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민주화 차질없이 법제화해야

● 칼럼 2013. 4. 22. 17:4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국회에서 논의중인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있다. 일부 조항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경제활동의 자유에 배치된다느니,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인들의 기를 꺾어서는 곤란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다. 일부 언론이 증폭시키는 재계의 이런 불만은 근거가 부족하다. 차라리 솔직하게 재벌을 너무 옥죄지 말고 지금껏 해온 관행과 기득권을 유지하게 해달라는 편이 낫다. 문제는 이런 재계의 투정에 정부 여당의 기류가 변화하고 있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경제민주화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면서 법제화 과정에서의 후퇴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지난 대선 때 여야가 앞다투어 공약한 사안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재벌 총수의 전횡이 경제 생태계를 망가뜨릴 정도로 비대해지고 심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반발 기류에 멈칫해 법제화에 차질을 빚는다면 결코 안 될 일이다. 당시 민주당은 순환출자 해소 등 소유지배구조 규제까지 공약했지만 새누리당은 소유지배구조는 손대지 않고 대신 엄격한 행위규제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행위규제마저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은 공수표를 날리는 셈이 된다.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재벌 총수가 탈법적으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기고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치기 위한 것이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징금 부과, 부당하도급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대기업 총수 및 임원 급여 공개 같은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재계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제재 강화에 대해 앞으로 기업의 모든 내부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로 간주할 우려가 있고, 헌법상 선택의 자유와 배치된다고 하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지금까지 ‘현저하게 유리한’ 조건의 거래만 일감 몰아주기로 판단했던 것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수정해 빠져나갈 구멍을 줄인 것뿐이기 때문이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계열사에 대한 부당 내부거래가 적발될 경우 총수가 관여한 것으로 간주해 처벌하는 30% 룰도 가혹하다고 하는데, 부당 내부거래가 은밀하게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 없는 비판이다. 또 총수 일가에게 부당 이득이 돌아가는 내부거래를 금지하자는 것이지, 계열사간 거래를 모두 금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 집단 사익 추구 행위와 부당 내부거래 규제 강화 및 부당이익 환수는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다. 물론 공약도 여야 협의 과정에서 조정될 수는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재계의 불만을 의식해 경제민주화를 후퇴시키는 듯한 지침을 준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적절치 않다.


[사설] 북-미 대화 시작으로 돌파구 열어야

● 칼럼 2013. 4. 22. 17:4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한·미·일 세 나라를 순방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과 직접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머잖아 대북 특사를 보낼 수 있음을 내비쳤다.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맞은 북한도 미사일 발사 등 도발적 행위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조금씩 만들어지는 모양새다. 케리 장관은 이번 순방을 통해 한반도 관련 현안들을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의 대북 특사 언급은 미국이 대화 노선을 세우고 관련국들과 조율하고 있으며 대화 시작에 필요한 조건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 케리 장관은 일본 도쿄공대 연설에서 “북한은 이미 한 약속들을 존중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조처를 취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조처를 북한의 공개적인 비핵화 약속, 핵물질 생산과 미사일 발사 중단 선언 따위로 해석한다. 이런 요구는 타당하다. 북한이 9.19 공동성명을 비롯한 기존 합의가 무효화했다고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이라도 뉴욕 채널 등 양쪽이 적절한 통로를 통해 접촉해볼 필요가 있다.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은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케리 순방 과정에서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미국과 공동행동을 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이 협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전보다 적극 나설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은 중국을 움직이기 위해 아시아·태평양에 배치한 미사일방어 체제의 감축이라는 카드까지 꺼냈다. 중국은 북-미 대화 및 6자회담이 순조롭게 재개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북한 정권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감추지 않았던 일본이 대화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북한은 핵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최대 치적의 하나로 핵 역량 강화가 꼽히는 터여서, 북쪽이 공개적으로 이를 뒤집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쪽이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한 자신이 강조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는 물론이고 경제 건설에 필수인 우호적인 국제 분위기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북쪽은 모처럼 조성되는 대화 분위기에 적극 호응하길 바란다.
우리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다. 우리가 제의한 대화를 북쪽이 일단 거부해 제동이 걸린 상태지만 지금으로선 남북 대화를 포기하지 않되 북-미 대화에 힘을 실어주는 게 한 방법이다. 다음달 초순 한-미 정상회담이 좋은 계기다.

