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대표 딸 박다인씨 "여러분들이 바로 서울특별시장"
8년 8개월여간의 서울특별시장 임기를 극단적 선택으로 급작스럽게 끝낸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13일 오전 엄수됐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영결식은 온라인으로 열렸으며 서울시와 tbs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영결식 생중계가 끝난 직후인 이날 오전 9시 50분 기준으로 서울시 유튜브 채널의 온라인 영결식 조회수는 1만2천600회였다.
시청사 8층 다목적홀에서 현장에는 유족과 시·도지사,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서울시 간부, 시민사회 대표자 등 100여명의 제한된 인원만 참석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박 시장의 시신을 실은 운구 행렬은 서울추모공원으로 떠났다. 장례위원회는 고인을 화장한 후 유골을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옮겨 매장할 방침이다.
◇ 고민정 의원 사회로 영결식
박 시장의 위패와 영정사진이 서울시청에 도착한 지 10분 후인 오전 8시께 다목적홀에 입장하자 유족 등 일부 참석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등을 토닥이며 서로 위로하기도 했다.
유족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오빠야 왜 돌아가셨냐. 오빠야"라고 통곡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더불어민주당의 박홍근, 김원이 의원 등은 영결식장 입구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며 인사했다.
영결식장 벽에는 빔프로젝터로 박 시장의 웃는 얼굴과 함께 "시대와 나란히 시민과 나란히"라는 구절이 표시됐다.
행사 시작 1분을 앞두고 고인의 부인인 강난희 여사와 아들인 박주신 씨, 딸인 박다인 씨 등 직계가족이 입장했고, 오전 8시 30분에 사회자인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의 개식선언으로 영결식이 시작됐다.
◇ 추모영상 나오자 유족 울음
국기에 대한 경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에 이어 박 시장의 일생을 소개하는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박 시장 연설 장면이 나오자 유족은 울음을 터뜨렸으며,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고인이 집회 현장에서 "우리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겠다"고 말하는 장면과 "언제나 저의 답은 시민이다"라고 말하는 육성이 나온 후 고인이 남긴 유언장의 사진이 화면에 나오자 장내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영상 상영이 끝나고 조명이 다시 켜지자 손수건을 꺼내서 눈가를 닦는 참석자들이 많았다.
사회자인 고민정 의원은 "이제 손을 잡을 수도, 얘기 나눌 수도 없지만 남아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 만들어갈 세상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고 울먹거리며 말했다.
이어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이 추모곡으로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3번 중 '에어'를 현악5중주로 연주했다. 이 곡은 표제 등이 죽음과 직접 연관이 없어 장례 음악으로는 흔히 연주되지 않는 곡이다.
사회자 고 의원은 연주에 앞서 "고인의 가시는 길이 평온한 발걸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 곡을 준비했다"며 "오늘도 바깥에는 빗줄기가 무척 거세게 내리고 있다. 많은 분들 마음속도 그와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서정협 서울시 행정1부시장 등 공동장례위원장 3인과 시민 홍남숙씨가 각자 조사를 통해 고인을 기렸다.
◇ 백낙청 명예교수 "지금은 애도와 추모의 시간"
백낙청 명예교수는 "내가 박원순 당신의 장례위원장 노릇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거의 20년 터울의 늙은 선배가 이런 자리에 서는 것이 예법에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애도의 시간"이라며 "애도가 성찰을 배제하지는 않습니다만 성찰은 무엇보다 자기성찰로 시작됩니다. 박원순이라는 타인에 대한 종합적 탐구나 공인으로서의 역사적 행적에 대한 평가는 애도가 끝난 뒤에나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며 마땅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지금은 애도와 추모의 시간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항상 놀라고 탄복한 것은 끊일 줄 모르고 샘솟는 당신의 창의적 발상들과 발상이 발상에 머물지 않고 현실이 되게 만드는 당신의 실천력과 헌신성이었습니다"라며 참여연대와 희망제작소를 거쳐 서울시장에 이른 고인의 활동을 회고했다.
◇ 이해찬 대표 "참으로 열정적인 사람"
이해찬 대표는 고인이 40년을 같이 살아온 친구였다며 "참으로 열정적인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고인이 서울대 신입생 시절 김상진 열사의 죽음을 추모하며 반유신 시위에 참여했다고 학교를 떠나야 했으나,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 대표는 고인에 대해 "인권변호사로서 군사정권 하에서 시국사건 변론을 맡은 데 이어 1987년 민주화 이후로는 척박한 시민운동의 길을 닦았다"며 "열정만큼이나 순수하고 부끄러움 많았던 사람이기에 그의 마지막 길이 너무 아프고 슬프다"고 말했다.
◇ 서정협 부시장 "박 시장의 꿈을 흔들림 없이 계승"
서울시장 권한대행인 서정협 행정1부시장은 고인이 당장이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도시 운영 원칙을 3천180일간의 임기 동안 올곧게 지켜 갔으며 그 길이 서울시를 넘어서 대한민국을 변화시킨 표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 존중 도시'라는 박 시장의 꿈을 미완의 과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꿈으로 흔들림 없이 계승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시민 홍남숙씨 "당신이 보여 준 삶이 있어 작은 삶을 크게 확장"
참여연대의 오랜 후원자로 박 시장과 인연을 맺고 지지자가 된 시민 홍남숙씨는 고인의 참여연대 활동을 되새기면서 "수많은 분들의 헌신과 기여로 이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는 고인의 활동에 대해 "당신의 이웃이자 친구이자 팬이 되어, 당신이 보여준 삶이 있어, 작은 삶을 좀 더 크게 확장할 수 있었고 기여, 헌신, 나눔, 쓰임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4인의 조사가 끝난 후 백 명예교수, 이 대표, 서 부시장 등 공동장례위원장 3명을 시작으로 장례위원회 관계자들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임채정 고문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 배진교 정의당 대표, 광역 시도지사들, 서울지역 구청장들, 시민단체 대표단, 서울시 간부들이 헌화를 했다.
◇ 유가족 대표 딸 박다인씨 "다시 시민이 시장"
유가족 대표로 나선 딸 박다인씨는 추모객들과 서울시 직원들에게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아버지는 시민의 이름으로, 시민의 힘으로 서울시장이 되었다"며 "아버지에겐 언제나 시민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다"고 말했다.
그는 "화려한 양복뿐만 아니라 평범한 작업복을 입은 시민들의 끝없는 진심 어린 조문에 아버지가 이렇게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오세요, 시민여러분. 나에겐 시민이 최고의 시장입니다.' 그 시민들의 모습을 아버지가 정말로 기뻐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특별시장 박원순은 더이상 없습니다. 그 자리에 시민여러분이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서울특별시장입니다"라며 흐느끼면서 "아버지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셨습니다. 서울시민이 꿈꾸던 행복한 서울, 안전한 서울, 이제 여러분이 시장으로서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는 영원한 시장으로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이제껏 그랬듯 우리를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말로 유가족 인사를 끝냈다.
"박시장, 천국서 편히 지내길"…지지자들, 영결식 시청하며 눈물
"박 시장 가시는 마지막 길에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부지런히 일 잘하시는 행보가 좋았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13일 오전 시청에서 진행되는 동안 비가 내리는 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그를 배웅하기 위한 시민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박 시장 영결식은 오전 8시 30분부터 시청 다목적홀에서 진행됐다. 영결식 현장에는 유족과 시·도지사, 민주당 지도부, 서울시 간부, 시민사회 대표자 등 100여명의 제한된 인원만 참석했다.
