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선포 전날과 당일 김건희와 문자메시지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주 사의를 표명한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10일 국정원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조 전 원장은 지난 주 사표를 제출했고, 이 대통령은 이를 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일괄적으로 사표를 제출한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 가운데 내란 공범 혐의로 수사를 받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사표만 수리한 바 있다. 당시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국정 연속성과 비상 경제 점검 필요성을 들어 박 전 장관를 제외하고 나머지 국무위원 사표는 반려했다고 설명했다.

 

조 전 원장 역시 내란 연루 의혹을 받는다. 그는 12·3 비상계엄 선포 전날과 당일 김건희씨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장이 직무 연관성이 없는 대통령 부인과 연락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조 전 원장은 또 비상계엄 선포 직후 홍장원 당시 국정원 1차장으로부터 ‘정치인 체포’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내란 방조 혐의도 받고 있다.  < 서영지 기자 >

 

경찰 “조태용 내란동조…‘정치인 체포’ 보고받고도 조처 안 해”

한덕수엔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적용 검토

 
 
                        조태용 원장. 공동취재사진

 

12·3 비상계엄을 수사하는 경찰이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으로부터 ‘정치인 체포’ 보고를 받았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조태용 국정원장이 내란에 동조했다는 판단이 담긴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보고서에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 등이 내란을 방조했다는 판단도 포함됐다. 이 때문에 이후 출범할 ‘내란 특별검사팀’이 국무위원에 대한 수사를 어디까지 이어갈 수 있을 지 주목된다. 현재까지 내란 혐의로 기소된 국무위원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뿐이다.

 

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은 지난해 12월30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 내란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의 범죄 사실을 재구성한 32쪽 분량의 수사보고서를 작성했다. 경찰은 조 원장이 계엄 당일 저녁부터 대통령실 접견실에서 비상계엄 관련 임시 국무회의에 배석자 자격으로 참석해 내란 모의에 참여했고, 이후 국정원 지휘부 정무직 회의에서 내란 모의사실을 은폐했다고 봤다.

 

특히 조 원장이 홍장원 전 1차장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이 국군방첩사령부와 협조해 정치인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라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아 내란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동조했다고 수사보고서에 적었다. 특수단은 조 원장이 홍 전 1차장에게 사실상 사직을 강요해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했다고 판단하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봤다.

 

아울러 특수단은 한덕수 전 총리에게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적용을 검토했다. 경찰은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도록 용인·묵인하고 국무위원을 소집하여 비상계엄 선포 전 적법한 국무회의가 이뤄진 것처럼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것으로 외관을 형성하는 등 방조했다”고 수사보고서에 적었다.

 

특수단은 또 비상계엄 선포 직전 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이 내란을 모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도 판단했다. 특수단은 수사보고서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관한 임시 국무회의에 부의장 및 국무위원 자격으로 참석하여, 절차적·실체적 흠결이 있는 위헌적 비상계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에 동조하거나 묵비하는 방법으로 내란 모의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 강재구 기자 >

'리박스쿨'은 역사 왜곡 실험실

● COREA 2025. 6. 10. 12:5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피로 얼룩진 권력욕을 리더십으로 포장

이·박 독재는 신화가 아니라 비판의 대상

청년세대에 민주 감각 교육 필요한 시기
'리박스쿨' 퇴학 조치 내려야 마땅하다

 

보수 성향 단체 '리박스쿨'의 댓글 여론 조작 관련 보도가 나온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한 빌딩에 리박스쿨 사무실 간판이 붙어 있다.2025.6.2. 연합
 

‘교육’이라는 이름의 독재 세탁소

 

최근 공개된 콘텐츠 ‘리박스쿨’은 제목부터 낯설고 불길하다. 이승만과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이름에서 성을 따온 이 프로그램은 이들을 마치 학교의 ‘교장’처럼 설정해 ‘리더십’을 배우는 형식이다. 그러나 그 실체는 교육의 외피를 입은 정치 콘텐츠이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냉소와 역사왜곡, 그리고 시대착오적 인물숭배에 다름 아니다.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명분 아래 리박스쿨이 선택한 방식은 지나치게 편파적이다. 이 콘텐츠는 두 독재자의 업적만을 과장하고, 그들의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거나 가볍게 넘긴다. 예능이라는 형식을 빌려 역사적 균형을 잃은 해석을 시청자에게 쉽게 주입시키는 이 프로그램은 교육이 아니라 ‘정치적 세뇌 실험실’이다.

