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 카불 함락 당일 상황 상세히 보도

당시 탈레반은 미국과 임시정부 합의 뒤 외곽 대기

탈레반, 가니 도주 뒤 미국에 "카불 통제를" 제안도

미국, 공항 관할권만 받고 탈레반 카불 장악 합의

 

탈레반 대원들이 지난 18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총을 들고 걷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탈레반이 예상을 깨고 카불에 조기 입성한 것은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잘못된 정보를 입수하고 국외로 도주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탈레반은 가니 대통령의 도주 이후 미국에게 카불을 통제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카불에 입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5일 카불이 탈레반에 의해 함락되던 상황과 배경에 대해 미국과 아프간의 관리들을 인터뷰해 상세히 보도했다. 이를 통해 허위 정보에 의한 가니 대통령의 도주로 인해 모든 상황이 급변했다고 전했다.

 

탈레반이 지난 6일부터 님루즈주 주도 자란즈를 장악하는 등 주도 및 주요 도시를 장악하기 시작했지만,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의 카불 입성 이틀 전까지도 카불에는 아직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8월 들어서도 탈레반이 카불에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가니 대통령은 경제의 디지털화에 대해 얘기했고, 하루 전까지도 참모들에게 경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백악관의 관련 관리들도 주말이 시작되던 13일에는 여름 휴가를 떠나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일찍 캠프데이비드 별장으로 갔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이미 롱아일랜드의 휴양지인 햄튼즈에 있었다.

 

하지만, 토요일인 14일이 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1990년대 탈레반과 군벌 세력 사이의 치열한 교전지였던 북부의 주요 도시 마자르이샤리프에 탈레반이 무혈 입성했다. 이미 남부의 칸다하르, 서부의 헤라트가 전투로 함락된데 이어, 북부 최대 주요 도시 마자르까지 무혈로 탈레반 수중에 들어가자 나머지 주요 도시들도 탈레반에게 무혈 입성의 길을 열어주는 상황으로 급변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안보 참모들이 긴급 화상회의를 열었고,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카불 공항으로 긴급히 이송하라고 지시했다. 그날 저녁 블링컨 국무장관은 가니 아프간 대통령과 통화했다. 가니가 물러나고 임시정부가 출범하면, 탈레반이 카불에 진공하지 않고 외곽에 남아있도록 하겠다는 협상을 탈레반 쪽과 진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가니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일요일인 15일 아침이 되자, 카불에서 100㎞ 서부의 주요 도시 잘랄라바드에 탈레반이 입성했다. 카불은 이제 고립됐다. 외곽에는 벌써 탈레반 대원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가니의 대통령궁에도 공포가 닥쳤지만, 가니가 전날 밤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한 협상으로 최악의 경우라도 미군이 철군하는 시한인 31일까지는 카불이 안전하리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오가 되자, 이상한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일부 참모들이 도망가는 가운데 한 수석 보좌관이 가니에게 “탈레반 대원들이 대통령궁으로 들어와 그를 찾으려고 방마다 뒤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는 사실이 아니었다. 탈레반은 대원들이 카불의 주요 검문소를 통과해 도심 주변에 있고, 폭력적으로 도시를 장악할 의사는 없다고 발표했다. 탈레반은 전날 미국과 평화적 이양에 대한 합의를 했고, 이를 준수할 의사였다.

 

탈레반의 이런 의사는 가니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이미 공포에 질린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여기에 머물면, 경비병이나 탈레반에 의해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은 지난 1996년 카불에 입성해서는 이미 은퇴했던 사회주의 정권의 대통령 모하마다 나지불라를 때려 죽인 뒤 길거리에 매달아 놓았다.

가니는 집으로 가서 소지품을 챙기려 했으나, 시간이 없다는 참모들의 재촉에 부인과 몇몇 수석 참모들과 함께 막바로 헬기를 타고 떠났다. 동승한 참모는 헬기가 힌두쿠시 산맥 위를 날고 있다는 것을 보고 비로소 자신들이 막바로 국외로 탈출한다는 것을 알았다. 헬기는 우즈베키스탄에 착륙했고, 거기서 소형 비행기로 갈아타고는 아랍에미리트로 향했다.

