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동개혁, 오바마 정책에서 배우라

● 칼럼 2015. 9. 18. 18:1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노조운동이 없는 곳에서는 가혹한 착취가 일어나고 노동자들이 보호받지 못한다.” 노조 지도자의 주장처럼 들릴지 모르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7일 연설에서 “내 가족을 위한 복지안전망을 책임지는 좋은 일자리를 찾는다면 노조에 가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노조 때리기’에 혈안이 된 우리 사회의 현실과 너무도 대비되는 모습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노동개혁 의지는 행동으로 거듭 증명되고 있다. 8월27일 미국 노동관계위원회는 프랜차이즈 가맹점 또는 하청업체 종업원들이 본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다. 뉴욕뿐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올해 초 오바마 대통령이 “1년에 1만5천달러 미만으로 벌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가서 직접 해보라”며 불을 댕긴 게 촉매제가 됐다.
눈길을 우리 사회로 돌리면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정한 ‘합의 시한’을 들먹이며 애초 입맛대로 밀어붙였다. 사회적 대화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한 행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노조가 쇠파이프만 휘두르지 않았다면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었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폈다. 여당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힌다는 인사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비뚤어진 인식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행보에 눈길이 쏠리는 건 ‘반성’과 ‘전환’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말 “경제적 불평등이야말로 (미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라며, 점차 심해지는 불평등을 방치했다간 사회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음을 인정했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역시 결코 미국에 못지않다. 그럼에도 지금 정부·여당의 행태는 반성과 전환은커녕, 도리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켜 사회 안정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너무 크다.
박근혜 정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스스로 한 약속만 지키면 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공약집에서 ‘해고요건 강화’, ‘일방적인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방지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 설립’ 등을 국민 앞에 약속했다. 2822일 동안 천막농성을 해야 겨우 노동자로 인정받는 특수고용노동자가 300만명을 웃돌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조차 무시하는 대기업이 존재하는 게 이 땅의 슬픈 현실이다.



[기고] 남북관계, 착각과 착시

● 칼럼 2015. 9. 18. 18:1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남북관계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면 지난 3년을 돌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치 연속극의 재방송처럼 반복될 뿐이다. 주연은 북한이고 조연은 남한이다. 위기를 고조시킨 것도 북한이고 대화를 먼저 제안하고 합의를 주도한 것도 북한이다. 2013년 3월 전쟁 위기가 조성되고 개성공단의 문을 닫았다가 겨우 수습된 6개월의 과정도, 2014년 2월의 고위급 회담도 최근의 남북 합의도 아주 많이 닮았다.


북한은 위기에서 대화국면으로 전환할 때 언제나 남쪽이 거부할 수 없는 카드를 내민다. 바로 이산가족 상봉이다. 2014년 2월과 2015년 8월을 비교해보면 전망이 보인다. 북한의 입장에서 이산가족 상봉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큰 그림이 없으니 회담 전략이 없고, 북한의 무릎을 꿇리는 것이 ‘원칙’이라고 주장하나, 무릎을 꿇려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잃을 것이 많은 우리가 약자의 무기인 벼랑 끝 전술을 마다하지 않는 현실도 낯설다.

대화국면은 북한이 원하는 만큼만 지속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에서, 혹은 10월 미국에 가서 흡수통일 발언을 계속해도 북한은 참을 필요가 있으면 참는다. 정세를 관리할 필요성이 있고, 현재 그들에게는 남한 카드 말고는 없다. 미국 카드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완전히 끝났고, 중국도 일본 카드도 소강상태다.


물론 정세는 살아있는 생물이고, 언제든지 변화한다. 잃을 것이 없는 북한은 손쉽게 벼랑 끝 전술로 돌아설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대화국면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기에 전술적으로 얼마든지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 작전통제권이 없는 한국군의 군사적 대응이 제한적이고 미국은 전쟁을 원하지 않기에, 북한은 위기가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잘 안다.
교착-위기-대화-불신-교착-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남북 합의는 북한이 8.24, 남한이 8.25 합의라고 날짜를 달리 말할 정도로 합의 수준이 미흡하고 이행 전망이 불투명하다. 남북관계의 역사에서 날짜가 다른 합의문은 처음 봤다. 이산가족이 만나기 위해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북한이 아니라 우리가 주연이 될 때,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전망은 비관적이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가 아니라 국내정치로 접근하고, 회담 운영 체계의 문제 때문이다. 유순한 언론과 비루한 야당 때문에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1951년 7월 휴전협상이 처음 열린 적진인 개성에서도 기자들이 취재를 했다. 1971년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남북대화를 할 때도 언론이 함께했다. 그런데 광복 70년을 맞이한 오늘날, 회담이 열리는 곳에 언론이 접근조차 못하는 현실은 부끄럽다. 며칠 동안 밤을 새워도 회담 전개 과정을 설명하지 않는 정부도 처음 봤다. 언론은 정부가 어떻게 회담 전략을 세우고 어떻게 회담을 운영했는지, 회담 전후의 대차대조표를 알릴 의무가 있다.


