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을 이끌 당대표에 한명숙 후보가 선출됐다. 한 후보는 15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전당대회에서 24.5%의 지지율로 당대표에 올랐다. 한 후보에 이어 문성근·박영선·박지원·이인영·김부겸 후보가 최고위원으로 뽑혔다.
국내 정당 대표 경선 사상 유례없는 시민참여 방식으로 치러진 이번 대회에서 한 대표는 모바일·현장투표, 대의원 투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당내 이질적인 세력의 통합과 야권 연대를 통해 총선·대선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달라는 표심으로 해석된다. 한 대표의 당선으로 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여야 모두 여성 대표가 국회의원 선거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한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민주통합당과 이번 경선에 참여한 80만 시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무시하는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는 승리의 대장정을 선언한다”며 “올해 총선과 대선 승리를 통해 승자 독식과 특권, 반칙의 시대를 끝내고 국민 다수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세대교체·친노·탈호남…
기성정치와 거리 둔 인물들 상위권‥혁신예고
6인 지도부 특징과 전망
6인 지도부 특징과 전망
15일 선출된 한명숙 대표와 최고위원 5명의 면면과 순위에는 민주통합당의 앞날을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숨어 있다. 민주통합당 최고위원회는 대표 1명,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여성·노동·지역·청년을 배려해서 뽑는 지명직 최고위원 4명, 원내대표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정당의 속성당 대표와 선출직 최고위원 5명의 리더십이 당을 이끌어 갈 수밖에 없다. 득표 순위는 곧바로 ‘정치적 영향력’의 서열이다.
새로 구성된 지도부의 특징은 첫째, 기존 정당정치와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 윗자리에 포진했다는 점이다. 이런 결과는 당장 당의 과감한 혁신, 통합진보당과의 선거연대를 추진해야 하는 민주통합당으로서는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한명숙 대표의 안정감과 문성근 최고위원의 개혁몰이가 조화를 이루면 파열음을 줄이면서도 상당한 변화를 이뤄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큰 선거판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선거 경험과 실무적 지식이 부족해 위험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 현장의 실상을 잘 모르고 섣불리 개혁을 밀어붙이다가 반발을 자초하는 등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정치 경험이 많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나 손학규, 정세균, 정동영 등 대선주자들에 의해 휘둘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명숙 대표는 대표직 수락 연설에서 “어떠한 기득권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어떨지는 지켜볼 일이다. 민주통합당 안팎에는 대선주자들이나 호남 출신 중진들을 어려운 지역에 내보내고, 철 지난 전직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둘째,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람들이 1·2등을 차지한 것도 눈에 띈다. 당장 당내에서는 “대선주자는 이제 문재인”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야권의 대선주자는 4·11 선거 결과, 한나라당 상황, 연립정부 성사 여부 등 복잡한 변수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친노무현 인사들이 당을 접수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민주통합당으로서는 오히려 정치적 부담이 크다. 한명숙, 문성근 두 사람의 선전은 사실 대중성 및 야권통합 운동에 힘입은 것이다. 그렇지만 한나라당이나 친여 언론은 민주통합당에 ‘친노 딱지 붙이기’나 ‘김대중-노무현 세력 이간’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호남의 부진이다. 박지원 최고위원은 애초 대표직을 노렸으나 통합 전당대회 폭력 사태와 막판 돈봉투 사건에 휘말리며 4위로 내려앉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탄생에 기여한 호남의 역사성에 견주어 보면 박지원 최고위원의 4위 추락과 이강래 후보의 탈락은 예상밖의 성적표다. 앞으로 호남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일은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이 풀어내야 하는 난제로 남게 됐다. 반면 문성근, 김부겸 등 영남 지역 출마자들이 지도부에 입성함에 따라 민주통합당은 지역 기반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살릴 수 있게 됐다.
넷째, 젊은 최고위원들의 약진이다. 박영선(52), 이인영(46), 김부겸(54) 등 상대적으로 젊은 정치인들이 최고위원회에 포함된 것은 민주통합당의 앞날을 밝게 해 주는 결과다. 이들은 앞으로 당내 혁신과 개혁공천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 성한용 선임기자 >
“친노 따로없다‥공천권 국민에 줄 것”
한명숙 대표 인터뷰
“친노 따로없다‥공천권 국민에 줄 것”
한명숙 대표 인터뷰
한명숙 새 민주통합당 대표는 15일 당선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총선 승리를 위해 완전국민경선을 실시하고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총선 연대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민주통합당의 돈봉투 파문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아직 사실관계가 하나도 밝혀진 게 없다. 그런 상태에서 근거 없는 (사태) 확산은 안 된다. 또 이런 상태에서 검찰 수사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공천 개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전략공천을 최소화하고, 완전국민경선으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 어느 때보다 정치의식 높은 국민들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면 국민 눈높이와 시대 흐름에 맞는 경쟁력 있는 후보를 반드시 뽑아올릴 것이라고 본다. 확실하게 한나라당에 이길 후보를 만들어줄 것이다.”
-통합진보당과의 선거연대 원칙은?
“우리가 통합진보당과 대화할 때 가치 중심적인 정책연대를 기반으로 할 것이다. 우리가 진보적 가치를 많이 반영했다. 이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정책연대를 기반으로 (선거연대를) 추진하겠다. 중앙뿐 아니라 지역별로도 자체적으로 (연대 통한) 공천 이루는 것을 존중하겠다.”
- ‘친노 부활’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는 어떻게?
