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퍼주기’의 정치경제학

● 칼럼 2013. 5. 8. 18:2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24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개성공단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기 바라지만 과거와 같은 ‘퍼주기’식 해결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은 정치 상황과 관련 없이 북한 주민들을 생각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에 인도적 지원은 하겠지만, 퍼주기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큰 허점이 있다. 김대중·노무현 시대에 ‘퍼주기’라고 비난받은 일이 대부분 ‘인도적 지원’이었기 때문이다. 퍼주기란 인도적 지원이 통상 무상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제부터 ‘퍼주기’라고 말하면 ‘인도적 지원’으로 이해하면 된다. 박 대통령이 이것을 알고도 그렇게 말했는지, 아니면 보수파들의 상투어를 그냥 되뇐 것인지 궁금하다.
 
통일부의 통계를 보면, 식량 차관까지 포함한 한국 정부의 인도적 지원은 김영삼 정부 때 2,118억원으로 시작해 김대중 정부 6,153억원, 노무현 정부 1조4,226억원으로 크게 늘었다가 이명박 정부 986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김·노 정부의 인도적 지원 총액은 모두 2조379억원이었다. 여기에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보낸 1억달러(1,100억원)까지 포함하면 10년 동안의 이른바 ‘퍼주기’ 총액은 2조1,479억원이다. 1년에 2,148억원꼴이다. 그런데 이것은 2012년 한국이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다른 나라에 지원한 1조9,000억원의 9분의 1에 불과하다. 
김·노 정부 10년 동안의 ‘퍼주기’는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보수인사들은 퍼주기로 인해 핵무기를 개발한 게 아니냐고 주장하지만, 알고보면 북한이 파키스탄의 도움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선 것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훨씬 전이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흠잡기 위한 말의 성찬이었던 셈이다. 
반면 김·노 정부의 ‘퍼주기’ 이후 금강산과 개성에 11년 동안 204만6,695명의 한국 사람들이 방문했다. 개성공단에는 8년 동안 80만명과 차량 50만대가 방문해 모두 19억7,599만달러(2조1,736억원)를 생산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북한 무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8.0%에 이르렀다. 대북 무역액 1위인 중국(41.6%)에 근접했고, 2008년에는 중국을 제치고 제1의 대북 무역국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퍼주기’는 14분의 1로 줄었다. 개성공단을 뺀 경제협력 사업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2008~2011년 경제협력 중단으로 한국의 경제적 손실은 9조973억원으로 북한 손실의 5배 이상으로 추정됐다. 심지어 남북의 적대 속에서 무고한 군인과 민간인 60명이 목숨을 잃었다. 
집권 두 달째인 박근혜 정부는 지난 26일 개성공단에서 스스로 철수함으로써 경협의 문을 닫았다. 10년 공들인 탑을 무너뜨리는 데는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퍼주기는 예산 낭비가 아니라 평화로 가는 투자라고 생각한다. 통일 전 서독은 1975~1988년 사이 14년 동안 한해에 6억달러(6,600억원)씩 동독에 퍼줬다. 김영삼~이명박 정부 20년 동안 한국이 한해 평균 퍼준 1,229억원의 5.4배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 시절보다는 33배나 많았다. 물자·노동력을 포함한 무역 규모도 한해 평균 66억달러(7조2,835억원)로 김영삼~이명박 정부 시절 한해 평균 무역액 9,885억원의 7.4배였다.
 
독일의 퍼주기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통일이었다. 1990년 8월 동독 의회는 스스로 서독으로의 연방 가입을 결정했다. 그때까지 서독이 주로 한 일은 수십년 동안 동독에 퍼주고 퍼주고 또 퍼준 일이었다. 서독의 동독에 대한 변함없는 지원과 협력은 동독인들로 하여금 서독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만들었다. 그게 통일의 내적 원동력이었다. 
퍼주기로는 단기간에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단기간엔 그 무엇으로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퍼주기는 한반도에 평화와 신뢰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김규원 - 한겨레 신문 통일 외교팀장 >

 

