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불똥이 급기야 새누리당 쪽으로 옮아붙었다.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와 함께 대선 여론조작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아무개씨가 과거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물론 이씨의 활동은 오래전 일이긴 하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간부가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불법 댓글알바팀을 운용한 사실이 있어 이씨의 지난해 활동이 새누리당과 무관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김씨와 이씨가 13살이나 차이가 나 과연 어떤 경위로 아이디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는지 등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번 사건과 새누리당의 관련 여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서울시 선관위가 대선 직전 검찰에 고발해 이달 초 구속기소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국정홍보대책위 윤정훈 총괄팀장의 여의도 오피스텔에선 박근혜 후보 명의 임명장 두 상자와 입당원서 등이 발견된 바 있다. 새누리당 선대위 국정홍보대책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이 사무실 임차비용을 부담하는 등 정황상 당 차원의 개입 의혹이 짙었으나 흐지부지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이번 사건은 국정원을 중심으로 한 조직적인 여론조작, 선거개입 행위였을 가능성이 크다. 정당한 활동이라는 국정원 주장과 달리 이씨는 잠적상태이고, 김씨가 올린 정치 관련 댓글들이 상당수 삭제되는 등 증거인멸 시도도 있었다. 이처럼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가는데도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하고 인지수사 권한이 있는 검찰은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과 새누리당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새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박 당선인이 계속 침묵하는 건 사실상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에 반대한다는 공개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는 진상규명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을 암묵적으로 수사기관에 전달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점에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대선 국면에서 문제의 국정원 직원을 비호하며 민주당 쪽의 문제제기를 인권침해라고 공격했던 박 당선인의 이런 태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기문란에 가까운 정보기관의 선거개입 의혹을 모른체해놓고 어떻게 법치 운운할 수 있겠는가.
민주당은 어제 이번 사건과 관련한 당 차원의 진상조사특위를 당 공식기구로 격상시켜 지속적인 진상규명 활동을 하기로 했다. 공정선거는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제1의 핵심 요소다. 민주당은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켜낸다는 차원에서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번 사건의 진상만큼은 밝혀낼 책임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새 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에 허태열 전 새누리당 의원을 내정하는 등 청와대 일부 참모진 인선 내용을 발표했다. 내각 인선에 이어 청와대 주요 보직 인사를 확정함에 따라 차기 정부를 이끌 체제의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지금까지의 인사 내용을 총체적으로 평가하자면 간신히 낙제점을 면한 수준이라는 박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전문가 위주의 안정적 진용을 꾸리려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애초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인사다.
 
우선, 국민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는 인사와는 거리가 멀다. 새 정권의 첫 내각·청와대 인사는 자신을 도와 국정운영을 함께 할 사람을 찾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국민에게 비전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정치행위이기도 하다. 국민은 인사에 깃든 메시지를 보고 때로는 감동도 받고 희망의 불씨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인사 과정에서부터 국민과 철저히 단절됐다. 게다가 사전 검증도 부실해 후보자들의 도덕성 의혹이 연일 양파껍질 벗기듯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 전체적 반응이 심드렁할 수밖에 없다.
박 당선인이 애초 대탕평이니 대화합 인사니 하는 말을 왜 꺼냈는지도 의아하다. 이는 단지 호남 출신 인사 비율이 낮다는 따위의 이유에서가 아니다. 지역과 이념, 세대 간 갈등을 치유하려는 노력도, 널리 인재를 구해 나라의 역량을 한군데로 집결시키겠다는 의지도 발견하기 힘들다. 오히려 “민주당은 빨갱이의 꼭두각시” 따위의 색깔론과 지역갈등 조장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인물을 청와대 비서실장에 내정하는 등 끝까지 국민화합에 역행하는 인사를 강행하고 있다.
 
박 당선인이 시대적 과제를 무엇으로 설정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지금까지의 인사 내용을 보면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변화와 혁신을 향한 역동적 에너지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노사 문제 등 각종 사회적 난제들의 엉킨 실타래를 풀려는 강한 열정도 엿볼 수 없다. 국가의 안정적 관리에만 치중하기에는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너무 엄중한데도 박 당선인은 자꾸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나랏일을 대통령 혼자 주도하는 ‘나홀로 국정운영’에 대한 우려도 더욱 커졌다. 중량감이 떨어지는 각료 후보자들의 면면을 볼 때 앞으로 국정운영은 대통령이 앞장서 이끌고 내각은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부수적 역할에 머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더욱이 청와대 참모진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예스맨’들로 꾸려질 조짐이 뚜렷하다. 시대에 뒤떨어진 ‘만기친람(萬機親覽) 형’ 국정운영의 폐해가 참으로 걱정스럽다.


