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7일 발표한 국가안보국(NSA) 개혁안은 일부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으나 지구촌의 우려를 가라앉히기에는 미흡하다. 앞으로 의회 논의 과정 등에서 좀더 확실한 방안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안보국의 감청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미국의 가까운 친구나 동맹국 정상’에 대한 감청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또 개인정보 수집이나 감청 대상을 정할 때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외국 네티즌을 대상으로 인터넷 사용 기록과 전자우편을 뒤지는 온라인 데이터 감시는 계속된다. 개인 통화 기록인 ‘메타데이터’ 수집도 마찬가지다. 수집된 정보를 국가안보국이 아닌 민간 기구에 보관하는 개선책을 내놨을 뿐이다. 군인과 정보기관 요원이 독점해온 국가안보국 요직에 민간인을 앉혀 감시를 강화하는 등의 조직 개혁안도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국가안보국의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지난해 봄부터 이 기관의 불법 도·감청 실태를 생생하게 폭로한 이후 이 기관의 개혁은 지구촌 전체의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이 기관의 활동과 관련해 진지하게 사과한 적이 없으며, 이번 연설에서도 개혁안보다는 이 기관의 활동을 옹호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뒀다. 중국과 러시아를 예로 들며 사생활 보호 문제 등에서 이 기관의 활동이 앞서간다고 하기도 했다. 그나마 개혁안 내용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표현이 모호한데다 곳곳에 예외를 두고 있어 ‘무차별 정보수집’이 어떤 식으로든 계속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미국의 가까운 친구나 동맹국 정상’이 누군지도 분명하지 않다.
 
국가안보국 개혁에 소극적인 미국 정부의 태도는 안보를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무슨 일이든 해도 괜찮다는 자국 중심주의적 사고와 정보기관 역량에 대한 과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개혁을 늦출수록 미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노든이 폭로한 내용 가운데에는 국가안보국이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을 감청해왔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정부는 미국이 철저한 개혁안을 마련하도록 지속적으로 외교력을 행사하기 바란다.


[칼럼] “저를 왜 뽑아 주셨습니까?”

● 칼럼 2014. 1. 30. 14:00 Posted by SisaHan
최근 한 방송사의 요청으로 채용 심사를 보게 됐다. 수많은 지원자들이 응시했는데, 하나같이 선남선녀에 나름대로 실력을 쌓아온 청춘들이었다. 하지만 최종 합격자는 기자와 아나운서 각 1명씩 단 2명뿐이다. 심사를 본 150여명 대부분이 또다시 취업 전선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심사 과정은 불편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심사 도중 불현듯 한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해 초 내가 속한 연구소는 보조연구원(인턴)을 공채했다. 1명을 뽑는데 휴학생부터 석사 출신 등 ‘빵빵한’ 스펙을 갖춘 이들까지 40여명이 몰렸다. 서류 전형으로 5명을 선발해 하루 날 잡아 면접 심사를 끝냈다. 
그런데 한 청년이 면접이 끝나고 떠났다가 허겁지겁 연구소로 되돌아와 내게 묻는 게 아닌가? “저를 왜 뽑아 주셨습니까?” 청년의 안면 근육은 실룩였고 눈빛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청년은 자신을 최종적으로 뽑아달라고 간청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는 “학력도 스펙도 별 볼 일 없어 인턴직 응모조차 지금껏 서류 전형에 한 차례도 통과하지 못한” 자신을 왜 면접 대상자로 뽑았는지를 진정 알고 싶어했다. 며칠 뒤 그는 연구소로 이메일을 보내 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를 자세히 밝혔다.
 
“내세울 것은 아르바이트 경험뿐이었습니다. 남들처럼 좋은 학교에 좋은 학점도 아니었고, 여권도 없는 제게 해외 경험 또한 없습니다. … 많은 인턴직을 알아봤습니다. … 이번 인턴 지원도 포기하던 상태에서 갑작스런 연락이 와 놀랐습니다.”
그는 대학엔 들어갔지만 스무살 이래 수년간 카페, 마트, 편의점, 택배회사 등 숱한 곳에서 ‘알바 생활’을 전전했다. 캠퍼스 낭만은 사치였고 학과 공부에 힘쓰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그는 대학생이라기보다도 ‘알바생’이었다. 청년은 이메일에서 세상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세상은 제 노력 따위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더 많은 자격증과 많은 해외 경험 등 많은 결과물을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청년에게 말해주었다. 비록 스펙은 보잘것없더라도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치열하게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당신은 충분히 인정받고 한껏 내세워도 좋을 자부심과 자존을 갖춘 당당한 ‘대한민국 청년’이란 사실을….
 
‘알바생 청년’처럼 청년들의 삶은 푸르름을 구가하기엔 등록금, 실업, 생활고 등으로 너무나 고단하고 애잔하다. 지난 15일 통계청 발표를 보니 청년층(15~29살) 실업률은 8%다. 구직 포기자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치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10%를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장 밖에서 대기·포기하거나 불안정한 일자리와 미취업 사이를 오가는 청년이 400만명을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역대 정부에서 여러 대책을 냈고, 박근혜 정부도 고용률 70%를 주창하며 일자리를 강조하지만 청년층 일자리는 갈수록 더 얼어붙는 추세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통계청 발표 직후 여야 정당들의 대책 마련 목소리가 높아졌고, 기획재정부는 청년 취업 활성화 방안을 전격 발표한다고 부산을 떠는데, 낡은 고용 구조를 깰 획기적 대책이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짧게 살아온 인생에서 제 삶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저만의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런 제 자부심과 자존감을 짓누르더군요. 그깟 알바나 하고 넌 뭐 할래, 그런 경험 누가 알아줄 것 같으냐. 그래도 버티고 버텼습니다.” 
오늘도 학업 또는 취업과 생활고 해결을 위해 버티고 있을 ‘알바생 청년’에게 응답한 말을 어디선가에서 버티고 있을 또다른 수많은 청년들에게도 함께 전하고 싶다. “그 용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 이창곤 - 한겨레 사회정책 연구소장 >


[1500자 칼럼] 박대통령과 나

● 칼럼 2014. 1. 19. 17:44 Posted by SisaHan
- 희망과 기대 -

제목이 거창하다. 혹시나 하는 독자들을 위해 먼저 밝힌다. 박근혜 대통령과 나는 일면식도 없다. 이런 인연, 저런 끈을 조사해도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유일한 접점이라곤 대학 동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입학하던 해 그가 졸업했으니까 역시 얼굴 부딪친 적도 없다.

