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대한민국 군의 정통성

● 칼럼 2013. 8. 26. 12:12 Posted by SisaHan
지난 7월16일 서울 용산구의 국방부 기자실, 임관빈 국방정책실장(예비역 육군 중장)이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제정했다고 발표했다. 임 실장에게 물었다.
 
 “백선엽 장군은 일제 때 간도특설대 장교로 독립군을 토벌한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사람의 이름을 딴 상을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제정할 수 있습니까?”
 “…”
 “대한민국 국군의 정통성은 독립군, 광복군에 있습니까? 아니면 일본군에 있습니까?”
 “물론 광복군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상을 대한민국 국방부가 제정한 것에 대해 과거에 독립군, 광복군에서 활동한 분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
 
대한민국 국군의 대부분인 육군의 역사적 정통성은 극히 취약하다. 
1~16대 육군 참모총장 13명 가운데 최영희를 뺀 12명 전원이 일본군이나 만주군(사실상 일본군) 출신이었다. 이 가운데 이응준, 채병덕, 신태영, 정일권, 이종찬, 백선엽, 이형근 등 7명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4776명)에 올랐다. 채병덕과 정일권을 제외한 5명은 정부가 공식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1005명)에도 포함됐다.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일제 때의 민족반역자 가운데서도 죄질이 가장 나쁜 사람들이다.
 광복군 출신으로 육군에서 최고위직에 오른 사람은 1946년 12월~48년 10월 육군 총사령관(육군 참모총장의 전신)을 지낸 송호성이 거의 유일하다. 그런데 김구 계열이었던 그는 이승만이 집권한 직후 총사령관에서 밀려났고 친일파 김창룡으로부터 좌익이라는 혐의를 받다가 6.25전쟁 때 북으로 끌려가(또는 넘어가) 조선인민군 간부가 됐다.
 
 이런 역사에 대해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학 석좌교수는 지난 6월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했던 빨치산 출신 김일성 등은 북한을 접수한 반면, 남한에서 김구와 같은 민족주의자들은 밀려났다. 남한에서 미국은 일본 경찰과 장교 출신들을 기용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 수치스런 역사를 미화하려 한다. 특히 그것은 백선엽 장군에게 집중돼 있다. 2005년 3월 육군은 계룡대 육군본부에 ‘백선엽 장군실’을 만들었다. 2009년 3월엔 국방부는 그를 한국 최초의 5성 장군인 ‘명예원수’에 추대하려다 실패했다. 지난 8월13일 문화재청은 그의 물건들을 문화재로 지정하려다 보류했다.
 백 장군은 6.25전쟁 때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을 막아냈고, 지리산에서 빨치산을 토벌했으며, 남조선노동당에서 활동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박정희를 살려낸 ‘공로’가 있다. 그러나 간도특설대의 장교로서 독립운동가를 토벌한 죄는 어떤 공로로도 씻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민족을 배반하고 국가의 정통성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다가 해방 뒤에 좌익을 척결하는 데 앞장섰던 노덕술이라는 경찰 간부가 있었다. 지금 경찰에서 좌익을 척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는 공로를 인정해 ‘노덕술상’을 만든다면 군인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앙리 필리프 페탱이라는 프랑스의 5성 장군이 있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때인 1916년 베르됭에서 독일군을 물리친 공로로 원수에까지 올랐고, 국가의 원로로 존경받았다. 그러나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괴뢰정부인 ‘비시 정부’의 수반을 맡았다는 이유로 전후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죽었다. 당시 나이가 89살로 많았기 때문에 총살형만은 면했다.
 대한민국 육군이 역사적 정통성을 회복하겠다면 ‘백선엽 영웅화’부터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하루빨리 전시작전통제권을 되찾아옴으로써 군의 새로운 정통성을 세워야 할 것이다.
< 김규원 한겨레신문 통일외교팀장 >



김무성·권영세 증인채택도 불발… “하나마나 낙제점”

지난 16·19일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는 내외 국민들의 큰 관심과 기대에도 불구, 새누리당의 일방적인 감싸기와 민주당의 무능력, 증인들의 선서 거부와 ‘모르쇠’ 전략 등으로 별무 소득인 채 하나마나한 청문회가 됐다.
정치 평론가들은 한마디로 낙제점 청문회였으며 제도 자체를 크게 보완해야 할 문제점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를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민주당 요구를 새누리당이 거부하면서, 21일 3차 청문회는 사실상 무산됐다. 
정치 전문가들은 국정원과 경찰을 엄호하고 나선 새누리당 특위 위원들의 태도를 진상규명을 가로막은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했다. 마치 국정원과 파트너처럼 변호인 역할에 몰두한 새누리 특위원들의 태도는 국정원의 ‘셀프 개혁’을 주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가 방어전략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 훼손 등 청와대의 우려에 대해 알아서 처신한 것 같다는 지적이다.
 