야당은 어떤가? 대북정책에서 초당적 협력이란 올바른 방향에 대한 합의를 추구하는 것이지, 쇼를 하는 데 들러리를 서라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언론을 통제하고 언론은 착시를 유도하는데, 야당은 그렇게 만들어진 여론에 올라타서 ‘중도’니 ‘보수’니 착각에 빠져 있다. 여론은 점점 더 타락하고, 야당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라간다. 선거가 다가오는데, 정부와 여당이 이 꽃놀이패를 마다하겠는가? 착시 너머의 세계는 각자 제 갈 길을 가는데, 비루함을 배경으로 착각의 모래성이 쌓여간다. 한반도는 길을 잃었고 이렇게 세월은 흘러간다.
< 김연철 -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 >



[한마당] 공인의 염치

● 칼럼 2015. 9. 12. 12:5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염치’(廉恥)란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이라고 국어사전이 정의한다. 한자의 뜻으로는 청렴(淸廉)하고 수치(羞恥)를 아는 마음이다. 따라서 파렴치(破廉恥), 혹은 몰염치(沒廉恥), 후안무치(厚顔無恥)등은 모두 그 반대의 뜻으로 잘못을 범하고도 도무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요사이 공인들, 특히 정치와 정치인들의 처신을 보면서 그 ‘염치’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한다. 정치란 원래 ‘염치 좋은’ 사람들의 영역이라고는 말하지만, 그래도 수준이나 양심은 가려야 할 텐데‥ 참 염치없는 인물, 염치없는 짓거리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런저런 몰염치 혹은 파렴치의 사례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선거 때 호언장담하던 공약들을 당선 되자마자 내팽개치는 것부터, 온갖 이권개입과 부정청탁, 품위와는 거리가 먼 구설수들, 심지어 성범죄에, 역사부정과 이념몰이, 나아가 오리발을 내밀고 억지와 변명으로 호도하는 안면 몰수까지, 국민은 안중에 없이 오직 이기(利己)와 권력추종 뿐이다.

가령 국토를 망가뜨리고 극심한 오염까지 초래한 4대강 사업을 여전히 잘했다고 주장하는 낯두꺼운 인물들, 자원외교랍시고 국가재정을 자기네 쌈짓돈처럼 헛뿌린 망나니들이 지금도 건재해 ‘염치도 없이’의 분통을 자아낸다.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라는 엄연한 불법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큰소리 치고 덮어씌우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는 딴청을 부리는 철면피, 국정원 댓글공작을 얼버무리고 되레 국가안보를 위해 한 일이라고 둘러대는 뻔뻔함, 당시 일선 경찰의 수사를 방해한 혐의가 짙은 전 경찰청장이 무죄를 선고받았다며 국회의원 출마 운운 나대는 반면, 수사의 정도를 걸으려던 하급 지휘자를 모해니 무고라며 법정에 세우는 희한한 반전 드라마도 참 ‘염치없는’ 목불인견의 모양새 들이다.


그런 몰염치의 반복이 장관이나 고위 권력수장들의 부도덕하고 후패한 흠결들을 오히려 필수품처럼 만들어 나라의 수준과 공직자들의 인품관·가치관을 오도하고 추락시킨 ‘불감증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그러더니 엊그제는 선거 주무장관이 “여당 필승”을 외치고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버티는 당돌함을 보이기에 이른다. 정상대화록을 유세 공개하고선 ‘찌라시’에서 봤다고 둘러댔던 그 당의 대표라는 이는 “‘승리’라고는 했어도 ‘당 이름’은 말 안했다”고 다시 코미디 같은 해명을 내놔 후안무치 그룹 불변의 본성을 강조해 주었다.

