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악행을 반드시 기록하라

● 칼럼 2015. 7. 25. 17:23 Posted by SisaHan

15살 소년은 어느 날 느닷없는 살인범이 되었다. 그는 사건현장 부근을 지나다 누군가 도주하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을 경찰에 알린 것뿐이었다. 다른 아무런 살인의 증거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목격자에서 돌연 살인용의자로, 그 며칠 후에는 실컷 얻어맞은 몰꼴로 구속돼 살인범이 되었다. 검사 앞에서, 그리고 판사 앞에서도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절규했지만, 절벽에 대고 외치는 반향없는 신음소리였을 뿐이다. 오히려 반성할 줄도 모르는 나쁜 녀석이라는 미운털까지 박혀서, 소년범으로는 최고형인 15년형을 선고받았고, 상급심에서 감형받아 10년을 꼬박 감옥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 사이 진범일 듯한 용의자가 붙잡혔는데도, 검찰은 경찰의 구속을 막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유인 즉, 이미 형이 확정된 범인 말고 다른 범인이 나왔다간 수사했던 경찰이며 지휘한 검사, 재판에서 무죄 외침을 묵살한 판사까지 모두가 개망신이니, 적당히 덮어버려야 한다고 했단다. 결국 살인용의자는 무죄 방면되고 말았다.
악운으로 인생행로가 뒤틀려 버린 청년은 출소 후 살인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다. 그리고 당시의 사건 담당자들에게 묻는다. 경찰이 조작한 앞뒤가 맞지않는 증거들을 알고서도 어찌 살인범으로 기소했는가?, 진범으로 보이는 용의자를 외면한 것은 정말 망신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나? 엉터리 수사와 누명에 양심의 가책은 없었는지? 과연 사회정의 수호의 파수꾼으로, 진실과 정의를 위해 봉직한 검사요 판사였다고 자부하는가?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검사는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묻자 기억이 없다고 했다. 수많은 사건을 지휘했는데 어찌 기억하겠냐는 것이다. 검사시절이나 변호사가 된 지금이나, 그는 그저 말썽없이 실적이나 올리면 그만이지, 어떤 젊은이의 유무죄와 망가진 인생이야 관심도, 기억도 필요없다는 이야기다. 그에게 사법정의나 진실규명이라는 가치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어젠다인 것이다.
그나마 목숨은 살아있고, 살아서 ‘억울’과 ‘원한’을 해소할 기회를 얻은 이들은 행운이다.
널리 알려진 인혁당 ‘사법살인’ 사건은 아무 죄없는 이들을 아예 명줄까지 끊어버린 대표적인 독재의 만행이다. 1975년 4월9일, 박정희 철권통치의 청소부 노릇을 하던 대법원이 사형확정 판결을 내린지 18시간 만에 2차 인혁당 관련자 8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원혼들이 지난 5월29일 전원 무죄를 확정받았다. 죄가 없다는 사실을 확정짓는 데 40년이 걸린 것이다. 당사자들은 죽었고, 남은 가족은 피눈물의 세월을 살았지만, 생명을 거둬 간 악의 세력들은 사죄 한마디 없이 지금도 고개를 쳐들고 살아간다.


당시 대법원장 민복기는 2000년 자랑스런 서울대인 상까지 탔다는데, 지금도 대형 법무법인의 고문으로 지낸다. 대법관 민문기(사망)와 양병호는 11년이나 그 자리를 지켰고, 안병수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장이라는 격에 동떨어진 자리를 4년이나, 주재황은 과분하게도 민주적 선거를 지휘하는 중앙선관위원장을 지냈다. 누구하나 판결을 잘못했다고 반성하기는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심장과 철면피로 90줄 인생을 살고있다.
어디 이들 사법의 비양심 세력들 뿐인가.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제 주구들이 대한민국을 주무르고, 조작과 고문을 일삼던 자들이 정계를 휘젓는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해바라기들이 고관대작 지위에 오른다. 내용이나 경중의 차이는 있어도 양심과 정의를 외면한 사악한 권력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사람들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악행으로 더 잘 출세하는 마당에 선행으로 고생하며 정의를 추구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이 세상에 과연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가치는 살아있나. 그러면 그 댓가는 무엇인가. 인간의 양심과 권선징악이란 꿈속에 그려보는 미사여구일 뿐이 아니랴?


