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의 소망과 축원

 

온타리오 한인목사회-김영선목사 (토론토 충현교회 담임목사) 

 

2024년 새해를 맞는 기쁨

다사 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대망의 2024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온 교회와 성도님들, 그리고 동포 모든 분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충만한 새해가 되시기를 축원드린다. 또 한해를 맞으며 온타리오 한인목사회 목회자 분들께 감사함은, COVID-19 이후에도 경기침체와 사회적 문제, 그리고 전쟁과 재난 등으로 어려운 중에도 맡은 바 소임을 잘 감당하고 계심에 위로와 감사를 보내드린다.

 

소망의 새해를 맞아 ‘새해 첫날의 기쁨’을 성경을 기초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한다.

먼저 창세기에서 (창 8:13) “육백 일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 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땅에 인간의 죄악이 가득하여 심판을 결심한 하나님은, 노아를 선택하여 방주를 짓게 하고, 그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방주에 머물게 하신다. 이제 방주의 문이 닫히고, 40주야 비가 내리고 150일간 온 땅에 물이 가득하여 넘쳤으나, 마침내 물이 빠지고, 땅이 마른 그 날이 새해 첫날이었다. 따라서 노아의 나이 601세가 되는 그 날이, 그의 가족에게 있어서는 기념비적인 날이며, 하나님의 진노가 멈춘 정월 초하루, 설날인 것이다.

또한 출애굽기에서 (출 12: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달은 민간력으로 7월에 해당되지만,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민족 해방절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예표하는 모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남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즉시 애굽을 출발하겠다는 새로운 결단의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향하여 발을 내디딜 때, 비로소 하나님이 구별된 그들의 시간 체계를 새롭게 제시한 그 첫 달, 유월절 시작이 바로 설날이다.

그리고 에스라서에서 (스 7:9)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학자이자 제사장인 에스라와 바벨론에 있던 백성들이 아닥사스다 왕 7년, 이전의 모든 것들을 멈추고 바벨론을 떠나 약속의 땅 예루살렘 옛 고향으로 가는 날, 포로에서 해방되는 그 날이 바로 설날이다.

 

이와 같이 노아의 홍수 사건, 출애굽 사건, 그리고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는 사건에서 공통점은, 하나님이 민간의 달력을 바꾸기까지 하시며 노예, 포로, 고통에서 해방과 구원해 주신 새해의 첫 날, 설날이다. 하나님이 명하신 이날, “새해를 맞는 기쁨”이 한해 동안 지속되길 바란다.

특히 올 한해 온타리오 한인목사회를 통해 한인사회가 더욱 밝아지길 바라며, 우리 교계와 동역자, 그리고 제50대 목사회 임원들을 위해 서로서로 기도로 합력해 주시기를 소망한다.

새해는 전 세계적으로 전쟁이 멈추고 평화가 임할 뿐 아니라, 영육 간에 아픔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해가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아울러 교민 사회에 눈과 귀가 되어 헌신적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시사 한겨레 신문사에게도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한다.

새해 아침의 소망과 축원 

온타리오 한인 교회협의회 김주엽 회장  (토론토 강림교회 담임목사)

 

코로나 19 펜데믹의 파도를 지나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그리고 형제 자매들을 대면예배를 통하여 진심으로 대면하였습니까?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32:3)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느 날과 똑 같은 하루이지만, 우리는 많은 의미와 뜻을 부여하며 새로운 출발과 소망을 이루어 가길 원합니다. 시간 안에 사는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지난 한 해 교회들과 성도들마다 ‘엔데믹’이라는 새로운 도전 속에 본격적인 대면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역교회 현장에서 드리는 ‘대면예배’는 (對 대할 대, 面 얼굴 면) 즉, ‘얼굴을 맞대고 드린다’는 뜻입니다.,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를 ‘비대면 예배’ 라고 불렀습니다.

올 새해에는 이런 바램과 기원을 담아봅니다.

먼저, 온타리오주 안의 모든 교회들과 교우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서로의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는 ‘얼굴 공동체’ 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과거 3년간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목회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책이 [한국 교회 트랜드 2023 & 2024] (by지용근 외) 인데,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교회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중의 하나가 바로 ‘소그룹’, ‘작은 공동체’ 라고 합니다. 소그룹은 장소로서의 교회가 아닌, 신앙공동체로서 건강함, 즉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향하여 가장 가까이서 돌보고 사랑합니다. 이런 소그룹 공동체의 건강한 모습이 교회가 코로나의 재앙을 이겨내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대면하는 공동체’, ‘얼굴 공동체’가 되는 것이 소중한 가치요, 지향점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토론토 중심의 이민사회는 다양한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이익과 명예만을 쫓고,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경직된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안녕과 위로, 치유, 그리고 진정한 회복을 위해 모이는 공동체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힘으로 세워지는 공동체에서 경험되어져야 하며, 그런 면에서 교회는 얼굴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온타리오주의 모든 교회들이 서로의 얼굴을 헤아릴 줄 아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구약 성서에 보면 얼굴(fanim)이라는 단어는 항상 복수형으로 언급됩니다. 우리 모두는 다 ‘천의 얼굴’의 사람들입니다. 기쁠 때의 얼굴, 슬플 때의 얼굴, 화날 때의 얼굴, 아플 때의 얼굴, 등 다 제 각각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굴을 맞대어 보여 주시면서 다가와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42:11, 개역 한글)

