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어렵게 한 루이지애나 법에 5 4로 폐기 의견

보수성향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선례이유로 동참

대법원, 앞서 성소수자와 불법 체류 청소년 보호 판결

             

보수 우위로 이뤄진 미국 연방대법원이 29일 여성의 낙태 권리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놨다. 최근 성 소수자의 직장 내 고용 차별을 금지하고,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제도(DACA·다카) 폐지 추진에도 제동을 건 데 이어 대법원이 잇따라 진보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은 이날 주 안에 낙태 클리닉 숫자와 낙태 시술 의사 수에 제한을 두도록 한 루이지애나주의 낙태의료시설법이 헌법이 보장한 여성의 낙태 권리를 침해한다고 결정했다. 이 법은 약 30마일(48) 이내에 두 개 이상의 낙태 클리닉을 두지 못 하게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루이지애나주에 낙태 클리닉은 단 한 곳 뿐이다. 또한 이 법은 낙태 시술도 환자 입원 특권을 가진 의사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9명의 대법관이 논쟁한 끝에 5 4로 이 법 폐기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루이지애나 법은 낙태 시술 제공자의 수와 지리적 분포를 급격히 감소시켜 많은 여성이 주 안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를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다수 의견인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이 법이 낙태를 하려는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장애물이며, 헌법상의 낙태권에 지나친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눈에 띄는 것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다수 의견에 동참한 점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지명된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만 루이지애나 법이 위헌이라고 본 게 아니라, 기존 대법원 판례를 존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에 대법원은 이번 루이지애나 법과 거의 똑같은 텍사스주의 법을 폐기하는 결정을 내렸는데, 당시 로버츠 대법원장은 그 결정에 반대했었다. 하지만 당시 다수 의견으로 텍사스주 법을 무효화한 만큼, ‘선례 구속의 원칙에 따라 루이지애나 법도 무효화해야 한다고 봤다는 것이다.

반면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등 4명의 대법관은 루이지애나 법이 낙태를 원하는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고, 특권을 인정받은 의사만 시술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의사들의 능숙함을 보장하는 것을 도와준다며 이 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이번 판결이 근거 없는 낙태 법리를 영구화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 백악관은 유감스러운 판결이라고 밝혔다. 케일리 매커내니 대변인은 성명을 내어 대법원이 루이지애나의 정책을 파괴해 산모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을 모두 평가절하했다선출직이 아닌 대법관들이 근본적인 민주주의 원칙의 가치를 소중히 하지 않고, 자신의 정책 선호에 따라 낙태에 찬성해 주 정부의 자주적인 특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최근 두 차례 이어진 진보적 결정을 잇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대법원은 지난 15민권법은 고용자가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근거해 직원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판결해, 연방정부의 직장 내 작업자 보호 조처가 전국의 성소수자(LGBT,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직원까지 확대돼야 한다는 첫 판결을 내렸다. 이 때는 로버츠 대법원장과 고서치 대법관 등 보수 대법관들도 찬성해 6 3 판결이 났다. 대법원은 또 18일에는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제도(DACA·다카) 폐지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때도 다수 의견에 동참했다. 낙태와 성 소수자 권리, 이민 문제는 미국 내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는 문제로,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

 

 


살인·강간 범죄 시인한 미국의 연쇄 살인마 조지프 제임스 드앤젤로

             

"내면의 '제리'가 살인교사" 시효 지난 강간 50여건도 인정

골든 스테이트 킬러, 사형 대신 종신형 받아들이며 유죄 인정

          

1970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대에서 잔혹한 방법으로 살인과 강간 범죄를 저지른 희대의 연쇄 살인마가 45년 만에 자신의 범죄를 시인했다.

'골든 스테이트(캘리포니아주) 킬러'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조지프 제임스 드앤젤로(74)29일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법정에서 13건의 살인·강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이날 법정에 선 드앤젤로는 1975년 대학교수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1986년까지 이어진 13건의 살인·강간 사건에 대해 모두 범행을 시인했다.

AP통신은 "드앤젤로가 쉰 목소리로 '유죄를 인정한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내뱉었다"고 전했다.

40여년간 꼬리를 감춰오다 지난 2018년 유전자 족보 분석 기법으로 체포된 드앤젤로가 법정에서 과거 살인 행각을 시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드앤젤로는 사형 대신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기로 검찰과 합의했다.

이에 따라 드앤젤로는 검찰에 일종의 자백서를 제출했다.

