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시민운동의 위기

● 칼럼 2013. 3. 23. 18:1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한국 시민운동을 대표했던 두 사람. 이들의 운명이 크게 갈라져 있다. 박원순은 서울 시정을 이끌고 있고, 최열은 알선수재라는 ‘파렴치한’ 범죄 혐의로 감옥에 갇혔다. 1987년 민주화 이래 대표적 시민운동가 두 사람의 현재가 어떻게 이렇게 대비될 수 있는가 싶다.
박원순 시장은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 한국 시민운동의 빛나는 길을 연 사람이다. 반부패 운동부터 총선 연대까지, 기부가 사람을 바꾸는 힘을 믿게 한 아름다운재단, 그리고 소셜디자이너를 자처하며 만든 희망제작소까지. 그러던 그가 이명박 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으면서 떠밀리듯 제도정치권으로 나아갔다. 그는 예상했던 대로 하루를 48시간처럼 살면서 서울시민의 삶의 현장을 누비고 있다. 서울역사에 온돌을 깔아 노숙자들에게 누울 쉼터를 만들어준 건 내게 큰 감동이었다. 사람살이를 위한 정치.
최열이 한국공해문제연구소, 공해추방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환경재단 등 한국 환경운동의 산 역사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동강댐, 새만금, 반핵과 탈원전 그리고 4대강까지. “공해 추방? 배불리라도 먹었으면” 하던 시절부터 4대강까지, 환경은 성장과 발전을 반대만 한다는 비난을 거스르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해 작지만 단단한 초석들을 쌓아왔다. 그러던 그가 환경운동을 시작한 지 31년 만에 다시 감옥에 갇혔다.
 
시민운동을 이끌어왔던 두 사람의 대비되는 현실을 앞에 두고 한국 시민운동의 현재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시민운동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기반이다. 참여연대가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는 부패와 부정, 재벌과 관료, 공공부문의 부당이득 감시운동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했는가. 한국 사회 환경에 대한 인식수준은 국민소득 2만달러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에 나아가 있다. 그런데 시민운동이 이명박 정권 아래서 위기에 빠졌다.
이명박 정권 아래 관변 시민운동은 약진하고,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시민운동은 위축되었다. 무엇보다 시민운동가들이 도무지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50대 전후 사무총장이나 대표가 임기를 마치면 갈 곳이 없다. 20년 된 활동가가 200만원 남짓, 대다수 전업 활동가들이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생활을 한다. 이래서는 건강한 시민운동을 기대할 수 없다. 유럽의 경우 시민운동을 전업으로 하는 활동가들이 공무원의 80% 정도되는 보수를 받는다.
 
촛불시위 이후 이명박 정권은 시민운동단체로 유입되는 돈줄을 끊거나 삭감했다. 행정안전부가 주는 시민단체 보조금 중 보수단체 지원금이 2009년 4억7000만원에서 2012년 37억7000만원으로 급증했다. 반면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1800여개 단체는 불법 폭력시위 단체로 규정되어 3년간 이 기금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시사저널> 2012년 6월) 그리고 이들을 대표하는 박원순·최열의 개인비리를 캐고자 특별검사팀까지 꾸렸다. 1년 이상을 털어도 먼지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박원순은 결국 제도정치로 나아갔다. 최열은 알선수재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환경운동연합과 환경재단 공금 횡령은 모두 무죄, 개발업체의 로비 대가로 알선수재 유죄. 그런데 최열을 수사했던 김광준 검사가 10억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더구나 김 검사에게 뇌물을 준 업체는 최열에게 돈을 주었다는 개발업체와 경쟁관계에 있음이 재판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알선수재는 1심에서 무죄가 난 사안이었는데, 2심에서 심의도 없이 유죄로 뒤집혔다.
 
시민운동의 위기는 운동의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데서 시작되었다. 건강한 시민운동이 투명하고 행복한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을 안다면, 전국 수백명에 달하는 시민운동 활동가들에게 100만원 남짓 되는 월급만 받으며 헌신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더욱이 시민운동은 태생적으로 기득권, 성장과 개발에 반하는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건강한 시민사회는 이들에게 신뢰를 보내고, 최소한의 생활기반을 마련해줄 책무가 있는 것 아닐까. 그래야 제도정치로 나아가지 않고 시민운동에 전력투구하는 활동가들이 많아지리라 믿는다.
<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1500자 칼럼] 바울 사도를 생각하며

