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스타 싸이의 너스레

● COREA 2012. 9. 30. 20:08 Posted by SisaHan


‘강남 스타일’열풍이 지구촌에 신드롬 수준의 기세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일약 월드스타가 된싸이(박재상:35)가 귀국, 서울 강남 삼성동 라마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백여 국내외 취재진과 만났다. 싸이는“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싶어요. 짐 캐리 주연의‘트루먼 쇼’를 보는 기분입니다. 매일 매일이 몰래카메라 같아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기자들 앞에서 말춤을 추어 박수도 받았다.


‘강남 스타일’은 28일 공개되는 10월 첫 주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톱10 안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튜브에선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25일 현재 2억6700만건을 넘어서 이번 주 많이 본 동영상 1위를 달리고 있다. 동영상 추천을 받은 횟수도 260만건을 넘기며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1500자 칼럼] 가을비 내리던 날

● 칼럼 2012. 9. 24. 19:53 Posted by SisaHan
가을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봄비에는 생장의 희망이 있어 온화하지만 가을비에는 소멸을 앞둔 종식의 아쉬움이 있어 냉랭할 수밖에 없나 보다. 따끈한 기억으로 달래보라는 듯 오래된 기억의 실타래가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풀어진다. 
남편이 아파트 건설 현장에 근무할 때였다. 밤이 늦어서야 귀가하던 남편이지만 비 오는 날에는 작업이 없어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들에게 ‘비 오는 날’이란 일찍 퇴근하는 아빠와 ‘외식하는 날’과의 동의어가 되었고 내게는 저녁 준비에서 해방된다는 의미였다. 외식이래야 특별할 것도 없는 칼국수였지만 바지락칼국수, 사골칼국수, 버섯칼국수 등 여남은 종류 앞에서 한 가지만 택하는 일이 쉽지 않은지 어떤 국수집으로 갈까 하며 부자가 머리를 맞대고 쑥덕거리기 일쑤였다. 유난히 국수를 좋아하는 그들이 빚어낸 소박한 외식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되곤 했다.
 
칼국수 집의 맛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비결은 김치였다. 남편은 매콤한 겉절이를 좋아했다. 무엇이든 아빠를 따라 하고 싶어하던 아들은 매워서 헉헉거리면서도 물에 씻은 김치 조각을 늘 곁들여 먹었다. 나는 매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 김치의 빨간 색만 보아도 지레 겁이 나서 먹을 엄두를 못 내었는데, 눈치껏 물에 씻어 먹는 버릇이 그때부터 생겼다. 붉은 물이 대접에 남아있어도 어린 아들에게 미룰 수 있는 기회를 살짝 활용했다고나 할까. 
물에 씻은 김치는 비록 붉은색은 버렸지만 제 본래의 맛과 냄새는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하얀 배추조각을 입에 넣고 조용조용 씹다 보면 매캐한 붉은 맛과 원재료의 고유한 맛들이 섬세하게 살아나며 혀가 아렸다. 각 양념이 지녔던 독특한 맛을 찾아내는 일은 마치 내 안에 숨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할 때처럼 의외였다. 아린 혀는 뜨거운 국숫발을 번번이 밀쳐내어 거친 숨을 두어 번 들이쉰 후에야 몇 가닥씩 맛을 볼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백김치 생각이 간절했다. 
백김치는 색깔은 하얘도 들어갈 것은 다 들어간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았다 뿐이지 색이 하얗다고 해서 아무 맛도 없는 건 아니다.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의 웅숭깊은 속은 쉽게 드러나지 않듯이, 백김치 또한 찬찬히 음미할 때라야 단순한 흰색 너머에 감추어진 깊은 맛을 인지할 수 있다. 김치가 되기까지의 고단한 과정을 빠짐없이 기억하려는 듯 무와 마늘, 생강 맛은 물론 달착지근한 배와 대추와 밤 맛까지 고스란히 품어 안고 있다. 김치 양념 중에 제일 큰 몫을 차지하는 고추의 강한 영향을 받지 않아 오히려 소소한 맛들이 주눅들거나 개성을 잃지 않는다. 고추가 풍기는 매큼한 가을 햇볕 냄새는 없어도 백김치 역시 온 우주의 도움을 받았음을 담백한 고유의 맛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오묘한 맛을 상상하며 큰 맘 먹고 백김치를 담근 적이 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요란한 실패였다. 요리책을 펴놓고 수선을 떨며 머리로 담갔던 첫 백김치의 맛은 제 얼굴 색만큼이나 창백했다. 넣을 건 다 넣었는데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많은 재료들의 맛은 온데간데 없고 배추와 소금 맛밖에 나지 않아 그 후로는 백김치를 담글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나 짠 음식을 먹은 뒤에 찾아오는 갈증처럼, 한번 실패한 백김치로 인한 마음의 가뭄을 해갈시키지 못한 채 꿈으로 남았다. 
고국에서의 오래 묵은 기억들이 한바탕 휘젓고 가는 날은 비행기 몸체가 상공에서 기류변동을 만났을 때처럼 마구잡이로 흔들리다가도, 활주로에 안착할 때와 같은 안도감으로 마무리될 만큼 이국에서 살았다. 가을비로 연상된 칼국수, 그리고 혀를 따갑게 쏘던 김치에 대한 추억 덕분에 말린 나물처럼 바스락거리던 타국의 삶이 촉촉해진 느낌이다. 하얀 김치의 이미지에는, 그게 원래 백김치든 씻어서 하얗게 된 김치든 마모되지 않은 우리 식구의 빛나는 젊음과 사랑이 배어있다. 바람과 비가 한 차례씩 다녀가며, 잡다한 흔적과 지우지 못한 기억을 건드리는 가을이다.