그는 검찰에 '제리'라는 내면의 인격이 악마적인 범죄 행각을 부추겼다고 주장하면서 "나는 제리를 밀어낼 힘이 없었다. 제리가 이런 나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제리는 나와 함께 있었고, 내 머릿속의 제리는 나의 일부였다""내가 그 모든 것을 저질렀고, 내가 그들(피해자)의 삶을 파괴했다. 이제 내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드앤젤로는 197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주에서 경찰로 일하면서 첫 살인을 저질렀고, 절도 사건에 연루돼 경찰을 그만둔 뒤에도 1980년대 중반까지 10여건의 살인과 50여건 강간, 120여건의 강도 행각을 벌였다.

검찰은 "드앤젤로에게 심판의 날이 왔다"면서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50여건의 강간 사건에 대해서도 드앤젤로가 범죄를 인정했다고 전했다.

이날 재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좁은 법정을 대신해 새크라멘토 주립대학 강당에서 열렸다.

투명한 플라스틱 얼굴 보호막을 착용한 드앤젤로는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했고,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벌린 채 검찰의 유죄 심문을 청취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연쇄살인마의 유죄 인정 답변을 청취하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수십 년 전의 끔찍한 악몽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고, 드앤젤로의 법정 진술을 들으면서 몸소리를 쳤다.

1980년 드앤젤로의 살인·강간 범죄에 부모를 잃은 제니퍼 캐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다""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지난 213일 부산고등·지방 검찰청을 찾은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이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를 비롯한 간부진과 인사하는 모습.

        

·언 유착 의혹 수사팀 의견 묵살 대검 부장들도 불참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언 유착 의혹 수사의 적정성을 묻기 위한 전문수사자문단(수사자문단) 구성에 착수했다. ‘측근 감싸기라는 검찰 안팎의 비판과 수사팀의 거듭된 이의제기에도 이를 강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29일 윤 총장은 대검 과장과 연구관들이 모인 회의에서 수사자문단 위원 추천 작업을 마쳤다. 대검 부장(검사장)들도 이 회의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부장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윤 총장이 애초 대검 부장회의에 지휘권을 넘기겠다고 해놓고 사실상 본인이 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읽힌다.

앞서 윤 총장은 자신의 최측근으로 지목된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이 사건의 피의자로 전환된 지난 4일부터 대검 부장회의에 지휘를 맡겼다. 그러나 윤 총장은 수사자문단 신청 권한이 없는 피의자(이아무개 전 <채널A> 기자)진정을 받아 대검 부장회의에 논의를 지시했고, 대검 부장회의의 의결이 없었는데도 소집을 결정했다.

수사자문단 소집에 반대하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의견도 묵살됐다. 수사팀은 지난주 대검에 한창 수사 중인 상황에서 수사자문단 소집은 적절하지 않다며 첫번째 이의제기를 했다. 이에 대검은 “29일 정오까지 수사자문단 위원 후보 명단을 제출하라는 답신을 보냈고, 수사팀은 이날 수사자문단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내부(검사)와 외부(형사사법 전문가) 위원 구성을 어떻게 할 건지 구체적인 절차도 명확하지 않다며 두번째 이의제기를 했다. 이에 따라 대검 부장회의에서 수사팀의 이의제기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를 해야 했지만 이런 절차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윤 총장이 사건 지휘를 스스로 회피하겠다고 해놓고도 수사 진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사자문단 소집 요청부터 구성까지 모두 본인의 뜻으로 결정한 것이다.

윤 총장이 수사자문단 구성을 강행하면서 수사자문단 심의는 파행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자문단은 대검과 수사팀이 서로 후보들을 추천하고 배제할 사람은 제외한 뒤 추첨을 통해 꾸리게 된다. 그러나 수사팀은 윤 총장의 수사자문단 소집이 부당하다며 후보를 추천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수사자문단은 대검에서 추천한 인사들로만 구성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위원 추천 요청 공문을 발송했으며 가장 공정한 방식으로 수사자문단을 구성했고 총장은 수사자문단 구성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렇게 구성된 수사자문단이 이번주 안에 소집될 거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부의심의위원회의 회부 결정으로 앞으로 열리게 될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와 경합하는 모양새다. 부의심의위원회는 앞서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가 피해자 자격으로 신청한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을 받아들였다. 검찰의 한 간부검사는 만약 수사심의위와 수사자문단의 결론이 다르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언 유착이라는 사건 하나를 가지고 두가지 심의가 거의 동시에 가동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김태규 기자 >

추미애 검찰 신천지 압색 골든타임 놓쳐윤석열 연일 맹공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29일 오후에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또다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한 비판에 나섰다. 코로나19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친 책임을 검찰에 돌린 것이다.

