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식민지 군대의 ‘똥별’ 들

● 칼럼 2014. 11. 11. 20:04 Posted by SisaHan
10년 전이다. 이해찬 당시 총리가 ‘진보정상회의’에 참석했는데, 한국의 발전이 화제로 떠올랐다. 그러자 아프리카의 몇몇 대통령들이 “무슨 소리냐.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인데…”라는 싸늘한 반응들을 보였다. 이 총리는 “1950~60년대까지는 미국의 원조를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항변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이 총리의 말을 거들었다고 한다.
 
어느 사석에서 그의 말을 들었을 땐 어이가 없었다. “식민지라니, 어디에다 대고….”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말 들어도 싸네”라는 자괴감이 든다. 우리나라 국방장관이 전시작전통제권을 사실상 영구히 미국에 갖다바쳤기 때문이다.
가장 쓰라린 건 용산기지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용산을 되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붓고 피를 흘렸던가. 평택에 새 기지를 만들어주느라 한 20조원은 들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추산이다. 땅을 확보하느라 대추리의 농민들 가슴에는 대못을 박았다. 그런데 노른자위는 여전히 미군 땅이란다. 20조원을 쓰고도 허리 잘려 못 쓰게 된 땅을 받았으니 ‘박근혜 판 4대강 사업’이 되고 말았다.
10년 전에도 한미연합사 잔류 문제는 시끄러웠다. 연합사 터를 얼마나 남기느냐를 놓고 한-미 간에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그러다 당시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헬기로 용산기지 상공을 둘러본 뒤 완전히 옮기는 쪽으로 방침을 굳혔다. 그때 그가 했다는 말이 이거다. “뉴욕 센트럴파크 공원에 외국 군대가 주둔한다면 미국민이 수용하겠느냐?”
 
우리 정부는 연합사 잔류의 이유로 “전작권 환수가 연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연합사가 평택으로 내려가기로 결정난 건 2004년으로 그때는 전작권 환수의 전 자도 나오지 않았다. 핑계일 뿐이고 실제는 생활상의 편리 때문일 게다. 먼지바람 이는 벌판에 선 평택 기지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독신인 사병들은 그럭저럭 견딘다 쳐도 가족이 딸린 장교들은 심란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뉴욕 못지않은 문화생활과 교육환경을 누릴 수 있는 용산은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다. 게다가 미국의 국방비는 대폭 감축해 평택 기지 안에 아늑한 주거공간을 마련할 처지도 못 된다.
용산에 남는 미군기지는 보안이 취약하니 담장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철조망은 한층 날카로워질 것이다. 경계병의 총끝은 더 날이 설 테고 순찰차의 엔진은 더 바빠질 것이다. 공원 한복판이 그 모양이니 ‘민족공원’은 고사하고 마음 편히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을 게 뻔하다. ‘뉴욕 센트럴파크 같은 공원을 내 집 정원처럼 누릴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비싼 돈 주고 기지 주변 아파트를 산 사람들은 손해배상 소송이라도 내야 할 판이다.
 
우리 군은 작전권을 행사할 능력이 안 된다고 한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우리가 북한보다 국방비를 더 쓰기 시작한 지 30년은 됐고, 지금은 북한보다 30배도 더 되는 예산을 쓰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정치 민주화를 이뤄냈고, 스마트폰·자동차·선박 등의 제조능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류는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무시 못할 존재가 됐다.
그런데 왜 유독 국방만 이 모양인가. 그것도 가장 가난한 북한 하나 제대로 상대를 못해 미국 뒤꽁무니에 숨고 있으니 말이다. 군대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성들은 ‘똥별’ 말고는 달리 부를 말이 없다. 숫자는 500명 가까이 되니 많기도 하다. 세월호 구조를 못해서 해경은 해체된다. 나라를 구하지 못했으니 그들의 계급장을 떼야 한다. 대신 바티칸을 지키고 있는 스위스 용병을 불러들이자. 아마 몇년 안에 자주국방이 달성됐다는 보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김의겸 - 한겨레신문 기자 >


