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의 시간까지 달라져서야

● 칼럼 2015. 8. 16. 17:2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북한이 광복 70돌인 오는 15일부터 기존 표준시를 지금보다 30분 늦춘 ‘평양시간’을 쓰겠다고 7일 발표했다. 한반도 안에서 두 가지 시간대가 공존하는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시간대 전환은 나름대로 명분이 있다. 지금 남북한은 일본 도쿄 부근의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 동경(도쿄)시를 표준시로 쓴다. 그러다 보니 실제 시간과는 30분가량 차이가 난다. 과거에도 한반도 중앙을 지나는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대를 쓴 적이 있다. 대한제국 말기인 1908년과 이승만 정권 때인 1954년 채택한 이 시간대는 둘 다 몇 해 만에 일제와 군사정부에 의해 동경시로 되돌려졌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표준시를 빼앗았다”는 북쪽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우리 국회에서도 표준시를 바꾸자는 법안이 꾸준히 발의되고 있으나 큰 호응은 얻지 못하고 있다. 정부도 군사·항공관제 등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이미 굳어진 시간대를 바꾼다면 일정한 혼란은 불가피하다. 북한의 새 시간대는 협정세계시보다 8시간30분이 앞서게 돼, 대개 한 시간 단위로 끊기는 국제시간대에서 불편한 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 시간대가 사실상 일광절약제의 기능을 하는 측면도 고려돼야 한다.
그럼에도 ‘한반도 표준시’에 대한 논의 필요성은 존재한다. 우리 생체 리듬에 맞고 천문학·지리학적으로 더 합당하기 때문이다. 시간대 선정의 자주성이라는 면도 있다. 일찍이 세종대왕이 칠정산내외편을 만드는 등 역법을 정비한 것도 우리 실정에 맞는 시간을 정착시키기 위해서였다.
북쪽이 갑자기 새 시간대를 발표한 것은 문제가 있다. 개성공단 운영 등 남북 교류·협력 과정에서 크든 작든 불편함이 생기는 것은 물론 그러잖아도 심각한 남북 사이 이질감이 더 커질 수 있다. 한반도 전체에 관련되는 사안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도 잘못이다. 갈수록 악화하는 핵·미사일 문제에 더해, 독불장군이라는 북한의 이미지가 국제사회에서 더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명분을 중시하는 건 알지만, 지구촌에서 자신만 사용하는 시간대라는 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일은 꽉 막힌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남북관계가 괜찮았다면 여러 장단점을 고려한 논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제 새로운 과제가 하나 더 생겼다. 시간이 삶과 역사가 이뤄지는 바탕임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남북관계를 빨리 풀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



[사설] 국정원, 직원 자살 사건 경찰 따돌린 이유 뭔가

● 칼럼 2015. 8. 16. 17:2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국가정보원 직원 임아무개씨 자살 사건은 사안의 중대성 면에서 그 어떤 사건보다도 처리 절차가 투명·정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사건의 직접적 이해당사자라 할 국정원은 어떤 이유로든 결코 개입해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실종 신고에서부터 수색, 현장조사, 증거물 처리 등 모든 절차가 상식과는 완전히 동떨어지게 진행됐다. 국정원이 처음부터 경찰을 의도적으로 따돌린 채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임씨가 실종된 뒤 국정원이 임씨의 부인에게 “119에 신고하라”고 종용한 것부터 국정원의 개입은 시작됐다. 임씨 부인은 국정원의 이런 지시에 따라 경찰이 아닌 경기도 재난안전본부 재난종합지휘센터에 처음으로 신고전화를 했다. 그리고 소방대원이 매뉴얼대로 112 신고를 권유하자 112에도 신고를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112 신고를 취소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남편을 찾아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이런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한 것은 국정원의 종용이나 간섭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국정원이 경찰보다 먼저 임씨 주검이 발견된 현장에 도착해 1차 현장조사를 한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은 소방대원과의 현장 좌표 교신 오류 등 석연치 않은 이유로 50분이 지나서야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사이 국정원 직원은 임씨의 주검 상태와 유류품 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없는데 국정원 직원이 이런 월권행위를 해도 좋은지도 의문이지만, 과연 사건 현장이 온전히 보존됐는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임씨가 숨진 채 발견된 마티즈 차량이 성급하게 폐차 처리된 과정에서도 역시 국정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물론 임씨가 남긴 유서나 부검 결과 등에 비추어 임씨 자살이라는 사건의 근본 성격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정원의 개입으로 비롯된 이런 비정상적인 처리 과정은 여러 가지 구구한 관측과 뒷말을 낳을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국정원이 정해진 법적 절차나 규정 등을 쉽게 무시하면서도 얼마든지 둘러대고 뭉갤 수 있음이 명확히 드러난 점이다. 그 점에서 국정원은 또다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직원 자살 사건에서도 말 바꾸기와 진실 은폐로 일관하는 국정원이 사건의 ‘본안’인 해킹 의혹에서는 과연 정직하게 진실만을 말하고 있을까. 이런 탓에 아무리 “불법 해킹을 한 적이 없으니 믿어달라”고 해도 믿기지가 않는다.



