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보수는 부끄럽지도 아니한가

● 칼럼 2013. 3. 14. 18:44 Posted by SisaHan
청와대 대변인은 정권의 얼굴이다. 국민들은 청와대 대변인을 바라보며 그 정권의 품격을 가늠한다. 윤창중 대변인은 참 특이한 사람이다. 인수위 대변인 시절 공식 브리핑을 하면서 기자들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나도 30년 동안 언론인 생활을 했다. 언론이 너무 앞서서 보도하니까 신뢰를 깎아먹는 것이다.”
“언론의 신뢰를 깎는 것은 앞서가는 보도가 아니라, 언론계와 정계를 왔다 갔다 한 ‘폴리널리스트’ 때문이라는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모욕을 당하면 기자의 멱살을 잡고 대변인직을 때려치우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그는 버텼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했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도 매우 특이한 사람이다. 박정희 육영수 두 사람의 사진이 담긴 휴대전화 고리를 달고 다닌 것부터 좀 이상하다. 현역에서 물러난 뒤 외국무기 중개업체 고문을 맡았고, 본인 주장대로 하면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거액의 보수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고위 공직자 출신이 전관예우로 큰 돈을 챙기는 것도 잘못이지만, 돈을 챙기고 나서 다시 고위 공직으로 돌아오는 것은 명백한 부정의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까지 청렴하게 살아왔다”며 버티고 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장관으로 임명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명실상부한 보수세력의 대표였다. 그렇다면 보수에서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인재들로 청와대와 장관 인선을 하는 것이 옳았다. 진보나 야당 성향의 인물을 기용하는 대탕평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에게 순종적인 ‘박근혜의 남자들’만을 골라서 쓰고 있다. 대체로 능력보다는 충성심이 기준인 것 같다. <동아일보> 정성희 논설위원은 수컷 일개미들이 여왕개미를 위해 분골쇄신하는 ‘여왕개미의 제국’에 비유했다.
이런 식의 인적 구조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비해 확실히 퇴화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래도 초기에는 쓴소리를 하는 측근들을 곁에 뒀고 이들과 말싸움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쨌든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국정을 다루기에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성장동력을 끌어올리려면 무엇보다 기득권 집단의 나눠먹기식 이익분배 구조를 뒤집어엎어야 한다. 큰 싸움이 불가피하다. 장렬하게 싸우다가 전사할 수 있는 장수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새 정부에는 그런 장수들이 없다.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늑대를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몇 년을 허송세월하면 2016년부터 그야말로 대침체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한반도 상황 대처에도 극단적인 집중 체제는 적절하지 않다. 대통령 한 사람의 오판으로 전쟁이 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도대체 왜 이렇게 독선적인 것일까?
“정치가 실종되어 가고 있다. 과연 정치가 국민 입장에 서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11일 첫 국무회의에서도 그는 엉뚱하게 정치 탓을 했다. 정치를 실종시킨 것은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다. 그는 최근 ‘선택받은 자의 소명’과 자신의 ‘진정성’을 부쩍 자주 내세우고 있다. 정치인이 아니라 종교인 같다. 혹시 정치를 선과 악의 대결로 보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큰일이다. 자신을 절대선으로 인식하는 자는 모든 타인을 악으로 대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나이가 너무 많다. 참모들은 어떨까? 면면으로 보아 ‘벌은 한번 쏘고 죽는다’는 조언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보수세력 전체가 나서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해서 꺾어야 한다. 대통령 주변의 이상한 사람들을 쫓아내고 진짜 애국심이 있는 인물들을 천거해야 한다. 정권을 만들었으면 책임도 지는 것이 옳다. “그래도 문재인과 좌파가 집권해서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는 낫지않은가”라는 궤변으로 위안을 삼을 때가 아니다. 자칫하면 박 대통령 치하에서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 보수의 각성을 촉구한다.

< 한겨레신문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


[1500자 칼럼] 눈송이의 감상

● 칼럼 2013. 3. 8. 17:54 Posted by SisaHan
겨울이 막바지에 달했다. 나는 매일 먼 곳까지 운전을 하며 직장 생활을 하는데, 그래서인지 날씨와, 특별히 겨울에 내리는 눈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보통은 운전 길에 쌓이는 눈이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생각으로 살지만, 한편으론 차창에 내려앉는 눈 송이의 모습에 따라 그 먼 출퇴근 길이 깊은 감상의 길이 되곤 한다. 
암만 갈 길이 멀고 마음이 조급해도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의 큰 눈송이를 보면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그냥 차를 집어 던지고 마냥 걷고 싶어진다. 어디선가 그리운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뛰기까지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날은 생각 없이 운전을 하고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떡가루 같은 눈이 보슬보슬 내릴 때가 있다. 바람도 없는 잿빛 하늘에서 줄지어 내려오는 가는 눈 발을 보고 있으면 마음은 차분해 지면서 알 수 없는 행복으로 가득해진다. 첫 아기를 품에 안던 날이 꼭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 학교 가는 길에 그런 눈을 맞았던 것 같기도 하여 따뜻한 느낌마저도 준다. 또 습기를 잔뜩 머금고 뚝뚝 떨어져 차창에 쌓이는 눈을 보면 애틋한 감상보다는 곧 봄이 올 것 같은 기대에 어깨가 가벼워지고 새 계절에 대한 기대에 쌓인다.
 
