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울 불바다’가 쉬운가

● 칼럼 2013. 3. 23. 18:51 Posted by SisaHan
“북한의 도발 위협보다 대형마트 휴무가 더 불편한 일”이라고 말하는 서울의 중년들에게 북한은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일 뿐이다. 
북한이 말로 뱉어낸 위협대로라면 서울은 벌써 수십번은 불바다가 되고도 남았을 일이지만 이제 그런 ‘한반도 묵시록’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김정은 입장에서 서울을 핵무기나 장사정포로 타격하기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 이미 수도권에는 수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은 모두 140만9577명으로 전년보다 11.4% 증가했다. 국적별로는 한국계 중국인을 포함한 중국 국적자가 78만1616명(55.4%)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는 베트남 16만2254명(11.5%), 미국 6만8648명(4.9%), 남아시아 6만2862명(4.5%), 필리핀 5만9735명(4.2%) 순이다.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 ‘핵바다’로 만들기 위해 장사정포를 마구 쏘아댄다면 그들의 동맹국인 중국과 세계 여러 나라가 자국민 보호를 위한 조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장사정포 사정거리 안에 있는 수도권에 외국인이 몰려와 있다. 경기 안산시(6만583명), 서울 영등포구(5만7180명), 구로구(4만3239명), 경기 수원시(4만537명)로 모두 북한 장사정포 사정거리(70㎞) 안이다. 북한은 세계와 전쟁을 해야 한다.
 
둘째, 전쟁 때 이 외국인들은 탈출하기 어렵다. 특히 영미계의 외국인이 전쟁 때 본국으로 안전하게 탈출하려면 각국 대사관이 마련한 비상계획대로 성남 서울공항에 집결해야 한다. 여기서 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타야 하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공항 인근에 제2롯데월드 건립을 허가하여 사실상 유사시 서울공항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그다음 집결지는 오산 미 공군기지인데, 우리 군은 교통을 전면 통제하게 되면 걸어서라도 가야 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결국 퇴로가 차단된 외국인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서울 불바다의 인질이 되는데, 이것이 김정은을 난처하게 한다.
 
셋째, 서울이라는 이상한 도시는 북이 쏠 테면 쏘라는 식으로 배짱을 부린다. 
현재 수도권에 화생방에 대비한 1등급 대피시설은 23곳(6000평)에 설치돼 있는데, 이는 핵전쟁에서 전체 거주자의 0.08%밖에 수용할 수 없다. 방사성 진료기관 역시 1차 진료기관이 12곳, 2차 진료기관이 14곳밖에 없기 때문에 유사시 사상자 처리 대책이 거의 없다. 
핵전쟁이 아닌 재래식 무기에 의한 공격에는 총 2만6000여곳의 대피시설에서 견딘다고 하지만 에너지·식수·통신 공급이 전면 차단되기 때문에 버티기 어렵다. 그렇다고 서울시민을 피난시키는 정부 계획을 세우기도 불가능하다. 그렇게 무방비로 목숨을 내놓겠다는데 이것은 김정은을 더욱더 난처하게 한다.
 
역사상 적의 대포가 불과 40㎞ 밖에서 위협하는 전쟁터에 1500만명이 거주하는 경우는 없었다. 비좁은 전쟁터에 이렇게 높은 인구밀도는 역사상 어떤 전쟁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서울은 이미 대한민국의 도시가 아니라 전세계가 공유하는 도시다. 
전쟁 위협 앞에서도 천진난만하게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는 서울은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억지와 방어라는 안보개념으로 설명되지 않는 아주 이상한 도시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나 직관적으로는 “전쟁은 없다”는 사실을 서울시민은 이미 간파하고 있다. 그걸 아는 북한은 자신의 불바다 협박이 통하지 않는다는 데 크게 허탈해할 일이다. 