[사설] 경제민주화법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 칼럼 2013. 5. 8. 18:2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경제민주화 1, 2호 법안’으로 불려온 하도급법 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임시국회를 통과했다. 하도급법 개정안은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강화했고,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연봉 5억원 이상 등기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하도록 했다. 국회는 정년을 60살까지 보장하는 정년연장법도 일부 수정한 뒤 통과시켰다. 대선 이후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첫 결실을 맺은 것은 이번 임시국회의 큰 소득이다. 여야 정치권이 모처럼 공약 이행을 위해 힘을 모았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진통도 적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를 대선과 총선의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입법 단계에서는 재계 로비와 내부 동조세력의 반발로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 등은 지난 29일 법사위에서 하도급법 개정안을 두고 “기업활동 위축 우려가 없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딴죽을 걸었다. 30일 법사위에선 유해물질 배출기업에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다.
법사위에서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진통을 겪는 것은 재벌의 로비에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동조한 탓이 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5개 경제단체 부회장들은 29일 국회를 찾아 기업의 이해관계가 걸린 법안 처리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몇몇 새누리당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나온 것이다.
국회 법사위가 해당 상임위에서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그 내용을 문제 삼아 처리를 지연시키는 것도 문제다. 형식적으로는 법체계 등의 이유를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법안을 틀어쥐고 통과를 막는 경우가 일쑤다. 법사위의 비정상적인 월권행위도 이번 기회에 시정할 필요가 있다.
 
경제민주화 관련법의 원활한 입법 여부는 결국 새누리당이 어떻게 내부 합의를 이뤄내느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차기 원내대표에 출마할 최경환 의원이 “너무 과도한 부담을 줘서 경제 자체가 위축돼선 안 된다”는 등 발언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 황우여 대표가 “경제민주화는 중견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까지 경제의 피가 흐를 수 있도록 해주는 법”이라고 한 것은 적절하다. 다소간 완급 조절은 있을 수 있지만 경제민주화는 대선 때 국민적 합의를 이룬 사안인 만큼 뚝심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비록 진통을 겪었지만 입법이 첫 결실을 거둔 만큼 여야 정치권은 더욱 속도를 내주길 바란다.


[사설] 개성공단 정상화, 정부 노력에 달렸다

● 칼럼 2013. 5. 8. 18:2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개성공단에 머물던 남쪽 인력이 거의 철수했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와 연결된 유선전화도 끊김으로써 이제 남북은 모든 접촉 창구가 단절된 상태가 됐다.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말고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기사회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북한의 개성공단 담당 실무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개성공단이 완전하게 폐쇄되는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쪽에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폐쇄 조처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려면 이제까지 드러난 여러 문제점부터 극복해야 한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개성공단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일부 강경세력이 부추기는 공단 폐쇄론이 정부 안에서 거론돼선 안 된다. 아울러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긍정적 검토를 비롯해 다른 경협 사업을 함께 강화해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협 활성화는 핵·미사일 문제 등을 풀기 위한 다각적인 국제대화를 뒷받침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대북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다. 돌발 결정이 되풀이돼서는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나라 안팎의 신뢰를 얻기도 어렵다.
개성공단 정상화가 이뤄지려면 북쪽의 자세가 바뀌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북쪽의 비합리적 행태만 강조해서는 이전 정부와 다를 게 없다. 긴 시야를 갖고 남북 관계의 큰 틀을 만들어 내용을 채워나갈 책임은 어디까지나 정부에 있다. 정부는 좀더 전향적이면서 현실적인 대북정책을 세워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절대다수의 국민은 남북 관계 개선을 바란다. 미국과 중국 등 관련국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북쪽은 개성공단을 ‘6.15의 옥동자’로 표현하며 당분간 남쪽의 후속조처를 지켜보겠다는 모습을 보인다. 개성공단 정상화는 정부의 노력에 달려 있다.
 
남북 당국은 개성공단이 단지 서로 물질적 이익을 꾀하는 합작사업이 아니라, 통일 여정에 큰 디딤돌을 놓는 화해·협력사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이 금강산 관광 중단, 천안함 침몰 사건, 연평도 포격과 같이 남북 사이에 극도의 긴장이 벌어졌던 이명박 정권 시절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큰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와 김정은 정권은 사소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개성공단을 제물로 바쳐선 안 된다. 어떤 명분으로건 민족 화합과 통일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건 민족과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마당] 공포의 합창 ‘텐노 헤이카 반자이’

● 칼럼 2013. 5. 6. 16:1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일본에 다시 ‘텐노 헤이카 반자이! (천황폐하 만세)’의 외침이 튀어나오고 있다. 동아시아 대륙을 짓밟아 2천만명 이상을 살상한 ‘대일본제국’ 시절에 횡행했던, 당시의 피해국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폭압의 외침이었던 맹신적 호기의 군중합창-. 그 두려운 역사의 퇴물이 장막 뒤에서 다시금 변장한 얼굴을 비죽이 내밀고는 무대 위 확성기를 타고올라 괴성을 내기 시작했다.
 
