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에 머물던 남쪽 인력이 거의 철수했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와 연결된 유선전화도 끊김으로써 이제 남북은 모든 접촉 창구가 단절된 상태가 됐다.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말고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기사회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북한의 개성공단 담당 실무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개성공단이 완전하게 폐쇄되는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쪽에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폐쇄 조처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려면 이제까지 드러난 여러 문제점부터 극복해야 한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개성공단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일부 강경세력이 부추기는 공단 폐쇄론이 정부 안에서 거론돼선 안 된다. 아울러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긍정적 검토를 비롯해 다른 경협 사업을 함께 강화해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협 활성화는 핵·미사일 문제 등을 풀기 위한 다각적인 국제대화를 뒷받침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대북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다. 돌발 결정이 되풀이돼서는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나라 안팎의 신뢰를 얻기도 어렵다.
개성공단 정상화가 이뤄지려면 북쪽의 자세가 바뀌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북쪽의 비합리적 행태만 강조해서는 이전 정부와 다를 게 없다. 긴 시야를 갖고 남북 관계의 큰 틀을 만들어 내용을 채워나갈 책임은 어디까지나 정부에 있다. 정부는 좀더 전향적이면서 현실적인 대북정책을 세워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절대다수의 국민은 남북 관계 개선을 바란다. 미국과 중국 등 관련국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북쪽은 개성공단을 ‘6.15의 옥동자’로 표현하며 당분간 남쪽의 후속조처를 지켜보겠다는 모습을 보인다. 개성공단 정상화는 정부의 노력에 달려 있다.
 
남북 당국은 개성공단이 단지 서로 물질적 이익을 꾀하는 합작사업이 아니라, 통일 여정에 큰 디딤돌을 놓는 화해·협력사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이 금강산 관광 중단, 천안함 침몰 사건, 연평도 포격과 같이 남북 사이에 극도의 긴장이 벌어졌던 이명박 정권 시절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큰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와 김정은 정권은 사소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개성공단을 제물로 바쳐선 안 된다. 어떤 명분으로건 민족 화합과 통일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건 민족과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 다시 ‘텐노 헤이카 반자이! (천황폐하 만세)’의 외침이 튀어나오고 있다. 동아시아 대륙을 짓밟아 2천만명 이상을 살상한 ‘대일본제국’ 시절에 횡행했던, 당시의 피해국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폭압의 외침이었던 맹신적 호기의 군중합창-. 그 두려운 역사의 퇴물이 장막 뒤에서 다시금 변장한 얼굴을 비죽이 내밀고는 무대 위 확성기를 타고올라 괴성을 내기 시작했다.
 
지난 4월28일은 패전국 일본에 대한 미군의 점령통치를 마감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지 61년이 되는 날이었다. ‘역사 부정’으로 국제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아베 신조 내각은 이날 일본 정치사상 처음으로 ‘주권회복·국제사회 복귀 기념식’이라는 희한한 행사를 열었다. “이날은 굴욕의 날”이라며 오키나와의 전 주민이 궐기해 반대하는 데도 콧방귀를 뀌듯 버젓이 성대한 식전을 자랑했다. 우익들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천황폐하’를 모시고, 국회와 정부의 수장이 모두 모여 “자랑스런 일본” “강한 일본‘을 들먹이며 기세를 올렸고, 아베는 ”지금까지 걸어온 족적을 생각하면서 미래를 향해 희망과 결의를 새롭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 아베를 비롯한 일본의 수뇌들은 아키히토 천황에게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더니, 그 부부가 퇴장하려 하자 양 손을 치켜들고 입을 모아 ”텐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쳤다. 
태평양 전쟁 이후 사라졌던 이 장면은 최근 가속되고 있는 일본 우경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A급 전범의 손자인 아베가 집권한 이후 군대위안부 부정과 독도망언, 일제의 침략전쟁 부인, 그리고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북한 핵위협을 빌미로 한 자위대 국방군화와 무장 강화 추진 등 일련의 ‘복고책략’이, 그동안 다수 국민들 사이에 터부시 돼온 ‘천황만세’까지 3부 요인들이 공공연하게 외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전례없는 장면에 일본의 언론들도 우려를 나타냈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이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범한 끝에 패전을 맞이한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면서 국회의원 168명의 야스쿠니 신사 집단 참배, 아베의 ‘침략 물타기’ 발언 등을 비판했다. 우익성향의 요미우리도 “내외에 참화를 가져온 ‘쇼와 전쟁’은 국제감각을 잃은 일본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됐고, 패전과 점령은 그 결말”이라며 냉정히 되돌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왜 그렇게 역사를 정직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가?”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가 독일과 비교하며 일본의 퇴행적인 역사인식과 행태를 비판한 말이다. 이 신문은 아베 총리와 일본의 우익들 발언을 ‘자기파괴적 수정주의‘라고 질타했다. 앞서 뉴욕타임즈도 “일본은 적대감에 불을 지르는 미욱한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아베는 역사의 상처를 악화시키는 일을 그만두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안팎의 거센 눈총에도 불구하고, 아베의 내셔널리즘 자극에 편승한 일본국민 수는 날로 늘고 아베 정권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팽창화가 더욱 가속될 조짐인 것이다. 앞으로 영토문제를 포함해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 격한 마찰은 불가피해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요즘 미국정부가 우려의 눈초리를 보내고는 있지만, 미국의 행태야 말로 ‘병주고 약주는’ 식의 아이러니이며, 뒷북치기다. 근대 일본 우경화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바로 미국 아닌가.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는 침략 원흉들을 뿌리뽑지 않고 오히려 군정에 이용했다. ‘천황’을 폐위시키지 않았고, 전범들을 처단하지 않은 채 다시 그들로 하여금 일본을 재건하게 만들었다.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바로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렇게 일본의 전쟁책임은 유야무야되면서, 우익은 독버섯처럼 세를 부풀릴 수가 있었다. 그런 근시안적인 미국의 ‘성원’으로 재활한 것이 바로 침략을 부인하는 오늘의 일본 우익세력이니, 그 책임이 막중하다.
 
