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타리오 한인실업인 협회(회장 강철중)가 회원부인들을 위해 마련한 연례 ‘여성의 밤’이 지난 20일 저녁 리치몬드 힐의 힐튼호텔에서 열려 여성들이 모처럼 흥겨운 여흥의 시간을 보냈다.

리셉션과 만찬에 이어 강철중 실협 회장의 개회사와 각계 메시지로 막이 오른 이날 행사는 왕년의 인기가수 선우혜경 씨와 뮤지컬 배우 김민수 씨, 재즈가수 및 연주자 지영 씨와 함께 오대영 밴드가 공연을 펼치고 노래자랑, 댄스 등으로 참석자들이 어울리며 흥겨운 저녁시간을 연출해, 자리를 메운 1천명의 여성회원들을 즐겁게 했다. 실협은 그동안 모국의 유명 연예인을 관례적으로 초청해 행사를 열었으나, 올해는 토론토 거주 연예인들로만 무대를 꾸렸다.

참석여성들은 노래와 연주, 춤 등에 환호하며 따라하거나 무대 앞으로 나가 춤을 추는 등 함께 어울리고 웃음과 박수로 2시간여를 즐겼다. 또 경품추첨을 통해 항공권 등 실협이 제공한 선물도 받았다.
앞서 강철중 회장은 개회인사에서 “비록 알력이 종종 발생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최후 보루는 협회라는 울타리”라고 지적, “이 울타리를 더욱 튼튼하고 화목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회원의 협조는 물론 우리 여성회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협조를 당부했다
< 문의: 416-789-7891 >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세계가 5.18정신 인정한 것”


5.18 민중항쟁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오른 것은 31돌을 맞은 5.18이 세계 민주화운동의 전형적인 사례가 될 만한 사건임을 공인받았다는 의미를 지닌다. 6.25 전쟁 이후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으로서, 한국 민주화의 바탕돌이 된 5.18 항쟁의 역사적 의의와 문화적 가치를 세계가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5.18 기록물은 부당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존엄성을 유린할 때 발생하는 반인권적 상황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에 맞서 자신의 가족과 신념을 지킨 시민들의 인권·평화·민주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유네스코가 이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국가폭력에 대한 민중의 숭고한 저항을 담은 5.18 항쟁 자료들을 보존하고 후세에 교육하려는 신청 동기와 그 가치를 평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광주 시민들은 지난해 3월부터 5.18 원본 기록물 3만5천여점 80여만쪽을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인받으려 정성을 들여왔다. 정치·행정·종교계 및 5.18 관련 단체 등 각계 인사 100여명이 등재 추진위원회를 꾸렸다. 5.18 기록물에는 △광주시청 5.18일지 △사망자 인적사항 보고 △군사법정 재판기록 △부상자 진료기록 △국회 광주청문회 회의록 △주한 미국대사관의 전문 등이 포함됐다. 또 △관련자 1500여명의 구술 증언 △피해자 5100여명의 보상 서류 등 방대한 기록들도 담겼다. 당시 △시민군이 발표했던 성명서 △사진기자들이 촬영했던 흑백필름 △취재기자들이 보관했던 취재수첩 등도 들었다.
광주 시민들은 지난해 11월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고 지난 4월 세계기록유산 심사소위를 통과할 때까지 조바심을 내며 지켜봤다. 지난해 11월엔 뉴라이트 일부 단체와 인사들, 지난 4월에는 보수단체인 국가정체성회복협의회와 한미친선우호협회에서 활동중인 서석구 변호사 등 일부 인사들이 등재 반대 운동을 폈기 때문이다.
이번 등재를 계기로 광주평화상 제정, 유엔 인권도시 지정 등 광주시의 사업은 탄력을 받고, 5.18 정신을 배우려는 세계인의 발길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김준태 5.18 기념재단 이사장은 “5.18 정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기분 좋은 날”이라며 “이제 5.18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미래의 역사로서 거듭나 세계 각국의 교과서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안종철 등재 추진위원회 사무총장은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세계가 5.18의 정신과 가치를 인정한 것으로, 5.18 정신의 전국화와 세계화가 촉진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등재 소식이 들리자, 광주시와 등재추진위는 내년에 5.18 사적지인 광주 동구 금남로3가 광주가톨릭센터를 매입해 기록물을 보관하는 ‘5.18 아카이브’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5.18 아카이브를 세계 인권·평화·민주 운동의 성지로 만들어 교육과 연구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개인과 단체가 소장한 자료도 추가로 수집해 ‘5.18 기록물 연구소’를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세계의 민주화운동 자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 재판 기록 △필리핀의 민중혁명 음성 테이프 △아르헨티나·칠레의 인권운동 기록 등이 있다.
앞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국제자문위원회(IAC)는 23일영국 맨체스터에서 제10차 회의를 열어 한국의 ‘.18 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가 제출한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과 조선 후기 국왕 동정과 국정 운영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한 <일성록>(日省錄) 안건을 심의해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등재를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국제자문위원회의 등재 권고 결정은 사실상 등재를 확정짓는 절차로 간주되어 왔다. 사무총장은 통상 2~3개월 안에 등재 여부를 최종 확정한다.
2건이 모두 등재되면 한국은 9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1997년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이 처음으로 등재된 이래, 2001년 <승정원 일기>와 <직지심체요절>, 2007년 <조선왕조의궤>와 해인사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에 이어 2009년에는 <동의보감>이 이름을 올렸다.