영결식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지지자들은 서울광장에서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든 채 영결식 생방송을 시청했다. 그의 생전 활동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되자 일부 지지자는 눈물을 흘렸다.
일부 시민은 영결식 상황이 궁금한 듯 시청 유리문을 통해 청사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온 이모(77) 씨는 "그동안 고생 많으셨고, 천국에 올라가서 마음 편히 잘 지내시고, 지상의 가족들 잘 살펴주기 바란다"고 했다.
청사 입구 유리문은 시민들이 박 시장을 추모하며 붙여놓은 노란 포스트잇으로 가득했다. 시민들은 청사부터 운구차량까지 이어지는 약 100m 길이의 펜스 양옆에 줄지어 서 있었다.
한 남성이 "나도 지지자지만 (박 시장이) 성추행한 것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자 지지자들은 거세게 항의했고, 해당 남성은 쫓겨나듯이 자리를 피했다.
지지자들은 박 시장 운구차가 도착하기 전 이른 아침부터 청사 앞 분향소 주변에 모여 눈물을 훔치며 박 시장을 추모했다.
앞서 박 시장 운구차는 이날 이른 아침 불교식 발인을 마친 뒤 오전 7시 20분께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출발했다.
운구차는 20여분 만인 오전 7시 45분께 시청 앞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박 시장 친척이 든 영정이 모습을 드러내자 지지자들은 '아이고'를 외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일부 지지자 사이에서는 "너희들도 똑같이 죽어라", "시장님, 나쁜 놈들 없는 데로 가세요", "자기들은 흠결 훨씬 많으면서" 같은 외침도 들렸다.
상복을 입은 유족들은 마스크를 쓴 채 입을 막고 흐느끼며 영결식이 열리는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광장을 둘러싼 언론사들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방송사들은 박 시장의 마지막 모습을 담기 위해 차량 위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외신 기자들도 눈에 띄었다.
경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력을 배치했지만, 우려와는 달리 박 시장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장례위원회는 영결식을 마친 뒤 박 시장의 시신을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했다. 이후에는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옮겨 매장됐다.
장례위원장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해찬 민주당 대표,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행정1부시장)이 맡았다.
'박원순 온라인 헌화' 100만명…'서울시 장례 반대청원' 54만명
서울시가 홈페이지에 마련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온라인 분향소(http://www. seoul.go.kr/seoul/pakCont/main.do)에 12일 오후 9시34분까지 100만여명이 클릭으로 애도를 표하는 '온라인 헌화'를 했다.
서울시는 오프라인 조문이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10일 오후에 온라인 분향소를 설치했다. 클릭수 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중복 클릭을 시도하면 '이미 헌화하셨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오고 참여 숫자는 올라가지 않도록 해 뒀다.
같은 시각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서울시가 구성한 장례위원회가 주관하는 장례) 형식으로 치르는 것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https://www1. president.go.kr/petitions/590550)에는 54만9천여명이 동의했다.
이 청원에 동의한 인원은 게시 당일인 7월 10일에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이미 넘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청원 마감일인 8월 9일부터 한 달 이내에 공식 답변을 내놓을 전망이다.
서울시 홈페이지의 온라인 헌화와 청와대 국민청원의 서울특별시장(葬) 반대 청원은 일부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 사이에서 마치 '세력 과시 대결' 같은 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줌의 재가 된 박원순 시장…유족·지지자 "이럴 수 있나" 통곡
"박 시장 가시는 마지막 길에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부지런히 일 잘하시는 행보가 좋았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13일 오전 시청에서 진행되는 동안 비가 내리는 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그를 배웅하기 위한 시민 200여명이 모여들었다.
박 시장 영결식은 오전 8시 30분부터 시청 다목적홀에서 진행됐다. 영결식 현장에는 유족과 시·도지사, 민주당 지도부, 서울시 간부, 시민사회 대표자 등 100여명의 제한된 인원만 참석했다.
영결식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지지자들은 서울광장에서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든 채 영결식 생방송을 시청했다. 그의 생전 활동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되자 일부 지지자는 눈물을 흘렸다.
일부 시민은 영결식 상황이 궁금한 듯 시청 유리문을 통해 청사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온 이모(77) 씨는 "그동안 고생 많으셨고, 천국에 올라가서 마음 편히 잘 지내시고, 지상의 가족들 잘 살펴주기 바란다"고 했다.
청사 입구 유리문은 시민들이 박 시장을 추모하며 붙여놓은 노란 포스트잇으로 가득했다. 시민들은 청사부터 운구차량까지 이어지는 약 100m 길이의 펜스 양옆에 줄지어 서 있었다.
한 남성이 "나도 지지자지만 (박 시장이) 성추행한 것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자 지지자들은 거세게 항의했고, 해당 남성은 쫓겨나듯이 자리를 피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운구차는 오전 9시 46분께 청사를 떠나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일부 지지자는 "시장님 못 보낸다"며 울부짖으면서 운구차 앞을 막아섰다가 경찰에 제지당했다.
한 남성은 운구차가 떠난 뒤 도로에 주저앉아 오열하며 "이게 대한민국입니까. 어떻게 대통령감을 보냅니까!"라고 외치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추모공원에는 오전 10시께부터 박 시장 지지자와 시청 관계자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운구차는 오전 10시 40분께 도착했다.
박 시장 시신 화장은 오전 10시 57분 시작됐다. 화장은 12시 17분에 종료된다.
화장 작업에 들어가자 가족과 지지자 수십명은 "이럴 수가 있냐", "말도 안 된다", "착한 사람만 데려가시냐"며 통곡했다. 일부 지지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우산으로 바닥을 내려치기도 했다.
앞서 박 시장 운구차는 이날 이른 아침 불교식 발인을 마친 뒤 오전 7시 20분께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출발했다.
운구차는 20여분 만인 오전 7시 45분께 시청 앞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박 시장 친척이 든 영정이 모습을 드러내자 지지자들은 '아이고'를 외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일부 지지자 사이에서는 "너희들도 똑같이 죽어라", "시장님, 나쁜 놈들 없는 데로 가세요", "자기들은 흠결 훨씬 많으면서" 같은 외침도 들렸다.
상복을 입은 유족들은 마스크를 쓴 채 입을 막고 흐느끼며 영결식이 열리는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광장을 둘러싼 언론사들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방송사들은 박 시장의 마지막 모습을 담기 위해 차량 위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외신 기자들도 눈에 띄었다.
경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력을 배치했지만, 우려와는 달리 박 시장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일부 지지자는 보수 매체 소속 취재진에게 욕설을 섞어 "여기가 어디라고 와!"라며 고함치기도 했다.
장례위원회는 영결식을 마친 뒤 박 시장의 시신을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했다. 이후에는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옮겨 선산에 묻혔다.
“화장해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 유족, 유언따라 고향 선영에 안장
경남 창녕군 장마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고향집에 차려진 박 시장 빈소.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골이 13일 저녁 고향인 경남 창녕군 선영의 부모 산소 곁에 안장됐다.