서로의 얼굴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덕목대로, 그 사람을 위하여 중보하고, 뒤에서 격려하는 교회들의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세워 지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온타리오주 안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성서에서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뜻합니다. 우리의 신앙공동체가 다양한 친교와 나눔의 공동체 역할을 한다 하더라도,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하나님을 대면하였고, 브니엘의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새 날을 기약하였던 그 소망이, 우리 온타리오주의 교회들마다 경험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신앙공동체!’

우리가 소망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 6:25-26)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대하 7:14)

마지막으로, 창간 18주년을 맞이하는 시사 한겨레의 지면(紙面), 곧 그 얼굴이 새해에도 변함없이 더욱 더 알찬 기사와 평론으로 채워 나가길 기원합니다.

지면, 곧 신문의 얼굴이 되는 기사와 평론을 채워가는 것이 여러가지 사회과학적 진보와 온라인 매체들의 발전으로 쉽지 않은 도전이 되겠지만 꾸준함으로 정론직필 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꾸준함과 한결같음이 미래의 삶을 모색하는 이민자들에게 큰 용기와 힘이 되는 시사 한겨레가 되길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2024년 새해를 많이 하여 온타리오주의 모든 교민들의 건강과 평안, 그리고 교회들의 부흥과 성숙을 기원합니다.

[성탄 칼럼] 죽어가는 사람들

● 칼럼 2023. 12. 24. 13:2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 칼럼] 죽어가는 사람들

 

윤형복  목사 < Eastern Europe Connection 교수 >

 

세상에는 전쟁으로 질병으로 천재지변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빵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작은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많다. 사랑을 주고 받는 훈훈한 성탄의 계절이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인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책이 있다. 내용인즉, 서로 사랑한 두 남녀가 결혼을 했다. 이들은 몹시 가난하였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선물을 해야 할텐데 선물 살 돈이 없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를 아름답게 단장할 빗을 사주기로 했다. 남편은 차고 있던 시계를 전당잡혀 빗을 샀다. 아내는 남편의 선물을 무엇으로 할까 곰곰히 생각했다. 남편의 낡은 시계줄을 새것으로 사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자기의 아름다운 머리를 잘라 팔아서 그 돈으로 시계줄을 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들은 서로 선물을 교환한다. 하지만 찰 시계가 없고 빗을 머리가 없으니 그 선물들은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이것은 선물의 양이 얼마나 많으냐 얼마나 좋으냐가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사랑을 가르치는 목적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심을 기억하는 시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을 선물로 주신 시즌이다. 이 성탄의 계절에 하나님 사랑의 선물 예수그리스도가 가장 고귀한 선물인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과 함께(with Jesus), 거룩함과 함께(with Holiness), 조용함과 함께(with Silence) 가족과 함께(with Family), 이웃과 함께(with Neighbor) 맞이하는 성탄의 계절인 것이다. 모두와 함께 기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 인류에게는 평강의 성탄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편집인 칼럼] 코미디 연속극 시대

● 칼럼 2023. 12. 24. 13:1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코미디 연속극 시대

 

 

검찰이 국정 농단과 부정부패 혐의가 있는 전직 대통령을 잇달아 쇠고랑 채우자 국민들은 환호했다. 특수통 검사들은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강골’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증언대에서 큰소리 치는 바람에 더더욱 스타덤에 오른 윤석열 검사는 당시 이명박과 박근혜를 잡아넣었던 특수부의 중심 멤버였다. 두 전직 대통령에게 윤석열은 ‘저승사자’였던 셈이다.

그런데 벼락부자가 되듯 어느날 대통령이 된 ‘강골검사’ 윤석열은 언제 내가 잡아넣었느냐는 식으로 박근혜와 이명박을 서둘러 사면했다. 제 손으로 옭아넣었던 범죄자들을 제 손으로 풀어준 자가당착의 코미디 같은 일을 벌인 것이다. 남은 형기가 창창하고, 갚아야 할 벌금도 엄청난 액수였지만, 전혀 따지지 않고 돌연 ‘은전’을 베푸는 객기에 기가 막힌 것은 국민들이었다. 내 손으로 결박했으니 내가 풀겠다는, ‘결자해지’로 치부되기에는 너무나 이해가 안되는 황당한 처사였기 때문이다. 막대한 국가적 손실과 상처를 떠안은 국민들은 사회정의와 정치부패 근절의 여망이 무참히 짓밟히는 상실감과 박탈감, 정치-사법불신의 트라우마를 되씹어야 했다. 아마도 윤석열 시대 블랙코미디의 서막을 여는 예고편이 아니었을까.

