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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또 규모 7.1 강진

● WORLD 2017. 10. 2. 16:29 Posted by SisaHan

강진으로 피해가 난 멕시코시티 로마 지역에서 한 남성이 무너진 건물 잔해를 살피며 구조작업을 벌이는 모습.

12일만에, 최소 216명 사망… 32년 전 대지진 같은날

멕시코 중부에서 19일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해 최소 216명이 사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이날 오후 1시15분께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남동쪽으로 120㎞ 떨어진 푸에블라주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진앙의 깊이는 51㎞다. 이날 현재 멕시코시티 남부 모렐로스주에서 54명, 멕시코시티에서 27명, 푸에블라주에서 27명, 멕시코주에서 9명 등 최소 216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너진 수십채의 건물을 구조대원들이 수색하기 시작하면서 사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인구가 집중된 멕시코시티에서 고층 건물이 다수 피해를 입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각 주정부가 피해 현황을 집계하고 있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를 확인하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7일 98명의 목숨을 앗아간 규모 8.1의 남부 치아파스주 지진 피해가 수습도 되기 전, 또다시 대형 지진이 닥쳐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BBC>는 여진에 대비해 도로 위에서 대피하고 있는 인파가 가득한 가운데 혼돈이 이어지고 있다고 묘사했다. 가스 누출과 2차 사고 위협도 있다. 약 380만명이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통신과 교통 상황도 원할하지 않다. 지진 직후부터 항공기의 운항이 중단된 멕시코시티국제공항은 20일 밤께 업무를 재개하기로 했다. 정부는 멕시코시티에 재난 사태를 선포한 상태다. 공교롭게도 32년 전인 1985년 같은 날에 멕시코 대지진이 발생해 수천명에서 1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멕시코시티에서 40대 한인 남성 1명이 실종돼 현지 당국과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이 생사를 파악 중이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이날 강진 여파로 수도 멕시코시티의 한인 소유 5층 건물이 무너졌다. 이로인해 이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일하는 이모(41) 씨가 강진 이후 지금까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대사관 관계자는 “해외 출장 중인 건물주가 강진 소식을 듣고 이 씨와 연락을 취했으나 아직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 씨는 평소대로라면 지진 발생 시점에 사무실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로선 매몰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대사관은 경찰 영사를 현장에 급파,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는 소방대 등 관계 당국과 접촉해 생사를 확인하고 있다.


한국 대사관은 멕시코 강진 이후 곧바로 ‘긴급 비상대책반’을 설치하고 가동중이다. 대사관은 총영사를 총괄반장으로 교민대책반, 기업대책반, 멕시코정부 협조반, 언론반 등으로 나눠 한인 피해 파악에 나섰다. 교민과 주재원 등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멕시코시티에서는 일부 카페와 한인식당의 건물 벽이 갈라지고 유리창이 파손되기도 했다. 현지 진출 한국 기업의 일부 사무실과 건물 벽이 균열하고 창문이 파손됐지만, 인명 등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사관은 멕시코시티 한인타운에 해당하는 소나로사에 있는 한 건물이 붕괴 우려가 커 교민들이 대피하도록 전파했다.


< 김미나 기자 >


[신앙 문예] 갈대꽃, 가을 소리로

● 교회소식 2017. 9. 27. 16:18 Posted by SisaHan

가을 바람 화가 붓되어
오늘 이민자 마음에 벽화 그리는
첫 새벽 축복 기도가 하늘로 오르고

야곱아, 야곱아
애굽 이민 길 두려워 말라, 계시 주시고
디아스포라 한인 올망 졸망 자녀 손잡고
캐나다는 가나안, 꿀이 강수로 흐르는
언제나 풍요로운 꿈들이 미래를 향하여
노벨상 빛날 끈기있는 민족되어
오래참아 사랑 완성 예언서 씁니다

갈대꽃 피우는 가을 바람 동무삼아
지나온 세월 길목마다
마디 마디 이렇게 참고 참아도
사랑아, 바람이 흔드는 갈대
상자로 엮어 모세는 강물에서
왕궁 왕자로 속량되었고
우리가 서로를 향하여 나누는
갈대 상자는 황금 꿈 그릇으로
이민 삶이 풍요로 채워지고

