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투쟁 합류 "승자 독식 싸움…시민들 참여하면 이긴다"

 

            군복 차림에 소총을 든 만 조니(80) 전 에야와디 수석장관 [Dawkalu Network 페이스북 캡처]

 

미얀마의 80세 4선 정치인이 군복 차림에 총을 든 모습으로 쿠데타 군사정권에 대한 무장투쟁 승리를 다짐해 현지의 관심을 끌고 있다.

 

2일 현지 매체 미얀마 나우에 따르면 만 조니(80) 전 에야와디 지역 수석장관이 최근 한 현지 매체의 SNS에 군복을 입고 소총을 든 모습으로 등장했다.

 

카렌족인 만 조니 전 장관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 민족동맹(NLD) 소속으로 지난 1990년부터 지난해 총선까지 네 차례 당선됐다고 매체는 전했다.

 

SNS는 그가 미얀마 전역에서 온 이들과 함께 군사정권에 대한 무장 투쟁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이 사진이 온라인에서 퍼지면서 지난달 29일에는 군인 20여명이 그의 집을 급습, 차량을 포함해 각종 물품을 압류하고 그의 아들을 한때 구금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 전 장관은 매체와 인터뷰에서 2월 쿠데타 직전 의회에 등원했을 당시에는 펜을 잡을 힘도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꾸준히 운동해 달리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다고 전했다.

 

그는 무장 투쟁에 합류한 이유에 대해 "이제 나이 80으로 인생의 거의 끝에 와있다. 나는 생의 마지막 기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미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상원의원"이라며 "국민이 나를 뽑아줬기 때문에 이 나이에 나는 국민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왼쪽)과 이야기 나오는 만 조니 전 에야와디 수석장관 [만 조니 페이스북 캡처]

 

그는 반군부 투쟁에 대해 "승자만이 살아남는 싸움"이라며 "군부가 이기면 모든 걸 가져가지만, 우리가 이기면 그 반대가 된다"고 언급했다.

 

또 "군부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 중 하나지만, 국민은 강력한 군대에 대항해 들고 일어나고 있다"며 "군정은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서 패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 전 정관은 "쿠데타는 극악무도한 범죄이기 때문에 이런 불의에 대항해 계속해서 싸울 것"이라면서 "시민들이 반군부 운동에 동참하면 우리는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카렌족 무장조직인 카렌민족연합(KNU) 소속 카렌민족해방군(KNLA) 5연대는 지난 한 달간 미얀마군 118명을 사살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또 다른 소수민족 무장조직인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도 지난주 북부 샨주에서 미얀마군과 전투를 벌여 최소 24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아프간 전쟁 마침표

소련이 문 연 강대국 패권 다툼,  9·11 테러로 이어진 미국의 개입

미·소가 내세웠던 서방식 개혁에 부족적 질서 기득권·시민 등 봉기

 

아프간 지원금 4조달러 육박해도 빈곤·기아 여전 … 난민은 1천여만명

 

 미군을 태운 마지막 비행기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떠난 다음날인 31일(현지시각) 탈레반의 자비훌라 무자히드 대변인(가운데)이 공항 활주로에 서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며 탈레반의 승리는 “다른 침략자에게도 교훈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미국 그리고 세계와 좋은 관계를 원한다”고도 말했다. 카불/AFP 연합뉴스

 

‘영원한 전쟁’, ‘가장 긴 전쟁’, ‘유령의 전쟁’이 종료됐다.

 

197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사회주의 정권 성립 이후 43년간이나 계속되던 전쟁이 30일 11시59분(현지시각) 미군 철군 완료로 종료가 선언됐다. 고립되고 빈한한 아프간에는 소련을 시작으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및 동맹국 등이 군홧발을 디뎠고, 파키스탄·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국가들이 개입했다. 이슬람 세계의 무슬림들이 ‘지하드’(성전)를 수행하려고 찾아왔다. 한국도 군을 파견했고, 그 여파로 2007년에 한국의 기독교 선교단이 40여일이나 납치돼 2명이 사망했다.

 

아프간 전쟁 43년은 미·소 제국들의 지정학적 욕망과 오판, 이를 합리화하려는 서방식 가치의 ‘레짐 체인지’(체제 전환) 강요, 이에 저항하는 아프간 주민과 무슬림들의 투쟁, 주변 국가들의 정략적 개입이 뒤섞여, 지독한 모순과 반전으로 점철됐다.

