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토끼 한마리가 야자나무 아래에서 ‘혹시 땅이 꺼지면 어쩌지?’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그때 야자열매 하나가 ‘쿵’하고 떨어졌다. 깜짝 놀란 토끼는 ‘큰일이다! 드디어 땅이 꺼진다’ 며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큰일 났어! 땅이 꺼지고 있어!”
다른 토끼도 놀라서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토끼 두 마리의 줄행랑을 보고 또 다른 토끼들도 서둘러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토끼들을 본 사슴이 물었다. “토끼들아, 왜 그리 허겁지겁 달아나니?”
“지금 땅이 꺼지고 있거든!”
이 말을 들은 사슴도 도망가기 시작했고, 이웃 멧돼지도 날 살려라 뒤따랐다. 그러자 여우, 기린, 늑대, 코끼리, 표범… 동물들이 모두 영문도 모른 채 날 살려라 도망치는 것을 본 호랑이가 의아하게 생각하곤 모두를 불러 세웠다.
“누가 땅이 꺼진다고 했지?” 표범에게 묻자 코끼리를 가리켰고, 코끼리는 늑대를, 늑대는 기린…식으로 거슬러 올라간 끝에 마침내 토끼가 지목됐다. 호랑이는 토끼를 끌고 야자나무 아래로 가 보았다. 땅이 꺼진 흔적은 없이 위에서 떨어진 야자열매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아닌가.
호랑이는 토끼를 호되게 나무라고, 다른 동물들에게도 호통을 쳤다. “이 놈들아, 공연히 부화뇌동 하지마!”


토끼 우화는 이해하기 쉽게 ‘부화뇌동’(附和雷同)을 묘사한다. 천둥치는 소리에 맞추어 천지 만물이 함께 울린다는 뜻이니, 곧 자기 생각이나 주장없이 남의 의견을 뒤쫓는다는 말이 부화뇌동이다. 맨 처음 중국의 고서 ‘예기’(禮記)에 실린 “남의 주장을 가져다가 자기 것이라고 하지 말며, 다른 사람의 의견에 무조건적으로 동조하지 말고, 반드시 옛 것을 모범으로 삼고 ….”(毋剿說 毋雷同 必則古昔 稱先王) 는 구절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라 한다.
공자는 여기에 ‘화합은 하되 맹목적으로 따라가지는 말라’는 뜻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언급하며 “군자는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라고 논어를 통해 가르쳤다.
‘화이부동’과 ‘부화뇌동’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이성적으로 판단해 소신껏 행동하느냐, 아니면 분별력이나 줏대없이 남의 꽁무니만을 뒤쫓아 가느냐의 행동패턴 차이를 말해준다. 아울러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저마다의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자율이냐 타율이냐를 특징지어 주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남과 북, 좌와 우, 지역과 계층과 세대 등 갈수록 심한 대립과 갈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모국의 상황을 보면서, 맹목적으로 부화뇌동하는 무리가 너무 많아진 데 놀라고 또 걱정하게 된다. 그 놀라움은 비단 모국 땅에 그치지 않고 머나먼 이민 사회에까지 해일처럼 밀려 와, 위세와 파장이 극히 우려스럽다.
예를 들면, 지난 서울시장 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를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왜 그런지를 입증하는 근거도 없이, 단지 시민단체 활동을 했고, 야당 후보라는 점을 빌미로 흑색선전을 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캐나다 한인 가운데서도 “박원순이 빨갱이여서 당선되면 서울시가 공산화 될 것”이라는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마 박 시장이 서울시정을 잘 이끌고 있는 지금도 그런 주장을 펴고 있을 것이다. 여당 편을 든다는 ‘애국적’인 생각 하나로, 앞 뒤 가릴 것도 없이 ‘야당후보 죽이기’에 부화뇌동한 것이다.


이성적으로, 아니 간단히 상식적으로 따져봐도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대한민국에서 ‘빨갱이 서울시장 후보’를 방관하고 있을 리가 없다. 멀쩡한 사람도 간첩으로 만드는 살벌한 정보기관이 득세하는 반공국가에서 빨갱이가 그렇게 많이 설친다니, 이치에 맞는 일인가. 그런데도 ‘종북’이니, ‘좌파’니 떠들면 전혀 개념없이 뒤따라 합창을 한다. 공공연히 국민 편가르기를 일삼고, 이념대결로 몰아야 승산이 있다는 꿍꿍이로 좌-우 대결을 조장하는 권력의 비겁하고 파렴치한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라는 사람이 대놓고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야당대표를 모욕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그런 연유가 있어서다. 무조건 정부 편을 들어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도 없이 윽박지르고 나서는 어버이연합과 관변단체들이 활개치는 비정상적인 현상도….


