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원 ‘정치공작’에 청와대 침묵은 수사방해

● 칼럼 2013. 5. 24. 19:1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국가정보원의 정치공작 의혹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데도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사건 연루자들이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정원 감찰실에 근무한다는 사실까지 보도됐는데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철저히 수사하라는 형식적인 말이라도 할 법한데 아예 모르쇠로 버티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이 사건과 관련해 여권에서 나온 공식 언급은 ‘검찰의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바란다’는 새누리당 대변인의 뒤늦은 논평뿐이다. 당 공식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 이상돈 전 비대위원과 이완구 의원이 개인 의견을 언론에 밝혔을 뿐 기이한 침묵이 여권 전체를 짓누르는 분위기다. 국정원의 정치공작이라는 사안의 심각성에 비춰보면 여권의 이런 태도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른바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과 ‘반값 등록금 허구성 전파’ 문건은 국정원의 정치공작이 그대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명백한 물증이다. 여기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 심리정보국이 벌인 정치댓글 내용을 종합해보면 단순한 국정홍보 차원을 넘는 거대한 공작의 징후가 뚜렷하다. 특히 이런 공작들이 총선 전인 2011년 6월과 11월, 그리고 대선 직전에 기획·실행됐다는 점에서 총선 대선을 겨냥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검찰이 국정원법상의 정치관여죄에 무게중심을 두고 수사중인 모양이나,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을 고려하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선거법 공소시효가 임박했는데도 검찰이 선뜻 총력수사에 돌입하지 못하는 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모호한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은 대선 직전 정치댓글 사건에 대해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라고 규정한 뒤 이를 번복한 적이 없다. 만일 국정원의 선거법 위반 혐의가 드러날 경우 대선 결과의 정당성에 흠집이 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침묵을 계속하는 건 ‘중립’이 아니라 사실상 종전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고, 검찰의 적극 수사에 반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여당 지도부가 일체 언급을 피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읽은 때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국정원이 저지른 민주주의 파괴와 국기 문란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일 뿐 아니라 엄청난 범죄를 은폐하는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당장 민정수석실 추아무개씨의 거취를 포함해 이 사안에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계속 침묵을 유지하는 것은 수사 방해나 마찬가지다.


[1500자 칼럼] 그 이름 알고부터

● 칼럼 2013. 5. 20. 18:4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오월의 뜰 안으로 불청객이 들었다. 흔히 봄에 내리는 눈을 서설(瑞雪)이라 한다지만 광풍과 우박을 동반한 눈은 내내 마음을 졸이게 했다. 이른 아침 화단가에 섰다. 눈 속에 파묻혔던 제라늄이며 새순들의 안위가 염려되어 잠까지 설친 밤이었다. 하지만 조바심과는 달리 파릇파릇한 새순들이 싱그럽게 한들거리고 있었다. 강인함을 키우려는 자연의 섭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뜰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산 당화와 개나리는 파란 새순 속에서 배시시 꽃잎을 열었고 옥잠화, 원추리, 나리 등 구근류는 불쑥불쑥 올라와 키 재기를 하고 있었다. 늦추위가 더 온다고 해도 이젠 걱정할 일이 아닌 듯 했다.
뜰 안으로 번져가는 봄기운을 쫒다가 화단 귀퉁이에 놓여 있던 두 개의 빈 화분에 눈길이 갔다. 주변의 파란 꼬물거림과는 달리 새초롬한 햇살만 담겨있었다. 월동을 위해 내실로 들였다가 실패한 흔적이다. 나는 빈 화분을 보며 절정기에 있던 ‘하얀 업둥이’와 ‘빨간 별이’의 싱그럽던 자태를 그 속에 담아보았다. 실체 없는 상상은 허전함만 더 할 뿐 위로가 되지 못했다. 차라리 노지에 두었더라면 소생의 계절을 기대하련만 하는 아쉬움만 남았다. 화초를 기르다 보면 번번이 있는 일이지만 이번은 좀 특별한 것 같다.
 
‘하얀 업둥이’와 ‘빨간 별이’는 꽃명이나 학명이 아닌 임의대로 붙여 본 이름이다. ‘하얀 업둥이’는 이름 그대로 업둥이로 들여와 개화까지 보게 되어 그렇게 붙였고, ‘빨간 별이’는 꽃의 생김새에 따라 붙여 본 것이다. 즉흥적인 작명이 꽤 마음에 들어서 빈 화분을 앞에 두고 번갈아 되 내어 보다가 화초 고유의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물론 생각날 리 없었다. 기르는 동안 몇 번 궁금해 하기는 했어도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구가 떠올랐다. 사람을 만나면 첫 대면 부터 호구조사 하듯 궁금증을 풀어내면서 정작 애지중지하는 화초들의 이름은 무관심했으니, 놈들은 나에게서 오랫동안 꽃이 되어 줄 리 만무했다. 모든 식물들이 제 각각의 이름을 가지듯이 생장에 필요한 조건 또한 차이가 있으리라. 화초 기르기를 좋아하면서도 번번이 실패하는 연유는 아마도 이런 개별성을 간과한 탓 일 게다. 
늦은 감은 있지만 원예에 관한 책을 펼쳤다.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신선함과 미안함이 함께한다. 과꽃을 접시꽃의 다른 이름으로 혼동했다거나 한련화는 친숙한 꽃임에도 이름을 몰랐었고, 안스리움, 디펜바키아, 싱고니움, 아레카야자, 마리안느 등은 키우면서도 몰랐던 이름들이다.
 