 

이승만: 독립운동가였지만, 민주주의자였나?

 

이승만의 삶은 분명 복잡하다. 일제강점기에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유산은 해방 이후 철저히 민주주의와 배치된다. 그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부터 보여준 통치는 민의를 존중하기보다는 억누르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전쟁 전후의 ‘보도연맹 학살’이다. 좌익계열 인사 혹은 그와 연루되었다고 추정된 수십만 명이 국가 권력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학살됐다. 이는 전쟁기 혼란이라는 변명으로 용납될 수 없다. 명백한 국가 주도 반인륜 범죄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최소 10만 명 이상이 이승만 정부에 의해 처형되었고, 이 과정은 비공개·비법적 절차로 진행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52년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밀어붙이기 위해 군을 동원해 국회를 포위했고, 1954년에는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전무후무한 숫자 장난으로 3분의 2 찬성을 끌어낸 척 헌법을 개정했다. 이런 인물이 ‘건국의 아버지’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민주주의가 그의 손으로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피로 얼룩진 권력욕을 ‘리더십’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박정희: 산업화 신화의 그늘은 민주주의의 붕괴였다

 

박정희를 이야기할 때 반복되는 문구가 있다. “그래도 경제는 살렸잖아.” 이 말은 사실상 정치적 무책임의 상징이다. 물론 그의 정권 아래서 산업화가 추진됐고, 수출이 증가했으며, 국가 인프라가 성장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주의적 동원체계’의 결과였으며, 그 체계 하에서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가 지속적으로 침해받았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그는 처음엔 ‘과도정부’를 자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18년에 걸친 장기집권으로 나아갔다. 1972년 유신헌법은 그 정점이었다. 이 헌법은 행정부의 권력을 극대화하고, 국회의 기능을 약화시키며, 대통령에게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절대권력을 부여했다. 형식만 남은 헌정질서 아래에서, 박정희는 비판을 불허하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그 시절,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부품으로 취급받았다. 노동 3권은 부정당했고, 언론은 통제당했으며, 학생들은 감시와 사상 검열 속에서 생활했다. 인혁당 사건, 긴급조치 시대, 정치적 고문과 실종. 이 모든 고통을 단지 '산업화의 대가'로 치부할 수 있는가? '고속도로'와 '수출 증가'가 박정희 정권의 실적이라면, '표현의 자유 압살'과 ‘공포 정치의 일상화'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뉴스타파는 '리박스쿨' 잠입 취재를 통해 이번 대선을 앞두고 '자손군'이라는 댓글팀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띄우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비방하는 활동을 체계적으로 벌여왔다고 30일 보도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예능이란 포장지 속 역사 왜곡, 더 위험하다

 

리박스쿨은 예능 형식을 빌려 이 모든 과거를 ‘가볍게’, ‘웃기게’ 포장한다. 그러나 역사 왜곡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 뒤에 감춰진 의도야말로 더 치명적이다. 대중문화는 반복과 익숙함을 통해 정당성을 형성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결국 예능을 통한 역사 왜곡은 무의식적 동의를 불러일으키고, 정치적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청년 세대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업률, 주거 불안, 정치 혐오 속에서 자란 청년들에게 '과거의 강한 리더십'을 낭만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일은, 무책임한 마취다. '그때는 잘 나갔다'는 말이 반복될수록, 청년의 미래는 과거 회귀적 정치에 갇히고 만다.

 

우리가 배워야 할 ‘교장’은 누구인가

 

리박스쿨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교장처럼 그린다. 그러나 이들이 진정 교육자적 리더였던가? 그들이 국민에게 가르친 것은 복종, 침묵, 그리고 무조건적 충성뿐이다. 그건 ‘교육’이 아니라 ‘군기’다.

