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 전 일본 요미우리 신문 인터뷰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전 정권 합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일본 방문을 앞두고 일본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과거 위안부 합의, 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국가로서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21일 보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 국민으로서는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전 정권의 합의”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책 일관성과 국가의 대외 신뢰를 생각하는 한편, 국민과 피해자·유족 입장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 책임을 동시에 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위안부, 징용 등 역사 문제에 대해 한국 국민에게는 “가슴 아픈 주제”라면서 “되도록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대립적으로 되지 않도록 하면서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요미우리는 이 대통령이 위안부, 징용 문제 등에 대해 양국이 장기적으로 보다 인간적 관점에서 논의할 것을 제안하면서 일본 쪽에 한국 국민에 대한 배려를 요구한 것이라고 해설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일본 아베 신조 정권과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고,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일제강점기 징용 피해 소송 해결책으로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일본 피고 기업 대신 배상금 등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를 제시했다.

 

오는 23일부터 이틀간 일본을 방문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이 대통령은 한일관계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을 찾는 것은 2023년 5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한 이후 약 2년 만이다.

 

이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매우 중요한 존재”라며 “한국도 일본에 유익한 존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쪽에 이익이 되는 길을 발굴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를 넓혀 가야 한다”며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등 양국이 협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양국 정상이 정례적으로 상대국을 오가는 ‘셔틀 외교’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일본 총리도 시간이 허락할 때 한국을 찾고 수시로 왕래하는 등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고자 한다”고 의욕을 나타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한일이 미래 지향적 협력을 추진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높이 평가하면서 “선언을 계승해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공동선언을 발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지난 6월 한 달간 시범적으로 시행됐던 한일 전용 입국심사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뤄지면 재설치가 가능하다”며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 대통령은 일본이 요구하는 일본 일부 지역산 수산물 조기 수입에 대해서는 아직 곤란하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 대통령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평화적으로 공존해 위협이 되지 않도록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며 북한과 대화, 의사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에 이어 미국을 방문하는 이 대통령은 “한미 동맹은 매우 중요하고 일본에도 미일 동맹이 (외교 정책의) 기본 축”이라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한미일 3국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19일 대통령실에서 진행됐다. 요미우리는 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한국 언론을 포함한 보도기관과 대면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이카와 쇼이치 요미우리신문그룹 대표가 질문했다.                     < 김수헌 기자 >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의 수를 9명에서 13명으로 증원

 

 
 
21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방송문화진흥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방송3법’ 중 하나인 방송문화진흥회법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재석의원 171명 가운데, 찬성 169표, 반대 1표, 기권 1표로 방송문화진흥회법을 가결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주도한 법안 처리에 반발해 본회의에 불참했다.

 

방송문화진흥회법은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의 수를 9명에서 13명으로 증원하고 이사 추천권을 국회는 물론, 학회, 시청자단체, 임직원 등에 개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 5일 상정된 뒤 국민의힘 요구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가 진행됐으나, 5일 자정 7월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필리버스터도 자동 종료됐다. 국회법에 따라 필리버스터가 끝난 뒤 열린 이날 첫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의 표결 절차를 밟았다.

 

지난 5일 방송3법 중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 있다. 민주당은 나머지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차례로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고한솔  김채운 기자 >

 

이 대통령 “방문진법 통과 기뻐할 모습 그려져” 고 이용마 기자 추모

공영방송 독립성 보장 노력 기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회 을지국무회의 및 제37회 국무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방송 3법’ 중 하나인 방송문화진흥회법(방문진법) 개정안 국회 처리를 앞두고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노력했던 고 이용마 기자를 추모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고 이용마 기자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6년이 됐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의 간절한 꿈이자 시대적 과제였던 방문진법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라며 “생전 이 순간을 마주했다면 누구보다 기뻐했을 모습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 그는 언제나 그 선두에 서서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웠다”며 “병마와의 사투 속에서도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팟캐스트를 통해 국민에게 진실을 전하고, 정치권력으로부터 공영방송이 독립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자 마지막까지 부단히 노력했다”고 했다.

 

이용마 기자는 문화방송(MBC) 출신으로, 김재철 사장 재임 시절인 2012년 경영진의 편파·왜곡 보도에 항의해 파업을 주도하다 해고됐다. 이후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해 1심과 2심에서 부당해고임을 인정받았지만,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던 2016년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고 2019년 타계했다.

