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영혼을 훔친 글쟁이

● 칼럼 2015. 6. 26. 15:48 Posted by SisaHan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신경숙 씨가 표절논란에 휩싸였다. 일본의 극우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지적이 나오더니, 흡사 고구마 줄기를 뽑아올리는 것처럼 수많은 표절 사례들이 ‘치맛자락 걷어 올려지듯’ 민망하게 들춰지고 있다. 일주일 만에 시인과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영 입맛이 개운치가 않다. 한국문단의 체면을 구긴데다. 수많은 그의 독자들 자존심과 순수한 문학정서에 큰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몇몇 출판사가 인기작가를 에워싸고 돈과 권력을 누리며 표절논란을 뭉개왔다는 치부까지 드러났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한국 사람들은 여러 부문의 스트레스와 자괴감에 안절부절인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와 뒤이은 메르스 사태, 그 전후로 쉴 새 없이 터지고 운위되는 스캔들과 무책임과 퇴행의 현상들에 피로감이 치솟은 상태다. 먹고살기 힘들고 취업난이 극에 달한 경제나 나아지면 좋으련만, 호전의 기미가 도무지 안보인다고 한숨들이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후퇴와 독재적 리더쉽 부활, 안보불안, 인권 경시 등 정치적·사회적 후진성이 국민을 지치게 만들고 해외에서도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마당에, 문화 영역까지도 국제사회의 웃음거리를 제공했으니,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맥상이 아닐 수 없다. 이젠 어디서 또 한국의 민낯을 드러낼지 두려울 정도다. 부끄럽고 슬프긴 하지만 어쩌면 이 시대와 사람들과 권력이, 그 의도와는 달리 그동안의 한국적인 허상과 거품을 들추고 걷어내는 자학적이고도 역설적인 전환기를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로소 솔직·정직한 자화상을 드러내고 인식할 반면교사로 말이다.


신경숙이 표절했다는 ‘우국’은 어떤 작품이며, 미시마 유키오는 어떤 인물인가. ‘우국’(憂國)은 일본 군국주의 극우 천황파 청년장교들의 쿠데타인 1936년 2.26사건을 소재로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할복자살을 감행하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이다.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노벨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후배이며 화려한 문체의 탐미적 작품들로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린 작가이긴 하지만, 그 역시 극우 군국주의자였다.
필자의 졸저 ‘일본의 망령, 우익-그 뿌리와 번식’(1997)을 보면 297~301페이지에 미시마 유키오의 사상과 충격적인 할복사건 전말이 상세히 나온다. 1970년 11월25일 도쿄의 육상자위대 동부방면 총감부 건물에 자신이 조직한 ‘방패회’(楯の會) 회원 5명과 함께 난입해 총감을 결박하고 위협해 자위대원들을 연병장에 집합시킨다. 그리고 천황 친정체제 복귀를 위해 자위대가 총궐기하자고 피를 토하듯 연설하다 반응이 없자 돌연 일본도를 꺼내 배를 갈랐다. 그는 국가주의와 천황사상에 함몰되어 허상을 좇은 이른바 ‘예술우익’이었다.


아무리 그의 문체가 아름답기로서니, 식민의 원흉인 군국주의에 물든 일본작가의 문장을 훔쳐서 한국 대표작가의 명성을 쌓았다는 것을 어찌 봐야할까. 요사이 군국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아베 정권의 득세와 교만의 눈에 한국과 한국의 문학은 과연 어떤 모양으로 비칠까.
 『글에도 마음씨가 있습니다/ 고운 글은 고운 마음씨에서 나옵니다/ 고운 마음으로 글을 쓰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고운 마음이 그대로 옮겨 가서/ 읽는 사람도 고운 마음이 되고~
글에도 얼굴이 있습니다/ 예쁜 글은 웃는 얼굴에서 나옵니다/ 즐거운 얼굴로 글을 쓰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정겨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읽는 사람도 웃는 얼굴이 되고…』
오광수 시인은 ‘글에도 마음씨가 있습니다’라고 썼다.