 

진정한 교장은 국민이다. 우리는 4.19 혁명으로 부정선거를 심판했고, 5.18 광주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켰으며, 6월 항쟁으로 다시 헌법을 되찾았다. 그런 국민적 수업이 있었기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교장으로 모신 순간, 대한민국은 학교가 아니라 병영으로 전환된다.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방과후강사분과 조합원들이 보수 성향 교육단체 '리박스쿨'이 서울 일부 초등학교에 늘봄 강사를 공급한 것을 규탄하며 방과후수업 외주 위탁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2025.6.10. 연합
 

지금 필요한 건 ‘리박’이 아니라 ‘디박’이다

 

우리는 지금 ‘디박스쿨’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코딩하고(Decode), 디컨스트럭션하며(Deconstruct),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민주주의 감수성을 확장하는 교육. 독재의 유산을 신화가 아닌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청년 세대가 주체적으로 역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민주적 감각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결코 한 번의 선거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는 경계, 참여, 그리고 교육을 통해 재구성되어야 하는 시스템이다. 과거를 회피하거나, 편리하게 포장할수록 민주주의는 퇴행한다. 지금 우리가 리박스쿨에 ‘퇴학 조치’를 내려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를 잊은 사회, 미래를 저당 잡힌다

 

오늘날 리더십의 위기를 독재 미화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강한 리더는 필요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강함이어야 한다. 독재는 강함이 아니라 비겁함이다. 비판을 두려워하고, 권력을 독점하며, 국민을 수단화하는 통치는 결코 리더십이 아니다.

 

리박스쿨은 말한다. “과거를 통해 배워라.” 맞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배워야 한다. 그러나 배워야 할 것은 독재자의 리더십의 신화가 아니라, 그것이 남긴 상처와 폐해다.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 어두운 순간들을 직시해야 한다.

 

기억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묻느냐가 앞으로 이 사회가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갈지를 결정짓는다. ‘리박스쿨’은 과거로의 회귀를 상징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다.  < 김성수 기자 >

 

취임도 하기 전 '이재명 독재'라 국민 협박

당선되자 '나라 안팎 위기'라며 놀부 심보
나라 망쳐놓은 윤석열에게는 왜 말 못했나

회유 · 협박 범벅된 글, 칼럼이라 보기 힘들어
댓글엔 '안 찍은 사람 위한 정책 펴란 말인가?'

 

                                                                                 송요훈 편집위원(전MBC기자)

 

글 쓰기 전에 개념 정리부터 해야겠다. 이 글에선 한국의 정치 진영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지 않으려 한다. 민주와 반민주로 나누려 한다. 국힘당은 보수 정당이 아니다. 독재 시절을 그리워하는 수구 결사체이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이익집단이다.

 

대통령 윤석열은 무지와 무능으로 나라에 위기를 초래한 것으로 모자라 법을 무시하고 희롱하는 실정과 폭정으로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그뿐인가, 민심은 등을 돌리고 퇴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저 살자고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친위 쿠데타의 내란을 저질렀다. 그런 망나니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반성은커녕 내란을 옹호하고 탄핵에 반대한 정당을 민주 정당의 범주에 넣을 순 없지 않은가. 입으로는 헌법정신을 말하면서 실제 행동에선 헌법을 부정하고, 엿장수가 엿 다루듯 자기들 맘대로 법을 주무르면서 국민에겐 법치를 강요하고, 법을 무기로 삼아 정치적 반대자들을 괴롭히는 정당을 민주국가의 정당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시각에서 나는 조선일보를 언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수구 정파의 기관지이고, 기득권에 목을 매는 이익집단의 대변지이다. 내가 아는 한, 조선일보는 정론직필로 포장하여 친일 반민주 독재정권을 옹호하고 언론 자유를 오남용하며 민주주의를 억누른 적은 있어도 언론의 윤리를 지키는 정론과 직필로 민주주의를 위해 진정하게 싸운 적은 없다. 오죽하면 주가조작과 디올백의 오물을 뒤집어 쓰고 있는 김건희를 욕하던 사람들이 조선일보 폐간에 목숨 걸었다는 김건희에게 박수를 보낼까. 다 용서해줄 테니 꼭 그렇게 하라며. 

