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량 부품으로 가동되는 부실 원전

● 칼럼 2013. 6. 1. 18:4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신고리 원전 1, 2호기와 신월성 1, 2호기에 불합격 판정을 받은 부품이 사용된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가동중인 원자로를 정지하라고 지시해 올여름 전력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원전 불량 부품은 지난해에도 크게 문제돼 관련 기관들이 시스템 정비와 재발 방지를 다짐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끊이질 않으니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시험 성적서를 위조한 부품은 제어케이블로, 원전 사고 발생시 원자로의 냉각 등 안전계통에 동작 신호를 보내는 장치라고 한다. 원안위에 따르면, 제어케이블 시험의 일부를 해외 시험기관에 의뢰한 국내 시험기관이 이 해외 시험기관에서 발행한 시험 성적서를 위조했다고 한다. 제어케이블이 정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핵연료 냉각 및 외부로의 방사성물질 차단 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니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진 것도 원자력산업계의 비리를 막기 위해 원안위가 운영하는 신문고에 누군가가 제보한 덕이었다. 이 부품이 설치된 게 2008년이라니 5년 동안 까마득히 모르고 가동한 것이다. 뒤늦게나마 알게 됐기에 망정이지 제보가 없었다면 위조 부품이 들어간 원전을 계속 가동할 뻔했다. 지난해 품질 서류 위조에 대해 전수조사를 했다는 원안위와 한국수력원자력의 검증 시스템에 또 허점이 드러났다.
 
수만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원전은 단 하나의 부품이 고장을 일으켜도 연쇄적으로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제어계통의 부품은 원전의 핵심 안전설비 중 하나인데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충격적이다. 지난해에도 영광 원전에서 품질 검증서가 위조된 부품이 공급된 사실이 드러나 한동안 가동이 중단된 적이 있다. 또 고리 2호기와 영광 1~4호기에 납품된 부품의 시험 성적서가 위조되고 이 과정에서 한수원 직원이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사실도 드러난 바 있다. 먼저 납품된 부품이 몰래 빠져나갔다가 그대로 재납품되기도 하고, 중고 부품이 새 제품으로 둔갑돼 납품되는 등 비리 수법도 다양하다.
한수원이 우월적 지위에서 300개에 이르는 부품 납품업체를 관리하고, 원전 운영을 폐쇄적으로 하다 보니 생기는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납품업체로선 불합격 판정을 극구 피하고 싶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유사 사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드러난 것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불량 부품이 들어갔을 소지는 없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원전의 가동 정지로 전력 수급에 비상등이 켜질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사설] 경찰, 축소에 ‘증거인멸’까지 했나

● 칼럼 2013. 6. 1. 18:4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두 차례 불러 조사하고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 게시글이나 댓글을 달아 대선에 개입한 것도 문제지만 경찰이 이를 축소수사하고 증거인멸까지 했다면 사안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경찰의 축소수사 의혹은 경찰 내부에서 먼저 제기됐다. 경찰은 지난해 대선 직전 국정원 직원이 선거에 개입한 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는 취지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대선 뒤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경찰 수뇌부가 수사를 축소하기 위해 외압을 행사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수사팀은 하드디스크 분석을 위해 대선 관련 키워드 78개를 제시했지만 서울경찰청은 4개의 키워드만을 분석한 뒤 댓글이 없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청장이 수사 상황을 파악하면서 외압을 행사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검찰이 김 전 청장을 지난 21일에 이어 25일 다시 불러 조사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검찰 수사에 대비해 경찰이 증거를 조직적으로 인멸했다는 의혹도 충격적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소속 한 팀장이 지난 20일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 하드디스크에 있던 자료를 삭제했다고 한다. 팀장은 검찰에서 윗선 지시는 없었고 단순 실수라고 했다는데 사이버수사대 팀장이 실수로 파일을 지웠다면 누가 믿겠는가. 과거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 증거인멸 사건 때도 직원의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했다가 들통난 적이 있다. 축소수사도 문제지만 경찰의 조직적 은폐 의혹도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대선 때 투표일을 불과 사흘 앞둔 한밤중에 경찰이 급작스레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을 두고는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이 많았다. 무언가 의도가 있지 않고선 그런 식으로 발표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이 모든 과정의 핵심에 김 전 청장이 있었다는 게 내부의 폭로인데, 만약 사실이라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 엄중히 책임을 물을 일이다. 조직적으로 증거인멸까지 이뤄졌다면 경찰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다.
검찰이 이번 수사에서 경찰에 대한 해묵은 감정을 가지고 화풀이식 수사를 할 일은 아니다. 국정원과 경찰의 정치 개입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기를 문란케 하는 중대 범죄에 해당한다. 검찰은 사명감을 가지고 다시는 권력기관의 정치 개입이 없도록 사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한마당] 분노사회에 답하는 정치