따지고 보면 한반도에서도 피점령국의 ‘건강한 재건’보다는 자국 이익에만 몰두한 미국의 원죄가 오늘의 수많은 대립과 분열과, 마찰을 생산해 냈음을 알 수 있다. 일제 당시의 친일부역자들을 남한 군정에 활용해 부활시킴으로서 식민청산의 길을 막았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독도의 한국령 임을 인정치 않아 일본에 빌미를 준 것도 미국이었음은 강자의 만용이요 약자의 한(恨) 일 뿐인가. 
당쟁과 사대(事大)의 습벽으로 나라를 망친 역사의 거울을 망각한 우리네 한반도에서는 남북간 평화의 보루며 상징인 개성공단 마저 폐쇄 위기에 처했으니,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늘 한스런 역사가 반복되는 것일까.

< 김종천 편집인 >


얼마 전에 저스틴 트뤼도 (Justin Trudeau)가 자유당 당수로 뽑혔다. 젊은 나이에 사실상 제1야당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당의 당수가 된 것이다. 캐나다는 미국 및 한국하고는 달리 내각책임제이므로 그가 차기 캐나다의 수상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는 41세라는 젊은, 또는 보는 이에 따라 어린 나이에 캐나다라는 큰 나라의 미래를 떠맡는 책임있는 자리에 앉은 셈이다.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캐나다 국민도 그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그가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된 것은 당연히 그의 아버지 피엘 트뤼도(Pierre Elliot Trudeau) 때문이다. 그는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프랑스계의 수상이다. 어느 정치인보다 인기가 있었고,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인해, 나중에는 지난친 행동으로 뉴스거리가 되었던 결국 이혼하게 된 부인 마가렛 때문에 항상 이야기 거리가 주변에 있던 정치인이다.
 
캐나다의 정치인이라면 나는 피엘 트뤼도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는 내가 처음으로 이름을 들은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이민 올 당시의 캐나다의 수상이었다. 그에게는 내가 보아온 어느 정치인보다 국민들을 믿고 따르게 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특히 내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어느 정책보다, 늘 가슴에 꽂고 다니던 빨간 장미다. 보통 사람도 그러기 힘든데, 연예인도 아니고 한 나라의 수상이 그런다니… 그의 빨간 장미가 더 선명하게 나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그의 장례식 때의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오타와에서 한 그의 장례식이 끝나고, 그의 운구가 실린 기차가 고향인 몬트리올로 돌아갈 때, 사람들이 빨간 장미를 들고 길 옆에 나와 서있는 모습이 오래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그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군대를 동원해 강압적으로 퀘벡 분리주의자를 제압한 사실로 그의 고향에는 그를 좋아하던 사람도 많았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진정으로 존경받는 정치인라면 그가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그리고 장례식 때도 진심으로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부자가 또는 부녀가 한 국가의 지도자로 활동을 하는 경우는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서방국가에서는 드문 일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그랬고, 지난 선거에서의 박근혜 대통령이 뽑혔지만…, 아무리 본인의 능력에 따라 뽑혔다 해도, 아버지의 후광을 업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저스틴 트뤼도가 수상이 될지, 수상이 되면 아버지 못지않은 훌룡한 정치인이 될지 그건 모르지만, 그래도 젊은 나이에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 사뭇 궁금하다. 아버지는 캐나다 최장수 수상중의 한 명이었다. 무려 11년 간 수상직을 수행했다. 벌써 여당인 보수당에서 그를 깎아내기에 열중이다. 아니나 다를까, 무엇보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 그건 동전의 양면으로, 젊고 패기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그도 아버지 못지않게 카리스마 또는 쇼맨쉽이 있는 것 같다. 지난 해 말에 자신보다 덩치가 큰 여당 국회의원과 자선모금을 위한 권투시합을 해서 매스컴을 탄 일이 있었다. 젊고 패기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것이 자신의 이미지를 쌓으려는 계산된 행동인지는 나는 모르겠다. 아무튼 신문을 본 사람은 대부분 젊고 패기있는 모습을 보았으리라. 사실 선진국이라 불리우는 안정된 사회일수록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치인의 실생활에 바로 연결되지 않는, 다른 말로 피부에 바로 와 닿지않는 정책보다, 그들이 보여주는 이미지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사회와 정치가 안정되기를 원하지만, 또 생활이 힘들다고 느껴지거나 지루하다 느껴지면 그 어떤 변화를 요구한다. 지금이 캐나다 사람들이 변화를 요구하는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의 아버지가 수상이 되었을 때처럼, 캐나다는 새로운 수상, 새로운 지도자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칼럼] 기내 추태와 웨이터의 법칙

