으로 전락해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은 오늘자로 인사위원회를 열고 12·3 비상계엄에 가담한 경호처 본부장 다섯 명을 전원 대기발령했다"며 "추가적인 인사조치가 나오기 전까지 대통령경호처는 당분간 직무대행체제로 전환된다. 이는 새정부가 들어선 데 따른 인적 쇄신과 조직 안정화를 위한 조치이며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 온 열린 경호 낮은 경호의 실행"이라고 전했다. 

 

대기발령 조치된 대통령경호처 간부는 이광우 경호본부장, 이진하 경비안전본부장, 김대경 경호지원본부장, 노승룡 경호안전교육원장, 안경호 기획관리실장 등이다. 대통령경호처는 별도 공지를 통해 본부장급 전원에 대한 대기발령 조치와 함께 "핵심부서 간부급들에 대한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며 "이번 인사는 국민주권정부 들어 그동안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았던 경호처를 과감히 쇄신하고 거듭나는 차원의 첫 단추"라고 덧붙였다. 

 

대통령경호처에 파견와 있던 33경호대장과 수방사 산하 55경비단장은 파견 해제 조치로 경호처를 떠나게 됐다. 이들은 지난 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체포영장을 집행할 때 '영장 집행을 막아달라'는 취지의 대통령경호처 협조 요청에 응했던 부대다.

 

이재명 정부가 강조해 온 '내란 종식'을 위해 대통령경호처 개혁에 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경호처가 비화폰 삭제에 가담한 것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7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비화폰 통화 기록이 삭제되기 전 조태용 국가정보원장과 박종준 전 대통령경호처장이 통화를 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단장 백동흠 안보수사국장)은 지난해 12월 6일 삭제된 윤석열과 홍 전 차장의 비화폰과 관련해 국정원과 대통령경호처가 주고받은 연락 내역 등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한 박종준 대통령 경호처장이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수본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5.1.10. 연합
 

지난해 12월 6일은 홍 전 차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과 면담하며 "윤 전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라고 지시했다고 폭로한 날이다. 홍 전 차장은 국회에서 윤석열과의 비화폰 통화 화면 일부를 공개했다. 당시 통화 화면에는 '대통령님' '무선보안 1000' 'pss1000'이라고 적혀 있었다. pss는 경호처(Presidential Security Service)의 약자고, 1000은 대통령을 의미하는 경호처 내부 표기로 보인다.

 

경찰은 홍 전 차장의 폭로 이후 국정원 측이 경호처에 비화폰 '보안 조치(원격 로그아웃)'가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비화폰은 원격 로그아웃되면 통신 내역 등 정보가 초기화된 것처럼 지워진다. 경찰은 이런 과정이 증거인멸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며, 구체적인 삭제 경위와 관련한 지시 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4일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을 소환해 조사한 결과 김 전 차장한테서 "비화폰 삭제를 지시한 바 없다" "당시 책임자는 박종준 경호차장이었다"는 진술을 받았다. 경찰은 박종준 전 차장과 조태용 국정원장 등을 소환 조사하겠단 방침으로, 박 전 차장과 조 원장 측에 전화·문자로 질의했으나 모두 연락을 받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6일 윤석열과 홍 전 차장, 김성훈 전 차장의 비화폰 정보가 원격 삭제된 것과 관련해서도 불상자를 증거인멸 혐의로 입건한 상태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대통령실 경호처장에 황인권 전 육군 대장을 임명했다. 경호차장에는 경찰 출신인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을 낙점했다. 이 대통령은 황 처장을 임명하면서 "이제는 국민을 위한 열린 경호, 낮은 경호를 통해서 경호실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며 "앞으로 대통령 출근한다고 길을 너무 많이 막지 마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김민주 기자 >

 

민생회복·사법개혁 선후 선택의 문제 아냐

대법관 증원 소폭에 순차적으로 하면 실패

대법원 전문법원화로 전원합의제 부담 해소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3인 지명권 없애야