 

2025년 2월 27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조선일보는 자칭 ‘1등 신문’이다. 언론으로서의 1등이 아니라 독재정권에 유착한 대가로 지금까지 신문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시장점유률 1위 신문이다. 박정희 시절에는 사주가 ‘밤의 대통령’으로 불렸고, 독재의 시대가 가고 민주주의가 도래한 이후에는 정권을 창출하기도 하고 퇴출시키기도 한다는 오만함과 교만함의 중간쯤 어디에서 이 나라를 쥐락펴락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희한하게도 조선일보 사주는 매년 1월 1일에 신년사를 발표하는데, 방상훈 씨가 사장이던 작년에는 ‘조선일보는 광고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매체이고,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신문이며, 할 말을 하는 신문’이라는 신년사를 발표했었다. 진짜 그런가? 내 눈에 조선일보는 ‘대기업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재벌기업 대변지이며, 사주의 이익과 사주 집안의 미래를 생각하는 신문이고, 언론으로서 할 말이 아니라 사주를 대신하여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신문’으로 보이는데?

 

방상훈 사주의 신년사에 따르면, ‘세계 곳곳에서 가짜뉴스와 정치 양극화로 인하여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위협받고’ 있단다. ‘진위를 구분하기 힘든 흑색선전과 선동이 극성을 부릴’ 거란다. ‘그럴수록 언론이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자세로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아야’ 한단다. ‘오직 사실에 입각해 진실을 추구하는 팩트 퍼스트(fact first) 원칙에 충실해야’ 하며, ‘독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가짜뉴스가 설 자리는 없을 거’란다.

 

진단도 정확하고 해법도 정확하다. 언론이 불편부당의 자세로 사실만 충실하게 전해도 흑색선전과 선동의 가짜뉴스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어떤가? 그 반대로 하고 있지 않은가?

 

신문의 1면은 여론 형성에 방향을 제시하는 의제 설정의 역할을 한다. 21대 대통령 선거일을 2주일 앞둔 5월 20일, 조선일보 1면의 톱기사 제목은 <‘득표율 60%’ 절대 권력 향해 가는 李>였다. 이재명 후보의 지지세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자 ‘절대 권력’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으로 재를 뿌리려는 의도가 보이는 그 제목에선 조선일보의 공포가 선연하게 드러난다. 궁금하다, 대선 후보가 윤석열이었어도 조선일보는 1면에 그런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달았을까? 조선일보가 언론이라면, 제목을 <‘득표율 60%’ 내란 심판 분위기 고조>라고 뽑아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사흘이 지난 5월 23일, 조선일보 1면 톱기사의 제목은 <이재명 주춤, 김문수·이준석 상승>이다. 사실이 그러한지, 아니면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은 제목인지 아리송하다. 다음 날의 조선일보 1면 한가운데에는 <이재명 45% < 김문수 36% + 이준석 10%>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김문수와 이준석의 지지율을 합치면 이재명보다 높다는 거다. 조선일보는 김문수와 이준석의 후보 단일화를 그렇게 채근했었다. 내 귀에 조선일보의 후보 단일화 채근은 ‘제발 나 좀 살려달라’는 아우성으로 들렸다.

 

칼럼은 어떠했던가. 김대중 전 주필을 위시하여 조선일보가 배출한 걸쭉한 기자들의 기명 칼럼은 한결같이 이재명에 대한 업신여김의 악의를 거리낌 없이 그리고 격렬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이번 대선에선 강천석 칼럼이 특히 그랬다. 살펴보자.

 

6.3 대선 선거일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5월 10일, 조선일보에 실린 <이재명, 제 발로 내려올 수 없는 ‘대중 독재’ 사다리 오르나>라는 제목의 강천석 칼럼은 제목부터 살벌하다. ‘제 발로 내려올 수 없다’는 건, 윤석열처럼 끌려 내려온다는 거다. 이건 칼럼이 아니라 공갈이고 협박이다. 국민 다수가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건 ‘독재’란다. 그렇다면 임기 내내 지지율이 바닥을 긴 윤석열은 민주적인 대통령이었나?

