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임원으로 재직 중인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맏사위가 미국에서 마약류를 밀수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조용래)는 지난 4월 ㄱ(45·남) 삼성전자 상무에 대한 공소를 접수했다.

 

ㄱ상무는 2019년 5월 미국 시애틀에서 국내로 입국하며 엑스터시와 대마를 밀수입한 뒤, 같은 해 7월과 8월 서울 강남구의 한 모텔에서 두 차례에 걸쳐 투약하거나 흡연한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기소됐다.

 

ㄱ상무와 함께 엑스터시와 대마를 함께 투약하거나 흡연한 ㄴ(29·여)씨도 함께 기소됐다. ㄴ씨는 2017년에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바 있다. 검찰은 ㄴ씨에게 마약을 제공하거나 함께 투약한 혐의를 받는 다른 공범 2명도 재판에 넘겼다.

 

현직인 ㄱ상무는 최근까지 정상 출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윤영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향정신성의약품인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약식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정식재판에 회부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이동희 판사는 28일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약식 기소된 이 부회장을 정식 재판에 회부하는 결정을 내렸다. 약식기소로 가볍게 볼 사건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4일 이 부회장을 벌금 5천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약식기소는 비교적 혐의가 가벼운 범죄에 대해 검찰이 정식 공판 없이 약식 명령으로 벌금·과료·몰수 등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다. 법원은 사안이 무겁거나 약식 명령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할 때, 직권으로 정식 재판에 넘길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프로포폴을 상습 투약했다는 공익신고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돼 수사를 받았다. 그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치료를 받았을 뿐 불법 투약이 아니라고 혐의를 부인하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하기도 했다. 수사심의위는 지난 3월 검찰에 수사 중단을 권고했으나, 기소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려 결론을 내지 못한 바 있다. 신민정 기자

여야 합의로 여순사건 특별법과 3·15의거 명예회복법 함께 통과

 

정부 수립 초기 다수의 민간인이 국가폭력에 희생됐던 여순사건의 진상이 73년 만에 밝혀지게 됐다.

 

국회는 29일 본회의를 열어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여순사건 특별법)을 의결했다. 이로써 73년 동안 반공주의의 억압으로 통한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희생자와 유족들이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회는 이날 여야 합의로 여순사건 특별법과 3·15의거 명예회복법을 함께 통과시켰다.

 

여순사건 특별법은 여순사건의 시기적 범위를 14연대가 제주4·3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한 1948년 10월19일부터 지리산에 입산금지 조처를 해제한 1955년 4월1일까지 6년 반으로 규정했다. 장소적 제한은 여수·순천을 비롯해 전남·북, 경남 일부 지역으로 명시했다. 역사적 성격은 당시의 혼란과 무력충돌, 이의 진압과정에서 민간인 다수가 희생당한 사건으로 명시해 이들의 안타까운 피해를 치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1948년 10월 여수·순천에서는 제주4·3의 진압명령을 거부한 14연대의 봉기와 토벌군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특별법에 따라 설치될 국무총리 소속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명예회복위)는 2년 동안 진상조사 활동을 벌인 뒤 6개월 안에 진상조사보고서를 발간한다. 여순사건으로 사망·행방불명·후유장해·수형 등 피해를 본 희생자와 그 유족들은 명예회복위 구성 1년 안에 진상규명 신고를 하고, 피해 내용에 대한 조사를 받아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 국가는 또 희생자를 추모하고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위령묘역·공원을 조성하고, 사료관·위령탑을 건립하는 등 기념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특별법은 공포 뒤 6개월 뒤에 시행되기 때문에 명예회복위의 활동은 내년 초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3년은 진상규명 작업, 이후 3년은 위령시설 건립이 단계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발의자인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순사건 발발 73년 만에, 특별법 발의 20년 만에 드디어 국회의 빗장이 풀렸다”며 “사건 당시 희생자 대부분 돌아가셨고, 유족들조차 80~90대 고령인 만큼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도록 시행령 제정도 챙기겠다”고 말했다.

 

여순사건 유족회와 시민단체도 숙원이었던 특별법의 제정을 환영했다.

 

여순사건 유족회는 이날 “특별법을 제정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며 “법 제정이 늦어지면서 유족조차 고령이 된 상황을 고려해 신속하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추진해야 한다”고 반겼다. 당시 유복자였던 서장수 여수유족회장은 “하늘나라에 먼저 가신 부모님도 기뻐하실 것이라 믿는다”며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려 애써주신 모든 분께 한없이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여순민중항쟁 전국연합회 등 시민단체 30여곳은 “기쁘기도 하지만, 너무 늦어 아쉬움도 많다”며 “국방부, 검찰청, 경찰청 등 국가기관이 여순사건과 관련한 모든 기록을 공개하고 진상규명에 협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신 희생자와 유족한테 다시 한 번 위로를 드린다. 진상규명 신고와 조사에 차질이 없도록 실무위원회를 잘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여순사건 특별법은 지난 2001년 16대 국회부터 4차례 발의됐지만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에서 번번이 자동 폐기됐다. 21대 국회 들어서는 지난해 7월 의원 152명이 발의했고, 상임위 심사가 늦어지며 미뤄지다 야당인 국민의 힘이 태도를 바꾸면서 행정안전위와 법제사법위를 여야 합의로 통과했다.

 

앞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009년 1월8일 여순사건으로 순천 일대 민간인 다수가 군인과 경찰에 집단 사살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할 특별법의 제정을 국가에 권고했다.