가을 나르는 우체부 발길에
추수 열매가 향기로 익고
성경에서 길을 찾아
오늘도 펼쳐 읽고 있으니
영원토록 홀로 사는 법
세상에서 제일은 사랑입니다

< 박심 - 목사, 문협회원 >


적은 소유를 가진 가난한 자도 그 적은 가운데서 구제를 해야한다 (막12:42).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 자신을 절제하여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요구하시지, 가지지 못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경건과 자선을 위해 사용할 수있도록 무엇을 드리나를 보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가 가벼운 마음으로 드리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나, 아까운 마음으로 드리나, 인색한 마음으로 드리나를 보시는 <주님>이시다. 곧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안식일>이 있는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막 2:27).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을 하나의 과제나 고역으로가 아니라 하나의 <특권>이나 <은총>으로서 영접하고 환영해야만 할것이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안식일>이 제정되기 하루 전에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창조 되었다. 즉 주 하나님께 영광과 섬김을 위해 창조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의 생활에 필요한 보급을 받는 일조차 <안식일>의 율법에 의하여 제지를 받도록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신앙초기에 부담이 되었던 경건 생활과 헌금 강요에 대해서 어두운 선입감을 가진다. 교회는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갖지 않도록 주의하는 교회의 치리가 있어야 된다. 즉 주님의 영예가 그 본래의 목적대로 쉽고 즐거웁고 유쾌하게 하여야 된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은 <안식일-주의날>에 대해서 분명한 주 하나님의 뜻을 살펴 보아야 한다. 즉 주 하나님은 안식일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계획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주 하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도록 만드신 것이다>. 즉 우리의 심신도 힘들고 고달픔에서 자유케 하신 것이다(신5:14). <우리의 육체의 휴식을 위해서>.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경우 몸을 위해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취하는 것을 <안식일> 규례(법령)가 억제케 하는 것을 확실히 의도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안식일>제도는 인간의 교화를 위함이지 인간의 파멸을 위함이 아닌, 그 자체 의도에 모순이 되게 해석 되어서는 <결코>안 된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다만 거룩한 일을 위한 날과, 주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기 위한 날이 되게 하기 위해 쉬는 날로 제정하시었다. “인자는 인식일에도 주인 이니라”. 안식일들(주일)은 인자의 날들 임을 주의하자! 주님은 그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의 안식일은 주의 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계1:10). 그러므로 인자, 그리스도, 중보자는 언제나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공경 받아야 한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그들이 받은 은사나 은혜를 받을 때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활용하고 섬겨야 한다. 은사나 은혜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등불>과 같이 되게하고 “여호와의 등불”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등불과 같이 빛을 받은 자들은 자기 자신들을 <등경>위에 놓아 빛을 잘 비추게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잘 포착해서 활용해야 함으로, 우리들이 소속해 있는 공동체(교회)를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자! 우리는 우리 자신들만을 위해서 빛을 내어서는 안 된다. <만일 내가 주 하나님께 진실한 종이 된다면, 주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진실하신 <주>가 되어주실 것이다>.

좋은 땅에 심겨진 씨처럼, 주 하나님 나라와, <복음>도 인간의 마음에 뿌려지고 받아들여질 때에 그와 같이 말없이 큰 성과를 내게 된다. 우리는 <복음>이 우리의 심령 속에 자리를 잡고 있게 하여 “위로부터 난 지혜”와 같이 “선한 말을” 하여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나타내 보여 주어야 한다. 정당한 <복음>의 원리를 따라서 솔직한 마음으로 주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때에 “주님”은 이를 달게 받아주시며, 인간의 심령에 자리를 잡고 역사하시며 무르 익어가는 복음의 열매를,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추수때에 <주님>에게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요4:35). <복음>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올바로 거쳐 완전히 성숙하였을 때에 추수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때에 그들은 익은 곡식과 같이 주 하나님의 곡간에 모아 들여지게 되는 것이다.(마13:30).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딤후3:5) 흔히 형식에 대하여는 세심하며, 그들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극히 비판적이었다.