 

다음 대통령은 몰락과 쇠퇴의 가속(加速) 페달을 밟았다는 불명예스러운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단다. 그만큼 나라 곳곳의 병(病)이 깊단다.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의 책임이 크단다. 나라 곳곳에 병이 깊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왜 이재명과 민주당의 책임인가? 이재명이 대통령이고 민주당이 집권 여당이었나?

 

이재명 후보는 자신에게 유죄(有罪) 판결을 내린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을 탄핵과 국회 청문회 소환으로 협박했고, 재판 연기 목적을 달성했단다. 다수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야당 지도자의 대선 출마를 봉쇄하려는 속내가 뻔히 보이는, 법 규정을 대놓고 무시한 초고속 졸속 재판으로 사법부의 신뢰를 무너뜨린 장본인은 이재명이 아니라 조희대 대법원장과 9명의 대법관들이다. 그런 이유로 대법원장 탄핵 얘기가 나온 거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는 것이고, 폭탄주 들이키는 음주에 교통법규를 무시한 과속 난폭 운전으로 적발된 것인데, 왜 단속하느냐고 따지면 무어라 답해야 하는가?

 

이번 대선은 예사 선거가 아니란다. 이재명 대통령을 1년 2년 겪어보면, 그때가 마지막 기회였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될지 모를 선거란다. 그 말인즉,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재명 찍은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수도 있으니 이재명에게 표를 주지 말라는 거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보수층과 중도층 유권자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하며 겁을 준다. 이건 칼럼이 아니라 공갈이고 유권자 협박이다.

 

독자들의 뇌에 ‘이재명 공포증’을 주입하는 살벌한 조선일보이지만 국힘당에겐 달콤하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대중 독재가 될 것인데, 그런 시대에도 국민의힘이란 정당은 숨을 쉬고 있을지 걱정이란다. 논리 비약도 이 정도면 확증편향을 넘어 정신병원 수용 각이다. 공동운명체라 그런지 독자적인 생존능력을 상실한 국힘당을 걱정하는 마음이 애틋하긴 하다. 이래서 조선일보는 국힘당 기관지라 하는 거다. 국힘당이 보수 정당이고, 조선일보가 언론이라고? 소가 웃는다. 대중 독재라고? 이재명 지지자들이 집단 독재를 한다는 건가? 웃던 소가 화를 낸다.

 

조선일보의 강천석 칼럼. 위에서부터 5월10일, 5월 24일, 그리고 6월7일자 갈무리.

 

대선을 열흘쯤 앞둔 5월 24일에 실린 <“하느님 너무하십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은 더 노골적이다. 국회는 법안 찍어내는 인쇄기가 됐고 사법부는 이미 허리가 꺾여 무력화되어 ‘절대 권력’ 체제가 되었으며 박정희 이후에 가장 두려운 권력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단다. 우습다. 박정희 시절의 조선일보 사주는 ‘밤의 대통령’으로 불렸다. 조선일보에게 박정희는 ‘두려운 권력’이 아니라 호가호위하며 단물을 빨게 해준 든든한 배경이었고 오늘의 부귀영화를 안겨준 은인이 아닌가. 그런 은인을 모욕하다니, 박정희 신도들은 조선일보 절독 운동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보다 우선하면 국민이 편안하단다. 그런 훈계는 전체주의가 어쩌구 반국가 세력이 어쩌구 하며 제멋대로 행동하던 대통령 윤석열에게 했어야 했다. 주가조작과 디올백으로 국민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아내를 지키겠다고 검찰과 국민권익위를 내시로 만든 ‘상남자’ 윤석열에게 했어야 했다.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하던 망나니 대통령 윤석열에게 했어야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조선일보가 하라는 일은 하지 말고, 하지 말라는 일만 열심히 해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6월 3일은 최고 최적의 후보를 뽑는 날이 아니고, 그런 욕심을 부릴만한 밥상이 아니란다. 가장 위험한 후보를 가려내기만 해도 성공이란다. 이재명 후보를 찍지 말라는 거다. 지난 대선에서 조선일보의 간판이라는 김대중 전 주필은 기명 칼럼에서 윤석열은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후보이지만, 이번 대선은 문재인 정부 5년을 청소하는 청소부를 뽑는 선거이니 그런 건 따지지 말라고 계몽(?)했었다. 그렇게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후보를 찍으라는 대중 선동을 하고도 김대중 전 주필은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내란 우두머리가 된 대통령 윤석열의 명예를 걱정했었다. 참 뻔뻔하다.