 

이 대통령은 “그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며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다시금 되새기며 어떠한 어려움을 마주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져본다”고 적었다.

 

‘방송 3법’ 중 하나인 방문진법 개정안은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를 9명에서 13명으로 늘리고, 국회 교섭단체와 관련 기관의 추천으로 구성하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방문진법 개정안은 지난 7월 임시국회 중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로 회기가 자동종료돼 표결이 진행되지 못했다. 국회는 국회법에 따라 8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가 열리는 이날 방문진법 개정안을 첫 안건으로 상정하고 즉시표결한다.

                                                                           < 고경주 기자 >

 

 

“남북관계 개선은 실현 불가능” 한미 훈련 비판
19일 협의회서 김정은 ‘대외정책 구상’ 전달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리재명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한국의 대결야망이라는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위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20일 조선중앙통신(중통)이 보도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19일 ‘외무성 주요 국장들과 협의회’를 열어 “한국 정부의 ‘유화공세’의 본질과 이중적 성격을 실랄히 비판”하며 “국가수반(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외정책 구상을 전달포치(지도)”했다고 중통이 전했다.

 

김 부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정책 기조를 외무성 국장들과 협의회에서 전달했다는 중통 보도는, 북한이 한국을 ‘외국’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협의회에서 김 부부장이 전한 김 위원장의 ‘대외정책 구상’은 일반 인민이 접할 수 있는 노동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김 부부장은 “한국의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작은 실천들이 조약돌처럼 쌓이면 상호간의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고 하면서 ‘조약돌’이요, ‘신뢰’요, ‘인내심’이요 하는 방랑시인 같은 말을 늘어놓는가 하면 정동영이라는 장관은 그 무슨 5대 핵심과제라는 것을 표방했다고 말했다”라고 말했다. 그러곤 “서울에서는 제멋대로 ‘희망’과 ‘구상’을 내뱉는 것이 풍토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마디마디 조항조항이 망상이고 개꿈”이라고 폄훼했다.

 

김 부부장은 “리재명 정권이 들어앉은 이후 조한관계의 ‘개선’을 위해 무엇인가 달라진다는 것을 생색내려고 안깐힘을 쓰는 ‘진지한 노력’을 대뜸 알 수 있다”면서도 “악취 풍기는 대결 본심을 평화의 꽃보자기로 감싼다고 해도 자루 속의 송곳은 감출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부부장은 18일 시작된 한-미 연합군사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를 “미한의 침략전쟁연습”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조현과 안규백이 (장관) 후보자로 지목되였을 때부터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서슴없이 말한데 대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곤 “겉과 속이 다른 서울 당국자들의 이중인격을 투영해주는 대목”이라 주장했다.

 

그는 “‘보수’의 간판을 달든, ‘민주’의 감투를 쓰든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한국의 대결 야망은 추호도 변함이 없이 대물림하여 왔다”며 “한국의 누구라 할지라도 미국의 특등충견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문재인으로부터 윤석열에로의 정권교체 과정은 물론 수십년간 한국의 더러운 정치체제를 신물이 나도록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이재명 정부가 기대하는 남북관계 개선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하고는 “뻔히 알면서도 평화 시늉과 관계개선에 대한 횡설수설을 계속하고 있는데는 궁극적으로 조한관계가 되돌려지지 않는 책임을 우리에게 넘겨씌우자는 고약한 속심이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무성은 가장 적대적인 국가와 그의 선동에 귀를 기울이는 국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대응방안을 잘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책임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에 있다고 주변국에 알리라는 얘기다.

 

그는 “한국은 우리의 외교 상대가 될 수 없다”며 “한국에는 우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지역외교 무대에서 잡역조차 차례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한국이 낀 3자 이상 다자외교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김 부부장은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그 구체적인 배경은 설명하지 않았다.