라디오에서 눈송이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야기한다. 눈은 모두 6각형 짜리 미세한 얼음조각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작은 얼음 조각이 떨어지다, 상공에서 기류를 만나면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또 내려오다 올라가기를 거듭하면서 그 때 공기 중에 있던 습기가 얼음 조각에 부착되면서 눈송이의 모습이 달라진다고 했다. 듣고 보니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한 과정인데, 그렇게 해서 조금씩 달라진 눈의 형태들이 하늘을 채우면서 우리의 감정을 그리도 변화 무상하게 하는 것이다. 
같이 일을 하는 동료 중에 나이도 비슷한 두 여자가 있다. 한 여인은 항상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제적인 일에 정보를 다 확보하고 있어 우리가 고용계약을 다시 조절하거나, 직원 혜택의 내막들을 알고 싶으면 그녀에게 물으면 된다. 무슨 일에도 그녀는 금전적인 계산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늘 주변의 사람들과 돈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가 하는 일이 틀린 것은 없지만, 만나면 저 깍쟁이가 오늘은 또 무슨 일로 계산기를 꺼낼까 싶다.
한편 다른 여인은 어디를 가도 주변의 사람들을 기쁘고 즐겁게 만들어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준다. 그녀는 늘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바램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서슴지 않고 베푼다. 언어치료사로 많은 아이들과 일하다 보면, 어린 나이에 힘든 병에 걸려 앞 날을 추측할 수 없는 아이들과도 만나게 된다. 그 동료는 수시로 그런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자신이 선두로 비용을 내고 모금 운동을 벌여, 아픈 학생을 ‘디즈니월드’에 보내 주기도하고, 집에서 치료를 받을 때 갖고 놀 수 있는 게임기 등을 선물하기도 한다. 마치 어려움은 한번도 겪어 본적이 없는 사람처럼 마음이 편안하고 풍요롭다.
 
이들 두 동료는 각자 나와 단둘이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얼마나 자신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는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은 시골 마을에서 농토도 없이, 막 일을 하는 부모 밑에서, 또 다른 친구는 폴란드에서 갓 이민 와 광산에서 일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많은 형제들과 자라며 어려웠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의 삶은 공중에 던져진 작은 얼음 조각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류에 쌓여 곤두박질 치면서 오르내리기를 거듭하면서 살아간다. 그 긴 여로를 아무 준비 없이 맞아, 있는 힘 것 살아간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수 많은 눈송이들이 다 다른 형색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비슷한 공중곡예를 거치며 살아 온 사람들이 이렇게 다른 모습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도 우리 삶이 가지고 있는 불가사의가 아닌가 생각된다. 꽃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차창에 떨어지며 스르르 녹아 버리는 힘없는 눈을 보며 감상에 젖어본다.

< 김인숙 - ‘에세이 21’로 등단,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심코 가톨릭교육청 언어치료사>


[칼럼] 미국 시퀘스터의 어리석음

● 칼럼 2013. 3. 8. 17:52 Posted by SisaHan
독설이 난무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 간의 예산전쟁은 3월1일 시퀘스터(정부의 자동 예산삭감) 발효로 이어졌다. 시작은 정부와 공화당이 국가채무 한도를 증액하는 문제를 놓고 대치했던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화당은 앞으로 10년 동안 부채 상한액이 늘어나면 그만큼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채무 한도를 늘리지 않으면 정부는 채무 원리금을 상환할 수도, 정부 본연의 업무를 처리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공화당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전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 새로운 위기가 배태됐다.
닥쳐온 위기는 이른바 ‘재정절벽’이었다. 2013년 1월1일은 1110억달러의 재정지출 감소뿐만 아니라 5000억달러에 이르는 세금 감면이 종료되는 날이었다. 세금 인상과 예산 삭감 효과가 결합될 경우 미국 경제의 후퇴는 불 보듯 뻔했다.

지난해 말 대통령과 의회는 다시 협상에 나섰고 재정절벽에 이른 지 이틀 뒤에 이를 막는 법안이 발효됐다. 이 협상을 통해 일정 기간 동안 1000억달러에 이르는 급여세 감면은 끝났지만, 높은 소득세를 내는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은 소득세 감면이 연장됐다. 시퀘스터 작동일도 3월1일로 늦춰졌다.