[한마당] 악행을 반드시 기록하라

● 칼럼 2015. 7. 25. 17:2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15살 소년은 어느 날 느닷없는 살인범이 되었다. 그는 사건현장 부근을 지나다 누군가 도주하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을 경찰에 알린 것뿐이었다. 다른 아무런 살인의 증거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목격자에서 돌연 살인용의자로, 그 며칠 후에는 실컷 얻어맞은 몰꼴로 구속돼 살인범이 되었다. 검사 앞에서, 그리고 판사 앞에서도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절규했지만, 절벽에 대고 외치는 반향없는 신음소리였을 뿐이다. 오히려 반성할 줄도 모르는 나쁜 녀석이라는 미운털까지 박혀서, 소년범으로는 최고형인 15년형을 선고받았고, 상급심에서 감형받아 10년을 꼬박 감옥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 사이 진범일 듯한 용의자가 붙잡혔는데도, 검찰은 경찰의 구속을 막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유인 즉, 이미 형이 확정된 범인 말고 다른 범인이 나왔다간 수사했던 경찰이며 지휘한 검사, 재판에서 무죄 외침을 묵살한 판사까지 모두가 개망신이니, 적당히 덮어버려야 한다고 했단다. 결국 살인용의자는 무죄 방면되고 말았다.
악운으로 인생행로가 뒤틀려 버린 청년은 출소 후 살인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다. 그리고 당시의 사건 담당자들에게 묻는다. 경찰이 조작한 앞뒤가 맞지않는 증거들을 알고서도 어찌 살인범으로 기소했는가?, 진범으로 보이는 용의자를 외면한 것은 정말 망신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나? 엉터리 수사와 누명에 양심의 가책은 없었는지? 과연 사회정의 수호의 파수꾼으로, 진실과 정의를 위해 봉직한 검사요 판사였다고 자부하는가?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검사는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묻자 기억이 없다고 했다. 수많은 사건을 지휘했는데 어찌 기억하겠냐는 것이다. 검사시절이나 변호사가 된 지금이나, 그는 그저 말썽없이 실적이나 올리면 그만이지, 어떤 젊은이의 유무죄와 망가진 인생이야 관심도, 기억도 필요없다는 이야기다. 그에게 사법정의나 진실규명이라는 가치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어젠다인 것이다.
그나마 목숨은 살아있고, 살아서 ‘억울’과 ‘원한’을 해소할 기회를 얻은 이들은 행운이다.
널리 알려진 인혁당 ‘사법살인’ 사건은 아무 죄없는 이들을 아예 명줄까지 끊어버린 대표적인 독재의 만행이다. 1975년 4월9일, 박정희 철권통치의 청소부 노릇을 하던 대법원이 사형확정 판결을 내린지 18시간 만에 2차 인혁당 관련자 8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원혼들이 지난 5월29일 전원 무죄를 확정받았다. 죄가 없다는 사실을 확정짓는 데 40년이 걸린 것이다. 당사자들은 죽었고, 남은 가족은 피눈물의 세월을 살았지만, 생명을 거둬 간 악의 세력들은 사죄 한마디 없이 지금도 고개를 쳐들고 살아간다.


당시 대법원장 민복기는 2000년 자랑스런 서울대인 상까지 탔다는데, 지금도 대형 법무법인의 고문으로 지낸다. 대법관 민문기(사망)와 양병호는 11년이나 그 자리를 지켰고, 안병수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장이라는 격에 동떨어진 자리를 4년이나, 주재황은 과분하게도 민주적 선거를 지휘하는 중앙선관위원장을 지냈다. 누구하나 판결을 잘못했다고 반성하기는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심장과 철면피로 90줄 인생을 살고있다.
어디 이들 사법의 비양심 세력들 뿐인가.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제 주구들이 대한민국을 주무르고, 조작과 고문을 일삼던 자들이 정계를 휘젓는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해바라기들이 고관대작 지위에 오른다. 내용이나 경중의 차이는 있어도 양심과 정의를 외면한 사악한 권력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사람들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악행으로 더 잘 출세하는 마당에 선행으로 고생하며 정의를 추구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이 세상에 과연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가치는 살아있나. 그러면 그 댓가는 무엇인가. 인간의 양심과 권선징악이란 꿈속에 그려보는 미사여구일 뿐이 아니랴?


