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구 선생의 대한민국

● 칼럼 2014. 11. 3. 19:26 Posted by SisaHan
얼마 전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가로는 훌륭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에는 반대했기에 대한민국 공로자로 거론하는게 옳지 않다”는 발언이 나왔습니다. 이인호 <한국방송> 이사장의 말입니다. 또한 “상해(상하이)임시정부는 임시정부로 평가받지 못했고, 우리가 독립국민이 된 것은 1948년 8월15일 이후”라고 했습니다.
이 발언을 접하고 우선 황당했습니다. 우리 역사의 소중한 부분이 더럽혀진 듯한 불쾌감이 더해졌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봅니다. 김구 선생은 어떤 분이고, 그와 대한민국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누구나 알다시피 선생의 호는 백범입니다. 백정과 범부에서 한 글자씩 따왔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옥살이하면서, 그는 독립정부가 되면 청사의 문지기로 뜰을 쓸고 죽을 수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낮은 위치에서 독립에 헌신하겠다는 그 자세만으로 마음에 울림을 안겨줍니다.
1919년 3월1일부터 온 동포가 독립만세를 부르고 피를 흘렸습니다. 그 함성과 피흘림을 토대로, 그해 4월 중국 상하이에 애국지사들이 모였습니다. “민주공화제”로 다스려질 “대한민국”이 거기서 탄생했습니다. 일본은 이를 가짜정부라 칭했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대한민국 정부”였습니다.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몇십년간 주지(主持)해온 절대공로가 있습니다.
 
1948년 제헌헌법에서는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였고,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을 밝혔습니다. 1919년 건국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이를 재건한 게 1948년입니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1919년부터 1948년까지의 독립운동 과정의 산물입니다. 나아가 현행 헌법(1987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법통을 지켜낸 김구 선생을 삭제한다는 것은 역사 말살이고 헌법 왜곡입니다.
일제가 물러난 1945년 8.15는 불행히도 분단을 내포한 해방이었습니다. 강대국이 일방적으로 그은 38선을 지우고 온전한 한 몸으로 독립함은 절대과제가 되었습니다. 선생이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은 “나의 소원”이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미-소 냉전에 편승한 남북의 정치세력들은 한 몸을 둘로 쪼개는 데 가담합니다. 어차피 쪼개질 수밖에 없다면 반쪽이라도 차지하자는 게지요. 그러나 선생으로서는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한 아이를 쪼개어 갖자는 엄마가 진짜 엄마일까요.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구차한 안일을 위해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 협력하지 않겠다”는 선생의 읍소는 솔로몬 재판에서 진짜 엄마의 마음이었을 겁니다.
김구와 김규식의 북행길도, 분단을 막기 위해선 최후의 일각까지 분투하겠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가능성이 아닌 당위성의 차원입니다. 북측과의 교섭도 무위로 끝난 뒤, 그들은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서울에 머문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에 안겨준 후광효과도 적지 않습니다.
 
선생에게 민족분단은 전쟁을 초래할 “시한폭탄”이었습니다. 그가 흉탄에 쓰러진 지 만 1년 뒤, 그의 우려대로 “시한폭탄”은 6.25전쟁으로 터지고 말았습니다. 엄청난 참화를 빚은 뒤에도, 지금까지 우리 민족은 분단의 사슬에 발목잡히고 가위눌려 있습니다. 선생의 발걸음은 민족적 재앙의 항구화를 막기 위한 충정이었습니다.
현행 헌법에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평화적 통일정책을 추진”함을 명시했습니다. 40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 국민은 분단 아닌 통일, 무력 아닌 평화를 추진하자고 합의했습니다. 선생의 깃발을 이어가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닙니다.
이렇듯 선생의 생애는 대한민국의 바탕이고 상징입니다. 현실정치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뚜렷한 이정표를 남겼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가면서 발걸음을 어지럽게 말라,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는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선생의 삶을 감히 흉내 내기도 어렵습니다만, 그의 애국충정에 재 뿌리는 짓은 막아야 합니다. 선생의 헌신에 터 잡아 만들어진 나라의 국민으로서 한 의무이기도 할 테지요.

< 한인섭 -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늦은 오후 가까운 숲에 들었다.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 무렵에다 가을비까지 다녀 간 끝이라 숲속은 몽환적인 분위기로 으스스 했다. 빨강 노랑 원색으로 채색된 단풍 숲 사이로 반쯤 드러난 고목들의 휜 가지며 낮게 깔린 안개는 자연이 연출한 이즈음의 할로윈 풍경이다. 나는 이런 풍경 속에서 움직이는 소품이 되어 가능한 한 빠르고 조용하게 걷는다. 가끔은 물기 머금은 낙엽더미가 나의 발길을 흔들어 나무 둥치와 포옹을 하기도 하고 때론 푹신한 양탄자 위를 구르듯 날렵하게 발길을 옮긴다. 자연 속에서는 모두가 평등하여 주연 조연이 따로 없다. 낮은 자세로 다가서기만 하면 그대로 자연의 일부분이 되는 숲, 안락함과 평온함을 충전하는 소중한 곳이다.
 
