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12월12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가 제재와 반발의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위기 수위가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 관련국 모두 위기가 폭발하지 않도록 냉정과 자제가 필요한 때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그제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주재해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강령적 지침으로 되는 중요한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말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2087호 채택 이후 북한의 격앙된 반응에 비춰볼 때, 제3차 핵실험의 단추를 누르기로 최종 결심했다는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은 되돌리기 어려운 궤도에 진입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긴장을 한껏 높임으로써 미국을 담판에 끌어내자는 속셈일 것이다. 북한 외무성은 제재가 발표된 날 “조선반도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고, 국방위원회는 다음날 미국을 겨냥한 ‘높은 수준의 핵실험’을 예고했다. 철저하게 미국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하지만 상황이 북한의 의도대로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는 안보리 결의 2087호를 채택하면서 이미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자동으로 ‘중대한 조처’를 취하도록 해놨다. 중대한 조처는 관련국들이 추후 논의하겠지만, 북한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금융 및 무역 제재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미국·일본 정부는 상호 조율을 통해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계속하면 중대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해 둔 상태다. 한-미 군사당국이 어제부터 미 핵잠수함과 이지스함 등이 참가하는 군사훈련을 시작한 것도 북한의 도발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북한의 도발은 협상파의 입지를 좁히고 강경파의 목소리를 강화해주게 돼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움직임도 싸늘해지고 있다. 중국의 관영 매체들은 이전과 달리,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공공연히 편다. 북한은 고립과 민생의 피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제3차 핵실험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우리나라와 미국도 무조건 압박으로만 밀어붙일 게 아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어도 한-미 연합 전력이 북한에 비해 여전히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아무리 압박을 강화해도 체제 위협에서 비롯된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한-미 당국은 이런 점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최후까지 대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


박근혜 당선인은 보고를 받을 때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외면할 때도 있지만 드문 일이다. 보고하는 사람은 애가 탄다.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거짓말은 불가능하다. 다시 부르면 합격이고, 다시 부르지 않으면 잘린 것이다.
사람을 쓰는 방식도 독특하다. 몇 사람을 몰래 눈여겨보아 두었다가 ‘능력이 있고 믿음이 간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기용한다. 개인적인 인연은 따지지 않는다. 당사자가 이유를 물으면 “당신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발탁된 사람은 감격에 겨워 충성을 다하게 되어 있다.
그는 이런 용인술을 청와대 시절 아버지에게 배웠을 것이다. 아버지를 따라 청와대에 들어간 1963년 그는 11살이었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퍼스트레이디’와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는 운명의 짐을 짊어진 1974년엔 22살이었다. 10대와 20대의 기억과 감수성은 평생을 지배한다. 박근혜 당선인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국무총리가 아니라 장관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할 것이다. 장관들은 열심히 일만 하면 된다. 각 부 내부 인사권은 장관에게 준다. 재임 기간도 지금보다 훨씬 길어질 것이다.”
최근 당선인 주변과 새누리당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박정희 시절 그랬듯이 ‘장관의 시대’가 온다는 얘기다. 박정희 이후 대통령들이 단기간에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해 청와대 비서실을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키워 놓았다는 친절한 설명도 붙는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박정희 시절 장관이 막강했던 이유는 입법부의 견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은 중앙정보부를 통해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지배했다. 법률이 필요하면 만들면 그만이었다. 국회는 통법부였다. 행정부 절대우위의 구조에서 장관의 힘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전혀 다르다. 과거 장관의 재량이었던 영역은 대개 법률의 영역이다. 장관에게 필요한 능력은 입법부, 특히 야당에 대한 설득력이다. 대통령도 대국민, 대국회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이 커진 것은 여러 부에 걸치는 복잡한 현안이 늘어나면서 정책 조정 기능이 중요해진 탓이다. 청와대를 약화시키려면 총리실을 강화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행정부 절대우위의 구조’, ‘장관의 시대’는 다시 올 수 없다.
박근혜 당선인이 아버지에게 배운 지식과 경험만으로 국정을 밀고 가려 하면 파멸할 가능성이 높다. 1970년대 방식은 2010년대 시스템을 작동시키지 못한다. 다행히 그는 정치인으로서 아버지보다 우월하다. 1998년 이후 정치와 정책에서 수많은 좌절과 성취를 겪었다. 민주주의 시스템을 체험한 것이다. 그는 여성이다. 여성적 리더십은 경청과 공감, 설득을 본질로 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박정희 리더십과 박근혜 리더십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걱정이다.