 

첫째, 강대국들의 제국적 욕망과 오판이다.

 

‘제국의 무덤’이라는 아프간의 별칭은 19세기 영국과 러시아가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을 겨룬 ‘그레이트 게임’에서 연유했다. 영국은 당시 유라시아 대륙에서 급속히 팽창하던 러시아제국이 인도양으로 남하해, 인도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러시아 공포증’에 시달렸다. 영국은 길목인 아프간을 1839년 선제적으로 침공해 점령했으나, 3년 뒤 현지 부족 세력들의 봉기에 1만7천여명의 군인과 민간인 중 1명만이 생환하는 대재앙을 겪었다. 영국은 두차례나 더 아프간을 침공했다. 애초부터 러시아는 인도를 위협할 의지와 역량이 없었는데도, 영국은 제국적 욕망에 따른 오판으로 아프간을 침공했고, 이에 러시아 역시 주변 지역을 위협하는 치킨게임을 벌였다. 결국 러시아제국이 붕괴한 뒤인 1919년이 되어서야 영국은 아프간을 중립국으로 하는 독립을 허용했다.

 

아프간은 러시아를 계승한 소련의 제국적 욕망과 오판으로 다시 전쟁의 늪에 빠져들었다. 소련은 자신들의 지원으로 성립한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되면, 자국령 중앙아시아로까지 영향이 파급될 것을 우려해 군사적 개입을 단행했다.

 

다음 차례는 미국이었다. 서방 해양 세력들은 아프간에 전략적 이해관계가 크지 않았음에도 단지 러시아를 막기 위해 영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것처럼 미국도 소련을 괴롭혀 늪에 빠뜨리려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및 파키스탄과 손잡고 아프간 주민뿐만 아니라 이슬람 세계의 무슬림들을 동원해, ‘지하드’를 수행하는 무자헤딘 운동을 기획했다. 이는 소련의 철군을 이끌기는 했으나, 미국을 겨누는 이슬람주의 운동을 본격적으로 배태시켰다.

 

알카에다 결성 및 9·11 테러로 이어졌고,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미국은 이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등 중동 질서의 재편까지 도모하는 무리수를 뒀다.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자마자 이라크 전쟁으로 자원을 돌려서 아프간의 재건을 내팽개치고 탈레반의 부활을 불렀다.

 

둘째, 서방식 가치에 입각한 ‘레짐 체인지’의 실패다.

 

아프간 전쟁은 사실 사회주의 정권의 급진적 개혁에 대한 반발로 촉발됐다. 탈레반의 재집권 이후 국제사회에서 가장 문제 되는 여성인권 문제도 사회주의 정권이 현지의 부족적 질서의 타파를 시도하면서 시작됐다. 사회주의 정권은 여성 문맹을 타파하려고 여성의 의무교육, 신부지참금 폐지, 혼인의 자유를 선포했고, 토지개혁까지 단행했다. 이는 아프간의 부족적 질서의 기득권자뿐만 아니라 비도시 지역의 일반 주민들까지 봉기하게 만들었다.

 

아프간은 지금도 인구의 70%가 비도시 지역의 부족사회적 질서에서 사는 사회다. 소련과 미국의 점령을 거치면서 이들이 내세웠던 현대적 개혁은 도시와 비도시 사이의 분리와 격차를 더욱 키웠다. 강대국들이 개혁의 지원을 도시에 집중했고, 저항이 심한 비도시 지역에는 공습과 드론 공격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의 피해가 가중됐다. 이는 탈레반이 귀환해 재집권하는 배경이 됐다. 또 그동안 현대화의 혜택을 향유했던 도시 지역 중산층, 특히 고학력 여성들이 탈레반의 귀환에 공포를 느끼고 국외로 탈출하는 분열과 비극을 낳은 배경이었다.

 

셋째, 국제질서의 변화다. 전쟁의 문을 연 소련은 그 과정에서 붕괴돼 냉전이 종식됐다. 미국의 일극적 질서가 한때 성립되는 듯했으나,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서 지원했던 이슬람주의 세력의 성장으로 중동전쟁의 수렁에 아직 빠져 있다. 이는 중국의 부상을 불렀고, 격렬한 미-중 대결로 진입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아프간에서 2조3100억달러(약 2679조원)를 썼고, 참전한 나토 회원국들의 비용, 소련의 비용까지 합치면, 현 물가로 환산한 미국의 2차대전 비용인 4조1천억달러에 육박한다.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으나, 아프간의 국내총생산(GDP)은 2020년에 그 전비의 0.5%에 불과한 200억달러, 1인당 소득은 500달러 남짓한 빈곤과 기아에 시달린다. 미국의 20년 아프간 전쟁 기간에만 미군과 아프간 민간인 등 17만여명이 숨지고 난민 260여만명이 발생했다. 소련 점령 때부터 모두 200만여명이 숨지고 1천여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결국 결과는 탈레반의 재집권이었다.