아무리 정치인들이 빈말과 궤변을 입에 달고 산다고들 하되, 최소한의 ‘염치와 체통’은 지키고 보인 다음에야 소위 ‘국격’을 논하는 게 합당하지 않겠는가.


역사에서 염치의 원조를 찾으면 엿 중국 초나라 항우의 고사가 거론된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항우본기’에는 유방과 천하를 다툰 걸출한 인물인 항우의 최후를 그린 대목이 나온다. 항우는 한때 유방의 목숨을 손에 쥐기도 했으나, 악행으로 민심을 잃은 데다 지나친 자만심 때문에 처지가 역전돼 한나라 유방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전쟁 막바지 잇단 패퇴로 군사를 다 잃고 쫓기던 그가 겨우 20여 기병과 함께 오강에 다다랐을 때였다.
오강의 정장이 배를 강나루에 대고 기다리다가 항우에게 권했다. “강동이 비록 작으나 땅이 사방 천 리요, 백성이 수십만 명에 이르니 그곳 또한 족히 왕업을 이룰만한 곳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빨리 건너십시오. 지금 저에게만 배가 있으니 한나라 군사가 이곳으로 온다 해도 강을 건너지는 못 할 것입니다.”


어쩌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호기였으나, 항우는 고개를 저으며 “이미 강동의 젊은이 8천 명과 함께 전쟁에 나가 그들 모두를 잃었는데 강동의 그들 부모형제들을 무슨 면목(염치)으로 대하겠는가”라고 사양한다. 이어 “설사 그들이 책하지 않는다 해도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위인다운 면모를 되살린다. 그리고 그는 충직한 정장에게 “내 차마 이 말을 죽일 수 없어 후덕한 그대에게 주겠노라.”라며 자신의 천리마를 건네주고, 적장 가운데 자신의 부하였던 인물이 보이자 ”유방이 나에게 천금을 걸었다니 내 그대에게 은혜를 베풀리라“라며 머리를 거둬가도록 하고는 자결,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항우는 원래 항복해 온 진나라 군사 20만명을 생매장하고 진의 황제 자영과 초나라 회왕을 죽이는 등 잔학했으며 충언과 지략으로 보필하던 책사 범증을 내치는 등 오만한 무장이었다. 그런데 생을 마감하는 죽음 앞에서 그는 비로소 면목(面目)을 토로한다. 면목은 글자 그대로 ‘낯짝과 눈’ 즉 얼굴의 생김새를 뜻하니, ‘면목이 없다’는 말은 스스로 얼굴 들기에 민망하여 잘못을 뉘우치는 양심과 회심(悔心·回心)의 모습인 것이다.
염치와 면목은 체통 혹은 체면, 나아가 예의나 명분과도 통하는 말이다. 정치인에게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명분일진대, 염치나 명분이 없는 정치와 정치인들이 횡행한다면 나라 꼴도, 수준도 당연 한심스러울 밖에 없다.


다시 중국의 고전을 인용한다.
친구간의 깊은 우정을 비유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자(管子)의 목민(牧民)편에는 나라를 버티게 하는 네 가지 덕목이 나온다. ‘예 의 염 치’(禮義廉恥)가 바로 그것으로, ‘사유(四維)’라고도 했다.

그런데 사유중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게 되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며, 셋이 없으면 뒤집어지고, 모두 없으면 파멸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곧 ‘예의염치’는 나라를 존재케 하는 매우 중요한 기본 덕목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파렴치’가 판을 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말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나 공직자, 공인들은 최소한의 염치는 간직하고 봉직해야 한다는 엄중한 가르침이다.


< 김종천 편집인 >



[1500자 칼럼] 소나기

● 칼럼 2015. 8. 28. 13:0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오늘 아침 신문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끈다. <지구촌, ‘보트 피플’로 몸살>, 이 기사 제목은 오래 전에 잊혀진 무덥던 여름 한 자락으로 나를 이끈다. 돌이켜보니 겁이 없었던 젊은 날에 남긴 에피소드의 하나이지 싶다.
 