미국은 올해만도 국방 분야와 국내 지출 부문 양쪽에서 850억달러를 삭감해야 하는데 이는 관련 분야 지출의 6%에 이르는 규모다. 시퀘스터가 시작된 지 며칠 지난 지금은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이지만 앞으로 많은 분야에서 재정삭감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미 쇠약해진 경제에서 850억달러를 뽑아내는 것은 악영향을 끼칠 것이 당연하다. 의회의 예산국과 다른 독립적인 기관들은 시퀘스터가 경제성장률을 0.6%포인트 낮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경제는 급여세 감면의 종료로 인해 이미 둔화되고 있다. 시퀘스터는 경제성장률을 고용창출에 필요한 2.0~2.5% 미만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이는 실업률 증가를 의미한다.

하지만 3월1일이란 날짜 자체는 별 중요한 의미가 없다. 앞으로 시퀘스터가 실제로 효과를 내기 시작한다면, 의회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예산 삭감 조처를 되돌릴 것이다.
당연히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정부 운영 방식이다. 직원들을 일시해고하거나 1주일간 휴가를 줬다가 2주일 뒤 또는 2개월 뒤에 다시 복귀하도록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예산은 어차피 복구될 텐데 단지 일정을 재조정하기 위해 정부와 맺은 구매 또는 용역 계약을 취소하는 것도 비상식적이다. 이는 결국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것이다. 이처럼 절차가 오락가락한다면 업무를 처리하는 비용도 늘어나게 된다.

흥미롭게도 오바마 대통령은 이전 협상에서보다 시퀘스터에 관해서만은 더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듯하다. 그는 공화당원들이 원하지 않는, 국방 예산의 대폭 삭감과 특정 업종에서의 세금 감면을 없애는 식의 온건한 세금 인상 조처를 제안하고 있다. 이는 공화당원 대부분이 좋아하지 않는다.
오바마는 공화당을 압박하기 위해 시퀘스터 효과가 쉽게 체감되는 핵심 분야의 지출을 통제하겠다고 결정했다. 특히 항공관제사, 공항 검색대 직원들을 줄이는 것을 계획중이다. 비행편이 취소되면 여행이 지연되고 공항에서의 검색 대기 시간이 늘어난다.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면 결국 공화당원들은 협상에 착수할 수밖에 없다. 운이 좋다면 이는 재정전쟁의 마지막이 될 것이며,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예산과 경제에 대해 좀더 진지한 토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딘 베이커 -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 소장 >

 
주한미군들이 며칠 전 서울 도심에서 난동을 부리다 추격하는 경찰관과 시민들을 차로 치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군이 시민에게 공기총을 쏜다는 신고가 접수되고 경찰이 실탄까지 쏘는 심야 추격전이 벌어졌는데도 당사자들이 미군 영내로 달아난 탓에 경찰은 초동수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미군 쪽의 협조만 기다리는 상황이 재연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미군 범죄가 한해 200~400건씩 일어나는데도 엄한 처벌이 내려지지 않은 탓에 뿌리뽑히지 않고 있다.
 
최근에도 지난달 2일 주한미군 6명이 지하철 안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떠들다, 조용히 해달라는 20대 여성을 카메라로 찍고 몸을 더듬는 등 성추행을 한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해 7월엔 경기도 평택에서 미군 헌병들이 주차문제로 시비를 벌이다 민간인 3명에게 수갑을 채워서 연행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주한미군 범죄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교통 관련 범죄로 2011년 165건이었다가 작년에는 상반기에만 166건으로 급증했다.
미군 범죄가 줄지 않는 건 물론 우리의 수사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탓이 크다. 우리 경찰이 미군을 현행범으로 붙잡았으면 직접 초동수사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미군 쪽 협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에서도 미군들이 부대 안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초동수사는 물론 음주 여부 측정도 할 수 없었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이 2001년 4월 개정됐으나 살인·강간 등 12개 중요범죄에 대해서만 미군 피의자의 신병 인도 시기를 ‘재판 종결 뒤’에서 ‘기소 시점’으로 앞당겼을 뿐 여전히 우리 수사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 뒤에도 미8군 부사령관이 용산경찰서를 방문해 사과하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직접 차를 운전한 일병은 진통제를 맞고 치료중이라며 출석하지 않고 있다. 미군 범죄가 끊이지 않는데도 여전히 적당한 사과에 이은 솜방망이 처벌로 넘어가는 일이 반복되는 건 문제다. 총기까지 사용했다니 이번에야말로 엄정한 수사와 엄한 처벌로 본때를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