 

가니는 부통령 2명을 포함해 정부의 주요 고위 인사들에게조차 자신의 국외 탈출을 알리지 않았다. 고위 관리들은 급박한 상황에 대한 도움을 대통령궁에 요청했으나, 아무런 회신을 받지 못했다. 눈치빠른 관리들은 공항으로 달아났고, 곳곳에서 정부 붕괴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의회 의장 등은 파키스탄으로 달아났고, 비스밀라 칸 모하마디 국방장관은 군용기에 타고는 아랍에미리트로 떠났다. 사르와르 다니시 제2부통령, 아마드 지아 사라지 정보국 국장도 대열에 합류했다.

 

오후부터 카불 공항으로 인파가 몰려들면서, 카불의 치안이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누구보다도 놀랐다. 가니의 도주로 임시정부로의 평화적인 이양 가능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카타르 도하에서 협상중이던 미-탈레반 대표단들이 다시 나섰다. 케네스 매켄지 중부군 사령관 등 미군 지도자들은 탈레반 대표인 압불 가니 바라다르와의 직접적인 대면 회의를 했다.

 

바라다르는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다”며 카불의 권력 및 치안 공백 상황을 지적했다. 그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며 “당신들이 카불의 안전을 책임지던가, 우리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허락하라”고 촉구했다. 아프간에서 모든 병력을 철수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은 아프간 정부의 붕괴도 바꾸지는 못했다. 맥켄지 사령관은 바라다르에게 미국의 임무는 위기에 처한 미국 시민과 협조자들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미국이 공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은 31일까지 카불 공항을 사용하고, 탈레반은 카불을 통제하기로 했다. 곧 탈레반의 사령관인 무함마드 나시르 하카니의 전화에 “시내로 진입해 추가적인 무질서를 막고, 혼란으로부터 공중의 재산과 공무를 보호하라”는 지시가 전해졌다. 1시간 내로 하카니와 그의 무장병력들 시내 중심가에 진입해 대통령궁까지 들어갔다.

 

하카니와 대원들은 혼자 남은 경비병의 안내로 대통령 집무실까지 돌아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가 눈물을 흘리는 동안 카불 시내 곳곳에서는 절망과 공포가 급속히 퍼져나갔고, 공항으로 가는 아비규환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의길 기자

 

 

미국, 카불서 ‘테러 용의 차량’ 드론 공격…민간인 사망

 

카불 공항 공격하려던 차량에 드론 공격

미군 “임박한 위협 제거한 방어적 공격”

민간인 3~9명 사망했다는 보도 잇따라

 

29일(현지시각) 아프간인들이 미군의 드론 공격을 받은 차량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공항을 공격하려는 자살폭탄 테러 용의자의 차량을 드론으로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 공격으로 3~9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29일 카불 공항에 “임박한” 위협을 조성하는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자살폭탄 테러 용의자를 겨냥한 방어적 공습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 공습으로 6명의 어린이 등 한 가족 9명이 사망했다고 사망자의 형제가 CNN에 밝혔다.

 

중부사령부 대변인 빌 어반은 “미군은 오늘 카불의 한 차량에 대해 자위적인 무인기 공습을 실시해,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대한 임박한 위협을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우리는 그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공격했다고 자신한다”며 “차량에서 뚜렷이 나타난 2차 폭발은 상당한 양의 폭발물질이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날 공습으로 사망한 민간인들은 드론 공습에 의한 직접적인 희생자인지, 차량의 2차 폭발에 따른 희생자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어반 대변인은 미군은 “현재로서는 민간인 피해 보고가 없지만, 그 가능성을 측정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국방부의 한 관리는 초기 보고들에 따르면, 공습의 목표물(차량)에는 다수의 자살폭탄 테러범들이 탑승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차량폭탄이거나 자살폭탄 조끼를 입은 테러분자가 위협이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공습이 실시된 곳은 카불의 하제 부그라라고 미 관리가 확인했다. 공습 현장의 주민과 목격자들은 어린이들을 포함한 주민들이 숨졌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모든 이웃 주민들이 물을 가져와서 불을 끄고 도왔는데, 5~6명이 숨진 것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그 가족의 아버지, 어린 소년, 두 명의 아이가 있었고, 그들은 죽었다. 갈가리 찢겨 있었다. 부상자 2명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주민은 “3명이 차량 안에 있었고, 다른 3명이 차 밖에 있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아프간 당국자를 인용해 이번 공습으로 어린이 3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현지 매체에는 민간인이 최소 6명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미국은 지난 26일 카불 공항 폭탄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27일 동부 낭가하르주 지역을 공습해, 이슬람국가 호라산 간부 2명을 제거했다고 밝힌데 이어, 이날도 카불에서 공습했다. 정의길 기자

