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역사(국사) 교과서

● 칼럼 2014. 2. 17. 16:15 Posted by SisaHan
지난 한 해 한국은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아 정신이 없었다. 사람에 따라 관심사가 달라, 무엇을 더 관심있게 지켜보았는지가 다를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역사교과서’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국사교과서이다. 그 단어가 주는 의미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 나라의 국사라면, 국민에게 정체성과 자부심을 불어 넣어주는 역사여야 한다. 한마디로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라는 것이 자기 나라 역사교육의 목표다.
나는 한 때 역사를 좋아해서 이곳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역사를 전공하느냐 문학을 전공하느냐 를 놓고 망설인 적이 있었다. 결국 역사는 부전공이 됐지만…더욱이 내가 주로 공부했던 분야는 한국, 중국, 일본의 근현대사였다. 그리고 가능하면 힘이 들지만, 이왕 밖에 나와서 서양교수 밑에서 공부하는 것, 객관적으로 보는 눈으로 공부하려 노력하였다.
 
이번에 문제가 된 교학사 교과서를 직접 구해 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올라 온 것을 보며,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은 ‘친일’이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독립된 한 나라의 국사 교과서에서 식민지 시대를 통해 근대화가 됐고, 더 잘 살게 됐다는 이론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일본이 한국에 철도를 놓아줌으로 인해, 한국 사람들은 먼 곳으로 여행도 가능하게 됐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정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옛날에 학교 다닐 때 배운 서양역사 학자의 말이 생각났다. “한국은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단검이다.” 아마 그는 한국이 놓여있는 지정학(Geopolitics) 때문에 그런 말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한국은 중국에게 있어 ‘등을 노리는 단검”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반도, 중국은 대륙, 일본은 섬이다. 이 서로 다른 지리적 특성이 근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몽고의 일본 침략과 임진왜란을 제외하고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조 말에 들어와서,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 동양 3국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일본이 대륙을 침략하려면, 반드시 한국을 거쳐야 한다. 러시아가 대양으로 뻗어나가려면 또 한국을 거쳐야 한다. 해방 후에는 미국과 소련까지 합세해, 보이게 보이지 않게 한국을 사이에 두고 영향력을 행세하려 한다. 오늘날 중국과 미국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또 중간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한국에 철도를 놓은 주된 이유가 자신들의 대륙 침략에 군인을 이동시키고 공급선을 만들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 한국사람들의 먼 곳으로의 여행을 위한 것일까? 지도를 보아도 일본이 왜 철도를 놓았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일본에서 만주로 가는 최단거리로 철도가 놓여있다. 그리고 당시에 대한민국 국민의 몇 퍼센트가 한가롭게 기차를 타고 먼 곳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었는지, 그 때의 상황에서 보았을 때 몇 명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상식이다.
 
일본식민지가 됨으로서 빨리 근대화가 되고 더 잘 살게 되었다는 논리에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럼 아프리카는 어떠한가? 영국의 식민지가 됨으로 근대문명을 접하게 되었고, 더 잘 살게 되었다면, 그들은 계속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야 할까? 한국이 일본이 없었다면 근대화가 될 수 없었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요지다. 당시 중국은 물론, 러시아도 노리고 있었고, 그 밖의 나라들이 러시아를 막기 위해 노리고 있지 않았는가? 한국의 경제 발전도 그렇다. 일본은 인적 자원이나 물적 자원이 넉넉한 나라가 아니다.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미국과 전쟁을 치르기에 초기에 기습적 공격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장기전으로 계속 전쟁을 수행하기에 국가적으로 인적 물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나라다. 자신들 능력이상으로 벌려 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의 인적 물적 자원을 최대한으로 강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쟁말기의 우리의 경제는 그들의 전쟁 물자를 보급하는 그 이상도 아니었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식민통치 기간에 한국의 경제가 발전했다는 한국사 학자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일본의 국사학자라면 모를까? 또 일본의 적지않은 일본사(국사) 학자들은 지금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의 식민 통치기간이 있어 한국이 근대화 되었다고.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사설] 자살특공대를 세계유산이라니