글에 어디 마음씨 뿐인가. 글에는 사상과 철학과 삶이 녹아 들어있다. 쓰는 손은 한낱 도구일 뿐, 글은 온 몸으로, 영혼으로 쓰는 것이다. 글은 남이 읽으라고 쓰는 것이다. 자기만 읽겠다고 쓰는 일기조차 사실은 남겨서 남에게 보이겠다는 욕망이 숨어있기도 하다. 일기를 책으로 펴낸 이들도 많찮은가. 그렇게 글은 남의 생각과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준다. 기자들의 글이 때론 세상을 바꾸듯이, 작가들의 글은 수많은 독자들의 삶과 영혼에 빛과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래서 글쓰기가 어렵고 두렵고…쓸 때마다 떨리는 것이다.
틀림없이 명문·명작을 만들겠다는 욕구와 강박감이 커질수록 베끼기와 짜깁기 유혹 또한 강하게 밀려들게 마련이다. 그 치명적인 유혹을 떨쳐내느라, 글쟁이들의 머리가 쇠고 유명작가들이 영육(靈肉)의 진을 쏟아내는 것이리라. 표절은 그런 원작자의 마음과 영혼을 훔치는 도적행위에 다름 아니다. 비단 문학작품이나 보도용 글 뿐만이 아니다. 온갖 논문을 표절하는 교단과 학술계의 몰양심적 행태들도 뿌리 뽑아야 할 적폐다.


< 김종천 편집인 >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23일 서울 종로구에서 문을 열었다. 북한 인권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한 유엔 차원의 첫 현장사무소다. 예상대로 북한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북한 인권 증진이라는 목표를 이루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북한 당국은 최근 ‘북한인권사무소가 서울에 끝끝내 설치된다면 공공연한 대결 선포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징벌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북한은 또 사무소 개설 등을 이유로 새달 열리는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해왔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국제사회와의 골을 더 깊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1년 동안의 조사를 토대로 북한에서 반인도적 범죄가 자행된다는 보고서를 냈으며, 이번 사무소 설치는 그 후속 조처 가운데 하나다.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다. 북한은 자신의 인권 문제를 부인할수록 국제사회의 압력이 더 커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또한 중요하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식이어서는 갈등의 가능성만 키우고 실제 북한 주민의 인권은 더 나빠질 수 있다. 북한 당국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권 대화’의 틀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인권 문제 제기가 체제에 대한 공격은 아니라는 점을 북한 권력층에 확신시켜야 한다. 북한 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인권 문제도 풀리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적잖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여러 사례를 보더라도 체제 문제를 앞세워서는 인권 문제에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남북관계에서도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북한은 인권사무소를 눈엣가시처럼여길 것이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나쁜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그럴수록 남북관계를 잘 풀어야 할 당위성이 커진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가장 실효성 있는 접근법은 남북 교류·협력을 활성화해 양쪽 당국이 함께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곧 남북관계와 북한 인권 문제 개선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 이는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핵·미사일 등 안보·정치 문제를 풀기 위한 기반을 강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북한 인권 문제는 양날의 칼이다. 남북관계가 좋으면 북한 주민의 실질적인 인권 증진으로 이어지고, 남북관계가 나쁘면 새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북한인권사무소 활동보다 중요한 것은 꽉 막힌 남북관계를 푸는 일이다.



작가 신경숙의 표절 문제가 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신경숙과 출판사 창비는 애초의 완고한 태도를 바꿔 표절 가능성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23일에는 작가단체와 문화운동 단체가 중심이 되어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작가의 창작윤리와 이른바 문학권력의 전횡을 포함해 오늘의 사태를 초래한 문제점들을 문학계는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신경숙은 23일 회견에서, 거론된 일본 소설과 자신의 작품 문장을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인정했다. “문학상 심사위원을 비롯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도 했다. 표절 경위를 기억하지 못하겠다고는 했으나 표절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철저한 반성을 통해 더욱 훌륭한 작가로 거듭나길 바란다.
문학시장을 좌지우지해온 몇몇 대형 출판사의 행태도 문제로 떠올랐다. 23일 토론회 발표 내용을 보면, 신경숙은 창비와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라는 세 출판사를 번갈아가며 소설을 간행해왔다. 이들 문학출판사는 예전에 참여문학이든 순수문학이든 나름의 색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여 권위를 쌓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작품이 팔리느냐라는 상업적인 기준만을 경쟁적으로 추구했고 최소한의 작품 검증 기회마저 도외시했다고 한다. 문학의 사회적 책임이 실종된 배경에 출판자본의 무한상업주의가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 보니 한국문학이 노벨 문학상을 배출해야 한다거나, 아무개가 한국문학의 대표상품이라는 등의 언술도 당연시할 게 아니었다. 문학의 사명을 제쳐놓고 자본의 논리를 은근히 정당화하는 포장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비평의 나태도 문학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가 뒷전이 되는 데 한몫했다. 문학의 권력화와 상업화를 견제해야 할 비평가들이 문학권력에 포섭되어 동업자 노릇을 해왔다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신경숙 표절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문학계의 문제는 문학 밖의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가치가 실종된 가운데 자본 중심으로 욕망만을 추구하는 시대의 문제점이 문학에 그대로 투영됐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창비와 같은, 사회 담론 생산의 근거지로 자부해온 대표적 출판사들이 나쁜 순환고리의 한 축에 있었음은 충격이다. 문학계의 총체적 반성과 재탄생을 촉구한다.