역사교과서를 정쟁거리로 만든 대통령과 여당은 현행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등 좌편향이고 역사학자들이 90%가 좌파여서 국정화가 불가피하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렇다면 왜 진작 처벌하지 않고 이제 와서야 세계적 수치를 자초하는가?. 현 정부가 지시한 검정지침을 기반으로 만든 교과서들이 북한을 찬양한다? 어불성설이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고 침뱉는 꼴이니, 자가당착과 모순도 유분수다.
그런데 거기에 부화뇌동하여 이 곳 한인사회에서도 그런 류의 주장을 펴거나 막연한 선동적 자료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어 탄식을 자아낸다. 조금만 따져보면 공자의 가르침처럼 ‘부화뇌동이 아니라 화이부동’의 생각과 언행을 하게 될 터임에도 말이다.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일본 역사교과서는 어찌할 건가

● 칼럼 2015. 10. 23. 15:44 Posted by SisaHan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이 문제는 비단 한국 내부의 문제로 그치는 게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북아 역사논쟁, 특히 한-일 간 역사논쟁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첫째, 한국의 국정화는 일본의 배타적 애국주의를 강화하는 빌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검인정 제도하에서도 양국은 영토문제를 비롯한 역사분쟁에 대한 교육을 강화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국가의 역사 개입을 정당화해왔다. 지난해 검정을 통과한 일본의 초등 교과서 중 한 권은 한-일 월드컵의 사진과 서술을 지운 자리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문장을 넣었다. 한·일 교과서의 상호서술이 어디까지 악화될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일본 정부에 왜곡된 역사서술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명분도 약화시킨다. 일본 정부는 2001년 자신들의 교과서 제도는 검인정이기 때문에 당시 국정제였던 한국처럼 국가가 수정 지시를 내릴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검인정제가 국정제보다 선진적이고, 국정제는 후진국이나 독재국가에서나 하는 것이라는 비아냥이 숨어 있는 답변이다. 한국의 국정제 회귀로 일본으로부터 다시 한국의 교과서 제도가 후진적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셋째, 한국의 국정제는 한-일 역사대화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양국이 모두 검인정제를 시행하는 경우 양국 역사대화의 방향은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학계의 입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의 학계는 일본의 학습지도요령이나 검정기준 등을 작성하는 일본의 연구자들과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학문적 양심과 동북아 평화 지향 교육의 필요성과 일본의 과거청산, 배타적 애국주의 극복 등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국가 간 직접적인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국정제도를 채택하는 경우 그러한 융통성의 공간은 사라지고 만다. 또한 양국 간에 공동 역사연구기구가 설립되더라도 한국의 참가자들이 국정교과서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는 다시 일본 연구자들의 입장을 경색되게 만들 것이다.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질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넷째, 한·일 시민단체들이 일본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는 논리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시민단체들이 일본 정부가 검정 강화를 통해 교과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점차 강화하는 것을 비판하기 어려워진다. 이 경우 한·일 양국의 국가 개입을 동시에 비판해야 하고, 한국 정부가 오히려 더 중요한 비판 대상이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일본 시민단체들도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역사인식을 위해 한국 정부의 국정제도를 비판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이런 상황은 양국 시민사회 그룹들에 ‘국가주의 비판’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는 일이 되며, 당연히 일본의 과거청산을 중심 주제로 삼는 일은 점점 힘들어진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국정화는 동북아 전체의 역사인식을 경직되게 하는 위험요소가 될 것이다. 한·중·일 역사대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과연 국가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북한의 국가주의 강화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동북아의 반평화적 역사교육의 최선봉에 일본이 아닌 한국이 나서게 되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2015년 한·일 시민단체들이 전개한 일본 정부의 역사교육 개입에 반대하는 국제서명에 한국에서만 13만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다. 이제 한·일 시민단체들이 한국 정부의 역사교육 개입에 반대하는 국제 서명운동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미국과 영국 언론의 비판적 입장 표명, 그리고 일본 시민단체의 항의 성명은 이미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 이신철 - 성균관대 동아시아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 발언은 듣는 귀를 의심하게 한다. 김 대표는 17일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산악회 발대식에서 “역사 전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의 국사학자들은 90%가 좌파로 전환돼 있다”며 “좌파의 사슬이 강해서 어쩔 수 없이 국정 교과서로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황당함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하다. 정부여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역사 쿠데타’라는 비판이 얼마나 이번 사태의 정곡을 찌른 것인지 김 대표 스스로 자백한 꼴이다.