아들 주신씨 등 유족은 이날 저녁 6시30분께 경남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장가1구 마을 뒷산에 있는 박 시장 부모 무덤 아래쪽에 유골함을 묻었다. 유족은 봉분을 만들지 않고, 조그만 표지석만 설치하기로 했다. 유족은 또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는 유언에 따라, 유골 일부를 박 시장 부모 무덤에 뿌렸다.
앞서 이날 오전 박 시장은 서울추모공원에서 유족과 장례위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장됐다. 아들 주신씨는 오후 5시25분 아버지의 유골함을 안고 고향인 경남 창녕에 도착했다. 장가1구 마을에서는 박 시장의 친지, 친구, 선후배와 ‘박원순 팬클럽’ 회원 등이 박 시장을 맞았다. 마을주민들은 박 시장 고향집에 미리 빈소를 차려뒀는데, 유족은 도착 직후 빈소에서 제를 올렸다.
주민들은 또 전날부터 내린 비 때문에 질퍽해진 박 시장 부모 무덤 아래에 유족들을 위해 부직포를 널찍하게 깔았다. 마을에서 선영까지 가는 500여m 산길의 나뭇가지를 정리하고 길바닥에 자갈도 깔았다. 장마면사무소는 안장식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발열 체크를 하고 인적사항을 파악했으며,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스크를 나눠줬다.
박 시장의 고향 선배인 이인식(68)씨는 “경남 창녕에는 큰 인물이 많이 났는데,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은 고향의 큰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불편이 없도록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나서서 일손을 거들었다”고 했다. < 최상원 기자 >
시민분향소 추모객 길게 늘어서…고인의 헌신적 삶 애도
“박 시장님 덕분에 장애인 정책이 눈에 띄게 개선됐는데”, “풀뿌리 민주주의 정책 때문에 제가 마을활동가로 살고 있어요”, “기간제 직원일 때 항상 아버지처럼 웃어주셨어요”
11일 서울시청 앞에 차려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에 모인 시민들은 각자의 사연을 담아 박 시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추모했다.
공식조문 시작 시각인 오전 11시 전부터 시청광장 주변은 시민들의 조문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국화꽃 9500송이 사이에 박 시장의 영정사진이 자리한 분향소의 재단은 폭 9m, 높이 5m로 마련됐다.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체온 측정과 손 소독을 마치면 분향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문 중에 눈물을 흘리거나 주저앉아 오열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강한 햇빛이 사그라든 오후 4시 이후에는 추모행렬이 더 길어졌다. 시민들의 줄은 시청광장을 두른 뒤 청사 뒷편까지 길게 늘어섰다. 분향소 관리자는 “조문까지 1~2시간 정도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 추모행렬 사이에 장애인, 마을활동가 비정규직…
그들은 각자 사연을 담아 박원순 시장을 추모했다
긴 추모행렬 사이에서 장애인 활동보조사, 마을활동가, 비정규직, 종교인 등 박 시장과 사연이 있는 추모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탄 학생과 함께 분향소를 찾은 장애인활동보조사 하아무개(56)씨는 “16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데 박 시장님이 당선되고 장애인 정책이 매년 좋아지는 걸 몸소 느끼고 있다”며 “활동보조사들의 처우도 개선되고 있고, 최근에는 장애인 활동 보조 시간과 전용 택시도 많이 늘어나 장애인 복지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하씨는 이어 “성추행 의혹의 진실은 밝혀져야 하지만, 이 논란에 묻혀 박 시장님의 10년간 약자들을 위한 정책 모두가 폄훼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마을공동체 활동가인 김윤희(43)씨는 “박 시장님의 풀뿌리 민주주의 정책 때문에 내가 마을공동체 활동가라는 직업을 얻어 살 수 있게 됐다”며 “은평구의 산새마을을 비롯해 곳곳에 생겨난 마을공동체 덕분에 서울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도시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시장님의 부재로 시가 추진하던 마을공동체 사업이 축소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며 “시민과 약자들을 위한 시의 정책들이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년전 서울시민청에서 기간제 직원으로 근무한 임용재(36)씨는 여동생과 함께 아침 일찍 분향소를 찾아 가장 먼저 조문을 마쳤다. 임씨는 “2018년에 10개월간 시민청에서 청년활동가로 일했을 때 박 시장님은 마주칠 때마다 항상 아버지 같은 미소로 인사해주셨다”며 “공연 예술 활동에도 시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셔서 활동가들이 항상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승복과 수녀복을 입은 종교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녀는 “박 시장이 생전에 생명을 지키는 활동을 하면서 만난 인연이 있다”며 “여기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같은 심경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도 이날 오전 분향소를 찾아 회사 대표가 아닌 일반인 신분으로 조문을 마쳤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은 상주의 자격으로 시민분향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했다. 그는 서울시에서 정무수석, 정무부시장 등을 거친 뒤 지난 4월 국회의원에 당선된 박 시장의 최측근이다.
분향소 주변에서 보수 성향 유튜버가 조문객들과 충돌해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벌어졌다.
박홍근 장례위원장 “박원순 5일장 그대로 진행”
장례공동위원장에 백낙청 교수, 이해찬 대표, 서정협 시장 대행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를 예정대로 서울특별시 기관장으로 5일 동안 치른다고 밝혔다. 박 시장의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박 의원은 “해외 체류 중인 친가족(아들) 귀국에 시일이 소요돼 입관시기를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전날 박 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11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장례위원회 쪽의 설명을 들어보면, 박 시장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해찬 민주당 대표, 서정협 서울시 행정1부시장이 맡는다. 박 의원은 “백 명예교수는 창작과 비평 편집인으로 활동한 문화평론가이자 교수다. 고인과는 여러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며 깊은 인연을 쌓았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과 영결식은 13일이다. 이날 오전 8시30분에는 박 시장이 9년 동안 몸담은 시청에서 영결식을 진행하고, 서울시청 주변을 돌며 고별인사도 할 예정이다. 화장은 서울추모공원에서 이뤄진다.
청와대 국민청원 등 일부 시민들의 반발에도 5일장으로 진행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박 의원은 “소탈하고 검소했던 고인의 평소 삶과 뜻에 따라 유족도 사흘간의 장례를 검토했으나, 고인의 주검이 밤 늦게 발견돼 하루가 이미 지났다는 점, 해외 체류 중인 친가족의 귀국 시일이 소요돼 부득이하게 입관 시기를 감안해 장례시기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빈소에는 이틀째 정치계와 종교계 등 사회 각계각층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박남춘 인천광역시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이날 오전 빈소를 찾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박 시장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돼서 참 안타깝다. 유족에게 위로를 드리고 고인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말했다. 오후에는 법륜스님이 조문을 왔으나 별다른 심경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재오 전 의원은 “내가 감옥에 갔을 때 박 시장이 내 변호사를 맡았다”며 고인을 떠올린 뒤,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빈소 안 상황에 대해 “사모님이 아주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여서 조문객들을 어렵게 맞이하고 있다”며 “(박 시장과는) 시민운동을 할 때부터 많은 인연을 맺어온 사이다. 슬프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멈춰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박 의원은 “악의적인 추측성 게시글로 인해 고인의 명예가 훼손돼 유족의 고통이 극심하다. 부디 이런 행위 멈춰주길 거듭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 오연서 기자 >
슬픔, 허탈, 참담…충격에 휩싸인 시민사회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남기고 9일 종적을 감춘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2017년 1월2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던 박원순 시장의 모습이다.