적요하던 숲에 한자락 바람이 일면 우수수 낙하하는 낙엽과 함께 가을 운치가 더 해진다. 여기저기서 툭툭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며 먹을거리를 물어다 나르는 다람쥐들의 움직임은 이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풍요로운 풍경이다. 아무런 미련없이 자신들의 한 해 살이 결과물을 서슴없이 내어 놓는 나무들, 그것을 받아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의 순환고리가 성스럽다. 나는 내 몸 속의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 경이로운 순간들을 열심히 저장한다. 
가쁜 숨을 헐떡이며 내리막길에 다다르니 잘 익은 도토리가 수없이 깔려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 번도 보아준 적 없는 나무가 언제 열매를 맺어 이토록 튼실하게 결실을 냈는지 기특하여 가만히 올려다본다.
 
 ‘할머니, 여기 도토리 있어요.’ 입술을 곧추 세워 외쳐대는 서현이 생각에 가던 길 멈추고 자리를 잡는다. 산책 때 마다 한줌 씩 주워 뒤뜰에 뿌려 놓으면 아이는 한동안 도토리 찾아내는 재미로 신바람을 낸다. 이즈음 아이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덴 도토리 보다 더 좋은 꺼리가 없다. 상기된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도토리를 주워 담다 보니 잠깐 사이 주머니가 두툼해졌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손은 연신 가랑잎을 헤친다. 좋은 목재를 만나면 집 지을 궁리부터 한다는 어느 목수의 변처럼 지나치기 어려운 식재료를 앞에 두니 주부의 본능이 발동한 탓이다. 큼직한 알맹이들을 보며 갈등하는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그이가 손을 내민다. ‘사다 먹어, 괜히 일거리 만들지 말고.’ 견물생심에서 벗어나 꼭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나니 발걸음이 가볍다. 자연은 욕심을 버리고 다가오라며, 병 주고 약 주며 나 자신을 담금질 하게 한다. 
현란하던 숲이 회색으로 바뀔 무렵 반환점을 돌았다. 긴 침묵 속으로 침잠하는 숲을 뒤로 하며 최근 어느 칼럼에서 읽은 P씨의 사연을 떠올린다.
 
P씨는 어느 회사의 중역으로 일과 가족부양에만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모든 면에서 완벽주의자였던 그는 업무로 날밤 새우기를 밥 먹듯 하다가 50대 후반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1년이란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그나마 짧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아스피린과 등산뿐이라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모든 걸 내려놓은 채 오지여행을 떠난다. 환자로 죽기보다 여행자로 죽기를 갈망하며 지팡이에 의지하여 한 걸음씩 나아간 그는 몸을 철저히 혹사시키는 쪽을 택한다. 3개월 만에 병세가 호전되고 삶에 대한 열망이 깊어져 자연에 몸을 던진다. 1년 6개월간의 오지 여행과 천개의 산을 섭렵하는 동안 온전한 건강인이 된 그는 ‘오지 탐험가’ ‘오토 캠핑강사’ ‘레저문화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며 86세의 젊은이가 되어 오늘도 떠나기 위해 배낭을 꾸린다고 한다. ‘나를 산에 버렸더니, 산이 나를 살렸다.’ 는 그는 ‘인간은 모든 허세를 버리고 자연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자연 참살이를 강조한다. 절실하게 공감하는 부분이다.
 
석식 후 나른해지는 마(魔)의 시간대를 과감하게 떨치고 나오면 천의 얼굴을 가진 숲은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한다. 세상에는 거저 얻어지는 게 없듯이 자연이란 친구도 열정과 노력을 바치지 않으면 허락하지 않으니 더 분발해야 할까보다. 
 ‘자연 참살이’의 삶을 동경하며 그 곁을 맴도는 요즘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개헌 논의의 불가피성을 언급한 지 하루 만에 “대통령께 죄송하다”며 꼬리를 내렸다. 현 집권세력이 개헌 문제에 얼마나 정략적으로 접근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헌법 개정은 나라의 앞날에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에 대해선 시대 변화에 따라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다. 이에 관해 진지하고 신중하게 논의해볼 필요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헌법 개정의 중심은 국민이며, 국민의 뜻에 의해 모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당파적, 정략적 차원에서 개헌 문제에 접근하는 건 옳지 않다. 이런 점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것”이라며 개헌론을 띄웠다가 곧바로 사과하고, 또 불씨를 남겨놓는 김 대표 태도는 그 얄팍한 정치적 계산만큼이나 씁쓸하다.
 
청와대의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 따지고 보면 개헌 문제를 정치적으로 먼저 활용한 이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집권 후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공약했다가 이제 와선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개헌 논의 불가’를 외치고 있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바꾸면서도 진솔한 해명이나 사과는 없다. 그러니 ‘이원집정부제’까지 언급하며 개헌론을 말하다 순식간에 꼬리를 내린 여당 대표나, 그런 여당 대표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는 청와대나 국민들 눈엔 오십보백보로 비칠 수밖에 없다.
 