과거의 청문회와는 달리 청문회를 무시하고 무력화시킨 증인들의 선서 거부와 조직적인 말 맞추기 등도 실패로 몰아넣은 원인으로 꼽혔다. 과거 청문회 증인들은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는 경우가 대체적이었는데, 이번에는 철저하게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원세훈·김용판 증인뿐 아니라 서울경찰청 증거분석관 13명도 일사불란하게 답변하는 모습을 보여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냄새를 물씬 풍겼다.
비록 ‘낙제점 청문회’였지만,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지난해 12월15일 점심 의혹’ 제기와 그의 ‘위증’ 의혹이 불거진 것이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라는 시각도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권은희 전 수서서 수사과장의 증언으로 김 전 청장의 위증 논란이 벌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의 망각은 부끄럽지 않은가

● COREA 2013. 8. 25. 11:09 Posted by SisaHan

항일 독립운동 관련 단체 회원들이 8월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친일 전력으로 논란을 빚은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을 기리는 정부의 ‘백선엽 한미동맹상’ 제정을 규탄하고 있다. 이들은 백씨를 상징하는 조형물에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둘렀다.


축구 이야기다. 지난 7월28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선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축구선수권대회 한-일전이 열렸다. 양국 응원단의 퍼포먼스가 논란이 됐다. 일본 응원단에선 국기인 일장기(히노마루) 주위에 햇살이 퍼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욱일승천기를, 우리 응원단에선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함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글귀가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단순한 축구 경기 이상의 의미를 담은 응원전은 결국 외교적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갖고 “극도로 유감”이라며 “국제축구연맹은 응원시 정치적 주장을 금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민도’ 운운한 발언으로 논란에 불을 끼얹었다. <산케이신문>은 아예 “아베 내각이 욱일기의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정부 방침으로 공식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여야 의원 98명으로 이뤄진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모임’은 지난 8월1일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 정부는 한국인들의 민도를 언급하기 전에 일본이 아시아 주변 국가들에 무엇을 사죄해야 하는지 자신들의 민도에 충실한지부터 냉정히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우리 정부의 소극적 대응이 오히려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8월8일에는 강창희 국회의장을 예방한 자민당 소속 고노이케 요시타다 참의원의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과거는 잊으려 해서 잊히는 게 아니다”라는 강 의장의 말에 그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고 받아쳤다. 적반하장이다. 아베 신조 총리와 자민당의 독식으로 급속하게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 정부의 행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수정이 추진된다. 아소 다로 부총리는 ‘나치식 개헌’을 언급했다가 국제사회의 비난에 발언 자체를 철회한 일도 있었다. 최근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1945년 8월6일을 기려 항공모함급 헬기 호휘함 ‘이즈모’ 진수식을 열기도 했다. 이즈모는 과거 중국을 공격했던 일본 기함의 명칭이다. 주변국들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을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일전에 등장한 우리 응원단의 플래카드가 다른 맥락에서 불편했다. 과연 우리는 어떤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유신의 추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은 부친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물러섬이 없다. ‘박정희 시절’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인사가 대거 입각했다. 법조계와 육사 출신 인사를 중용하는 것도 닮은꼴이다. 하기야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주국 장교로서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다”고 일왕에게 맹세했던 장본인이다.

최근 국방부는 친일 논란의 주인공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을 기리는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제정했다. 그는 일제 시절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시점까지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을 ‘토벌’했던 인사다. 이명박 정부 때 득세하기 시작한 뉴라이트 진영은 일련의 ‘역사 왜곡’ 논쟁을 주도했고, 우리 교과서는 독재정권 시절을 미화한다. 최근엔 “5·18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거짓 주장이 버젓이 방송되기도 했다. 그 유명한 ‘초원복집’ 사건의 주인공 김기춘씨를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한 대목이 차라리 애교에 가깝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일본 의원을 점잖게 꾸짖은 강창희 국회의장도 전두환의 민정당 창당 과정에서 각 지역에 정치자금을 배달하며 발로 뛰었던 ‘하나회의 막내’가 아닌가.

축구장에 등장한 우리 응원단의 문구는 옳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건 우경화의 외길로 치닫고 있는 일본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 송호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