● 칼럼 2014. 2. 17. 16:12 Posted by SisaHan
일본 규슈의 가고시마현 미나미큐슈시가 태평양전쟁 당시 자살비행특공대 ‘가미카제’의 유서를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관내에 있는 ‘지란특공평화회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살특공대원들의 유서와 편지 등 기록물 1만4000여점 중 본인 이름이 확인된 333점을 ‘지란으로부터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신청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이없고 뻔뻔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들이 제정신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가미카제는 태평양전쟁 말 궁지에 몰린 광기의 일제 군부가 젊은 청년 병사를 비행기에 태워 미 함정을 자살공격하도록 한 행위와 거기에 동원된 병사를 말한다. 바다에서 1인용 어뢰정을 타고 미 군함으로 돌진했던 ‘가이텐’과 함께 전쟁사에서도 가장 비인도적이고 잔혹한 공격 방법으로 꼽힌다. 지란은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가 출발했던 비행기지가 있던 곳인데, 이곳 등에서 출격해 희생된 특공대는 모두 1036명이나 된다. 이 중에는 조선인 대원 11명도 포함되어 있다. 이름이 확인된 333점에는 조선인 대원의 것도 들어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제3자처럼 개탄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일본의 후안무치와 몰역사성을 지적하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당사자로서 적극 나서야 한다.
 
시모이데 간페이 시장은 세계유산 등재 추진 배경에 대해 “내년에 전후 70년을 맞아 특공대원의 메시지를 널리 알려 전쟁의 비참함과 전쟁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20살 미만의 조선인을 비롯한 순진한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몬 것에 대한 자성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전쟁의 비참함을 운운하는 정신 상태가 놀라울 뿐이다. 마치 아베 신조 총리가 태평양전쟁의 에이(A)급 전범을 합사해 놓고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하고,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짐하기 위해 갔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것을 꼭 빼닮았다.
일본의 뻔뻔함은 여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상징인 하시마(일명 군함도)도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의 유산이라는 명목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달라고 신청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곳은 조선인 강제징용자 122명이 숨진 곳이다. 일본으로서야 산업혁명의 상징일지 모르지만 우리로서는 식민지 시대의 고통과 한이 사무쳐 있는 장소다.


[사설] 여야 정치권의 기만과 무능

● 칼럼 2014. 2. 17. 16:12 Posted by SisaHan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의 축소·은폐 지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 이후 정치권이 특별검사제 도입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검을 통한 재수사만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새누리당은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특검을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일축하고 있다. 특검을 둘러싼 여야의 충돌은 우리 정치의 한심한 주소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진정성 없는 약속, 합의사항의 번복, 책임 방기, 뒷북 정치 등 각종 고질병이 낳은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여야는 지난해 12월3일 정국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의 시기와 범위 문제는 계속 논의한다’는 내용을 분명히 포함시켰다. 그렇지만 당시부터도 이 문구의 해석을 놓고 여야는 각기 딴소리를 했고, 새누리당은 “특검 실시를 합의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곧바로 약속을 깨버린 셈이다.
문제는 새누리당보다 오히려 민주당에 있다. 웬만큼 치밀한 전략이나 단호한 결기로는 새누리당의 몽니를 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아예 손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특검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말이 나오도록 민주당 스스로 행동한 것이다. 그러다가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오자 뒤늦게 특검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래서야 특검의 동력이 생길 리 없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특검이 도입돼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현직 대통령이 사건의 관련 당사자라는 점에서 검찰의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려운데다, 국정원뿐 아니라 국군 사이버사령부 등 다른 정부기관들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다. 검찰 특별수사팀에 대한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의 갖가지 압력과 수사 방해 행위는 사실상의 수사팀 해체로까지 이어져 이제는 공소유지마저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다. 김 전 청장에 대한 무죄 판결은 해당 판사의 편견 및 진실 외면에다 이런 상황이 겹쳐진 결과다.
참으로 답답한 정국이다. 그 속에서 국가기관 국기문란 행위의 진실을 밝힐 기회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있다.