최근의 공직자 청문회를 지켜보면 바야흐로 그 의문들이 현실이 돼, 처세와 출세의 비결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부정이든 비리든 권모와 술수로, 특히 정권의 앞잡이로 악행도 일단 해치우면 그만이라는 통념이 일반화됐다는 사실. 사람들은 곧 잊어버리게 마련이고, 그 망각의 뒤안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한 세상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들도 이제 마냥 팔자좋게 살지만은 못할 것 같다. ‘친일인명사전’이 각고의 결실을 이룬 것처럼, 가칭 ‘반헌법행위자 열전’을 편찬한다는 경고가 나왔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의 가치를 뭉갠 불의한 자들을 낱낱이 기록해 역사에 남기겠다는 것이다. 충절의 사육신을 기리고 부관참시 당한 한명회의 모략과 악행을 까발렸듯이,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어지럽힌 자들의 기록도 반드시 남겨야 할 꼭 필요한 일이다. 그래야 사회와 공직에 경종을 울리고, 후세에 본이 되며, 정의 추구의 명분도 된다. 역사는 살아있고, 진실은 밝혀지며 정의가 승리한다는 꺼져가는 진리의 빛을 살려야 한다.


< 김종천 편집인 >



[1500자 칼럼] 악성코드 감염된 정보기관

● 칼럼 2015. 7. 25. 17:2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년 7월13일, 모로코에 있는 맘파킨시(Mamfakinch)라는 한 시민언론단체 앞으로 전자우편이 하나 도착했다. 프랑스어로 “규탄”이라는 제목이 달린 이 메일은 “내 이름을 비롯한 아무것도 밝히지 말아 주세요. 문제가 야기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라는 짤막한 글과 함께 ‘정치 스캔들’이라는 제목의 첨부파일이 달려 있었다. 뭔가 중요한 제보일 것으로 여긴 기자들이 그 문서를 열어보았다. 문서는 비어 있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랍에미리트의 대표적인 인권운동가인 아흐마드 만수르도 “매우 중요”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고 첨부된 워드 파일을 열었다. 첨부파일들은 모두 미끼였다. 이들의 컴퓨터는 곧바로 이탈리아의 ‘해킹팀’에서 만든 스파이웨어 프로그램 ‘RCS’의 먹잇감이 돼 버렸다.


공교롭게도 2012년은 한국의 국가정보원도 해킹팀에서 RCS를 사들인 해였다. 그해는 모로코와 아랍에미리트는 물론 수단,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에티오피아 등 유달리 많은 인권 후진국들이 해킹팀의 고객이 된 시기다. 중동 국가들이 해킹 프로그램의 주요한 신규 고객으로 등장한 것은 당시 각국에서 불붙은 민주화 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한국 역시 대선이라는 주요한 정치행사가 있던 해였다.
사실 민간인 불법사찰 등 각종 인권 침해의 역사에서 국정원은 모로코나 아랍에미리트 정보기관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댓글 공작’에서도 나타났듯이 오히려 한술 더 뜨는 측면도 있다. 모로코와 아랍에미리트 정보기관은 스파이웨어 프로그램을 구입한 그해 곧바로 표적을 정해 실행에 나섰다. 국정원이라고 해서 구입한 제품을 그냥 안방에 모셔 놓고만 있었을까. 그것은 ‘예산 낭비’에 해당한다. 실제로 국정원이 대선을 앞두고 사찰을 시도한 정황증거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사람들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지배 방식도 없다. 맘파킨시가 악성코드 공격을 받은 뒤 겪은 비극적 행로는 생생한 증거다. 중동의 봄 와중에서 탄생한 맘파킨시를 떠받친 힘은 수많은 ‘익명의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은 맘파킨시가 자신들의 익명성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 속에 각종 제보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신뢰는 깨져버렸다. 시민들은 겁에 질려 점차 접근을 꺼리기 시작했다. 애초 30여명에 이르렀던 상근자들도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결국 지난해 2월께 이 단체는 활동을 거의 중단했다. 맘파킨시란 원래 모로코 방언으로 ‘굴복이란 없다’는 뜻이었으나 악성코드 공격에 결국 굴복하고 만 셈이다.
우리 사회라고 다를 리 없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은 위축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됩니다. 저희한테 일어난 비극은 어디에서든 되풀이될 수 있습니다.” 맘파킨시 창립자인 히샴 미라트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감시를 통한 지배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내 휴대폰 통화 내역이, 내 카카오톡 대화가, 나의 전자우편이 이미 누군가의 손아귀에 들어가 낱낱이 감시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은 실로 끔찍하다. 악성코드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은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하다.


이번 사태는 국정원이 ‘사찰을 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끝날 사안이다. 스파이의 제1 덕목은 탄로가 나지 않는 것이다. 못된 짓을 하려면 꼬리가 붙잡히지 않아야 하는데 국정원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뒤처리라도 깔끔히 해야 하지만 그 점에서도 역시 낙제점이다. 요리 블로그며 마을 축제 사이트, 심지어 메르스 사이트를 미끼로 삼은 사실이 드러나는데도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우겨대는 모습을 보면 분노를 넘어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박근혜 대통령도 잘 판단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 공무원 간첩 혐의 조작 사건 당시 ‘문서 발급 절차의 문제는 있었지만 증거 조작은 없었다’는 국정원 보고만 믿고 있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은 맞지만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한 적은 없다”는 국정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것인가. 국정원이 조직의 이해를 위해 대통령마저도 속이는 것, 그런 것을 바로 ‘배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 김종구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