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권력의 진흙탕 방치하면…

● 칼럼 2014. 10. 21. 14:35 Posted by SisaHan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결국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이로써 박 대통령의 명예는 온전히 회복되고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한 오해는 깨끗이 해소됐는가? 유감스럽게도 사안의 본질은 별로 크게 변한 게 없는 듯하다. 정아무개씨와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 곧바로 박 대통령이 참사 당일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했음을 입증하는 보증수표가 되지는 못한다.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에 신경을 쓰지 못한 ‘말 못할 이유’를 둘러싼 수군거림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7시간 미스터리 논란의 불씨를 지핀 김기춘 비서실장의 7월7일 국회 발언 역시 내부 권력투쟁의 관점에서 더욱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비서실장이 대통령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따위의 발언으로 긁어 부스럼을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는 그동안에도 또 다른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최근 기무사령관 및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인사 파동으로 권력 내부 알력설이 불거지면서 김 실장의 발언은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대통령께서는 또 부속실이 있어 가지고요, 저희 비서실도 있지만 또 부속….” 김 실장이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의 문답 과정에서 한 발언의 한 대목이다. 청와대 직제표상 총무비서관, 제1·제2 부속비서관은 모두 비서실장의 지휘계선상에 있는 조직이다. 
그런데도 김 실장은 ‘비서실’과 ‘부속실’을 대등한 위치로 표현했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첫째는 총무비서관(이재만), 제1부속비서관(정호성), 제2부속비서관(안봉근) 등이 평소 김 실장의 통제권 밖에 있었음을 공식화하는 것이고, 둘째는 노회하기 짝이 없는 김 실장이 이런 민감한 내용을 공식 석상에서 언급한 것 자체에 뭔가 의도성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쯤 됐으면 박 대통령이 우선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집안 단속이었다. 청와대 내부의 매끄럽지 못한 의사소통, 비서실 조직의 기강 붕괴, 이에 따른 내부 알력이 김 실장의 말 한마디에 응축돼 있기 때문이었다. 내부의 곪은 상처는 결코 산케이 보도에 대한 분풀이 따위로 해소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청와대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고함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김 실장 연말 경질설이니,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인사 전횡이니, 3인방 내부의 분화설 등이 한꺼번에 어지럽게 터져나오고 있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반 국민이 속속들이 알 길이야 없지만 이런 보도들 하나하나에서 치열한 권력다툼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권력투쟁의 속성상 김 실장의 ‘부적절한 해명’ 그 자체도 내부의 새로운 시빗거리로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은 논란을 빚은 국정원 기조실장 사표를 반려하면서 ‘화를 냈다’고 한다. 3인방 인사 전횡이니 비선 인사니 하는 말이 보수언론에까지 활자화되는 상황에 화를 냄 직도 하다. 그렇지만 따져보면 박 대통령은 지금 남에게 화를 낼 계제가 아니다. 현 정권 아래서 기관장들이 자기 조직 인사권 하나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에도 기무사령관 경질과 국정원 기조실장 교체 시도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나 이병기 국정원장의 뜻이었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박 대통령 스스로 비선 인사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내오다 이제 와서 화를 낸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권력은 언제나 치열한 내부 다툼을 속성으로 한다. 특정 세력의 전횡과 국정농단 역시 역대 정권에서 비일비재했다. 그때마다 권력은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손사래를 쳤으나 훗날 밝혀진 내용을 보면 그 실상은 훨씬 심각했다. 그 점에서 현 정권은 어느 정권보다 병증이 더 심각해 보인다. 국정운영의 방향을 둘러싼 노선 다툼도 아니고 그저 더 많은 권력을 향유하기 위한 진흙탕 싸움일 뿐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다가온다. 
국정운영 실패의 적은 언제나 내부에 있는 법이다. 박 대통령은 ‘남 탓’을 하기에 앞서 더 늦기 전에 내부 정리부터 서두를 일이다.
< 김종구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한마당] 공감이 사람을 살린다