여당 대표가 내년 총선의 공천을 두고 대통령과 갈등을 빚다 수세에 몰린 뒤 납작 엎드려 무조건 충성을 맹세하는 모양새로 비치니, 딱하기는 하다. 설령 국정화가 김 대표의 소신이더라도 민주주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정치인의 발언이 이래선 안 된다. 역사 기술을 토론 대신 전쟁의 대상으로 삼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 좋은 정책으로 역사의 새 장을 열 생각보다 입맛대로 역사책을 뜯어고쳐 어두운 과거를 감추고 실정을 덮겠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다.
‘국사학자 90%가 좌파’라는 발언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정부의 국정화 방침에 반대하면서 대학의 역사·역사교육 관련 학과 교수들이 국정 교과서 집필에 불참하겠다고 잇따라 선언하고 있다. 국내 최대 역사연구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도 16일 국정 교과서 집필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서명에 참여하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학계 인사 거의 대부분을 이렇게 극언으로 매도하는 몰상식은 일찍이 없었다. 김 대표의 발언은 정권의 국정화 추진이 우리 사회 지식인 일반의 지지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한 것이기도 하다. 이들을 모두 탄압 대상으로 삼겠다는 협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국정화 방침에 대해선 ‘위험한 교과서를 아이들에게 건네지 말자, 오사카 모임’ 등 일본 교과서 관련 17개 시민단체도 16일 성명을 냈다. 한국의 국정 교과서는 정권의 역사인식을 국민에게 밀어붙이는 수단이며, 한국의 국정화 시도가 아베 정권의 교과서 개악 시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일본 시민단체들이 자국의 일도 아닌 한국의 교과서 정책에 반대 성명을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군국주의 시절을 미화하는 극우파 아베 일본 총리도 감히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아베 총리에게 칭찬이라도 듣고 싶은 것인가.



미국이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에 필수적인 4개 핵심기술 이전이 불가능하다는 뜻을 거듭 확인했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은 15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이들 기술이 제3국에 이전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우리 쪽의 제안에 “조건부로도 4개 기술 이전은 어렵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로써 7조3천억원이나 들여 록히드마틴의 F-35A를 들여올 이유가 더욱 흐려졌다. F-35A를 구입하기로 한 것은 이 비행기에 탑재된 위상배열(AESA) 레이더체계 통합기술 등 4개 핵심기술을 한국형 전투기 개발에 활용한다는 걸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총 18조원이 들어가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도 존폐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대통령의 외국방문 때 통상 국내에 남는 국방부 장관이 수십년 만에 대통령을 따라간 이유도 이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한-미 국방장관 회담 직전 펜타곤을 방문해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공식 의장대 사열까지 했다. 예포 21발을 발사하고 미 전통의장대 행진까지 포함하는 이 행사를 두고 우리 정부는 ‘미국이 최고 수준의 예우를 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4개 핵심기술의 이전 요구’는 퇴짜를 맞았다. 화려한 환영행사는 받았지만 국익과 직결되는 실속은 차리지 못한 것이다.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이런 상황에 처할 때까지 정부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 한심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더 어이없는 것은, 적어도 이번 사안에선 ‘미국이 전투기만 팔아먹고 기술이전은 거부했다’고 미 정부나 군수업체를 비난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방위사업청 설명을 보면, 미국 쪽은 지난해 9월 F-35A 계약 체결 전부터 ‘핵심기술 이전이 어렵다’고 말했지만 막연히 ‘나중에 협상을 통해 풀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계약을 체결해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더구나 4월에 미 정부의 승인 불가 방침을 공식 통보받고도 쉬쉬하다 최근에야 이 사실을 공개했다. 이번에 다시 기술 이전을 요구한 것도 뻔히 안 되는 줄 알면서 국내의 비난여론을 달래 보려는 쇼의 성격이 짙다는 의심을 받는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성과가 나오더라도 4개 핵심기술 이전에 실패한 정부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누가 언제부터 왜 국민을 속였는지 철저하게 가려내야 한다. 대통령 방미 중에 이런 중요한 외교적 실패를 한 점에 대해서도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