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전격 사퇴했다. 각종 부동산 투기와 두 아들의 병역 문제 등 자고 나면 불거지는 의혹들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새 정부 초대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도 서보지 못하고 자진 사퇴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사의 ‘대참사’라 할 만하다. 새 정부 구성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총리 인선부터 사달이 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박 당선인의 ‘나 홀로’ 인사 스타일 때문이다. 극도의 보안을 강조하면서 몇몇 비선들과 인선을 하다 보니 검증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다. 김 후보자가 문제된 것은 부동산과 병역인데, 이는 검증의 기초에 속한다.
 
박 당선인은 도대체 누구와 어떻게 총리 인선 작업을 한 것인가. 여권에서는 김 후보자 인선 과정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가 거의 없다. 그저 발표하는 순간까지 박 당선인의 얼굴만 쳐다보는 격이다. 김 후보자뿐만 아니라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등 박 당선인의 손을 거친 인사치고 제대로 된 인사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래서는 한 나라의 정상적인 공직자 인선 시스템이라 보기 어렵다.
박 당선인이 아버지한테 어떤 인사 방식을 배웠는지 모르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박 당선인이 지금까지 보여준 주먹구구식, 구멍가게식 인선으론 안 된다. 하루빨리 인선 시스템을 정비해 체계적으로 여론을 수렴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스템도 문제지만 자기 사람만 챙길 것이 아니라 널리 사람을 찾고, 필요하면 삼고초려도 한다는 낮은 자세를 갖추는 것도 시급하다.
 
이번 총리 후보자 사퇴 파동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헌법정신에 투철한 인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박 당선인이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김 후보자를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에 이어 인수위원장, 총리 후보자로까지 데려다 쓰려 한 것 자체가 헌법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컸다. 헌법기관인 대법관이나 헌재소장 등은 주어진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소신껏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공직자들의 도덕성 검증 잣대도 더욱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장애를 극복한 김 후보자의 개인적 역정이 다른 이들의 귀감이 되어왔지만, 그가 공직자로서 살아온 삶은 미흡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김 후보자에게서 드러났던 몇몇 문제들을 그저 과거 공직자들의 관행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공직을 맡는 사람일수록 주변을 늘 깨끗이 해야 한다. 이번 파동이 공직 사회가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무리는 원래 도덕이나 염치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지난 5년간 그들이 저지른 온갖 추잡한 짓들로 나라는 병들고 사회정의는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그 악행의 구린내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 대통령이 ‘파렴치함의 종결자’로 나섰다. 온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최시중·천신일씨 등 측근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강행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강만수씨 등 측근 129명한테 무더기로 훈장까지 수여했다.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력은 국민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국민이 준 공적 권한을 끝까지 사적인 용도로 활용했다. 사면권은 파렴치한 권력형 범죄로 구속된 측근들을 위한 설 선물용으로, 훈포장 수여권은 자기네들끼리 흥청망청 즐기는 잔칫상 음식이 돼버렸다. 온 국민이 손가락질해도 개의치 않겠다는 뻔뻔함에다 ‘너희가 나를 어찌할 건데’ 하는 오기와 배짱마저 느껴진다. 이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의무 대신 측근과 부하들에 대한 뒷골목 의리를 선택했다.
 
이 대통령의 처사가 더욱 괘씸한 것은 특별사면을 발표하면서 어처구니없게도 ‘법과 원칙’을 운운한 점이다. 그는 사면권 남용으로 사법부를 능멸하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유히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특권층을 보면서 이 땅의 서민들은 무력감과 법적 허무주의에 빠져버렸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에도 법과 원칙을 들먹이며 자신한테 반대하는 숱한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가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결코 법과 원칙 따위의 말을 입에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에도 역시 천박한 장사꾼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인 서청원씨를 사면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단적인 예다. ‘당신의 측근도 사면할 테니 내 측근 사면도 눈감아 달라’는 거래와 흥정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야당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야당 출신 정치인도 몇몇 사면 대상에 넣었다. 그러면서도 용산참사 구속자는 6명을 다 풀어주지 않고 한 명은 제외했다. 최시중씨 같은 파렴치한 권력형 범죄자는 척척 풀어주면서도 막상 사회통합을 위한 진정한 사면에는 인색했다.
 
