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가족이 소유한 트럼프그룹의 탈세 및 금융사기 의혹 등에 대한 뉴욕주 검찰의 조사가 형사사건 수사로 전환됐다.

 

미국 뉴욕주 검찰총장 레티샤 제임스의 대변인 페이비언 레비는 19일(현지시각) “우리는 트럼프그룹 수사가 더는 단순히 민사적인 성격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렸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대변인 사무실은 또 “우리는 맨해튼 검찰과 함께 트럼프그룹을 형사사건으로 적극 수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주 검찰의 수사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트럼프그룹에 대한 수사에 참여해온 뉴욕주의 조사관 2명이 맨해튼 검찰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트럼프그룹은 호텔에서 골프장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가족이 소유한 몇백개의 사업체를 총괄하는 지주회사다.

뉴욕주 검찰은 그동안 트럼프그룹 산하 사업체들의 탈세와 보험 및 은행 사기 의혹에 대해 민사사건으로 조사를 벌여왔다. 이번에 형사사건 수사로 전환되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처벌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지난 1월 백악관을 떠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동안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며 의혹을 부인해 왔다. 트럼프그룹을 겨냥한 검찰의 조사와 수사에 대해선 이를 주도해온 맨해튼 검찰의 사이러스 밴스와 뉴욕주 검찰총장 레티샤 제임스가 모두 민주당원인 점을 들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정치적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했다.

 

뉴욕주 검찰은 트럼프그룹이 금융권 대출과 보험 적용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기 위해 자산 가치를 부풀리고 탈세를 위해선 자산 가치를 줄였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를 벌여왔다. 맨해튼 검찰은 애초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과 혼외정사를 했다고 주장한 전직 포르노 배우와 성인잡지 모델 등 2명에게 거액의 입막음용 돈을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였으나, 최근 트럼프그룹의 탈세와 금융·보험 사기 의혹으로 수사가 확대됐다.

 

맨해튼 검찰은 올해 초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금품 수수 의혹을 폭로한 마이클 코언을 불러 조사를 벌였고, 또 트럼프그룹과 오랫동안 거래해온 도이체방크, 보험중개사 에이온의 임직원들도 불러 조사했다. 박병수 기자

 

변화 선택한 칠레, 제헌의회 선거 ‘무소속 최다의석’

155석 중 48석 ‘지각 변동’ ...‘경제민주화’ 헌법 전망

 

칠레의 제헌의회 선거와 같은 날인 17일 치러진 산티아고 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이라시 하슬러(Iraci Hassler 공산당)가 손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산티아고/AFP 연합뉴스

 

칠레 국민들이 피노체트 독재 이후에도 면면히 이어져 온 낡은 정치에 대한 단호한 결별과 과감한 변화를 선택했다.

 

칠레 전역에서 헌법 개정을 위한 제헌의회 의원 155명을 뽑는 선거가 15~16일 이틀에 걸쳐 치러진 결과, 기존 정당과 무관한 무소속 후보 48명이 당선돼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고 <에이피>(AP) 등 외신들이 17일 보도했다. 현 집권 세력인 중도우파 연합은 37석으로 2위로 밀렸고, 이어 공산당이 28석, 다른 좌파 연합이 25석을 얻었으며, 나머지 17석은 원주민에 배정됐다. 성별로는 남성이 78석, 여성이 77석으로 나뉘었다. 투표율은 42%로 낮은 편이었다.

 

이런 결과는 선거 전 무소속이 기껏해야 10~12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에 견주면, 지각변동이다. 칠레 유권자들의 뿌리 깊은 정치 불신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된다.

칠레 대통령 세바스찬 피녜라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기존 정치권이 “국민의 요구와 열망,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번에 당선된 무소속 의원들은 2019년 10월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며 불붙었던 대규모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교사와 작가, 언론인, 법률인, 시민단체 활동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개혁과 변화를 주장해 왔으며, 일부 친기업 쪽 인사도 있지만 대체로 진보적인 의제에 우호적이라고 외신들이 전했다.