< 김영수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 한국 문인협회 회원 >


이명박 대통령이 불을 질렀다. 화끈하다. 국민 대다수가 ‘속 시원하다’고 환호한다. 하지만 후과는 크다. ‘역대 대통령 중 최초 독도 방문-일본의 국제 영향력 저하 발언-일왕 사과 요구 발언’의 3종으로 이뤄진 대일 강공 세트가 한-일 관계에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이 대통령의 의도와 관계없이 한-일 관계의 재구성은 불가피해졌다. 갈등을 빚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얼렁뚱땅 복원되곤 했던 그런 시대는 갔다. 미국의 전후 냉전전략 아래 불완전한 과거청산과 경제지원의 교환 형태로 성립한 1965년 한-일 협정 체제가 수명을 다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결정타를 날리긴 했지만, 한-일 관계 1.0판인 65년 체제에 근본 의문을 제기하는 움직임은 사법부에서 먼저 시작됐다.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질타하는 2011년 8월 헌법재판소의 부작위 판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5월의 대법원 판결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사법부가 이런 판결을 내놨다는 건 65년 체제를 뒤엎으려는 시민사회의 힘을 국가가 더는 외면·무시·억제할 수 없다는 걸 뜻한다. 한마디로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한-일 국력이 100 대 1이던 시절에 맺은 협정을 5 대 1로 좁혀진 시대가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국력 차의 축소와 함께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의 성장도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는 강력한 힘이다. 일본 쪽이 성노예 해결책으로 ‘총리 사과 편지-재정지출을 통한 위로금 지급-주한대사의 피해자 방문 사과’라는 나름의 전향적인 안을 제시했지만 피해자들은 ‘국가 책임’을 요구하며 한사코 거부했다. 금전·인도·정치라는 실리보다 법과 인권이라는 명분이 우선이란 얘기다.

이 대통령의 ‘거사’ 이후 일본 쪽 움직임도 65년 체제를 단순 복원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일본 여야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배려외교의 중단’은 앞으론 과거에 대한 부채의식에 구애받지 않고 상대하겠다는 선언이다. 한-일 협정 이후 처음으로 꺼내든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53년 이승만 라인 선포 이후 처음 채택된 한국 비난 의회 결의안은 그런 행동의 첫걸음이다. 더욱이 성노예의 국가 관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조차 수정해야 한다는 정치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실정을 고려하면, 앞으로 일본의 역주행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태껏 한-일 관계를 규정해온 65년 체제를 대신할 새 체제를 건설하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다. 해병대의 독도 상륙훈련 중단과 이 대통령의 일왕 사과 요구 발언 해명과 같은 미봉책과, 물밑 막후 창구 가동을 통한 관계 복원 같은 전통 수법으로는 막을 수 없는 큰 변화가 이미 발밑에 닥쳐왔다. 영토 문제에서 정면대응을 불사하는 중국의 달라진 태도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일본이 더는 ‘접바둑’을 둬 주지 않겠다고 나온 마당에 우리가 과거의 편의적 관계로 돌아가자고 매달릴 필요는 없다. 새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새 틀을 짜자고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특히, 65년 협정에서 배제한 성노예,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 책임을 적극 제기해야 한다. 당시 미국의 압박, 국력의 차이와 내부 사정으로 꼼꼼히 챙기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재론에 부쳐야 한다.

다음 대통령은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각오로 대일정책 2.0을 들고나와야 한다. 그래야 할 말은 하되 협력할 건 하는 진정한 우호관계가 열린다.

< 오태규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