 

벨기에 · 폴란드 · 네덜란드 · 프랑스 대피 중단

영국의 경우 철군 시한까지 구출 계속하기로

미 중부사령관  “철수작전 때부터 테러 예상”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려는 시민들이 카불의 국제공항에서 캐나다 군수송기에 탑승해 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최악의 폭탄 테러가 일어난 가운데 추가 테러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일부 국가들은 추가 테러를 우려해 대피 작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프랭크 매켄지 미 중부 사령관은 26일 미 국방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슬람국가(IS)의 공격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며 “그들은 (우리를) 계속 공격하려 들 것이고, 이런 공격은 계속될 수 있다. 우리는 공격에 대비해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미 국방전문 매체 <스타스앤스트립스>가 전했다.

 

아직 미국의 철수 작전이 완료되지 않았고, 이슬람국가가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한 이상 같은 공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공격의 주체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은 미국 등 서방을 주적으로 하고, 미국과 평화협상을 한 탈레반마저 ‘배신자’로 간주하고 있어, 추가 테러 공격이 이어질 수 있다.

 

매켄지 사령관은 지난 14일 미국의 아프간 철수 작전이 시작된 뒤 어느 시점에 공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도 말했다. 매켄지 사령관은 “이런 비전투적인 대피 계획을 세울 경우,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예상한다”며 “우리는 이런 일이 곧, 혹은 조만간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대규모 전투 병력이 대부분 철수했고, 5천여명이 남아 자국민과 아프간인 협력자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작전을 펴고 있다. 실제 아프간 주재 미 대사관과 영국 정부 등은 25일 카불에 테러 가능성을 경고했다.

 

    아프간 대피자들을 태운 미군 수송기.

 

영국과 프랑스 등 아프간에 파병했던 주요 동맹들도 긴박한 상황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테러 직후 긴급 안보회의를 열고 철군 시한 마지막까지 구출 작전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존슨 총리는 “이번 공격은 앞으로 남은 시간에 작업을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줬고,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와 벨기에, 덴마크, 폴란드, 네덜란드 등 다른 아프간 파병국들은 테러 첩보 때문에 카불 공항 대피 작전을 종료한다고 이날 발표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전했다. 프랑스도 27일 대피 작전을 중단한다.   최현준 기자

  

“카불 공항 하수구에 주검 떠다녀…아기도 사망” 생존자 증언

 

“고막 찢는 듯 폭발음 두 차례

 폭풍에 비닐봉지 휩쓸리듯

 주검과 신체 조각들 날아다녀”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로 다친 피해자를 시민들이 돌보고 있다. 카불/UPI 연합뉴스

 

두차례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 등 90여명이 숨지고, 최소 140여명이 다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은 온종일 아비규환 상태가 지속됐다.

 

26일(현지시각)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당시 급박한 상황을 ‘최후의 날’, ‘완전한 패닉 상태’라고 전했다. 이날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의 애비 게이트와 이곳에서 250m 정도 떨어진 배런 호텔에서 두차례 폭탄이 터졌다.

 

공항 하수구에는 수십구의 주검이 떠 있었고, 외국행 꿈이 담긴 옷가지와 여행 가방 등이 공항 부근 도로에 널브러져 있었다. 부상자와 생존자가 뒤엉켜 탈출 행렬이 이어졌고, 카불 시내의 병원들은 테러 현장에서 실려온 부상자들로 가득 찼다.