● 칼럼 2013. 6. 1. 18:4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인은 압축성장으로 경제적 기적을 이뤘다는 자부심에 가득 찬 사람들일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여러 해 이곳에 근무하면서 관찰한 모습은 달랐다. 많이 지쳐 있고,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한 서방 외교관과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다. 사실 그렇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 열심히 뛰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진입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행복도는 그만큼 높아지지 않았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며 끊임없이 경쟁으로 내모는 사회에서 전력을 다해 달려왔지만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기만 하다. 대다수 젊은이에게 괜찮은 일자리는 그림의 떡이고, 취약한 사회안전망은 은퇴자들의 미래를 보장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자신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따뜻한 인간관계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경쟁사회에 밀리고 지친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을 패배자로 만든 사회에 대해, 절망하고 분노한다. 그 절망과 분노는 자살이나 타인에 대한 공격성의 증가로 나타난다. 실제로 지난 10년 사이 자살률은 100% 이상 늘었다. 자살 못지않게 타인에 대한 공격도 늘고 그 양태마저 극단화하고 있다. 얼마 전 온 사회에 충격을 던졌던 묻지마 살인이나 최근 논란의 초점으로 떠오른 일베현상이 단적인 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란 커뮤니티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폄훼해 물의를 빚은 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일베충’이라고 비하하는 우리 사회의 패배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거나 자신보다 더 약한 자를 짓밟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사회가 비판적으로 반응하면 할수록 쾌락이 배가되기에 가학적 언어폭력의 수준을 높여온 것이 논란으로 비화했다. 따라서 이런 일베현상을 일베충의 일탈이나 표현의 자유 문제로만 보는 것은 단견이다. 오히려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능력을 상실할 정도로 심각해진 분노사회의 병리적 현상으로 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쟁을 완화하고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등 제도적 측면의 노력이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고통의 뿌리를 응시하게 해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회복하게 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이달 초 한국을 방문했던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일은 내면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라고 했다. 내면의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비로소 그 고통이 다른 누구 탓이 아니라 무조건 경쟁지상주의를 수용하고 내달려온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되고, 같은 고통을 겪는 타인에게도 공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고통이 깊은 만큼 우리 사회의 치유에 대한 갈망도 높아지고 있다. 힐링(치유)이란 문패를 단 프로그램이나 책이 상한가를 치고 틱낫한의 강연에 수만명이 모여든 것이 좋은 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갈망에 응답한 것은 종교단체 등 민간부문이었다. 또 그런 프로그램이나 책이 제도적 측면의 대책보다 당장의 고통을 회피하는 당의정만 제공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정치의 목표가 국민의 행복 증진이라면, 이렇게 분노와 고통이 팽배한 사회를 치유하는 일이야말로 정치의 일감이다. 상처받는 이들을 줄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동시에 상처받은 이들에게 분노의 내면을 응시할 힘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시가 6월부터 힐링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반가운 까닭이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는 이름의 프로그램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정혜신 박사가 중심이 돼 치유활동가 500명을 양성하고 그 500명이 연말까지 서울시민 1만명을 치유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이 계획이 흥미로운 점은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이 다시 치유활동가가 돼 다른 상처받은 사람을 치유하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공감 네트워크’로 확장해 나간다는 데 있다. 단순히 자기최면적인 힐링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새로운 정치의 모형을 제공하게 될지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 권태선 한겨레신문 편집인 >