[한마당] 한국엔 인재가 그렇게 없나

● 칼럼 2013. 2. 23. 19:03 Posted by SisaHan
지난 16일 서울에서 열린 신라사학회에서는 서기 774년 당나라 장안(지금의 시안)에서 죽은 신라 왕족 김일용이라는 사람의 묘지명(墓誌銘) 발견 사실이 발표돼 관심을 모았다. 김일용은 당에 들어가 황제를 받드는 종3품 벼슬을 지내다 현지에서 죽었고,「조정을 받들어 섬기는데 만국보다 솔선하니 천자가 칭찬했다」고 세상을 떠난 김 씨를 황제가 크게 칭송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한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200여년 전에 중국이 ‘이중국적자’를 황제의 측근 고위직에 거리낌 없이 기용했고 그가 황제의 총애까지 받았음을 묘지명은 입증해주고 있다. 그런데,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요, 세계적 추세가 이중국적 허용 쪽으로 가는 21세기에, 요사이 우리는 왜 ‘시대착오적’인 이중국적 논란에 시끌벅적 한가?
 
미국에서 벤처성공 기업인으로 유명한, 특히 한국인 이민자로 자랑스런 1.5세인 김종훈 씨가 모국의 박근혜 정부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국내외에서 찬반논쟁이 뜨겁다. 미국의 한인총연합회라는 단체는 아예 ‘청문과정에서 이중국적에 시비를 걸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위협까지 하고 있다. 
사실 디아스포라 한인으로 모국의 부름을 받아 공직에 봉사할 기회를 얻은 데 대해 반대하고 기분 나빠할 이유는 없다. 허용해가고 있는 마당에 이중국적으로 장관이 될 수 없다는 명분도 약하다. 더욱이 ‘미래창조과학’이라는 어감에서도 벤처 성공신화를 이룬 IT분야 전문인에 대한 기대 또한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김종훈 씨의 경우 차분히 따져보고 신중히 결정해야 할 근거가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선 그는 엄격히 말해 이중국적자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보도에 따르면 15살 때부터 40년 가까이 미국적으로 살다가 장관후보자로 임명되기 며칠 전인 2013년 2월14일에야, 일반인은 3개월 이상 걸리는 절차를 특혜와 편법으로 불과 3~4일 만에 처리받아 한국국적을 회복했다. 그리고 아직 미국적을 가지고 있으니, 이중국적은 겨우 일주일째다. 그는 가족은 그대로 둔 채 혼자만 한국적을 갖겠다고 당당히 말했다. 수년전 총리후보자가 자녀의 미국적에 트집잡혀 낙마한 전례와 대비될 뿐더러, 장관을 그만두면 다시 미국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의 기업과 삶의 터전이 미국이기 때문일 게다.
 
그는 미국에 살면서 충성스런 미국인으로 활동했다. 미국 해군장교로 7년간 복무하며 핵잠수함에 근무해 정예 기밀도 접했다. 그에게 한국인의 피는 흐를 지언정, 머리와 가슴에는 미국이 자리잡았고, 미국에 대한 애국심도 외쳤다. 공직자에게는 위민위국(爲民爲國)의 영혼과 충성심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국민과 국가를 위해 멸사봉공해야 할 핵심부처의 장관이, 미국철학과 미국 충성심에 절어있는 사람이라면 말이 안된다. 
그는 특히 미국 중앙정보국 CIA가 설립한 벤처캐피털 회사창립에 관여하고 이사를 지낸 사실과 자문위원 활동도 확인됐다고 들린다. 그의 인맥들은 미국의 고위인사가 대부분이다. 한국 과학 연구개발 정책을 총괄할 부처의 장관이 미국 정보기관 연계설이 나온다면, 한국의 첨단 과학정보, 정부의 기밀들에 대한 보안에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는 이중국적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정신과 미국 국익속에 살아 온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는 또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기업인일 뿐이다. 일국의 국정을 책임지는 최고 행정기관과 관료사회의 수장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전혀 모른다. 기업성공이 정부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음은 CEO출신에 기대를 걸었다가 너무 큰 낭패를 본 지난 5년의 MB사례 만으로도 설명이 족하다. 사회적 관습과 문화는 물론 한국 관료사회의 특성에 문외한이기에 더욱 불안하다.
 
