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원이 ‘종북’ 등의 용어를 사용해 과도한 색깔공세를 펼치는 행위에 대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보고 잇따라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일부 극우보수단체들이 진보적인 시민단체나 세력을 마구잡이로 ‘종북세력’으로 매도하며 과도한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는 데 대해서는 법적으로 분명한 선을 그어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서울고법 민사24부는 지난 21일 전국교직원노조 소속 교사가 근무하는 학교 앞에서 ‘주체사상 세뇌하는 종북집단 전교조, 북한에서 월급 받아라’ 등의 펼침막을 붙인 승합차를 세워두거나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인 ‘반국가교육 척결 국민연합’ 등에 대해 45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2009년 전교조의 이적성을 알린다며 등교시간에 ‘이적단체 전교조, 6.15 선언 계기수업은 적화통일 세뇌교육이다’ 등의 펼침막과 손팻말 시위를 하는가 하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회견을 열어 “전교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북한을 섬기는 종북 반미집단이다”라는 등의 주장도 폈다고 한다.
지난 15일엔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부가 ‘종북세력들이 전교조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전교조 소속 교사 6만여명에게 보낸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합’에 대해 명예훼손임을 인정하며 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두 사건 모두 극우보수단체들이 전교조의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한 배상 판결이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종북’ 매도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이번 판결을 시대착오적 매카시즘 공세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지난해 대선 때 정치권에서 불붙었던 북방한계선(NLL) 논쟁에서 보듯이 냉전시대 유물인 색깔론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배회하고 있다. 해방 뒤 6,25를 거치며 친일파는 ‘반공’의 방패 뒤에서 살아남았고, ‘빨갱이’란 용어는 친일 기득권 세력에게 자신을 방어하는 훌륭한 무기가 돼주었다. 이것이 오늘날 표현만 바꾸어 ‘종북’으로 다시 살아난 셈이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상의 자유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진보가 없으면 보수도 없다. 아무 곳에나 ‘종북’ 딱지를 갖다 붙이는 것이야말로 체제를 좀먹게 하는 것임을 극우보수단체와 세력들은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 자체가 진보와 보수의 두 날개가 있어야 제대로 날아갈 수 있는 체제란 점에서 이를 원천적으로 부인하는 극단적 행태는 민주제도 자체를 위협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설] 박근혜 새 정부에 바란다

● 칼럼 2013. 3. 1. 14:38 Posted by SisaHan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취임식을 하고 집무를 시작했다. 첫 여성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새 정부가 나라 안팎의 도전을 헤치고 순항하기를 온 국민과 함께 기원한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이어 34년 만에 청와대에 입성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기대에 걸맞게 국민의 마음을 읽고 국민행복과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주기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이 처한 나라 안팎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더욱 강도 높은 대응 협박을 하고 있으며 한반도 주변 정세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의 도발 행위에 철저히 대비하면서 북핵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남북한의 소통과 협력 없이는 한반도 평화는 오지 않는다.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큰 틀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점은 다행이다. 북핵과 대북정책의 연계를 명확히 선언함으로써 한반도 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을 스스로 무장해제해버린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고 통일시대의 기반을 구축하기 바란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는 국민에 대한 약속일 뿐만 아니라 절박한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재벌의 탐욕을 규제하고 시장 질서를 바로잡아 대·중소기업이 공존 상생하는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 온 국민이 땀 흘려 노력한 경제적 성취에 걸맞지 않게 빈약한 복지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것도 엄중한 과제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하지 않으면 경제성장도 사회통합도 불가능한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노사정 대타협 같은 사회통합도 경제민주화의 진정성과 신뢰성이 바탕을 이룰 때 기대할 수 있는 만큼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 약속의 후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민주적이고 여성적인 리더십을 기대한 국민들의 마음이 시험받고 있다. 국민은 나 홀로 국정운영의 독단이 아니라 자신을 찍지않은 48%를 끌어안고 절박하게 고통받는 현장부터 돌보기를 바라고 있다. 법과 질서를 내세워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것은 국민 기대와 가장 거리가 먼 일이다. 권력 전횡과 부패에 추상같이 대하되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인권과 언론자유 등 민주주의 신장을 꾀해야 한다.
 