최근의 공직자 청문회를 지켜보면 바야흐로 그 의문들이 현실이 돼, 처세와 출세의 비결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부정이든 비리든 권모와 술수로, 특히 정권의 앞잡이로 악행도 일단 해치우면 그만이라는 통념이 일반화됐다는 사실. 사람들은 곧 잊어버리게 마련이고, 그 망각의 뒤안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한 세상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들도 이제 마냥 팔자좋게 살지만은 못할 것 같다. ‘친일인명사전’이 각고의 결실을 이룬 것처럼, 가칭 ‘반헌법행위자 열전’을 편찬한다는 경고가 나왔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의 가치를 뭉갠 불의한 자들을 낱낱이 기록해 역사에 남기겠다는 것이다. 충절의 사육신을 기리고 부관참시 당한 한명회의 모략과 악행을 까발렸듯이,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어지럽힌 자들의 기록도 반드시 남겨야 할 꼭 필요한 일이다. 그래야 사회와 공직에 경종을 울리고, 후세에 본이 되며, 정의 추구의 명분도 된다. 역사는 살아있고, 진실은 밝혀지며 정의가 승리한다는 꺼져가는 진리의 빛을 살려야 한다.


< 김종천 편집인 >



2012년 7월13일, 모로코에 있는 맘파킨시(Mamfakinch)라는 한 시민언론단체 앞으로 전자우편이 하나 도착했다. 프랑스어로 “규탄”이라는 제목이 달린 이 메일은 “내 이름을 비롯한 아무것도 밝히지 말아 주세요. 문제가 야기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라는 짤막한 글과 함께 ‘정치 스캔들’이라는 제목의 첨부파일이 달려 있었다. 뭔가 중요한 제보일 것으로 여긴 기자들이 그 문서를 열어보았다. 문서는 비어 있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랍에미리트의 대표적인 인권운동가인 아흐마드 만수르도 “매우 중요”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고 첨부된 워드 파일을 열었다. 첨부파일들은 모두 미끼였다. 이들의 컴퓨터는 곧바로 이탈리아의 ‘해킹팀’에서 만든 스파이웨어 프로그램 ‘RCS’의 먹잇감이 돼 버렸다.


공교롭게도 2012년은 한국의 국가정보원도 해킹팀에서 RCS를 사들인 해였다. 그해는 모로코와 아랍에미리트는 물론 수단,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에티오피아 등 유달리 많은 인권 후진국들이 해킹팀의 고객이 된 시기다. 중동 국가들이 해킹 프로그램의 주요한 신규 고객으로 등장한 것은 당시 각국에서 불붙은 민주화 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한국 역시 대선이라는 주요한 정치행사가 있던 해였다.
사실 민간인 불법사찰 등 각종 인권 침해의 역사에서 국정원은 모로코나 아랍에미리트 정보기관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댓글 공작’에서도 나타났듯이 오히려 한술 더 뜨는 측면도 있다. 모로코와 아랍에미리트 정보기관은 스파이웨어 프로그램을 구입한 그해 곧바로 표적을 정해 실행에 나섰다. 국정원이라고 해서 구입한 제품을 그냥 안방에 모셔 놓고만 있었을까. 그것은 ‘예산 낭비’에 해당한다. 실제로 국정원이 대선을 앞두고 사찰을 시도한 정황증거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사람들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지배 방식도 없다. 맘파킨시가 악성코드 공격을 받은 뒤 겪은 비극적 행로는 생생한 증거다. 중동의 봄 와중에서 탄생한 맘파킨시를 떠받친 힘은 수많은 ‘익명의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은 맘파킨시가 자신들의 익명성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 속에 각종 제보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신뢰는 깨져버렸다. 시민들은 겁에 질려 점차 접근을 꺼리기 시작했다. 애초 30여명에 이르렀던 상근자들도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결국 지난해 2월께 이 단체는 활동을 거의 중단했다. 맘파킨시란 원래 모로코 방언으로 ‘굴복이란 없다’는 뜻이었으나 악성코드 공격에 결국 굴복하고 만 셈이다.
우리 사회라고 다를 리 없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은 위축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됩니다. 저희한테 일어난 비극은 어디에서든 되풀이될 수 있습니다.” 맘파킨시 창립자인 히샴 미라트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감시를 통한 지배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내 휴대폰 통화 내역이, 내 카카오톡 대화가, 나의 전자우편이 이미 누군가의 손아귀에 들어가 낱낱이 감시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은 실로 끔찍하다. 악성코드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은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하다.


이번 사태는 국정원이 ‘사찰을 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끝날 사안이다. 스파이의 제1 덕목은 탄로가 나지 않는 것이다. 못된 짓을 하려면 꼬리가 붙잡히지 않아야 하는데 국정원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뒤처리라도 깔끔히 해야 하지만 그 점에서도 역시 낙제점이다. 요리 블로그며 마을 축제 사이트, 심지어 메르스 사이트를 미끼로 삼은 사실이 드러나는데도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우겨대는 모습을 보면 분노를 넘어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박근혜 대통령도 잘 판단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 공무원 간첩 혐의 조작 사건 당시 ‘문서 발급 절차의 문제는 있었지만 증거 조작은 없었다’는 국정원 보고만 믿고 있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은 맞지만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한 적은 없다”는 국정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것인가. 국정원이 조직의 이해를 위해 대통령마저도 속이는 것, 그런 것을 바로 ‘배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 김종구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국가정보원이 19일 밤 ‘국정원 직원 일동’ 명의의 보도자료를 냈다. 해킹 프로그램에 대한 유서를 남기고 숨진 국정원 임모 과장과 관련된 성명이었다. 국정원은 “이 직원은 유서에서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없었다’고 분명히 밝혔다”며 “고인의 죽음으로 증언한 이 유서 내용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언론의 의혹 제기를 “개탄스러운 현상”이나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음지에서 일하는’ 게 철칙인 정보기관원들이 공개적으로 집단행동을 하다니, 납득하기 힘든 부적절한 처신이다.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 이런 일을 한다는 말인가.


