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의료원 ‘백신혁신센터’ 건립기금 약정

 

정의선(오른쪽)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김재호(왼쪽)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이 31일 서울 안암로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정몽구 백신혁신센터’ 기부금 약정을 맺었다. 현대차그룹 제공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백신 센터 건립에 개인 재산 10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은 31일 서울 성북구 안암로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기부금 약정 체결식을 했다.

 

정 명예회장이 기부하는 사재 100억원은 고려대 의료원이 정릉 캠퍼스에 조성 중인 메디사이언스파크 내 ‘정몽구 백신혁신센터’ 설립과 운영에 쓴다. 정 명예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센터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정몽구 백신혁신센터는 앞으로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감염병 예방과 치료를 위한 국산 백신 개발과 연구 인프라 확충 등에 나설 계획이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성원하는 국민께 도움이 되기 위해 국산 백신 개발에 기여할 백신혁신센터에 기부하게 됐다”며 “감염병을 극복해 건강과 행복을 되찾는 데 힘이 되길 바란다”고 기부 취지를 전했다.

 

이날 약정식에 아버지인 정 명예회장을 대신해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정 명예회장께서 글로벌 백신 개발에 기여하게 돼 큰 영광이며 좋은 백신을 개발해 우리가 다 같이 나누어 쓸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국내·외에서 백신을 사용해 지금의 상황이 빨리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재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은 “기부금이 감염병 예방과 치료 기술 개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2007년 설립한 ‘현대차정몽구재단’에도 사재 8500억원을 출연했다. 재단은 지난해까지 13년간 인재 육성과 소외 계층 지원, 문화 예술 후원 등 사회공헌 사업에 2219억원을 후원했다고 현대차 쪽은 설명했다. 박종오 기자

 

주한미군 철수 위협 트럼프에 맞서 의회서 3년 연속 넣어

바이든 정부 들어 빠져… 의회 인사들 “트럼프 시대 유물”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가운데)이 지난 2019년 10월23일 최병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오른쪽), 남영신 육군 지상작전사령관(왼쪽)과 함께 한국군 제5포병여단의 사격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주한미군 페이스북 갈무리

 

미국의 2022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서 주한미군 감축을 제한하는 조항이 3년 만에 빠졌다. 동맹을 경시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위협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미 의회가 견제하고자 넣었던 조항이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미 민주당 소속인 애덤 스미스 하원 군사위원장이 30일(현지시각) 공개한 7440억달러 규모의 내년도 국방수권법안을 보면, 2019회계연도부터 들어갔던 주한미군 감축 제한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다. 법안은 대신 “중국과 북한의 공격을 억지하고 악의적 활동을 막는 데 있어서 미국의 동맹와 파트너십의 중심적 역할을 포함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의지”를 명시했다. 법안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맞서기 위한 ‘태평양 억지 구상’(PDI)에 최소 62억달러의 예산 투입을 요구하는 등 중국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주한미군 감축 제한 조항이 빠진 이유에 대해 미 의회 관계자들은 이 조항이 “트럼프 시대의 불필요한 유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고 한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이 조항은 국방수권법에 없었으나, 트럼프 전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18년 의회가 2019회계연도 법안에 처음 넣었다. 주한미군 감축이 동맹국들의 안보를 심각하게 약화시키지 않고 한국·일본과 협의를 거쳤다고 미 국방부 장관이 확인하는 경우에만 주한미군 감축을 위한 예산 편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해외 주둔 미군 철수론자인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한국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던 때에, 의회가 행정부에 대한 견제 장치를 넣은 것이다. 2020, 2021 회계연도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조항이 담겼다.

 

국방수권법에서 이같은 조항이 빠진다고 해서 그 자체가 당장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바이든 정부는 한-미 동맹을 강조하면서 주한미군 감축에 명확히 선을 긋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7일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관련한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반복해온 것처럼 한국이나 유럽에서 우리 군대를 감축할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중국에 맞서기 위한 미군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군의 배치·운용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지 않느냐는 관측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22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은 오는 1일 하원 군사위 전체회의 심의 등 의회 절차를 거쳐 연내에 확정될 예정이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500여명 목표했는데 일본인만 1명 구출

  자민당에서도 늑장 대응 비판

“철저히 경위 파악해야” 지적도

 

    아프가니스탄 탈출을 위해 투입되는 일본 항공자위대 수송기 모습. AP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500여명의 현지 직원 등을 탈출시키기 위해 자위대를 파견했지만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철수하기로 했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 안에서도 정부의 늑장 대응 탓이라는 비난이 나왔으며, 철저히 경위를 파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에 맞춰 자위대를 이르면 9월1일 철수시킬 예정”이라며 “조만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구체적 방침을 결정할 것”이라고 <아사히신문> 등이 31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 대사관과 국제협력기구(JICA) 등에서 일한 아프간 직원, 가족 등 500여명을 탈출시키기 위해 수송기 3대, 정부 전용기 1대, 자위대원 300여명을 파견했지만 일본인 1명만 구출하는 데 그쳤다. 일본의 외교적 위상을 봤을 때, 납득하기 힘든 결과로 ‘완벽한 실패’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아프가니스탄 탈출을 위한 자위대 파견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며 “여당 내에서도 정부의 늑장 대응에 비판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390명을 탈출시킨 한국과 비교하며 일본 대응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두 나라의 결과가 달라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이미 알려진 대로 탈출을 희망하는 현지인들을 카불공항까지 데려다 줄 버스였다. 일본은 한국보다 하루 늦은 26일 버스를 준비해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날 저녁 공항 주변서 ‘이슬람국가 호라산’이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켜 무산됐다. 이 신문은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카불로 돌아와 버스 준비 등에 직접 나선 반면, 일본 대사관 직원들은 아프가니스탄 밖에서 (전화·온라인 등) 원격으로 대응했다”고 전했다. 일본 방위성 간부는 이 신문에 “현지 사정을 잘 아는 대사관 직원들이 없었다는 것이 영향을 준 것은 아닌가”라고 말했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총리 관저의 미흡한 대응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신문은 “총리 관저에는 외교‧안보의 사령탑인 국가안전보장국과 위기관리를 담당하는 내각관방 ‘사태 대처‧위기관리 담당’이 있다”며 “이번 대응에선 거의 외무성·방위성에 맡겨졌다”고 비판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사설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남겨둔 채 자위대를 철수하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로,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정부가 그동안의 경위를 거의 밝히지 않고 있다”며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 신문은 “(자위대 등) 파견 판단이 늦지 않았는지, 공항으로 이동을 지원할 방법이 없었는지, 일본대사관 직원 전원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것 등의 경위를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국제전범재판소 처벌에서 비롯…한일청구권협정 대상 아냐"