지난 4월28일은 패전국 일본에 대한 미군의 점령통치를 마감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지 61년이 되는 날이었다. ‘역사 부정’으로 국제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아베 신조 내각은 이날 일본 정치사상 처음으로 ‘주권회복·국제사회 복귀 기념식’이라는 희한한 행사를 열었다. “이날은 굴욕의 날”이라며 오키나와의 전 주민이 궐기해 반대하는 데도 콧방귀를 뀌듯 버젓이 성대한 식전을 자랑했다. 우익들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천황폐하’를 모시고, 국회와 정부의 수장이 모두 모여 “자랑스런 일본” “강한 일본‘을 들먹이며 기세를 올렸고, 아베는 ”지금까지 걸어온 족적을 생각하면서 미래를 향해 희망과 결의를 새롭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 아베를 비롯한 일본의 수뇌들은 아키히토 천황에게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더니, 그 부부가 퇴장하려 하자 양 손을 치켜들고 입을 모아 ”텐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쳤다. 
태평양 전쟁 이후 사라졌던 이 장면은 최근 가속되고 있는 일본 우경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A급 전범의 손자인 아베가 집권한 이후 군대위안부 부정과 독도망언, 일제의 침략전쟁 부인, 그리고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북한 핵위협을 빌미로 한 자위대 국방군화와 무장 강화 추진 등 일련의 ‘복고책략’이, 그동안 다수 국민들 사이에 터부시 돼온 ‘천황만세’까지 3부 요인들이 공공연하게 외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전례없는 장면에 일본의 언론들도 우려를 나타냈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이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범한 끝에 패전을 맞이한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면서 국회의원 168명의 야스쿠니 신사 집단 참배, 아베의 ‘침략 물타기’ 발언 등을 비판했다. 우익성향의 요미우리도 “내외에 참화를 가져온 ‘쇼와 전쟁’은 국제감각을 잃은 일본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됐고, 패전과 점령은 그 결말”이라며 냉정히 되돌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왜 그렇게 역사를 정직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가?”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가 독일과 비교하며 일본의 퇴행적인 역사인식과 행태를 비판한 말이다. 이 신문은 아베 총리와 일본의 우익들 발언을 ‘자기파괴적 수정주의‘라고 질타했다. 앞서 뉴욕타임즈도 “일본은 적대감에 불을 지르는 미욱한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아베는 역사의 상처를 악화시키는 일을 그만두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안팎의 거센 눈총에도 불구하고, 아베의 내셔널리즘 자극에 편승한 일본국민 수는 날로 늘고 아베 정권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팽창화가 더욱 가속될 조짐인 것이다. 앞으로 영토문제를 포함해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 격한 마찰은 불가피해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요즘 미국정부가 우려의 눈초리를 보내고는 있지만, 미국의 행태야 말로 ‘병주고 약주는’ 식의 아이러니이며, 뒷북치기다. 근대 일본 우경화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바로 미국 아닌가.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는 침략 원흉들을 뿌리뽑지 않고 오히려 군정에 이용했다. ‘천황’을 폐위시키지 않았고, 전범들을 처단하지 않은 채 다시 그들로 하여금 일본을 재건하게 만들었다.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바로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렇게 일본의 전쟁책임은 유야무야되면서, 우익은 독버섯처럼 세를 부풀릴 수가 있었다. 그런 근시안적인 미국의 ‘성원’으로 재활한 것이 바로 침략을 부인하는 오늘의 일본 우익세력이니, 그 책임이 막중하다.
 
따지고 보면 한반도에서도 피점령국의 ‘건강한 재건’보다는 자국 이익에만 몰두한 미국의 원죄가 오늘의 수많은 대립과 분열과, 마찰을 생산해 냈음을 알 수 있다. 일제 당시의 친일부역자들을 남한 군정에 활용해 부활시킴으로서 식민청산의 길을 막았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독도의 한국령 임을 인정치 않아 일본에 빌미를 준 것도 미국이었음은 강자의 만용이요 약자의 한(恨) 일 뿐인가. 
당쟁과 사대(事大)의 습벽으로 나라를 망친 역사의 거울을 망각한 우리네 한반도에서는 남북간 평화의 보루며 상징인 개성공단 마저 폐쇄 위기에 처했으니,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늘 한스런 역사가 반복되는 것일까.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