만일 우리가 <복음(성서)>에서 읽은 말씀을 회상하게 된다면 우리의 많은 잘못이나, 올바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비난들이 고쳐지게 될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에 의한 호소는 가장 설득력이 있게 된다. <사역자>가 되고져 주 예수님께 나오기를 원하는 자들은 자기들 자신의 만족의 겉옷을 내어 던지고 모든 자만의 옷을 벗어버려야 한다. 목회와 사역위에 가장 달리기에 간편하도록, 즉 거추장스런 겉옷이나 자신들을 넘어지게 할 만한 것들이나 주님께 나아오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나 자기의 행동을 둔하게 할 만한 것들을 집어 던져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기도하시기 위하여 조용한 곳에 계셨다>. <복음> <사역자>들은 교회가 졸고 있지 않도록 골방에서 <기도>의 본을 보여야 한다. 할렐루야! 아멘.

< 김진규 - 밀알교회 장로 >


[기쁨과 소망] 압도(壓倒)

● 교회소식 2017. 9. 27. 16:14 Posted by SisaHan

지난 3년간 여름에 가던 가족캠핑을 가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깨끗하지 못한 캠핑사이트 환경이었다. ‘화장실 샤워장’이 아이들에게 있어서 불편했고 굳이 그 불편함을 참으면서 캠핑을 하는 것이 서로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캠핑하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조금은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중 금년 여름이 돌아오기 전부터 왠지는 모른지만 아이들에게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캠핑을 가자고 하는 것이다. 반갑기도 하고 약간의 불안감도 있어지만, 어찌되었든 먼저 간다고 하니... ^^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웹사이트 검색, 마침내 피터보로 지역에 있는 주립공원 캠프사이트를 예약했다.


출발 당일 오랜만의 가족캠프 여행에 흥분이 되기도 했지만 걱정 또한 되었다. 또 다시 좋지않은 환경으로 가족들이 실망하고 영원히 캠프를 포기하게 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었다. 여하튼 두 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캠프사이트. 입구에서부터 우리 가족은 ‘압도’되고 있었다. 걱정은 사라지고 관리사무실에서부터 묻어나는 ‘정결함과 깨끗하게 정돈된 분위기, 그리고 향긋한 커피향’에 압도되고 있었다. 이전에 가 봤던 여느 캠핑사이트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함께한 모든 가족은 입구의 분위기에서부터 알아버리게 된 것이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말하자면.. 우리집 아이들 화장실과 샤워장 그리고 방보다 깨끗했다. 입구에서 압도되었던 깨끗함의 기대, 그대로 였다. 첫날 아이들과 함께 온 종일 물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샤워장에서 샤워를 마친 후 나도 모르게 내가 사용한 샤워장을 청소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2박3일의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출발하는 아이들은 합창을 하고 있었다. “내년에 또 와요...!!^^” 캠핑사이트에 완전 ‘매료’된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지난 2박3일의 경험과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 현실이 ‘오버렙’ 되었다. 교회 입구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순수함과 정직 그리고 사랑으로 ‘압도’되는 교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순간 누군가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기도와 찬양·사랑’이 아닌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 행해지는 자연스러움’이 있는 교회.. 그래서 “다시와야 겠다”는 마음이 드는 교회. 운전대를 붙잡고 앞을 보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어릴 때 기억에 교회문화가 세상 문화를 압도할 때가 있었다. 여름이 되면 교회 오지않던 친구들도 ‘성경학교와 수련회’에 오곤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것보다 재미있는 것이 없었다!.” 믿음이 없는 부모들도 허락했다. 그 이유 또한 단순했다. “그래도 교회 친구와 교회 프로그램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물론 “재미도 있었고 안전도 했다.” 그러나 그 재미와 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순수함과 사랑, 그리고 영혼을 향한 열정’이 그들을 압도했기에 가능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추억이 되어 버린 오늘, 교회를 섬기는 한사람으로 비참함을 느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목회자의 타락과 교회의 비리, 그리고 다툼’이 ‘평범한 뉴스’가 되어버린 세대…교회가 세상을 압도하기는커녕 부패한 세상이 말하는 ‘순수와 정직에 비교당하고 압도되는 세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신 자에게 충성하며 사역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나의 인생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확신한다. “압도해야 한다”고…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지도를 봐야하는 큰 건물이 아닌, 수많은 선교사 파송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게시판이 아닌, 세상이 흉내도 낼 수 없는 ‘순수함과 정직,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혼에 대한 열정’의 회복으로 교회는 세상을 ‘압도(壓倒)’해야 한다고…

< 민경석 목사 - 한울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