● 칼럼 2014. 10. 14. 10:26 Posted by SisaHan
수류탄 파편처럼 글자 하나하나가 가슴에 날아와 박히는 말들이 있다. 얼마 전 안산 시내에서 그런 글을 봤다. 
아이의 엄마 아빠가 실명으로 가로등 기둥에 매단 작은 현수막이었다. ‘지겹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자식이 어떻게 지겨울 수 있습니까?’ 이제 막 글을 배우는 사람처럼 한자 한자 읽었다.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엄마들이 하는 얘기의 시작은 우리 아이가 마지막에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다. 한시도 그 생각이 나지 않는 적 없다며 눈물이 차오른다. 
봄소풍 떠났던 아이들이 돌아오기로 한 날은 4월18일이었다. 아직도 엄마들 마음속에선 그날이 되면 아이들이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4월16일이 지나가지 않는다. 4월18일이 돼야 아이들이 돌아오는데 16일에서 단 하루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부모들이 100번째의 ‘4월16일’, 175번째의 ‘4월16일’이라고 날짜를 세는 이유는 그래서다. 아이가 사라진 날에서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만하나. 그러므로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세월호 지겹다’는 말은 이미 제대로 된 말이 아니다.
아이의 마지막 순간이 생각보다 길었던 것 같은 정황 때문에 미칠 듯 괴로워하는 부모님에게 이웃의 치유자가 울면서 말했다. ‘그 고통의 순간이 짧아지길 지금 기도해 주세요.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관계라서 반드시 짧아질 거예요. 엄마 아빠가 한 기도니까요.’ 공감하듯 부모님도 함께 울었다고 했다. 
지나간 시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없다. 현실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아이의 마지막 고통과 씨름 중인 부모 자식의 관계에선 예외다. 제대로 된 특별법이 제정돼 진상이 규명된다고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부모들이 거기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는 것은 그래야 비로소 아이와 이별할 준비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까지 조금만 공감해 주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세계적 공익재단의 창시자가 마지막으로 구상하는 사업은 아이들에게 공감을 체득하게 하는 ‘공감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공감은 모든 소통의 시작과 끝이다. 공감이 부재한 공동체는 사막처럼 황폐화된다. 공감은 정서적 인정이다. ‘네가 맞다고 치자’ 유의 지적인 인정과는 다르다. 상처든 의견이든 마음이든 정서적으로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사람 마음을 여는 유일한 통로고 그 자체로 강력한 치유적 힘을 가지고 있어서 공감만으로 모든 문제는 해결책을 스스로 내놓는다.
세월호 국면에서 막말과 폭식으로 축약되는 공감의 부재는 끔찍하다. 공감의 신경세포가 따로 존재한다면 그게 다 끊어진 듯 잔인하고 황량하다. 
무인도에 표류한 집단의 생존율을 오래 연구한 결과, 건장한 남자들끼리의 집단보다 아기와 노인, 여자가 섞여 있는 집단의 생존율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며 ‘여기서 저 아이의 삶을 마감하게 할 수는 없다’ 다짐하며 힘을 내고, 노인과 일부 여성은 아기를 돌보며, 그들은 다시 나머지 집단이 돌보는 방식으로 생존한다는 것이다. 힘만으로 위기에서 탈출할 수는 없다. 공감의 선순환만이 사람을 살린다.
 
투병 중인 가족을 오래 간병하다 보면 지칠 수도 있다. 그게 사람이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지겹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의 고통과 공포에 공감할 수 있어서다. 다시 다독이고 보살피게 된다. 그게 사람이다.
내 자식이, 내 동생이, 내 조카가, 내 선생님이 차가운 물속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냈다고 한번만 생각해 봐 달라. 그게 공감이다. 그러면 지겨울 수가 없다. 절대로.
< 이명수 심리기획자 >

 

[1500자 칼럼] “○○피아”

● 칼럼 2014. 10. 13. 17:43 Posted by SisaHan
언제부터인가 한국신문을 보면 무슨 피아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뜨인다. 사실 나는 처음에는 그뜻을 몰라, 부닥치는 순간 잠시 어리둥절했었다. 처음 들은 말은 모피아라는 말인데, 앞뒤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경제관료 출신들이 끼리끼리 좋은 자리에 나누어 가지고 들어가 앉아, 인맥을 가지고 자신들을 위해 경제적인 이익을 나누어 가진다는 뜻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공무원이거나 전직 공무원 출신이어서 국민을 위한 일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민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히면서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었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그들이 정한 공익사업과, 국가사업 정책이 국민에게, 나아가서는 나라에 손실은 줌을 물론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음에도, 그들에게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오직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집단이익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었다. 국민이나 나라가 어떻게 되건 말건 상관없는 일이었다.

조직에 대한 거의 목숨을 내바치는 충성이, 마치 이태리의 저 유명한 마피아를 닮았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인 것 같다. 마피아라는 영화로 유명한 조직범죄처럼 조직원간에 끈끈한 유대관계를 갖고, 피로 맹세하며, 조직을 배신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조직의 이익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죽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실제로 한국 고위공무원 중에 수사를 받게 되자, 조직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아니면 윗선으로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살한 공직자도 있었다. 마치 보스를 위해 목숨까지 던지는 것처럼…. 모피아 같은 집단이기주의 조직이 나라를 위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사라지기를, 안보이기를 바라지만, 이 땅위에서 모피아 하나로 사라지기를 바랬지만 이제는 너무 자주 눈에 뜨인다. 아마 모피아도 사라지지 않고 잠시 숨을 죽이며 여전히 살아 있으리라.
 
