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북 정상회담을 상상한다

● 칼럼 2013. 4. 22. 17:44 Posted by SisaHan
한반도의 전쟁 위험은 한고비 넘긴 것 같지만 아직도 진행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쪽에서 핵으로 위협하고 적대적 성명을 발표해도 우리는 전쟁을 실감하지 못하고 산다. 외신이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다급하게 전해도 국민들은 류현진의 2승과 3안타가 즐겁고 싸이의 ‘젠틀맨’ 알랑가 몰라를 흥얼거린다.
전쟁이 절대 안 일어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전쟁은 속수무책이고 우리 국민들이 선택할 방법이 없다는 데 원인이 있다. 전쟁은 미국과 북한의 일이고 북한이 도발하고 미국이 혼찌검을 내기로 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라는 체념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전쟁이 나면 미국이 위험한 게 아니라 이 땅이, 한반도가 만신창이가 되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수십년 동안 이루어놓은 대한민국의 체제와 모든 성취가 허사가 되는데도 우리 모두는 무력하다.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여자 대통령이 나오는 것과 남북통일이다.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졌다. 여자 대통령이 탄생했다. 내가 기대했던 여자 대통령의 면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자 대통령이 나온 것으로 절반의 꿈은 이루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은근한 기대를 걸었다. 북한의 김정은과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럴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박정희이기 때문이다. 그는 1972년도에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이후락씨를 보내서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그것은 당시에 엄청난 충격이었다. 수십년 동안 무찔러야 했던 대상이었던 북한과 협상했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란 세 가지 원칙을 천명했다. 정치란 이렇게 발상의 전환이 가능한 영역이구나 싶었다. 결과적으로 남에선 유신을 위해, 북에선 주체사상을 공고히 하기 위한 국내정치용으로 남북공동성명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역사적으로 모든 외교적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일들은 모두 국내정치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것이었다.
반공을 국시로 하고 반공법으로 사람을 잡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론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정치고 외교다. 적과의 동침도 때에 따라선 한다. 그보다 앞서 2월에 닉슨 미국 대통령이 수십년 동안 적대국으로 여기고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켰던 중국을 방문한 것도 베트남 전쟁으로 궁지에 몰린 미국의 국내정치용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북한은 현재 삼대세습이다. 70년 집권이다. 김정은의 나이로 보아 100년 왕조가 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 사회가, 그들의 집회가, 교주를 향한 집단광기의 부흥회 같아 보인다 해서 그들의 지도자인 김정은을 외면하고 남북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다. 딱하지만 그들의 지도자를 땅에 끌어내릴 방도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대화의 방법도 없다. 총구를 마주 대하고 있으면서도 마주 앉아야 하는 것이 정치다.

5월 초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될 것은 당연히 남북문제일 것이다. 북쪽의 도발에도 미국이 대응 안 하길, 경제적 지원이나 물밑접촉이 가능하도록 어떤 경우에도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만은 막는 쪽으로 회담은 가닥을 잡아야 한다. 한-미 동맹 60년 자축보다 그것이 우선이다. 우리가 당사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한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닉슨처럼 재임중에 북한을 방문해 세계평화에 기여한 대통령으로 남겠다는 복안이 있다는 설도 있었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으로 고립된 북한을 국제사회로 나오게 하는 획기적인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나는 그보다 우선하는 것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입장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통일은 어렵더라도 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서로 확인하고 7.4 공동성명의 정신을 새롭게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다.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최대의 업적이 될 수 있다.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 한 장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배부르고 행복하다. 