추 장관은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검찰이 코로나19 관련 신천지를 상대로 한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반려한 사건에 관해 묻자 지시를 공문으로 내린 날짜는 228일이었다. 교회 시시티브이를 나중에 확보하게 됐는데 압수수색을 했다면 교회에 누가 출입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압수수색 골든타임을 놓쳐 시시티브이가 자동삭제되는 기간이 됐다. 귀중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고 제때 방역하지 못한 우를 범했다고 답변했다.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보는 것이고 앞으로도 더욱 검찰권의 올바른 행사, 적정한 행사를 위한 구체적 지휘를 잘해서 국민이 불안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와 관련한 언급도 나왔다. 추 장관은 이날 신동근 민주당 의원이 조국 전 장관 수사에 대한 평가를 묻자 과잉 수사, 무리한 수사가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여당 의원들도 추 장관에 대한 지원 사격에 나섰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과거 정부에서는 법무부장관이 검사장에게 직접 구두 지휘를 해왔었다오히려 그게 잘못된 방식의 지휘고 장관이 한 서면 질의는 법에 따른 적절한 지휘 방식이지 않냐며 되물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도 우리당의 많은 의원이 장관의 검찰에 대한 지휘를 정당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의 윤 총장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추 장관은 지난 25일 고위공직자수사처 설립준비단이 주최한 공청회에 참석해 검찰 스스로가 정치하는 듯 왜곡된 수사를 (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파사현정의 정신에 부합하는 공정한 검찰권의 행사가 있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날 오후 민주당 초선의원 혁신포럼에서는 “(윤 총장이) 장관의 말을 겸허히 들었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더 꼬이게 하였다” “말 안 듣는 검찰총장과는 일해본 적이 없다등 윤 총장을 직접 겨냥해 날 선 말들을 쏟아냈다. < 정환봉 기자 >

 

 


    

    

법사위원장 이견 못좁혀정의·국민의당도 표결 불참

상임위 본격 가동했지만 통합당 보이콧정국 경색

         

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이 과반 원내 1당인 민주당의 독점 체제로 마무리됐다.

과반 정당이 상임위원장직을 모두 차지한 것은 1985년 구성된 12대 국회 이후 35년 만이며, 87년 민주화 이후 첫 사례다.

21대 국회는 사실상 단독 개원 및 상임위원장 선출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출발하게 됐다.

여야 원내대표는 29일 오전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원 구성 최종 협상에 나섰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전날 회동에서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지면서 원 구성 타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으나 법사위원장 배분 문제 등 합의안을 통합당 의총이 거부함에 따라 최종적으로 결렬됐다.

이에 박 의장은 오후 2시 본회의를 열고 11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했다.

지난 15일 선출된 6개 상임위원장과 여야 국회 부의장 합의가 필요한 정보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장 전부였다.

통합당 의원 103명 전원과 정의당 6, 국민의당 3, 통합당 출신 무소속 의원 4명을 포함해 총 116명이 표결에 불참했다.

‘3선 이상 나이순관례 깨고 재선·장관 출신 의원 대거 위원장에

여야 협상 결렬로 더불어민주당이 17개 상임위원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모두 맡기로 하면서 장관직을 맡았던 의원들과 재선 의원까지 대거 상임위원장을 맡게 됐다. 3선 이상 의원부터 나이순으로 상임위원장을 맡고, 장관을 지낸 의원들은 배제하는 국회 관례를 벗어난 인선이다.

2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4선 정성호 의원이 예산결산특별위원장에 선출됐다. 정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장을 지냈지만 당시 2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해 상임위원장을 한번 더 맡게 됐다. 운영위원장은 관례대로 여당의 원내대표인 김태년 의원이 선출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의원들도 총출동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도종환 의원은 문화체육관광위원장에,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이개호 의원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에 선출됐다.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냈던 진선미 의원이 국토교통위원장을 맡았다. 앞서 국토교통위원장을 희망했던 윤관석 의원은 정무위원장으로 배치됐다. 교육위원장은 유기홍 의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박광온 의원이 맡게 됐다. 일각에서는 도 의원처럼 직전 장관이 바로 상임위원장을 맡는 경우는 3권 분립의 기본 취지에 어긋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앞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약속한 여당 몫 상임위원장 여성 30% 배정도 현실이 됐다. 전체 18개 상임위원회 가운데 행정안전위원회(서영교보건복지위원회(한정애국토교통위원회(진선미환경노동위원회(송옥주여성가족위원회(정춘숙) 5개 상임위에 여성 의원이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상임위원장 경력이 없는 3선 여성 의원이 부족한 탓에 재선인 송옥주·정춘숙 의원에게도 기회가 돌아갔다.