법원 판결도 헌법소원 대상에 넣어야 마땅
좌고우면 말고 국민 믿고 조속히 완수해야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임기를 시작함에 따라 사법부는 물론 수사기관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4일 대법관수를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사진은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왼쪽)과 대검찰청 모습. 2025.6.5. 연합
 

1. 사법개혁의 필요성

 

최근 대법관 증원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대법관 증원을 필두로 민주당이 정권 초기부터 사법부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모양새다. 사실 그동안 학계에서 제기된 시급한 사법개혁 주장에 대하여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은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사법제도가 국민들의 기본권과 민생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련의 내란사태와 사법쿠데타를 겪고 나서야 사법개혁에 눈을 돌리게 됐다. 최근의 사법 사태가 사법개혁의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사법부가 명실상부 헌법정신에 따라 기득권 세력과 권력 집단이 아닌 국민에 대한 충복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사법개혁의 방안은 광범위하다. 그동안 국민 위에 군림해 온 사법부의 문제점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헌법개정이 요구되는 것들과 법률개정만으로 가능한 것들이 있다. 사법개혁은 대법원 및 각급 법원뿐 아니라, 헌법재판 제도의 개혁과도 연결돼 있다. 여기서는 사법개혁 방안 가운데 비교적 손쉽게 개혁할 수 있는 몇 가지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한다.

 

2. 사법개혁의 구체적 방안

 

2-1. 대법관의 증원과 전문 법원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들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법부 내부, 특히 대법원의 내부 구성과 심리 과정 등에 대해 알게 되면서 매우 놀랐다. 믿었던 최고법원의 심리와 운영절차가 그토록 부실하고, 1년에 대법원에 상고되는 사건 수가 약 4만 건에 이르고 대법관 한 명이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3000건이 넘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대법관은 물론 재판연구관도 사건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는다. 그럴 의지도 없고, 그럴 여건도 되지 않는다. 가끔 전관예우에 따라 전임 대법관이 변호인으로 제기한 사건 또는 특별히 사회의 이목을 끄는 사건에 대해서만 약간의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법원의 심리절차에 따르면 모든 사건은 일단 대법관의 업무를 보조하는 재판연구관에게 배정된다. 연구관이 사건을 검토하고 심리불속행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보고서 표지에 ‘심리불속행’이라 표기해 주심대법관에게 보고한다. 이후 사건의 처리는 검토 연구관의 의견대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법관들이 제대로 사건을 읽어보지도 못하는 구조란 이야기다. 실제로 대법원은 민사본안 상고심 사건의 약 70%, 행정본안과 특허본안 사건의 72% 이상을 본안 심리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을 통해 종결하고 있다. 이처럼 대법원의 심리와 판결이 지극히 부실하고 불공정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민이 공정하고 신속하게 재판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침해된다. 한마디로 강자에게는 친절하고, 약자에게는 군림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법부가 약자 보호와 정의 실현을 위한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구호가 실현되는 전당이 돼버렸다. 이는 결국 사법부 전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 문제의 비교적 손쉬운 해결책은 대법관 수의 획기적 증원과 대법원의 전문 법원화다. 이는 필연적으로 하급법원의 전문 법원화를 초래한다. 그런데 그동안 대법원은 과도한 업무부담에 시달린다고 호소하면서도 수십년간 대법관의 증원을 결사 반대해 왔다. 대법원 권위 수호와 전관 예우에 대한 고려, 그리고 왜곡된 엘리트주의와 집단이기주의 때문이다. 한마디로 소수 귀족으로서의 희귀성과 돈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법체계인 대륙법계의 모국인 독일은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사건 관할별로 5개의 전문법원으로 분할되어 있다. 민·형사 사건을 담당하는 연방통상법원, 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노동법원, 연방사회법원 등이다. 대법관 수는 모두 약 320명 정도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담당 전문의가 확보되어 있는 종합병원처럼 각각의 사건의 내용에 따라 관할하는 각각의 전문 법원이 하급법원부터 대법원까지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효율적인 심리가 가능하도록 충분한 대법관들이 배치돼 있다.