2011년 3월에 임명장을 받으러 청와대에 간 방위사업청장 노대래씨. 전임 장수만 방사청장이 비리로 3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후유증이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임명장 수여 후에도 신임 청장을 상대로 물경 2시간30분 동안 잔소리를 퍼부었다.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국방예산 20% 삭감해도 된다”는 대통령의 말이 이때도 나왔다. 모든 무기도입 사업에서 일률적으로 예산을 20% 이상 삭감하라는 지시나 마찬가지였다. 노 청장이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은 분량이 복사용지 앞뒤로 빼곡히 3장이 넘었다. 임명 첫날부터 군에 함부로 돈을 주지 말라는 이 대통령의 지침을 단단히 받고 나온 노 청장은 정신이 얼얼했는가 보다.
얼마 후 영종도의 한 호텔에서 청와대, 국방부, 방사청, 군, 업체 관계자들이 모인 방위산업 합동 워크숍에서 노 청장은 “군은 무능한 집단이고 업체는 부패한 집단이다”라고 선언하며 모든 무기도입 사업을 방사청이 주도할 뜻을 명확히 했다. 모든 국방사업에서 일률적인 예산삭감이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4년이 지난 지금. 방산비리 합동조사단이 터뜨리는 각종 무기도입 비리는 전부 이 대통령이 돈줄을 막아버렸던 시절에 저질러졌던 사업들이다. 방사청을 앞세워 방산 비리를 척결한다며 군의 숨통을 눌러버리니까 군은 다른 살길을 찾아 나섰다. 성능이 낮은 저질 무기라도 일단 사고 보자는 식으로 정책을 속속 변경한 것이다. 통영함의 음파탐지기는 애초 120억원가량 비용이 예상되었고 협상을 잘하더라도 70억~90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했다.
그러나 달랑 40여억원을 배정받자 유럽 전문 업체와의 협상을 포기하고 미국의 이름도 없는 불량 업체와 41억원에 계약을 했다. 돈에 장비의 성능을 맞춘 결과 엉터리 부실 장비가 들어왔다. 영국으로부터 도입되는 해상작전헬기는 대잠수함 작전능력이 없는 헬기였으나 경쟁 기종인 미국제보다 싸다는 이유로 채택되었다. 이 과정에서 군이 요구하는 작전성능 중에 대잠수함 작전 기준이 하향 조정되었다. 핵심 작전의 요구 성능이 하향 조정되는 건 해군의 권한으로도 안 되는 중요한 정책결정이다. 정치권력과 합참의 고위층이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 단지 비리로 적발된 사업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군의 무기도입 전부가 일제히 부실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게 문제다.


국방예산이 아까우면 무기소요, 즉 사업 자체를 재검토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방만한 군의 무기소요는 놔둔 채 예산만 줄이는 방식으로 국방을 관리하니까 실체도 없는 페이퍼컴퍼니, 즉 엉터리 유령회사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각 군과 사업부서마다 하나씩 사업을 꿰차려고 하니까 엉터리 장비를 납품하고 튀는 한탕주의 세력이 득세하기 시작하여 한국군의 전 무기체계를 뿌리째 흔드는 양상으로 간 것이다. 이것이 지난 보수정권 7년간 약 70조원을 무기도입에 쏟아붓고도 군의 작전능력이 개선되지 않은 핵심 이유다. 덤으로 지난 20년간 꾸준히 축적해온 국내 방위산업의 연구개발 기반도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무기소요는 늘어나는데 예산이 줄어든 당연한 귀결이다. 이렇게 국가안보의 핵심 자산이 부실 덩어리로 전락하여 거대한 국가적 낭비를 형성한다. 4대강과 자원외교에 이은 가장 끔찍한 국가 부실은 다름 아닌 국방이다. 이에 대해 아무도 항변할 수 없었다. 이 대통령이 직접 “이거 사라, 저거 사라”는 지시를 하는데 누가 그 부당함을 말하겠는가?


무기는 많지만 각종 엉터리 장비로 무장한 한국군의 위기는 지금도 이어진다. 방만한 국방이 디폴트(지급불능) 사태로 가는 데 앞으로 3년이면 충분하다. 이런 정치권력이 방산비리 주범이 아니라면 무엇이 주범인가?

< 김종대 -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