 

개헌은 제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개헌안이 마련되면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절차를 밟는다. 이들 무소속 의원이 앞으로 9개월 간의 개헌 논의 과정에서 진보정당 출신 의원들과 머리를 맞대면, 국가의 역할을 제한하고 시장 자유화를 보장하는 내용의 현행 헌법은 경제민주화와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실제 개헌 과정은 무소속 의원들 하나하나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 만큼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 집권 세력인 우파연합은 일방적인 개헌을 저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3분의 1 의석도 확보하지 못해 개헌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정치학자 클로디오 푸엔테스는 우파 정치인들이 개헌 논의에서 사실상 소외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 결과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산티아고 시장의 주가는 17일 9.3% 폭락했고, 페소는 달러 대비 2.0% 떨어졌다.

 

현행 칠레 헌법은 1973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독재 체제가 맹위를 떨치던 1980년 제정됐다. 피노체트 정권은 당시 교육과 건강·의료 보험, 연금 등을 포함한 모든 부문에서 민간기업의 자유로운 영업을 허용하는 등 강력한 시장자유화 정책을 펼쳤으며, 이런 경제정책의 원리는 헌법에도 담겼다. 피노체트는 1990년 퇴진하고 이후 민주화가 진행됐지만, 헌법은 그대로 유지됐다.

 

그 결과, 칠레의 경제는 성장했지만 빈부격차가 극에 달하는 후유증을 낳았다. 칠레는 라틴아메리카에서 1인당 지디피(GDP)가 가장 많은 나라지만, 상층 중산층도 교육비와 개인연금 지출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실정이라고 <아에프페>(APF)가 전했다.

 

이런 경제적 불평등은 결국 2019년 10월 지하철 요금 인상을 계기로 전국적 폭력 시위로 폭발하는 배경이 됐다. 이에 놀란 정부는 지난해 10월 제헌의회를 구성해 개헌하는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쳤고, 방안은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박병수 기자

군에 저항 5만도시 서부 친주 민닷 상황 악화

"정글 대피 수천 명 음식 · 의약품 부족 심각"

 

미얀마군이 강경하게 진압에 나선 서부 친주 민닷 지역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발한 지 100일을 훌쩍 넘긴 가운데 사망자도 800명을 넘어섰다.

18일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전날 현재까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이는 802명이었다.

체포·구금된 이의 숫자는 5천210명에 달했다.

 

미얀마 전역에서 유혈진압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군경이 공세를 집중하는 서부 친주의 민닷 지역의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군경은 대포와 자동화기 그리고 로켓추진수류탄 등 중화기를 동원해 사냥용 소총 등으로 맞서는 시민방위군 진압에 나서고 있다.

 

군경 총격에 집에 숨어있던 10세 소녀가 총탄에 맞아 위독한 상태라고 AAPP가 밝혔다.

군경은 또 민닷 시민들의 집이나 가게를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재산을 약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주민 수천 명이 정글로 피했지만, 음식이나 의약품은 물론 몸을 피할 대피 시설도 심각하게 부족한 상태라고 AAPP는 전했다.

 

AAPP는 인구가 약 5만명에 불과한 소도시를 상대로 군경이 이처럼 강경하게 폭력 진압에 나서는 이유와 관련, 다른 도시나 마을도 군사 정권에 대항하면 이런 처지가 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닷을 위해 기도한다는 미얀마 시민의 손팻말.[SNS 캡처]

 

한편 현지 매체 이라와디는 군부가 민닷을 장악한 뒤 이날 오전 물 공급을 끊었다고 민닷 주민이 전했다.

SNS에서는 군부의 이같은 야만적 폭력행위를 중단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압력을 가해달라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유니세프 미얀마 지부는 성명을 내고 민닷 지역에 남아있는 모든 이들, 특히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의료 및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군부에 촉구했다.

NLD 의원 피살…'저항 운동' 시인 휘발유 테러 당해 숨져

같은 수치 이끌던 당 소속 의원도 군부에 체포돼

 

        피살된 NLD 소속 하원의원인 사이 깐 눈 [이라와디 사이트 캡처]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폭력중단을 호소하고 있지만 현지에서 괴한에 의한 테러가 연일 발생해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17일 현지매체인 이라와디에 따르면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하원의원인 사이 깐 눈이 지난 15일 오후 샨주의 코 야웅 마을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시뽀 지역에서 출마해 당선된 그는 피습 당시 여행중이었다.

아직까지 용의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미얀마 군부가 지난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킨 뒤 NLD 소속 정치인을 대상으로 발생한 테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NLD 마궤 지역위원장과 17살된 조카딸이 군부와 연계된 통합단결발전당(USDP) 지지자들이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군부에 의해 체포된 3명의 NLD 소속 정치인들도 구금중 사망한 바 있다.