 

미국 합참의장의 전략담당 특별보좌관이었던 카터 맬케이지언은 <아프간에서 미국의 전쟁>에서 이렇게 묻는다. “탈레반은 결코 좋지 않다. 여성을 억압했고, 교육을 황폐화했고, 표현의 자유를 침묵시켰다. 우리의 개입은 이런 측면에서 숭고한 일을 했다. 그러나 그런 선행이 폭력, 죽음 등을 상쇄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개입이 없었다면, 아프간 주민들은 못살고 억압받았을 것이나,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아프간 주민들을 해방시켰나, 아니면 억압했는가?”

 

그래서 우리도 물어야 한다. 아프간은 ‘제국의 무덤’인가, ‘제국의 질주에 치여나간 희생물’인가를.

정의길 기자

 

아프간전 마지막 미군은 중무장한 투스타 백전노장

카불공항 철군 때 가장 나중에 수송기 탑승 군인

군 30년차…이라크·아프간·시리아 등 17차례 작전 경력

 

아프간을 떠난 마지막 군인 크리스토퍼 노나휴 미국 육군 82공수사단장[EPA=연합뉴스]

 

무려 20년에 이른 전쟁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미군은 군생활 30년차 장성이었다.

 

미 국방부는 30일 아프간 카불 국제공항에서 단행된 완전 철군 때 가장 나중에 수송기에 몸을 실은 미군이 크리스토퍼 도나휴 미국 육군 82공수사단장이라고 밝혔다.

 

그가 개인화기를 지니고 굳은 표정으로 C-17 수송기에 오르는 야간 투시경 사진은 아프간 전쟁사의 마지막 장면으로 공식 기록됐다.

 

도나휴 소장은 1992년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한 뒤 30년째 야전을 누비고 있는 백전노장이다.

 

미국 USA투데이는 도나휴 소장이 아프가니스탄뿐만 아니라 시리아, 이라크, 북아프리카, 동유럽에서 17차례에 걸쳐 작전에 참여했다고 소개했다.

 

도나휴 소장은 미국 합참의장 특별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미국의 글로벌 대테러 작전의 일부로 아프간에서 진행된 '자유 센티넬 작전'(OFS)을 지원하는 특수작전합동 태스크포스의 지휘관도 역임했다.

 

미 육군 82공수사단은 트위터를 통해 "여러 어려움이 가득해 믿지 못할 정도로 거칠고 압박이 심한 임무였다"며 도너휴 소장의 철수 사진을 게재했다.

 

미군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협 때문에 자체 설정한 시한 8월 31일이 되기도 전에 심야에 황급하게 아프간을 탈출했다.

 

                 크리스토퍼 도나휴 미국 육군 소장[미국 육군 제공]

 

탈레반, 블랙호크 헬기 띄워 사람 매단 채 순찰

탈레반 선전매체, 다량의 미군 장비 노획 선전

 

     [탈리반 타임스 트위터 캡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블랙호크 헬기 등 군장비를 탈레반이 실제로 운용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탈레반은 블랙호크 뿐만 아니라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이 철군하거나 달아나면서 남긴 장갑차, 수송기, 헬리콥터 등을 아프간 각지에서 다량 노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트위터의 '탈리브 타임스'라는 계정은 지난 30일(현지시간) UH-60 블랙호크 기종으로 추정되는 헬기가 비행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유했다. 이 헬기는 탈레반 대원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로프에 매단 채 도시 상공을 순찰하고 있다.

 

탈리브 타임스는 이 영상에 대해 "우리의 공군! 현재 이슬람 토후국의 공군 헬기들이 칸다하르 상공을 비행하며 도시를 순찰하고 있다"고 적었다.

 

탈리브 타임스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국가를 새로 세우겠다고 선언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의 공식 영어 뉴스를 표방하고 있다.