야당 몫 부의장은 일단 공석으로 남게 됐다. 국회법상 국회 부의장과 협의를 거쳐 위원을 선임해야 하는 정보위원장 역시 이날 선출되지 못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협상을 더 해봐야 한다는 태도다. 김영춘 전 의원의 국회 사무총장 임명 승인안도 이날 본회의를 통과했다. < 이지혜 기자 >

국회 단독 운영 여당에 부담추경 처리 뒤 정상화 나설 듯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

29일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차지하게 된 것을 놓고, 안팎에선 이런 평가가 나온다. 원하는 대로 상임위를 쥐락펴락할 수 있지만, 권한만큼 책임이 따르고 부담도 더 클 수밖에 없다. 여당은 그동안 야당의 발목잡기에서 벗어나 책임정치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입법부가 행정부·사법부를 견제하는 ‘3권 분립원칙이 21대 국회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민주당 법안처리 속도“176석의 자신감

민주당은 상임위원장 선출이 끝난 만큼 3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 들어가며 일하는 국회의 모양새를 취했다. 30일 오전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심사를 마무리한 뒤 임시회 마지막날인 새달 3일에는 반드시 추경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한 의원은 “6월 임시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7월 임시국회를 소집할 예정이다. 인사청문회 대상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을 포함하는 인사청문회법·국회법 개정안 등 처리해야 할 법안이 많다고 말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준법 출범도 강조했다. 이해찬 대표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미래통합당이 공수처 출범을 방해하면 민주당은 공수처법 개정을 포함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서라도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현재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7명 중 2명은 야당 교섭단체가 추천하게 돼 있는데, 통합당이 시간끌기로 버티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공수처를 출범시키겠다는 취지다.

이날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한 배경은 결국 거대 여당의 자신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강신구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당이 지지부진하니까 우리가 세게 나가도 국민이 욕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 작용한 거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거여 독주체제를 길게 끌고 가는 것은 민주당에도 부담이다. 민주당 안팎에선 당장 급한 3차 추경안 처리를 마치면 국정조사 등 통합당의 요구안 일부를 수용해 원내 복귀의 명분을 만들어준 뒤 국회 정상화를 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회가 통법부 소리 안 듣게 고민해야

야당 진공상태에선 작은 실수라도 여당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민주당 입장에선 위험한 상황으로 간 게 맞다. 경제나 남북관계에서 관리가 안 되면 100% 청와대, 정부, 집권당의 책임이라며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렇게 되면 철저하게 제도와 법을 지켜가면서 가야 한다. 한 발자국이라도 어물쩍 넘어가면 바로 백래시(반발)가 엄청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에 대한 견제가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모든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차지하고, 상임위마다 야당이 수적으로 절대 열세이기 때문에 야당의 견제라는 게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지도 미지수라며 민주당으로서는 어떻게 해야 국회가 행정부가 만들어준 법을 그대로 통과시켜주는 통법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수적으로 우세하더라도 야당과 협치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나왔다. 유창선 평론가는 지난 총선에서 통합당도 40% 이상 표를 얻었다. 여당으로서 야당을 지지했던 민심을 반영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민주당이 그 점에 대해서 책임 있는 긴장감을 내려놓아선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서영지 황금비 기자 >

대선 이긴 당이 법사위잠정안, 통합당 의원들이 거부

28일 밤 의견접근29일 오전 통합당 의원들 실익 없다결렬

8부능선을 넘은 듯했던 21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이 29일 최종 결렬된 것은 핵심 쟁점이던 후반기 법제사법위원장배정 원칙을 두고 여야가 끝내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야는 이날 합의가 무산된 뒤 협상 결렬의 책임을 상대 당의 욕심탓으로 돌렸다. 미래통합당은 후반기 법사위원장도 야당 몫으로 보장해주지 않은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를 비판하며 상임위원 명단마저 제출하지 않았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전날 오후 515분부터 밤 850분까지 약 3시간35분간 마라톤협상을 벌인 뒤 이날 오전 최종 합의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여야가 전날 밤 상당한 의견 접근이 있었다고 전하면서, 이날 오후 2시 예정된 본회의 전 여야의 합의 가능성은 커지는 듯했다. 그러나 오전 1035분 들려온 결과는 협상 결렬이었다.