새로운 눈으로 거실의 화초들을 둘러본다. 포인센티아는 붉은 잎을 피우기 위해 가장 햇볕 좋은 곳으로 옮겨야겠고 아레카야자수는 큰 키를 위해 긴 화분으로 교체해야 겠다. 새로워진 눈은 육안으로 보이는 것 뿐 아니라 사고의 폭도 확장시킨다. 안스리움은 가늘고 긴 줄기 끝에 큰 잎을 매달고 있어 안쓰러워 보이고, 싱고니움은 색상도 모양새도 특출함이 없어 싱거워 보인다. 둘 다 영어명이지만 풍기는 이미지에서 우리의 표현법과 유사한데 놀랍다. 이름을 알고 나니 화초는 그 자리인데 마음이 그 곁을 맴돌고 있다. 
봄은 생동의 계절이다. 막힌 물꼬를 터서 흐름부터 순조롭게 잡아야겠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칼럼] 윤창중 사건, 국민행복시대의 숙제

● 칼럼 2013. 5. 20. 18:4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몇 년 전에 캐나다 강연을 갔을 때 들은 이야기다. 캐나다를 출발하여 유럽으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한 남자가 옆에 앉은 지적장애 소녀를 성추행했다. 이 사실을 안 스튜어디스는 기장에게 알렸고 비행기는 즉시 회항하였다. 마치 연료가 떨어졌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아무도 다른 말이 없었다. 범죄자를 공항경찰에게 넘기고 비행기는 다시 출발했다. 이 말을 전한 교포는 “그래서 캐나다는 외국 땅이지만 살 만한 곳”이라고 덧붙였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은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샜다’로 요약된다. 고위공직자들과 국회의원, 돈 많은 부자들이 일으키는 성범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대표적인 사건만 나열해도 이 지면이 넘친다. 그 사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양은냄비처럼 우르르 끓었다가 슬그머니 사그라졌다. 가해자 내지 범죄자는 일단 숨죽이고 있다가 한 김 빠지고 나면 공식적으로 오리발을 내민다. 그 오리발은 잠시 도마 위에 오르지만 결국 면죄부로 변신한다. 가해자는 기를 펴고 활보하고 세상은 조용해진다. 피해자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죽음으로써 이 억울함을 증명하고 싶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 생존자라는 말이 생겼다.(어제 서울에서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 으라차차 후원행사가 있었다.) 
성범죄는 남녀간의 일이 아니다. 인권의 문제이다. 인권의 기본은 신체적 자유이다. 사람의 몸을 희롱의 대상으로 삼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도구로 취급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그것을 인권침해로 여기기보다 ‘남자들의 본성’ 내지는 ‘술김의 실수’ 등으로 쉽게 용서해왔다. 그러니 돈과 권력이 있으면 누구나 해보고 싶고, 할 수 있는 놀이처럼 되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장자연 사건을 보라.)
 
우리 사회에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윤창중 사건을 다루는 언론에서도 나타난다. 피해 여학생의 아픔과 슬픔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다.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힘겹게 살던 이 여학생에게 모국 대통령의 순방은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었겠는가. 뭐라도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에 사명감과 보람으로 일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막힌 일을 당했으니 본인과 그 부모의 상처는 얼마나 깊을 것인가. 그러나 누구도 그들에게 깊은 사과와 따뜻한 위로를 보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여성운동가 후배 한 사람이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 신입생 축하 파티를 마치고 남자 유학생 선배가 학교생활 정보를 준다기에 학교 앞 술집에 갔다가 성추행을 당했다. 누가 신고했는지 경찰이 왔고, 피해 사실을 확인하는 경찰 앞에 난데없는 애국심이 발동을 걸어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 나라 학생 커플이 다가와 자신들이 신고한 이유를 밝혔다. ‘우리가 옆에서 네가 당하는 것을 보았다. 네가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도 우리가 피해자다. 이 남자의 못된 행동을 보면서 우리가 너무 힘들었고 이 바 전체의 분위기가 훼손당했다.’
 
윤창중 사건은 국민 모두가 피해자이며 성희롱·성폭력 문제 해결은 여성단체만의 일이 아니다. 인권위가 앞장서야 한다. 비정규직·아르바이트·밥줄에 목이 매여 당하고 있는 성희롱과 성폭력은 노동부가 나서야 한다. 교권에 의한 학교 성폭력은 교육부가, 거리에서 일상에서 행해지는 성폭력은 안전행정부가, 가족 안의 성폭력은 여성가족부가, 온 행정부처가 다 할 일이 있다. 입법부와 사법부도 분명한 몫이 있다. 
지구촌 시대, 남자들의 침묵의 카르텔이 만들어온 한국식 봐주기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여성대통령 시대에 거는 기대이다. 여자들의 한이 맺힌 나라는 잘되지 못한다. 성희롱과 성폭력의 근절은 국민행복시대의 가장 시급한 숙제이다. 