군에서 신상필벌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상과 벌은 그 행위에 비해 넘쳐서도 모자라도 안 되며, 그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그런데 신현돈 전 육군 제1군 사령관 강제전역 파동에서는 상벌의 원칙과 기준이 무엇인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4성장군이 음주 문제로 말썽을 일으킨 것부터 꼴사나운 일이지만, 그 사건의 처리 과정은 완전히 뒤죽박죽이다. 우리 군 수뇌부의 의사 결정과 일 처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태의 진상을 둘러싼 국방부의 오락가락 설명은 참으로 가관이다. 엊그제 국방부 대변인이 나와 ‘만취 추태’와 ‘민간인과의 실랑이’ 등에 대해 9월에 한 발표를 뒤집더니, 하루 만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대변인의 말을 반박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방부의 갈지자 행보를 보노라면 정작 술에 취한 것은 신 전 사령관이 아니라 국방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신 전 사령관의 행동은 애초 알려졌던 것처럼 ‘만취 추태’는 아니었으며 국방부도 그를 강제전역 조처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국방부가 비공개 경고 정도로 끝내려던 생각을 갑자기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크게 화를 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이런 언론 보도가 잇따르는데도 청와대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사실상 이를 시인하고 있는 셈이다.
 
제대로 된 군통수권자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진상을 철저히 파악해서 이에 합당한 조처를 취하라’고 지시해야 옳다. 자신의 해외 순방 기간에 최전방을 책임진 군사령관이 위수지역을 벗어나 음주로 말썽을 빚었다는 보고에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징계 조처에는 정해진 절차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신 전 사령관 사건에서는 이런 상식이 깡그리 무시됐다. 그리고 한민구 장관을 비롯해 국방부와 청와대 안의 어느 누구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모시기에 바빴다. 그래서 다짜고짜 옷부터 벗기고 나서 뒤늦게 진상조사를 벌이다 보니 모든 일이 엉망으로 꼬여버린 것이다.
신상필벌의 원칙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군대에서 사기와 단결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신도 원칙도 없는 장수가 이끄는 군대는 결코 정예 강군이 될 수 없다. 군 수뇌부는 제발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


남북이 10월 말부터 11월 초 사이에 하기로 한 고위급 접촉이 무산되고 남북 관계가 그 전보다 더 나빠졌다. 양쪽의 경직된 태도가 모두 문제지만 관계 개선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우리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무엇보다 상황 악화를 방치하는 듯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는 고위급 접촉 무산의 직접적 원인이 된 대북 전단 살포 문제와 관련해 더욱 강경해졌다. 전단 살포를 막을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입장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이제는 전단 살포 자제를 당부하는 말이 사라졌다. 이것이 대북 전단 살포를 방치하겠다는 뜻이라면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할 당사자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실제로 10월31일 탈북자단체가 경기 포천시에서 대북 전단 100만여장을 살포하는 동안 경찰은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북한 체제의 붕괴를 주장하는 극소수 단체가 남북 관계를 쥐고 흔드는 것을 그대로 용인하는 모양새다.
 
정부의 강경한 태도는 경기 김포시 최전방의 애기봉 등탑 철거 문제에서도 확인된다. 관할 해병대의 지휘관이 지난달 중순 이 등탑을 철거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었다. 이 지휘관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등탑을 철거하기로 하고 국방부 쪽과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철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며칠 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에서 이를 질책했고, 이후 정부는 철거 경위를 조사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북한이 이 등탑의 십자가 조명 등에 반발해왔으므로 등탑 철거는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을 꾀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 안 분위기가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북한이 전단 살포 중단을 고위급 접촉의 조건으로못박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잘못이다. 이 사안을 논의하고 싶으면 고위급 접촉에서 의제로 제기하면 된다. 북한이 이 사안을 최근 유엔에서 논의 중인 대북 인권 결의안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북한은 ‘우리의 존엄(김정은)과 체제를 악랄하게 헐뜯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국제사회의 흐름에 눈감는 독단일 뿐이다. 이제 올해 안으로 남북 관계가 풀리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곧 육·해·공군이 함께 벌이는 대규모 호국훈련이 예정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북관계 악화를 막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정부는 앞장서서 전기를 마련하는 유연한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