박대통령과 모종의 연관을 지으려고 하는 나를 보며 혹 토론토 교민들은 <정수코리아> 사건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그 사건. 파독 광부 간호사 출신 2백여명을 모국 방문 환영회에 초청한다며 사기극을 벌인 정체불명의 단체 얘기이다. 권력층과의 거짓된 관계를 내세우며 정당치 않은 일을 도모하는 잘못된 단체일 수도 있다.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박대통령과 나는(물론 그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일별의 관계이다. 지난 1974년 봄 쯤 나는 교정 본관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막 배운 담배를 피워 물고 그곳에 혼자 앉아 왜 고독을 씹길 좋아했는 지 모르겠다. 그때 말로만 듣던 그 피아트 자동차가 정문에서 본관 쪽으로 올라왔다.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므로 직감적으로 그라는 것을 알았더, 한바퀴 돌더니 차는 봄 아지랭이 속으로 멀리 사라졌다. 울컥하는 것이 올라왔다. 졸업 후 모교를 추억하고 싶어 운전기사만 대동하고 학교에 왔으리라. 나중에 얼음공주라고 불리게 된 그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일별이었다. 폐쇄된 차창 안에서 그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교정을 살피고 있었다. 이게 그와의 기억의 전부이다.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과 대통령의 불통의 이미지로 모국이 소란스럽다. 박대통령은 통제된 청와대 안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대통령 퇴진이라는 돌팔매질을 인내하며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피아트 자동차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차창만한 풍경과 그곳에 실린 추억에 눈길만 주던 그가 생각난다. 

최근 받은 모국의 소책자에서 가슴에 와닿는 내용을 발견했다. <이반 일리히(역사학자)와 나눈 대화>중에서 인용한 것이다. “희망은 자연스러운 선의를 신뢰하는 믿음을 뜻하는 반면 기대는 합리적인 계획과 통제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따라서 희망은 우리에게 선물을 줄 하느님의 자유로운 바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에 비해 오히려 기대는 예측 가능한 욕구의 충족과 거기에 대한 귄리 주장에 초점을 두고 있는 차이이다.”.

사실 박대통령은 과거 매력있는 대통령 후보였다. 원칙주의자에다가 양보도 할 줄 알고 그리고 사심없는 국정을 펼칠 수 있는 환경적인 여건도 갖추었다. 유권자들은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뒤 국민들은 기대가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이반 일리히의 말대로 경제나 정치 분야 등에서 각자 욕구의 충족을 바라면서 권리 주장까지 나서게 됐다. 나는 잘 살고 싶다고 나는 안녕하고 싶다고. 많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비록 이민자이지만- 개인적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가 주던 잔잔하고 결연한 일별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모두들 기대의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있을 때 나는 아직까지 희망의 한 조각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40년 전 봄날의 그 푸른 일별 때문에. 

< 김형주 - 시인, 해외문학 신인상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부이사장 >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에 대한 일본의 도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중·고교 교과서 집필 기준인 ‘학습지도요령 해설서’(해설서)에 ‘독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는 일본의 고유 영토’임을 명기하도록 했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이는 그동안 일본 ‘정부 입장’이던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교과서 제작 기준에까지 반영하겠다는 것으로 독도에 대한 도발 수위를 한층 더 높이는 것이다. 일본은 해설서 변경 방침을 즉각 철회하고, 독도에 대한 터무니없는 영유권 주장을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한국 영토임이 명백할 뿐 아니라 계속해서 한국 정부의 실효적 지배 아래 있어왔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의 주요 근거로 들고 있는 ‘시마네현 고시 40호’도 국제법적으로 유효하지 않은 일본의 일방적 행정조처일 뿐이다. 그럼에도 ‘독도가 한국에 불법적으로 점거됐다’는 내용을 해설서에까지 명기하겠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일본은 독도를 둘러싼 해묵은 영유권 주장이 이웃 나라인 한국과의 갈등만 심화시킬 뿐 아무런 실익을 거둘 수 없음을 직시하기 바란다.
 
일본 정부의 이런 방침은 과거사 문제 등으로 가뜩이나 불편한 한-일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게 뻔하다. 한쪽에선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고 하면서 뒤에선 교과서 집필 기준을 변경한다면 일본의 진심을 어떻게 믿겠는가. 더욱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에 대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에드 로이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최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아베 총리가 실수했다”며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독도와 함께 센카쿠열도에 대한 영유권도 해설서에 명기하겠다는 것은 일본이 동북아지역 안정은 안중에도 없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일본의 이런 방침이 알려지자 대만이 즉각 반발하는 등 지역 내 갈등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은 ‘적극적 평화’를 주장하기에 앞서 먼저 동북아지역 안정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도 이에 대해 의연하고도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독도가 역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우리 고유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이에 도발하는 일본 정부에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게 필요하다. 특히 최근 들어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우리 정부도 더욱 적극적이고 종합적인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