그 다음에 들은 말이 원피아이다. 원자력 발전소와 한수원, 그리고 원자력발전소 납품업체가 관련된 조직으로 그들 또한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다. 불량부품을 특정업체가 독점하여 납품함으로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챙기면서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어떻게 원자력발전소의 부품을 불량부품으로 대체할 수 있으며, 제품검사를 엉터리로 할 수 있는가? 그들은 누구보다도 원자력 발전의 중요성과 그리고 만약에 생기는 피해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알고 실천해야 한다. 원자력 사고의 피해를 체르노빌을 비롯한 일본에서의 경우를 보더라도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는데…. 작은 사고라도 엄청난 피해를 가지고 올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소위 원피아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원자력 발전소의 부품 납품을 독점하여, 또는 뒤에서 조정하여 이익을 챙겼다는, 그리고 잠시 숨을 죽이고 있다가 다시 챙기고 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음을 떠나 소름이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마음과 정신상태를 가진 사람들이 원자력 발전과 발전소의 설립과 폐기를 결정한다 생각하면 무섭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폐단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잠시 떠들었다 침묵하는 언론, 아예 외면하는 언론들, 그리고 침묵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또 두렵기도 하다.
 
해피아라는 말은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 절실하게 정체가 드러났다. 해경이란 조직과 선박회사와 서로 얽히고 설켜, 자신들만의 질긴 먹이사슬을 형성해 놓고 있었다. 그 연결에 의하면 평소에도 돈을 받음은 물론, 퇴직 후에도 편하고 안정된 직장이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단 조직에 충성하면…. 그리하여 구조를 나간 것인지 구조를 방해하려 나간 것인지 의문을 품게하는 상황 아래서, 그 조직은 급기야는 ‘해경해체’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해경은 해체된다 해도 필요한 조직이기에 이름이 바뀌더라도 조직은 살아남으리라는 것 뻔한 일이다. 그리고 털면 먼지 안나는 곳 없다는 듯이 교피아가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교육부에 만연된 연결 고리. 그러니까 순수해야 할 학문의 전당까지, 그들은 나름대로 튼튼하게 꼬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수사해야 할 검찰은 어떠한가? ‘전관예우’라는 이상한 말이 말하듯, 검찰은 어디보다 조직과 위계질서가 엄격한 곳인데, 자신이 맡은 재판에 자신의 직송상관이었던 분이 변호사로 나온다면…. 또 그 자리가 자신이 퇴직 후에 서고 싶은 자리라면……

사실 우리사회가 학연, 지연, 혈연으로 끈끈하게 맺어진 사회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 험난한 고난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서로 믿고 의지하고 싶은 어떤 보호막이 필요해서 생긴 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부상조라고 가까운 이웃끼리 서로 도와가며 살고 싶은…, 사실 또 그래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의 ○○피아는 철저히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한 조직일 뿐더러, 극소수에 의해 국민 전체의 피해가 너무 크다. 사회 곳곳에 깊숙이 뿌리박힌 이 병적요소를 빨리 제거하는 것이 이제 정말 불가능 할까?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사실상 끝났다. 선주 일가, 승무원, 관련 기관, 해경 등 여러 갈래로 진행됐던 검찰 수사는 400명 가까이 입건하고 154명을 구속하면서 6일 마무리됐다. 하지만 의혹과 책임이 다 규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300여 넋들을 눈앞에서 잃게 한 구조 실패에 국가의 책임이 있음은 검찰 수사를 통해 일부 확인됐다. 침몰 현장에 먼저 출동한 목포해경 123정은 법령과 매뉴얼에 따라 세월호 쪽과 교신해 상황을 파악하고 퇴선명령과 구조활동 지휘 등을 할 책임이 있었지만, 그런 일들은 아예 하지 않은 채 물에 떠 있는 사람들만 구조하는 데 그쳤다. 그러고서도 퇴선 방송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서류를 조작했다. 해경 상층부는 언딘이 구조·구난 작업을 독차지할 수 있도록 온갖 편의를 봐줬다. 그 때문에 구조 작업이 크게 늦어졌다. 언딘은 직원의 하루 일당을 82만원씩으로 치는 따위 황당한 계산으로 80여억원의 비용을 청구하기도 했다. 참사 앞에서 이권과 편의를 주고받는 비인간성이 놀랍고 무섭다. 그런 유착의 실체를 철저히 규명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한 잘못을 엄하게 따져야 한다.

국가의 책임이 해경에 그치는 것인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가 기울어 침몰하기까지 우왕좌왕하며 책임을 방기한 것은 123정만이 아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 정부 기구는 사고 직후 ‘골든타임’ 동안 가능한 자원을 모두 동원해 총력 구조를 하는 데 실패했다. 청와대는 그 시간 대통령에게 보여줄 사고현장의 동영상을 확보하는 데 급급했다. 그러고선 ‘청와대가 사고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며 책임을 모면하려 들었다. 대통령 자신은 사고 후 7시간 동안 긴급회의는 물론 대면보고도 받지 않았다. 행적조차 불분명하다. 법적 책임과는 별도로 그 진상을 정확히 밝혀내고 책임을 따지는 것이 마땅하다.
 
의혹은 그 밖에도 많다. 검찰은 ‘충돌설’ ‘국정원 배후설’ 등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지만,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의혹은 새로운 의혹을 낳는다. 검찰의 수사 발표로는 정확한 사고원인과 정부의 무능한 대응을 규명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특별법을 통해 구성될 세월호 진상조사위와 특검이 철저하고 다각적인 조사로 이런 의혹을 해소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