“말할 수 없이 슬프다. 그리고 참담하다.”
시민사회의 ‘느티나무’였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갑작스러운 부음이 전해진 10일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인권변호사로 출발해 시민운동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던 박 시장이 숨진 뒤 ‘성추행’ 의혹으로 고소당했던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사회는 슬픔과 함께 충격과 당혹감을 마주하고 있다.
박 시장의 죽음을 두고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대부분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활동가들은 박 시장의 운동가로서의 헌신과 서울시장 재임 기간 보수정권으로부터 바람막이가 돼줬던 ‘공’을 인정하면서도,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돌연 세상을 떠난 데 대해 참담해했다. 한 중견 활동가는 “천만도시의 시장으로서 보여준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 났다. 서울시청 안에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서글프고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우리(시민사회)에게 당장 도전이 닥쳤다”고 했다. 박 시장의 죽음에 대한 평가를 두고 활동가들의 입장이 갈리면서 운동 전체가 도전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인권운동가인 박 활동가는 박 시장과 별다른 인연이 없다. 그러나 그는 박 시장 장례의 ‘시민장례위원’에 이름을 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현재 여성계를 중심으로 서울특별시 기관장 형식의 박 시장 장례와 시민조문소 설치 등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다.
박 활동가는 “박 시장과 가치에 대한 판단이 엇갈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와 2016년 촛불집회 당시 박 시장이 없으면 할 수 없던 조처들이 많았다. 그래서 등을 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진실의 실체가 밝혀지기 전이라 하더라도 피해자를 모욕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유경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전 집행위원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늦은 밤, 광화문 세월호 천막에 홀로 우산 쓰고 ‘걱정돼서 왔다’ 하시던 시장님. 함께해 주셨던 그 마음, 수많은 순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추모했다.
박 시장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한 활동가는 “그와 같이 일했던 사람이라면 앞으로 만나기 어려운 시민운동가였단 사실을 알 것”이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망자와 (피해) 당사자, 유가족의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다만 일부 활동가들은 박 시장의 마지막 걸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성추행 의혹을 고소한 피해자뿐 아니라 시민사회, 서울시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단체 등에서 운동해온 한 활동가는 “박 시장이 선구자인 건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성추행 의혹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가 떠난 방식과 의도가 모두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활동가는 “여성인권센터도 만들고 부천서 성고문 사건 변론을 하는 등 ‘페미니스트’임을 자임했던 분이 의혹 앞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쉽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박 시장이 1995년부터 7년간 사무처장을 지냈던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어 “황망하고 안타까운 소식에 슬픔과 충격을 금할 수 없다. 다양한 시민운동 영역에서 한국 사회의 개혁과 혁신을 위해 헌신했다”고 애도했다. < 엄지원 배지현 채윤태 기자 >
사회 각계 인사, 시민들 박 시장 조문행렬
10일 숨진 채 발견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안치됐다. 정치권과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수색 7시간 만에 발견된 박 서울시장의 주검은 새벽 3시께 경찰의 현장감식 절차를 거쳐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박 시장이 도착하기 전부터 그의 지인과 지지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응급의료센터 문 앞에 서서 이송차량을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일부는 차량이 센터 앞에 도착하자 오열하며 “일어나라 박원순”, “사랑한다 박원순”, “미안하다 박원순” 등을 외쳤다.
낮 12시부터는 박 시장과 직접적인 연은 없지만, 그를 추모하려는 시민들도 빈소를 찾았다. 종로구에 산다는 한 60대 여성은 “박 시장을 평소에 좋아했다. 이런 일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게 안타깝지만, 가는 길 추모는 해드려야 할 것 같아 찾았다”고 말했다.
장례식장 주변에는 개인방송을 진행하는 유튜버들과 취재진이 몰려 장사진을 이뤘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무거운 표정을 한 채 주변 질서를 정리하고 조문객을 맞이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되고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입구에 모인 수백명의 취재진.
빈소가 마련되기 전인 이날 새벽부터 정치권 인사들은 조문에 나섰다. 박홍근, 남인순,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박 시장과 가까운 여당 인사들이 일찌감치 서울대병원을 찾았고,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윤준병·김원이 민주당 의원과 장영달 전 민주당 의원 등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병석 국회의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은 조화를 보냈다.
이날 낮 12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저와 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40년을 함께해온 오랜 친구다. 친구가 이렇게 황망하게 떠났다는 비보를 듣고 참 애석하기 그지없다”면서도 박 시장이 성추행 의혹으로 피고소된 데 대한 당 차원의 대응을 묻자 “그건 예의가 아니다. 최소한도 가릴 게 있다”며 답변하지 않았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2시30분께 조문을 마치고 떠나며 “위대한 시민운동가이시기도 하고, 서울시장으로서 국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신 박 시장께서 갑자기 떠나 황망하고 비통하다”면서도 “공직에 계신 분들과 관련해 자꾸 이런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공직에 계신분들 뿐만 아니라 시민 모두가 남녀 간에 서로 존중하고 인격을 존중하는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솔선수범해야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시종 충북도지사,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등이 박 시장의 빈소를 찾았다.
박 시장의 장례는 첫 서울특별시장상으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서 5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이달 13일로 예정돼 있다. 서울시는 서울시청사 앞에 분향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서울광장 노제 등도 논의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규모와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다. 경찰은 추후 유족과 협의해 시신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한편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 채윤태 기자 >
박원순 시장 자필 유언장 공개 “모든 분에 죄송하다”
10일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언장이 공개됐다.
고한석 서울시 비서실장은 이날 오전 11시50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시장의 공관 책상에서 발견된 자필 유언장을 공개했다. 박 시장은 유언장에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고 실장은 유언장을 읽어내려가다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울먹이기도 했다.
서울시 관계자들이 10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고인의 유언장을 공개하고 있다.
유언장을 공개한 뒤 박 시장과 가까운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족을 대신해서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며 “근거없고 악의적인 출처 불명의 글이 퍼져 고인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부디 이런 무책임한 행위를 멈춰달라”고 말했다.
아래는 유언장 전문.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
모두 안녕.
문 대통령 "박원순과 오랜 인연…너무 충격적"
40년 전 함께 사시 합격…사법연수원 12기 동기
문재인 대통령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보를 접한 뒤 "박 시장은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참 오랜 인연을 쌓아온 분"이라며 "너무 충격적"이라는 언급을 했다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10일 전했다.
노 실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 강기정 정무수석, 윤도한 국민소통수석, 김거성 시민사회수석 등과 함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조문한 뒤 취재진을 만나 이같이 밝혔다.
노 실장은 문 대통령의 이런 언급을 유족들에게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또 빈소에 조화를 보내 유족을 위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박 시장은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2년 사법연수원(12기)을 함께 수료했다.
박원순 시장 장례 ‘서울특별시장’으로…시민 조문 허용
10일 숨진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가 첫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러진다.
김태균 서울시 행정국장은 이날 서울시청에서 브리핑을 갖고 이 같이 밝혔다. 김 국장은 “고인은 서울대병원에 안치돼 있으며 서울특별시장으로 5일장을 치르기로 했다”며 시민들 조문과 관련해선 “서울시청 청사 앞 분향소를 설치해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청 앞 분향소는 이날 중으로 설치될 예정이다. 발인은 오는 13일로 예정돼 있다.
