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신교회 늘푸른 시니어대학 참가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동신교회 늘푸른 시니어대학, 다채 프로그램 인기

캐나다 동신교회(담임 박태겸 목사) 늘푸른 시니어대학 제9기 2014 봄학기가 지난 4월1일 예년보다 훨씬 많은 어르신들이 참여한 가운데 개강,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오는 6월3일까지 매주 화요일 9시45분부터 오후 2시15분까지 강의하는 이번 학기에는 콜라주, 수지침, 화분만들기, 커뮤니티 케어 이용법, 찰흙빚기, 레크레이션 등의 특강과 노래교실, 라인댄스, 유클렐리 기타, 컴퓨터 및 태블릿PC, 성경필사반 등의 선택수업 외에 볼링데이, 어버이날, 소풍 등의 특별행사로 알차게 짜여져 참여도가 높다. 특히 옥빌과 벌링턴 지역의 한국 커뮤니티에서 다소 떨어져 사는 어르신들에게 소셜 네트워크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많은 이들이 참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프로그램 중에는 컴퓨터와 태블릿 반의 인기가 높았고, 유클렐리 기타반도 새롭게 관심을 모았다.
 
노년학생들은 풍성하고 맛있는 식사와 함께 친구들과 유익하고 흥겨운 시간을 보내며 매주 뒷바라지에 정성을 쏟고있는 동신교회 늘푸른 시니어대학에 모두 큰 감사를 전했다.
 
< 문의: 905-607-7610, 647-280-9119 >


하나님 변화의 신비를 열망하라

● 교회소식 2014. 4. 21. 18:47 Posted by SisaHan

디모데 장로교회 「행복축제」
김인기 목사 말씀전해

디모데 장로교회(담임 김인기 목사)가 마련한 전도집회 ‘행복축제(Pursuit of Happiness)’에서 직접 강사로 나서 말씀을 전한 김인기 목사는 사흘간의 집회를 구약 예레미야(33:3)의 성구로 마무리, 성도들에게 도전을 주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4월11일부터 13일 주일까지 사흘간 저녁시간에‘변화(Change)를 주제로 열린 4회째 행복축제는 올해도 성도들에게 은혜를 전하고 많은 불신자가 결신하는 열매가 열렸다.
김인기 목사는 성경은 물론 철학자와 철학서를 다수 인용하는 등 폭넓고 깊이있는 성찰의 말씀을 통해 행복한 삶을 위한 변화의 의미와 과정, 방법론을 제시했다.
 
김 목사는 “사람들이 변화를 싫어하고, 하려고도, 준비도 하지 않지만,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모두 변한다”고 지적, “변화는, 당하면 원망하고 부정적이며 무책임 하지만 어차피 해야하는 변화라면 직접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현명하다”며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화두를 꺼냈다.
김 목사는 “진정한 변화는 겉이 아닌 매일의 삶과 생각,패턴이 바뀌어야 하며, ‘새 피조물, 새 것이 되었다’는 성결말씀처럼 속사람이 바뀌는 것이 기독교의 변화”라고 강조,”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변화를 믿는 것으로, 예수님도 바울도 믿고 변한 것같이 우리도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변화되고 새로워 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나 중심의 삶에서 나를 드려 남을 위하고 베푸는 삶이 진정한 변화”라고 규정한 김 목사는 “영적 행복은 주면 줄수록 행복이 커지며, 남에게 행복을 나눠줌으로써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바로 행복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이어 변화를 위해서는 간절히 부르짖음, 즉 갈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갈망이 비전이고 소망이며, 갈망하면 상상 못할 변화가 반드시 일어난다”고 전한 김 목사는 특히 “변하지 않으면 이제 죽는다는, 막다른 골목에서 몸부림의 갈망은 두렵고 힘들고 때론 너무 늦지만, 신앙적인 변화는 기쁘고 즐거운 것인 만큼 하나님이 좋아서 매일 바뀌고 새로워지기를 추구하는 영적 갈망을 키우라”고 말씀을 주었다. 김 목사는 “변화는 갈망에 대해 하나님이 적절한 때에 응답하셔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신비”라면서 “매사에 때(Tipping Point)가 있듯, 열심히 갈망하되 초초해 하지말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으면서 변화의 씨앗을 심으면, 욕심과 이기와 의심과 분노에서 섬김과 희생과 믿음과 용기의 한 단계 높은 인생의 신비가 열릴 것”이라고 성도들에게 거듭 도전을 주었다.
 