[1500자 칼럼] 톱니 바퀴를 만드는 할아버지

● 칼럼 2013. 5. 24. 19:2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여러 사람이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누군가 나에게 언어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인가 물었다. 대강 언어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할아버지가 빙그레 미소를 지며 “그게 바로 어릴 때 내 모습” 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분은 90이 넘으신 체스(Ches) 할아버지다. 
체스 할아버지는 우리가 70년 대 토론토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만난 사람 중에 한 분이다. 프린스 에드워드(P.E.I.) 섬 출신인 할아버지는 그 때 건장한 중년이었는데, 여름에 P.E.I.까지 찾아가 할아버지의 고향을 방문하여 많은 가족도 만나고, 빨간 섬의 농가에서 온갖 사랑을 받던 기억이 생생하다. 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나서 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고, 평생 톱니바퀴(gear)를 만드는 일을 했다.
 
할아버지가 만든 톱니바퀴 중에는 일점 오센티 (1.5㎝) 의 작은 톱니바퀴에서 부터 육척이 넘는 할아버지의 키보다도 세배나 큰 톱니바퀴까지 크기가 다양하고 쓰이는 용도도 추측할 수 없이 많다고 했다. 체스 할아버지는 톱니바퀴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밀도라고 했다. 원형의 틀 주위에 박혀있는 수많은 톱니중 어느 하나라도 정확히 깍아지지 않으면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지 못하여 다시 만들어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 했다. 두번째로 기계 속에서는 많은 톱니가 서로 물고 돌아가며 작용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깍아 놓은 톱니도 용도와 환경에 따른 문제가 동반하게 되어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기계가 원활히 작동하도록 온갖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 할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사람은 하는 일에 따라 생각과 사는 모습이 바뀌어가게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원칙대로 정확히 사는 일이 몸에 밴 사람이다. 우선 무엇이 원칙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곳에 도착하기까지 긴 훈련이 필요해도 일단은 그 원칙을 받아 들인다. 자신이 정성들여 만든 톱니 바퀴가 무사히 돌아가기까지 조절하고 깍기를 거듭하는 것처럼 일단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조금씩 조금씩 주변에 적응해 나간다.
 
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토론토에 도착한 후 지난 60년 이상을 시내의 한 교회를 지켜왔다. 그 긴 세월 신앙생활에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많은 여성들이 안수를 받고 목회자 직을 맡게 되었고, 토론토에는 여러 곳에서 온 이민자들이 정착을 하여, 중상층 백인들뿐이던 교회는 온갖 얼굴의 교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성적 소수자들도 눈에 띄게 되었다. 예배의 형태들도 변화를 보여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으로만 이어지던 경건한 찬송은 기타와 드럼 소리에 맞추어 사람들의 감정이 더 많이 표현되는 복음성가들이 섞이기도 하였다. 
최근 거론된 교회의 변화 중에는 성적 소수자들을 목회자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익숙하지 않은 일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종교는 삶의 모태와 같이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 감정을 모두 의지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변화를 어렵게 받아들이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그 문제로 교회에는 많은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긴 회의 끝에 의장이 성적 소수자에 관하여 좀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교회의 입장을 정하는 것이 좋겠다며 회의를 마무리지으려는 순간이었다. 늘 회의를 지켜만 보던 체스 할아버지가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할 말을 정리하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리다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일은 우리와 함께 예배에 참가했던 이들도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고 이들을 이해하는데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기를 바란다’ 라고 했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한 톱니바퀴로 사회라는 기계 속에서 조금씩 원활한 돌림을 시작하고 있다.
 
이제 할아버지는 교회에 참석하는 최고령자가 되었지만, 평생 하던대로 교회 건물과 시설들을 수리할 일이 생기면 자신이 고쳐보려 온갖 아이디어를 내 본다. 60년이 넘은 교회의 보일러는 할아버지의 기술과 지극한 정성으로 ‘바꿀 필요 없음’이라는 합격 평가를 받았다. 요즘은 연장 통이 힘에 버거워진 할아버지 뒤에 우울증으로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청년 하나가 할아버지를 도와 연장 통을 들고 쫓고 있다. 자신의 말처럼 할아버지는 말로 남을 설득하며 살아 온 사람은 아니지만 주변의 톱니바퀴들이 다 맞아 돌아가게 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갈고 조이기를 끊이지 않는다. 

< 김인숙 - ‘에세이 21’로 등단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심코 가톨릭교육청 언어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