 

테러 현장에 있었던 밀라드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주검과 절단된 신체, 그리고 사람들이 열려 있는 하수구로 쏟아져 들어갔다”며 “완전한 혼란 상태”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아프간 남성은 <가디언>에 “최후의 날 같았다. 사방에 부상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남성은 <로이터> 통신에 “폭발이 일어난 순간 내 고막이 터지는 것 같고 청력을 잃은 줄 알았다”며 “토네이도에 비닐봉지가 휩쓸리듯 주검과 신체 조각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고 말했다. 미국 특별이민비자를 가진 그는 공항에 들어가기 위해 애비 게이트 앞에서 10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폭탄 테러 과정에서 미군과 탈레반의 대응에 대한 목격담도 이어졌다. 테러 당시 현장에 있던 파힘은 폭발 직후 탈레반과 미군이 사람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하늘로 총을 쏘았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폭발이 발생한 곳에서 1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한 남성은 <뉴욕 타임스>에 “(폭발이 발생해) 우리는 땅바닥에 쓰러졌고 외국 군인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며 “사람들이 밀집해 있어 서로 밀치는 상황이었고, 나는 사람들 가운데 갇혀 있었다”고 말했다. 비상 상황임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군중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는 확성기 방송도 계속됐다.

 

아기의 죽음 등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한 아프간 통역사는 미 <CBS>에 “(쓰러져 있는)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지만 아이는 내 손에서 숨졌다”며 “지금 일어나는 일이 너무 가슴 아프다. 이 나라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와 부인, 세 명의 아이들이 미국행 비행기에 탈 수 있는 서류를 잃어버렸다. 이 남성은 “나는 다시는 (공항에) 가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과 탈출, 비자가 모두 끝나버렸다”고 말했다.

 

카불 공항에 대한 추가 테러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카불 공항의 수송작전을 총지휘하는 프랭크 매켄지 미국 중부사령관은 “공항을 겨냥한 로켓 공격, 차량 폭탄 공격 등 추가 공격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며 “대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현준 박병수 기자

 

IS-K에 미군이 당했다…바이든 “끝까지 응징”

 

[이슬람국가 호라산 카불 테러]

공항과 호텔 2곳 자살폭탄 공격 미군 13명, 아프간인 73명 사망

미국 내선 `바이든 책임론' 나와... 추가 테러 우려에 불안감 고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와 관련한 기자회견 도중 고개를 파묻고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서방의 철군·대피가 이뤄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주변에서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하 호라산)이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키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응징을 예고했다. 미국이 20년 지속된 아프간 전쟁을 종식하겠다며 오는 31일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는 철군 및 민간인 대피 작업이 혼돈에 빠져들면서 최대 고비를 맞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카불 공항 테러 소식이 알려진 뒤 7시간여 만인 26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 연설에서, 이슬람국가의 아프간 지부 호라산을 향해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잊지 않을 것”이라며 “끝까지 찾아내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호라산 지도부와 자산, 시설에 대한 공격 계획을 마련할 것을 군 지휘관들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무력과 정밀성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이슬람국가 테러리스트들은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겁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날 아프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의 애비 게이트와 여기서 250m 정도 떨어진 배런호텔에서 두 차례의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테러로 미군 13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고 미 국방부는 밝혔다. <뉴욕 타임스>는 지역 당국자의 말을 따, 아프간 민간인 73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호라산은 자신들이 공격 주체라고 밝혔다. 호라산은 미국 등 서방을 주적으로 하고, 미국과 평화협상을 한 탈레반마저 ‘배신자’로 간주하고 있어, 추가 테러 공격 우려가 크다.

 

미국은 자국인과 아프간인 대피 작업을 계속 진행해 31일까지 완료할 방침이다. 바이든은 “우리는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저지당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 임무를 관두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필요하면 병력 추가 투입을 승인하겠다고 덧붙였다.

 

호라산의 테러 공격으로, 바이든은 추가 인명 피해를 막으면서 임박한 시한 안에 대피 절차를 마무리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았다. 아울러 이날 약속한 대로 호라산 지도부와 그 시설을 신속하게 찾아내 정밀타격하는 과제도 안았다. 미국을 또 다른 ‘중동 수렁’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테러에 명료하게 보복하는 일이다.