무엇보다 왜 우수한 자국인이 많은 데도 미국인을 장관으로 모셔야 하느냐는 것이다. 혈맹도 좋고 친미·종미도 좋지만, 민족적 자존심도 돌아봐야 한다. 미국을 선망하고 좋아하다 못해 한국과 동일시하는 습성에 빠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미국의 국익이 한국의 국익과 일치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전후 일본에 독도를 양보하고 군사 독재정권들을 용인한 미국의 국익은 철저히 그들 중심인데도 말이다. 
앞서 신라의 김일용처럼 외국에 나가 공직을 맡은 사례는 더러 있지만, 외국인을 정승반열에 앉힌 역사적 사례는 일제와 미군정, 식민이나 조공을 바치던 시절 외에는 없었다. 영국이 캐나다 중앙은행장을 스카웃한 것과도 경우가 다르다. 캐나다는 영국여왕이 국가원수인 연방국이다. 
지금 한국이 미국의 속국인가. 따져보면 김종훈 장관영입은 단견이요 국가적 수치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 김종천 편집인 >

 

[1500자 칼럼] 당당함에 대하여

● 칼럼 2013. 2. 18. 20:33 Posted by SisaHan
우리는 지금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 살고 있다. 캐나다의 다른 어느 도시 보다 토론토가 심한데, 이런 다양한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다른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기보다 당당한 한국인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자랑스럽다고 말하면 왠지 남을 존중하기 보다 자신의 우월성을 앞세우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세대차이랄까? 요즘 여기서 태어났든, 한국에서 왔든, 젊은이들을 보면나처럼 나이 든 사람의 눈에는 건방져 보이기도 한다. 건방진 것과 당당함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찌보면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당함이란 어떤 상황에서 누가 뭐라든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언제, 어느 장소, 특히 누구 앞에서든…. 솔직히 이 당당함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부족하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 세대에서는 당시의 사회적인 제도와 교육환경 자체가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여건이 아니었다. 어디서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위 아래 질서를 강조하는 유교의 전통 때문인지, 집에서는 집대로, 학교에서는 학교대로 그 어떤 위치의 차이가 있어 알게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을 못했고, 선배 앞에선 우리는 아예 입을 다물어야 했다. 튀어 나온 못이 먼저 망치에 머리를 맞는다는 말처럼….
 
인간관계가 수직이 아닌 수평이라는 이곳에 와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할 말 다 하지 못하고 살았다. 새 환경에 적응하는 문제도 문제였지만, 다른 언어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우선 서있을 자리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짧은 언어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경우에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내 알게 되었지만, 이 사회는 무슨 일이든 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고 말을 해야 했다. 아무도 점잔 빼느라고 눈치보며 입 다물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와서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제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세계로 나오고 있다. 공부를 위하여, 취업을 위해, 그리고 예술 공연을 위해, 우리 때와는 달리 나는 그들이 많이 당당해져 있음을 본다. 그만큼 나라가 부강해졌고, 국민들이 자신감을 가진 탓이리라. 나는 사실 K-POP을 좋아하지 않는다. 싸이(Psy)의 말춤 조차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남들이 하도 이야기하고 신문에 나와서 뒤늦게 알았다. 
그래도 관심 밖의 일이지만, 그가 Ellen Show에 출연한 것을 우연히 보고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느 날 오후 좀처럼 토크쇼를 보지 않는 내가 TV를 켜놓고 있는데, 그 유명한 아메리칸 아이돌의 사이먼이 보이고 싸이가 나왔다. 그가 등장했을 때, 내가 보기에는 엘렌의 실수였다. 관중들이 다 알고 있다 해도 처음 무대에 나온 사람을 소개하는 것이 사회자로서 기본 예의였다. 웬 까닭인지 그녀는 그런 기본 절차를 잊어버리고 프로를 진행하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싸이가 그녀를 제지하면서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Let me introduce myself.”, “I am Psy from Korea.”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싸이가 너무 당당해 보였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고 상대가 누군가를 떠나서 할 말 하는 것을 보고 참 기뻤다. 만약에 나라면 그런 자리에 초대받을 리도 없고, 설사 초대 받았다 해도 상대방의 실수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그녀가 말하는 대로 따라 했을 것이다. 나는 그 자연스런 그의 행동을 보고, 그가 세계를 향해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자랑스럽게 외친다기보다 그냥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서있는 것 같았다.

우리 젊은이들이 모두 싸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당당하게 서고, 경우에 따라서 주눅 들지말고. 할 말 하는 자신감이 있으면 참 좋겠다. 그것이 진정 세계 속의 한국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