새 정부는 산뜻한 출발을 하지 못하게 됐다. 각료 인선 등에서 시대교체 구호가 무색하게 실망을 안겨주는 바람에 국무회의가 언제 열릴지 미정인 상태로 출범하게 됐고 지지율도 50% 아래로 떨어져 앞선 5명의 직선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다. 그래도 70%가 넘는 국민들이 앞으로 5년간 잘할 것이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는 것은 삶이 너무 힘들어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라는 민심의 표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간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바란다. 박 대통령이 약속한 진보적 과제는 여야가 협력하면 국가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마당] 3.1운동은「3.1혁명」이다

● 칼럼 2013. 3. 1. 13:27 Posted by SisaHan
1919년 4월10일 밤 중국 상하이의 한 다락방에 29명의 청장년 애국자들이 은밀하게 모였다. 밤샘 논의 끝에 그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을 제1조로 하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만들어냈다. 
그 4월11일 아침, 민주공화제란 체제를 표방한,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의 나라가 탄생했다. 망명정부의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5000년 한국 역사에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다.

10년 전이었다면 어땠을까. 그야말로 대역죄에 처해질 음모였다. 대황제께서 ‘무한한 군권을 향유하는’ 대한제국 아래서, 민주공화제를 지향하는 어떤 움직임도 사형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제국에서 민국으로, 군주 아닌 국민이 주권자가 되는 경천동지할 구상이 어떻게 돌출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바로 1919년 삼월과 사월에 한반도 전체를 뒤흔든 대사건과 직결된다.

기미년 3월1일 낭독된 기미독립선언서는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했다. 이 시점에서는 독립이 최우선 과제였기에, 독립 후의 정치체제까지 상상하는 건 사치였다. 독립만세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을 흔들었고, 몇백만의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했다. 만세운동이란 비폭력 시위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총칼로 진압하고 불태우고 고문하고 죽였다. 이토록 간절하게, 목숨을 걸고 싸운 주체를 무엇이라 부를까. 왕조가 사라진 땅에 인민이 이 땅의 주인으로 나선 것이다. 이같이 주권자로 부상한 전체 인민의 지배를 담아낼 정치적 틀은 민주공화제 외에 달리 있을 리가 없다.

일제하에서 독립운동가들은 기미년의 사건을 ‘3.1혁명’으로 파악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혁명은 주권의 소재를 국왕으로부터 국민으로 이전하는 것이었다. 황제·천자·국왕·군주에 덧씌워진 신성의 후광을 빼앗고, 때로는 그 지존자의 생명까지 박탈하는 치열한 쟁투가 혁명 과정이었다. 그 국왕의 실체는 물론 그림자까지 지워내는 작업, 그것은 5000년 조선 역사에 최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혁명은 거대한 유혈을 동반한다. 유혈 없이 공화제로 순탄하게 이행한 국가는 역사상 없었다. 우리에겐 그런 시민혁명이 없지 않으냐는 주장이 종종 제기된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공화제는 바로 기미년의 대유혈을 치르고 확보한 것이다.

일제하에 여러 무장투쟁도 있고, 비무장 독립운동도 있다. 그런 운동과 3.1은 독립을 추구한 항쟁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3.1은 다른 운동과 차원을 달리하는 면이 있다. 1941년 <대한민국 건국대강>은 이 점을 가장 뚜렷이 명문화하고 있다. 기미년의 “독립선언은 우리 민족의 혁혁한 혁명의 발인(發因)이고 신천지의 개벽”이다. 우리 민족이 자력으로 “이민족의 전제를 전복”한 동시에 “5000년 군주정치의 구각을 파괴”한 사건이란 것이다. 이민족 지배와 군주정치를 동시에 타도한 사건은 일개 ‘독립운동’의 차원을 넘어 ‘민족-민주혁명’으로 손색이 없다. 대한민국은 바로 전 인민대중의 핏방울로 창조된 것이라는 인식이 뚜렷하다.

해방 후 제헌헌법을 위한 여러 초안에도 ‘3.1혁명’이란 용어가 더 빈번하다. 이승만도, 김구도 이 표현을 즐겨 썼다. 다만 제헌의회에서 촉박하게 심의하는 과정에서 ‘혁명’이란 초안이 ‘운동’으로 대체되었고, 지금껏 ‘3.1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3.1운동’은 수십년간의 복잡한 헌법 개정에서도, 한번도 삭제되지 않은 채 부동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란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 역시 내용상의 변화는 전혀 없이 확고하게 대한민국 헌법 제1조로서 자리잡고 있다.

각국에서 헌법을 제정할 때는 거대한 논쟁이 일어난다. 군주정치냐 민주정치냐, 제한선거제냐 보통선거제냐, 신분·계급을 두느냐 아니면 일체평등이냐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논쟁은 우리에겐 이미 철 지난 것이었다. 기미년 대혁명의 덕분이었다.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된 사건은 혁명으로 부르기에 충분하다. 그 민족-민주혁명의 기념일인 3월1일을 대한민국 건국기원절로 새기자.
 