 

김 부부장의 대남 공개 발언은 지난 6월4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두차례 담화(7월28일, 8월14일)를 포함해 세번째다. 23일 사이에 세 차례 공개 발언은 이례적인 빈도다. 김 부부장의 발언 내용이 무엇이든, ‘관심 있다’는 방증이다. 김 부부장의 대남 공개 발언은 세번 모두 노동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 이제훈 기자 >

 

대통령실, 김여정 ‘대통령 실명 거론’ 비난에 “우리 노력 왜곡 유감”'

 

 

 
통령실은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는 모습을 30일 SNS에 공개했다. 연합
 

대통령실은 20일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한국은 우리 국가의 외교 상대가 될 수 없다”고 비난한 데 대해 “북 당국자가 우리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왜곡해 표현하는 것은 유감”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실은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들은 일방의 이익이나 누구를 의식한 행보가 아니라 남과 북 모두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과정”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뒤로하고 한반도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반드시 열어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리재명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한국의 대결야망이라는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위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부부장이 이 대통령의 실명을 언급하며 비난한 것을 두고 “(우리 정부가) ‘비핵화 문제를 직접 거론할 정도면 우리하고는 외교 안 하겠다는 거 아니냐’ 이런 식의 불편함을 드러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김 부부장의 이런 발언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북한의 관심 끌기 전략으로 봐야 된다”고도 했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약간 노이즈를 일으켜서 북한이 아직 존재감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면 북한 문제에 대해서 화제로 올려달라’ 이런 요구를 (한 게) 아니냐 저는 이렇게 들린다”고 덧붙였다.         < 고경주 기자 > 

 

직원 실수? 정치검사들 의도적 증거 인멸 의혹
정성호 법무 "매우 엄중"…남부지검 감찰 착수

1억 6500만 원 현금 출처 찾을 띠지 모두 버려
한국은행 지급 5000만 원 관봉권은 스티커까지
윤석열 취임 사흘 뒤 날짜 적혀 '특활비' 의혹
'찐윤' 신응석, 넉 달 뒤 알았다?…감찰도 안 해

남부지검의 건진법사 압색, 윤 탄핵안 통과 직후
애초 증거 은폐 목적?…구속영장도 '기각될 결심'

여권 "검찰, 해체해 달라 몸부림" 특검 수사 촉구

 

건진법사 전성배 씨가 18일 민중기 특별검사팀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웨스트로 들어가고 있다. 전 씨는 2022년 4∼8월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교단 현안 관련 청탁과 함께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백 등을 받은 뒤 이를 김건희 여사에게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2025.8.18 [공동취재] 연합
 

'건진법사' 전성배 씨의 수상한 자금 출처를 규명할 핵심 증거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모두 사라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검찰은 "직원이 실수로 버렸다"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지금까지 '친윤' 정치 검사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행태를 볼 때 의도적인 증거 인멸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9일 서울남부지검이 전성배 씨의 자택에서 확보한 억대 돈다발 관봉권의 띠지를 분실한 것과 관련해 철저한 진상 파악 조치를 지시했다. 법무부는 이날 오후 언론 공지를 통해 "정 장관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남부지검의 건진법사 관봉권 추적 단서 유실 및 부실 대응 문제와 관련해 매우 엄중한 사안인 만큼 진상 파악과 책임 소재 규명을 위한 감찰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현재 김건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출범하기 전에 건진법사 수사를 담당했던 남부지검이 전 씨 자택에서 발견한 돈다발의 띠지를 분실한 것으로 확인된 데 따른 조치다. 법무부 장관이 일선 검찰 수사 과정과 관련해 직접 감찰을 지시한 사례는 흔치 않다. 그만큼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대검 감찰부는 즉시 김윤용 감찰3과장을 팀장으로 하는 조사팀을 구성했으며, 곧 남부지검으로 보내 감찰에 착수할 예정이다.

 

서울남부지검이 2024년 12월 17일 '건진법사' 전성배 씨의 서울 서초구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1억 6500만 원어치의 현금다발 중 한국은행이 지급한 '관봉권' 5000만 원(5만 원짜리 1000장 묶음) 사진. 남부지검 수사보고서

 

앞서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서초구 전 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1억 6500만 원어치의 현금다발(5만 원권 3300장)을 확보했다. 이 중 5000만 원은 5만 원짜리 1000장 묶음을 비닐로 포장한 뒤 위쪽에 한국은행 도장을 찍은 이른바 '관봉권(官封券)'이었다. '관봉'이란 정부기관에서 밀봉했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으로부터 관봉권을 지급받을 수 있는 금융사는 16개 국내 은행과 2개 외국은행 한국지점 등 21곳에 불과하고 개인은 수령이 불가능하다.

 

관봉 지폐는 100장씩 묶어 '띠지'를 두르고, 이 묶음을 10개씩 비닐로 포장해 '스티커'를 붙인다. 띠지와 스티커에는 지폐 검수 날짜와 시간, 담당자, 책임자, 처리 부서(발권국), 기기 식별 번호 등이 모두 숫자로 적혀 있다. 여기에 담긴 정보들은 현금 흐름을 역추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단서이기 때문에 건진법사가 이 돈다발을 어디에서 받았는지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로 꼽혀 왔다.