애초 두 당 원내대표가 전날 성안한 합의문 초안에는 의석수에 따라 상임위원장 자리를 민주당과 통합당이 11 7 비율로 나눠 갖고, 21대 후반기 법사위원장은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한 당이 우선 선택권을 갖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통합당은 이와 함께 정의기억연대 관련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한명숙 전 총리 수사·재판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논란에 대한 법사위 청문회 개최를 요구했고, 민주당은 이번 회기(73) 내 코로나 사태 해결을 위한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옥상옥논란을 빚어온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한 축소·폐지 문제도 논의하자는 데까지 두 당은 뜻을 모았다. 이제 의원총회를 열어 추인을 받은 뒤 두 당 원내대표가 다시 만나 최종 서명을 하면 원구성은 마무리되는 수순이었다.

그러나 후반기 법사위원장 배정 문제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 통합당은 애초 법사위원장을 1년씩 번갈아 맡는 안 2년씩 나누어 맡는 안 법제위와 사법위로 나누어 맡는 안 등을 제시했으나 민주당이 난색을 보였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나서 전반기 2년은 민주당이 맡고, 2022년 대선 결과에 따라 후반기 2년을 집권당이 맡는 안을 두 당에 역제안했으나 통합당 의원들은 이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회직 배분을 대통령 선거 결과에 연동시키는 것은 의회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여기에 정권의 핵심적 이해관계가 걸린 법안들을 여당 법사위원장 체제에서 다 처리하고 나면, 후반기에 법사위원장을 차지하더라도 실익이 크지 않다는 계산도 작용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11시 각각 기자간담회를 열어 협상이 최종 결렬됐음을 알렸다. 김 원내대표는 합의안 초안을 언급하며 우리 당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를 했다. 오늘 오전 통합당이 거부 입장을 통보해와 협상이 결렬됐다고 말했다.

반면 주 원내대표는 우리는 전·후반기 2년이라도 교대로 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야당 몫으로) 제안한 7개 상임위원장을 맡는다는 것은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21대 국회 원 구성은 21대 총선에서 드러난 총선 민의를 토대로 진행돼야 한다. ‘너희가 다음 대선 이길 수 있으면 그때 가져가 봐라는 비아냥으로 들려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합의안 초안은 실제 통합당 의원들 사이에서 격렬한 반발에 부딪친 것으로 알려졌다. 작은 이익을 좇아 어설프게 타협하기보다, 실익을 다 던지고라도 명분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위기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상임위원장을 맡을 순서인 3선 이상 중진들이 주 원내대표에게 이런 식으로 위원장 자리를 받을 순 없다는 의견을 모아온 것도 협상안을 거부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이후 두 당은 협상 결렬의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며 날 선 신경전을 이어갔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진행 상황을 놓고 봤을 땐, 협상권과 결정권이 분리된 당의 구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막후 입김 때문에 원내대표가 협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는 주장이다. 그러자 배준영 통합당 대변인이 협상의 끝자락까지 명분을 쌓기 위해 근거 없이 제1야당 대표의 과도한 개입을 운운한다. (민주당이) 허위 사실로 내부 분열까지 획책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 김미나 이지혜 기자 >

격앙된 통합당, 당분간 국회 등원 거부

거대 여당의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이 현실화된 29, 미래통합당은 국회 등원 거부를 선언하고 국회 일정을 보이콧했다. 대중 집회 등 장외투쟁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거대 여당이 주도하는 국회 운영에는 당분간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통합당 비상 의원총회를 마친 뒤 “33년 전 오늘은 민주화 선언이 있었던 날이지만 2020629일은 1당 독재가 선언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협치의 상징인 법제사법위원장을 처음부터 빼앗은 뒤,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는 태도로 상임위원장 몇자리 주고 공범을 만들려 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18개 위원장 독식을 의회 독재로 규정한 것이다.

통합당은 당분간 국회 등원을 거부하기로 했다. 한 중진의원은 야당으로서 존재 가치를 부인당했는데 어떻게 원내에 돌아갈 수 있겠나. 통합당은 지금 거대 여당의 반민주 폭거에 들러리 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당 의원들은 이날 본회의에 출석하지 않았고 국회의장이 강제 배정한 상임위원에 대한 사임계도 일괄 제출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장내 투쟁을 제안했다. 그는 국회는 민주당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든 독재를 하든 내버려두고, 우리는 야당 역할을 충실히 하자고 제안했다. 상임위와 본회의 참석은 거부하되 필요한 법안은 발의하고, 당내 특별위원회 활동으로 외교·안보 등 국정 현안을 챙기겠다는 뜻이다. 통합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구성에도 협조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번 사태를 자강의 기회로 삼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이) 다수라고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억지를 쓰는 이상 우리가 대항할 방법이 없다주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는 신념을 불태운다면, 오히려 이것이 좋은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국정운영의 부담을 여당에 오롯이 지우고 야당은 당 개혁에 집중하자는 견해를 거듭 밝혀온 바 있다. < 노현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