< 김선주 - 언론인 >

 
국회에서 논의중인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있다. 일부 조항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경제활동의 자유에 배치된다느니,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인들의 기를 꺾어서는 곤란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다. 일부 언론이 증폭시키는 재계의 이런 불만은 근거가 부족하다. 차라리 솔직하게 재벌을 너무 옥죄지 말고 지금껏 해온 관행과 기득권을 유지하게 해달라는 편이 낫다. 문제는 이런 재계의 투정에 정부 여당의 기류가 변화하고 있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경제민주화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면서 법제화 과정에서의 후퇴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지난 대선 때 여야가 앞다투어 공약한 사안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재벌 총수의 전횡이 경제 생태계를 망가뜨릴 정도로 비대해지고 심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반발 기류에 멈칫해 법제화에 차질을 빚는다면 결코 안 될 일이다. 당시 민주당은 순환출자 해소 등 소유지배구조 규제까지 공약했지만 새누리당은 소유지배구조는 손대지 않고 대신 엄격한 행위규제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행위규제마저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은 공수표를 날리는 셈이 된다.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재벌 총수가 탈법적으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기고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치기 위한 것이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징금 부과, 부당하도급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대기업 총수 및 임원 급여 공개 같은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재계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제재 강화에 대해 앞으로 기업의 모든 내부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로 간주할 우려가 있고, 헌법상 선택의 자유와 배치된다고 하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지금까지 ‘현저하게 유리한’ 조건의 거래만 일감 몰아주기로 판단했던 것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수정해 빠져나갈 구멍을 줄인 것뿐이기 때문이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계열사에 대한 부당 내부거래가 적발될 경우 총수가 관여한 것으로 간주해 처벌하는 30% 룰도 가혹하다고 하는데, 부당 내부거래가 은밀하게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 없는 비판이다. 또 총수 일가에게 부당 이득이 돌아가는 내부거래를 금지하자는 것이지, 계열사간 거래를 모두 금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 집단 사익 추구 행위와 부당 내부거래 규제 강화 및 부당이익 환수는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다. 물론 공약도 여야 협의 과정에서 조정될 수는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재계의 불만을 의식해 경제민주화를 후퇴시키는 듯한 지침을 준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적절치 않다.


한·미·일 세 나라를 순방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과 직접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머잖아 대북 특사를 보낼 수 있음을 내비쳤다.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맞은 북한도 미사일 발사 등 도발적 행위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조금씩 만들어지는 모양새다. 케리 장관은 이번 순방을 통해 한반도 관련 현안들을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의 대북 특사 언급은 미국이 대화 노선을 세우고 관련국들과 조율하고 있으며 대화 시작에 필요한 조건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 케리 장관은 일본 도쿄공대 연설에서 “북한은 이미 한 약속들을 존중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조처를 취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조처를 북한의 공개적인 비핵화 약속, 핵물질 생산과 미사일 발사 중단 선언 따위로 해석한다. 이런 요구는 타당하다. 북한이 9.19 공동성명을 비롯한 기존 합의가 무효화했다고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이라도 뉴욕 채널 등 양쪽이 적절한 통로를 통해 접촉해볼 필요가 있다.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은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케리 순방 과정에서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미국과 공동행동을 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이 협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전보다 적극 나설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은 중국을 움직이기 위해 아시아·태평양에 배치한 미사일방어 체제의 감축이라는 카드까지 꺼냈다. 중국은 북-미 대화 및 6자회담이 순조롭게 재개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북한 정권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감추지 않았던 일본이 대화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북한은 핵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최대 치적의 하나로 핵 역량 강화가 꼽히는 터여서, 북쪽이 공개적으로 이를 뒤집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쪽이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한 자신이 강조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는 물론이고 경제 건설에 필수인 우호적인 국제 분위기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북쪽은 모처럼 조성되는 대화 분위기에 적극 호응하길 바란다.
우리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다. 우리가 제의한 대화를 북쪽이 일단 거부해 제동이 걸린 상태지만 지금으로선 남북 대화를 포기하지 않되 북-미 대화에 힘을 실어주는 게 한 방법이다. 다음달 초순 한-미 정상회담이 좋은 계기다.

 

[한마당] 남북관계 널뛰기의 연원

● 칼럼 2013. 4. 20. 14:55 Posted by SisaHan
정부수립과 6.25동란 이후 극렬 대치상태이던 남북간에 대화통로가 열린 것은 1971년 8월부터다. 미국과 ‘중공’간에 핑퐁외교로 바야흐로 해빙무드가 번질 때였다. 이듬해까지 11차례 열린 남북적십자 회담에서 한적은 북한에 비밀접촉을 제의한다. 그리고 1972년 3월28일 정홍진이라는 인물이 북한을 방문했다. 거기서 합의에 따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5월2일부터 5일까지 북한을 극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다. 이어 북의 박성철 부수상이 5월29일부터 6월1일까지 서울을 비밀리에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것이 남북 당국간 비밀교섭의 출발이다. 
당시 청산가리를 소지하고 평양을 찾은 이후락은 출발 닷새 전 하비브 주한 미국대사에게 방북사실을 통보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측의 답방으로 서울에 온 박성철의 일정을 미국측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가 평양으로 돌아간 사흘 뒤에야 한적 최두선 총재의 귀띔으로 알게됐다고 하비브는 본국에 보고했다. 당시 남북정부 간 대화가 미국과는 상의없이 ‘자주적으로’ 추진됐다는 이야기다. 어떻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역사적인 ‘7.4 남북 공동성명’이었다.