'위헌 의견' 재판관 4명은 "강제동원, 위안부와 다르지 않아"

 

헌재, 조선인 전범 피해자 헌법소원 선고=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산소에서 열린 조선인 전범 피해자 헌법소원과 방송법 조항 헌법소원 등에 대한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입장, 자리에 앉아 있다.

 

헌법재판소가 10년 전 일본군 위안부 배상 재판과는 다르게 일제 강점기 일본군으로 강제 동원됐다가 전범으로 처벌받은 조선인 배상에 대해서는 한일 청구권 협정 대상이 아니라고 31일 판단했다.

 

일본군 위안부나 원폭 피해자의 배상 문제는 정부가 충분한 노력을 다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위헌)했다고 판단한 반면 전범 피해자 배상 문제는 각하 결정을 내린 것이다.

 

◇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은 한일 청구권 협정 대상 아냐"

 

헌재가 위안부 피해자와 조선인 전범 문제를 구분한 배경에는 이들에게 피해를 준 대상이 동일하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헌재는 조선인 전범 피해자가 주장하는 피해를 국제전범재판소 처벌에 따른 징역 생활이라고 봤다. 헌재는 이들의 피해가 국제전범재판소 판단에 따른 것이지 일본 정부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헌재는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에 따른 처벌로 생긴 피해보상 문제를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따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원폭 피해자 문제와 동일한 범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또 정부에 대한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 주장도 정부가 외교적 경로를 통해 노력하고 있다고 판단해 인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일제의 강제동원(징병)에 따른 피해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로부터 일부 보상을 받은 데다, 한국 정부도 일본 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헌재는 조선인 전범 문제를 놓고 한일 양국 간에 분쟁이 존재하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다.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 사진전= 2014년 4월 27일 동진회와 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이26일 도쿄도(東京都) 나카노(中野)구 '나카노제로'에서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개최한 전시회에 방문객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재판관 4명 반대 의견…"전범도 강제동원 피해 해당"

 

다만 헌재 재판관 4명은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조선인인 전범 피해가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정부의 부작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들은 조선인 전범들이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돼 입은 피해에 주목했다.

 

조선인 전범들이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에 따른 처벌은 한일 청구권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다수 의견에 동의했지만, 전범들이 강제동원으로 입은 피해는 한일 청구권 협정의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조선인 전범들이 한국 정부가 설치한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된 만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또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에 따른 피해는 국제전범재판과는 관련이 없어 이들의 청구권을 인정한다고 해서 국제전범재판소 판결과 배치하는 것도 아니라고 봤다.

 

아울러 조선인 전범들이 모두 사망한 것을 고려해 더 시간을 지체하면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고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게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판관 4명은 "조선인 전범이 일제의 불법 강제동원으로 입은 정신적·신체적 피해는 과거 사례를 발견할 수 없는 특수한 피해"라며 "이런 피해의 청구권 실현을 가로막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고 했다.

 

'전범멍에' 식민지 조선인 모임 동진회 60주년 행사=2015년 4월 1일 이학래 일본 동진회 회장이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서 열린 동진회 결성 60주년 기념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조선인 전범' 마지막 생존자 올 3월 사망

 

조선인 전범 피해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병사로 강제 징집돼 연합군 포로를 수용·관리하는 포로감시원 등으로 복무했다. 이들은 전쟁 후 군사재판에서 B·C급 전범으로 유기징역을 선고받고 동남아 등 각지의 교도소에 수감됐다.

 

일본 정부는 전후 일본인 전범과 유가족들에게 처벌에 따른 보상을 했지만, 조선인 전범들에 대해서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로 일본 국적이 상실됐다며 대부분 보상하지 않았다.

 

조선인 전범들은 출소 후에도 '전범', '대일협력자'라는 낙인이 찍혀 대부분 귀국하지 못했고, 한국에 남겨진 유가족도 생활고와 주변의 차별·멸시를 당했다.

 

이들은 재일 한국·조선인 B·C급 전범 생존자 모임인 동진회를 결성하고 1991년 도쿄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의 사죄와 국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999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동진회는 이후 일본 여야 정치권에 한국인 전범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 입법안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하는 활동에 주력했다.

 

2014년에는 한국 정부가 이들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며 한일 청구권 협정 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헌재는 7년 넘게 판단을 내리지 않았고, 지난 3월 마지막 한국인 전범 생존자였던 이학래 동진회 전 회장이 별세하면서 이들에 대한 생전 구제는 끝내 이뤄지지 않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