 

대륙법계의 또다른 대표국가인 프랑스는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법원으로, 민·형사 사건을 관할하는 최고법원인 파기원과 행정사건을 관할하는 최고법원인 국사원으로 구성돼 있다. 법관은 파기원에 약 200명, 국사원에 약 230명이 근무하고 있다. 모두 전문성과 대법관 수에 있어서 우리와 비교가 안된다. 우리 대법원은 이러한 사실을 결코 언급하지 않는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재판정에 착석해 있다. 2025.5.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대법관 증원과 관련해 국회 법사위는 최근 법안심사 1소위를 열어 김용민·장경태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심사한 뒤 ‘위원회 대안’으로 통과시켰다.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되, 법 시행을 1년 유예한 뒤 이후 매년 4명씩 16명을 증원한다는 내용이다. (당초 김용민 의원은 대법관을 현행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장경태 의원은 대법관을 100명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바 있다.) 대법관을 30명으로, 그것도 순차적으로 늘리는 개정안은 너무 약소해서 개혁 효과가 있을지 지극히 의문이다.

 

이 정도의 소폭 개정안에 대해서도 예상했던대로 국민의힘과 일부 법조계가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희망한다”며 정치권 주도의 제도 추진에 우회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지난달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재판 지연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법원 수만 증원한다면 오히려 모든 사건이 ‘상고화’돼 재판 확정이 더더욱 늦어질 것”이라며 “결국 전원합의체가 사실상 마비돼버리기 때문에 충실한 심리를 통한 권리 구제 기능 또한 마비될 수밖에 없다”고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이처럼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은 이러한 저항에 부딪히자 일단 전체 회의 처리 등 후속 절차를 보류한 상황이다. 임기 초반부터 입법 독주 양상이 펼쳐진다면 여론의 역풍을 부를 수 있다는 신중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법관 증원은 대법원의 기능 활성화와 더불어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해서 불가피하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도 없다. 반대 논리로 내세우는 전원합의체 마비 우려와 관련하여 전원합의체 자체가 대법원에서 자주 개최되는 것도 아니고, 전원합의체로 가는 사건 자체도 극소수다. 참고로 2023년 전원합의체로 간 사건은 총 9건으로, 전체 상고사건의 0.02%에 불과했다. 따라서 거의 모든 사건을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해결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원합의체 기능 마비를 대법관 증원의 반대 사유로 드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또한 헌법재판소를 별도로 설치하지 않은 미국 등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독일처럼 헌법재판소를 별도로 설치한 만큼, 대법원은 헌재처럼 ‘정책결정’의 역할보다 ‘권리구제’의 역할에 중점을 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대법원이 대법관 증원과 더불어 전문 법원화되어 분할된다면 전원합의체 개최의 문제는 아예 발생되지 않는다. 설사 전문 법원화가 실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법관 증원과 더불어 현재 4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의 각 부를 대폭 증원된 전문 관할별 부(예컨대 민사부, 형사부, 행정부, 조세부, 노동부, 특허부, 군사부 등)로 확대 개편해 각 부별로 전원합의체를 개최하면 된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수가 9인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사법시스템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국가적 구조로 인해 민형사 사건 등 일반 사건은 대부분 주 차원에서 그리고 하급심에서 해결된다. 아울러 미국에는 헌법재판소가 없기 때문에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헌법 사건을 담당하는 사실상 헌재의 역할 내지 ‘정책결정’의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의 대법원을 미국의 연방대법원에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

 

결국 대법원의 업무과중을 해소하고 대법원의 최고법원으로서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대법관 수의 획기적 증원이 필수적이다. 장기적으로는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를 참고해 인구수에 비례한 대법관 수로 대폭 증원해야 한다. 아울러 재판의 질적 향상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대법원의 전문 법원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물론 독일의 경우처럼 필연적으로 하급법원의 전문 법원화를 수반한다. 대법관 수의 증원은 법원조직법의 개정만으로 가능하지만, 대법원의 전문 법원화는 헌법개정 사항이다.