박 시장의 권한대행을 맡게 된 서정협 서울시청 행정1부시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갑작스러운 비보로 슬픔과 혼란에 빠졌을 시민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안전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박원순 시장의 시정 철학에 따라 (시정 운영은) 굳건히 계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 부시장은 “서울시 공무원들이 하나가 돼 업무를 차질없이 챙겨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송경화 서혜미 기자 >
장례는 ‘서울특별시장’…근거는 ‘정부 의전편람’
김태균 서울시 행정국장이 10일 오전 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백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장례는 기관장에 해당하는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러진다. 박 전 시장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3일이다.
김태균 서울시 행정국장은 10일 오전 서울시청사에서 열린 긴급브리핑에서 “서울특별시에서는 ‘서울특별시장'으로 (박 전 시장의)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청사 앞쪽에 분향소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는 이날 안으로 분향소를 설치하고 11일 오전 11시부터 시민들의 조문을 받을 계획이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장'으로 장례가 치러지는 것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장례에 관한 법규는 없다’며 “장례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그것에 준해서 서울특별시기관장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특별시장은 행정안전부의 ‘정부 의전편람'에 규정된 기관장에 해당한다. 정부 의전 편람은 공식적인 장례로 국가장과 기관장을 분류하고 있는데, 국가장은 전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 등이 대상이다. 기관장은 기관의 장이 재직 중 사망하거나, 기관업무 발전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공무원이 사망했을 때 거행된다. 정부 의전 편람은 기관장에 대해 “가족장과 달리 당해 기관이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그 위원회 명의로 주관함으로써 공공성이 강한 장례의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관장의 대상으로는 △국회장(현직 국회의원) △정부장(현직 장관급 이상 공무원으로 대통령이 결정) △각 부처장 및 기관장(현직 장·차관, 부처직무에 현저한 공이 있는 공무원) △각 군장 및 부대장(현직 총장·차장, 각급 부대장, 작전수행 중 전사자) 등이 있다. 이에 따르면 장관급 예우를 받는 광역자치단체장인 서울시장이 재직 중 사망했으니 기관장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러지는 것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다. 10일 오후 3시10분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박 전 시장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러야 한다는 내용의 국민청원에 8만4천명 이상이 동의했다. < 서혜미 박다해 기자 >
인권변호사에서 최장수 서울시장까지…박원순은 누구인가
사회적 약자들 대변했던 인권변호사 참여연대 설립 주도…시민운동 대부
2011년부터 3선…최장수 시장 기록 ‘토건’보다 시민생활 변화 정책 중점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기의 박원순 변호사.
박원순(64) 서울시장은 한국 시민운동의 산증인이었다. 1980년대 인권변호사로 출발해 참여연대·아름다운재단·희망제작소 등을 세웠다. 참여연대의 낙천·낙선 운동과 소액주주 운동은 진보진영에 신선한 충격을 준 박원순표 시민운동의 성과였다. 당시 사회운동세력은 자본주의 타도 같은 거대 담론에 매몰돼 있던 때였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개선되길 바랐던 그는 지난 20여년 동안 ‘혁신가’ 또는 자신이 말한 ‘소셜디자이너’의 한 상징이었다. 2011년에는 극적인 단일화를 통해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역사상 첫 3선 서울시장에 오르며 여권 주요 대선주자로 입지를 굳히기도 했던 인간 박원순의 삶을 되짚었다.
약자 변론하던 인권변호사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박 시장은 서울 경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 1학년에 재학할 때인 1975년 유신 반대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대학에서 제적됐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2년 검사로 임용됐다가 1년 만에 나와 당시 대표적 인권변호사인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본격적인 약자 변론의 길을 걸었다.
박 시장은 독재 시절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말>지 보도지침 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등 굵직하고 민감한 사건들의 변론을 적극적으로 맡았다. 특히 서울대 신 교수 사건은 한국에서 성희롱으로 최초의 법적 공방이 벌어진 것으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박 시장은 1998년 서울고법에서 “가해자 신아무개 교수가 피해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끌어내며 여성 인권을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시장은 1986년 설립된 역사문제연구소(역문연) 초대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때 종로구 재동에 있던 자신의 집과 장서 등을 역문연에 모두 기증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1980년대 후반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의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
참여연대 등 시민운동 산증인
이후 박 시장은 시민사회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하며 사법개혁 운동과 소액주주 운동 등을 이끌었다. 특히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총선시민연대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부정부패 혐의를 받는 정치인들에 대한 낙천·낙선 운동을 펼치며 정치권과 유권자 운동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참여연대가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 정착된 뒤인 2000년 박 시장은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만들어 시민들의 기부와 참여를 시민운동의 영역으로 확장시켰고, 2006년엔 다시 희망제작소를 설립해 상임이사로 활동했다. 박 시장의 시민운동 활동은 자신과 시민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막판 단일화로 시장 당선
2011년 10월, 박 시장이 정치권에 뛰어들며 시장에 당선된 과정은 감동적이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주민투표 뒤 사퇴해 시장직이 공석이 되자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함께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했다. 초반 지지율이 5%에 불과했던 박 시장은 안 전 원장의 극적인 양보를 받아냈다. 이후 경선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꺾고 본선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게 53.4%의 득표율로 승리하면서 여야 양당체제를 넘어선 파란을 일으켰다. 시민운동가 출신 시장의 출현이었다.
참여연대 창립총회가 열린 1994년 9월10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 서초별관에서 초대 사무총장을 맡은 박원순 변호사가 연설하고 있다.
2014년 6월4일 지방선거에서는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거센 도전을 막아내며 재선에 성공했다.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와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의 도전을 받은 2018년 6·4 지방선거에선 52.79%로 나머지 두 후보를 여유 있게 제치고 3선 고지에 올라 역대 최다선 서울시장이 됐다.
박 시장은 이명박, 오세훈 전임 시장과 달리 토건 중심의 성과보단 시민 생활을 바꾸는 시정 운영에 집중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지난 5월 박 시장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지우고 새로 쓰는 재개발·재건축 대신, 고쳐서 다시 쓰는 도시재생 사업이 있다”며 “도시재생은 도심 공동화, 시설 노후화, 상권 침체 같은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주민, 역사, 생태는 물론 마을공동체의 가치도 복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 때…대선주자 1위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당시 박근혜 정부와 달리 투명한 정보 공개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시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박 시장은 대선주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 시장은 마지막 서울시장 임기 반환점을 돈 지난 6일 ‘민선 7기 2주년’ 기자간담회를 열어 소회를 밝힌 바 있다. 박 시장은 “그동안 도시의 가장자리로 밀려났던 많은 시민들의 삶과 꿈을 회복시키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직접 발표한 서울시 정책은 ‘그린뉴딜’이었다. 그는 지난 8일 건물, 수송, 폐기물 분야의 온실가스를 줄이고 2050년까지 서울의 모든 차량을 친환경 전기·수소차로 바꿔 서울을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 도시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서울시장 임기는 2022년 6월30일까지였지만, 만료 700여일을 앞둔 3180일 만에 멈추게 됐다.