이 대통령의 특별사면 강행을 보면서 박근혜 당선인의 책임 문제도 함께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이 아무리 간이 크다고 해도 당선인이 강하게 반대하면 사면권을 함부로 휘두를 수 없는 것이 권력의 생리다. 박 당선인 쪽이 사면에 대한 반대의 뜻을 밝히기는 했지만 과연 얼마나 진정성이 있었는지 회의가 드는 이유다.
이제 이 대통령 자신을 포함해 현 정권의 부정부패 혐의에 대한 전면적 재조사는 차기 정부의 불가피한 과제가 됐다. 그것만이 무너진 정의와 법치주의를 다시 바로 세우는 길이다. 임기말 폭거를 수수방관하고 지나치면 역사에 영원히 나쁜 선례를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마당] 그의 별은 빛나는가

● 칼럼 2013. 2. 2. 18:34 Posted by SisaHan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가야만 하는 길의 좌표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별빛이 그 길을 환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시대의 하늘에 먹장구름이 드리울 때마다 떠오르곤 하는 죄르지 루카치의 한마디다.

“저는 국토해양부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사이비 과학자입니다. 매우 소심하고 마음 약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운을 뗀 그의 양심선언은 과연 시작부터 소심했다. “이 얘기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보안각서 위반이기 때문에 불이익과 법적 조처, 국가연구개발사업 자격이 박탈될 것입니다.” 그런 그가 용기를 냈던 것은 “국토의 대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아들딸 보기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제대로 된 전문가라면 (4대강 정비사업으로 포장된) 운하 건설로 인한 대재앙은 상식적으로 명확하게 예측됩니다.”

그 선언은 어둠 속 별이 되었다. 하지만 루카치의 말처럼 그는 홀로 된 영혼이었고, “(그는) 천상의 별을 형제로 가질 수 있지만, 지상의 동반자를 가질 순 없”었다. 화가 반 고흐가 그랬고, 시인 윤동주가 그랬다. 생레미 요양원에서 그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별마저 고독과 불안에 떨고 있다. 윤동주는 그 높고 크고 거룩한 뜻으로 말미암아 그가 헤던 별처럼 더욱 고독해야 했다.

그는 차단되고 그에게는 협박과 정신적 테러가 이어졌다. 국정원 조사까지 받은 것은 약과였고, 중징계(정직 3개월)는 시작이었다. 인사평가 최하위의 굴욕이나 연구과제에서의 배제 역시 버틸 만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동료들을 팔아 궁지로 몰아넣는 상급자의 저주는 그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들은 심지어 대운하 양심선언이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판단이라는 해명서를 게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영혼을 저잣거리에 버리라는 것이었다. 사퇴 압박이 뒤따랐지만, 파면당할지언정 사직은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의 동료들을 들들 볶는 것은 더 비열했다.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 개최를 막았다고, 심지어 노조 창립 기념식을 천안함 추모 기간에 열었다는 이유까지 들어가며 노동조합 지부장을 파면하고 사무국장을 중징계 처분 하기도 했다. 법원 판결로 무효가 되긴 했지만, 그를 보호하려던 노조 조합원들은 승진·전보 등 인사상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그 결과 92%에 이르렀던 노조 가입률은 불과 2년여 만에 18% 정도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의 곁에 노조가 있고, 누리집엔 김이태 지키기 카페도 등장했지만, 홀로 정권에 맞선 데 대한 책임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그의 아내는 이런 글을 누리집에 올렸다. “일을 시작하고부터… 헛소리에 밥 먹는 것도… 거부. 밤마다 헛소리하는 남편의 잠꼬대 소리로… 가슴이 철렁. 이후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남자.” 일하다가 맨홀 뚜껑에 엄지발가락 윗부분이 절단되어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는데도 산재 처리도 못했던 그 남자는, 어느 겨울날 거리를 헤매는 치매 노인을 집으로 모셔와 한 이불 덮고 잤던 인물이었다. 그 누이가 카페 회원들에게 ‘벌벌 떨리는 손으로 쓴 감사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가족도 겁이 나서 오빠에게 제대로 연락도 못하고 인터넷에 지지 글이나 서명도 못했습니다.”

계몽은 집단적 욕망 앞에서 빛을 잃고, 이성은 권력의 발바닥이나 핥고, 영혼은 누더기가 되어 버려졌던 시절, 온통 먹구름이 하늘을 가렸지만, 그의 양심은 별이 되어 가야 할 길, 갈 수 있는 길을 일러줬다. 그는 수난을 당했지만, 가슴만 끓이던 이들은 그 마음에 별과 양심의 기억을 하나씩 간직할 수 있었다. 엊그제 정권 이행 과정에서야 감사원이 돌연 4대강 사업의 재앙의 가능성을 인정했다. 흘러가는 먹장구름 사이로 문득 별빛 하나 천강을 밝힌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창공의 먹구름이 걷힌 것은 아니다. 차기 정권은 더 크고 짙은 먹구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빛이 가려질 뿐,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빛나는 양심 또한 그렇다. 김 연구원, 안녕하신가. 별은 빛나는가?