 

바이든은 이번에 숨진 미군들을 “다른 이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위험하고 이타적인 임무에 복무한 영웅들”이라고 일컬으며 애도를 표하고 묵념을 제안했다. “힘든 하루”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한 바이든은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다가 모은 두 손 위에 고개를 파묻고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여, 침통하고 단호한 분위기를 더했다.

 

바이든은 “20년 전쟁을 끝낼 때였다”며 거듭 철군 결정을 옹호했으나, 이날 백악관 기자 브리핑에서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이번 테러로 대통령의 사임을 주장한다’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젠 사키 대변인은 “정치 얘기 할 날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추가 테러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아프간에 파병했던 주요 동맹들도 긴박한 상황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긴급 안보회의를 열고 철군 시한 마지막까지 구출 작전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캐나다와 벨기에, 덴마크, 폴란드, 네덜란드 등 다른 아프간 파병국들은 테러 첩보 때문에 카불 공항 대피 작전을 종료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프랑스도 27일 대피 작전을 중단한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최현준 기자

  

탈레반 “우리 대원 28명 사망…공항은 미국 관할” 책임 떠넘겨

 

     의료진이 25일 카불 공항 폭탄테러로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발생한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하 호라산)의 자살 폭탄 테러로, 탈레반도 소속 대원 최소 28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 관계자는 사건 하루 뒤인 27일 오전(현지시각) “우리는 미군보다 더 많은 사람이 숨졌다”며 탈레반 대원 28명이 숨졌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또 “미군 등 외국군이 이 나라를 떠나는 시한을 31일 이후로 늦출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뉴욕 타임스>는 아프간 민간인 사망자 73이 숨졌다고 보도했으나, 이 중에 숨진 탈레반 28명이 포함된 것인지 아닌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은 미군 13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테러 공격의 표적이 된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이 자신들의 통제권 밖이라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과 관련한 보안 책임을 미군에 떠넘기려는 의도로 보인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수석대변인은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 인터뷰에서 공항 보안을 위해 탈레반이 어떤 조처를 할지에 대해 “불행히도 공항은 탈레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답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그는 “공항 인접 지역의 치안 책임은 미국에 있다”며 “공항 주변을 비롯해 우리 병력이 있는 곳은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관계자는 이날 <로이터>에 “탈레반이 공항 경비를 강화하기로 했다”며 “안보는 그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카불 공항의 관문 경비를 강화하고, 공항 게이트에 몰린 군중을 관리하기 위한 병력을 증원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민간인의 경우 31일 이후에도 아프간을 출국할 수 있도록 허용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31일 이후 민간인 출국을 허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사정이 허락하면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군 철군에 대해선 예정대로 31일에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병수 기자

  

‘이슬람 내부의 적’ IS-K 테러…탈레반 통치 첫 시험대 오르다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 호라산(IS-K) 카불 테러]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 인터넷 선전매체에 올린 사진.

 

2015년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로 결성

 

아프가니스탄에서 재집권한 탈레반의 통치에 대한 첫 도전은 서방 등 외부가 아닌, 그들이 성장했던 이슬람주의 세력 내부에서 나왔다.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하 호라산)은 26일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혼란의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인근에서 두차례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해, 정국을 안정시키려는 탈레반에 일격을 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즉각 보복 공격을 다짐해, 미국 등 서방과 탈레반 및 이슬람주의 무장단체들 사이에 복잡하고 미묘한 갈등과 역관계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 이탈 과격대원이 주축

 

호라산은 이슬람주의 세력 내에서 탈레반의 최대 경쟁 세력이자 적대 세력이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칼리프 국가를 참칭했던 최대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었던 ‘이슬람국가’(IS)가 극성이던 2015년, 아프간의 지부로 결성됐다. 호라산은 주로 탈레반에서 이탈한 과격 대원으로 충원돼, 아프간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테러 무장단체로 언급된다. 서방 당국에서는 이슬람국가를 이전 명칭인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로 부르고 있어, 서방에선 이슬람국가 호라산도 ‘ISIS-K’로 약칭한다.