 

사법부의 공정성과 중립성 및 독립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다양성을 반영하도록 대법관 구성도 다양화해야 한다. 획일적 배경을 가진 소수 엘리트 출신 대법관만으로 구성된 현재의 대법원은 약자의 어려움 등 다양한 사회 현실을 이해하기 어렵고, 국민의 상식과 법 감정에 상응하는 재판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강한 정치적 편향성을 갖는 구조적 취약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의 구성이 특정 학벌과 출신, 특정 직역과 성향에 치우치지 않도록, 지역·성별·법조 경력 등의 다양성을 반영한 인선 기준을 제도화해서 판결이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관점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재판을 하는 사법부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결국 사법부가 특정 정권이나 기득권층의 하수인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한다.

 

참고로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지난 5월 2일 대법관의 3분의 1 이상을 판검사 외에 변호사, 법학교수도 지원이 가능하게 하고, 대법관후보추천위원을 현행 10명에서 15명으로 늘리고, 법조직역 출신이 전체 위원 구성의 반수를 넘지 않도록 하며, 여성 위원을 최소 4명 이상이 되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2-2.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허용

 

헌법소원제도는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에 의하여 기본권을 침해당한 개인이 기본권의 구제를 위하여 헌법재판소에 제기하는 아주 유용한 심판제도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공권력 작용, 즉 입법, 행정, 사법 작용 모두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법원의 재판도 공권력의 행사의 일종이기 때문에 헌법을 위반하여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헌재 판례에 의하여 인정된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대법원을 비롯한 법원의 모든 재판은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위헌적인 법원의 판결로 부당하게 기본권을 침해받은 국민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마침 민주당 정진욱 의원은 지난 5월 7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는 사유에 ‘법원의 재판’을 추가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본래 헌법소원은 공권력 작용 중에서도 사법(재판)작용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헌법소원제도의 모국인 독일이 그렇다. 독일은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전체 헌법소원 사건의 약 90%이다. 한마디로 헌법소원의 본령은 법원의 재판을 대상으로 하는 재판소원이다. 이와는 달리 우리는 헌법재판소법 제정 당시 법원의 재판을 제외했다. 대법원의 기득권과 권위 의식 내지 자존심 때문이다. 즉 재판소원이 인정된다면 대법원이 실질적으로 헌재 밑으로 들어간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실제로 세간에 알려지기는 대법관들이 헌법상 동급인 헌법재판관들을 한 수 아래로 본다. 자신들이 내린 판결이 다시 헌재의 통제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위를 훼손하는 참을 수 없는 수치로 본다. 이는 헌재와 대법원의 위상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재판에 대한 헌법적 통제와 국민 기본권의 효율적 보장이라는 헌법 실현의 문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일으킨 사법사태에서도 보듯이 대법원의 위헌적 판결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헌법적으로 통제하고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미국처럼 헌재가 없다면 모르되, 독일제도를 도입해 최후의 헌법수호기관으로 헌재를 설치한 이상 대법원 등 법원의 재판도 최종적으로는 헌재에 의한 헌법적 통제를 받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라고 헌재를 만든 것이다. 사법 사태를 계기로 필자를 비롯한 헌법학자들의 강력한 주장에 드디어 국회가 주목하게 됐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번 정부 국회는 조속한 시일내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간단하다. 이는 법률개정만으로 가능하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부분을 삭제하면 된다.

 

한편 재판소원을 허용하게 되면 그만큼 헌재의 사건이 늘어나기 때문에 헌재 재판관의 소폭 증원이 바람직하다. 재판관 증원은 헌법개정사항이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연방헌법재판소는 2개 부(Senat)로 구성되고, 재판관은 각각 8명씩 총 16명이다.