< 김종대 -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 >

 
최근 들어 주한미군의 범죄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 주말을 전후해서만 서울과 동두천에서 미군들이 연루된 폭행사건이 3건이나 발생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미군 3명이 난동을 부리다 추격하는 경찰과 시민에게 비비탄총을 쏘고 달아나는 심야 소동이 벌어진 게 바로 보름 전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 나라가 마치 ‘미군의 범죄 해방구’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특히 17일 새벽엔 홍대 근처에서 술에 취한 미군이 행패를 부리다 이를 단속하는 경찰을 폭행하는 사건이 두 건이나 연달아 일어났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하지만 제복을 입은 경찰까지 폭행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미국에서라면 이런 일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권력을 우습게 보고 벌인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와 미군 당국도 이번 일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즉각적인 조처를 취하긴 했다. 외교통상부는 그제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미국이 자체적으로 범죄 근절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주한 미8군 공보실장 앤드루 머터 대령도 어제 성명을 내어 “한국 경찰의 조사 결과와 법원의 판결에 따라 범죄로 물의를 일으킨 미군들에 대해 불명예 제대를 포함해 추가적인 행정조처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당국이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반응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과연 이런 조처로 미군 범죄가 근절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미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의 강력한 범죄 방지 노력이 중요하다. 먼저 우리 사법당국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소파)의 한계만 핑계 대지 말고 범죄를 저지른 미군에 대해서는 엄정한 수사를 통해 엄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미군 범죄는 2007년 239건에서 2012년 264건으로 늘었는데, 불기소율은 오히려 38.6%에서 67%로 증가했다는 법무부 통계는 미군 범죄에 대한 우리 사법당국의 안이한 자세를 보여준다. 물론 우리가 엄정 수사와 엄한 처벌을 하려고 해도 소파가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미국 쪽에 개정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미군 쪽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 미군 쪽은 그동안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사고가 나면 즉각 사과를 한다. 하지만 사과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전혀 효과가 없다. 이번의 연쇄 범죄가 그걸 잘 보여준다. 미군 당국은 백 번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미군 쪽은 가족 근무자의 비율을 늘리는 등 거주환경을 개선하는 작업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원세훈 국정원장의 정치개입 논란과 관련해 민주통합당과 민주노총, 전교조 등이 형사고발 등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그제 낸 ‘국정원장 발언 유출 관련 입장’을 통해 “북한이 선동지령을 하달하면 고첩 및 종북세력이 대정부 투쟁에 나서고 인터넷을 통해 허위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는 현실에 적극 대처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보도 내용은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종북세력 대처 활동의 일환이니 업무 범위를 벗어난 게 아니라는 논리다.
 
그러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겨레>에 보도된 ‘지시’ 내용만 읽어봐도 그런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궤변인지 알 수 있다. “4대강 사업 후속 관리와 관련, 유지비용이 많이 든다고 비난하고 있는데 물 확보 등 많은 이점을 감안, 국민들에게 적극 홍보”하라는 게 ‘종북’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다. “세종시 등 국정현안에 대해…정공법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고, 우리 원이 앞장서서 대통령님과 정부 정책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라는 게 정권홍보, 정치개입이 아니면 무엇인가. 또 “토착비리 근절에 앞장”서는 게 국정원이 할 일인가.
백 보 양보해 국정원의 주장대로 북한의 지령에 따라 종북세력이 대정부 투쟁에 나서는 일이 있다면, 법에 따라 수사해서 처벌하면 될 일이다. 그런 실적은 없이 엉뚱하게 야당을 비난하고 정권을 옹호하는 댓글이나 달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정치개입이 아니고 무엇인가. 국가정보원법에는 대공·대테러 등 국내 보안정보와 국외 정보의 수집·작성·배포, 국가보안법이나 내란·외환죄 등에 대한 수사 등만을 직무 범위로 정해놓았다. 국정원이 정부 정책이나 대통령 치적을 홍보하는 건 국정원법 9조와 18조의 정치관여죄와 선거법 위반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 논란을 빚은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 사건은 3개월이 넘도록 경찰이 만지작거리고만 있다. 댓글이 김씨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드러난 이상 눈치 보는 경찰에 수사를 맡겨놓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젊은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주장을 펴며 사실상 국정원 쪽을 옹호한 바 있어 수사기관이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대선 이후 국정원의 조직적인 정치개입 상황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이상 조직 전체에 대한 포괄적 수사가 불가피하다. 이번 사건은 검찰 조직의 정치적 ‘중립’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첫 시험대다. 채동욱 검찰총장 후보자를 비롯한 검찰 수뇌부는 조직의 명예가 걸린 사안임을 자각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펴기 바란다.