[칼럼] 그들만의 “우리”

● 칼럼 2014. 2. 17. 16:10 Posted by SisaHan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성폭력을 큰 범죄로 규정하고 엄단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말뿐인가 싶다. 지난해 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검사들과 출입기자단의 송년회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을 보면서 더욱 그렇게 느낀다.
지난달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술자리에서 여기자들을 성추행한 이진한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장(전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에 대해 ‘감찰본부장 경고’ 처분을 내렸다. 정식 징계에 해당하지도 않는 솜방망이 처분이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노골적으로 이 지청장을 감싸고돌았다. 비슷한 사건으로 무거운 징계를 받았던 검사와 왜 처분이 다르냐고 묻자, 황 장관은 “우리 이 차장”이라고 언급한 뒤 “모든 상황을 종합 판단해 징계양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가 말하는 ‘우리’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검찰의 성 인식은 무척 낙후돼 있다.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부적절한 언행으로 견책, 면직, 감봉, 정직을 받았다고 공개된 검사만 5명이다. 술김이란 핑계로 공적인 관계를 무시한 채 검사, 기자, 변호사를 ‘여자’, ‘몸’으로 대상화했다. 입 맞춰달라 하고, 블루스 추자고 하고, 신체를 어루만졌다. 하지만 비슷하게 소름 끼치는 일을 겪은 피해자들은 혼자 끌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알려진 사건은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그나마 대등한 관계라는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이 이럴진대, 일반 국민한테는 오죽할까. 잊을 만하면 터지는 검사 성추문 사건뿐만 아니라, 여성단체들이 해마다 선정하는 ‘여성인권 걸림돌’에도 검사들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성폭력 사건을 연애로 둔갑시키거나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고, 고소인의 개인정보를 재판정에서 공개하는 등 비슷한 문제가 개선 없이 반복된다. 내부에 성희롱 예방지침도 있고, 교육도 하지만 학습 효과가 없다. 이런 가운데 터져나온 이번 성추행 사건을 보면, 검찰이 각종 성폭력 사건을 공평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2012년 3월 회식 자리에서 여기자 등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검사는 정직 3개월 처분에 사표까지 냈다. 황 장관은 “사건마다 정도나 양질이 다르다”고 하지만, 검사들 내부에서조차 “징계를 받지 않을 정도인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강제추행에 해당하는 부적절한 신체 접촉의 경계가 무엇인지” 묻는 일갈이 터져나온다.
 
정답은 황 장관이 말한 “우리”의 경계에 있을지도 모른다. 권력자가 친밀한 관계로서 “우리”를 강조하면, 나머지는 배제되고 만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은 줄줄이 좌천됐지만, 사건 축소를 주장하고 ‘살아있는 권력’에 충성한 공안 검사는 성추행을 한 뒤에도 징계 없이 좋은 자리로 갔다. ‘국정원 댓글 직원’은 ‘여성 인권 침해’를 들먹이며 보호해준 반면, 댓글 수사 외압을 폭로한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은 승진에서 탈락시켰다.
정말 우려되는 건, 권력이 이런 식으로 “우리”한테 알아서 협조하라는 간접명령을 온 사회에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눈 밖에 나면 개인의 안온한 삶은 언제든 배척당하고 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는 대사회적 경고, 아니 협박성 메시지다. 이쯤 되면 배제된 사람들이 모여 ‘감시 크라우드소싱’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지청장을 비롯한 문제적 인물들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정보를 한데 모으는 것이다. 배제의 범위는 갈수록 넓어질 것이고, ‘그들의 우리’가 아닌 사람들이 가진 눈과 귀와 입은 점점 더 많아질 테니까 자료가 부족할 걱정은 없겠다.

< 이유진 -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