< 한겨레신문 곽병찬 논설위원 >


[1500자 칼럼] 맹자를 읽으며

● 칼럼 2013. 1. 22. 19:24 Posted by SisaHan
세상은 지금 세계적인 불황속에 격변하고 있으며 중국이 정치, 경제적으로도 어느덧 일본, 독일을 누르고 미국과 거의 대등한 대국으로 자라나면서 세계의 이목이 중국으로 집중되고 있다. 중국이 그 동안 금지하였던 유교적 가르침를 부활시키고 장려하면서 이제는 오바마 대통령이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공자나 맹자의 말씀을 인용하며 연설을 할 정도로 세상이 달라졌다. 
2013년 계사(癸巳)년 새해를 맞이하며 올해의 New Year’s Resolution을 무엇으로 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담배를 끊는다거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더 많이 보낸다거나 아니면 더 나아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volunteer 일을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올해에는 오래 전부터 마음만 먹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던 ‘고전 읽기’로 정하였다. 
지난해 한국에 갔다가 대학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약학도임에도 대학 때부터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에 흥미를 느끼고 꾸준히 공부를 하여 「노자 제대로 읽기」 등 라오쯔에 관한 책만 세권을 낼 정도로 나름대로 그 방면에 대가가 되어 있었는데 그가 돌아오는 내 배낭에 맹자를 넣어주었다. 
고등학교 때에 논어, 대학, 플라톤의 대화 따위의 책들을 수박 겉핡기식으로 읽은 기억이 났지만 맹자는 우선 그 책이 두껍기도하려니와 이름이 풍기는 바 내용이 너무 낡고 무거울 것 같아서 정신이 맑을 때에 정독을 해야지하고 버려두었었다.
 
조선의 개국과 동시에 새로운 정치이념 으로 받아들여져 오백년 동안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오늘의 나의 인생관에도 큰 영향을 주어온 유교사상을 나는 어느정도나 알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문득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왜 우리 역사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지 백여년 밖에 되지않는 서구 기독문명권의 성경에는 열광하며 통독하다 못해 필사까지 하면서 수백년 동안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동양의 고전은 소수의 사람만이 연구를 위하여 읽고 있는것일까? 물론 이 책들은 한문으로 쓰여져 읽기가 힘들고 배후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다고하나 오늘날과 같이 정보공유가 손쉬운 인터넷시대 에는 클릭 한번으로 한문 원전과 함께 수많은 한글, 영문 번역본을 찾아볼 수 있다. 
맹자의 공생활 15년간의 일들을 기록한 책, 맹자를 읽어보면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신약성경처럼 사려 깊고 신중한 맹자의 행적과 대화들이 문답식으로 적혀 있어 흥미로울 뿐 아니라 읽고나서 사회, 도덕적인면에서 그 뜻을 다시 생각케하는 깊이와 여운이 있다. 그래서 율곡 같은 옛 선비들도 하루에 한장씩 읽고 그 뜻을 음미하였다는 것처럼 맹자는 그러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요즈음 갑자기 인문과학, 동양사상의 붐을 타고 한국에서는 공자, 맹자에 관한 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나오고 심지어 소설도 출판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아직도 최고의 도덕적 덕목으로 여기고 있는 사단칠정(四端 七情) 외에도 정치를 잘못하여 백성이 굶어죽게된다면 왕도 바꿀 수있다는 혁명적인 생각, 백성을 잘 살게하는 것이 곧 왕도라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인본주의, 자기에게 허물을 알려주면 기뻐하라, 지성이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없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라, 남을 사랑하고 존경 해야 그들도 나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등 인간의 심성을 꿰뜷어보고 개인의 근면을 권하는 많은 말들이 마음에 다가온다. 2400여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험난한 난세에 태어나 제왕들에게 민중을 위한 사람의 길을 설파한, 실패한 Idealist의 담론이 아직도 진리로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아프게 와닿는 이유는 아직도 그때처럼 세상이 어지럽고 모든 사람이 골고루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아직 오지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우리는 동양과 서양, 정신과 물질, 이념과 주의의 구분이 무의미한 세상에 살고 있다. 새해에는 어지럽고 혼탁한 시대를 앞서 헤쳐가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지혜를 동양의 고전들을 읽으며 터득하기를 기대해본다.

< 김영제 - 시인, 시.6.토론토 동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