 

전 씨는 그간 관봉권을 포함한 1억 6500만 원을 언제 누구한테 받았는지에 관해 "기억이 안 난다"면서 누군가 '기도비' 명목으로 자신에게 건넨 돈이라고 발뺌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전 씨의 관봉권에는 윤석열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사흘 뒤인 '2022년 5월 13일' 날짜가 적혀 있어 대선 공신인 전 씨에게 대통령실이나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가 전달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돼 왔다. 전 씨는 2022년 4∼8월 통일교 측으로부터 교단 현안 청탁과 함께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백 등을 받은 뒤 이를 김건희에게 전달해준 혐의도 받고 있다.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 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19일 전성배씨의 법당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단독주택. 2024.12.19. 연합
 

그런데 남부지검이 어처구니없게도 이 관봉권의 띠지와 스티커를 전부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5000만 원어치 관봉권뿐 아니라 나머지 현금 묶음 1억 1500만 원의 띠지도 전부 사라졌다고 한다. 스티커 사진은 찍어놓은 게 있지만, 실물이 없으면 향후 법정에서 증명력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남부지검 측은 "경력이 짧은 직원이 압수물을 공식 접수하기 위해 현금을 다시 센 뒤 현금만 보관하면 되는 줄 알고 띠지와 스티커를 실수로 버렸다"며 "넉 달이 지난 4월 말이 돼서야 그 사실을 알았고, 관봉권과 현금은 띠지 대신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명 자체도 상식 밖이지만 분실 이후 지금까지 경위 파악을 위한 내부 감찰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얄팍한 거짓말이라고 의심될 수밖에 없다. 당시 서울남부지검장이던 신응석 전 검사장은 언론 취재에 "수사 도중 감찰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수사팀 사기가 떨어질 수 있어 일단 보류하고, 수사가 마무리된 이후 감찰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분실 사실을 대검찰청에 보고했는데도 감찰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시종 납득하기 어려운 정황뿐이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른바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 씨가 19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24.12.19. 연합
 

남부지검이 돌연 건진법사의 주거지와 법당을 압수수색해 띠지로 묶인 뭉칫돈을 확보한 시점은 지난해 12월 17일이다. 그 사흘 전인 12월 14일 토요일에는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극적으로 의결됐다. 이 때문에 남부지검이 압수수색에 나선 이유는 처음부터 증거 확보가 아니라 증거 인멸이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윤석열의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자 위기감을 느낀 친윤 검찰이 향후 탄핵심판과 재판 등에 대비해 부랴부랴 압수수색을 벌여 윤석열-김건희에게 불리한 증거를 은폐해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남부지검은 압수수색 바로 다음 날인 12월 18일 전성배 씨가 지난 2018년 경상북도 영천시장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당내 경선에 출마한 후보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여 원을 받았다는 혐의(정치자금법 위반)에만 국한해 전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윤석열-김건희와의 연관성은 전무한 채 부실하게 작성된 이 초라한 영장에 대해 다음날인 12월 19일 서울남부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피의자가 금원(金員)을 받은 날짜, 금액, 방법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남부지검은 보강 조사를 거쳐 약 보름 뒤인 지난 1월 6일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지만, 남부지법 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월 9일 "정치인이 아닌 사람이 단지 다른 정치인에게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정치자금을 기부받은 경우 정치자금법 위반죄의 단독정범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또 다시 기각했다. 남부지검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바로 다음 날인 1월 10일 전 씨를 처음과 동일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애초에 '건진 게이트' 수사 의지가 없는 남부지검이 '기각될 결심'으로 청구한 영장이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신응석 전 서울남부지검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시기 남부지검 수사를 지휘한 특수통 출신 신응석 전 검사장은 '윤석열 사단' 중에서도 대표적인 '찐윤' 검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을 때 형사3부장으로 그를 보좌한 끈끈한 근무연이 있고, 윤석열이 검찰총장이 된 뒤에는 남부지검 2차장으로 영전했다. 그러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첫 검찰 인사 때 청주지검 차장검사로 사실상 좌천된 데 이어 대구고검 검사, 서울고검 검사 등 한직을 돌았는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첫 검찰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해 승승장구했다.