 

탈리브 타임스는 또 다른 게시물에서 블랙호크 기종으로 보이는 헬기가 비행하는 영상을 담고 "우리의 첫 블랙호크 비행"이라고 적었다.

 

외에도 미군이 철군 과정에서 버리고 갔거나 아프간 정부군에 원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군수송기, 장갑차, 전투기 등 다수 노획물의 사진이 탈리브 타임스의 여러 게시물에 올라 있다.

 

         [탈리반 타임스 트위터 캡처]

 

미군은 철군 과정에서 막판까지 사용하던 무기를 폐기하고 떠났다고 발표했다.

 

CNN방송에 따르면 프랭크 매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3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카불 공항에 설치돼 운영되던 자동 방공요격체계(C-RAM) 등 다수 무기를 폐기하고 철수했다고 밝혔다.

 

매켄지 사령관은 "그런 장비들을 군사 용도로 절대 다시 쓰지 못하도록 불능화했다. 비행기들은 다시는 하늘을 날지 못할 것이며 그 누구도 다시 작동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 미군 떠나자 기다렸다는 듯 저항군 최후 거점 공격

30일 여러 방면서 판지시르 공격…"저항군이 물리쳐"

 

     아프간 판지시르에서 훈련 중인 반탈레반 저항군. [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반(反)탈레반 저항 세력의 마지막 거점인 판지시르 계곡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고 현지 언론이 31일 보도했다.

 

톨로뉴스는 전날 밤 트위터를 통해 "탈레반이 오늘 저녁 판지시르의 전초기지를 공격했지만, 저항군이 물리쳤다"고 밝혔다.

 

톨로뉴스는 저항군 사령관인 아흐마드 마수드의 측근을 인용해 "산발적인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프간 하아마 통신도 이날 현지 관계자를 인용해 탈레반이 합의를 깨고 여러 방면에서 공격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이에 대해 공식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전날 밤 미군이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마지막 철군 작업을 진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탈레반은 미군 철수 종료에 맞춰 저항군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판지시르 계곡을 포위한 탈레반은 현지 통신망과 물자 보급망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판지시르는 과거 소련에 항전한 아프간 민병대의 거점 지역이기도 하다.

 

아프간 '국부'(國父)로 불리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인 아흐마드 마수드가 현재 이 계곡에서 반탈레반 항전 세력을 이끌고 있다.

 

마수드는 전날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와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모든 이와 권력을 나누고 정의 실현과 함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한다면 투쟁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스푸트니크 통신은 보도했다.

 

마수드는 이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끄는 아프간 민족저항전선(NRF)은 외국으로부터 아무런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앞서 AFP 등 외신들은 판지시르에 수천 명의 저항군 세력이 운집했으며, 마수드 휘하에만 9천 명이 집결한 상태라고 전했다.

FBI, 증오범죄 연례 보고서 공개… "지난해 7천759건 발생"

사법기관 3천 곳, FBI에 현황 보고 안 해…실제보다 과소 집계

 

지난해 3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렸던 아시아계 증오범죄 근절 촉구 집회 [AFP=연합뉴스]

 

지난해 미국에서 12년 만에 가장 많은 증오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30일 이러한 내용의 증오범죄 연례 보고서를 공개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FBI는 전국 1만5천여 개 사법기관이 보고한 현황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발생한 증오범죄는 2008년 이래 가장 많은 7천759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 증오범죄 건수와 비교하면 6%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증오범죄 중 인종 또는 민족 혐오에 따른 범죄는 전체의 61.9%로 가장 많았고, 성적 지향과 종교적 편견이 동기가 된 범죄는 각각 20.5%, 13.4%를 차지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맞물린 아시아계를 겨냥한 공격 행위는 2019년 158건에서 지난해 274건으로 73.4% 급증했다.

 

또 흑인을 표적으로 한 공격은 1천930건에서 2천755건으로 42.7% 늘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시민단체들이 백인 민족주의 득세와 소수 민족에 대한 적개심 확산 등을 경고해온 가운데 증오범죄가 12년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미국 연방수사국이 집계한 증오범죄 현황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 캡처]

 

범죄 유형 별로는 협박이 53.4%로 가장 많았고 단순 폭행(27.6%)과 가중폭행(18.1%)이 뒤를 이었다.

 

또 증오범죄와 결부돼 22건의 살인과 19건의 강간 사건도 발생했다.