 

2-3. 대법관·헌재 재판관 선출 방식개혁 /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3명 지명권 폐지

 

최근 대통령 권한대행들의 헌법재판관 지명 또는 임명 거부 사태에서 보듯, 헌재 재판관의 지명과 임명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헌법상 대법원과 헌재, 대법원장과 헌재 소장은 정확히 동급이다. 그런데 헌법 제111조 제3항에 따라 헌재 재판관 중 3인을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반대로 헌재 소장은 대법관 지명권이 없다. 이는 말이 안 되는 것으로 헌법상의 체계정당성에 위반된다. 법률심을 담당하는 대법원에 비해 법률보다 상위의 최고법인 헌법심을 담당하는 헌재의 위상이 법리상으로는 독일처럼 대법원 위에 위치해야 하는데, 대법원장의 헌재 재판관 지명권 때문에 오히려 헌재가 대법원 밑으로 들어갔다. 현행 헌법의 체계를 고려한다면 대법원장의 재판관 지명권에 대응해 헌재 소장도 일정 수의 대법관을 지명하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과 헌재가 큰 틀에서 동일한 사법기관이라는 점, 양 기관의 민주적 정당성이 모두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법원장의 헌재 재판관 지명권과 마찬가지로 헌재소장의 대법관 지명권도 헌법정신에 반한다. 따라서 대법원장의 재판관 지명권을 폐지하는 것이 맞다.

 

독일의 경우를 참고해 헌재 재판관과 대법관을 모두 국회에서, 또는 국회와 관계 부처 장관 등으로 구성되는 법관선출위원회에서 선출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이 대법원과 헌재 구성의 다양성과 전문성 및 취약한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할 수 있다. 이는 국회를 국민의 제1 대의기관으로 정한 헌법정신과 의회주의에도 부합된다.

 

2-4. 국민참여재판의 확대

 

국민의 형사재판참여란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서 일정한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하여 마련됐다. 2007년에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2008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제도는 일정한 형사재판에 국민들이 참여함으로써 재판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로써 재판의 공정성, 객관성, 투명성, 신뢰성을 제고하는 기능을 가진다. 직업 법관만의 재판이 자칫 폐쇄적이고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져 관료화·보수화되거나, 이념적·정치적 편향의 위험성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법관들의 일방적이고 균형을 상실할 수 있는 재판의 진행과 결과를 국민이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현행 제도는 그 대상과 절차 등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그 대상을 대폭 확대하고, 소송당사자의 효율적인 공격과 방어가 가능하도록 절차를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소나마 사법권에 대한 소송당사자와 국민에 의한 통제가 가능해지고, 법원 판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강화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2-5. 법원의 판결문 공개 확대

 

법원의 판결문 공개가 보다 확대돼야 한다. 물론 판결문 공개가 매우 제한적이었던 과거보다는 최근 상당히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사법부는 ‘종합법률정보시스템’과 ‘판결서 인터넷 열람 제도’를 통해 인터넷으로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판결문의 공개 범위와 판결문에 대한 접근성에 상당한 제한이 존재하고, 판결서 열람 서비스 이용에 제약이 많다.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원칙상 공개하도록 규정하면서,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안녕질서를 방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있을 때는 법원의 결정으로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놨다. 원칙적으로 모든 판결문은 공개하되, 다만 국가안전보장 등 공익적 이유에서만 예외적으로 비공개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었다. 해외 법치 선진국들은 대체로 헌법정신에 따라 판결문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으로만 비공개로 한다.