 

건진법사 관봉권의 띠지를 분실할 당시 신응석 남부지검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을 대검찰청 지휘 라인에는 이진동 대검 차장검사와 심우정 검찰총장이 있었다.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기는커녕 어떻게든 관련 사건을 덮거나 뭉개는 데 급급했던 체제였다. 이들 3인은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뒤 줄줄이 사의를 표명하고 검사 옷을 벗었다. 신응석의 후임으로는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검찰 내부망에 "포고령은 명백한 위헌이다. 즉각 수사가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던 개혁 성향의 김태훈 검사가 남부지검장으로 부임한 상태여서 정성호 법무장관의 이날 감찰 지시에 충실히 응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훈 신임 서울남부지검장이 4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5.7.4. 연합
 

여당 측에서는 이번 검찰의 기만극에 전면적인 감찰과 특검 수사를 촉구했다. 황명선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윤석열 검찰이 또다시 국민을 기만했다. 검찰은 뻔뻔하게 '직원이 실수로 버렸다'며 사건을 축소했는데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증거로 범죄 유무를 따지는 검찰이 핵심 증거를 분실했다는 말을 믿을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라면서 "더 충격적인 것은 검찰이 이 사실을 4월에 이미 파악하고도 감찰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조직적 증거 인멸이며 사건 은폐 공모"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법무부와 대검은 즉각 전면 감찰에 착수하라. 공수처는 윤석열 검찰의 증거 인멸과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해 지금 당장 수사하라"며 "윤석열 검찰의 부패와 은폐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대한민국 법치주의는 설 수 없다. 검찰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불가역적 시대 과제임을 다시금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전했다.

 

박주민 의원은 이날 오전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검찰이 해체해 달라고 지금 몸부림을 치고 있다. 아주 박살을 내버려야 할 것 같다. 수사를 하는 게 아니라 구멍을 파고 있다"면서 "검찰청을 해체하면 수사 공백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걱정하는 분들이 가끔 계신데, 이런 걸 보면 검찰은 빨리 해체해야 한다. 수사를 이따위로 하기 때문에 진짜 빨리 해체해야 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어 페이스북에도 글을 올려 "검찰은 답이 없다. 감찰까지 무마하려 했다면 명백한 조직적 사건 은폐이며, 관련 사건 축소 은폐는 특검의 수사 대상"이라면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증거 훼손에 이를 무마하려고까지 한 수사기관이 더 이상 필요한가? 오히려 그대로 두는 것이 국가적 손실이자 망신이다. 검찰은 해체만이 답이다"라고 강조했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퇴임식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며 차량에 오르고 있다. 2025.7.2. 연합
 

서울중앙지검장 출신 이성윤 의원도 "현금 '띠지'나 관봉권 '스티커'는 현금 출처를 추적하는 매우 중요한 증거다. 분실했다는 건 수사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며 "김건희 특검에서 과연 고의로 분실한 것인지 아닌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이러니 검찰이 스스로 해체를 재촉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 밖에 "이래서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박지원) "증거물을 분실했다는 사람부터 감찰 무마까지 모두 다 밝혀내고 처벌해야 한다"(김용민) "이러니 검찰을 해체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조승래) "법왜곡죄를 신설해 저렇게 수사 과정에서 장난친 검사와 수사관들은 반드시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김승원) 등 민주당 의원들의 격앙된 반응이 줄을 이었다.

 

조국혁신당 박병언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2024년 12월 17일 이 관봉권을 압수했을 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검찰이 이제서야 윤석열의 배후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를 하려는 것인가 주목했다"며 "그런데 이제 보니 검찰은 2024년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의결돼 당시 대통령 윤석열의 직무집행이 정지되자 황급히 윤석열 대선자금의 핵심 열쇠를 압수 형식으로 취득한 후 증거를 인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중심에 서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범죄 집단의 설거지를 담당하고 있었는지 이 사건으로 판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이날 오후 전성배 씨에 대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날 전 씨를 처음 소환조사하고 하루 만에 영장을 친 것이다. 특검팀은 전 씨가 혐의를 부인하면서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증거인멸 우려가 크며, 주거지가 여러 차례 바뀐 만큼 도망 우려도 있다고 판단했다. 전 씨는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청탁성 요구를 받은 적은 있지만 이를 김건희에게 전달하지는 않았다고 항변해왔다.        < 김호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