 

FBI에 따르면 작년 증오 범죄 피해자는 1만 명이 넘었고 가해자의 절반 이상은 백인이었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흑인 대상 증오범죄가 늘고 아시아계를 향한 범죄도 뚜렷하게 늘었다"며 "지난해 증오범죄 통계는 포괄적인 대응이 긴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FBI 보고서가 증오범죄 현황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긴 하지만, 각 지역 사법기관들이 FBI에 자료를 제출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실제 증오범죄 발생 건수와 비교해 과소집계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CNN 방송은 FBI에 지난해 증오범죄 현황을 보고하지 않은 사법기관은 3천여 곳에 달한다고 전했다.

 

아시아계 인권단체 '스톱 AAPI 헤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3∼6월 자체 집계한 아시아계 겨냥 증오범죄만 6천600여건에 달한다.

 

미국 의원모임 아시아태평양코커스(CAPAC) 의장인 중국계 주디 추 하원의원(캘리포니아·민주)은 "FBI 보고서 수치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이 보고서는 증오범죄 현황을 보여주는 완벽한 그림에 가깝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철수시한 앞당겨 마지막 미수송기 이륙…탈레반 "아프간 완전 독립" 주장

2001년 9·11 로 촉발된 미 최장기 해외전쟁…탈레반 20년만에 정권 재장악

 

 미, 아프간 철군 완료 확인

 

2001년 시작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30일(현지시간) 20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2001년 뉴욕 무역센터 등에 대한 무장조직 알카에다의 9·11 테러에서 촉발된 아프간전은 이날 미국이 미군 철수와 민간인 대피 완료를 선언함에 따라 공식 종료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중동과 중앙아시아 군사작전을 책임진 케네스 프랭크 매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국무부 브리핑에서 미군의 C-17 수송기가 아프간 현지시간 30일 밤 11시 59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이륙했다고 밝혔다.

 

이륙 시간 기준으로는 미국이 그간 대피 시한으로 정한 31일보다 하루 앞당겨 철수를 완료했다.

 

매켄지 사령관은 국방부 브리핑에서 "아프간 철수의 완료와 미국 시민, 제3국인, 아프간 현지인의 대피 임무 종료를 선언하기 위해 섰다"고 말했다. 대피작전이 본격화한 지난 14일 이후 12만3천명이 아프간을 탈출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지금까지 6천 명의 미국인이 아프간을 떠났다고 밝힌 가운데 매켄지 사령관은 100명에 못 미치는 미국인이 탈출을 희망했지만 시간 내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AP통신도 미국의 마지막 비행기가 출발했다는 탈레반 경비대원의 발언을 전하면서 카불에 폭죽이 울렸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탈레반은 아프간 완전 독립을 주장하면서 전역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속속 이륙하는 미군기= 30일(현지시간) 수도 카불 국제공항에서 이륙하고 있는 미국 공군 항공기.

 

아프간전은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에 대한 인도 요구를 당시 아프간 정권을 쥔 탈레반에 거부하자 동맹국들과 합세해 아프간을 침공함으로써 시작됐다.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한 뒤 친미 정권을 세우고 2011년 5월 빈라덴까지 사살했지만 내내 전쟁의 수렁에 빠져나오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5월 1일까지 미군을 철수하는 합의를 탈레반과 작년 2월 맺었다.

 

지난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올 4월 미군 철수를 결정하면서 아프간전 종식 의지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미국이 최소 연말까지는 친미 성향의 아프간 정부군이 버틸 것이라고 오판하는 바람에 탈레반이 지난 15일 정권을 장악한 뒤 철군 일정은 물론 민간인 대피에도 큰 혼선을 빚는 일이 벌어졌다.

 

아프간전은 미국과 아프간 모두에 큰 상처를 남겼다. 지난 4월 기준 아프간전으로 희생된 이는 약 17만 명으로, 아프간 정부군(6만6천 명), 탈레반 반군(5만1천 명), 아프간 민간인(4만7천 명) 등 아프간 측 피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미군 2천448명이 숨지고 미 정부와 계약을 한 요원 3천846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동맹군 1천144명 등 미국 역시 적지 않은 희생을 치렀다.

 

미국의 전쟁 비용은 1조 달러(1천165조 원)에 달한다.