그 후 85년부터 88년까지 남북 국회회담이 열렸고, 89년부터 92년까지는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개최됐다. 설전 끝에 시간만 끌다 마무리된 국회회담과 달리 고위급 회담은 진전이 이뤄졌다. 양측의 총리를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회담을 열어 남북간 화해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본회담과 각 분과위에서 ‘남북간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교환했고, ‘비핵화 공동선언’ ‘군사·경제 및 사회문화 교류합의서’ 와 함께 남북 연락사무소와 남북 화해위원회 설치 등에도 합의했다. 
남북간의 정상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난 것이 최초이며,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0월2일부터 4일까지 역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나 이뤄졌다. 김대중-김정일 회담에서 나온 산물이 ‘6.15 남북공동선언’이며, 노무현-김정일 간에는 ‘남북정상 선언문’이 나왔다.
‘7.4성명’ 이후 큰 줄기의 남북간 접촉은 대략 그렇게 요약되지만, 알게 모르게 남북간에는 수많은 대화와 밀약이 있었다. 그 과정에 역사적인 합의도 여러 번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제 한낱 휴지가 돼버린 화해 문서들은, 90년대 초까지 필자가 판문점 국회회담과 남북 고위급 회담의 평양방문까지 동행 취재하며 역사적 장면들을 보고 겪고 느꼈던 남북관계의 속성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함을 실감하게 한다.
 
남북간의 대화와 합의는 정권 안팎의 사정에 따라 번번이 오용되고 파기되었다. 가령 독재정권 시절에는 정권안보를 노린 ‘북풍’의 일환으로 활용됐고, 민주화 이후에는 통일열망에서, 때로는 정권홍보를 위해 열을 올리다 반작용을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이어오던 맥을 완전 끊어버린 게 이명박 정권이다. 거센 반작용을 기화로 채널마저 완전 단절시킨 최악의 5년을 보낸 것이다. 
그 후유증이 최근의 북한 전쟁위협과 한반도 위기로 증폭된 것이다. 대화와 소통의 차단은 ‘북한 붕괴론’을 근거로 했다, 그러나 북한정권이 무너지기는 커녕 오히려 독 오른 호전광으로 변모시킨 셈이다. ‘퍼주기’를 욕했지만, 막상 전쟁위기에 처해 이에 대처하느라 드는 비용이 소위 ‘퍼주기’ 예산의 몇 배 규모나 된다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어차피 남북관계는 양측의 필요에 의해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 평화를 원하고 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 대화를 꾀하는 일방, 정권내부의 취약성을 호도하기 위해 이용하곤 한다. 특히 북한체제의 경우 늘 그래왔다.
 
그렇게 북한 문제, 나아가 한반도 위기 문제는 남북한이 통일될 때까지는 지속적으로 또 단속적으로 부침을 반복할 것이다. 그 주요 이유 중의 하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든 민주적 시스템의 약점에, 정치지도자들의 대북(對北) 철학 부재를 들 수 있다. 한국도, 미국도, 바뀌는 정권마다 대북정책이 ‘냉온탕’식 널뛰기를 반복하면서 남북관계도 출렁이곤 한다.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정책은 세습정권의 특징 그대로 수십년 동안 본색이 불변인데, 상대는 오락가락인 것이다. 
이번 위기에서 다시금 강조되는 것이 바로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한 정책의 일관성이다. 정권이나 정치지도자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정책으로 북한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 대북 정보기관은 정치와 권력에 절대 휘둘리지 말고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 남북관계에서 깨달아야 할 제 1의 필수 덕목이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