 

법원의 판결문은 이처럼 헌법상,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당연히 공개해야 되는 것이지, 법원의 재량으로 제한될 수 없다. 또한 재판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고, 법 집행 과정에서의 부패와 권력의 남용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 절실히 요구된다. 자신이 내린 판결이 당사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공개된다면 그만큼 법관들이 심혈을 기울여 헌법과 법률 및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전관예우의 폐해도 다소나마 방지할 수 있다. 아울러 당사자가 재판에서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기본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 물론 판결문의 공개 확대로 관계자의 사생활 비밀 침해나 기타 기본권의 침해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비실명 처리 등 얼마든지 절차적·기술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한편 오늘날 AI 시대를 맞아 법률서비스 시장의 발전 추세에 걸맞는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라도 판결문 공개 확대는 필수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미국과 유럽, 심지어 중국도 판결문 공개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며 데이터베이스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결국 효율적인 사법 통제와 사법의 민주화를 위하여, 판결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판결문의 원칙적 전면 공개는 필수이다.

 

3. 결어

 

이런 최소한의 사법개혁은 조속히 실시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근본적으로는 사법개혁을 정권의 명운을 걸고 해야 한다. 법률개정만으로 가능한 것을 시행하고, 헌법개정의 기회가 있을 때 대법원과 각급법원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아울러 헌재 역시 재판관의 자격과 구성 방법 및 관할권과 관련한 다양한 개혁을 해야 한다. 또한 대법원과 헌재와의 위상이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법조인 교육제도와 선발 문제 및 법원, 검찰, 변호사 상호 간의 관계의 재정립, 그리고 전관예우 근절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은 새 정부 초기에 전격적으로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와 민생 등 먹고 사는 문제가 급하니 실생활에 관계되는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고 사법개혁 등은 추후에 논의하자고 한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첫째, 민생문제와 사법 및 검찰개혁 문제는 상호 배타적이거나 선택적인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병행 가능하다. 실제로 사법 및 검찰개혁 없이는 다른 분야에서의 개혁도 불가능하거나 어렵다. 아울러 사법 및 검찰개혁은 행정부가 별도의 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다. 즉 국회는 이미 만들어진 법안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법안을 즉각 공포하면 된다. 나머지는 예산을 추가해서 각 기관에서 추진하면 된다.

 

둘째, 만일 새 정부 초기에 개혁을 못하면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당장 내년에 지방선거가 닥치고, 동시에 개헌 문제가 필연적으로 대두될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문재인 정부가 그랬듯이 사법 및 검찰개혁 문제는 뒤로 미루게 되고, 22대 국회의원선거가 닥치게 되면 개혁은 물 건너갈 수 있다. 더욱이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많은 비판을 받는 이른바 위성정당의 설립이 금지되는 방향으로 공직선거법이 개정된다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이 나오기 어렵게 되고, 따라서 현재의 국회 의석 구도가 무너지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개혁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을 통해 민주당은 행정부와 국회의 권력을 함께 갖게 되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누구도 예상 못한 윤석열의 계엄선포라는 패착이 이런 전혀 뜻밖의 기회를 제공했다. 한마디로 민주주의가 전면적으로 기사회생할 기회를 잡았다. 이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만일 사법개혁이 성공한다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완전히 민주·호헌 세력이 장악하게 된다. 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국가권력이 명실상부하게 국민을 위한 공복이 된다.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도 강조했던 검찰개혁이 사실은 오히려 검찰 개악이 됐다. 최대 치적으로 내세웠던 공수처의 설치도 최근의 사태에서 보듯이 처음부터 제대로 기능할 없는 공수처법을 제정한 결과 무능 공수처로 전락했다. 정말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 윤석열이라는 괴물 검찰공화국을 탄생시킨 원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우를 다시는 범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정 초기에 사법 및 검찰개혁을 전격적으로 단행해야 한다. 어차피 개혁에 대한 야당과 법조계의 극심한 저항은 상수다. 돌파해야 한다. 좌고우면하면 안된다.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천추의 한을 남겨서는 안된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정부 아닌가. 국민이 원한다. 국민만을 보고 가라.  < 정연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