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NN은 4일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연일 최고 기온을 갈아치우며 수백명을 숨지게 한 폭염 사태를 전하며 “기후변화가 북반구를 태우고 있다”고 우려했다. 북미뿐 아니라, 러시아와 인도, 이라크 등지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폭염 사태가 그만큼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소도시 리턴은 지난달 30일 기온이 49.6℃까지 치솟는 등 사흘 연속 캐나다에서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평상시 리턴의 6월 최고 기온이 25℃ 정도임을 감안하면 거의 두배에 육박한다. 리사 러포인트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수석 검시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일주일간 719명이 돌연사했다며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망자 수의 3배에 달한다”고 밝혔다고 캐나다 CBC 방송이 전했다. 러포인트 검시관은 고온으로 인해 사망자 수 증가가 초래된 것으로 보인다며 폭염에 따른 희생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폭염은 더위로만 끝나지 않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150여건 이상 산불이 발생했다. 폭염으로 인한 화재로 리턴의 대부분 지역이 재가 됐고, 주민들은 대피했다.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와 워싱턴주에서도 폭염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두 곳의 폭염 사망자는 각각 95명과 30여명으로 집계됐다. <시엔엔>(CNN)은 “자동세척기, 드라이어, 고통스럽지만 심지어 에어컨까지, 전력망을 지키기 위해 전력 소모가 많은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뉴욕 주민들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는 지난달 23일 34.8℃를 기록해 역대 6월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시베리아의 농부들은 폭염으로부터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분주하다. 심지어 북극권의 기온이 30도까지 치솟고 있다. 지난달 20일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의 기온이 38도를 기록하자, 세계기상기구는 북극권 북쪽의 기온 측정을 시작한 이래 최고 기온인지를 평가하고 나섰다.
인도 북서부 주민 수천만명도 폭염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인도 기상당국은 지난달 30일 수도 뉴델리와 주변 도시들이 극심한 폭염을 겪고 있다며 기온이 계속 40℃를 웃돌아 평소보다 7℃ 정도 높다고 밝혔다. 더위와 늦은 장마는 라자스탄주와 같은 지역의 농부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라크는 폭염으로 수도 바그다드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지난 1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50℃가 넘는 고온과 전력 시스템 붕괴 등으로 일하거나 공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시엔엔>(CNN)에 이런 기상 이변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정확히 짚어내는 것은 어렵지만, 북반구 일부 지역에 폭염이 동시에 들이닥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다.
영국 왕립기상학회 리즈 벤틀리 등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의 원인으로 ‘열돔 현상’을 꼽는다. 3만피트(약 9.144㎞) 상공에서 찬 공기와 따듯한 공기를 섞어주는 제트기류가 약해져 대기권에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해 ‘지붕'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뜨거운 공기가 움직이지 못하는 현상이다.
6월 중순 미국 남서부 지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멕시코와 애리조나주 피닉스 같은 곳에서 최고 기온 기록을 깼다. 몇주 후 북서쪽 상공에 고기압 돔이 형성됐고, 워싱턴과 오리건, 캐나다 북서부에서 기록이 깨졌다. 그는 “우리는 전례 없는 기온을 보고 있는데 기록이 단지 몇도 정도 깨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박살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기상학자 니코스 크리스티디스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의 영향이 없다면, 미국 북서부와 캐나다 남서부의 폭염은 “수만 년에 한 번 일어나는 일”이지만, 현재는 “15년 정도마다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된다면, 세기가 바뀔 무렵엔 이런 폭염이 1~2년마다 한번씩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정윤 기자
'엎친 데 덮친' 캐나다 서부…폭염 이어 산불 136곳 확산
캠루프스 인근 스파크스레이크 비롯한 9곳 심각한 상태
1일 하루 BC주 전역서 약 1만2천 회에 달하는 벼락 관측
캐나다 서부 스파크스레이크의 산불 현장 [AFP=연합뉴스]
폭염에 이어 캐나다 서부를 급습한 산불이 이틀 사이 100 곳 넘게 확산됐다.
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BC)주의 산불이 북동쪽 소도시 리턴 지역을 전소시킨 데 이어 2일 내륙 지역 136곳에서 확산 중이다.
산불은 지난달 말 기습적인 폭염에 건조한 날씨와 바람을 타고 급속히 악화하는 양상이다.
전날 마을 전체가 탄 리턴 지역에서는 최소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주민 1천여명의 대피가 당국이 나설 틈도 없이 긴급하게 이뤄지면서 이들의 안전 여부 파악이 아직 어려운 실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리턴 지역은 지난달 30일 기온이 섭씨 49.6도까지 치솟는 등 사흘 연속 캐나다에서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주 소방 당국은 이날 현재 산불 발생 지역이 136곳인 것으로 확인했다.
특히 동북부 내륙 도시인 캠루프스 인근 스파크스레이크를 비롯한 9곳은 심각한 상태로 파악됐다.
스파크스레이크 산불은 310㎢에 걸쳐 확산 중이며 산불 양상에 따른 분류 기준으로 '통제 불가' 상태라고 한 당국자가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어제 하루 주 전역에서 약 1만2천 회에 달하는 벼락이 관측됐다"며 "대부분이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 부근에서 일어나 산불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산불은 남서부 내륙에서도 잇따라 발생해 지역별로 200~1천여 가구에 대피령이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연방 정부는 이날 공공안전, 환경부 등 관계 부처를 긴급 소집해 대책 회의를 열고 리턴 지역을 비롯한 산불 피해 지역에 긴급 재난 지원을 펴기로 했다.