성명 내용을 뜯어보면 민주주의 인식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자신들이 ‘사찰이 없다’고 밝혔으니 국민들은 무조건 믿으라는 오만한 태도다. 대공 수사권을 갖고 있는 국정원은 피의자나 피내사자가 혐의를 부인하면 수긍하고 수사·내사를 중단하는가. 둘째, 야당과 언론을 적대·불신의 대상으로 간주해 사실상 협박했다. 국정원은 “(숨진 임 과장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지키고자 했던 국가안보의 가치를 더 이상 욕되게 해서는 안될 것이며, 결과에 대해 책임 또한 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의 주인은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야당과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것이다. 지금 국정원은 국민을 상대로 싸우자는 건가. 셋째, 전비(前非)에 대한 자성이 없다. 국정원은 이탈리아 업체 해킹팀으로부터 같은 프로그램을 구입한 35개국 중 자국 정보기관을 매도하기 위해 의혹을 쏟아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35개국 중 상당수가 인권 후진국이라는 점은 논외로 하자. 다만 ‘조용한 나라들’ 정보기관 가운데 대선에 개입하거나 간첩사건 증거를 조작해 기소된 사례가 있는지 묻고 싶다. 해외 언론에서도 ‘한국에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국정원이 과거에도 불법 도청 등의 의혹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하는 터다.


국정원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뚜렷한 조직이다. ‘국정원 직원 일동’의 성명을 자발적 행동으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수뇌부가 ‘지시’했거나 최소한 ‘승인’ 했을 게 분명하다. 앞서 국정원은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전방위적 물타기,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무단 공개 등을 통해 정치관여를 노골화했다. 이후 국정원장 개인은 교체됐으나 국정원이란 조직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성명서는 국정원 개혁이 왜 절실한지 다시금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민주주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익과 조직이기주의를 혼동하는 정보기관을 이대로 방치해선 안된다.



미국 등 주요 6개국(P5+1)과 이란이 핵 협상을 최종 타결했다. 이란 핵 위기 발발 13년 만이다. 인내심과 타협을 통해 난마처럼 얽혀 해법을 찾기 어려워 보이던 문제들을 결국은 풀어냈다. 중동 정세를 포함한 국제정치 전반, 세계 경제에 긍정적 변화가 예상된다.


이란은 핵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물질 개발 등을 중단하고 국제사회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기로 했다. 이란은 핵 기술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정당한 권리는 보장받았다. 핵 비확산 체제를 지키고 국제평화를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아울러 미국과 유럽은 과거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이 들어갔던 곳뿐 아니라 의심스러운 군사시설들까지 모두 접근할 것을 요구해 관철했다. 이란은 ‘이란과 협의 아래’란 단서를 붙이는 데 성공했다. 사찰의 범위를 넓히되 이란의 주권 행사도 존중하는 모양새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내 절충과 타협의 묘를 발휘한 협상 결과다.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한 다른 국제 이슈를 처리하는 데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공화당 등 일각에서는 협상 결과가 미흡하다며 의회에서 핵 합의를 부결시키려 하고 있다. 국제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다. 미국이 이라크를 참혹할 정도로 완전히 무장해제시켰지만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상대를 몰아붙여 백기투항을 받아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은 그리스 사태를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이 합리적인 논의를 거쳐 협상 결과 승인 등 필요한 후속 조처를 슬기롭게 해나가길 기대한다.
미국 정부는 북한 핵 문제를 협상해보자는 데 대해선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다. 나름의 사정은 있을 것이다. 핵물질 제조 시도 수준이었던 이란과 달리 북한은 핵실험을 세 차례나 하고 핵무기 보유국을 선언한 상태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고난도가 꽤 예상되는 북핵 협상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의지다. 이란 핵 합의는 당사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절충과 타협으로 풀지 못할 난제가 없음을 보여줬다.


북한 핵 문제의 최대 피해자이며 당사자는 우리 자신이다. 북핵 문제를 방치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치러야 할 비용과 피해가 커지기 마련이다. 정부는 미국만 바라볼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협상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이란 핵 합의를 북핵 문제 해결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