개헌을 주장하는 논리 중 하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이다. 김 대표도 ‘권력 분점의 필요성’을 개헌론의 한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지금 박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들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와 여당이다. 대통령 한마디에 검찰이 ‘사이버 검열’을 하겠다고 나서고, 국회의원인 여당 대표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침범한 것도 아닌데 “대통령께서 아셈 회의를 하고 계시는데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상황을 다른 나라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이번 ‘개헌론 소동’에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김 대표가 공개사과했지만 개헌론이 완전히 사그라질 것 같지는 않다. 정기국회 이후엔 다시 불붙을 가능성이 높다. ‘공론의 장’인 국회에서 개헌 논의를 하는 걸 막을 이유는 없다. 다만 언제나 그 중심엔 국민이 있어야 한다. 청와대, 여당뿐 아니라 야당도 이런 인식을 분명하게 가져야 한다.


[칼럼] 사이버 검열과 ‘매운 고추’

● 칼럼 2014. 10. 28. 18:30 Posted by SisaHan
경찰과 검찰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카카오톡과 모바일커뮤니티 서비스 ‘밴드’를 압수수색하고 사이버 대화를 ‘실시간 모니터링’ 할 거라니 자신도 사이버 사찰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며칠 전 사이버 검열은 1980년대 신군부의 보도지침을 능가하는 ‘공안통치’라고 비난했는데, 1980년대나 오늘날이나 ‘검열’은 시민이 신뢰하지 않는 권력자가 시민들을 겁주어 제 불안을 쫓으려 취하는 조치입니다.
출판된 지 77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중국 공부의 필독서로 꼽히는 <중국의 붉은 별>에 ‘그는 내가 쓴 글의 내용이나 촬영한 사진에 대해 전혀 검열하지 않았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제가 이 구절을 잊지 못하는 건 1980년대 초 신문기자로서 신군부의 검열을 받아본 아픈 기억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는 훗날 중국 초대 국가주석이 된 마오쩌둥입니다.
국민당 군대를 피해 1934년 10월부터 일년 동안 ‘대장정’에 나섰던 마오는 1936년 여전히 게릴라 군대를 면치 못한 홍군의 지도자로서, 국민당 정부가 내건 어마어마한 액수의 현상금을 목에 건 채 이 책의 저자가 된 에드거 스노를 만났습니다. 누가 봐도 불안한 상황이었지만 마오는 ‘태평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마오가 ‘태평스럽게’ 나다니고 스노의 글을 검열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신이 이끄는 홍군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병사들과 똑같이 생활했고 그들이 맨발일 때는 자신도 신을 신지 않았으며, 집회에서나 극장에서는 사람들 틈 아무 데나 끼어 앉았다고 합니다.
권력자들이 시민과 똑같이 생활하며 자나 깨나 시민의 복리를 생각하면 시민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렇지 않아 사랑받지 못하는 권력자가 ‘검열’로 위협할 때 시민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두려움에 떨며 ‘사이버 망명’을 해야 할까요?
2011년 지진해일로 방사능에 오염된 일본 후쿠시마의 고철을 수입하는 나라, ‘절친’ 미국으로부터 ‘유사시’ 한반도에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는 나라, 22조원을 들여 수자원을 오염시킨 사람들이 호의호식하는 나라, 이런 나라의 시민들이 왜 ‘사이버 검열’ 따위를 두려워해야 할까요?
 
두려움은 삶을 위축시킵니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의 일년은 자유인의 하루보다 무가치합니다. 협박에 순응하는 시민은 시민이 아니고 노예입니다. 누가 뭐라든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겁이 나서 카카오톡이나 다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으면 스마트폰을 쓰는 대신 직접 만나서 대화하세요. 대화란 원래 ‘서로 마주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니 스마트폰이 없으면 더욱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하겠지요.
혹시 정부가 ‘세월호가 죽인 경제’를 살리려 이러는 거라면 다시 생각해보길 권합니다. 사이버 대화를 ‘실시간 모니터링’ 하려면 무수한 요원들을 고용해야 하고, ‘불온한’ 대화자를 모두 벌하려면 검경과 법관, 유치장과 교도소를 늘려야 하겠지만 이런 식의 ‘경제 살리기’는 ‘나라 죽이기’이니까요.
마오쩌둥은 ‘매운 고추’라는 민요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노래의 주인공 고추는 먹히기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채소의 나날을 혐오하다가 결국 채소들의 봉기를 이끕니다. 부당한 조치에 순응하는 사람은 먹히기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채소와 다르지 않습니다.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소시민.’ 지금이야말로 소시민들이 ‘작은 고추’가 되어 ‘작은 고추의 매운맛’을 보여줄 때가 아닐까요?
 
< 김흥숙 -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