그날 우리는 피서 겸 지인을 만날 계획을 했었다. 개학을 앞둔 내 아이들과 가까운 친구 가족이 함께 어울려 심코 호수 쪽으로 향했다.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지인의 가게는 휴가철인만큼 정신 없이 바빴다. 먼 길을 달려왔지만 우리를 위해 그의 생업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대신 모터 보트를 빌려 시원한 뱃놀이에 나섰다.
호수 물빛을 닮은 푸른 하늘은 티 없이 맑은 얼굴이었다. 힘차게 밀려왔다 하얗게 부서지는 짙푸른 파도는 무더위에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줬다. 온갖 걱정과 근심이 물거품과 함께 저절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호숫가에 즐비한 커티지들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요정의 집처럼 신비로웠다.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들 넷은 오랜만에 보트를 탄 즐거움으로 신바람이 나서 재잘거렸다. 문득 잠시 올려다 본 하늘빛이 전과 같지 않은 느낌이었고, 그 위로 간간이 회색 구름이 몰려들고 있는 듯도 하였다. 그러나 마냥 즐거웠던 우리는 무작정 호수 한가운데를 향하여 계속 모터 보트의 속력을 냈다.


어쩌다 보니 호수 위에 나뭇잎 하나가 떠있듯 우리의 보트가 호수 중앙에 오롯이 떠있는 게 아닌가. 와락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다. 호숫가에서 바라볼 때보다 그 크기가 엄청나게 컸던 것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우리 인간은 지극히 미약한 존재임을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 시나브로 주위가 어두워지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졌다. 뱃놀이에 팔린 우리는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아차 하는 순간에 소나기가 세차게 퍼붓기 시작했다. 사전에 아무 준비없이 무작정 보트를 탔던 우리는 몹시 당황했다. 수영도 못하는 어른들과 구명 조끼조차 입지 않은 아이들로 안전수칙 제로였으니 말이다. 별 수 없이 최대한 빠른 속도로 호숫가로 돌아나가야 했다. 허나 세찬 빗줄기로 인해 속도가 붙지 않았다. 짧은 여름 옷차림의 아이들은 추위에 웅크린 채 겁에 질려 떨고만 있었다. 무엇보다도 시간을 오래 끌수록 보트 안으로 물이 차올라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놀란 두 가장(家長)은 필사적으로 보트를 운전하고, 나는 아이들이 동요하지 않게 보살폈다. 얼마 후, 그렇게 멀어 보이기만 하던 호숫가의 커티지 근처로 무사히 접근할 수 있었다.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노부부가 손짓을 했다. 막상 보트를 어디에 대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우리에게 자기집 보트가 매어 있는 덕(dock)으로 오라는 표시였다. 갈수록 더욱 거세진 빗줄기에 온 몸을 적시며 겨우 보트를 안전하게 정착시켰을 때는 모두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흠뻑 젖은 우리를 집안으로 끌어들이며 마른 수건을 건네준 친절한 노부부는 구식 스토브에 물을 끓였다. 아이들에게는 핫 초컬릿을, 어른들에게는 향이 은은한 커피를 대접했다. 어느 정도 긴장과 추위에서 벗어난 우리에게 그들은 상냥하게 물었다.
“당신들은 어디에서 왔나요?”
“우리는 토론토에서 왔습니다. 잠시 이곳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보트를 빌려 탔지요. ” 그 대답을 들은 노부부는 활짝 웃었다.
“우리는 당신들을 ‘보트 피플’로 생각했어요.” 하는 게 아닌가.
당시는 베트남 전으로 발생한 ‘보트 피플’이 세계적 이슈가 되었던 때이니 당연한 상상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날 우리들의 비에 젖은 몰골이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노 부부의 집을 나서니 어느 새 강한 햇살이 뜨겁게 내려 쬐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온 세상이 소나기 퍼붓기 전 그대로였다. 그토록 풍랑이 일고 파도가 치던 호수도 잔잔하기 그지 없었다. 인생 여정에서 맞닥뜨리는 삶의 소나기도 그렇게 후딱 지나가 버리고 만다. 갑작스레 만날 땐 버겁고 괴로워 죽을 것만 같다가도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님을 깨닫게 된다. 비록 작은 상처와 흔적을 남긴다 해도 돌아보면 한결 영롱한 빛으로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성장의 기회였지 싶다.
그 여름의 억센 소나기가 홀연히 떠오른 날이다.

< 원옥재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