영광과 상처 뒤로한 채…
‘디테일에서 강하다’는 평가처럼 그는 시정의 꼼꼼한 부분까지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가 시장이 되고 난 뒤 시청 안팎에선 시장의 열의 때문에 공무원들이 격무에 시달린다는 말이 농담 반 진담 반 퍼져나오기도 했다. 무상급식, 도시재생,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그동안 박 시장이 내세운 정책들은 정부가 역점추진사업으로 이어받는 등 혁신성이 남다르다는 인정을 받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인사 모습. 왼쪽부터 2011년 초선, 2014년 재선, 2018년 3선 당시.
시청을 시민청으로 바꾸는 등 소탈하고 탈권위적인 리더십으로 유독 ‘소통’과 ‘협치’를 중시했던 그는,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200만명의 팔로어를 가진 ‘파워 셀럽’으로 시민들과 가까운 시장이기도 했다. 시장이 되고 난 뒤 한 무연고자 빈소에 밤늦게 조문 가서 “이 세상 떠나는 길이 외로울 듯해서 들렀다”고 밝히기도 했던 박 시장은, 자신이 쌓은 영광과 상처를 뒤로한 채 홀로 세상을 등졌다. < 송경화 기자 >
'순재산 마이너스 6억9천만원' 박원순의 청렴..시장 재직시 빚 늘어
10일 세상을 떠나 8년 8개월여 간의 3선 임기를 비극으로 마감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직 내내 순재산이 마이너스였고, 임기 동안 빚이 오히려 늘었다.
2011년 10월 보궐선거로 당선된 박 시장은 이듬해 3월에 관보로 공개된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 '고위공직자 정기 재산변동사항'에서 2011년 말 기준 순재산(이하 가족 포함)이 마이너스 3억1천56만원이라고 신고했다.
박 시장의 재산은 당시 고위공직자 가운데 가장 적었다.
당시 아파트 전세금과 사무실 전세금이 1억1천500만원, 경남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소재 땅(논)이 약 3천900만원, 예금이 1억7천만원 상당이었고 채권 5천700만원도 있었으나, 채무가 6억6천만원이었다.
당시 신고 내역에 따르면 박 시장의 채무는 종전에는 52억4천400만원에 달했으나 선거비용 보전금 등으로 사인간 채무(5천464명) 45억원 상당과 금융기관 채무 500여만원을 일부 상환한 것으로 신고했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그의 빚은 늘고 순재산은 줄었다.
매년말 기준으로 신고돼 이듬해 3월에 공개된 그의 순재산은 2012년 -5억9천474만원, 2013년 -6억8천601만원, 2014년 -6억8천493만원, 2015년 -6억8천629만원, 2016년 -5억5천983만원, 2017년 -6억2천990만원, 2018년 -7억3천650만원, 2019년 -6억9천91만원이었다.
그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 연속으로 재산등록 대상 고위공직자 중 재산이 가장 적었고, 2018년에는 당시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2019년에는 문행주 전남도의원에게 꼴찌 자리를 내주고 '끝에서 2번째'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신고돼 올해 3월 공개된 내역에 따르면 박 시장의 재산 중에 아파트나 상가나 주택 등은 없었다.
박 시장 본인 명의로 사인간 채무 2천381만원, 금융기관채무 4억2천100만원을 지고 있었고, 배우자인 강난희 씨 명의로 사인간 채무 3억9천30만원, 금융기관채무 803만원이 있었다.
박 시장과 가족(부인, 장녀, 장남)의 예금은 4천755만원 있었다.
부동산으로는 박 시장 본인 명의로 경남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소재 땅(논)이 있었으며, 평가액은 7천596만원이었다.
박 시장 본인 명의의 자동차는 없었다.
작년에 부인 강난희 씨가 2005년식 체어맨 승용차(재작년말 평가액 453만원)를 폐차하고 2014년식 제네시스 중고차를 2천300만원에 사들였다. 다만 재산등록상 이 차의 가액은 실거래가보다 높은 2천787만원으로 책정됐다.
박 시장은 재산신고에 저작재산권으로 '저작권'을 신고했으나 금액을 따로 올리지는 않았다.
부시장 대행 9개월…탁월한 ‘박원순표 정책’ 동력 줄까 우려도
권한대행 한계에 박 시장이 임용한 정책보좌관 등 27명 당연퇴직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망하면서 앞으로 9개월 동안 서울시 행정은 부시장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시장의 부재로 인해 박 시장이 임용한 정책보좌관들이 당연퇴직 수순을 밟게 됨에 따라 ‘불평등 해소’에 초점을 맞춘 박 시장표 정책 추진 동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 시장의 민선 7기 임기는 2022년 6월30일까지로, 4년 임기의 절반인 약 2년이 남아 있었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이 궐위(직위가 빈 상태)된 경우 부시장 등 부단체장이 그 권한을 대행하게 돼 있다. 서울시의 경우에는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그 역할을 맡는다. 35회(1991년) 행정고시 출신인 서 부시장은, 박 시장이 취임한 뒤 행정과장과 시장비서실장, 시민소통기획관, 문화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박 시장의 시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인물로 꼽힌다. 서 부시장이 오랜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시정을 무난하게 이끌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권한대행으로서 한계가 있어 민선 시장과 같은 정치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전망도 나온다.
10일 오전 서울시청 시장실 앞에 박원순 시장의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특히 박 시장이 3선 임기 동안 주력한 ‘불평등 해소’와 ‘서울형 케이(K)방역모델’ 구축 등 주요 정책을 중단 없이 이어가는 것도 서 부시장의 숙제다. 불평등 해소가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라고 본 박 시장은 최근에는 4대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14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전국민 고용보험’ 추진을 강조해왔다. 또한 이달 초부터는 강남지역 개발을 통해 발생한 공공기여금을 관할 자치구에서만 사용하도록 한 ‘국토계획법 시행령’을 비판하는 ‘개발이익 광역화’도 주창했다. 장애인들에게 재활·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사회 복귀를 돕는 ‘장애인 공공재활병원’ 건립도 지방정부 최초로 추진 중이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서울시는 적극적인 선제 검사와 감염병 대응체계를 기존 4단계에서 7단계로 세분화하는 정책으로 서울형 케이방역 표준모델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감염병 예방을 위한 공공의료 인력과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박 시장은 지방정부 최초로 감염병 연구센터와 공공의과대학 설립도 추진하고 있었다. 사망 전날인 8일 박 시장은 도시건물·수송·도시숲·신재생에너지·자원순환 등 5대 분야에서 ‘서울형 그린뉴딜’을 추진해 30년 뒤 탄소배출 제로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을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주택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박에 맞서 그린벨트를 보전하면서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정책 기조가 유지될지도 의문이다. 지난 8일 오후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그린벨트 해제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던 박 시장은 이보다 앞서 그린벨트를 보존하면서 시가 터를 직접 매입하는 방법으로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방법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방법은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을 짓는 것보다 절차나 비용 문제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정책 보좌관들의 공백도 시정 운영에 차질을 우려하는 한 이유다. 이날 박 시장이 기용한 고한석 비서실장, 장훈 소통전략실장, 최병천 민생정책보좌관 등 지방별정직 공무원 27명은 ‘근무기간이 임용권자의 임기만료일을 넘을 수 없다’는 관련 법령에 따라 퇴직 수순을 밟게 됐다. 박 시장표 정책을 만들고, 자문했던 핵심 간부들이 시정을 떠남에 따라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서울시의 입장은 확고부동하다. 주요 부처 직원들은 이날 “박 시장이 열의를 가지고 추진한 도시재생·무상급식·마을만들기 등의 선제적인 정책들이 차질 없이 진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 부시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서울 시정은 안전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박원순 시장의 시정 철학에 따라 중단 없이 굳건히 계속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책을 총괄해온 시민건강국 관계자는 “박 시장님 체제에서 방역·예방 체계들이 잘 세워져 차질 없이 시정이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직원들도 의지를 다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청사는 이날 하루 종일 적막감이 감돌았다. 주요 간부들의 집무실이 있는 6층 통로는 출입이 통제됐고, 시청 직원들은 “고인에 대한 예의”라며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박 시장의 사망 소식을 다룬 뉴스를 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는 직원들도 있었다.