 

광주지법 순천지원도 지난해 1월20일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장환봉씨의 재심에서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같은 피해를 본 다수의 희생자를 구제하기 위해 복잡한 재판을 거치기보다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의 일부 군인이 제주4·3을 진압하라는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켰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 다수가 희생된 현대사의 비극이다. 이 사건 직후 1949년 이뤄진 전남도 조사에서는 희생자 수가 1만1131명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안관옥 기자

[서울 인사동 재개발지구서 한글 금속활자 등 1600여점 발굴]

 

조선 초기 도성 안 민가 터에서 총통, 물시계 주전 등과 함께 발견

크기별로 대·중·소·특소로 나뉘고 훈민정음 창제 직후 표기법도 확인

일부는 서양 최초보다 수십년 앞서 갑인자 추정 한자활자도 다량 출토

 

            발굴 전시된 유물들

    한글 금속활자의 세부 모양.

 

“한국 인쇄문화사에 획 긋는 발견”

“이건 조약돌이 아니라 금속활자입니다!”

 

이달 1~2일 서울 인사동 피맛골 재개발지구 유적을 발굴하던 수도문물연구원 조사단원들은 예상치 못한 발견에 입을 쩍 벌렸다. 16세기 민가터 땅속에서 화약무기 총통과 함께 드러난 도기 항아리 옆구리 구멍 사이로 조약돌 모양의 덩어리 몇개가 삐져나왔는데, 씻고 살펴보니 광택 나는 금속활자로 드러난 것이다. 항아리 안 내용물을 뜯어본 결과는 놀라웠다. 무려 1600여개의 금속활자가 들어차 있었다.

 

그 뒤 전문가들이 감식했더니, 1446년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를 즈음해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 조선 초기 세종~세조 대의 한글 금속활자 실물과 세종 대인 1434년 만든 한자 금속활자본의 걸작 ‘갑인자’로 추정되는 활자 실물이 처음 출현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활자들 일부는 독일인 구텐베르크가 1450년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 활판인쇄를 시작한 때보다 수십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세기에 만들어진 한글 금속활자 소자. 기록만 전해지다 이번 발굴에서 최초로 실물이 확인됐다.

              *한글 연주활자.

 

문화재청은 최근 수도문물연구원이 조사해온 서울 인사동 79번지 ‘공평구역 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부지 내 유적(나 지역)’의 16세기 건물터에서 항아리에 담긴 15~16세기 세종~중종 시기 금속활자 1600여점이 발견됐다고 29일 발표했다. 이와 함께 세종~중종 대 쓴 것으로 보이는 자동 물시계의 시보 장치 부품인 ‘주전’(籌箭)과 세종 때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의 부품들, 중종~선조 때 화기인 총통류 8점, 동종(銅鐘) 1점 등도 같은 유적에서 함께 발굴됐다고 덧붙였다.

 

              *세종 때 만든 갑인자로 추정되는 한자 금속활자들. 크기상 소자(小字)에 해당한다.

 

    *도기 항아리 내부를 채운 금속활자들. 출토 당시의 모습이다.

 

역사적 가치가 가장 높다고 평가되는 출토품은 한글 금속활자 실물들이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 직후인 15세기 중반기에 한정돼 쓰인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 실물들이 처음 확인됐고, 크기별로 대·중·소·특소로 나뉜 다양한 크기의 활자들이 고루 출토된 점 등은 획기적인 성과로 보인다. <동국정운>은 1448년 세종의 명으로 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간행한 조선 최초의 표준음 관련 서적으로, 중국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하여 쓰인 ‘ㅭ’, ‘ㆆ’, ‘ㅸ’ 등의 <훈민정음> 초기 글자들을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두 글자를 한 활자에 연결 표기해 토씨(어조사) 구실을 하게 한 희귀본 연주활자(連鑄活字)들도 10여점이 나왔다.

 

 *물시계의 시보를 작동시키는 주전 부품들. 이번 발굴로 처음 실물이 출토되었다.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인 ‘주천도분환’.

    *물시계의 중요 부품인 주전. 처음 확인되는 실물이다.

 

한자활자의 경우 현재 가장 이른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대의 ‘을해자’(145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보다 20년 이른 세종대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 확인됐다. 백두현 경북대 교수와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인쇄문화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국내 최고의 한글활자와 세종이 만든 한자본 갑인자의 실물이 처음 나타났다는 점에서 한국 인쇄문화사에 획을 긋는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도기 항아리에서는 금속활자와 함께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들이 잘게 잘려진 상태로 출토됐다. 주전은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에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된다.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가 처음 확인된 것이다.

 

항아리 옆에는 역시 세종 대 제작품으로 추정되는 주야간 천문시계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들이 나왔다. <세종실록>을 보면, 낮에는 해시계,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한 기기로, 1437년(세종 19년) 4개의 기기를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와 동종이 땅속에서 드러난 모습.

                             *출토된 승자총통.

 

소형화기로는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이 나왔다. 명문을 판독한 결과 계미년 승자총통(1583년)과 만력 무자년 소승자총통(1588년)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해시계 아랫부분에서 용 손잡이인 용뉴를 비롯한 여러 점의 동종 파편들도 함께 나왔다. 종 몸체엔 1535년(중종 30년) 4월에 제작됐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출토 지점은 종로2가 네거리 북서쪽이다. 중부 견평방에 속했던 도성 안 중심으로, 평민들이 살았던 상가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런 민가터에 일반인이 지닐 수 없는 금속활자 등의 고급 유물과 무기류가 왜 무더기로 묻혔는지는 명확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오경택 연구원장은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과 시기상 가까워 전란을 맞으면서 가치 있는 금속제 유물들을 묻어두고 피난 갔다 회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노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