“친노, 반노, 비노 이런 구도는 언론에서 만든 분열적 레토릭이다. 한명숙은 친DJ(김대중)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불러서 정치권에 입문했고, 장관도 했다. 또 민주통합당 하는 모든 사람은 친노다. 여기 반노는 없다. 모두가 화학적 결합을 이미 이뤘다. 굴욕적이고 불평등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폐기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것이 이번에 출마한 후보 9명의 공통된 생각이다. 총선 승리하면 반드시 폐기하겠다.”
모바일 투표로 ‘선거혁명’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현장투표 장면.
모바일 투표로 ‘선거혁명’
정당 경선 사상 최대 선거인단… 모바일 47만여명
시민 선거인단 63만7천799명(81.1%), 당비납부 당원 12만7920명(16.3%), 당 대의원 2만1000명(2.7%).
15일 열린 민주통합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대회의 선거인단 구성이다. 전체 78만6000여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표의 가중치를 반영하지 않고 단순히 숫자로만 따진다면, 당원이 아닌 일반 시민 선거인단의 비율이 80%를 넘는다.
정치권에선 이번 경선의 흥행 성공의 ‘비결’로, 시민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모바일 투표를 도입했다는 점을 꼽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15일 투표 결과 집계를 발표하며 “이번 투표율은 정당의 지도부 선출이나 대통령 후보자 선출과 비교해 역대 가장 많은 선거인단이 투표에 참여한 것”이라며 “이는 모바일투표 도입이 가장 큰 공”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모바일투표와 현장투표로 나누어 신청을 받은 시민참여 선거인단 중 모바일투표 신청자 비율이 무려 88%에 달했다. 여기에 당비납부 당원들도 대거 모바일투표에 참여하면서 전체 시민·당원 선거인단 가운데 59만8124명(71.8%)이 모바일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모바일 투표를 신청한 이들 가운데 실제 투표에 참여한 이들은 80%(47만8385명)였다. 이에 견줘 시민 선거인단과 당원들의 또다른 투표 창구였던 현장 투표는 신청자 16만7595명 가운데 3만4829명(20.8%)이 참여하는 데 그쳤다.
이번 모바일 선거의 성공 배경에는 이른바 ‘엄지 혁명’으로 불릴 정도의 손쉬운 참여 보장이 큰 몫을 했다. 휴대전화로 한 번에 신청하고,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몇 번의 휴대전화 터치만으로 정당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젊은층들의 기호, 욕구와도 일치했다. 중장년층 위주의 당원에 의지하던 당 대표 선거가 일거에 젊은층의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실제 이번에 진행된 국민참여경선에는 40대 미만이 40대 이상보다 월등히 많이 참여하는 바람에, 1표의 반영 비중을 0.64(40대 미만) 대 1(40대 이상)로 보정하기도 했다. 과거 당 대회 때 40살 미만의 선거인단이 20%대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시민 선거인단의 급격한 증가로 경선 결과의 30%를 차지하는 대의원(2만1000명)의 1표 가치가 일반 시민 15.7배나 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당 대표를 뽑는 선거이기 때문에 대의원 표의 가치 상승을 부정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모바일 돌풍이 향후 정치지형에 낳을 파장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이번처럼 당권 선거가 아닌 총선과 대선처럼 공직선거의 경우 100% 국민참여경선으로 후보자를 선출하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모바일에 익숙한 20~40대 유권자들의 영향력이 점차 커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다만 대선 후보와 달리 총선 후보 선출의 경우엔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전국에서 각 지역구별로 한꺼번에 국민참여경선이 진행되면 주목도가 떨어져, 결국 투표인단을 많이 끌어모으기 위한 조직 선거가 되풀이될 가능성도 있다.
‘이명박 검찰’이 단련시킨‘철의 여인’
한명숙 대표는…
‘이명박 검찰’이 단련시킨‘철의 여인’
한명숙 대표는…
한명숙 대표는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여성부 장관을, 노무현 정부에서는 환경부 장관을 거쳐 첫 여성 총리를 지냈다. 하지만 그가 대중들에게 강한 이미지를 남긴 시기는 그 이후였다. 2009년 5월2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때 슬픔을 누르며 조사를 읽어내려가던 한명숙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한 대표도 ‘검찰의 희생양’이 될 뻔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그는 검찰 수사와 재판 와중에 선거를 치러 0.6%포인트 차로 패배했다. 검찰은 2009년 말부터 시작된 ‘5만달러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무죄가 나자 즉각 다른 정치자금 수사를 시작했다. ‘불법정치자금 9억원 사건’도 지난해 10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 대표는 경선기간 내내, 2년이 넘는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이명박 정권의 정치탄압을 뚫고 철의 여인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걸 강조했다. 검찰이 그를 단련시킨 일등공신인 셈이다. 그가 민주통합당 대표로 당선된 데엔 이런 부분에 대한 당원들의 미안한 마음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가 한달여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내세운 건, 유력한 대선주자이기도 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대립 구도였다. 그는 15일 현장연설에서 “한나라당 박근혜와 싸워 이길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한명숙이 독재와 싸우고 고문당하며 차디찬 감옥에 있을 때 박근혜는 청와대에 있었다. 한명숙이 99% 서민과 함께 가난과 싸울 때 박근혜는 1% 부자 증세에 반대했다”고 외쳤다.
민주통합당을 지지하는 시민과 대의원들이 그를 선택한 또다른 이유는 오랜 경륜과 경험에서 나오는 안정감이다. 총리까지 지낸 국정운영 경험, 민주당의 정통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태생은 시민사회단체라는 점, 정권교체로 나가는 데 필수적인 당내 통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는 점 등을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대표는 공직 경험에 비해 정당 생활, 당직 경험이 풍부하지 않다. 그럼에도 다른 최고위원들과 호흡을 맞춰 역대 최대의 경쟁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4월 총선 공천을 잡음 없이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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