시청 주변에서 박 시장을 추모하려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박아무개(78)씨는 “원통하고 비통한 심정으로 추모하러 왔는데 아직 분향소가 설치되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 오랫동안 일을 잘해오던 분이 왜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는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옥기원 서혜미 기자 >
경찰, 박 시장 성추행 의혹 ‘공소권 없음’ 수사 종결
박원순 서울시장이 숨지면서 서울시 전 직원이 박 시장을 고소한 ‘성추행’ 의혹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다. 이에 따라 관련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가릴 수 없게 됐다.
경찰의 설명을 들어보면 숨진 박 시장은 지난 8일 서울시의 한 직원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했다. 그가 실종되기 하루 전날이다. 피해자는 변호사와 함께 이날 고소장을 접수하고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고소장에는 그가 2017년부터 박 시장에게서 입은 성추행과 성희롱 피해가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10일 새벽 서울 북악산에서 박 시장의 주검을 확인한 뒤 연 브리핑에서 “고소장이 접수됐고 수사중인 것은 맞지만 세부사항은 고인의 명예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박 시장이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성추행 고소사건 수사는 조만간 종결된다. 검찰사건 사무규칙 69조는 수사받던 피의자가 숨질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청 관계자는 “피고소인이 숨질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송치하게 돼 있는 절차에 따라 통상적인 과정을 거쳐 처리하겠다. 다만 송치 시점은 보고서 작성 등 실무적 절차가 필요해 구체적으로 예상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 엄지원 기자 >
빈소 마련 안됐으나 정치인들 새벽부터 조문행렬
장례 서울특별시장상으로 치러져 이달 13일 발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10일 오전 박 시장의 빈소가 마련될 예정인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헌화를 위한 국화꽃이 옮겨지고 있다.
10일 숨진 채 발견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안치됐다. 박 시장의 장례는 서울특별시장상으로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이날 수색 7시간 만에 발견된 박 서울시장의 주검은 새벽 3시께 경찰의 현장감식 절차를 거쳐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박 시장이 도착하기 전부터 그의 지인과 지지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응급의료센터 문 앞에 서서 이송차량을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일부는 차량이 센터 앞에 도착하자 오열하며 “일어나라 박원순”, “사랑한다 박원순”, “미안하다 박원순” 등을 외쳤다. 경찰은 추후 유족과 협의해 시신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한편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빈소가 아직 마련되진 않았지만 정치권 인사들도 새벽부터 조문에 나섰다. 박홍근, 남인순, 이학영 의원 등 박 시장과 가까운 여당 인사들이 일찌감치 서울대병원을 찾았고, 서울시 행정1부시장을 지낸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영달 전 민주당 의원 등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박 시장의 유족들도 현재 장례식장 안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시장의 장례는 첫 서울특별시장상으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서 5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이달 13일로 예정돼 있다. 서울시는 서울시청사 앞에 분향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서울광장 노제 등도 논의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규모와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다. < 채윤태 기자 >
실종 7시간만 시신 발견…최근 전직 비서에 성추행 혐의 피소
지난 9일 공관을 나와 연락이 두절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10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부터 박 시장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포착된 북악산 일대를 수색하던 경찰은 이날 오전 0시께 숙정문 인근에서 박 시장의 시신을 발견했다.
박 시장은 극단적 선택을 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수색견이 박 시장을 찾았다. 아직 공식 확인은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12시20분께 수색현장에선 구급차량이 출발했다.
앞서 박 시장 딸은 전날 오후 5시 17분께 '4∼5시간 전에 아버지가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다'고 112에 신고했다.
박 시장은 전날 오전 10시 44분께 검은 모자를 쓰고 어두운 색 점퍼, 검은 바지, 회색 신발을 착용하고 검은 배낭을 멘 채 종로구 가회동 소재 시장공관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성북구 와룡공원에 같은 날 오전 10시53분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기동대·소방관 등 770여명과 야간 열 감지기가 장착된 드론 6대, 수색견 9마리 등을 동원해 이 일대를 집중 수색한 끝에 실종신고 접수 약 7시간 만에 박 시장을 발견했다.
박 시장은 최근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실에서 근무했던 전직 비서 A씨는 과거 박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있다며 최근 박 시장을 경찰에 고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지난 8일 경찰에 출석해 고소장을 제출하고 고소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소장에는 박 시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신체접촉을 당했고, 메신저로 부적절한 내용을 전송받았다는 주장이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경찰은 고소 여부 등 관련 사실에 대해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경찰은 박 시장의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박원순 시장 실종신고에서 사망 확인까지…긴박했던 7시간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 신고된 지 7시간여 만인 10일 0시 20분께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시장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경찰에 최초로 접수된 시각은 전날 오후 5시 17분이었다.
그의 딸이 '4∼5시간 전에 아버지가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취지로 112에 신고했다.
◇ 유언 같은 말 남기고 집 나가…딸이 112 신고
신고를 받은 경찰은 박 시장의 휴대전화 신호가 성북구 길상사 인근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된 것을 토대로 북악산 자락인 길상사 주변과 와룡공원 일대부터 주변을 집중 수색했다. 북악산 팔각정과 국민대입구, 수림 지역에서도 수색이 진행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오후 5시 30분부터 대규모의 인원과 장비를 투입해 수색을 벌였다. 투입된 인원은 경찰 635명, 소방 138명 등 총 773명이다. 수색견 9마리와 야간 열 감지기가 장착된 드론 6대, 야간 수색용 장비인 서치라이트 등도 동원됐다.
경찰과 서울시 등에 따르면 박 시장은 9일 오전 10시 44분께 종로구 가회동 시장 공관에서 나와 외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 시장은 집을 나서기 전 공관에 유서 성격의 글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찰은 유서의 존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그는 등산로와 연결된 와룡공원에 10시 53분께 도착한 모습이 포착됐다. 공원을 지나서부터는 CCTV가 없어 정확한 동선이 확인되지 않았다.
◇ 9일 오전 10시53분 와룡공원 도착…등산 차림에 배낭
그는 외출 당시 검은 모자를 쓰고 어두운색 점퍼와 검은 바지에 회색 신발을 착용하고 검은 배낭을 메고 있어 등산에 나서는 것으로 보이는 차림이었다.
박 시장은 평소 등산을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1년에도 49일간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당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바 있다.
박 시장은 사망 당일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출근하지 않은 뒤 연락이 두절됐다.
서울시는 이날 앞서 박 시장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당일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고 오전 10시 40분께 공지했다.