 

미, 항공기 73대 현장폐기 후 야간탈출…군수뇌부 실시간 주시

 

방공체계 · 작전차량 97대 · 항공기 73대 버리고 철수

마지막 수송기 뜨자 펜타곤 지하벙커엔 '안도의 한숨'

 

C-17 수송기 오르는 마지막 철수 아프간 미군=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크리스토퍼 도나휴 미국 육군 82공수 사단장이 아프간에서 마지막 철수하는 미군으로 C-17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그를 끝으로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가 완료됨에 따라 20년간 이어진 미국의 최장기 전쟁인 아프간전은 종식됐다. [미 중부사령부 제공]

 

미군이 테러 위협 속에 일부 첨단무기들을 현장에서 폐기하고 떠날 정도로 급박하게 철군을 마무리했다.

 

군수뇌부는 철수를 지하벙커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보다가 마지막 비행기가 떴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프랭크 매켄지 미군 중부사령관은 3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막판까지 쓰던 일부 무기를 폐기하고 떠났다고 밝혔다.

 

매켄지 사령관은 그 사례로 카불 공항에 설치돼 운영되던 자동 방공요격체계(C-RAM)를 들었다.

 

C-RAM은 날아오는 로켓포나 박격포탄을 자동으로 탐지해 기관총으로 요격하는 장비다.

 

이 장비는 철군 하루 전에 활성화돼 실제로 전날 무장세력의 로켓포를 막아냈다.

 

매켄지 사령관은 "그런 장비들을 해체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절차라서 군사 용도로 절대 다시 쓰지 못하도록 불능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 병사들을 보호하는 게 그런 장비를 회수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아프간 완전철군을 앞두고 C-17 수송기에 치누크 헬기를 싣고 있는 미군[로이터=연합뉴스]

 

미군은 C-RAM뿐만 아니라 지뢰방호장갑차(MRAPS) 70대, 전술차량 험비 27대, 항공기 73대도 카불 공항에 남겨두고 떠났다.

 

매켄지 사령관은 "그 항공기들은 다시는 하늘을 날지 못할 것"이라며 "그 누구도 다시 작동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카불공항에서 자국민과 현지 협력자들을 대피하는 작전을 주도하던 미군의 마지막 철군은 심각한 테러 위협 속에 이뤄졌다.

 

AP통신은 첨단무기들을 현장에서 폐기한 사례를 보면 안전 위협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드러난다고 해설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 마크 밀리 미 합동참모본부 의장 등 군 수뇌부는 철수작전을 초조한 분위기로 주시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들은 미국 국방부 지하 작전본부에서 마지막 수송기가 아프간을 떠날 때까지 과정을 90분 동안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이들은 입을 굳게 닫은 채 병사들이 활주로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방어체계를 불능화한 뒤 C-17 수송기에 오르는 모습을 주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침묵이 너무 무거워서 바닥에 핀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으며 수뇌부는 마지막 수송기가 이륙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전했다.

 

로이드 오스틴(왼쪽) 미국 국방부 장관과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UPI=연합뉴스]

 

탈레반 승리 축포…출구없는 공포통치 2.0 신호탄

 

인권유린 시대 돌아오나…국민 공포·불신 가득

IS 등 무장세력 테러에 사실상 무방비 우려

국제테러조직 온상돼 해외에 위험 전이될 수도

 

 아프간 정부 구성을 앞두고 있는 탈레반. 사진은 최근 카불 장악 때 대통령궁을 점거한 탈레반 조직원들의 모습.[AP=연합뉴스]

 

미군이 31일(현지시간) 0시에 맞춰 아프간에서 모두 떠나자 전국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정권을 잡은 극단주의 무장정파 탈레반의 조직원들이 20년 아프간전의 승리를 선언하며 허공에 쏘아댄 축포였다.

 

탈레반의 수석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완전한 독립을 얻었다"고 트위터를 통해 선언했다.

 

미군을 떠나보낸 카불공항에 있던 탈레반 전투원 헤마드 셰르자드는 AP통신 인터뷰에서 "20년 희생의 결실"이라며 격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 탈레반의 축포는 아프간인들에게 일상을 완전히 뒤엎을 변화의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야반도주에 가까운 미군의 철수로 미국 주도로 유지되던 사회질서가 무너질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함께 20년 동안 아프간 재건에 나선 서방국가들도 이미 두 손을 들어버렸다.

 

독일의 16년 집권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민주국가 건설에 실패했다"며 "민주주의, 자유를 믿은 이들에게 쓰라린 사건"이라고 최근 심경을 토로했다.

 

외신들은 아프간에 닥칠 변화로 공포통치 부활, 지독한 치안불안, 테러조직 세력확장 등을 거론하고 있다.