 

시작부터 아프간 내 탈레반 경쟁 세력으로 출범한 호라산은 탈레반이 카타르 도하에서 미국과 평화협상을 추진하자 거세게 비난했다. 탈레반이 “화려한 호텔”에서 적들과 내통하면서 지하드(성전)를 포기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최근 몇년 동안 여자학교와 병원을 공격했고, 심지어 산부인과 병동까지 공격해 임산부와 간호사를 죽였다. 2019년 8월 카불의 결혼식장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해 63명의 목숨을 빼앗았고, 지난해 11월 카불대학에서도 총격 테러를 가해 20여명을 숨지게 했다.

 

미국과 협상한 탈레반도 적대시

 

호라산의 근거지는 아프간 동부의 파키스탄 접경주인 낭가르하르이고, 이 지역 마약 밀매와 연관되어 있다. 전성기였던 2016년에는 무장대원이 3천여명까지 달했으나, 미국과 아프간 정부군의 소탕 작전이 시작되고, 탈레반과 충돌하면서 그 수가 급감해 현재 500~1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호라산은 기존의 탈레반 대원 중 경험이 많은 무장대원으로 구성된데다, 비타협적인 지하드를 추구하는 이들이다. 유엔 보고서를 보면, 2020년 6월 새로운 지도자로 샤하브 무하지르가 등극해, 미국과 평화협상을 추진한 탈레반의 온건 노선 선회에 불만을 품은 대원들을 빼오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탈레반과 호라산은 아프간 동부에서 직접적으로 충돌했지만, 두 세력 사이의 연계성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다. 탈레반 내의 한 분파인 하카니 네트워크가 그 고리로 알려져 있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탈레반 내에서도 국제적인 테러 네트워크가 강한 세력이고, 일찌감치 알카에다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탈레반과 호라산 사이의 회색지대로도 분석된다.

 

아시아태평양재단의 테러 분석가 사잔 고헬 박사는 <BBC>에 “2019년과 2021년 사이에 벌어진 테러 공격 중 일부는 이슬람국가 호라산, 탈레반의 하카니 네트워크 및 파키스탄에 기반을 둔 다른 테러 단체들 사이 협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카불의 치안은 하카니 네트워크의 수장인 할릴 하카니가 맡고 있다. 미국은 현상금 500만달러를 걸고 할릴 하카니를 국제테러분자로 수배 중이다. 탈레반이 카불로 진공하는 과정에서 풀에차르히 교도소에서 많은 수감자들이 석방됐는데, 그중에는 호라산과 알카에다 대원들도 있었다.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 인터넷 선전매체에 올린 사진.

 

탈레반, IS-K 소탕 땐 안팎 갈등

 

미국은 이미 며칠 전부터 호라산의 테러 공격을 경고해왔다. 외국인 및 아프간 협력자들의 소개를 놓고 탈레반과 미국 등 서방이 갈등하는 상황인데다, 카불 공항 주변의 아비규환 상황 자체가 테러 공격을 감행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테러 공격 이후 탈레반에는 당장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을 통제하는 것이 급선무로 떠올랐다. 탈레반은 미국과의 도하 평화협정에서 ‘아프간을 알카에다 등 국제테러단체의 테러 발진기지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합의했다. 미군 철수를 이끌어낸 핵심인 이 사안은 탈레반이 정상국가의 정권으로 인정받고, 전후 재건에 필요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서도 관건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호라산 소탕 작전을 강화하면, 내부의 하카니 네트워크나 알카에다 등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이는 탈레반 안팎에서 큰 반발과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보복 다짐’ 미국과 협력 고리될 수도

 

성급한 철군 결정으로 탈레반의 카불 조기 입성을 초래했다는 국내외 비판에 직면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역시 사면초가로 몰리고 있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아프간에서 모든 미국인의 철수 때까지 철군을 연장하는 입법을 촉구하고, 벤 새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군이 카불 공항 주변 밖으로 통제권을 확대하거나 바그람기지를 재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오는 31일인 철군 시한을 고수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철군 시한을 연장하는 것은 카불의 혼란을 지속하고, 테러의 조건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어서 미국이나 탈레반이나 현재로서는 수용하기 힘든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때까지 소개 작전을 무사히 완료하는 한편 이번 테러에 대한 응징도 보여줘야 하는 ‘딜레마’ 상황에 놓여 있다.