<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1500자 칼럼] 단꿈을 깨우는 소리

● 칼럼 2013. 2. 23. 19:11 Posted by SisaHan
요즘 들어 무엇엔가 몰두 해 있을 때 내안에서 아리랑 가락이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잔잔한 허밍으로 혹은 즉흥적인 가사를 붙여가며 집안일을 줄여나갈 때는 안성맞춤인 가락이다. 혼자서 흥얼거리니 명창이 아니어도 들어줄만 하고 무엇보다 힘들이지 않아도 술술 나오는 그 노래는 꼭 중간에서부터 시작된다. ‘청청 하늘엔 잔별도 많고…….’ 거기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어느 날 잠자리에 들다가 헤드 테이블에 놓인 L 선생님의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란 수필집이 눈에 들어왔다.
 
“여보! 저 책 제목 좀 이상하지 않아요?”
“새삼스레 어때서? 좋기만 하구만.”
“순간적으로 느낀 건데 저 노랫말에 미심쩍은 구석이 둘 있는데 뭐게요?”
“응! 둘씩이나? 입에 붙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하나는 ‘청천 하늘’이에요. ‘청천 하늘’을 한글로 풀면 ‘푸른 하늘 하늘’이 되는데 하늘이 두 번 겹치는 점이 그렇고, 다른 하나는 푸른 하늘에 별이 많다는 게 모순이 아닐까요?”
“듣고 보니 그렇긴 하다만 살다보면 어디 까만 하늘에만 별이 있냐구. 하늘이 노래지며 온갖 별이 빤짝빤짝 할 때는 어쩌고?” 
그랬다. 살다보니 밤하늘에만 별이 반짝였던 게 아니었다. 하늘색이 울긋불긋해지며 큰 별 작은 별 쾅쾅 터지던 순간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옆에서는 숨소리가 깊어 가는데 나는 눈앞에서 번쩍이던 숱한 별을 떠 올리며 잠 못 드는 밤이 되었다.
 
가끔 누군가가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고 쉽냐고 물어오면 나는 서슴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젊음이 아무리 찬란하고 아름다워도 굽이굽이 넘어야 할 태산을 감내 할 자신이 없어서다. 하지만 요즈음엔 옆집 새댁을 보며 조금 변화가 생겼다. 그녀에 대해 특별히 아는 것은 없지만 안정적인 환경에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모습에서 저 정도의 여건이라면 한 번 쯤 그 언저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지나온 삶과는 다른 궤적이어야 할 것이다. 
부엌 개수대 앞에 서면 옆집 창이 엇비슷하게 보인다. 나는 종종 호기심어린 눈길로 그 창을 기웃거리며 단순 노동의 무료함을 달랜다. 아마도 창 안엔 책상이 놓인 듯 하고 거기에는 무언가에 몰두 해 있는 인기척이 자주 잡힌다. 오늘처럼 흐린 날엔 대낮에도 스탠드 불이 켜졌고 햇볕이 좋은 날은 블라인드를 움직이며 채광을 조절하는 손길이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뭔가에 열중하는 그녀의 직업은 필시 작가이리라 단정해 놓고, 오늘은 무엇을 썼을까, 진도는 얼마나 나갔을까, 나름대로 궁금함을 키운다. 그러다가 어느 사이 만능 글쟁이를 거기에 앉혀놓고 시시각각 그녀를 공 굴리 듯 한다.
 
눈발이 흩날리는 이런 날은 소설을, 마음이 헛헛한 날은 수필을,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에는 시인으로 둔갑시켜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한다.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달콤하다. 기혼녀의 이십대 후반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버리고 사는 시기이다. 결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여자의 길에서 자신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힘겹던 시절에 비해 단출하면서도 진취적인 삶을 사는 그녀가 부럽기도 했는데, 어느 날 나의 꿈을 깨우는 일이 생겼다. 
아침 출근의 번잡함이 끝난 고요한 시간에 짐승의 포효 같은 대단한 외침이 들려왔다. 호기심에 창밖을 보니 휴대폰을 어깨에 걸친 새댁이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엇엔가 분을 삭이지 못한 그는 선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좁은 담장 안을 정신없이 오락가락 하기도 했다. 꽤 긴 시간동안 누군가와 심한 언쟁을 벌이고 있는 그녀를 보며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청천 하늘에 숨어있던 잔별들이 한몫에 터져서 평온한 일상을 뒤흔드는 삶의 뒤안길, 색깔만 다를 뿐 누구도 비껴 갈 수 없는 고행의 길이다. 나는 그 창에서 나의 젊은 날의 회한을 거둬들인다. 그리고 더디지만 쉼 없는 행보로 꿈을 향할 각오를 마음에 새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에세이스트’로 등단 / 한국문인협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