 

아프간 카불 시내를 순찰하는 탈레반 조직원들[AP=연합뉴스]

 

◇ 공포통치 2.0 돌입…인권유린의 시대 접어드나

 

탈레반은 저항군이 버티는 아프간 북동부 판지시르를 제외하고는 전국을 장악했다.

 

아프간인들은 탈레반이 곧 정부를 구성해 통치에 들어가면 체제 차원의 인권유린 시대가 열릴 것으로 우려한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파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국제사회에 악명이 높은 근본주의 집단이다.

 

소련이 1989년 철수한 뒤 내전 과정에서 나타난 탈레반은 1998년 집권해 2001년 미국 침공 전까지 아프간을 통치했다.

 

당시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을 자의적, 극단적으로 해석해 국민들의 일상에 폭압적으로 적용하는 행태를 보였다.

 

남자들을 턱수염을 길렀고 여자들은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었으며 텔레비전, 음악, 영화도 금지됐다.

 

특히 여성들이 학교나 직장에 가지 못하도록 하고 위반한 이들을 공공장소에서 돌로 쳤다.

 

현재 탈레반은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국가를 건설한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제사회의 일원이자 정상적 국가가 될 것을 고대하는 탈레반은 인권을 존중한다고 항변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탈레반의 정권 탈환 뒤 카불공항에 몰린 대피행렬과 대혼란상에서 불신의 수위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AP통신은 "수만명이 탈레반 통치가 두려워 최근 2주 동안 아프간에서 도주했다"고 지적했다.

 

통신은 카불공항 활주로 점거한 이들, 공항에서 인파에 짓밟혀 압사한 이들, 이륙하는 항공기에 매달렸다가 추락사한 이들을 국민의 불신과 공포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주목했다.

 

 올해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발생한 테러의 현장. 극단주의 무장세력들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위해 여학교 등을 겨냥해 수시로 테러를 자행해왔다.[EPA=연합뉴스]

 

◇ 가뜩이나 불안한 치안…IS 조직원들까지 풀어줬다는데

 

탈레반의 공포통치뿐만 아니라 치안 불안도 아프간이 직면한 비극의 불씨다.

 

아프간 내부에는 탈레반뿐만 아니라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극단주의 무장세력들이 존재한다.

 

특히 탈레반과 갈등을 빚어온 IS는 최근 미군과 피란민을 겨냥한 카불공항 테러에서 보듯 심각한 위협으로 평가된다.

 

탈레반은 아프간이 테러의 온상이 되도록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나 목표가 이뤄질지는 현재로서 미지수다.

 

IS의 아프간 지부인 IS 호라산은 전날에도 카불공항을 겨냥해 로켓포를 쏘아댔다.

 

미국 당국은 탈레반이 아프간 장악 뒤 테러범 수감시설에서 IS 조직원들을 대거 석방해 화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케네스 프랭크 매켄지 미군 중부사령관은 "뿌린 대로 거둘 것"이라며 IS 조직원들이 2천명까지 늘었다고 추산했다.

 

한편에서는 아프간에 닥친 비극이 공포정치, 치안불안을 넘어 국제사회로까지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탈레반 정권의 속성, 사회 혼란상을 고려할 때 아프간이 국제 테러조직들의 인큐베이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아프간을 탈출하려고 카불공항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지난 27일 폭탄테러에 희생된 피란민들의 유품[AFP=연합뉴스]

 

◇ '국제테러단체 인큐베이터 될라' 우려의 시선 집중

 

탈레반은 이슬람 정권이 다른 나라에 위해를 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이 또한 불신의 대상이다.

 

영국 BBC방송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탈레반과 9·11테러를 저지른 집단 알카에다가 불가분 관계라고 보도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알카에다가 여전히 아프간에서 암약하고 있으며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수십년 유착관계가 최근 더 강화했다고 분석했다.

 

BBC방송은 "탈레반이 중앙집권적 조직이 아니다"며 "일부 지도자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하지만 강경파들은 알카에다와 관계를 청산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알카에다가 얼마나 강력한지, 글로벌네트워크를 재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상황을 더 심각하게 보는 이들도 목격된다.

 

라이언 크로커 전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는 온갖 종류의 테러리스트들이 아프간에 안착할 것이라며 "9.11테러도 그렇게 불거졌는데 우리가 지금 그와 똑같은 국면에 처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