박지성, 시즌 8골 6도움 최다 공격포인트


박지성(30·맨유)이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추가하면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한국인 한 시즌 최다 공격포인트를 달성했다.  박지성은 22일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10~2011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종 38라운드 블랙풀과의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해 후반 19분 교체될 때까지 1골 1도움을 기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공격포인트 2개를 추가한 박지성은 올 시즌 8골 6도움으로 14공격포인트를 기록, 지난 시즌 이청용(23·볼턴)이 세웠던 한국인 한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13)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5년 7월 맨유에 입단한 후, 6시즌 만에 절정의 기량을 선보인 것. 박지성은 올 시즌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 1위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날 맹활약으로 박지성은 오는 29일 FC바르셀로나(스페인)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맨유는 23승11무4패로 승점 80점 고지를 찍으며 우승을 자축했다. 블랙풀은 10승9무19패(승점 39)로 19위에 머물러 강등의 아픔을 겪게 됐다.
이청용은 같은 시간 홈구장 리복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 시티와의 38라운드에서 선발로 출전했지만 후반 31분 교체될 때까지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공격포인트도 기록하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올 시즌 12공격포인트(4골 8도움)의 성적을 받았다. 볼턴은 0-2로 완패했다.

오바마 새 중동정책 ‘재스민’뒤 개입정책 선회, 이스라엘은 압박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중동정책을 발표하기로 예정된 19일 낮 12시40분을 35분이나 지나서야 모습을 나타냈다. 막판에 발표문을 직접 다시 고쳐썼기 때문이다. 백악관 관리들은 이스라엘의 압력으로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부연 설명했다. 오바마의 고심과 안팎의 압력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날 내용 중 가장 민감한 부분인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에서 1967년 6일 전쟁 이전 경계 준수’ 등은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물론이고, 오바마 행정부의 초기 정책과도 차별성을 띠고 있다. 보편적 가치보다는 자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앞세운다는 중동정책의 궤도를 일정 부분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유주의적 개입으로의 선회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적 이상주의자인 정치인 오바마의 성향이 반영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당시 미국의 경제적 미래가 걸린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대외정책의 초점을 옮기려 했다. 이를 위해 중동분쟁의 수렁에서 탈출이 필요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3월20일 이란의 민속명절을 맞아 이란과의 화해를 제안하는 동영상 연설을 보내거나, 6월4일 이슬람 세계와의 화해를 제안한 ‘카이로 연설’은 그 일환이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에게 정부체제를 강요할 수 없고, 강요해서도 안된다”고 말해, 중동의 반미국가에게도 체제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곧 이어 터진 이란 대선을 둘러싼 반정부 시위 때도 불간섭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란과의 화해는 물론이고 이란 핵개발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안팎의 비난에 직면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리처드 홀브룩 특사가 주장하던 외교적 해결은 없이 병력만 증파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아랍의 봄’은 오바마의 중동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게 했다. 사만사 파워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등이 주도한 이 정책 재검토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에 대한 비판, 경제발전에 앞서는 정치개혁의 필요성 등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는 아랍의 봄이 터지자, 무바라크의 퇴진을 이끌며 중동정책을 자유주의적 개입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독주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와 미국 내 이스라엘 로비 세력들에 대한 불만과 견제도 작용했다. 오바마는 취임 뒤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간단하게 이를 일축해, 오바마의 첫 외교적 노력에 굴욕스런 패배감을 안겼다. 현재 양국 관계는 최악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