● 칼럼 2013. 3. 15. 19:4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난 2월에 필리핀에 있는 우리 교단 산하의 태평양 노회의 요청으로 부흥회를 다녀왔다. 그런데 막상 부흥회를 허락하고 난 뒤 갈 때 쯤 되어 연락이 왔는데 노회 내의 모든 교회들이 모두 선교지역으로 흩어져 있는지라 강사께서 노회 산하의 몇 지역으로 함께 가셔서 집회를 인도해달라는 부탁의 말씀이었다. 노회의 형편으로 볼 때는 수도인 마닐라 지역에서 집회하는 것이 편리하지만 노회의 구성원인 다른 지역의 교회도 노회가 누리는 혜택을 함께 나누는 것이 좋겠다면서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강사인 나로서는 난감했다. 보통 부흥회를 인도할 때 낮에는 쉬면서 건강을 관리했는데 낮에는 이 지역 저 지역으로 이동을 해야 하니 몸에 무리가 될 것은 뻔하고 그렇게 피곤한 몸에 시차 역시 만만치 않을 텐데 하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큰 걱정은 설교를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었다. 한 교회에서 설교를 할 때 강사 나름대로 은혜를 받게 하고자 설교하는 흐름이 있는데 그런 어떤 흐름도 없이 다른 지역에서 설교를 해야 하고 매번 청중도 바뀌어지고 동행하시는 목사님들이 계시니 같은 설교를 계속할 수도 없고. 이젠 적지않은 나이에 모든 것이 무리라는 생각뿐이었다.
 
마닐라에서 하루 저녁 인도하고 다시 북쪽의 바기오라는 도시로 갔다. 거기는 영상 30도 이상의 마닐라와 달리 산위의 도시가 되어 대통령의 여름 별장이 있다는 그대로 영상 20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고,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마닐라에서 온탕을 하고 바기오에서 냉탕을 한 셈이랄까? 다음 날은 다시 바기오에서 내려와 앙겔레스라는 도시로 왔다. 다시 온탕이었다. 바기오까지 6시간의 운전에다 거기서 다시 앙겔레스까지 4시간을 타고 내려왔다.
음식도 그랬다. 나름대로 정성껏 대접해 주시는데 육신이 피곤에 지치니 음식의 맛도 떨어지고 만사가 귀찮기만 했다. 괜히 매운 것 같고 괜히 짜게만 느껴지는 그런 식이었다. 전에는 잘 먹었을텐데.
이리 저리 자동차에 시달리면서 피곤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나는 바울 사도가 생각이 났다. 위대한 선교사 바울이 세 번의 전도여행을 다닐 때 그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이었던가? 지금 내가 힘들고 불편해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바울 사도를 생각해 보았다.
 
바울이 필리핀에 와서 선교를 했거나 부흥회를 인도했다면 뭐라 했을까? 나이 타령? 피곤하다? 잠을 많이 못 잔다? 음식이 불편하다? 덥다 춥다 하는 말들을 했을까? 어느 것이나 모두 바울 사도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것일 뿐 불평이나 불편의 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울 사도 당시 승용차는 물론 자전거가 있었겠나? 모든 길을 걸어 다녔을 것이고 기껏 빠른 길을 택했다면 배를 탈 뿐이었다. 바울을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흥회 강사로 모시는 그런 대접이 있었겠는가? 그가 가는 길에는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말씀하는 그대로 갖은 고난과 푸대접 또는 돌에 맞는 환난과 핍박만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겠다.
물론 시대가 다르지만 그래도 내가 받는 대접을 생각하면서 바울을 생각해보니 송구스럽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적어도 나는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강사님 강사님 하는 대접을 받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바울 사도를 생각해내야 하듯이 우리보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을 항상 생각하며 고려하는 자세를 갖고 주의 일을 하면 어떨까?
그런데 부흥회가 끝나고 돌아오려는 데 내년에 또 오라고 하신다. 어떻게 할까? 물론 가야겠지.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칼럼] 후쿠시마 2년, 더 위험해진 세계