박 시장은 원래 이날 오후 4시 40분에 시장실에서 김사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과 만나 서울-지역 간 상생을 화두로 지역균형발전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박 시장은 또 일부 의원들과 이날 아침에 모임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박 시장이 몸이 아프다고 해 모임을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 '부득이한 사정' 들며 일정 모두 취소…성추행 혐의 피소 알려져
그는 시장실에서 근무했던 전직 비서 A씨로부터 최근 경찰에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과 피소 사실 간 관련이 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A씨는 전날 경찰에 출석해 고소장을 제출하고 고소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소장에는 박 시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신체접촉을 당했고, 메신저로 부적절한 내용을 전송받았다는 주장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고소 여부 등 관련 사실에 관해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 서울시는 최근 박 시장이 부동산 대책 등에 따른 격무와 스트레스를 겪어 왔다는 점에서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머리를 식히고 있을 개연성과 함께 박 시장이 '유언 같은 말'을 남겼다는 점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소재 확인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그는 최초 신고 접수 이후 약 7시간 만인 10일 오전 0시 20분께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됐다. 박 시장의 시신은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인권 강조해오다 ‘도덕성 치명타’…수습 힘들다 판단한 듯
박원순 시장 극단적 선택 왜? 서울시 직원이 8일 성추행 고소
“메신저·사진 등 피해 증거 제출” 더 많은 피해자 있다고 진술
젠더특보 등 인권행보 보였지만 사회적 지탄 압박 견디지 못한듯
박원순(64) 서울시장이 10일 새벽 서울 북한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9일 오후 5시20분께 박 시장의 딸이 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된 뒤 8시간여 만이다.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배경엔 비서실에서 일하던 직원으로부터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당한 상황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와 경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박 시장이 실종되기 전날인 8일 경찰에 박 시장 성추행 혐의와 관련한 고소장이 접수됐다. 이튿날 새벽까지 고소인 조사가 진행됐다고 한다. 박 시장 비서로 일하던 직원 ㄱ씨는 변호사와 함께 한 경찰 조사에서 비서로 일하기 시작한 2017년 이후 박 시장의 성추행이 이어져왔고,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박 시장이 개인적인 사진을 여러차례 보내왔다고 진술했다. ㄱ씨는 박 시장과 나눈 텔레그램 메신저 대화 내용을 비롯해 자신의 피해를 입증할 증거도 상당량 경찰에 제출하고, 자신 말고도 더 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있다고도 밝혔다고 전해졌다.
ㄱ씨의 이런 진술은 박 시장에게 상당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박 시장은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해 사무처장으로 일하며 △권력기관 감시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 운동 △부적격 정치인 낙천·낙선운동 등을 진행하며 시민운동의 새 장을 열었다. 이보다 앞선 1993년 박 시장은 ‘성희롱은 불법 행위’라는 인식을 세상에 알린 ‘서울대 ㅇ조교 사건'의 공동 변호인이기도 했다. 성희롱으로 최초의 법적 공방이 벌어진 사건으로 당시 박 시장은 이종걸, 최은순 변호사와 함께 피해자 변호를 맡아 1998년 서울고법에서 “가해자 신아무개 교수가 ㅇ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끌어냈다.
경찰과학수사대원들이 10일 새벽 서울 종로구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 새로운 시민운동 영역 개척에 앞장섰다. 2011년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의 지원 속에 오세훈 시장 사퇴로 치러진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재선·3선에 성공하면서 서울시정에서 다양한 개혁·혁신정책을 시도해 왔다.
특히 2018년에는 서울시에 여성정책을 총괄 보좌할 젠더특보를 임명하고, 성폭력을 예방하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성권익담당관을 신설하는 등 여성 이슈와 관련해 적극적 행보를 보여왔다. 지난해 4월 시청사에서 열린 성희롱 예방교육에 참석해 “여러 여성단체 고문변호사를 하면서 성평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언사나 행동이 상대방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줄 수 있다”며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성인지 감수성을 높일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렇듯 헌신성과 도덕성에 바탕해 시민사회단체 출신 대표적인 민주진영 정치인으로 떠올랐는데, 자신이 강조해온 가치, 언행들과 정반대로 배치되는 성폭력 의혹이 불거진 셈이다. 서울시청 한 간부는 “시장님이 다른 것은 몰라도 도덕성 하나 만큼은 워낙에 많이 강조하셨는 이런 상황이 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결국 언행불일치에 따른 사회적 지탄 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박 시장은 고민 끝에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시장직 사퇴 등 정공법에 가까운 해법도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ㄱ씨 고소 사실이 확인된 8일 밤, 박 시장 최측근들은 한자리에 모여 대책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젠더특보 등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는 시장직 사의 필요성 등이 거론됐다고 한다. 하지만, 3선 서울시장 출신의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박 시장은 대중들 앞에서 여론과 법적 심판을 받는 대신 스스로 극단적인 상황을 선택했다.
서울시에서는 박 시장의 비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종 전날까지 박 시장과 일정을 함께한 시 관계자는 “좀 피곤해 보이시긴 했는데 전날까지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셔서 전혀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다”며 “직원들 모두 많이 놀란 상황이다.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 송경화 옥기원 기자 >
서울시 직원들 당혹 “너무 놀라 뭐라고…”
10일 0시를 갓 넘긴 시각, 박원순 시장이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한 서울시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 시장이 비서로 일하던 직원에게 성폭력 의혹으로 고소를 당했다는 언론 보도에도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이상기류는 9일 아침부터 감지됐다. 박 시장은 가회동 공관에서 시청청사로 아예 출근하지 않은 채 이날 일정 취소 의사를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장님이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출근이 어렵다고 알려와 당일 잡힌 일정들을 급하게 취소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후 4시40분으로 예정된 김사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과의 면담이 취소됐다.
경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들어온 9일 오후 서울시청 브리핑실에서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박 시장의 실종 소식이 전해진 뒤 시청 직원들은 경찰과 소방대의 수색 소식에 촉각을 기울이며 망연자실한 반응을 보였다. 전날까지 박 시장이 여전히 의욕적인 자세로 업무를 수행해 아무런 이상 징후를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날까지 박 시장과 일정을 함께한 시 관계자는 “좀 피곤해 보이시긴 했는데 전날까지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셔서 전혀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다”며 “직원들 모두 많이 놀란 상황이다.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전날까지도 시장님은 정상적으로 업무를 진행했다”며 “직원들은 실종 보도를 보고 다들 놀란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 박 시장은 전날인 8일 서울시청에서 그린뉴딜 추진 기자회견을 여는 등 계획된 일정들을 소화했다. 지난 6일엔 ‘민선 7기 2주년’ 기자간담회를 열어 남은 임기의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시 관계자들은 박 시장의 성추행 피고소 보도와 관련해 “확인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한 직원은 “우리도 (전 비서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놀랐다. 지금 (실종된) 상황은 개연성이 있어 보이긴 한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 중인데, 시청 전체가 초비상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청은 이날 오후 6시께 연락망을 가동해 과장급 이상 직원들은 비상대기하도록 지시했다. 부시장 주최로 주요 간부 회의가 열리는 등 늦은 밤까지 분주한 모습이었다. 시 관계자들은 박 시장의 집무실을 비롯해 주요 간부들이 모여 있는 서울시청 신청사 6층엔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게 조처했으며, 6층 출입구를 책상으로 아예 막아 취재진 등의 접근을 통제하기도 했다. < 송경화 옥기원 서혜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