 

괴한이 머리에 불을 질러 숨지게 한 시인 세인 윈. [SNS 캡처]

 

지난 14일 오후에는 중부 사가잉 지역의 몽유와에서 시인 세인 윈(60)이 괴한으로부터 휘발유 테러를 당해 숨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괴한은 윈의 머리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인뒤 달아났다.

윈은 즉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고 결국 숨졌다.

그는 지난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몽유와에서 반군부 거리 시위에 참여했으며, 젊은 시위 지도자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국제사회의 즉각적인 정치범 석방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한명이 군부에 의해 추가로 구금됐다.

NLD 소속인 틴 민 투 의원이 이틀전 집에서 체포됐다고 이라와디는 전했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에야와디주의 판타나우 지역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연합(AAPP)에 따르면 지난 2월 1일 군부 쿠데타 이후 구금된 사람은 3천998명에 달한다.

 

미얀마군 포탄·자동소총에 시민군 19세기 엽총으로 맞서

 "정부군, 민닷서 인간방패 내세우고 민간인 조준 사격“

 

미얀마 쿠데타 사태가 길어지면서 "스스로 목숨을 지키자"며 전국 곳곳에서 시민방위군과 자경단이 조직되고 있다.

정부군이 포탄·자동소총에 헬기·드론까지 띄워 시민군 토벌 작전을 벌이는 반면 시민들은 19세기 기술로 만든 조악한 사제총기로 맞서는 상황이다.

 

17일 이라와디 등 미얀마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정부군은 지난 15일 서부 친주 산악지역 민닷(Mindat) 지역을 포위하고 헬기를 투입한 공중작전과 지상 작전을 펼쳐 민간인 최소 5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또, 민닷 지역 시민군 8명이 숨지고, 20명 정도가 다쳤다.

 

약 2만명의 주민이 사는 민닷 지역은 쿠데타 발생 후 주민들이 시민군을 조직해 군경과 무력 충돌을 빚어왔다.

미얀마 군부는 민닷 지역에서 군경 사망자가 늘자 이달 13일 해당 지역에 계엄령을 내린 뒤 병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시민군 소탕 작전을 벌였다.

 

민닷 지역 시민군은 "군부가 포탄과 헬리콥터를 사용해 무자비한 공격을 퍼붓는 바람에 민간인들을 구하기 위해 전술적으로 후퇴했다"고 발표했다.

친주의 인권단체(CHRO)는 "군인들은 민닷 지역을 공격하면서 민간인을 조준 사격하고, 인간방패로 내세우는 등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정부군은 민닷 지역 시내로 진입하면서 주민들을 무차별 검거한 뒤 최소 18명을 '인간 방패'로 내세웠고, 시민군들이 이들 때문에 반격할 수 없어 퇴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닷 지역 시민군은 16일 오전 정부군 150명을 수송하는 차량 9대를 공격하며 반격에 나섰다.

 

 사제 공기총으로 군경과 맞서는 미얀마 시위대 [AP=연합뉴스]

 

이처럼 시민군이 목숨을 걸고 정부군에 저항하고 있지만, 무기부터 차이가 크다.

시민군이 들고 싸우는 무기는 19세기 방식으로 집에서 만든 엽총, 사제폭탄뿐이지만 정부군은 기관총과 자동소총, 수류탄, 유탄발사기까지 동원해 진압하고 있다.

 

군경은 시민들의 무장 저항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해 '싹을 잘라야 한다'는 전략으로 초기 진압에 집중했지만, 총을 드는 시민은 점점 늘고 있다.

 

칼레이 지역 시민군은 "우리는 제대로 된 무기가 없다. 대원 10명이 있다고 치면 6명만 사냥총, 공기총이 있고 나머지는 그마저 없다"며 "하지만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카니 지역 시민군은 "정부군과 맞붙은 날 우리 대원 중 일부는 공기총을, 나머지는 새총을 들고 있었다"며 "우리가 가진 공기총은 한 번 쏘고, 다시 장전해 쏘는데 3분이 더 걸린다. 재장전하는 동안 새총을 열심히 쏘긴 했지만, 약 4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증언했다.

 

민닷 지역 시민군 소탕 작전을 접한 양곤 주재 미국 대사관은 "군부는 민간인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라. 민간인에 대한 전쟁 무기 사용은 정권이 권력 유지에 얼마나 깊이 빠져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성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