 

[한마당] 남북관계 널뛰기의 연원

● 칼럼 2013. 4. 20. 14:5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정부수립과 6.25동란 이후 극렬 대치상태이던 남북간에 대화통로가 열린 것은 1971년 8월부터다. 미국과 ‘중공’간에 핑퐁외교로 바야흐로 해빙무드가 번질 때였다. 이듬해까지 11차례 열린 남북적십자 회담에서 한적은 북한에 비밀접촉을 제의한다. 그리고 1972년 3월28일 정홍진이라는 인물이 북한을 방문했다. 거기서 합의에 따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5월2일부터 5일까지 북한을 극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다. 이어 북의 박성철 부수상이 5월29일부터 6월1일까지 서울을 비밀리에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것이 남북 당국간 비밀교섭의 출발이다. 
당시 청산가리를 소지하고 평양을 찾은 이후락은 출발 닷새 전 하비브 주한 미국대사에게 방북사실을 통보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측의 답방으로 서울에 온 박성철의 일정을 미국측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가 평양으로 돌아간 사흘 뒤에야 한적 최두선 총재의 귀띔으로 알게됐다고 하비브는 본국에 보고했다. 당시 남북정부 간 대화가 미국과는 상의없이 ‘자주적으로’ 추진됐다는 이야기다. 어떻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역사적인 ‘7.4 남북 공동성명’이었다.

그 후 85년부터 88년까지 남북 국회회담이 열렸고, 89년부터 92년까지는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개최됐다. 설전 끝에 시간만 끌다 마무리된 국회회담과 달리 고위급 회담은 진전이 이뤄졌다. 양측의 총리를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회담을 열어 남북간 화해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본회담과 각 분과위에서 ‘남북간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교환했고, ‘비핵화 공동선언’ ‘군사·경제 및 사회문화 교류합의서’ 와 함께 남북 연락사무소와 남북 화해위원회 설치 등에도 합의했다. 
남북간의 정상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난 것이 최초이며,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0월2일부터 4일까지 역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나 이뤄졌다. 김대중-김정일 회담에서 나온 산물이 ‘6.15 남북공동선언’이며, 노무현-김정일 간에는 ‘남북정상 선언문’이 나왔다.
‘7.4성명’ 이후 큰 줄기의 남북간 접촉은 대략 그렇게 요약되지만, 알게 모르게 남북간에는 수많은 대화와 밀약이 있었다. 그 과정에 역사적인 합의도 여러 번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제 한낱 휴지가 돼버린 화해 문서들은, 90년대 초까지 필자가 판문점 국회회담과 남북 고위급 회담의 평양방문까지 동행 취재하며 역사적 장면들을 보고 겪고 느꼈던 남북관계의 속성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함을 실감하게 한다.
 
남북간의 대화와 합의는 정권 안팎의 사정에 따라 번번이 오용되고 파기되었다. 가령 독재정권 시절에는 정권안보를 노린 ‘북풍’의 일환으로 활용됐고, 민주화 이후에는 통일열망에서, 때로는 정권홍보를 위해 열을 올리다 반작용을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이어오던 맥을 완전 끊어버린 게 이명박 정권이다. 거센 반작용을 기화로 채널마저 완전 단절시킨 최악의 5년을 보낸 것이다. 
그 후유증이 최근의 북한 전쟁위협과 한반도 위기로 증폭된 것이다. 대화와 소통의 차단은 ‘북한 붕괴론’을 근거로 했다, 그러나 북한정권이 무너지기는 커녕 오히려 독 오른 호전광으로 변모시킨 셈이다. ‘퍼주기’를 욕했지만, 막상 전쟁위기에 처해 이에 대처하느라 드는 비용이 소위 ‘퍼주기’ 예산의 몇 배 규모나 된다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어차피 남북관계는 양측의 필요에 의해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 평화를 원하고 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 대화를 꾀하는 일방, 정권내부의 취약성을 호도하기 위해 이용하곤 한다. 특히 북한체제의 경우 늘 그래왔다.
 