< 문의: 416-626-6282 >


Malcolm Gladwell는 ‘Outliers’에서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건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합니다. Stephen R. Covey는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습관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습관을 따라하면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Times지에서는 최근 더 빠르게 성공하는 새로운 법칙을 내 놓았습니다. 책상보다 현장에 더 오래 머물러라, 뇌를 위해 낮잠을 자라, 노트를 활용하라... 굳이 1만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법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성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솔깃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적게 노력하고, 적은 시간을 들여서 남들이 말하는 성공을 쟁취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왜 사람들은 성공하고 싶어 할까요? 왜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걸까요?
 
아마 그 성공 속에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 부와 명예, 권력, 여가시간 등이 다 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은 힘들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이 시간들을 잘 참고 견디면 그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성공을 향한 치열한 경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성공 속에 우리가 기대하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것일까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은 우리의 일생을 걸만큼 의미 있고, 가치있는 것일까요? 
우리 주님의 걸으신 길은 성공을 위한 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걸으신 길은 성공과는 정 반대의 길입니다. 하늘 영광 버리고 이 땅에 오시는 ‘성육신’의 사건이나, 자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나누어주시는 ‘성찬’의 사건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그 절정입니다. 그것은 성공을 위한 걸음이 아니라, 열매를 위한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성공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영광스러운 하늘에서 시작하신 주님이 이 땅에서 마지막 서신 자리는 사람들이 실패라고 부르는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좁고 협착한 길’인 그 길을, ‘남들이 가려고 하지 않는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보다 한 계단 더 높이 오를 때마다 복 받았다고 기뻐하는 우리들에게, 한 계단씩 내려서도록 요청하시는 주님의 명령은 그래서 우리들에게 부담스럽고, 불편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이 원하시는 삶은 성공의 삶이 아니라, 열매 맺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누리게 되는 성공하는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받기는 하지만, 결국 그 혜택은 소수만이 누립니다. 하지만 주님이 말씀하시는 열매 맺는 삶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삶이며, 그 삶의 혜택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쳐지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주변의 모든 이들을 배부르게 하고, 기쁘게 만들고, 힘을 주고, 위로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매가 아름다운 이유는 각각의 열매 속에 또 다른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은 노력과 자기 관리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열매는 자기 죽임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생명을 만드는 일이기에 가장 가치있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신 것은 그가 그 시대에서 최고의 자리에 이르는 성공하신 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죄없으시면서 스스로를 죽이시는 밀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2014년 고난주간을 통해 부활주일로 나아가는 우리들을 성공의 삶이 아닌, 열매 맺는 삶의 본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그 자리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나라에는, 교회에는 성공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죽여 열매 맺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 장성환 목사 - 런던 한인교회 담임목사 >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은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한 것이다(행4:28).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범죄자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으리라”(사53:12)고 예언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행악자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서 처형되시다니 이 얼마나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히시도록 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목적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결코 계획없이 아무렇게나 행하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하에 주님은 마땅히 우리가 당해야 할 일 등, 곧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상의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당하셨다. 즉 비인간적인 범죄자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으시고 우리의 대속자가 되시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인간의 죄값을 치를만한 이가 아무도 없기에 독생자를 친히 대속제물로 만드셨다.
 
또한 최초 인간 아담의 죄성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죄의 담으로 막혀 있었으나 독생자로 하여금 친히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리게 만드셨다. 따라서 독생자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해 대속제물로, 화목제물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면서 모든 인간의 죄를 내가 도맡았으니 나를 형벌하시고 모든 인간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는 중보 기도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이를 받아들여 예수님의 피는 생명이기에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리며 죽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된 것이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고 사함이 없은즉 구원이 없는 것이다.
 
독생자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용서받고 구원 받은 백성이 되었다.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롬4:8). 따라서 이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상대하시며 완전히 영원한 죄 사함을 받게 하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이다(롬8:1).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할 것이며 누가 능히 정죄할 수 있겠는가(롬8:33-34).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이후로 지은 죄들에 대하여는 회개하기만 하면 징계로 죄의 대가는 반드시 받지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용서가 취소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또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그의 뜻대로 살면서 영광을 드려야만 할 것을 알고도 고의적으로 그를 배반하면 즉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불만이 있으리라 (히10:26-27) 하는 사실을 정확히 깨닫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으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독생자를 대신 죽게 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구원하시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독생자 예수님은 본디 한 점의 죄도 없고 거짓이 없는 거룩하시므로 부활 승천케 하셔서 함께 계시다. 따라서 모든 인간들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대속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큰 뜻을 믿기만 하면 거저 주시는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기 때문이다.
끝으로 인간들이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이를 역사하고 계심을 인정하지도 않고 또한 예수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면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돌아가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불신하고 구세주로 계속 거부할 것인가 깊이 묵상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구원받는 길이요 오직 십자가의 길인 진리를 불신하거나 간과해서는 안된다. 불신의 죄가 모든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로써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 이승고 - 토론토 영락교회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