다만 이런 상황이 오히려 미국과 탈레반 사이에 ‘공통분모’를 찾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이 다짐한 보복은 탈레반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고, 탈레반도 차제에 알카에다 등과의 관계를 차단하는 명분으로 삼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탈레반 지도부의 온건화를 더욱 촉진하고, 서방과의 협력 고리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다분히 낙관적인 전망이다. 정의길 기자

“끝까지 찾아내 대가 치르도록 할 것”

군에 이슬람국가 공격 계획 마련 지시

미군 13명 사망 등 최소 230여명 사상

미국인 · 아프간인 대피 작업은 계속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와 관련한 기자회견 도중 고개를 파묻고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서 벌어진 자살폭탄 테러의 주체라고 자인한 이슬람국가(IS)를 향해, 끝까지 찾아내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한 연설에서 “이 공격을 저지른 이들 그리고 미국이 피해를 입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말한다”며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을 끝까지 찾아내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명령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우리의 이익과 국민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공격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 지도부와 자산, 시설에 대한 공격 계획을 마련할 것을 군 지휘관들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무력과 정밀성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이슬람국가 테러리스트들은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겁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테러와 관련해 아프간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과 이슬람국가 호라산이 공모한 증거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에서 진행중인 미국인 및 아프간인 대피 작업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테러리스트들로 인해 방해받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 임무를 관두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대피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31일까지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 및 민간인 대피를 완료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러나 병력 추가 투입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필요하면 아프간에 추가 병력 투입을 승인할 것이라고 말해 기한 연장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와 관련해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민간인 대피 작업에 정해진 시간표는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테러로 숨진 미군들을 “다른 이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위험하고 이타적인 임무에 복무한 영웅들”이라고 부르며 애도를 표하고 잠시 묵념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을 “힘든 날”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뒤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다가 모은 두 손 위에 고개를 파묻고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여, 침통한 분위기를 더했다.

 

앞서 이날 오전 미국 등 각국의 철수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카불공항 주변에서 두 차례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미군 13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고 미 국방부는 밝혔다. 아프간인도 최소 60명이 숨지고 140명 이상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는 자신들이 공격 주체라고 인정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탈레반과도 척졌다…카불테러 IS ‘호라산’ 정체는?

아프간서 가장 잔인한 테러단체 악명

2015년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로 시작

미국과 협상 나섰던 탈레반과 적대 관계

 

2014년 1월14일 이슬람국가가 인터넷에 올린 사진으로, 이슬람국가 대원들이 본거지인 시리아 락까에서 행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인과 미군 등 9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26일(현지시각) 카불공항 연쇄 폭탄 테러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를 자처하는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소행이다.

 

이슬람국가는 2010년대 이후 크게 세력을 키워 중동 등 여러 국가로 진출했는데, 2015년 1월 아프간에 진출해 이슬람국가 호라산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끊임없이 테러를 저질러 왔다. 파키스탄 동부 나가하르 지방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국가 호라산은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테러 단체 중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단체로 악명이 높다. 2019년 8월 카불의 결혼식장에서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해 63명의 목숨을 빼앗았고, 지난해 11월 카불대학교에서도 총격 테러를 가해 20여명을 사망케 했다. 여학생과 임신부 등을 타깃으로 한 테러도 저질렀다.

 

이들은 탈레반이 미국과 평화협상에 나섰다는 이유로 ‘배교자’로 칭하고, 서로 적대 관계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했을 때도 다른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과 달리 “미국과 거래로 지하드 무장세력을 배신했다”며 탈레반을 비난했다. <뉴욕 타임스>는 25일 “현재 미국과 탈레반 모두에게 가장 큰 즉각적 위협은 이슬람국가 호라산”이라며 “이슬람국가 호라산의 존재는 탈레반의 요구와 맞물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철군 시한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이슬람국가 호라산의 조직원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이슬람국가 호라산의 규모를 ‘500명에서 수천명 사이’로 추정했고, 주 아프간 러시아 대사는 최근 “현재 아프간에서 이슬람국가 테러리스트 4천여명이 탈레반의 눈을 피해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서 발생한 테러로 다친 아프간 인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이슬람국가 호라산의 본부 격인 이슬람국가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로 이슬람 국가의 창설을 목표로 한다. 미군 등 국제사회의 대응으로 현재는 세력이 상당히 약화됐지만 2014~2015년 시리아와 이라크의 절반이 넘는 영토를 점령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테러를 저지르는 등 악명을 떨쳤다.