● 칼럼 2013. 4. 27. 19:37 Posted by SisaHan
기내식으로 제공되는 라면에 대해 불평을 하면서 항공기 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린 대기업 상무 이야기가 대화제다. 처음에는 방송 단신으로 임원의 실명과 구체적인 내용 없이 몇 줄만 가볍게 보도됐던 것이 트위터, 인터넷커뮤니티를 통해 실명과 항공사의 내부 대응 기록문건이 퍼지면서 일파만파가 됐다. 뜻밖에도 많은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 임원의 고약한 행동에 분노의 감정을 표출했다. 아마도 평소 직장에서 그런 상사를 접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러다 트위터를 통해서 ‘웨이터의 법칙’이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데이브 배리라는 작가의 글에서 유래한 이 법칙은 다음과 같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는 잘 대해주지만 웨이터에게는 거만하게 행동한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은 미국의 CEO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일종의 불문율이라고 한다. CEO가 회사의 임원을 뽑을 때 꼭 명심해야 할 말이라는 것이다.
 
CEO가 회사 내부나 바깥의 누군가와 식사할 때는 다들 그가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잘 보이려고 예의를 다해서 행동한다. CEO에게는 누구나 좋은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식사 상대가 웨이터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자세히 보면 그 사람의 진짜 성품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지위가 낮다고 사회적 약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직장에서도 부하들에게 비슷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도 모르게 권위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웨이터뿐만 아니라 호텔 종업원, 경비원, 청소원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하인 부리듯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많은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CEO나 임원의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 화제가 됐던 ‘보수주의자’ 윤여준 전 장관이 문재인 후보를 처음 식당에서 만났을 때 아랫 사람들에게 공손히 대하는 태도를 보고 품성을 재평가해 문 후보를 돕기로 결심했었다고 털어놓은 말이 떠오른다.

2006년 웨이터의 법칙을 소개한 <USA 투데이> 기사에서는 웨이터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난 이 레스토랑을 사버리고 널 잘라버릴 수 있어”라든지, “난 이 레스토랑 주인을 잘 아는데 널 해고시킬 수도 있어”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소개했다. 곧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과시다. 불행히도 이런 발언은 그 사람의 힘을 과시하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를 나타낼 뿐이다.

국적항공사 비즈니스클래스에서 일하는 항공사 승무원의 경우는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층 인사’들을 항상 접하기 때문에 이 ‘웨이터의 법칙’을 몸으로 느낄 것 같다. 이번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어 파문이 일고 있지만 그 임원보다도 더 잘나고 힘센 인사들의 비슷한 무례한 행동은 알려지지 않고 묻히는 일이 많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힘있는 사람에게는 깍듯이 하면서 식당의 종업원이나 골프장의 캐디는 마치 하인 부리듯 반말조로 막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년 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한 선배의 형수가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하루는 카운터에서 업무를 보는데 한 대기업의 최고위급 중역이 체크인을 하려고 왔다. 그런데 규정을 넘어서는 크기의 가방을 기내로 가지고 들어가겠다고 해서 원칙상 안 된다고 짐을 부치라고 정중히 말씀드렸단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대단한 고객인데 이렇게 대할 수 있냐며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고객카드를 두 동강 내면서 떠났다고 한다. 또 너희 회장에게 널 자르라고 얘기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격분하던 선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군가가 당신에게는 잘해주지만 항공기 승무원에게는 거만하게 행동한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이 기회에 한국에서는 이런 ‘항공기 승무원의 법칙’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아무쪼록 한국의 경영자들도 이 법칙을 명심하길 바랄 뿐이다. 

< 임정욱 -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