 

강천석 조선일보 고문의 <“하느님 너무하십니다…”> 칼럼은 왜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게 했느냐고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강천석의 간절한 주술에도 이재명 후보는 넉넉한 차이로 국힘당 후보 김문수를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다. 하느님은 조선일보의 편이 아님이 확실하다. 그래서일까, 그토록 저주하던 이재명이 대통령 되고 겨우 이틀이 지난 6월 6일 현충일에 나온 <제도적 견제 사라진 대통령은 낭떠러지에 혼자 선다>는 칼럼에서 강천석은 이재명 대통령에겐 잘못을 바로잡아 줄 제도적 견제 장치가 없어 가드레일 없는 낭떠러지 앞에 혼자 서 있는 꼴이라고 악담을 한다.

 

거대 여당은 완전히 평정됐고, 야당의 기력은 바닥이 났으며, 사법부는 포위 공격으로 흔들리고, 헌법재판소도 내일모레면 대통령에 유리한 쪽으로 재편되고, 공영방송이란 이름의 국영방송들은 풀보다 먼저 대통령 쪽으로 드러누웠단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신속하게 사회개혁을 이룰 수 있는 다시 없는 호기라는 거 아닌가. 국영방송들이 풀보다 먼저 누웠다고? 이른바 ‘파우치 박’이라 불리는 아첨꾼이 사장으로 있는 KBS에선 여전히 윤석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는데? 국영방송‘들’이라니, 이 나라에 국영방송은 없다. KBS는 수신료로 운영하는 공영방송이다. MBC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우길 걸 우기시라. 오직 사실에 입각해 진실을 추구하는 ‘팩트 퍼스트(fact first)’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방상훈 사주의 말씀에 침을 뱉어서야 되겠는가.

 

이재명 대통령의 우군(友軍)은 나라 안팎의 위기뿐이란다. 그래야 이재명 대통령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단다. 그 말인즉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채 해병 특검 등 윤석열 정권이 남긴 오물을 청소하지 말라는 것이고, 경제 위기 등 나라에 위기가 깊어야 못하게 된다는 것인데, 악담도 이런 악담이 없다. 나라는 망해도 나만 잘살면 된다는 매국노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대체 왜 그런 악담을 해대는 걸까. 미루어 추측하건대, 조선일보는 윤석열의 후견인이고 동업자이고 실질적으로 한 몸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강천석 칼럼에는 놀부 심보로 배배 꼬인 악담과 겁에 질린 공갈성 협박만 있는 게 아니다. 사탕발림의 회유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채 해병 특검에 연연하지 말고, 내란 청산에도 관심을 두지 말고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오로지 민생에만 천착하란다. 국민이 왜 자기를 찍었는지보다 왜 찍지 않았는지 먼저 들여다보란다. 조선일보의 말을 들으라는 거다. 이재명을 찍지 않은 사람들의 말을 들으라는 거다. 그것이 견제장치이고 이재명 대통령을 지켜주는 가드레일이라는 거다. 참 유치하다. 이재명 대통령을 지켜준는 견제장치와 가드레일은 광장을 꽉 채웠던 시민들이다.

 

인터넷 무림에는 고수들이 참 많다. 조선일보는 이재명 대통령이 하는 모든 일에 트집을 잡고 딴지를 걸고 혐오 프레임을 씌우며 이재명 정부 시기를 고구마 100개를 먹고 물을 마시지 않은 것 같던 문재인 정부 시즌 2로 만들려 할 것이다. 그러나 다수 국민에겐 그때의 무기력증이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고 강력한 학습효과로 작용할 것이다. 더불어, 조선일보가 얍삽한 선전 선동의 곡필로 여론을 조종하던 시절은 한참 전에 끝났다. 아니라고 우길수록 조선일보의 잔여 생명은 더 단축될 것이다.