그렇게 북한 문제, 나아가 한반도 위기 문제는 남북한이 통일될 때까지는 지속적으로 또 단속적으로 부침을 반복할 것이다. 그 주요 이유 중의 하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든 민주적 시스템의 약점에, 정치지도자들의 대북(對北) 철학 부재를 들 수 있다. 한국도, 미국도, 바뀌는 정권마다 대북정책이 ‘냉온탕’식 널뛰기를 반복하면서 남북관계도 출렁이곤 한다.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정책은 세습정권의 특징 그대로 수십년 동안 본색이 불변인데, 상대는 오락가락인 것이다. 
이번 위기에서 다시금 강조되는 것이 바로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한 정책의 일관성이다. 정권이나 정치지도자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정책으로 북한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 대북 정보기관은 정치와 권력에 절대 휘둘리지 말고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 남북관계에서 깨달아야 할 제 1의 필수 덕목이다. 
< 김종천 편집인 >


[1500자 칼럼] 경험이 없을 때는,

● 칼럼 2013. 4. 16. 14:0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서 가끔 연락이 온다. 잘 키운 두 자녀 결혼을 앞두고 일어나는 일들도 큰 화제거리의 하나이다. 이제는 적령기가 훌쩍 넘은 딸이 사람을 만나 서둘러 결혼을 한다고 하고, 또 연달아 아들까지 사귀어 오던 아가씨와 결혼식을 추진 중인데, 친구 부부에게는 둘 다 자신의 아이들의 배우자로 적당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 된다고 했다. 부부는 아이들의 마음을 돌려보려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타일러 보기도 했지만 두 아이 모두 설득할 수 없을 것 같다며 크게 염려한다. 긴 통화 끝에 친구가 덧붙이는 말은 “아이들은 본인들의 의사대로 결혼을 할 것 같은데,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 어떻게 맘에 썩 내키지 않는 예비 사위와 며느리를 대하여야 할 지 모르겠다” 였다.
 
전화를 끊고 계속 친구의 마음을 되뇌이며, 사람의 만남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아마 수시로 우리 마음으로 스며드는 불확신과 두려움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맺는 인연들을 돌이켜 보면, 미리 준비하고 상대방을 선택하는 일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알지 못하는 미래를 두려워하고 상대방과의 관계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너무 베풀면 공정한 관계가 성립하지 않을 것 같고, 간혹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도 한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조차도 얼만큼의 보호와 사랑의 표현이 아이를 강건히 자라게 할 것인지 전전긍긍한다. 마음으로부터 솟는 자연스런 감정의 표현보다는, 정해진 법도에 따라 행동하기도 하고, 견제하고 또 조심스레 마음을 열어 보이며 관계를 성립해 간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이런 우리의 모습은 직장의 동료는 물론, 친구, 배우자 하물며 부모 자식 간에도 이어지는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게 밀고 당기던 인연도 그것이 끝나는 순간이 오면 여태까지의 염려와 주저함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는지 사무치게 느끼게 된다, 아버지께서 오랜 세월 치매로 고생을 하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력만 잃으시는 게 아니라 성품도 달라지셔서 갈수록 옛 아버지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남에게 의존하며 순간순간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결국 그렇게 의지하시던 어머니가 옆에 계시는데도, 불안하게 아내를 찾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그만 세상을 떠나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하지만 긴 투병 생활 끝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순간 모든 것이 절벽 밑으로 떨어져 일말의 가능성도 남아있지 않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그것은 아버지 삶이 이어지는 가능성이 아니라, 내가 그 분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막막함이었다. 그 때까지 아버지가 무엇을 얼마만큼 기억하실 수 있는가 왜 그리 걱정을 했는가 싶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였는지 생각 못했다는 후회였다.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들, 옆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조카들, 먼저 보낸 친구들, 모든 헤어짐 후에는 아쉬움이 더 크다. 그나마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들과 만들어낸 반짝이는 따뜻한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삶 속에 거듭되는 확신없는 시작과, 후회스런 끝 마침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이제 삶의 연륜이 깊어, 우리가 맺어가는 긴 여로의 끝을 가늠하면서, 살아가는 순간들에 필요한 용기와 지혜를 얻을 때도 되었다. 끝을 보면서 시작을 준비해 보는 연역적인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된다.
며칠 후 다시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훨씬 차분해진 목소리로 ‘어차피 이제는 한 식구가 될 사람들이니, 어른이 두 팔 벌려 보듬어 주어야겠지’ 라고 말한다. 경험도 없고, 만족스럽지 못한 발 걸음을 내 딛으며, 그 여정의 끝을 이해하는 현명한 친구의 마음 다짐이 보인다.

< 김인숙 - ‘에세이 21’로 등단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심코 가톨릭교육청 언어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