엑스포 유치에 참패한 이후 부산시민들을 달랜다며 기업활동에 바쁜 대기업 총수들을 동원해 벌인 국제시장 ‘떡볶이 먹방쇼’는 어떤가. 프랑스 파리의 폭탄주 파티에 이어 시장바닥에 들러리 세운 재벌 총수들과 기업 또한 윤석열 자신이 특수부에서 국정농단의 공범들로 처벌했던 ‘묵시적 뇌물’의 당사자들이다. 탄핵당한 ‘윤 사단’의 이정섭 검사가 자신이 수사한 재벌의 향응을 받고도 당당한 이유를 설명해 주고도 남는다.

코미디나 개그 같은, 아니 진짜 블랙 코미디 혹은 즉흥 코미디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검찰정권’의 정치희극이 하루가 멀다하고 전개되어 쓴웃음과 탄식에 분노까지 유발하고 있다.

윤석열이 자신을 검찰총장 시절 ‘채널A 사건 감찰 및 수사 방해’ 등으로 징계한 처분이 잘못됐다며 제기한 소송의 피고가 채널A 사건의 당사자인 한동훈의 법무부인 재판이 ‘역시나’로 선고된 전말도 그 대표적 코미디의 하나로 손색없이 등극했다. 원고와 피고가 ‘형님 아우’인 한통속이니 짜고치는 게임이라는 예상을 적중시킨 법기술에, 법원까지 주눅들어 맞장구를 치고나온 사법코미디의 결정판을 선보인 것이다.

1심은 꼼꼼히 법리와 사안을 따져 ‘징계 2개월은 약하다. 면직도 마땅하다’는 추상같은 판결로 법무부 승리를 선언했다. 그런데 대통령과 법무장관으로 윤석열과 한동훈의 신분이 바뀐 뒤, 피고 법무부는 패하려고만 애를 쓰는 기괴한 소송을 했다. 승소 변호사들을 해임해 버리고, 공판에서는 증인 한사람 부르지 않은 채, 제출하라는 서면이나 답변은 미루고 버텼다. 원고와 피고의 증인신문 시간이 70대 7이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초록동색이 된 2심 판사는 징계사안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는 법구절 하나를 아전인수 해석하는 잔머리를 굴려 법무장관이 징계에 관여해선 안되는데 절차에 하자가 있었다며 ‘징계취소’를 선고했다. 윤석열 징계에 나섰던 전 장관 추미애는 “검사징계법을 그런 식으로 자의적 해석하면 검찰총창이 무슨 잘못을 해도 징계할 수 없다는 말”이라며 “덮어주기 위한 곡학아세를 위해 무지 애썼구나 하는 헛웃음이 나온다. 사법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직격했다. 여러 법학자들도 대법원 판례까지 무시한 판결이며 법무부의 징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오판이라는 지적들을 한다. 이제는 패소 목적을 이룬 한동훈이 과연 상고를 하겠느냐는 코미디 속편을 기대하는 상황이 됐다.

첫 각료인선에서 “여성가족부를 없애겠다”는 인물을 여가부 장관으로 보내는 코미디로 시작한 윤 정부다. 전광훈 집회에서 ‘문재인 목을 따겠다’던 극우인사를 국방장관으로 밀어부치고, 그는 과거 자기 부하 사병의 오폭 사망사고 진실을 장관권력으로 셀프 방어하는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

이명박의 BBK가 아니라는 면죄부를 주어 대통령이 되는데 일조했던 김홍일이라는 검사는 이명박이 특검수사로 처벌을 받았어도 ‘무탈’하더니 윤석열 시대에 다시 두꺼운 얼굴로 승승장구 중이다. 억울한 국민을 보살핀다는 준엄한 기관 ‘국민권익위원장’도 버겁고 낯 간지러울 터인데, 사표도 내지않고는 전혀 생소한 ‘방송통신’위원장직 청문준비에 나서 “낙방하면 되돌아갈 작정이냐”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과거 변호사 시절 공수처에 대해 “사법절차 안에 난데없는 이질분자, 공수처는 괴물기관”이라고 혹평했던 사람은 공수처장 후보자가 되어 최종 추천절차까지 뻔뻔하게 버티고 있다. 불행하게도 코미디 시리즈가 끝이 없다.

코미디는 웃기고 즐겁게 하며 카타르시스와 평안을 안겨줄 때 존재가치가 있다. 국민적 스트레스와 분노를 배가시키는 블랙(Black) 코미디·데드팬(Deadpan) 코미디류의 범람은 정치 사회 희화화는 물론 국가 저질화와 국민정신의 사막화를 재촉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