[한마당] 시민운동의 위기

● 칼럼 2013. 3. 23. 18:19 Posted by SisaHan
한국 시민운동을 대표했던 두 사람. 이들의 운명이 크게 갈라져 있다. 박원순은 서울 시정을 이끌고 있고, 최열은 알선수재라는 ‘파렴치한’ 범죄 혐의로 감옥에 갇혔다. 1987년 민주화 이래 대표적 시민운동가 두 사람의 현재가 어떻게 이렇게 대비될 수 있는가 싶다.
박원순 시장은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 한국 시민운동의 빛나는 길을 연 사람이다. 반부패 운동부터 총선 연대까지, 기부가 사람을 바꾸는 힘을 믿게 한 아름다운재단, 그리고 소셜디자이너를 자처하며 만든 희망제작소까지. 그러던 그가 이명박 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으면서 떠밀리듯 제도정치권으로 나아갔다. 그는 예상했던 대로 하루를 48시간처럼 살면서 서울시민의 삶의 현장을 누비고 있다. 서울역사에 온돌을 깔아 노숙자들에게 누울 쉼터를 만들어준 건 내게 큰 감동이었다. 사람살이를 위한 정치.
최열이 한국공해문제연구소, 공해추방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환경재단 등 한국 환경운동의 산 역사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동강댐, 새만금, 반핵과 탈원전 그리고 4대강까지. “공해 추방? 배불리라도 먹었으면” 하던 시절부터 4대강까지, 환경은 성장과 발전을 반대만 한다는 비난을 거스르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해 작지만 단단한 초석들을 쌓아왔다. 그러던 그가 환경운동을 시작한 지 31년 만에 다시 감옥에 갇혔다.
 
시민운동을 이끌어왔던 두 사람의 대비되는 현실을 앞에 두고 한국 시민운동의 현재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시민운동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기반이다. 참여연대가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는 부패와 부정, 재벌과 관료, 공공부문의 부당이득 감시운동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했는가. 한국 사회 환경에 대한 인식수준은 국민소득 2만달러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에 나아가 있다. 그런데 시민운동이 이명박 정권 아래서 위기에 빠졌다.
이명박 정권 아래 관변 시민운동은 약진하고,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시민운동은 위축되었다. 무엇보다 시민운동가들이 도무지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50대 전후 사무총장이나 대표가 임기를 마치면 갈 곳이 없다. 20년 된 활동가가 200만원 남짓, 대다수 전업 활동가들이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생활을 한다. 이래서는 건강한 시민운동을 기대할 수 없다. 유럽의 경우 시민운동을 전업으로 하는 활동가들이 공무원의 80% 정도되는 보수를 받는다.
 
촛불시위 이후 이명박 정권은 시민운동단체로 유입되는 돈줄을 끊거나 삭감했다. 행정안전부가 주는 시민단체 보조금 중 보수단체 지원금이 2009년 4억7000만원에서 2012년 37억7000만원으로 급증했다. 반면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1800여개 단체는 불법 폭력시위 단체로 규정되어 3년간 이 기금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시사저널> 2012년 6월) 그리고 이들을 대표하는 박원순·최열의 개인비리를 캐고자 특별검사팀까지 꾸렸다. 1년 이상을 털어도 먼지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박원순은 결국 제도정치로 나아갔다. 최열은 알선수재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환경운동연합과 환경재단 공금 횡령은 모두 무죄, 개발업체의 로비 대가로 알선수재 유죄. 그런데 최열을 수사했던 김광준 검사가 10억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더구나 김 검사에게 뇌물을 준 업체는 최열에게 돈을 주었다는 개발업체와 경쟁관계에 있음이 재판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알선수재는 1심에서 무죄가 난 사안이었는데, 2심에서 심의도 없이 유죄로 뒤집혔다.
 
시민운동의 위기는 운동의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데서 시작되었다. 건강한 시민운동이 투명하고 행복한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을 안다면, 전국 수백명에 달하는 시민운동 활동가들에게 100만원 남짓 되는 월급만 받으며 헌신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더욱이 시민운동은 태생적으로 기득권, 성장과 개발에 반하는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건강한 시민사회는 이들에게 신뢰를 보내고, 최소한의 생활기반을 마련해줄 책무가 있는 것 아닐까. 그래야 제도정치로 나아가지 않고 시민운동에 전력투구하는 활동가들이 많아지리라 믿는다.
<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