 

정권을 창출하기도 하고 퇴출시키기도 한다는 조선일보의 정권 길들이기 회유와 공갈성 협박이 범벅이 된, 이재명을 찍지 않은 사람들의 말을 먼저 들어보라는 6월 6일의 강천석 칼럼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정곡을 찌르는 댓글 소개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안 찍은 사람들 위해서 정책을 펼치란 말이네? 무슨 말 같지도 소리를 하냐? 선거란 다수를 위해 정치를 하라는 거다. 조선일보는 구독하지 않는 독자를 위해 신문을 만드냐?”  < 송요훈 기자 >

 

조선일보 강천석 씨의 6월7일자 칼럼에 달린 댓글.

한국 첨단기술경쟁에서 5위, 반도체는 대만에 뒤져

● COREA 2025. 6. 10. 12:50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반도체 유럽 일본 제쳤으나 다른 분야 뒤져


AI개발을 ‘군비 경쟁’으로 보는 미국
미국을 바짝 뒤쫓고 있는 중국
생명공학 분야 미중 경쟁, 뒤처진 유럽

트럼프 정권 등장으로 위기에 직면한 미국의 우위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 조사 글로벌 첨단기술경쟁 지수 상위 10개국. 숫자는 최고발전치를 100으로 한 지수. 맨 왼쪽이 종합 순위, 오른쪽으로 AI, 반도체, 생명공학, 우주, 양자기술 순. 나라는 맨 위에서부터 미국, 중국, 유럽(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6개국 통합), 일본, 한국, 영국, 독일, 대만, 프랑스, 인도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이 지난 5일 발표한 글로벌 첨단기술 경쟁에서 한국은 5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하버드대 연구진이 기술 상위 25개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생명공학, 우주, 양자 기술 등 5개 분야의 기술력을 측정해 지수화한 이번 조사에서 한국은 종합 순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 일본이 4위, 대만은 8위였다. 그러나 반도체 분야의 첨단기술 지수에서는 대만(4위)에 뒤진 5위로 측정됐다. 일본은 3위. 종합순위에서 3위를 차지한 '유럽'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등 6개국 통합이어서, 개별 국가별 순위는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4위 한국 순이다.

 

반도체는 유럽과 일본 제쳤으나 다른 분야 뒤져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6일 보도한 관련 기사에 따르면, 유럽(6개국 통합)을 포함한 주요 5개국 기술경쟁 추이에서 미국이 전반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다른 경쟁국들의 추격을 받고 있다. 상승속도가 빠른 중국이 미국 수준에 근접하면서 격차를 급속히 좁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반도체 분야에선 유럽과 일본을 추월했으나 다른 분야에선 뒤처져 있으며, AI와 생명공학 분야에서 일본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우주와 AI 분야에서 여전히 격차가 크지만, 양자기술과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서로 근접하고 있다.

좁혀지는 분야별 격차. 2025년 첨단 반도체 분야 주요 5개국 추이. 최고 발전치를 100으로 잡은 지수. 왼쪽부터 우주, AI, 반도체, 양자기술, 생명공학. '유럽'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6국 통합

 

AI개발을 ‘군비 경쟁’으로 보는 미국

 

기술력은 경제 성장, 지정학적 영향력, 그리고 군사력 확보로 이어진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서 어느 나라가 얼마나 앞서 있는지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5개 분야 중에서 정치인들의 관심이 가장 많이 쏠리고 있는 것은 AI분야다.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 미국 부통령은 최근 AI개발을 “군비 경쟁”(arms race)이라 불렀다. 미국은 초기 혁신(breakthroughs) 성과와 컴퓨팅 파워 구축 선점, 그리고 오픈AI와 엔비디아 같은 기업들의 우위를 토대로 강력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미국을 바짝 뒤쫓고 있는 중국

 