< 오한숙희 - 여성학자 방송인 >


[한마당] ‘미꾸라지 한마리’

● 칼럼 2013. 5. 17. 14:4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고사성어에 일추탁언(一楢濁堰 ), 또 일어탁수(一魚濁水)라는 말이 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온통 흐린다는 뜻이다. 
그 말 그대로 우리는 요사이 아주 못된 미꾸라지 한 마리가 휘저은 흙탕물이 어떻게 물을 흐리고 더럽히는지를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다. 작은 연못도 아니요 5대양 지구촌의 토픽이 되었으니 온 천하를 뒤집어 흐려놓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 특별기에 동승해 해외순방 취재를 수차례 다녀 본 경험을 돌아보면, 그 부담이 보통 큰 게 아니다. 경호와 의전을 포함한 분위기와 일정도 엄중하려니와 일국을 대표하는 정상 외교단의 한명이라는, 자존감을 웃도는 중압이 늘 따라다닌다. 기자도 그럴진대, VIP동정을 체크하고 수십명의 기자들 취재를 수발해야할 대변인이 그런 분위기에서 ‘해이와 일탈’이란 제정신으로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니 작금의 윤 모 씨는 무슨 배짱을 가졌던 것일까. 
글에는 반드시 쓴 사람의 인성과 품격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가 하는 언행을 보면 사람의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어떤 인물의 평가는 그 사람의 말과 글과 행적을 미루어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거족적 망신을 시키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그 인물은 이미 언론인이랍시고 그동안 써온 글들부터가 문제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편향된 시각에 자극적인 표현, 인격살인이라고 해야 할 비방 등. 그가 TV화면에 나타나 내뱉는 언사들 역시 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급한 것들이었음을 많은 이들이 지적했다. 그래서 대통령 당선자가 그를 발탁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정확한 경고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못들은 척, ‘내 맘인데 웬 상관이냐’는 듯이 그를 재차 지근거리 중책에 앉혔다. 윤 씨 자신이 글에 썼던대로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입일 뿐만 아니라 나라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중한 자리다. 그렇게 애지중지 발탁된 그가 불과 3개월도 안돼 파렴치범 반열에 오르며 ‘국격’을 땅에 떨어뜨리고 대통령의 얼굴과 업적을 분탕질 했다.
 
세상만사를 살펴보면 사실 하찮은 것이 좌우하는 일이 많다. 보잘 것 없는 한 인물이 대세를 가름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 것을 뒤집어 말하면 사소한 일도, 하찮은 단 한 명도 경시해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통령의 대변인이라는 막중한 자리의 인물을 그렇게 독선적인 아집으로 골라 앉히고, 당사자는 그런 편애에 ‘감히 나를 누가 건드냐’는 오만과 망측한 스캔들로 보은을 했으니, 책임을 다른 누구에게 물을 수 있겠는가, 애꿎게 국민과 나라만 먹물을 뒤집어 쓴 꼴이니 참 한탄스런 일이다.
한 가정만 해도, 가장은 물론이요 어린 자식 한명이 잘못 될라 치면 집안이 흔들린다. 크고 작은 단체에서 회원 한명 잘못 만나도 모임이 깨지는 사례를 본다. 작은 회사든 큰 기업이든 단 한사람의 실수로 망하는 일 또한 없지않다. 교회가 단 한명의 못된 신도 때문에 다투고 나뉘는 일도 흔하다. 차원을 넓혀 커뮤니티·나라 혹은 민족단위라고 해서 다르지 않음은 이번 성추행 파문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사례가 있다.
 
김연아가 홀로 국위를 떨칠 수 있었지만, 윤 씨는 순간의 망나니짓으로 한민족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었다. 국민의 사랑을 받던 공영방송을 정권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김 모라는 인물이 잠깐사이에 3류로 전락시킨 일이 바로 엊그제다. 전임 대통령의 ‘인사망사’ 로 인한 폐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중에도 정치개입으로 국가 최고 정보기관을 추락시킨 원 모씨의 후유증은 파장이 심각하다. 고매해야 할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다. 존경받는 목회자가 성심으로 일군 한국 유수의 대형교회를 위선된 후임자 한명이 뒤흔들고 기독교까지 망신시킨 사례도 최근의 대표적인 일이다. 
‘단 한명’의 힘이 집안도 회사도 교회도 지역사회도 그리고 나라까지도, 크기나 범위에 상관없이 위력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파문으로 재확인 할진대, 적재적소에 품성을 갖춘 적임자를 골라 앉히는 인사와 선출의 중요성은 재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오기와 불통인사 논란을 외면하고 감싸 온 박 대통령이 3개월도 안돼 단 한마리 미꾸라지의 ‘배신 강펀치’에 당한 교훈을 ‘발전적으로’ 되씹고 있을지 궁금하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