캐나다 50도 폭염에 산불까지…마을 통째로 불타 수백명 대피
순식간에 오갈데없는 난민 발생
독거노인 다수 폭염에 돌연사
폭염·산불 '기후변화 악영향' 의심
산불 때문에 초토화한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리튼 마을 [AP=연합뉴스]
최고기온 50도에 육박하는 폭염 때문에 시련을 겪는 캐나다 서부가 산불로 다시 충격을 받았다.
1일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서 동북쪽으로 153㎞ 떨어진 리턴 마을이 산불로 전소됐다.
갑자기 나타난 불길은 폭염으로 숲이 바짝 건조해진 데다 강풍이 분 탓에 너무 빠르게 번져 당국의 대피 명령이 나오기 전에 마을을 집어삼켰다.
시커먼 연기가 골짜기를 가득 메우자 주민 250명은 재앙을 직감하고 허겁지겁 챙길 수 있는 것들을 갖고 탈출에 나섰다.
주민 이디스 로링-쿠항가는 페이스북에 "우리 작은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며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 장 매케이는 "나도 울고 딸도 울었다"며 "돌아갈 집도 없는데 집 열쇠는 왜 가지고 왔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이날 산불은 태평양 북서부에 닥친 폭염이 정점을 찍었다는 관측이 나온 순간에 불거진 재난이었다.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는 최근 연일 이상 고온에 시달렸고 지난달 30일 기온은 한때 섭씨 49.6도까지 치솟았다.
밤낮으로 지속되는 폭염 때문에 공중보건에도 심각한 위기가 닥쳤다.
리사 라포인트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수석 검시관은 지난달 25일부터 30일까지 돌연사가 486건 보고됐다고 밝혔다.
포인트 검시관은 평시에 같은 기간 돌연사는 165건 정도라며 폭염 때문에 사망자가 늘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AP통신은 북미 서부 지역의 폭염으로 숨진 이들 중에는 에어컨, 선풍기도 없이 홀로 지내는 노인들이 많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산불과 이상고온이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결과이자 인간이 탄소배출로 초래한 재난이라고 보고 있다.
이 지역 폭염의 원인은 차고 더운 공기를 섞어주는 제트기류가 약화해 고기압이 정체하면서 생긴 열돔(heat dome)으로 추정된다.
제트기류 변형은 과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지목해온 기후변화의 악영향 가운데 하나였다.
산불은 심각한 가뭄 때문에 심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과학자들은 기후변화 때문에 그런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빚어진다고 본다.
캐나다 남서부 밴쿠버 근처의 작은 도시 리턴의 6월 일평균 최고기온은 섭씨 16.4도다. 29일 측정된 최고기온은 이보다 3배 높은 49.5도였다. 전날 기록 47.9도를 하루 만에 깬 것이다. <CNN>은 이 지역에서 기온 측정이 시작된 1800년대 후반 이래 100여년 만의 최고 기록이라고 전했다. 북위 50도 이상 지역에서 측정된 온도 중 가장 높은 기록이기도 했다.
이런 더위는 리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폭염이 북상하면서 미국 서부 연안 캘리포니아주와 오리건주, 워싱턴주가 설설 끓고 있고, 캐나다 남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태평양 연안의 북미 서부 지역은 냉방기를 설치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맑고 건조한 기후가 특징인데, 유례를 찾기 힘든 폭염에 에어컨과 선풍기 등 냉방기가 동나고 더위를 먹은 시민들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례가 속출했다.
인명 피해도 커지고 있다. 밴쿠버 지역에서는 폭염 시작 뒤 사망자가 평소의 2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폭염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되는 사망자가 급증했다. 고령층과 기저질환자가 대다수였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검시관은 “평소 나흘 동안 130여건의 사망신고를 받는데, (폭염이 시작된)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는 최소 233명의 사망신고를 받았다”고 말했다고 <CTV>가 전했다.
폭염은 일상생활과 방역에도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밴쿠버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센터가 문을 닫았고,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명물인 노면전차는 전선이 녹으면서 운행을 잠시 중단했다. 일부 야외수영장은 폭염으로 문을 닫았다. 워싱턴주 시애틀에선 식당들이 문을 닫았다.
폭염으로 인한 극심한 가뭄과 대형 산불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 가뭄감시기구(NIDIS)는 지난 24일 미 서부 지역의 절반(49.7%)이 극심하거나 예외적인 최고 수준(D3, D4)의 가뭄 위험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다. 통상 더위가 본격화하는 7월 말부터 산불이 시작되는데, 올해는 벌써 캘리포니아 지역에 산불이 발생해 1만3300에이커를 태웠다. 미 전역으로 보면 12개 주에서 48개 대형 산불로 66만1400에이커가 불탔다. 미 국립기상청은 돌풍과 낮은 습도에 대비하라며 이 지역에 적색 깃발 경보를 발령했다.
과학자들은 이번 폭염을 기후변화의 결과로 분석한다. 구체적으로는 북미 서부에 고기압이 정체하면서 뜨거운 공기를 대지에 가두는 열돔(Heat Dome) 현상이 미 북부와 캐나다까지 북상하면서 발생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기후학자 마이클 맨은 <뉴욕 타임스>에 “인간이 초래한 지구온난화로 폭염이 더 덥고 길고 잦아졌다”며 “현재 폭염은 연평균 6회로 1960년대보다 3배 더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열돔의 강도는 수천년에 한번꼴로 발생할 정도인 통계적으로 매우 드문 현상”이라며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가 이런 예외적인 현상의 발생 가능성을 높였다”고 전했다. 최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