그러나 중국의 딥시크 R1 모델은 서방 모델에 비해 훨씬 저렴한 비용의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다. 또 데이터 프라이버시에 대한 느슨한 태도(규제), 컴퓨터 과학과 엔지니어링 분야의 풍부한 인재 풀은 중국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2023년 중국 연구자들은 AI관련 발표 논문 전체의 약 23%를 차지했는데, 미국의 9%, 유럽의 15%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인도는 투자 부족과 학습 데이터 부족으로 고전

 

세계 기술강국으로 평가받아 온 인도는 전체 순위 10위, AI개발 순위 7위를 차지했다. 풍부한 엔지니어링 인력과 수억 명의 인터넷 사용자 등에서 유리한 환경을 갖고 있으나, 투자 부족과 대규모 언어모델(LLM)에 필요한 학습 데이터 부족으로 발전 속도가 느리다. 지금까지 인도는 AI분야에서 혁신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중심으로 전개되는 AI 경쟁, 동아시아가 약진

 

AI 경쟁은 지수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분야에서도 미국은 앞서 있지만, 그 우위는 압도적이지 않고, 격차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칩 설계 분야에서는 미국이 크게 앞서 있지만, 동아시아가 여전히 관련산업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일본, 대만, 한국은 제조 역량과 특수 소재 접근성에서 미국을 앞지르고 있다.

 

2025년 첨단 반도체 분야 기술 지수. 위로부터 미국, 중국, 일본, 대만, 한국, 유럽, 영국, 독일, 싱가포르, 인도, 네덜란드 순. '유럽'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6국 통합. 빨간색은 경제 자원, 분홍색은 인적 자원, 연청색은 반도체 칩 디자인과 장비, 청색은 제조 및 조립, 회색은 특수 소재, 연회색은 기타. 숫자는 최고 발전치를 100으로 잡은 지수. 대만은 경제 자원, 제조 및 조립에서 한국을 앞섰다.

 

중국 범용 칩 제조에서 우위

 

하지만 최첨단 칩을 생산하지 않고도 제조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중국은 가장 복잡한 칩을 생산할 수 있는 첨단설비의 공장들은 없지만, 범용(lower-end) 칩들을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역량 때문에 지수 순위가 높다.

 

이들 지수에서는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한 병목지점이 드러나 있지 않으나,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ASML은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칩 제조 장비를 생산하는 지구상 유일한 기업이다. 지수 8위의 대만은 가장 강력한 트랜지스터들을 최대 90%까지 생산하는 TSMC(대만반도체제조회사)의 본거지다.

 

생명공학 분야 미중 경쟁, 뒤처진 유럽

 

1위 자리를 두고 벌이는 경쟁은 다른 분야에서 더욱 치열하다./ 표2

 

미국은 백신 연구와 유전공학 분야의 강점 덕분에 생명공학 분야에서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약물 생산 분야에서 앞서 있으며, 더 많은 생명공학 과학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은 생명공학 연구역량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왔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중국이 곧 선두를 차지할 수 있다.

 

유럽은 이번 조사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냈다. 학문적 강점이 상업적 성공으로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의 유산이 우주 부문에서 최고의 점수를 냈지만, 다른 모든 분야에서 뒤처져 있다.

 

트럼프 정권 등장으로 위기에 직면한 미국의 우위

 

핵심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우위는 한때 난공불락처럼 여겨졌지만, 트럼프 정부가 이런 지위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최고의 외국 인재 유입을 막고 연구자금을 삭감함으로써, 미국이 세계 정상자리를 지켜온 아이디어의 흐름(flow of ideas)을 약화시킬 것이다. 이 지수를 만든 하버드대 연구자들도 트럼프의 미국 대학들에 대한 공격의 피해자들일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패권의 다음 단계는 도구 발명뿐만 아니라 그것의 실용화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기사를 마무리했다.

 

“중국의 부상은 빠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중국의 AI 추진은 이론적 돌파구보다는 실용적인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계 패권의 다음 단계는 누가 가장 강력한 도구를 발명하느냐뿐만 아니라, 누가 먼저 그 도구를 실제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될지도 모른다.” <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