 

이슬람국가는 요르단 폭력배 출신의 이슬람주의자 아부 무사브 자르카위가 1999년 결성한 이슬람 무장단체 ‘유일신과 성전’이 뿌리다. 이 단체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알카에다의 이라크 조직인 ‘이라크알카에다’(AQI·2004년)가 됐고, 이후 크고 작은 수니파 무장세력을 흡수하며 몇 차례 이름을 바꾼 끝에 2006년 ‘이라크 이슬람국가’(ISI)로 탈바꿈한다.

 

이들이 급속히 세력을 키운 건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한 2011년 말 이후이다. 2012년 이라크 정부와 미군을 상대로 새로운 공격을 선포한 이래 이라크 전역에서 각종 테러를 주도했다. 특히,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은 이들이 세력을 키우는 발판이 됐다. 이후 시리아·레바논·요르단·팔레스타인 등지를 아우른 이슬람 국가 창설을 목표로 내걸고, 이들 지역을 뜻하는 명칭인 ‘레반트’를 추가해 2013년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이름을 바꿨고, 2014년 6월29일 이슬람국가 선포로 이어졌다.

 

이후 미국, 러시아 등 국제사회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에 대한 공동 대응에 나서고, 시리아와 이라크 정부군 등이 세력을 되찾으면서 서서히 세력이 줄었다. 2017년 이슬람국가 격퇴를 공약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본격적인 공격에 나서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최현준 기자

 

 

2016년 당선 이후 폭력적 마약 단속으로 수천명 사망

피해자 가족들  “몇년 동안 정의 실현 기다렸는데…”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권력 연장을 위해 내년 대선에서 부통령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지난 7월26일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케손시티/로이터 연합뉴스

 

폭력적인 마약 단속으로 국내외의 비판을 받고 있는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부통령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해, 희생자 가족들과 인권 단체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대통령 6년 단임제 규정을 피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년 5월9일 실시되는 대선에서 부통령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그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어, 출마할 경우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마약을 뿌리뽑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2016년 당선된 두테르테 대통령은 경찰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마약 관련 혐의자를 사살하라고 공개 명령하는 등 극단적인 단속 정책을 밀어붙였다. 경찰은 2016년 7월 이후 지금까지 20만 번의 마약 단속 작전을 수행했고, 이 과정에서 숨진 사람이 공식 집계로도 6천명 이상이다. 인권 단체들은 희생자가 최대 몇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인권 단체들은 이런 마약 단속 정책이 반인권 범죄라고 비판해왔고, 국제형사재판소(ICC)도 지난 6월 이에 대한 공식 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두테르테는 지난달 “내 나라를 파괴하는 이들을 나는 살해할 것이라는 점을 국제형사재판소가 기록해도 그만이다”라고 말하는 등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고교생이었던 자신의 조카가 2017년 마약 단속 경찰에게 살해당한 랜디 델로스 산토스는 <로이터>에 “지난 4년동안 우리는 두려움 속에 살면서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다렸다”며 두테르테가 부통령이 되면 단속 경찰 등에 대한 처벌은 요원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약 단속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크리스티나 콘티 변호사도 그가 부통령에 당선되면 마약 유통 혐의자들에 대한 살해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칼로 노그랄레스 내각부 장관도 두테르테가 부통령이 될 경우 ‘마약과의 전쟁’ 등 기존 정부 방침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말해, 이런 우려를 뒷받침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국내외에서 강압적인 통치로 비판을 받지만, 여전히 대중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최근의 여론조사 추세를 볼 때 그가 다바오시 시장인 자신의 딸 사라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출마하면 당선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의 딸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아버지가 측근인 크리스토퍼 고 상원의원과 함께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신기섭 기자