● 칼럼 2013. 3. 15. 19:4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알다시피 2년 전 오늘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과 뒤이은 지진해일(쓰나미)은 엄청난 재앙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것이 역사상 초유의 사건은 아니다. 최근 10년 사이에만도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 지진 해일은 인도양 전역에 걸쳐 20만 희생자를 냈고, 2008년 2월 중국 쓰촨성 지진과 2010년 1월 아이티 지진도 50만 가까운 사상자를 냈다고 알려져 있다. 
역사는 이런 끔찍한 재난이 드물지 않게 발생함을 기록하고 있는데, 당연히 인간은 태풍·한발(가뭄)·화산폭발·지진 등 과격한 자연변화에 순응하며 사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런데 동일본 대지진의 유례없는 점은 그것이 후쿠시마 제1원전의 폭발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원자로에서 망가진 핵연료를 꺼낸 뒤 안전하게 처리하기까지 30~40년은 걸릴” 거라는 게 후쿠시마 제1원전 소장의 말이고 보면, 재앙은 이제 겨우 시작된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하기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 현장에서 즉사한 직원의 시신은 아직 오염구역 안에 남아 있다고 한다. 방사능으로 인해 구조대원의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후쿠시마든 체르노빌이든 두 사고 모두 현재진행형이고, 원인이 지진 때문이든 설계결함 때문이든 또는 직원의 조작실수 때문이든, 원전이란 근본적으로 시한폭탄과 같은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간과하는 아마 가장 중요한 사실은 원자력의 군사적 사용과 ‘평화적’ 이용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뿌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핵폭탄과 원자력발전은 동일한 원리에 기반해 있고, 따라서 핵무기 개발과 원전 건설은 핵심적 과정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지진 다발 국가인 일본에 수많은 원전이 건설된 불가사의를 설명하자면 ‘원전 마피아’라고 속칭되는 일본 지배층의 군사적 야망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고, 세계 제5위의 원전강국임을 자랑하는 한국도 그런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라는 비슷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프랑스가 원전에 대한 태도에서 극명하게 갈라지는 것은 평화주의를 지향하느냐 군사주의를 용납하느냐의 세계관의 차이가 두 나라 정치와 시민사회의 근간에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요즘 들어 매일 실감하는 바와 같이 후쿠시마 이후 2년이 지나는 동안 동북아시아는 날로 더 위험한 지역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동북아가 지구상 최고의 원전밀집지역이라는 것은 그 위험의 구체적 증거라 하겠지만, 그러나 이것이 단지 이 지역 국가들의 원전정책에만 국한된 사안은 아니다. 더 큰 눈으로 보자면 1900년 전후 청일전쟁·러일전쟁을 통해 표현되었던 것과 같은 거대한 시대전환이 지금 역사의 지층 아래서 진행되고 있는데, 관련 당사자들이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는 데 부적응의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 부적응의 대표 사례는 영토분쟁일 것이다. 
물론 당면의 위험은 북핵이다. 제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제재 결의에 대항하여 북한은 잇달아 강경한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고, 오늘부터 시행되는 키 리졸브 훈련을 앞두고도 <로동신문>은 모든 장병들이 “최후의 돌격명령만 기다리고 있다”며 더욱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남쪽 방송에서 거두절미하고 전해주는 북한 아나운서들의 난폭한 목소리를 듣고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을 갖는 것은 누구보다 남북화해를 소망해온 남한의 일반 국민들일 텐데, 그 점을 북한 당국자는 짐작이나 할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제2의 조선전쟁’이란 발상은 꿈에서도 해선 안 될 금기 중의 금기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의 대북정책 전·현직 대표들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고 다른 해결책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실로 처량한 노릇이다. 
지난 5년 동안 남북관계를 파탄 낸 결과 우리의 안전을 남에게 의탁하는 신세가 된 것 아닌가.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총체적 구상을 가다듬을 시점이다. 

< 염무웅 - 문학평론가 >

 

[사설] 안철수의 ‘새 정치 실험’ 다시 지켜본다

● 칼럼 2013. 3. 15. 19:4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귀국해 다음달 치러지는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안 전 교수는 귀국 회견에서 “대선 과정에서 기대에 못 미쳐 송구스럽다”며 “이제 한발씩 차근차근 나아가며 다시 시작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대선 후보 사퇴 회견에서 새 정치를 위해서는 어떤 가시밭길도 가겠다고 약속했다”며 정치쇄신에 대한 의지도 거듭 밝혔다.
안 전 교수가 4월 보선 출마로 일찌감치 방향을 잡고 서둘러 귀국한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하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뜸들이기 행보에 비하면 과단성 있고 담백해 보이기까지 한다. 정치는 어찌됐든 현장에서 뛰어야 한다. 외곽에서 맴돌다가 어느 순간 과실을 따 먹는 식의 행보로는 제대로 된 결실을 맺기 어렵다.
 
안 전 교수의 정치 재개를 놓고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새 정부가 출범했음에도 지리멸렬하기 그지없는 여야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안 전 교수를 중심으로 한 신진세력이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러올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대선 과정에서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얼마나 강렬한지는 여실히 드러났다. 비록 대선에서 좌절했지만 안 전 교수가 새 정치의 불씨를 이어가길 바라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현실 정치가 아마추어적인 이상과 덧없는 인기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도 분명하다. 정치권 밖에서 기성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긴 쉽지만, 정치에 뛰어들어 새 정치를 실현하는 일은 험난하다. 안 전 교수가 지난 대선에서 좌절한 것도 결국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을 현실로 바꿔낼 실력이 모자랐던 탓이 크다. 야권 단일화가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함으로써 야권 세력이 일치단결해 대선을 치르지 못한 데는 안 전 교수의 책임도 상당하다. 후보를 낸 민주통합당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안 전 교수 역시 책임질 부분이 적지 않다. 안 전 교수는 정치를 다시 시작하는 마당에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크게 반성하고 변신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긴 호흡으로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나가는 행보 역시 필요하다.
 
안 전 교수의 재등장으로 야권은 사활을 건 경쟁에 돌입하게 됐다. 이번 재보선은 대선 이후 야권 재편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이건 안 전 교수 세력이건, 진보정당이건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멋지게 경쟁하길 바란다. 안 전 교수의 등장이 야권 내 이전투구를 심화시키는 게 아니라, 정치개혁과 민생정치를 위한 신선한 촉매제가 되도록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는 대선 때 야당을 지지한 유권자에 대한 보답이자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