과거회귀 현상은 야당에도 나타나고 있다. 총선과 대선에서 잇따라 패한 민주통합당에서는 최근 ‘김대중 시대’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꿈틀거린다. 주말 워크숍에서 몇몇 참석자들은 “총재 같은 대표를 선출하고 최고위원들을 없애는 단일지도체제”, “대표와 당 5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부 체제”를 제안했다. 확고한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명분이다. 일리가 있다. 집단지도체제는 정치적 지분을 가진 몇몇 세력의 과점을 뒷받침하는 제도였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에는 강한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리더가 없는데 느닷없이 독점체제를 도입하면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워크숍에서 많은 참석자들은 모바일 투표 폐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까지 현장 투표에서 발생했던 조직 동원과 돈봉투의 폐해를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쩌자는 것일까?
과거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과거에서 현재의 해법을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창조적 리더십이 절실한 시대다.
 

< 한겨레신문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


크리스마스 휴일을 가족과 보내려고 멀리 캘거리에 사는 아들아이가 집에 왔다. 날이 밝으니 아이가 차고 깊숙이 들어있던 낚싯대를 끄집어 내며 낚시를 간다고 준비를 했다. “아니 이 겨울에 오자마자 웬 낚시?” 하면서 남편과 서로 얼굴을 쳐다 본다. 떨어져 있어 잊고 있던 아들의 모습이 확 다가온다. 어려서부터 아들아이는 항상 무언가 한가지 일에 관심을 가지고 큰 열정을 쏟아 붓곤 했다. 그 관심거리는 나이에 맞게 변하기도 하지만 한번 좋아지면 몇 년씩 그 일에 매달린다.
 
초등학교 3, 4 학년쯤, 아이가 한창 스키타기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우리는 스키장 근처에 있는 시골에 살고 있었다. 아이는 패스를 사가지고 일주일에 닷새를 밤마다 스키장이 문을 닫을 때까지, 눈동자까지 아파오는 추위 속에서 스키를 타곤했다. 겨울이 지나고 3월 봄방학이 되었다. 그 날은 비가 너무 쏟아져 결국 사람들을 산 위로 나르는 스키리프트가 다 멈추고 말았고, 사람들은 모두 비를 피해 건물 안에 모여있었다. 헌데, 어디를 둘러봐도 우리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애타서 아이를 찾는 엄마가 안타까워 주변의 사람들이 유리창에 얼굴을 붙이고 창 넘어로 아이를 찾는 일에 동참했다. 그때 높은 산 봉우리 위에 작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그 작은 점은 천천히 아래로 움직이고, 곧 빨간 쟈켓을 입은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줄줄내리는 비로 빙판처럼 된 산을 열심히 내려오더니, 중간에서는 아예 스키를 벗어 들고 걸어 내려왔다. 빈 산을 향해 눈을 고정시키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해 아이는 과학시간 숙제인, 유명한 발명품으로 ‘스키’를 택했고, 영어시간에 발표했던 4편의 시(詩)도 ‘스키’를 중심으로 썼고, 불어 시간의 작문도 ‘스키장’을 주제로 삼았다. 이 정도가 되면 학교에서는 물론 이웃 사람 모두가 아들아이가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지 알게 되고, 스키장에 가려면 우리 아들부터 부른다. 이 못 말리는 아이를 엄마와 이모들은 ‘한 사랑’ 이라 별명을 붙여 주었다. 타고 난 성격이 호기심이 많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묻고 사는 아들은 언제 봐도 신나게 싱글벙글 살아간다. 하지만, 옆에서 보는 엄마는 늘 엉뚱한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아들이 불안하게만 보였다. 더구나 시골에서 자라서 훗날 도시의 대학에도 가고 우리가 기대하는 직종도 가지고, 사회에 기여하며 살려면, 아이가 더 큰 야망을 갖고 그것을 준비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 안에서는 늘 ‘현재의 행복’ 과 ‘미래의 성공’ 이 티격 태격 했다.
그 아들 ‘한 사랑’이도 이제는 성인이 되어 지난 여름에는 한 여인의 남편이 되었다. 어린 꼬마가 가지고 있는 어이없는 열성을 놀리며 붙여주었던 그의 별명이 이제는 어릴 적 관심사를 넘어, 그의 삶에 들어선 사람들을 향한 마음을 일컫는 이름도 되었다. 아들은 10학년에 만난 아가씨와 13년이란 오랜 세월을 보내고 결혼을 하였다. 그 사이 그들은 학우였고, 친구였고, 연인들이었다. 어찌 보면 단순하게 주위에서 소중한 것을 발견할 줄 아는 그는 이미 그것들을 사랑하는 훈련의 연륜이 깊은 듯하다.
 
한 세대를 먼저 산 엄마도, 가만히 지켜보니 늘 삶에 만족해 보이는 아이가 은근히 부러워진다. 그 타고난 열정이야 쉽게 흉내 낼 수 없겠지만, 아이가 하는 것처럼 가까운 곳에서 나를 기쁘게 하는 일들에 마음을 쏟아보고 싶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크고 작은 스크린을 통해서 하루 종일 나에게로 전해진다. 나는 지인들과 숲을 걷는 일을 즐기는데, 마음은 남미의 정글이나 동유럽의 고풍스런 도시들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서 성급해진다. ‘한 사랑’식으로 하면 나는 매일 내가 갈 수 있는 숲들을 모두 찾아내어 비에 젖은 숲도 걷고, 안개 낀 숲도 곳곳을 둘러보면서 숲의 다른 모습들을 체험하고 사랑하게 되어 그 곳을 나의 안식처로 만들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괜찮은 새해의 바램이다.

< 김인숙 - ‘에세이 21’로 등단,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심코 가톨릭교육청 언어치료사



미국에 살면서도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 미국인들의 총기소유에 대한 관대함이다. 한발 더 나아가 보수적인 미국인들은 총기소유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떠받들고 있다.
미국에서 총기로 인한 인명사고는 그야말로 일상다반사다. 몇 명 정도 사망으로는 전국 뉴스에서 짧게 다뤄지기도 어렵다. 브래디 캠페인이란 단체에서 작성한 2005년 이후 3명 이상 사상자를 낸 총기사고 목록은 장장 64쪽에 달할 정도다. 너무 자주 일어나서 이제는 다들 무감각해진 것이다.

하지만 2011년 애리조나 투손에서 일어난 국회의원 기퍼즈 저격사건과 2012년 7월 콜로라도 오로라의 심야극장 총기난사사건은 거의 몇주간 미국을 뒤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대참사가 일어났는데도 총기규제 이야기는 잠시 거론되다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한국 같았으면 이런 사건이 한번만 발생했어도 강력한 총기규제법안이 즉각 입안되는 등 난리가 났을 텐데 외국인으로서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 지난해 12월 코네티컷의 샌디훅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로 6~7살의 어린 영혼 20명과 어른 8명이 한꺼번에 세상을 등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후 잠시 자숙하는 듯하던 미국총기협회(NRA)는 기자회견을 통해 “총을 든 악인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착한 사람들이 총을 들어야 한다”며 미국의 모든 학교에 총을 든 경비원을 배치해야 한다는 궤변을 일삼고 있다. 또 오히려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나서 뉴스가 되면 될수록 총기와 총알은 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총기규제가 발효되기 전에 미리 총기를 구입해두려는 대중의 심리 때문이다.

총기규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총기소유 옹호론자들은 “총기소유는 수정헌법 제2조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라며 강력히 반발한다.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라는 것이다. 또 미국의 내 지인들은 집안 대대로 총을 물려받아 왔으며 사냥이나 스포츠용으로, 그리고 호신용으로 총기소유가 일반화된 미국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총기를 가지고 있는 가정이 총이 없는 가정보다 더 위험하다. 의도치 않게 그 총기가 자녀나 제3자의 손에 들어가면서 우발적인 사고가 나거나 자살의 도구로 이용되곤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얼마 전 뉴욕에서는 8살짜리 초등학생이 몰래 엄마의 권총을 가지고 학교에 등교해서 난리가 난 일도 있다.
더구나 수십발 연속발사가 가능한 기관총 등의 첨단무기가 대량으로 판매되면서 총기사고의 인명피해 규모도 더 확대되고 있다. 도대체 호신용으로, 사냥용으로 왜 자동기관총이 필요할까. 10연발 이상의 탄창이 왜 필요할까. 그리고 모두가 호신용으로 총을 소지해야 한다면 우리는 학교에서도, 극장에서도, 식당에서도, 어디에서나 모두 총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총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은 안전하기는커녕 더 위험해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려고 요즘 미국의 교사들은 총기 사용 및 대응 방법을 익히는 모의군사훈련을 받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건 거의 전시상황이다.

다행히도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에야말로 총기규제에 대해 단호한 자세를 취하겠다고 한다.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은 157가지 반자동 총기와 10발 이상 대용량 탄창을 규제하는 법안을 막 발의했다.
온라인 잡지 <슬레이트>에 따르면 샌디훅초등학교의 비극 이후 겨우 한달 반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 총기로 인한 사망자는 1300명이 된다고 한다. 이번에야말로 미국이 이런 비극의 악순환을 끝내기를 기대한다. 

< 임정욱 - 다음 커뮤니케이션 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